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은, Beautiful Str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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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은, Beautiful Stranger
운명은 언제나 우연의 탈을 쓰고 나타나 뒤늦게야 필연의 맨 얼굴을 드러낸다. 김고은이 ‘배우 김고은’이 되기까지의 과정도 그랬다. ‘책 욕심이 많아서 당장 보지 않더라도 일단 사고 보는’ 김고은은 ‘심심하면’ 집 인근의 서점으로 향했다. 그 날도 그랬다. 재미있다는 소문을 들었던 박범신 작가의 소설 <은교>를 집어 들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재학 중인 학교 무대에서 단 한번 자신의 연기를 봤던 학교 선배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김고은은 알고 있었다. <은교>가 영화화될 것이며 은교 역에 어울리는 신인배우 오디션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한 적도 있다. ‘은교 역할을 맡게 될 여배우 꽤나 마음 고생하겠네.’ 하지만 몰랐다. 마음 고생할 그 여배우가 자신이 될 줄은. <은교>의 의상 감독을 만나기로 했던 약속이 정지우 감독을 만나는 자리로 바뀐 뒤 모든 상황은 일사천리로 흘러갔다.
‘너무 재미있어서 2시간 만에 읽어버렸던’ <은교>는 탐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앞길이 창창한 20대 초반의 배우 지망생이 만만치 않은 노출신이 예정된 작품을 데뷔작으로 선택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욕심을 누를 수 없었다. “그것 때문에 작품을 안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억울한 거에요. ‘그렇게 밖에 못해?’라는 생각도 들고.” 그만큼의 각오가 필요했다. 부모님의 동의도 필요했다. 아버지는 방문을 닫고 들어가버렸다. 하지만 10분 뒤, 방에서 나와 딸의 고민을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했다. “네가 노출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 작품을 하지 않더라도 다음에 또 좋은 기회가 올 수도 있어. 하지만 그때 또 다른 두려움이 존재한다면 그때는 네가 그걸 이겨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어?” 그 한마디에 김고은은 스스로가 우습다고 느꼈다. “이렇게 욕심이 나는데 두려움 하나 때문에 포기할까 생각하는 제가 용서가 안되더라고요.” 의심과 욕심 사이에 놓여있던 김고은이 확고한 의지를 쥐게 된 순간이었다.
원래 ‘낯을 가리지 않는다’는 그녀는 현장 적응력도 남달랐지만 카메라만큼은 낯설었다. 정지우 감독과 많은 대화를 나눈 끝에 방법을 찾았다. “카메라 앞에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엉덩이로 이름도 쓰면서 망가져보는 거였어요.”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시행착오는 피할 수 없었다. “낯선 집을 혼자 둘러보는 신이었는데 카메라가 바로 앞에 있는 게 느껴졌어요. 갑자기 카메라가 무서웠고 머리가 하얘져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죠. 그 장면만 20번 정도 갔어요.” 김고은은 8시간의 분장을 마친 박해일이 자신으로 인해서 당일에 계획했던 분량을 촬영하지 못했다는 것에 ‘죄송스러워서 속이 다 문드러졌다.’ 하지만 그녀의 집중력을 높여주고자 ‘카메라 밖에서 시선을 맞춰주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경험을 전하며 격려하는’ 박해일의 배려는 그녀에게 ‘큰 힘이 됐다.’ “잘해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버리고 배운다는 입장으로 갔어요. 그러다 보니 많이 편해졌죠.”
작품 경력 하나 없는 22살 남짓의 신인배우 김고은은 <은교>를 통해서 그 누구보다도 주목 받고 있다. 어쩌면 검증된 배우 박해일과 김무열 사이에서 트라이앵글의 한 각을 차지한 신인배우를 향한 관심 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렷하게 자기 주관을 드러낼 줄 아는 김고은에게는 분명 특별한 것이 있다. “은교는 겉으로 봤을 때 굉장히 순수함을 가진 아이다운 아이에요. 천진난만하게 행동하고 이야기하고 잘 웃잖아요, 하지만 자기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면이 있어요.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고민했죠.”
김고은은 호기심이 강한 소녀 은교를 닮았다. 박범신 작가는 은교의 눈을 이렇게 설명했다. ‘해맑은 재기로 반짝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다른 세상을 보는 것처럼 아득하다. 단순히 젊다고만 할 수 없는,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 ‘신비한’ 눈빛이다.’ 20대 초반의 앳된 외모에서 싱그러운 젊음이 전해지지만 다양한 의문을 머금은 까만 눈동자는 순수와 관능의 파도가 철썩거린다. “제가 호기심이 많다는 걸 몰랐어요. 그런데 주위에서 제 눈 안에 호기심이 가득하대요. 저도 궁금한 거에요. 그 눈이 뭘까.” 이제 갓 연기에 입문한 신인여배우에게 대단한 상찬은 어쩌면 독이다. 하지만 김고은은 만개할 날을 기대하게 만드는 꽃봉오리처럼 눈이 가는 배우다. 가혹한 부담감을 되레 ‘일상적인 연기를 보다 훌륭하게 해내야 한다’는 야무진 각오로 승화시킨 그녀는 <은교>를 관통하며 긴 야심을 품었다. 단단한 줄기를 뻗고, 뿌리를 내리고 있다. 꽃은 그렇게 피어 오른다.
(ELLE KOREA 5월호 No.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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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부터 ‘랄프로렌’이나 ‘갭’과 같은 의류 브랜드를 비롯해서 ‘버버리’의 캠페인 모델로도 활약한 바 있는 ‘훈남’이 할리우드에 진출했다는 건 딱히 놀라운 사연이 아니다. 하지만 알렉스 페티퍼에게서는 심상치 않은 조짐이 엿보인다. <트와일라잇>시리즈의 로버트 패틴슨이나 <해리포터>시리즈의 다니엘 래드클래프가 그러하듯이, 폭발적인 인기를 등에 업은 젊은 배우들은 대부분 특정한 캐릭터의 옷을 입고 태어난다. 페티퍼는 올해 초에 차례로 개봉된, <아이 엠 넘버 포>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외계인 초능력자로 분한 뒤, <비스틀리>에서 잘생긴 외모를 되찾고자 사랑을 갈구하는 추남으로 변신한 페티퍼는 혜성과 같은 등장을 뛰어넘어 상한가를 달리고 있는 신예다. 현재 후반작업 중인 SF스릴러물 <나우>(2011)에서 아만다 사이프리드,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함께 이름을 올린 페티퍼는 올해 또 한번 새로운 면모를 과시할 전망이다. 어메이징한 영 건, 알렉스 페티퍼를 기억하라.
(beyond 5월호 Vol.56 'TAKE ON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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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터뷰를 많이 하는 것 같던데.
장경아(이하, 장): 거의 매일매일.
송민정(이하, 송): 한 3주 째 계속 했나.
촬영 끝나고 나서 휴식기간은 좀 가졌나요?
손은서(이하, 손): 한 일주일 쉬었나?
오연서(이하, 오): 3월 달에 끝났는데 후시녹음하고 그러느라 계속 모였죠.
촬영장을 떠나서 이렇게 만나면 어떤가요?
유신애(이하, 유): 똑같아요.
오: 지겨워요. 이제 그만 만났으면 좋겠어요. (웃음)
손: 저희가 영화 준비하기 전부터 계속 함께 지냈기 때문에.
송: 기사에 쓰시는 거 아냐. ‘그만 만나고 싶다. 지겹다.’ 이렇게. (웃음)
아무래도 동갑내기 배우들끼리 모여서 촬영현장은 화기애애했을 것 같습니다.
송: 굉장히 화기애애했어요.
유: 완전 시트콤? (웃음)
장: 맞아. 시트콤이었어. 나이도 비슷하니까 즐겁게 촬영한 거 같아요.
<여고괴담> 전작들은 다들 봤나요?
장: 저희는 다 봤는데 (옆에 있는 오연서를 가리키며) 얘만 못 봤어요.
오: 예. 전 공포영화를 못 봐요.
공포영화를 못 보지만 자신이 출연한 공포영화는 봐야 되겠네요.
오: 그래도 저는 언제쯤 귀신이 나올지 대충 다 아니까, 그 때마다 적절히 피하면 되요.
일단 자기 연기를 보다 보면 영화가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죠.
장: 맞아요. 맞아.
오: 자기만 보게 돼.
아무래도 전체적으로 우울한 감수성이 짙어서 배우 스스로의 기분이 쳐지거나 심리적으로 지치는 순간들이 있었을 겁니다. 혹시 누군가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담당했다고 할만한 분이 계시나요?
장: 아무래도 동갑내기 친구다 보니까 다들 화기애애했던 거 같은데요.
누구 가릴 것 없이 다들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도맡았나 보군요.
오: 아무래도 나이가 같다 보니까 마음이 잘 맞아서.
송: 저희는 만나기만 하면 수다에요. 안 그래도 기자 분들 사이에 말 많다고 소문났다던데요. (웃음)
다들 또래 나이라서 친해지는 것도 어렵진 않았을 거 같습니다. 촬영장을 벗어나서도 서로 어울리는 일은 없었나요?
오: 만나서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하고. 그냥 대학생들이나 다름없어요.
송: 촬영이 없을 때도 따로 만나고, 커피도 마시고, 술도 먹고. (웃음)
오: 저희 여고생 아니랍니다! (웃음)
장: 촬영 들어가기 전에 두 달 전부터 이춘연 대표님이나 감독님이 저희를 모아 놓고 연기연습을 시키기도 했고, 지방에서 촬영을 하느라 방을 같이 쓰기도 했거든요. 그게 친해지는데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된 거 같아요.
오: 매일 연습실에 모여서 연습하다 보니까, 그리고 촬영할 때는 숙소를 둘이서 같이 써서 더 친해졌죠.
유신애 씨는 막내였는데 언니들이 잘 챙겨주던가요?
유: 오히려 저는 언니들이 많이 챙겨줬어요.
장: 그런데 신애는 은근하게 사람을 휘두르는 게 있어요. (웃음)
유: (깜짝 놀라면서)?
오: 경아 너한테만 그래. (웃음)
장: 연서가 어느 날 그러는 거에요. 그래서 생각해보니까 숙소 사용할 때도 항상 리모콘은 신애 차지였어.
오: 자기가 졸리면, ‘언니 졸려?’ 이러고 불 꺼버리고 자고. (웃음)
송: 혹시 언니들한테 경쟁심 느꼈니? (웃음)
여자들은 질투가 심하다고 하잖아요. <여고괴담5>도 사실 여자들의 질투를 공포로 표현하기도 하죠. 이렇게 여자 다섯이 모였는데 혹시 경쟁심이 생기진 않았나요?
유: 그거 다 물어보시던데. (웃음)
장: 정말 항상 나오는 질문이지만 서로 너무 안쓰러워서 경쟁할 수 없었어요. 한두 명을 힘들게 몰아붙이는 촬영 스케줄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애들이 다 죽어가듯이 축 쳐져 있으니까 서로 불쌍했던 기억만 나요. (웃음)
오: 촬영을 한 사람에게 몰아줘요. 하루 종일, 아니면 3일에 걸쳐서 한 사람이 촬영 분량을 소화하니까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죠. 저희끼리 이 날은 소이 데이(day), 유진 데이, 은영 데이, 이런 식으로 불렀어요. 그 날은 하루 종일 걔만 촬영하는 날인 거죠.
송: 자기와 비슷하게 생긴 누군가가 있거나 캐릭터가 비슷하다면 경쟁심이 생겼을지도 모르는데 워낙 다들 개성이 뚜렷해서 그런 생각을 못했던 거 같아요.
오: 저는 고등학교 시절에 주로 같이 어울리는 친구가 열 명이었는데 다들 예고에서 연기를 지망하는 친구다 보니까 누구 한 명이 연기 성적을 잘 받으면 질투하고, 그런 게 미묘하게 있었던 거 같아요. 앞으로는 다 친한 척해도 뒤에서는 욕할 수도 있고, 상대방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때론 미워할 수도 있는 거고. 그리고 내가 너보다 더 못한 게 뭘까, 하고 자책하면서 그 친구가 미워지고. 유진이랑 은영이도 사실 소이를 끼워주긴 하지만 은근히 왕따시키잖아요. 그런 게 여자들 사이엔 다 있는 거 같아요.
오랜만에 다시 고등학교 교복을 입는 기분은 어떻던가요?
손: 전 이제껏 계속 맡았던 역할이 고등학생이라서 새로운 감흥은 없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저희가 진주 내려갔을 때, 저희가 촬영장으로 쓰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보충수업 중이었어요. 그렇게 실제 여고생들도 보니까 옛날 생각은 났어요.
송: 좋았어요. 왠지 여고생으로 돌아간 느낌이었고. 저 같은 경우는 머리까지 잘랐거든요. 원래 좀 긴 머리였는데 그렇게 자르고 교복까지 입으니까 여고생이 된 듯한 느낌? 외모부터 바꾸고 나니까 캐릭터에 빠지기가 쉬웠어요. 내가 더 은영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이고.
오: 전 걱정이에요. 머리 잘랐을 때 기분이 좋았는데, 지금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서. 영화 보니까 앞으로 시집은 다 간 거 같던데. (웃음)
송: 맞아. 우리 정말 너무 망가졌어. 나도 내가 나올 때 너무 싫었어. 극단적인 신이 많으니까 망가질 것도 충분히 예상은 했지만 그 정도로 망가졌을 줄은 몰랐어요. (웃음) 영화를 보고 나서 들었던 생각이, ‘나 어떡해’. (웃음)
오: 너는 귀여웠다니까.
송: 아니야~. 나도 정말 처참했어.
오: 너는 차라리 귀신이라도 되서 그러니까 그런가 보다 하겠지. 난 사람인데도 그랬잖아. 그리고 나는 살인미수라니까, 살인미수. (웃음) 우리 실장님이 영화보고 나서 그러시는 거에요. ‘연서야, 너 이제 CF 못 찍겠다.’(웃음)
학창시절에 본인들은 어떤 학생이었다고 생각하나요?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와 비슷하거나 다른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오: 유진이랑 비슷했어요. 공부 열심히 하고, 욕심도 많고. 그런데 포기해야 할 부분은 포기한다는 점에선 다른 편이었죠. 그렇게 집착하진 않았으니까.
장: 솔직히 언주는 착하다기 보단 약간 못난 아이잖아요. 순수해서 더욱 무책임하고 자기가 하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르고 하나밖에 보지 못하는 맹목적인 아이랄까. 제가 어릴 때 언주처럼 좀 그랬던 점이 있거든요. 뭔가 하나에 꽂히면 다른 걸 생각하지 못하고 그것만 봤다고 할까. 그게 남한테 어떤 피해를 주는지 생각 못하는 거죠. 순수함이 가져온 이기주의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분들은 시나리오만 보고 언주를 착한 아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저는 막상 못났다고 생각했고요. 만약 영화를 보신 분들 가운데 언주한테 많이 화가 난 분들이 계시다면 제가 의도한 메시지가 잘 전달된 게 아닐까 싶어요. 이렇게 무모한 행동을 하면 어떤 결과를 낳는지, 그걸 언주와 같은 학생들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손: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와 비교해보면 소이와 제가 별로 비슷하진 않았던 거 같아요.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 친했던 애들이 같은 학교로 따라오는 경우는 많지 않잖아요. 한두 명만 같은 학교로 가고 그러면 꼭 같이 올라왔던 친구랑 더 친해지고 그랬던 거 같아요.
송: 은영이는 유진이에게 굉장히 의지하는 아이잖아요. 친구 좋아하는 건 비슷해요. 그런데 악랄하게 누구 뒷담화를 늘어놓는다던가, (웃음) 아빠한테 그렇게 맞았다던가, 그런 건 다르죠.
유: 정언이는 화가 나면 다 표출하고, 언니들한테도 당돌하게 대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화가 나면 다 삼키고 표현을 안 하는 편이에요. 완전 상반된 성격이죠. 낯을 많이 가리면서도 완전히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때는 다르고.
자신이 연기할 캐릭터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만큼 각자 자기 캐릭터에 대한 애정도 만만치 않게 쌓였을 것 같은데요.
오: 저는 유진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면 스무 살도 되지 않은 고등학생이니까 자아가 성립되기 전이잖아요. 자기에게 중요한 남자친구를 뺏기는 것도 큰 충격이었을 테고, 자기와 친한 친구가 임신까지 했잖아요. 들어보면 우리 그룹에 속한 것도 그 남자를 뺏기 위해서라고 나오기도 하고요. 제가 감독님께 인물분석표를 드렸는데 전 유진이가 가톨릭학교에 다니지만 무교일 거라고 썼어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유진이는 절실한 크리스찬이 아닐까’ 말씀하시는 거에요. 그래서, ‘왜요?’ 물었어요. 그러니까 감독님께서 원래 하나님은 자기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벌을 심하게 주신다고, 그러니까 유진이는 자기가 심판자로서 은서를 벌한다고 생각했다는 거죠. 그래서 성당에서 얘를 죽이려고 하는 거고. 나쁜 사람은 벌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던 거 같아요.
송: 사람들도 가장 불쌍한 애라고 말하지만 저는 은영이가 너무 불쌍해요. 맨날 아빠한테 얻어터지고, 믿었던 친구한테 이용당하고, 결국엔 자살까지 하잖아요. 그렇게 은영이가 힘들어할 때 누군가 위로해주고 손을 내밀어 줬다면 그렇게 극단적인 상황까진 안 갔을 텐데. 자살을 할 때도 누구 하나 손 내밀어 주는 사람도 없었고.
오: 왜, 내가 네 이름 불러줬잖아. (웃음)
송: 언주도 나만 따라다니잖아. (웃음)
장: 그래서 뭐야, 스토커야? 막 이러고. (웃음)
송: 못된 건 유진인데, 은영이가 제일 얄밉다나. 그래서 은영이만 따라다니고. 왜 은영이만 못살게 구냐고. 너무 불쌍해서 더 애착이 남는 거 같아요.
오: 그런데 은영이가 소문은 다 냈잖아. (웃음)
손: 소이에겐 복합적인 감정이 많아서 힘들었어요. 그리고 애들끼리 있으면, ‘소이가 제일 나빠’ 이렇게 결론이 나는데 저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영화는 그렇게 끝나도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소이가 가장 짠한 삶을 사는 친구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자기 대신 친구가 죽었다는 죄책감을 느끼고 살아남은 거잖아요. 이 친구가 계속 살아가는 동안에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면 소이가 가장 불쌍하게 느껴져요.
송: 정언이도 살았잖아.
유: 나는 뭐야. (웃음)
오: 정언이는 혼자 행복할지도 몰라. 집에서 엄마 사랑을 혼자서 독차지하고. (웃음)
장: 저는 실제로 연년생 동생이 있거든요. 정언이를 보고 동생이 많이 생각났어요. 학교에 같이 다니니까 집에서는 아무리 미친 듯이 싸워도 학교에서 동생이 어떤 애한테 당하고 있으면 진짜 돌아버리는 거죠. (웃음) 그래서 언주가 죽은 다음에 귀신이 돼서 정언이한테 함부로 하는 친구들을 죽이는 것도 이해가 갔어요. 제가 언주라도 그랬을 것 같고. 저는 정언이가, ‘우리 언니는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어’라고 말하면서 복도를 가로지르고 갈 때 솔직히 진짜 눈물이 많이 났어요. 그런 면에서 공감하는 바가 있었죠.
유: 저는 외동딸이고, 언니가 없어요. 그래서 언니가 있는 기분도 잘 모르고, 가족이 죽는 경험도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냥 주변 분들이나 언니들과 이야기도 많이 하고, 간접경험을 많이 얻어보려 했어요.
유신애 씨 말처럼 실제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부분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도 있었을 겁니다. 그 밖에도 각자 느끼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오: 마지막 성당 장면을 찍을 때 한번은 낮 4시부터 다음 날 낮 2시까지 줄곧 제 신만 촬영했었어요. 그러다 보면 진짜 악이 나올 수 밖에 없어요. 정말 실제로 상대방을 바닥으로 끌고 가거나, 잡아 뜯기도 하고, 그렇게 다 실제로 감정이 이입되는 거 같았죠. 그 전엔 누군가를 괴롭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막상 극한 상황에 몰리는 기분을 느끼니까 뭔가 해야 될 거 같고.
송: 저는 감독님과 굉장히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사실 저보다 감독님이 은영이란 아이에 대해서 더 잘 아실 거 아니에요. 직접 쓰신 이야기니까. 저는 은영이가 자살할 때 불행하게 죽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감독님께서는 행복하게 죽어야 된다고 설명해주셨어요. 그렇게 신마다 제 머리 속에 딱 박히게 설명을 해주셨는데 덕분에 감독님 얘기가 다 끝나면 저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연기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손: 저희끼리 손을 잡는 신도 많았는데, 아무래도 마지막 장면도 그렇고 말보다 눈빛 하나로 소통하는 게 더 좋을 만한 부분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캐릭터에 대해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은 없었나요?
장: 언주는 친구 때문에 죽잖아요. 그런데 언주는 소이에게 큰 은혜를 입은 것도 없고 뭔가를 받은 것도 없어요.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 감독님께 백만 번은 여쭤본 거 같아요. 그때마다 감독님께서 하셨던 말이, 만약에 어른의 시선으로 본다면 반드시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고등학생 때는 누군가로부터 뭔가를 받지 않아도 그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 순수한 시절’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일부로 특별한 의미를 넣지 않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처음엔 이해가 안 갔는데, 보통 고등학교 시절이나 중학교 시절을 회상해 보니 그게 진짜 맞는 거 같았어요. 만약 누군가에게 뭔가를 받아서 그렇다면 오히려 순수하게 죽거나 희생하진 못했을 거 같아요.
오: 저는 왜 유진이가 그런 들통날 짓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웃음) 들킬 일이잖아요. 그런데 왜 도대체 저런 위험을 안고 밤에 저런 짓을 하고 있을까 싶어서 좀 이상했죠. 정말 얘는 양심의 가책을 못 느낄까 궁금하기도 하고. 사실 언주도 제가 죽인 거나 다름없잖아요. 은영이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과연 유진이 얘는 정말 죄책감이 없는 악마일까 생각했죠. 고등학생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생각은 어려운 일이잖아요.
사실 남자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여자들만의 행위가 있죠. 예를 들면 손을 잡고 같이 화장실까지 간다던가.
송: 그건 여자들만 알 수 있는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죠. (웃음)
그래서인지 여자들의 관계를 동성애로 그리기도 쉬운 거 같아요. 실제로 여고에 떠도는 동성애 소문도 많잖아요. <여고괴담5>에서도 소이를 향한 언주의 마음이 때론 우정이라기 보단 사랑이 아닐까 생각되는 지점도 있고요.
손: 여자들의 우정은 집착으로 번지는 경향이 있어요. 저 친구가 다른 친구들과 더 친한 모습을 보면 질투를 심하게 느끼기도 하고, 그게 결국 집착이 되기도 하는 거 같아요.
유: 남자들은 자존심을 가장 크게 생각하지만 여자들은 관계를 가장 크게 생각한대요. 그래서 그렇게 손잡고 가는 것도 자기가 관계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더 집착하는 거래요.
장: 그런데 언주는 대사만 봐도 충분히 동성애스럽다고 느낄만한 구석이 있는 거 같아요. ‘죽는 날 같이 죽을 수 있을까’그런 것도 있고, 대학교 갈 때까지 함께 있자고 하고.
손: 사실 너무 닭살스런 대사들이 많아서 애들이 되게 힘들어 했었죠. 하는 저희도 너무 닭살스럽고. 오글오글. (웃음)
장: 그런데 저는 그런 상황을 만든 원인이 다 어른이라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부터 남자들은 나가서 놀아야 된다고 하고, 여자한테는 집안의 유대를 강조하면서 키우잖아요. 명절 때도 여자들은 다 일만 시키고, 남자들은 자기들끼리 놀고, 아무래도 그런 걸 보면서 크니까 여자들끼리 끈끈하지 않을 수 없죠.
오: 외국사람들이 한국여자들끼리 손잡고 다니는 거 보면 이상하대요. 그렇게 보면 그것도 우리나라 여자들만의 고유한 습성인 거 같아.
피를 보는 영화다 보니 피 분장하는 장면도 많더군요. 그것도 사실 고역이지 않던가요?
송: 끈적거려서 몸에 묻으면 굉장히 신경도 예민해지고 짜증나요. 그리고 다른 사람 옷에 묻으면 잘 안 지워지거든요. 그래서 사람들도 다 기피하고. (웃음) 경아가 피 분장을 제일 많이 해서 고생했을 거에요. 저희는 처음에 언주가 그렇게 티를 많이 안 내길래 피 분장에 금방 적응되나 보다 그랬는데 마지막에 제가 피 분장을 해보면서 대체 그걸 어떻게 그걸 참았나 싶었어요. (웃음)
오: 머리를 내밀어서 피를 떨어뜨리는 장면이 있는데 피가 제대로 안 떨어지는 거에요. 계속 분장을 지웠다가 다시 하고 그러니까 나중엔 힘들어서 눈물이 막 나는 거에요. 그 피 분장이 굉장히 짜증나는 작업이에요.
송: 아, 그리고 나 죽을 때 피바다에 누워있었잖아요.
장: 나도 죽었어. (웃음)
송: 피가 차가워서 춥고, 계속 끈적거리니까 그냥 다들 쉬는 시간에 쉬는데 저는 그냥 누워있었어요. 움직일 수가 없으니까.
유: 그래도 언니는 낮에 해서 다행이야. (웃음)
장: 맞아. 제가 떨어져서 죽은 걸 정언이가 발견하고 달려와서 죽은 저를 안고 오열하는 장면이었는데 전 그냥 누워있는 역할이었으니까 제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빨리 끝낼 수 있는 장면이 아니잖아요. 신애 최고의 감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우는 장면이라서, (이빨을 꽉 깨물면서 위협적으로) ‘빨리 끝내라!’이럴 수도 없고. (웃음)
유: 그런데 원래 그 장면이 더 많이 나오기로 했는데 잘 안 나왔지. 처음하고 중간에 은서 언니가 양호실에서 생각하는 그 때 조금 나오고, 끝에 다시 조금 나와야 되는데.
장: 그게 조금 잔인하다고 편집됐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만 잠깐 나왔죠.
고생해서 찍은 장면이 영화에서 무심하게 지나가거나 잘 표현되지 않았을 땐 연기자 입장에서는 아쉽겠죠.
유: 저는 특히 머리를 가위로 잘랐던 신 있잖아요. 저는 그게 굉장히 소름 끼치고 무섭게 나올 거라고 기대를 했어요. 저희가 모니터로 볼 때는 굉장히 소름 끼쳤거든요. 그런데 영화를 보니까 뭔가 너무 어설프고.
송: 초딩이 막 폭발하는. (웃음)
진짜 자기 머리였나요?
유: 아니요. 가발.
오: 그런데 본인 머리도 조금 잘렸대요. (웃음) 때리는 신도 영화보다 훨씬 많았어요.
손: 저도 맞는 신이 더 있었는데 다 없어졌고.
오: 머리 잡고, 막 찍고, 뺨도 맞고.
손: 감독님께서 더 가자고 하셔서 더 맞았는데 다 편집됐어요. (웃음)
오: 유진이가 성당에서 격자 모양으로 된 고해성사실에 소이를 가두잖아요. 원래 나중에 문 열고 또 때려요.
손: 성모상으로 저를 또 때리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것도 없어졌고.
오: 다행이었어요. 그것까지 나왔으면 큰일날 뻔 했지. (웃음)
장: 저는 정말 깜짝 놀랐던 게 제가 옥상에서 애들 백그라운드로 혼자 서 있다가 사라지는 건데, 그때도 피칠 다하고 옥상에서 혼자 서있었거든요. 그걸 스크린으로 보니까 제가 아니어도 되겠더라고요. 그냥 점같이 있던 애가 갑자기 사라지니까.
오: 게다가 언주가 모니터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장면 있잖아요. 그거 하나 찍으려고 경아가 서울에서 진주까지 내려왔었어요. 그 한 컷 때문에.
장: 한 5분 찍었나. 대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 본인에게 너무 맞지 않아서 하기 싫다고 생각될 때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손: 처음에 소이 역할 맡았을 때 소이 전체가 다 힘들었어요. 그래서 처음엔 소이를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었죠. 그래서 감독님하고도 이야기도 많이 했고.
혹시 다른 캐릭터에 욕심이 나진 않던가요?
오: 처음엔 다 있었대요. 저도 사실 소이가 하고 싶었어요.
손: 전 오히려 유진이 하고 싶었어요. 저희끼린 그랬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됐어요.
오: 진작 알았으면 바꿔달라고 얘기했을 텐데. (웃음)
유: 전 정언이 빼곤 다 하고 싶었어요. (웃음) 저희가 오디션 볼 때 쪽대본이 나왔었는데 그때 제가 보기엔 정언이가 굉장히 당돌하고 화를 잘 내니까 저랑 성격이 너무 달라서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오디션 과정에서 서로 얼굴을 봤겠죠?
송: 1박 2일 때는 다 같이 합숙을 했기 때문에 계속 마주쳤죠.
오: 사실 오디션 기간은 짧았어요. 2주도 안 됐거든요. 처음 오디션 보고 한 이틀 인터미션 지나서 이틀 있다가 2차 오디션 또 보고, 3일 있다가 3차 오디션 보고, 그 뒤로 결과가 바로 나왔으니까.
송: 인터넷에 바로 바로 결과가 떠요.
인터넷으로 확인할 때 긴장되진 않던가요? 어쩌면 영화 보는 것보다 오디션 결과 확인할 때가 더 떨렸을 거 같습니다. (웃음)
송: 그럼요. 클릭할 때 얼마나 떨리는데요.
오: 그래서 찍을 때 더 친해진 거 같아요. 너무 살벌한 경쟁을 이겨냈기 때문에.
송: 전쟁이었죠. (웃음) 서로 같이 힘들었던 걸 아니까 더욱 가족같이 느껴지고, 내가 힘든 만큼 이 친구도 힘들게 왔으니까.
다들 대학생이니까 학교 얘기를 해봐도 좋을 거 같네요. 장경아 씨와 오연서 씨는 같은 학교 같은 과에 재학 중이시죠. 원래 서로 잘 아는 사이였나요?
오: 경아가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휴학해서 친해질 계기가 없었어요. (웃음)
장: 저도 얼굴만 아는 정도?
송민정 씨 같은 경우는 유일하게 다섯 분 중 연기 관련 전공이 아니더군요.
송: 영문학과 간 건 제가 외국에서 살다 와서 영어 특기자 전형으로 수능을 안보고 토익만 봐서 대학에 갈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대학 들어가고 연기를 바로 시작했어요. 원래 연극영화과를 갈까 생각했는데 더 멀게 봤을 때 영문학과를 가면 두 분야를 다 경험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두 개를 다 고려해서 그렇게 선택한 거죠.
오: 그럼 우리는 뭐가 되니. (웃음)
송: 너희는 그래도 예고 나왔잖아. (웃음)
오: 민정이는 인생이 ‘비비디 바비디 부’에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인생이 다 이뤄져요. (웃음) 어렸을 때부터 인생 자체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이 없대요.
송: 운이 정말 좋았던 거 같아요. 사실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꿈꿔온 건 아니었어요. 뉴질랜드 있을 땐 연기에 대한 막연한 생각만 있었죠. 종종 거기서 <가을동화>같은 한국 드라마를 비디오로 봤는데 그럴 때마다 막연하게 연기에 대해서 생각만 한 거죠. 그렇다고 연기를 꿈꿔서 한국에 온 건 아니에요. 한국에 중3 말쯤 와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렇게 지내다가 길거리 캐스팅이 돼서 이쪽 일에 발을 딛게 된 거죠. 그렇게 모델부터 시작하게 됐고 점점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사실 송은정 씨 같은 경우는 <여고괴담5> 이전에 <아랑>이나 <외톨이>같은 공포영화 출연경력이 있죠. 공포영화만 세 번째 출연이네요.
송: 그런데 전편하고 <여고괴담5>에서 캐릭터가 워낙 달라요. 지난 번엔 굉장히 우울한 히끼꼬모리 역할을 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밝은 신도 있고, 감정 신도 있고, 그래서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그만큼 굉장히 좋았던 거 같고요.
나머지 네 분은 연기 관련 전공을 선택해서 진학하셨죠. 그만큼 자기 분야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다고 말할 수도 있고, 그만큼 불안감도 있을 것 같은데요. 오연서 씨와 유신애 씨는 예고 때부터 연기 전공을 했죠?
오: 저는 예고 출신이라서 고등학교 때부터 그 생각을 했었는데 사실 저희 같은 예고 출신들은 뭔가 다른 걸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해요. 사실 저와 같은 친구들이 걱정하는 부분은 일단 고등학교 때부터 연기 말곤 배워온 게 없으니까 굉장히 불안하다는 거죠. 연극영화과 나와서 옷가게 하는 사람도 있고,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는 사람도 많은데 정작 자신은 연기 말곤 도대체 뭘 해야 되는지 모르고. 장점이 있다면 이렇게 계속 해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이것만 해야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거? 왜냐면 제가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고, 제가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이것밖에 없으니까, 이거 아니면 죽을 거 같다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죠.
유: 저도 어렸을 때부터 또래 친구들과 한 길만 바라봤고, 그렇게 제 주변에 모든 사람들이 그곳만 바라보니까 거기에 더 집중하고 매달리게 되는 거 같아요. 그렇게 매달릴수록 해야 될 건 더 많아지고, 가야 할 길이 더 뚜렷하게 보이고요. 그러니까 연기에 매진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정말 저는 한가지만 하기도 벅차요.
사실 오연서 씨는 다섯 분 중 작품경험이 가장 많습니다. 드라마 경력도 있고, 데뷔작도 <반올림>이었죠. 다른 분들에게 특별히 조언을 주거나 그랬던 적은 없었나요?
오: 다 같은 신인이고, 다 같이 배우는 입장이니까 그런 건 없었어요. 서로서로 많이 배우는 거지, 누굴 조언해줄 입장이 아니니까.
오연서 씨는 유독 누군가를 때리는 장면도 많았죠. 사실 때리는 사람 마음이 더 불편한 법이죠.
오: 맞는 사람들이 저한테 하루 내내 정말 잘해요. (웃음) 그런데 저도 때리는 게 마음 아픈 일이잖아요. 그래도 거의 한번에 오케이 나서 다행이었죠. 최소한 두 번? 그런데 솔직히 못 때리겠어요. 처음엔 너무 살살 때려서 NG나기도 했죠.
송: 살살 때렸는데 신애는 오버 액션하고. (웃음)
오: 정말 살살 때렸거든요. 그냥 약하게 때렸는데 신애가‘악~!’하면서 날아가서. (웃음)
할리우드 액션이었군요. (웃음) 유신애 씨는 지난 출연작이 공포영화인 <고사: 피의 중간고사>였어요. 유일한 필모그래피가 공포였는데 또 한번 공포영화에 출연했네요.
유: 저는 있는 경험이라곤 공포밖에 없으니까, (웃음) 다른 장르가 어떤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워낙 다른 장르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졌어요.
유신애 씨는 아역으로 드라마 <M>에 출연하기도 했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도 공포였군요.
유: 말하기가 창피한 게 정말 조금 나왔고, 사실 그때 기억도 나지 않거든요. 그 이후로는 아무것도 한 게 없었기 때문에 그걸 말하기가 너무 창피해요.
송: <뽀뽀뽀>도 했잖아. (웃음)
손은서 씨와 장경아 씨는 연기나 방송 분야 전공을 선택해서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두 분이 연기를 지망하게 된 사연이 궁금한데요.
손: 저는 원래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제가 중학교 때와 고등학교 때 관심사가 굉장히 달랐어요. 중학교 때는 성적이나 공부에 관심이 많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부터 제가 잘 하는 게 뭔지,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다 싶은 거에요. 그래서 저한테 집중할 시간을 많이 가졌고, 3학년 때 진로를 연기로 정해서 학교를 갔어요. 그런데 연기를 준비하다가 광고 미팅도 가게 되면서 먼저 CF를 찍게 된 거죠. 처음부터 준비했던 건 연기였어요.
장: 전 원래 무용 전공이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목적이 없으면 굉장히 못 견뎠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예원이랑 서울예고 목표로 무용을 했고 결국 목표로 하던 학교에 들어갔었는데 사실 무용은 제가 원해서 한 게 아니었던 거에요. 초등학교 때는 개념이 없어서 제가 진짜 뭘 원하는지 모르잖아요. 그런데 저희 엄마가 무용하는 모습을 너무 예뻐하셔서 그 때부터 하게 된 건데 중고등학교 때까지는 멋도 모르고 치열하게 한 거죠. 제가 딱 하나밖에 안 보는 성격이라서 그걸 왜 하는지도 모르면서도 불만 없이 굉장히 치열하게 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서울예고 입학하니까 연기 커리큘럼이 있어서 수업을 받다 보니까 굉장히 무용이랑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무용은 무조건 선생님 스타일에 맞춰서 해야 되요. 이 선생님이 이게 좋다고 해도 저 선생님한테 가서 이렇게 하면 점수를 안 주기도 하고, 뭔가 예술적 자율성이 없거든요. 그래서 그 때 연기에 굉장히 많은 매력을 느꼈어요. 결국 예고를 고1까지 다니다가 자퇴하고 공부해서 동국대로 진학했죠. 사실 그 전에 집에서 쫓겨날 뻔도 했어요.
장경아 씨는 <여고괴담5: 동반자살>(이하, <여고괴담5>)을 통해 연기자로 데뷔한 셈인데 어땠나요? 스크린으로 자기 얼굴을 보는 것도 처음일 텐데.
오: (영화보기 전에) 되게 신나 있던데. (웃음)
장: 사실 언론시사회라는 게 기자님들이 영화를 보고 평가하는 자리인 줄 알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나온 영화를 드디어 본다는 마음에 마냥 신나있었거든요. 그런데 보는 내내 완전 떨렸어요. 연서 손을 꽉 잡고 봤는데 둘 다 떨면서 봤죠.
오: 자기가 나오는 거 보고 자기가 놀라고. (웃음)
귀신 역할이라 좀 놀랐나 보죠.
장: 촬영할 때는 (도수가 있는) 렌즈를 빼고 빨간 컬러 렌즈를 끼고 있느라 모니터링도 잘 못했거든요. 그래서 잘 모르고 봤는데 화면에서 갑자기 막 튀어나오니까 저도 놀란 거에요.
오: 실제 촬영할 때보다 무섭게 나온 거 같아.
손은서 씨는 최근 개봉된 <시선1318>에도 출연했죠. 다섯 분 중 근래 가장 가깝게 개봉된 영화에 출연한 배우라고 해도 되겠군요.
손: 사실 <시선 1318>은 2007년 12월에 3일 동안만 촬영했어요. 그래서 그 당시의 현장감을 <여고괴담5>으로 이어나갔다고 말하기엔 좀 무리가 있죠.
<시선1318>에서 이현승 감독이 연출한 <릴레이>에 박보영 씨와 함께 출연했는데 <여고괴담5>와 정반대의 분위기를 느끼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여고괴담5>에서는 굉장히 우울한 캐릭터를 연기했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고요.
손: 현장 분위기야 화기애애했지만 저는 감정 잡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소이를 연기하기 위해서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감정 잡느라 시무룩해져서 힘들어하니까 스태프 분들이 소이 씨는 뭔가 되게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우울해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대요. 그런데 저는 몸이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 감정 때문에 그랬는데 다들 그렇게 이해하신 거 같더라고요.
다들 파란만장하군요. 부모님과의 충돌이나 갈등은 없었나요?
오: 저는 많이 맞았어요. 저희 집은 서울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중학교 2학년 때 연기한다고 올라간다니까 자꾸 어린 게 서울 가겠다고 하니 엄마 마음이 너무 아픈 거죠. 그런데 얘가 말로 해선 듣질 않아서 많이 맞았던 거 같아요. (웃음) 그래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요즘에는 격려도 많이 해주시고, 저도 많이 힘드니까 새벽에 전화하고 그래요.
손: 저도 지방이거든요. 고등학교 때까지 부산에서 다녔는데 부모님 반대가 많이 심했어요. 부모님께서 반대하시는 걸, 수능 보고 바로 올라가서 입시 준비하겠다면서 아무것도 안 도와주셔도 되니까 그냥 시험만 보게 해달라고 설득했어요. 그렇게 결국 대학교에 합격하고 계속 이 길로 오게 된 거에요. 부모님들은 불안하고 안쓰러우니까 반대하시겠죠. 그래서 저는 좀 더 믿음이 가게끔 노력했던 거 같아요.
송: 저희 엄마는 일단 대학만 제대로 가면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그러셨어요. 그래서 대학교 가고 나서 제가 연기를 시작한다니 굉장히 좋아해주셨는데 지금은 일하고 늦게 들어오니까 걱정도 많이 하세요. 제가 짜증날 정도로. (웃음) 그래도 반갑게 생각하시고 좋아하시는 편이죠.
장: 저는 아까 말한 것처럼 어린 나이지만 7년 동안 쌓아왔던 전공이 있는 거잖아요. 무용계에서는 솔직히 예원이랑 서울예고, 이대가 (엄지손가락을 들면서) 제일 이거거든요. 어떻게 보면 제가 그 상태에서 대학만 잘 간다면 앞날이 보장될만한 커리어를 쌓아온 건데 그걸 한 순간에 다 날려버리겠다고 하니까 부모님께서 굉장히 반대를 많이 하셨고, 맞기도 많이 맞았어요. 학교에서도 선생님들께서 저한테 뭐라고 많이 하시고. 너는 왜 순수예술을 안하고 딴따라를 하려고 하냐,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사실 제가 그 말 듣기 전까진 무용이랑 연기를 병행하자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 얘길 듣고 나서 자퇴를 하게 된 거에요. 제가 7년 동안 스스로 하고 싶지 않았던 걸 하면서 억눌려있었다고 생각했던 걸 그때 그냥 표출해버린 거 같아요. 그 전엔 엄마한테 그냥 착한 딸이었고, 사춘기 한번 없었거든요. 교복을 줄여 입는다던가, 그런 것도 해본 적 없었고, 그냥 굉장히 착한 딸이었어요. 그런데 그 상황을 계기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걸 이번엔 좀 말해야겠다 결심했던 거 같아요.
유: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적극 밀어주셨어요. (웃음) 오히려 저희 엄마는 제 얼굴에 뭐 하나만 나도 저녁에 팩 들고 오시고. (웃음)
아무래도 대부분 진로에 대한 불안을 느끼거나 부모님과의 갈등을 극복하는 과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만큼 영화에서 묘사되는 인물들의 갈등에 공감대를 느낄 수 있는 지점도 있지 않았을까요?
손: 우리가 하고 싶은 것과 부모님 생각이 너무 다르니까 서로 말이 통하지 않잖아요. 그러다 보니 아예 서로 말을 하지 않게 되고, 오히려 고민은 친구들에게 털어놓게 되니까 친구들과의 관계는 더 돈독해지죠. 그래서 모든 비밀은 친구들과 공유하게 되고. 저희 작품에 공감대를 느끼는 건 그런 점이었어요.
각자 경험차가 있기만 현재 다들 <여고괴담5>을 통해 가장 큰 경험을 얻었다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몇몇 분들은 처음이라서 겪었던 시행착오도 있었을 것 같고요.
송: 맨 처음에 촬영할 때 카메라가 뒤통수에 있는지도 몰랐어요. 심지어 제 머리로 카메라를 가리기도 했죠. (웃음) 조명을 거꾸로 받을 때도 많았고.
장: 스태프 오빠가 카메라 초점을 잡아놔서 움직이면 안 되는데 그것도 모르고 멋대로 움직이다 보니까 혼난 적도 많았어요. 그래서 초반엔 친구들 촬영할 때 제 촬영이 없더라도 계속 촬영하는 걸 봤어요. 저는 처음이라 어떤 식으로 촬영해야 되는지 모르니까 좀 힘들었거든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많이 공부했죠. 연서가 연기하는 걸 보고 많은 걸 배운 거 같아요.
오: 왜 이래, 오늘? (웃음) 그런데 확실히 저희 촬영현장이 너무 좋았어요. 다들 빨리 현장에 적응한 거 같아요. 사실 저는 솔직히 이런 촬영현장이 처음이었거든요. 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빨리 찍어놔야 되는 거니까 상황이나 캐릭터에 대해서 이해할 틈도 없이 막 갈 때가 있어요. 그리고 저도 느꼈던 거지만 신인일 때 선배가 와서 뭐라고 혼내면 주눅들고 더 못하게 돼요. 그런데 저희 촬영현장은 그런 게 없으니까 일단 너무 좋아서 뭔가 자기가 가진 것보다 더 보여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장: 연서가 마지막에 성당 신 찍을 땐 정말 구질구질하게 보일 정도로 열심히 찍었어요. (웃음) 진짜 너무 불쌍할 정도였죠. 귀신이 이렇게 죽이러 가기 위해 돌아보는 사이에 바퀴벌레처럼 막 기어가고. (웃음) 소이한테 고해소에 들어가자 그러면서 자기만 나와서 잠가버리고.
송: 비열해. (웃음)
오: 그땐 정말 혼신의 힘을 다했어요. 그런데 이거 우리끼리 너무 자화자찬하는 거 아닌가? (웃음) 경아는 연기가 처음이잖아요. 그런데 자기 힘든 걸 절대 내색 안 해요. 짜증낼 수 있잖아요. 사람들 앞에서 내지 않더라도 뒤돌아서 낼 수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깜짝 놀랬어요. 제가 경력이 조금 더 많다고 해서 이 친구들보다 연기를 잘 하거나 이런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 친구들한테 많이 배운 거 같아요.
아시겠지만 <여고괴담> 시리즈를 통해서 성장한 여배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이 시리즈에 출연한다는 점 자체만으로 기대가 컸을 것 같고요.
손: 그래서 오디션이 치열했던 거 같아요.
송: 그런데 시사회 전날까지만 해도 기대감이 있었는데 영화보고 나니까 없어졌어. (웃음)
일동: 맞아! 맞아! 나도!
오: 영화 보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끼리 서로 칭찬하는 게 자연스러웠는데 일단 영화를 보니까 내 연기부터 시작해서, 진짜 충격 먹었어. 칭찬할 게 없잖아. (웃음)
송: 전 정말 머리가 새하얗게 됐어요. (웃음)
오: 사람들 머리 속에 저런 이미지가 너무 박힐까 봐 걱정도 앞서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세게 나와서. 그래서 영화를 보는 동안 슬펐어. (웃음)
첫 술에 배부를 순 없는 거죠. (웃음) 그래도 언젠가 이 작품을 다시 되새기는 날이 올 겁니다. 혹시 앞으로 자신이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요?
오: 전 그냥 발랄한 역할하고 싶어요. 이번에 이런 역할을 했지만 저 원래 절대 이렇지 않거든요. (웃음) 다음엔 좀 사랑스러운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귀엽게 망가지기도 하고.
장: 저는 조금 히스테릭한 역할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자기 감정을 배제하고 전문적인 직업에 대한 열의를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를 언젠가 해보고 싶어요. 굳이 예를 들자면 <하얀 거탑> 김명민 선배의 여자버전 같은.
손: 전 약간 중성적이거나 액션연기를 할 수 있는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사실 <여고괴담5>는 저한테 너무 힘들었어요. (웃음)
송: 저는 발랄하고 코믹하면서도 귀여운, <노다메 칸타빌레>나 <호타루의 빛>같은 드라마에서 나오는 캐릭터 있잖아요. 약간 망가지면서도 재미있고, ‘센빠이(せんぱい)’ 이러면서 선배 졸졸 따라다니는. 그런데 사실 <여고괴담5>에서 제 캐릭터도 발랄하지만 공포영화다 보니까 그런 모습을 부각시키기 어려웠잖아요. 그래서 다음 작품에선 그런 걸 좀 더 보여주고 싶어요.
유: <님은 먼곳에>에서 수애 선배님처럼 파란만장한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어요. <라비앙 로즈>처럼 파란만장하면서 굴곡도 많은 주인공의 일생을 다룬 영화도 좋고.
부모님께서도 영화를 보시고 싶어하실 텐데 걱정되겠어요.
송: 전 아까 전화 드렸어요. 죽는 거 보고 충격 받지 말라고. (웃음)
장: 난 처음부터 죽는데. (웃음)
오: 난 살인미수라고. (웃음)
송: 공범이잖아. 나는. (웃음)
(무비스트)
영화 저널리스트 &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 13인의 감독 인터뷰집 <어제의 영화. 오늘의 감독. 내일의 대화.>를 썼습니다. mingun@nate.com by 민용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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