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챙이 앞뒤로 달린 디어스토커를 쓰고, 어깨를 덮은 긴 케이프가 인상적인 인버네스 코트 안에 단정한 라운드 슈트를 갖춰 입은 채 중후한 파이프 담배를 물고 한 손엔 지팡이를 쥔, 우리가 생각하는 셜록홈즈의 모습. 1887년 아서 코난 도일의 주홍색 연구에 처음 등장한 이래로 세기를 초월해 고전적인 추리문학의 아이콘이 된 셜록홈즈는 19세기와 20세기 사이 영국을 배경으로 활약하는 셜록홈즈는 아서 코난 도일의 고전추리소설 셜록홈즈시리즈의 셜록홈즈란 분명 그런 남자다. 세련되고 지적인 이 영국탐정은 그가 등장하는 원작소설을 굳이 접하지 않은 이에게조차 그 이미지를 어필할 정도로 시대를 뛰어넘어 장르적인 아이콘으로서 확고한 위치를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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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치> 단평

cinemania 2009. 12. 18. 11:15

<범죄의 재구성><타짜> 욕망이라는 게임판을 달리는 캐릭터들의 암투를 그린다. 최동훈의 장기는 상대의 패를 읽고 훔치는 다양한 캐릭터들을 다루는 능수능란함에 있었다.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내면서도 전체적인 극의 분위기를 단단하게 여미는 캐릭터들의 조화는 최동훈의 장기를 여실히 증명했다. 그런 면에서 <전우치>는 핵심적인 기대감을 배반하는 작품이다. 강동원이 연기하는 전우치는 꽤나 쓸만하다. 그 존재감과 표현력만으로도 하나의 장르적 가능성을 보게 되는 기분마저 든다. 다만 주변부의 캐릭터를 다루는 손맛이 무뎌졌다. 구심점이 흐린 인물들이 쓸모를 명확히 얻지 못한 채 방치되거나 전시되고 그만큼 숫적인 산만함만 어지럽게 감지된다. 최동훈의 장기라 할만한 캐릭터영화로서의 장점을 만끽할 수 없다는 점에선 분명 아쉽다.

하지만 <전우치>는 최동훈이란 이름에 얽힌 기대감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르적 토대의 구축이란 점에서 성과가 발견되는 작품이다. 현대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무협판타지라는 점에서 <아라한 장풍대작전>을 연상시키는 <전우치>는 토속적 설화를 적극 활용하며 캐릭터를 완성하고 스토리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한국적이란 의미를 강하게 어필해낸다. 십이지신상을 모티브로 둔 요괴들의 디자인이나 설화를 바탕으로 직조된 스토리는 판타지라는 외래장르의 국산화란 이름에서 보다 어울리는 형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품는다. 지나친 속도감을 두르고 묘사되는 액션신이 시각적인 묘미를 반감시키지만 공간감을 구축하는 앵글의 포착력은 탁월하다 평할만하다. 심중한 여운을 남기고, 유연한 위트를 담은 대사들의 순발력도 빼어나다. 문제는 그 요소들이 잘 어울리지 못한 채 저마다 독립적으로 장기자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제자리를 찾지 못한 음표들이 악보로서 연주되지 못하고 제 음만 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보고 있다는 기분 사이로 끼어드는 아쉬움을 떨쳐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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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가한 오후, 아내가 정성껏 차린 저녁식사를 기다리며 어린 딸과 정겨운 대화를 나누던 클라이드(제라드 버틀러)의 집에 두 명의 괴한이 침입한다. 그들에게 린치를 당한 클라이드는 가까스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지만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했던 아내와 딸의 죽음을 잊을 길이 없다. 범인들은 경찰에 의해 검거됐지만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검찰은 자신의 동료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겠다는 한 명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의 처벌을 방임한다. 담당검사 닉(제이미 폭스)의 설명을 듣게 된 클라이드는 망연자실하고, 법정의 무죄선고에 굳은 표정으로 법정으로부터 뒤돌아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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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약함은 힘을 필요로 하고, 배신은 피를 부른다.” 닌자를 양성하는 비밀 집단 ‘오즈누’의 수장 오즈누(쇼 코스기)의 대사처럼 그곳은 약육강식의 세계다. 그리고 라이조(정지훈/)는 그곳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자 체제에 대한 반역자다. 일종의 신고식이라 할만한 첫 번째 살인 임무 이후, 조직에 등을 돌리게 되는 라이조는 자신의 삶이 있는 곳이라 믿었던 ‘오즈누’를 떠나 진짜 자신의 삶을 찾아 달아나고 조직에 맞선다. <닌자 어쌔신>은 폭력적 강압을 강령처럼 받아들이며 유지되던 조직 체제에 저항하는 개인의 투쟁을 선혈이 낭자한 살육적 이미지로 담아낸 B급 취향의 액션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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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머> 단평

cinemania 2009. 9. 25. 11:21

1인칭 슈팅 게임, 일명 FPS게임을 즐기는 당신이 모니터 너머로 몰입하고 있는 캐릭터가 가상의 이미지가 아닌 실제 사람이라면 그건 과연 게임이라 말할 수 있을까. 버츄얼 캐릭터가 아닌 현실의 인간을 조종해서 서바이벌 게임을 펼쳐나가는 미래를 배경으로 삼은 <게이머>는 디스토피아의 껍데기를 두른 액션 영화다. 잔혹성을 망각시키는 게임의 폐해를 시뮬레이션되는 가상적 환각에 중독된 인간들이 넘실거리는 미래적 세계관과 연동한다. 현란한 액션신은 기이하게 지겹다. 창의적인 동선을 직조하기 보단 화면만 흔들어대는 통에 되레 시각적 피로감만 축적되는 느낌이다. 동시에 세계관의 디자인 역시 딱히 인상적이라 말하기 어렵다. 가상의 디스플레이는 미래적인데 어째 세상은 현재의 수준을 유지하는 걸까. 액션은 진부하고 감동은 고리타분하다. 특히나 전형적인 용두사미적 한계를 여지 없이 드러내는 결말부까지 확인하고 나면 차라리 게임을 즐기기 위해 로그인하는 게 극장을 찾는 것 보다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란 확신을 클리어하게 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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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기, 질곡의 역사 속에서 펼쳐지는 허구의 로맨스.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실존인물을 밑그림으로 허구적 로맨스를 채색한 작품이다. 기록적 역사에 근거를 둔 재현이 아닌, 실존인물을 통해 뻗어나간 상상을 스크린에 입힌다. 비극적 역사 속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인물을 비극적 멜로의 주인공으로 재생산한다. 이런 사연이 있었다면 어떨까, 정도의 가벼운 거짓말을 실제적 삶에 덧칠한다. 논픽션의 캐릭터에 픽션의 삶을 입힌다는 건 나름대로 쓸만한 설정이다. 그런데 <불꽃처럼 나비처럼>을 보고 있노라면 이 영화가 추구하는 픽션의 묘미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무명(조승우)의 순애보에 동화되기엔 그 얕은 사연에 감정을 담그기 망설여지고, 대원군(천호진)과 명성황후 민자영(수애)이 벌이는 심리전까지 어지럽게 날뛰는 통에 감정이 산만하다. 그 가운데서 판타지에 가깝게 연출된 CG액션신이 종종 스크린을 채운다. 분명 멜로적 플롯이 주가 되는 것 같은데 멜로에 집중하자니 손발이 오그라들고, 역사적 플롯에 눈을 돌리자니 영화를 볼 이유가 없어지는 느낌이다. 이건 멜로드라마도, 역사스페셜도 아니다. 그러니까 결국 명성황후를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치환해서 얻어낸 값어치가 고작 이거란 말이다. 그러니까 고작 이걸 해보자고 92억이나 되는 제작비를 썼단 말이다. 덕분에 미술은 꽤나 볼만하다만, 스크린을 전시관 윈도우로 착각하는 이들은 없을 테니, 이걸 어쩐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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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제작된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된 쉐인 액커는 이를 통해 팀 버튼과 티무르 베크맘베토브라는 든든한 조력자를 얻었고 자신의 세계관을 확대시킬 수 있는 기회를 획득했다. 서사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자체가 생략됐으며 캐릭터의 대사조차 동원되지 않는 탓에 정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세계관이지만 폐허와 같은 이미지 위에 등장하는 인상적인 캐릭터들의 탁월한 액션신이 담긴 11분 가량의 단편 애니메이션은 캐릭터에 대사를 입히고 세계관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암시를 동원한 80분짜리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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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출귀몰한 전법으로 은행을 털고 유유히 FBI를 따돌리던 갱단의 리더 존 딜린저(조니 뎁)가 검거됐다. 존 딜린저를 구치소로 이송하는 차량 주변에 수많은 군중이 몰려 환호를 지른다. 존 딜린저를 보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든 군중의 환호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열광에 가까운 것이다. 존 딜린저가 수감될 예정인 미네소타 구치소에 몰려든 취재진의 열기도 뜨겁다. 은행 하나를 터는데 얼마나 시간이 필요하나요? 1 40초 정도면 가능하지. 기자가 던진 가벼운 질문이 농담으로 튕겨져 돌아온다. 악명 높은 범죄자를 목전에 둔 긴장감 따위란 없다. 마치 유명인을 눈 앞에서 두고 본다는 들뜬 기분이 현장을 장악한다. 그 사이에서 여유로운 미소로 현장을 장악한 존 딜린저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퍼블릭 에너미>는 그 표정 너머의 시대를 관찰하기 보단 그 표정을 통해 시대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발견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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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잡는 식인멧돼지를 쫓는 사람들의 분투. <차우>는 명확히 답이 나오는 영화(처럼 보인). 괴수도 나오고, 살육신도 등장하고, 추격도 펼쳐지고, 사투가 벌어진다. 누구라도 예상하기 좋은 형태의 장르적 자질을 품고 있는, 괴수영화에서 재난영화를 포괄할만한 이미지가 선연해지기 쉬운 영화임에 틀림없다. 물론 명확한 예감처럼 서스펜스를 바탕으로 내달리는 추격전과 액션신은 등장한다. 하지만 8할이 코미디로 채워진, 그것도 평범한 방식의 코미디로 이해되기 쉽지 않을 취향의 코미디를 구사하는 <차우>괴수 어드벤처라는 카피에 이끌려 상영관으로 향한 관객들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덫에 걸렸다는 평을 얻기 좋은 결과물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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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단평

cinemania 2009. 6. 8. 14:58

지현의 할리우드 진출작 논란 따위를 접어두고라도 단적으로 말하자면, <블러드>는 현재 할리우드 오락영화들이 부여하는 묘미의 절반도 따라잡지 못하는 작품이다. 초중반에 등장하는 집단 학살신은 심심하지 않은 구경거리처럼 보이지만 전반적으로 딱히 인상적인 액션 수준을 유지한다고 말하긴 어렵다. 때때로 게임 동영상을 삽입한 것마냥 조악하기 짝이 없는 CG가 심심찮게 눈에 띄고, 비전문액션배우의 지친 몸놀림을 커버하기 위해 시종일관 흔들어대는 카메라 워크도 무색하기 짝이 없다. 결론은 <블러드>가 딱히 미덕을 설명하기 어려운 오락영화란 말이다. 혹시나 만약 <공각기동대> 오시이 마모루의 동명 원작 스크린판이란 문구 따위로 그 이상의 기대감을 충만한 관객이 있다면 모든 기대감을 접는 게 낫다. <블러드>는 전공투 시절의 역사적 의식을 투영한 오시이 마모루의 원작 소설도, 그 이후로 뱀파이어 팬픽 수준의 양질을 유지하며 분화해나간 블러드 프로젝트의 애니메이션과 코믹스와도 다른 작품이다. 특히나 증축된 서사는 <블러드>를 부실한 스토리텔링으로 흔드는 과욕 같다. 모든 이들의 관심사라 할만한 전지현은 고생한 흔적이 역력할 뿐, 안타깝지만 액션을 구사하기엔 지치는 몸놀림을 선보인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수준이다. 3부작을 생각한다지만 이미 시리즈로서의 가능성은 끝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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