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의 붉은 정지 신호에 멈춰있던 차들이 신호가 바뀌자 쏜살같이 달려나간다. 그 가운데 분위기 파악을 못한 듯 차 한대가 길을 막고 서서 뒤차들의 성화를 얻고 있다. 이상한 낌새에 웅성거리던 사람 몇몇이 도로를 가로질러 멈춰선 차 옆으로 다가선다. 운전석에 앉은 일본인 남자(이세야 유스케)에게 다가간 행인들은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그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눈이 보이지 않아!’ 사람들은 남자를 안심시킨다.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시작임을. 상황은 그렇게 사소하고도 갑작스럽게 이뤄진다.
영화는 희뿌옇게 표백된 듯한, ‘우유의 물결’이라 표현되기도 하는 눈먼 자들의 시점을 종종 스크린에 투영하며 극중 인물들의 비극을 실감케 한다. 성별, 나이, 직업 따위와 무관하게 그 도시-어쩌면 온 세상-의 인간들은 눈이 먼다. 보지 못하는 이들의 세계 속에 볼 수 있는 한 사람이 고립됐다. 정부는 눈먼 자들을 병동수용소로 격리시키는 정책을 발효한다. 눈먼 남편(마크 러팔로)을 따라 수용소로 들어온 여자는 성녀처럼 눈먼 이들을 돌본다. 홀로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한 여자(줄리안 무어)만이 그 도시의 변화를 지켜본다. 시력을 상실한 인간들로 채워진 수용소는 이전 세계와 구분되는 새로운 세계다. 과거 그들이 지녔던 사회적 지위나 능력에 따른 개개인의 품위는 소멸되고 그들은 서로 육체만이 유일한 눈먼 인간으로 만난다. 결국 알력이 발생한다. 뒤늦게 타병동에 입소한 남자는 자신이 소유한 권총으로 폭력적인 협박을 서슴지 않으며 수용소를 장악한다. 수용소로 유입되는 식품을 독점하여 수용소를 통제한다. 민주주의적인 다수결로 유지되던 협약은 군주제적인 폭압에 짓눌린다. 보이지 않는 폭력의 위협 속에서 사람들은 무력해진다.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원제: ‘Blindness’)는 제목처럼 어느 도시의 눈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처럼 영화 <눈먼자들의 도시>에서도 이름은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 도시도, 사람도, 심지어 해당연도에 대한 일말의 정보조차 없다. 그 도시의 서사는 불분명하고 일방적인 은유의 영역이다. 포괄적인 의미에서 도시는 모든 사회가 품은 정치적 오류를 메타포로 끌어안는다. 과학적인 증명이 동원되지 않는 그 상황 자체가 거대한 사회적 실험극을 연상시킨다. 이는 인간 개인의 본성에서부터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관통한다. 시력을 상실한 도시의 인간들이 문명의 중심에서 야만의 행위를 거듭하는 광경은 충격을 동반하는 상식이다. 이성적인 제도와 규약으로 지탱되던 커뮤니티의 질서가 통제의 기능성을 상실했을 때 인간의 존재는 한없이 초라해진다.
원작 소설을 읽은 이에게 <눈먼자들의 도시>는 이미지로 구현된 텍스트를 지켜보는 것 외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영화는 소설의 문맥을 충실히 받들고 있다. 텍스트로 이뤄진 맥락들이 다양한 해석적 기반을 두르고 있는 것과 달리 영화는 그 가능성을 단순히 이미지로 나열하는 성과로 축약해버린다. 소설과 마찬가지로 영화는 전지적 시점을 유지한다. 생경하게 도시를 바라보며 시작되는 초반부부터 내러티브를 동원해 귀결되는 말미까지 전지적 시점을 고스란히 밀고 나간다. 하지만 그 모든 상황을 묘사하는 텍스트는 불확실성을 통해 상황의 끔찍함을 증폭시키지만 영화는 선명한 이미지로 상황의 추이를 고스란히 노출한다. 재난영화적 이미지는 정치적 메타포를 휘발시키고 인간 본성에 대한 철학까지 희석시킨다. 해석의 여지는 줄어든 만큼 관람의 욕구로 채울 수 없는 빈틈이 노출된다. 그 와중에 일본인 부부 캐릭터까지 배치하며 원작에 비해 지나친 사실성을 가미한다.
물론 <눈먼자들의 도시>를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도시의 인간들이 어느 날 갑작스럽게 눈이 멀어버린다는 묵시록적인 설정이 그 상황 자체를 묘사하고 싶게 만드는 매력을 지니고 있음을 부정하긴 힘들다. 다만 그 이야기가 품고 있었던 가능성들에 비해 영화의 성취는 미약하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 이은 주제 사라마구의 ‘눈뜬 자들의 도시’(원제 ‘Seeing’)가 실명 상태에서 벗어난 도시인들의 정치를 직접적으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눈먼 자들의 도시’의 본질은 더욱 확고해진다. 반면 <눈먼자들의 도시>는 그저 거대한 해프닝을 모사한 것에 불과하다. 좀비 같은 인간들이 가득한 유령 같은 도시만이 이색적으로 펼쳐질 뿐, 백색테러의 은유를 감지하기란 쉽지 않다. 선명한 이미지는 희미한 텍스트보다 많은 것을 놓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