늑대인간은 드라큘라와 함께 서구의 고전적인 서스펜스의 소재로서 이야기를 통해 장수를 누려왔다. <울프맨>은 이 고전적 소재가 현대에서도 얼마나 유용할 수 있는가를 설득하고자 하는 작품 같다. 1941, 조지 와그너가 연출한 동명원작을 리메이크한 <울프맨>랩 디졸브(Lap Dissolve)’ 기법을 활용하며 당대 영상기법의 교과서적 선례로 추앙받았던 원작의 시대로부터 현격하게 진화된 CG기술력을 토대로 현대적인 영상기술의 발전을 증명하면서도 고전적인 특수분장기법을 포용함으로써 클래식한 이미지를 구현해낸다. 원작이 동시대 안에서 파격적인 가치를 증명했던 것과 달리 <울프맨>은 되레 복고적인 가치를 어필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형식적 태도는 원작의 형태를 수용한다는 점에서 리메이크라는 방식의 가치를 생산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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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문>을 보기 위해선 전제가 있다.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뉴문>의 전편인 <트와일라잇>은 분명한 취향의 호불호를 체감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누군가는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등마저 굽어버릴 판인데 어느 누군가는 잘도 깔깔거리며 마냥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이건 영화적 만듦새에 대한 불평이 좀처럼 합당하게 먹힐 구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지 <뉴문>이 보고 싶은 이라면 그에 따른 명확한 취향의 확신을 판단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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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문> 단평

cinemania 2009. 12. 1. 14:36

누군가는 오그라들어 등마저 굽어버릴 판에 어느 누군가는 잘도 깔깔대며 마냥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이건 누군가의 이성적 판단으로서 좌우될 문제가 아니다. 극장을 나와서 난 못 보겠네, 난 보겠네, 38선을 긋고 총뿌리를 겨눠본들 부질없고 하찮은 짓이다. <트와일라잇>을 보고 그 때 오그라든 손가락이 여전히 펴지질 않아, 라는 관객이라면 <뉴 문>은 꿈도 꾸지 말고 머리맡의 달이나 봐라. 하지만 태양을 받으면 온몸이 반짝거리는 스와브로스키 협찬 태생의 뱀파이어를 보고 마음이 두근거렸다면 티켓을 사라. 결국 취향의 문제다. 결국은 그 오그라듦을 감내할 수 있느냐, 없느냐, 의 문제다. 귀여니 소설을 보고 헥토파스칼 킥이라도 맞는 것과 같은 개념적 충격을 느꼈다면 <뉴 문> 130분 간 자기 성찰을 거듭하다 득도하는 시간이 될 게다. 만약 <뉴 문>이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의 피 튀기는 사투 즈음으로 알고 극장을 찾았다면 팔자를 탓해라. 물론 거기서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취향의 신세계를 발견하고 커밍아웃을 외치게 될진 모를 일이다만 그것이 장담하기 어려운 도박의 확률임을 깨닫는 게 보다 당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길일지도 모를 일이라는데 내 전재산과 오른손을 건다, 는 훼이크고, 그러니까 그렇단 말이다. <뉴 문>을 보고 할 수 있는 건 이런 말 장난에 불과하다. 그냥 그런 영화일 뿐이란 말이지. 그러니 그냥 웃지요. 화내면 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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