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려하다가도 몰아치게, 고요하면서도 가열차게, 조 라이트는 특유의 감각적 재능으로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고 초월한다. 사운드와 비주얼의 공감각적인 여정, 조 라이트의 길을 돌아본다.
1972년 런던에서 조 라이트가 태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는 65세였다. 그는 아들이 19세가 되던 해에 숨을 거뒀다. 아버지와 함께 했던 그 시절은 라이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아버지는 꼭두각시 인형극 극단을 설립하고 극장을 운영했다. 그 극장에서 본 인형들의 연기는 살아있는 라이트의 삶을 흔들었다. 사실 소년 라이트는 책상에 앉아서 교과서를 펴고 공부하는 평범한 학생이 될 수 없었다. 소년에게는 난독증이 있었다. 그럴수록 소년은 슈퍼 8미리 카메라로 세상을 비추며 자신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결국 예술학교에 진학한 라이트는 미술과 영화를 전공한 예술대학에서 첫 연출작인 단편영화 <크로코다일 스냅>(1997)을 완성하고 이를 통해서 주목을 얻기 시작한다. “나는 카메라맨이나 디자이너, 혹은 배우가 될 수 없었다. 내가 감독이 된 건 아버지로부터 배웠던 것들 덕분이다. 일반적으로 나는 평범한 삶에 어울리는 법을 잘 알 수 없었던 대신 촬영장에 나가서 영화를 찍고,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그리고 거기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깨달았다.”
“나는 몇 년 전부터 행운을 얻고 있다. 내게 일어나는 일들 말이다.” 여기서 라이트가 말하는 행운은 2000년 무렵에 시작됐다. TV미니시리즈로 연출 경력을 쌓으며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그는 2003년 BBC에서 방영된 4부작 시대극 <찰스 2세>로 영국 아카데미 2관왕에 오르며 새로운 기회를 얻는다. <오만과 편견>(2005)이 바로 그것이었다. 유려한 문체로 시대를 풍자한 당대의 여성 작가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을 스크린에 옮기는 데 있어서 그는 어떤 구상을 지니고 있었을까. 그는 말한다. “내게 각본이 보내지기까지 그 책을 본 적이 없었다.”놀랍게도 그는 잘 모르는 제인 오스틴을 필사하는 대신 각본을 바탕으로 자신의 감각을 끌어올리는데 집중했다. 라이트는 대학시절의 수업에 대해서 이처럼 말했다. “매우 이론적이고 대단히 매력적이지만 나는 실질적으로 내러티브를 지닌 영화를 만들길 원하는 것뿐이다.” 그는 이론 수업에 의지하기 보다 방과후와 주말마다 극장에서 펼쳐지는 현역 배우들의 강습에 참여하며 경험과 감각에 의지하는 법을 깨우쳐 왔다. 원작에 비해서 자립적인 현대의 여성성이 강하게 투영되고, 보다 로맨틱한 감수성이 안개처럼 내려앉은 <오만과 편견>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이런 자질 덕분이다. 특히 서정적인 음악과 고풍스러운 영상의 결합은 로맨틱한 기운을 한껏 불어넣는다. 그리고 이는 결국 원작의 유명세보다도 라이트의 이름을 눈여겨보게 만들었다.
성공적인 필름 데뷔 이후, 그의 두 번째 행보는 다시 한번 유명 원작을 각색한 시나리오를 영화화하는 것이었다. 영국의 저명한 소설가 이언 매큐언의 <속죄>의 영화화 작업은 제인 오스틴의 그것과 확연히 다른 일이었다. 교과서에 등장할만한 고전 작가의 작품을 영화화하는 것과 달리 명성이 자자한 동시대 작가의 작품을 영화화한다는 건 “나는 내 심리의 등에서 뛰어다니는 피해망상을 얻었다”고 할 만큼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심리를 압박하듯 일정한 속도로 반복되는 타자기 소리, 발자국처럼 찍히는 활자의 행렬을 이미지와 사운드로 구현해낸 오프닝 시퀀스의 리듬감에서 출발하는 <어톤먼트>(2007)는 사운드와 비주얼을 융화시키는 라이트만의 공감각이 빛을 발한 작품이다. <어톤먼트>의 오스카 음악상 수상의 공은 일차적으로 음악감독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에게 돌려야 마땅하겠지만 음악과 영상을 능수능란하게 접목시킨 라이트의 재능도 간과할 수 없다. 서정적인 운율의 클래식한 넘버 위가 흐르는 가운데 투명하게 떨어져 분산되는 자연광은 파국적인 로맨스에 깃든 처연함을 더욱 애잔한 여운으로 밀어 보낸다.
과거 시제의 두 작품을 통해서 연출력을 인정받은 라이트는 <솔로이스트>(2009)를 통해서 현대극에 도전한다. 실화에 기반한 이 작품은 정신적 질환으로 줄리어드 음대를 중퇴한 거리의 악사 나다니엘을 발견한 <LA타임즈>의 인기칼럼니스트 스티브 로페즈가 관찰자로서 그를 찾아가다가 끝내 그와 교감을 이루고 서로의 치유를 돕는 과정을 기술한 칼럼에서 비롯된 기획이다. 단조처럼 우울한 삶 속에서 무기력과 피로감을 느끼는 탓에 쉼표 같은 삶을 찾던 스티브와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착란에서 헤어나올 마침표가 필요한 나다니엘, 이 두 사람의 만남을 그린 <솔로이스트>는 영화와 실화의 협연이라 해도 좋을 작품이다. 사실 라이트의 비범한 전작에 비해서 <솔로이스트>는 상대적으로 범작에 가깝다. 하지만 콘트라베이스의 현 위에 떨어진 몇 줄기의 빛을 포착해낸 감각적인 클로즈업 샷과 결을 따라 흐르는 듯한 현악기의 유리 같은 선율, 베토벤 관현악을 듣는 나다니엘의 심상을 빛의 파동으로 표현해낸 환상적인 컬러는 라이트만의 진수를 드러낸다.
마치 경력의 전후를 가르듯 라이트는 연이어 현대적인 작품을 선택한다. 그러나 <어톤먼트>로 데뷔한 시얼샤 로넌을 타이틀 롤로 앞세운 <한나>(2011)는 그의 전력을 염두에 둔다면 분명 파격적이고 이례적인 선택이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도 <한나>는 그의 지난 작품들에 비해서 다른 문법을 지닌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한나>는 서사적인 개연성보다는 공간의 변화와 이동을 통해서 극을 전개하고 진전시키는 양상이 두드러지는 영화다. 무엇보다도 원작 소설도, 실화적 모티프도 없는 오리지널 각본으로 완성한 라이트의 첫 영화라는 점에서도 새롭다. 사실 이 작품을 처음 선택한 건 라이트가 아니었다. 바로 캐스팅이 확정된 로넌의 추천을 통해서 라이트가 보다 늦게 합류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현대적인 판본의 잔혹동화라 해도 좋을 <한나>에서 라이트는 자신이 지닌 공감각을 폭발시키듯 분출해낸다. 특히 노이즈와 전자음에 어울리는 만화경 비주얼은 사이키델릭 그 자체다. 현대적인 판본의 잔혹동화라 해도 좋을 <한나>는 라이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악랄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작품이란 점에서도 중요하다. 자신의 한계를 깬다는 것, 이는 가능성의 확대를 위한 전제조건이다. 그는 보기 드물게 시대성을 초월하는 공감각적 재능을 지닌 연출가다. 그리고 라이트는 말한다. “영화를 만드는 매 순간, 그것이 내게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기회를 주고 있음을 느낀다.” 운명과도 같았던 영화는 여전히 그에게 방향을 가리키는 지표다. 그의 공감각적 여정은 그렇게 새로운 길로 접어들고 있다.
오스카가 제이미 폭스를 호명했을 때, 장내를 두른 박수는 제이미 폭스 개인의 명예 이상의 것이었다. 흑인배우를 그림자 취급하던 할리우드의 편견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실력을 통해 할리우드의 중심에 선 것이다.
2005년, 제77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LA 할리우드 코닥극장의 열기는 달아올랐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와 마틴 스콜세지의 <에비에이터>(2004)가 뜨거운 경합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남우주연상만큼은 이미 두 영화와 무관한 일이었다. 아마 그 해 오스카 심사위원들은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누구의 손에 쥐어줄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레이>(2004)의 제이미 폭스를 보지 못했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분명 다른 후보에 대한 흥미 따위는 접었을 것이다. 이변에 대한 예상조차 불순한 일이었다. 만약 제이미 폭스가 <레이>로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쥐지 못했다면 그 해 아카데미는 두고두고 비웃음을 샀을 거다.
물론 ‘오스카가 선택한 세 번째 흑인남자배우’라는 수식어로 제이미 폭스를 치장해버린다는 건 탐탁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제이미 폭스의 수상에 주목해야 하는 건 그 수상이 새로운 흑인배우들의 전성시대를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이미 폭스가 감격을 맞본 지 채 2년 만에 <라스트 킹>(2006)으로 아카데미에 호명된 포레스트 휘태커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덴젤 워싱턴과 할리 베리의 동반 수상을 통해 세차게 밀어 올린 블랙 파워의 박동이 비로소 좁은 혈관의 숨통을 텄고, 그로부터 불과 3년 만에 제이미 폭스라는 뉴웨이브가 수혈된 것이다. 제이미 폭스는 새로운 시대의 포문을 열기 위한 적자였다. 번거롭게 잽을 날리고 풋워크를 밟으며 전진하는 것이 아닌 확실한 한 방으로 왕좌를 차지한 진정한 블랙아웃(blackout)이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 할리우드는 아카데미의 입을 빌려 커밍아웃했다. 흑인배우들에 대한 할리우드의 낡은 관습이 더 이상 유용하지 않음을 자각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에릭 말론 비숍이라는 본명을 버리고 제이미 폭스라는 가명을 쓰기 시작한 건 코미디 클럽에서 공연을 하던 1989년도였다. 당시 여자 코미디언이 공연 초반에 불린다는 것을 안 그는 자신의 이름을 제이미 폭스라고 지칭하기 시작했다. 공연 중 장난처럼 자신을 이름을 불렀다. 그는 이 이름이 “어떤 선입견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믿었다. 그 후로 TV코미디 시트콤 등을 통해 입지를 다져나가던 제이미 폭스는 올리버 스톤의 <애니 기븐 선데이>(1999)를 통해 잠재력을 펼쳐 보인다. 혈기왕성한 쿼터백 윌리 비멘으로서 알 파치노와 맞선 제이미 폭스는 무엇보다도 쿼터백으로서 역동적인 움직임을 선사하며 인상적인 평을 얻어냈다. 그건 사실상 이미 준비된 연기였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제이미 폭스는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유니폼을 꿈꿨다. 교내 역사상 1000야드를 돌파해 터치다운을 찍어낸 쿼터백은 제이미 폭스가 유일했다. 결국 <애니 기븐 선데이>는 연기자로서 제이미 폭스의 삶에 도화선이 됐다.
그의 삶의 전환점을 만든 건 마이클 만과의 만남이었다. 혹자들은 제이미 폭스가 윌 스미스에 밀려서 알리 역을 얻지 못했다고 수군거렸지만 정작 제이미 폭스는 말한다. “처음 만났을 때, 그(마이클 만)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제이미 폭스가 <알리>(2001)에 출연할 수 있도록 힘을 쓴 건 윌 스미스였다. 그는 마이클 만에게 말했다. “이 친구가 그 역할(알리의 코치 드루 번디니 브라운)을 할 수 있다.” 마이클 만은 심드렁했다. 그러자 윌 스미스가 훅을 날렸다. “나는 제이미 폭스 없이 하지 않을 거야.” 결국 제이미 폭스는 <알리>에 출연했고, 마이클 만과의 인연은 <콜래트럴>(2004)과 <마이애미 바이스>(2006)를 거쳐, 심지어 그가 제작자로 나선 <킹덤>(2007)까지 이어졌다. 제이미 폭스는 마이클 만과의 작업을 이렇게 소회했다. “마이클 만과 작업할 때, 나는 상업적 성공은 염두에 둘 수도 없었다. 우선 그 영화의 예술성에 관해서만 생각했다. 당신이 알 파치노가 등장하는 대부분의 영화를 볼 때, 상업적인 성공이 아닌 다른 걸 기억하는 것처럼.”
제이미 폭스란 이름을 각인시킨 결정타가 된 <레이>에서 그는 단순히 레이 찰스를 재현하는 배우로서 기능하지 않았다. 사실 제이미 폭스는 연기자가 되기 이전부터 가수를 꿈꾸고 있었다. 할머니의 영향으로 5살 무렵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은 제이미 폭스는 유년시절엔 교회 성가대를 이끌기도 했다.?그에게 음악은 종교와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레이 찰스는 살아있는 현신이었다. 레이 찰스에게 직접 레슨을 받고 가르침을 전해들을 수 있다는 감격에 비하면 하룻동안 12시간을 넘게 눈을 뜨지 못하는 고통은 감내할만한 것이었다. “만약 네가 그걸 느끼고 나서야 그것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야.” 이런 레이 찰스의 가르침은 그에게 일용할 양식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내게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 가르쳐줬다.” 결국 <레이>는 제이미 폭스를 오스카의 영예로 쏘아올렸다. 그건 그가 고대하던 첫 번째 정규앨범 발매를 위한 도움닫기로서 효과적이었다. 최근 두 번째 정규앨범을 발매했던 제이미 폭스는 지금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더블 플래티넘의 흥행기록을 지닌 R&B가수로서 위치를 구축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레이>에서 제이미 폭스가 보여준 뛰어난 표현력은 근작인 <솔로이스트>(2009)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레이>와 마찬가지로 실존인물인 길거리 음악가 나다니엘 안소니 에이어스를 연기한 제이미 폭스는 이를 위해 갖은 고생을 치러내야 했다. 레이 찰스를 연기하기 위해 약 14kg 감량을 시도했던 제이미 폭스는 나다니엘을 연기하기 위해 다시 한번 8kg정도를 감량했다. 또한 노숙자처럼 보이기 위해 치과를 찾아가 정상적인 앞니를 긁어냈으며 주변의 걱정을 살 정도로 역할에 몰입해나갔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떨쳐낼 수 없었다. 매니저조차도 내가 배역에 빠져 있다고 말했지만, 나는 전혀 몰랐다. 이 작품을 통해서야 내가 그런 스타일이란 것을 알았다. 촬영이 끝난 뒤에도 제법 오랫동안 ‘이제부터는 나다니엘처럼 생각하지 말자’라고 다짐해야 했다. 몇 달이 지난 후에야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제이미 폭스는 단지 배역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역할을 진심으로 이해한다. “노숙자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과 직접 노숙자가 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그냥 노숙자들을 보면 ‘저런’이라 말하게 되지만, 내가 저렇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보면 완전히 다르게 느껴진다.”
“모든 면에서 굉장히 어려웠다”는 <솔로이스트>의 작업이 LA에서 끝난 직후 제이미 폭스는 곧장 필라델피아로 날아가 <모범시민>(2009)을 촬영했다. <모범시민>에서 지적인 검사 닉 라이스를 연기하는 그는 <드림걸즈>(2007)의 커티스 테일러 주니어를 연상시키는 냉정함을 드러내는 가운데 인간적인 체온을 유지해낸다. 그 인간적 체온은 어쩌면 본래 제이미 폭스의 것일지도 모른다. <킹덤>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제니퍼 가너는 “제이미가 나타나면 세상에 더 즐거운 것이란 없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에도 할리우드 주연배우로 활동하는 가운데 코미디 클럽에서 즉흥적인 연기를 펼친다. 그럴 수 없을 때는 세트장에서 동료들을 웃기곤 한다. <킹덤>의 피터 버그 감독은 제이미 폭스를 ‘특별한 재능’이라 일컬었다. “그는 정말 재미있는 사람인 반면 한편으론 매우 진실한 사람이다. 한마디로 복잡한 남자지.”
현재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로맨틱 코미디 <발렌타이 데이>(2010)의 개봉을 기다리는 제이미 폭스는 또 다른 코미디물 <듀 데이트>(2010)에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다시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진중하고 비범한 역할을 돌아 명성을 얻어낸 그는 이제야 비로소 자신이 사랑하는 코미디로 돌아서는 중이다. “거만해지는 걸 배우지 않은 것, 그것이 내 전부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잘 알고 있다. 다만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부단히 꿈꾸고 노력할 뿐이다.
삶은 악보가 없는 연주와 같다. 저마다의 일상으로 마디를 채우고, 삶의 악절을 이룬 뒤, 종래엔 하나의 악보로서 인생을 거둔다. 소나타처럼 단정하게 저마다의 멜로디를 보존하는 개인의 삶은 콘체르토(concerto)와 같은 긴장과 이완의 협주적 관계로서 세계의 하모니를 이루기도 하며 어느 누군가는 거대한 심포니처럼 웅장한 울림을 전하고 영원을 산다. 저마다의 인생은 이 세계의 악장을 이루는 크고 작은 악절이다. 멜로디이며, 리듬이고, 하모니다. 그 삶에 준비된 악보는 없다. 누구나 텅 빈 오선지와 같은 시간을 제 삶으로 채워나간다. 누구나 <솔로이스트 The Soloist>로서 삶을 연주해나간다.
2005년 4월 17일, LA타임즈엔 ‘2현으로 세상을 소유한 바이올린 주자(Violinist Has the World on 2 Strings)’라는 헤드라인의 칼럼이 실렸다. ‘포인트 웨스트(POINTS WEST)’를 연재하는 인기칼럼니스트 스티브 로페즈의 글이었다. LA의 ‘펄싱 스퀘어(Pershing Square)’공원에 있는 베토벤 동상 주변에서 들려오는 ‘베토벤 소나타’를 쫓아간 ‘스티브 로페즈(Steve Lopez)’는 2현밖에 남지 않은 고물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나다니엘 안소니 에이어스(Nathaniel Anthony Ayers)’를 만났다. 그 뒤로 스티브는 나다니엘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고, 도시의 거리 정책에 대한 의견을 쏟아냈다. 결국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이 일렁이기 시작했고 도시는 변화하기 시작한다.
LA타임즈 기자이자 인기칼럼니스트인 스티브 로페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정신적 질환으로 인해 줄리어드 음대를 중퇴하게 된 거리의 악사 나다니엘(제이미 폭스). 스티브 로페즈가 나다니엘에 관해 연재한 칼럼을 엮어 전기적 소설로 각색한 동명원작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솔로이스트>는 실화와 영화의 협연이다. 단조와 같은 삶 속에서 피로와 권태를 느끼는 스티브는 전환을 위한 쉼표를 갈망한다. 도돌이표와 같은 착란에 갇힌 나다니엘에겐 새로운 삶을 위한 마침표가 필요하다. 나다니엘을 위해 헌신적인 원조를 마다하지 않는 스티브는 나다니엘을 통해 드라마틱한 기사 소재가 아닌 진짜 삶을 정화시키는 감동을 얻는다. 나다니엘은 스티브의 진심을 통해 점차 세상에 마음을 열어나간다.
스티브와 나다니엘의 관계에 망원경을 들이미는 동시에 그들의 개별적 삶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솔로이스트>는 현실에서 얻은 상처를 치유하는 두 사람의 관계를 묘사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 관계적 묘사방식에서 현실적 실화를 스크린에 옮겨 넣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얻어내기 어렵다. 형태적으로 관계를 묘사해나가지만 재현적 이미지 이상의 정서적 감흥에 도달하지 못한다. 제인 오스틴 원작의 <오만과 편견>과 이언 매큐언 원작의 <어톤먼트>와 같이 영국작가들의 텍스트를 풍요롭고 섬세한 이미지로 전환해낸 조 라이트의 감수성 어린 재능도 <솔로이스트>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섬세한 문체를 예민한 영상으로 치환하고 풍요로운 문장을 풍부한 색채에 반영하며 조 라이트의 감각을 비범하게 드러내던 전작들과 달리 <솔로이스트>는 또렷하고 선명한 이미지가 주류를 이룬다. 물론 콘트라베이스 현을 포착하는 클로즈업 광각 샷과 함께 베토벤의 관현악을 듣는 나다니엘의 심상을 빛의 파동으로 치환한 환상적인 장면과 같이 예민한 시선과 풍요로운 감각을 드러내 보이긴 하나 전반적으로 <솔로이스트>에서 주류를 차지하는 이미지는 그 드라마만큼이나 평이한 결과물에 가깝다.
현실은 때로 영화보다도 영화 같은 감동을 선사한다. 그건 <솔로이스트>가 재현해낸 실화 역시 마찬가지다. 스크린은 단지 현실의 감동을 반영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현실이 이뤄낸 감동의 본위가 스크린에 얼마나 충실히 반영되고 있는지, 혹은 스크린이 그 이상의 어떤 의미를 발췌해내고 있는지가 주요한 관점으로서 감상을 지배하게 된다. 물론 영화의 끝에 다다라서야 뒤늦게 그 사연의 실체가 된 현실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것이 실화라는 정보를 미리 접하지 못한 관객에게) <솔로이스트>는 허구적 사연을 감상하고 있었다고 판단한 관객의 착시를 보다 강렬한 감상으로 이끌어낼 가능성이 다분한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끝에 걸린 현실성의 환기가 <솔로이스트>에서 가장 강렬한 대목이다. 영화보다도 영화 같은 현실을 통해 완성된 영화라는 점이 <솔로이스트>에 강한 방점을 남긴다. 이는 결론적으로 <솔로이스트>가 부여하는 영화적 감동이 뒤늦게 체감하는 현실에 대한 환기보다 놀라운 의미를 선사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동시에 두 인물의 관계와 함께 개별적 인물의 고독과 혼란을 묘사하는 영화는 두 영역에 놓인 정서를 적절히 다스리지 못하고 저마다 방치하듯 선을 벌려나가는 느낌을 준다. 덕분에 내러티브의 집중력이 응집되지 못해 감상을 흩뜨리고 있다는 인상을 느끼게 만든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제이미 폭스는 호연을 펼친다. 하지만 순차적인 수순을 따르듯 전개되는 드라마 속에서 두 배우의 연기 역시 평범함을 더하는 요소처럼 나열되는 것만 같다. <솔로이스트>는 영화를 뛰어넘는 현실의 가치를 방증하는 작품에 불과하다. 딱히 부족한 인상을 남기는 건 아니지만 특별한 인상을 남기는 것도 아니다. 영화의 말미에 다다라 스티브 로페즈와 나다니엘 안소니 에이어스의 근황을 전하는 자막이 영화적 재현보다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실화적 유산을 넘어서지 못한 재현적 한계의 사례로서 유용해 보인다. 마치 원곡의 울림에 도달하지 못하는 연주력을 선보이는 관현악단의 공연을 보는 것만 같다. 다만 에사 페카 살로넨의 지휘 아래 베토벤 심포니를 연주하는 LA 필하모닉의 공연은 어떤 영화적 얼개와 별개로 좋은 부록의 역할을 한다. 만약 현재에도 그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는 두 인물의 실제적 모습을 보고 싶다면 LA타임즈 홈페이지에 있는 스티브 로페즈의 칼럼을 검색해볼 것. 칼럼과 함께 첨부된 동영상 너머의 실제적 삶은 재현이 넘볼 수 없는 감동을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