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아이맥스 관람 열풍이 뜨겁다.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본 배트맨과 일반 상영관에서 본 배트맨이 다르다는 소문도 자자하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8월 13일 기준으로 개봉 4주차에 접어든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전국적으로 6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모았다. 그 중에서 30여만 명 관객이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배트맨을 목격했다고 한다. ‘아이맥스(IMAX)’와 국내 독점 사용권을 계약한 CJ CGV 극장 체인은 개봉을 2주 앞두고 오픈한 자체 예매 사이트에서 아이맥스 상영관 개관 이래 최대 사전 예매량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현재 국내에 아이맥스 상영관이 위치한 곳은 서울 3개 극장을 포함한 10개 극장이다. 지난 해 말까지 전세계 아이맥스 상영관 수는 48개국 583개로 집계됐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 이전에도 아이맥스 상영관은 존재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개봉과 맞물린 아이맥스 관람 열풍과 마찬가지로 2008년 <다크 나이트> 개봉 당시에도 아이맥스 관람 열기가 뜨거웠다.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한 <다크 나이트>를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보기 위한 예매 경쟁이 치열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상영시간은 164분, 그 중 아이맥스 카메라 촬영 분량은 55분에 달한다. 아마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영화를 봤다면 아이맥스 촬영 분량이 등장할 때마다 화면 비율이 변하는 것을 관찰한 관객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만약 당신이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일반 상영관에서 봤다면 55분 정도는 본래의 이미지보다 상하로 절반 가까이 잘려나간 형태로 볼 수 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그게 대수냐고 묻는다면, 맞다. 대수다. 도입부부터 펼쳐지는 비행기 납치신을 비롯해서 중반부 즈음 등장하는 ‘더 배트’의 이륙 광경 그리고 미식축구장의 함몰로 시작되는 광활한 도시 폭발신, 결말부의 시가전 등 당신이 잃어버린 한 뼘은 보다 몰입도 있는 감상의 너비였다.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한 영화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직사각형 꼴의 와이드스크린 즉 시네마스코프 스크린과 달리 정사각형 꼴에 가깝다. 상하의 여백을 채우며 스크린을 가득 채운 광활한 이미지가 구현된다는 것이다.
‘아이맥스(IMAX)’는 1970년대 캐나다에서 개발된 촬영 및 영사 기술이다. ‘이미지 맥시마이제이션(Image Maximization)’ 또한 ‘맥시멈 이미지(Maximum Image)’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이 용어는 심심찮게 ‘아이 맥스(Eye Max)’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시각적으로 가장 극대화된 이미지를 제공한다는 이 단어의 의미는 예나 지금이나 허풍이 아니다. 아이맥스 카메라가 단지 큰 화면에서 보기 위한 수단이라 생각한다면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이 있다. 큰 화면으로 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월등한 해상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디지털 카메라의 해상도는 필름 카메라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그럼에도 유일하게 디지털 촬영 방식으로 따라잡지 못한 필름 촬영 방식이 바로 아이맥스 카메라다. 현재 최고의 해상도를 자랑하는 디지털 카메라 레드원의 해상도는 아이맥스 카메라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1970년대에 개발된 아날로그 기술을 21세기의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카메라의 조도가 높아서 어두운 나이트 촬영에서도 선명하게 상을 포착할 수 있다. 밤거리를 누비는 배트맨의 활약상을 그린 <다크 나이트>나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아이맥스 카메라는 보다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현재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된 영화는 모두 네 편이다. 상업영화 최초로 아이맥스 카메라로 부분 촬영된 <다크 나이트>(27분 16초)와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8분 54초),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23분) 그리고 <다크 나이트 라이즈>. 그렇다면 <다크 나이트> 이전까지 어째서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한 영화는 없었던 것일까? 간단하다. 무겁고 비싸기 때문. 전세계에 아이맥스 카메라는 단 4대뿐이다. 카메라 제작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대체로는 그만큼 시장의 요구가 적기 때문이다. 110kg이 넘는 아이맥스 카메라를 역동적인 극영화 촬영에 활용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일반적인 35mm 필름보다 두 배 너비에 달하는 70mm 필름은 그만큼 더욱 무거울 수 밖에 없다. 또한 아이맥스 카메라의 렌탈 비용도 만만치 않다. 최근 미국의 영화 통계 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의 분석에 따르면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원래 예정된 제작 예산 1850만 불을 훌쩍 넘긴 2500만 불의 제작비를 사용했는데 이는 아이맥스 렌탈 비용 때문이라 분석했다. 덕분에 <다크 나이트> 촬영 당시 아이맥스 카메라가 추락하며 박살 나는 장면은 단연 화제였다. <다크 나이트>가 전세계 아이맥스 카메라를 세 대로 줄였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돌았지만 최근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뷰에 따르면 카메라는 잘 고쳤다는 후문이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 촬영 중 앤 해서웨이가 탑승한 배트 포트가 카메라와 충돌하는 영상이 인터넷에 돌면서 또 한 대가 부서졌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그만큼 아이맥스 카메라에 대한 관심이 이 작품들에 대한 관심과 연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메가폰을 잡은 크리스토퍼 놀란은 심심찮게 3D영화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해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롤러코스터와 같은 3D 비주얼이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를 방해하는 탓에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감상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는 아이맥스 카메라로 상업영화를 촬영해야 한다고 누누이 밝혀왔다. 그리고 증명했다. 압도적인 스케일의 광활한 이미지를 통해서 영화의 스토리와 철학에 보다 깊게 빠져들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 말이다. 그리고 그의 시도는 영화 산업 전반을 자극한다. <다크 나이트>에 흥미를 느낀 감독 마이클 베이가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에서 아이맥스 카메라를 사용했듯이 현재 아이맥스 카메라 촬영을 계획한 작품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내년에 개봉되는 <스타트렉: 더 비기닝 2>와 <헝거 게임: 캐칭 파이어>가 그것. <아바타> 이후로 3D 촬영이 <아바타>로부터 시작된 것처럼 <다크 나이트 라이즈>로부터 아이맥스 카메라 촬영이라는 새로운 영화적 시도가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 방영됐던 TV시리즈 <스타트렉: 더 넥스트 제네레이션>을 기억하는 이가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스타트렉>의 네임밸류는 분명 국내에서 ‘듣보잡’에 가깝다. 특히 <스타트렉>이 전세계적으로 ‘트레키(Trekkies)’라는 광신적인 팬덤까지 형성하며 성대한 지지를 얻은 시리즈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 시리즈가 국내에서 얻은 대우는 가히 ‘안습’에 가깝다. 하지만 1966년에 제작된 진 로든베리의 오리지널 시리즈로부터 5번에 걸쳐 진전된 TV시리즈와 10편의 극장판까지 업데이트 된 <스타트렉>의 발자취는 국내 사정과 무관하게 무궁무진 그 자체다. J.J.에이브람스가 이 시리즈의 프리퀄(prequel)이라 소개된 <스타트렉: 더 비기닝>(이하, <더 비기닝>)을 축조하기까지의 과정도 분명 그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스타트렉>은 분명 전설이다.
<더 비기닝>은 전설을 위해 마련한 또 다른 초석이다. 시작을 의미하는 부제처럼 시리즈의 시계를 원점으로 되돌린 것 같지만 실상 그 야심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간단히 말하자면 <더 비기닝>은 단순한 프리퀄이 아니다. 그저 앞선 시리즈가 묘사하지 못한 옛날 이야기 따위를 삽입하거나 발전된 그래픽기술을 통해 과거에 불가능했던 비주얼을 전시하는 부록의 기능성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더 비기닝(The beginning)’이라는 부제는 그 위치를 알리는 지표가 아니라 일종의 선언에 가깝다. 다시 원점에서 시작되는 ‘리셋(reset)’도 아니고 지금까지 진행되던 모든 사연을 뒤엎고 새롭게 건축하는 ‘리부트(reboot)’도 아니다. 말 그래도 또 다른 시작에 가깝다. 원점으로 돌아가서 또 다른 원점을 그려냈다.
그것을 가능케 한 건 서사의 영역을 단선적 배치로부터 탈피시킨 상대성 원리다. 공간에 구멍이 뚫리고 그 공백을 통해 차원의 장벽이 무너질 때 시간의 이동이 가능하다는 개념은 순간이동과 상대성 원리의 기초적 결합이며 이는 <더 비기닝>이란 프로젝트 자체를 가능케 하는 원리이자 규칙이 된다. 또한 <스타트렉>이라는 세계관 자체가 이미 기본적인 물리적 원리를 동력원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원리를 응용하는데도 무리가 없다. <스타트렉>은 영화 밖 현실에서 가설의 형태로 존재하는 물리적 법칙들이 이미 현실화된 하이 테크놀로지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세계다. 그만큼 영화 밖 현실과 영화 안 현실의 괴리는 미래의 기술적 진보라는 테마 자체만으로 극복이 가능하다. 미래라는 서사적 허구는 현실적인 불확실성을 원리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판타지의 현실적 그릇으로 확보된다. 그 안에서 다양한 시도가 가능해진다. 시대적 성취로 인정되는 다양한 가능성이 새로운 이야기의 동력원으로 확보된다.
<더 비기닝>은 이런 가능성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이야기로 거듭난다. 서사의 형태를 전혀 다른 것으로 가공하거나 새롭게 포장만 바꾼 것이 아닌, 과거와 무관하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대체 현실(alternative reality)’을 창조해낸다. 마치 어떤 표면을 흐르는 카메라가 궁극적으로 우주선의 몸체를 드러내는 것처럼, <더 비기닝>은 어떤 일부분의 노출을 통해 흥미를 자극하면서 거대한 결과물을 통해 탄성을 내지르게 만든다. 좀처럼 예측할 수 없는 시작은 이야기의 파편과 같다. 그 파편의 흔적을 추적하고 새로운 파편을 수집하며 이야기의 동선을 가늠할만한 단서가 되는 거대한 원리가 등장하는 중반부에 다다르기까지의 과정이 흥미롭다. 캐릭터의 탄생 시점을 비틀고 이를 통해 운명을 보존하되 새로운 필연을 부여한다. 그 과정에서 전통적인 캐릭터의 성향이 변화하고 새로운 변주가 설득력을 얻는다. 이는 <스타트렉>시리즈의 전통적인 트레키나 새로운 트레키의 양자가 될 후보군 누구라도 부정할 수 없는 매력이다.
제임스 커크(크리스 파인)와 스팍(잭커리 퀸토)을 비롯해 우후라(조이 살디나)와 술루(존 조), 맥코이(칼 어번), 스콧(사이먼 페그)과 같이 새로운 얼굴로 대체된 전통적 캐릭터들은 오래된 추억과 교감하는 동시에 새로운 미래를 위한 양자로서의 표정을 드러낸다. 또한 체코프(안톤 옐친)와 같은 새로운 캐릭터를 통해 이 시리즈가 과거와 다른 방향의 탐사를 펼칠 것임을 예고하기도 한다. 디스토피아의 암울한 미래를 담보로 한 대부분의 SF영화들과 달리 다소 낙관적인 <스타트렉>시리즈의 감수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음과 동시에 과거보다 진보된 영상 기술을 통해 과감한 스펙터클을 전시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쾌감을 장착한다.
이는 프리퀄도 아니고, 속편도 아니다. 시리즈의 0번째 위치를 선점한 동시에 11번째 자리마저 점유한다. 시리즈의 중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출발점에 섰다. 서사에 합류하기 보단 서사에 구멍을 내고 그 사이로 탈출해버렸다. 확실한 건 이 시리즈가 매력적인 탐사를 시작할 것이란 기대감이다. <더 비기닝>은 새로운 탐사에 앞서서 새로운 세대의 트레키를 끌어당길 거대한 떡밥 그 자체나 다름없다. <더 비기닝>은 이로서 추억을 보존하는 동시에 새로운 경험이 펼쳐질 광활한 우주적 가능성을 품었다. 이는 새로운 대탐사 시대를 예언하는 확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제임스 커크의 질문에 관객은 답해야 한다. “시간을 거슬러 역사를 바꾸는 거, 반칙이죠?”올드 트레키들은 “장수와 번영을! (Live long and prosper!)”그리고 새로운 트레키들은 ‘행운을! (Good luck!)’. 어떤 쪽이라도 황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