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새벽 위로 비틀즈의 ‘Norwegian Wood’가 흐른다. 깨어있는 자와 잠든 자의 경계가 분명한 새벽 두 시의 라디오는 감미롭다. 음악이 끝난 뒤, 음악평론가 지성희(지진희)는 매력적인 목소리로 자신이 선곡한 음악을 설명한다. 아무도 몰랐다. 그가, 새벽에, 전국으로 송출되는 생방송 라디오에서, 이혼을 선언할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 역시도 몰랐다. 당당하게 뒤통수칠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자신이 뒤통수를 맞게 될 것임을. 호기롭게 이혼계획을 선포한 성희는 절친한 친구 동민(양익준)과 아내가 있는 강릉으로 달려가지만 집 안에서 성희를 기다리는 건 아내가 아니라 편지 한 통이다. 아내가 사라졌다. 보기 좋게 이혼하려다 이혼당했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을 연출했던 이하 감독의 두 번째 작품 <집 나온 남자들> 역시 제목부터 그 내막이 궁금해지는 영화다. “여행영화를 찍고 싶었다”는 이하 감독의 말처럼 로드무비의 느낌이 가미된 코미디물이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이 썰렁한 정적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박장대소와 실소 사이에 놓여 있는 코미디였다면 <집 나온 남자들>은 보다 박장대소에 가까워진 적극적인 유머가 눈에 띄는 코미디다. 사건들은 보다 왁자지껄하고 소란스러워졌다. 사실 <집 나온 남자들>은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처럼 한 여성의 과거가 밝혀져 나간다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을 품고 있다.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했던 아내의 비밀이 차례차례 밝혀져 나갈 때, 남자들은 비로소 무언가를 깨달아 나간다. “분명 재미있는 코미디 영화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떤 의미가 전달되는 걸 느꼈다”는 양익준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유쾌한 웃음 사이로 관계와 소통에 관한 의미가 새어 나온다.
무엇보다도 <집 나온 남자들>에서 눈여겨볼만한 지점은 배우들의 조합이다. 지진희와 양익준, 그리고 이문식까지, 좀처럼 비율을 맞추기 어려울 것 같은 에너지를 지닌 트리오는 영화에 특별한 시너지를 불어넣었다. “모든 대사가 배우들의 입을 거쳐 재탄생했다고 보면 된다. NG가 나고, 테이크를 갈 때마다 매번 대사가 바뀌곤 했다. 배우들이 대사를 어떻게 칠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사실 지진희와 양익준을 한 공간에 밀어 넣고 투샷으로 잡는다는 점에서 이미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지진희를 통해 캐릭터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는 이하 감독은 이를 지성희에 반영했고, “<똥파리>를 통해 팬이 된” 양익준을 섭외했다. “이미 잘 알았던” 지진희와 달리 <똥파리>의 상훈처럼 날 선 사람이 아닐까 싶었던 양익준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눈 녹듯 걱정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평소 “정말 잘 생겼다고 생각하는” 이문식에게 지방의 ‘옴므파탈 제비’역할을 맡겼다. 배우들은 때로 형제처럼, 때로 친구처럼 어울리고 짓궂은 장난도 불사하며 현장을 떠들썩하게 이끌었다는 후문이다.
기습적인 전국민적 이혼선언이 아내의 시간차 이혼선언에 무색해진 탓에 아내를 찾으러 떠난다는 성희의 여정은 그 시작만큼이나 끝을 짐작하기 어렵다. 과연 아내를 만날 수 있을까, 라는 호기심은 점차 아내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라는 의문으로 번져 나간다. 그 지점에서 우린 함께 답해야 한다.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누군가가 과연 그 사람일까. 기막힌 사내들의 소란스러운 로드무비 <집 나온 남자들>이 자아낼 웃음은 관계와 소통의 의미로 내달리기 위해 거쳐야 할 톨게이트와 같은 통과 의례나 다름없다.
로드무비 & 버디무비
집 나간 마누라를 찾아 떠나는 남자의 여정에 절친은 코가 꿰어 동행하고, 그 와중에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마누라의 오빠가 나타나 합류한다. <집 나온 남자들>은 로드무비의 여정 위에 버디무비의 활기를 왁자지껄하게 띄우는 코미디다. 덕분에 현장은 시끌벅적했고, 이하 감독은 “그 자체를 즐겼다”. 이제 관객만 즐기면 된다.
이하 감독 인터뷰
한 여자의 과거가 밝혀져 나간다는 점에서 전작과 비교할만한 코드가 보인다.
근본적으로 사람에 대해 알아보고 싶은 관심이 있는 거 같다. 그래서 영화로 자꾸 그런 얘기를 하게 되나 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람이 어떤 존재라던가, 이런 걸 깨우치는 건 아니다. 어쩌면 그렇게 항상 확신할 수 없기에 계속 관심이 가나 보다.
일종의 로드무비 같다.
사실 여행영화를 찍고 싶었다. 내용이 무엇이건 간에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영화를 하고 싶었다. 거기서 출발한 영화다. 길 위의 풍경을 많이 담았지만 인물을 따라가는 쪽으로 편집하다 보니 많이 빠졌다. 그래서 내가 원한 만큼의 멋진 로드무비가 된 것 같진 않다. (웃음) 하지만 적어도 직접 그런 느낌들을 만들어 나갔으니까 이미 로드무비를 해냈다고 생각한다.
전작의 흥행 실패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진 않았나?
차기작을 하기 위한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흥행 스코어에 대한 강박까지는 아니더라도 거기서 오는 걱정과 답답함은 있었다. 영화를 찍으면서 즐거워질 수 있었으면 싶었다. 그래서 즐거운 영화가 하고 싶어졌다.
최소한 소통에 대한 고민은 있었을 것 같다. 적어도 자신의 취향이 담긴 작품이 외면당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랄 수도 있고.
관객과의 소통을 위해 내 취향을 바꾼 건 아니다. 다만 함께 작업하는 배우나 스태프와 조금 더 소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결국 내가 추구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예전과 다르게 시도했다.
<집 나온 남자들>이 관객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길 바라나?
감히 말해보자면 지금 한국 관객들이 보고 싶어하는 코미디가 혹시 이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이번 작품을 선보인 뒤, 그로부터 나오는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받고 싶다. 단순히 관객 수로는 알 수 없는 부분이다.
(PREMIERE Seasonbook 'Korean Movie Preview' 4월호 No. 66)
혹시 누구 닮았단 얘기 들어본 적 없나요? 몇 명 있어요. 제가 누구 닮았다고 생각하세요?
촬영하는 거 보면서 누굴 닮았다 생각했는데 이제 생각났어요.
누구요?
조디 포스터.
예? 정말요?
이목구비가 닮은 거 같아요. 특히 눈이 닮았네요.
우와, 처음 들었어요! (웃음)
다른 인터뷰 기사에서 보니까 1살 때부터 연기를 했다는 말이 있더군요.
1개월이에요. 1개월. (웃음) 제 생일이 11월 24일이라서 딱 생후 1개월이 크리스마스 이브였거든요. 그때 교회에서 연극을 했는데 제가 아기 예수를 하고 어머니께서 마리아를 맡으셨죠. 이건 그냥 재미로 하는 얘기고 실제로 연기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때 연극을 시작하면서였어요.
그 나이면 반쯤은 호기심으로 연기를 시작한 게 아닐까 싶은데요. 연기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시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 (웃음) 아까 주장이 강하다고 말했던 것처럼 어렸을 때부터 제가 고집도 있고 주장이 강했어요. 초등학교 5~6학년 즈음에 벌써, ‘나는 연예인 말고 순수연극만 하는 배우가 될 거다’라고 했던 게 기억나요. (웃음) 사실 그때는 어려서 영화도 많이 못 봤죠. 제가 처음으로 본 영화는 <여고괴담>이에요. 중학교 때였나, 고등학교 때였나. 아무튼 영화를 늦게 접하게 됐죠. 어렸을 때 비디오 가게에서 <바이오맨>같은 거나 빌려본 적은 있지만 영화라고 할만한 건 <여고괴담>이 처음이었죠. 그때부터 영화를 좋아하게 됐고 점점 연극과 영화의 격차가 좁아지더니 지금은 반대가 된 거 같아요.
연기를 하게 된 걸 후회한 적은 없었나요? 제가 어린이연극 교실을 다니면서 어린이 뮤지컬을 공연하기도 했는데 ‘까뽀니노’라는 프랑스 극단과 같이 세계 연극제에 나간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다닐 수가 없었죠. 그리고 중학교는 초등학교보다 학업량이 많아서 은근히 바쁘더라고요. 그렇게 연기를 못하다 보니까 자연히 관심도 없어졌어요. 그렇게 중학교 3년 동안, 연기로부터 점점 멀어지면서 연극을 잊고 살았죠. 그러다 고등학교에 갔는데 연극부에서 반마다 돌아다니면서 동아리 홍보를 하는 거에요. 그때 제가 그 동안 잊고 지냈던 연극이 갑자기 머리로 들어왔죠. 그래서 연극부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거기서 오디션 대본을 보는데 너무 반갑더라고요.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바로 이 느낌이야. 내가 왜 이걸 잊고 있었지.’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결국 연극반 활동을 하게 됐고 이를 계기로 다시 연기를 하게 됐죠.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경위가 궁금해지는군요.
연극부 선배가 다니던 극단에 따라다니면서 연기학원도 등록하게 됐어요. 그런데 학원에서 영화 찍을 때 엑스트라 같은 거 보내기도 하잖아요. 저는 처음 <두사부일체>에 나가게 됐는데 학원에서 애들을 다 모아서 보냈었죠.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쫓겨나고 닫힌 교문 안에서 학생들이 항의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 장면 리허설을 하는데 저는 뭔지 잘 모르지만 진짜 열심히 했어요. 완전 몰입해서 우리 선생님 들여보내주라고 막 울었거든요. 그랬더니 감독님이 모니터를 보시다가 오셔서 아까 거기서 울던 애 누구냐고 하셔서 저라고 했더니 이리 와서 잘 보이는 데서 연기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학생들을 인솔했던 분께서 저를 눈 여겨 보시곤 바로 다음에 <질투는 나의 힘> 오디션을 보라고 추천해주셨고 영화에 나오게 됐어요. 그런데 운이 좋았는데 그 역할이 짧지만 인상적인 역할이라 덕분에 인터뷰도 하고 그랬었죠. 그 이후로 그 역할 보시고 찾아주시는 분들도 있었고, 덕분에 잘된 거 같아요.
노력하는 만큼 뭔가 얻어진다는 걸 느꼈을 거 같은데요.
솔직히 그 때는 잘 몰랐던 거 같아요! (웃음)
저는 <똥파리>를 일반시사를 통해서 일반관객과 함께 봤습니다. 관객들의 몰입도가 높은 느낌이더군요. 다같이 깔깔대다가 이윽고 탄식하는 모습들이 재미있었습니다. 서울극장에서 일반시사 때 상영 중간에 살짝 들어가봤어요. 그런데 정말 반응이 크더라고요. 마치 방청객 반응 같았죠. 9백석이 거의 꽉 찼었는데 그 많은 관객이 동시에 한번에 반응하는 느낌이 웅장하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그 반응을 느끼는 게, 뭐랄까, 짜릿했어요. 물론 시사회라서 반응이 더 좋을지 모르겠지만 너무 좋았어요.
영화가 끝나고 나서 무대인사가 이뤄질 때 열광적인 분위기가 더 놀랍더군요.
영화가 좋았으니까 열렬히 환호해주신 거겠죠? (웃음) 마지막 일반시사가 있었던 날 영화 끝나고 무대 인사하러 들어갔는데 반응이 너무 좋은 거에요. 10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대부분 남아서 열렬히 환호해주시는데 정말 이렇게 반응이 열광적으로 좋을지 몰랐거든요. 유명한 스타배우가 나오면 그 배우가 보고 싶어서 늦어도 남잖아요. 저흰 그런 것도 아닌데 그런 반응이 나오는 거 보면 그게 오로지 영화의 힘이란 의미 같아서 좋았어요.
<똥파리>는 센 영화입니다. 욕도 많이 나오고 폭력의 수위도 센 편이죠.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감상은 어땠나요?
욕이 많긴 하지만 욕이 많이 나오는 영화는 사실 <똥파리>이전에도 많았잖아요. 물론 <똥파리>가 다른 영화들보다도 수위가 세게 느껴지는 것 같긴 해요. 정말 욕을 리얼하게 하니까 그렇게 느껴지는 거 같고요. 일반적으로 조폭이나 삼류 인생을 다루는 영화에서 욕이 많이 등장하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다른 영화보다 <똥파리>는 좀 더 생생한 느낌을 주는 영화 같았어요. 배우들이 그만큼 리얼하게 연기를 하기도 하고. 마치 다큐멘터리 같다고 하는 분도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자신의 대사에서도 욕이 종종 포함되는데 어땠나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심한 욕은 하지 않잖아요. 막상 기껏 해야 미친 새끼 이런 정도? (웃음)
상당히 잘 웃는 편이에요. 연희와 전혀 다른 사람 같습니다.
그렇진 않아요. ‘가시나무새’라는 노래에서 ‘내 속엔 내가 너무나 많아’라는 가사처럼 사실 다들 다양한 성격을 지니고 사는 것 같아요. 제가 지금은 여기서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진짜 편한 친구 만나면 남자 목소리처럼 들릴 정도로 무덤덤하게 얘기할 때도 있죠. 좋아하는 사람 앞에 가면 여성스러워지기도 하고, 화나면 막 때려부수기도 하고, 때때로 감성적으로 멜랑꼴리할 때도 있고, 굉장히 다양한 성격을 갖고 있는 거 같아요. 기자님도 지금 이렇게 저랑 인터뷰 자리에서 만났기 때문에 예의 바르게 말씀하시지만 친구 만나면 욕도 할 수 있잖아요. 남자들은 원래 욕을 잘 하기도 하니까. 특히 학창시절 친구들 만나면 욕 잘하잖아요. (웃음) 슬프면 남자들도 울고, 화날 땐 막 벽도 치잖아요. 그런 것처럼 저한테도 그런 다양한 면이 있죠. 연희가 저와 전혀 다른 캐릭터는 아닐지도 몰라요. 고집이 센 편이기도 하고
고집이 세다고요?
은근히 고집이 있어요. (웃음)
연희는 안에 쌓인 응어리가 많은 사람이죠.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다보면 심리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는 측면도 있었을 텐데요.
아무래도 영향을 받죠. 다만 그게 오래가는 건 아니에요. 집안 촬영할 때 일주일 정도 몰아서 집안 장면을 다 찍었는데 그땐 매일 계속 울었죠. 매일 같이 우는 장면이 나와서 그런 상태로 계속 지내긴 했어요. 연희가 힘들어하는 경우는 집안에서 아빠나 동생이랑 싸울 때잖아요. 밖에서는 그런 과정이 몇 번 없어요. 밖에서 상훈을 만날 땐 편하게 막 대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야외에서는 힘든 건 없었죠.
동생과 싸우는 씬에서 머리도 맞고 그러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변태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맞을 때 일종의 시원함이 있거든요. 세게 맞는 것도 아니고요. 감정을 받는데 도움이 돼요. 가짜로 맞으면 화가 안 나지만 진짜로 맞으면 열 받잖아요. (웃음)
진짜 감정적인 연기였군요. (웃음) 뭔가 후련하다고 할까요? 막 소리지르잖아요. 쏟아버리면 시원해요. 물론 감정적으론 힘들죠. 그 감정에 치닫는 게 힘들지만 그래도 뭔가 막 쏟아버리면 시원한 면도 있거든요.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고 할까. 예를 들면 아빠가 칼 들고 위협할 때 진짜 미쳐버리는 줄 알았거든요. 하도 소리를 질러서 목도 쉬었어요. 그러고 나면 한동안 진정이 안 돼서 끝나고도 계속 울게 돼요. 애기들 우는 것처럼 어깨를 들썩거릴 정도로. 그래도 뭔가 뱉어내고 나면 좀 시원해요. 울고 나면 시원하잖아요. 에너지를 풀어내니까 졸리기도 하고. 평소에 제가 화를 내거나 싸울 일도 없고, 그래서 소리 지를 일이 없어서 영화를 통해 대신 그런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할까. 평소에 제가 갖지 못했던 걸 영화를 통해서 풀었다고 할까요.
감독님이 전세까지 빼서 제작비를 마련했다는 일화처럼 환경적인 열악함을 감안해야 했을 겁니다. 그런 환경에서 비롯되는 어려움을 느낀 건 없었나요?
현장의 어려움은 별다른 영향을 못 미친 거 같아요. 현장이 어렵다는 건 상황이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겠지만 감독님이 그 영향력을 배우들에게 가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셨거든요. 감독님께서는 배우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셨어요. 다른 스태프들이 섭섭해할 정도로, 아마 진짜 서운해했던 스태프도 있었을 거에요. 본인이 배우이기 때문에 배우들의 생리를 잘 알아서 어떻게 해야지 이 배우들이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지를 잘 아는 거 같더라고요. 배우들은 감성적인 정서가 중요한 만큼 현장에서 뭐하나 신경 쓰다가 집중력이 어그러지면 연기가 잘 안될 때도 있잖아요. 그래서 감독님이 최대한 배우들이 예민해지거나 다른데 신경 쓸 필요 없게 많이 보호해주셔서 배우들은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지 않은 거 같아요. 그저 자기 역할에 충실할 수 있게 감독님께서 누구보다 잘 해주시니까.
감독님의 디렉션도 거의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느껴지던가요?
감독님과 처음에 만났을 때 6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어요. 그때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하면서 그것과 관련된 얘기도 했던 거 같아요. 감독님과 제가 생각이 일치하는 걸 느꼈죠. 디렉션을 많이 주면 오히려 그 안에 갇히는 경우가 많아요. 어차피 대본을 보면 그 상황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잖아요. 상황을 아는 만큼 거기서 많이 벗어나진 않을 테고, 각자 생각하고 이해한 게 있으니까 알아서 잘 할 거라는 감독님의 믿음이 있었어요. 감독님마다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양익준 감독님은 디렉션을 별로 안 좋아하시는 스타일이었던 거에요. 저도 디렉션이 많으면 그걸 약간 불편해하는 편이긴 해요. 예를 들면,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는데 약간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바라봐, 이런 식은 좀 그렇잖아요. (웃음) 그대로 해야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오니까. 자연스러운 정서와 감정 속에서 나올 수 있는 상상력을 오히려 막는 거죠. 감독님께서 생각하시는 게 좋을 수도 있지만 감독님께서 미처 생각하지 못하셨던 게 배우에게 나올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럼 보다 자유롭고 진심이 묻어나는 연기를 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너무 많은 걸 정해주면 아무래도 배우들이 가진 좋은 능력을 막는 경우가 생기는 거죠. 오히려 자유롭고 편하게 두면 더 잘 할 수 있는 배우도 어떻게 해야 된다는 생각에 신경 쓰다가 집중을 잃을 수도 있거든요. <똥파리>를 보신 분들이 작은 역할조차도 연기가 좋다고 하시는 건 감독님의 그런 연출 방식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처음 상훈을 만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거기서도 남자 목소리 나오잖아요. ‘야!’ (웃음)
만약 그런 상황을 현실에서 직접 맞닥뜨린다면 그럴만한 용기가 날까요? 저도 좀 깡다구가 있어요. (웃음)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여자애들은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당해본 경험이 보통 한번씩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한번도 그런 경험이 없거든요. 그래서 저는 평소에 그런 얘기 듣게 될 때마다 만약 누가 저한테 그러면 가만히 안 둘 거라고 생각했어요. 손목을 비틀어 버릴 거라고. (웃음) 그런데 어느 날 친구와 사람이 많은 신도림역에서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친구가 움찔하는 거에요. 이상해서 왜 그러냐고 하니까 어떤 사람이 지나가면서 엉덩이를 만졌대요. 순간 열이 받는 거에요. 차라리 저한테 그랬으면 어땠을지 모르겠는데 제 친구한테 그랬다니까 더 열 받는 거 있죠. 그래서 “아저씨!” 불렀어요. 아니다. “야!” 그랬나. 맞아요. 진짜 연희처럼 그렇게 불렀어요. 진짜 열 받아서. (웃음)
마치 상훈을 부르듯이. (웃음)
그런데 아저씨가 가다가 들었는지 갑자기 쓱 멈추더니 돌아보는 거에요. 분명 우리가 불렀다는 걸 아는 거 같은데 우리를 안 보고 그냥 돌아서서 우리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우리 쪽으로 오는 거에요. 분명히 우리가 불렀다는 걸 알았을 거에요. 왜냐면 우리가 그 아저씨를 쳐다보면서 서있었거든요. 신도림에 사람들이 많아도 다 걸어 다니고 있는데 우리만 서서 쳐다보고 있으니까 알 거 아니에요. 게다가 자기가 엉덩이를 만졌으니까 당연히 알 테고. 그런데 진짜 그 아저씨 표정이 정신이 하나 나간 사람 같았어요. 이거는 설명을 잘 못하겠는데 마치 싸이코패스 같다고 할까. 이상한 느낌이었어요. 표정도 없고. 게다가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양복 마이에 손을 넣고 오는 거에요. 소름 끼치고 섬뜩하더라고요. 그래서 어쩌지, 하는데 우리 옆을 지나가더라고요. 그런데 다시 우리한테 돌아올 거 같았어요. 그래서 다시 뒤돌아 올 까봐 친구랑 도망갔죠. (웃음) 주머니 안에 칼이라도 있을 거 같더라고요. 신도림역에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서도 찌르고 도망가버리면 못 잡을 수도 있잖아요. 그랬다가는 뉴스에 나오는 거죠. 사람이 많은 곳에서 누가 찔려 죽었는데도 아무도 몰랐다, 비정한 현대사회. 이런 식으로. (웃음)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군요. (웃음)
아무튼 무서웠어요. 그때 이후로 사람들한테 함부로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어요.
연희는 형인이와 함께 상훈을 약하게 만드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사실 처음부터 욕을 날리며 주먹질을 하는 사람에게 욕을 날리며 맞선다는 건 남자도 쉬운 일이 아닌데 연희는 그렇게 상훈에게 대항하죠. 연희가 그럴 수 있는 건 아무래도 자신의 현실이 그처럼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고요. 그런 내면을 이해하는 게 중요했을 거 같은데요. 연희는 동생에게 ‘빤스까지 쫙쫙 찢어버릴라’ 같은 욕까지 듣고, 아빠가 그렇게 난리를 치는데도 참아내잖아요. 물론 연희도 그게 힘들겠죠. 동생한테 그렇게 심한 욕을 들었을 때 어떻게 그렇게 참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연희는 그런 것들에 이미 적응이 된 거 같아요. 익숙해진 거죠. 항상 그래왔으니까. 상훈의 폭력이 연희한텐 처음이 아닌 거죠. 지금까지 숱하게 별 지랄을 다 보고 살았으니 그런 건 이미 익숙하게 배긴 거죠. 물론 화는 나겠죠. 화는 나지만 그걸 일일이 반응할 정도가 아니란 거에요. 그러니까 웬만한 강한 사람을 만나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거 같아요. ‘이미 별일을 다 겪어왔으니까 죽일 테면 죽여봐라. 어차피 난 사는 게 힘든 애다.’ 이런 것일 수도 있고. 집에서 항상 폭력적인 공격을 당하다 보니까 상훈이 별로 무섭지 않았을 거 같아요.
<똥파리>에서 등장하는 가족의 모습은 하나같이 끔찍합니다. 더 안쓰러운 건 그 안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로 비춰지는 모든 이들이 하나같이 피해자라는 거겠죠. 아무래도 그런 극단적인 경험을 겪진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배경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도 있었을 텐데요.
아무래도 저에겐 상상에 가깝죠. 저희 집에서 폭력을 겪어본 적은 없어서 상상이 필요했어요. 도움을 받기 위해서 우선 감독님과 많은 얘기를 했고요. 감독님이 연희를 위해 모티브로 잡기 위해 인터뷰했던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 이야기도 많이 들었죠. <긴급구조 SOS>같은 프로도 많이 봤어요.
어쩌면 평소에 자신이 겪어보지 못했던 만큼 생소한 풍경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이번 기회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넓어지는 계기가 된 측면도 있을 것 같은데요.
예. 사실 그렇죠. <긴급구조 SOS>같은 프로를 보면서 믿기지 않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아무래도 <똥파리>를 하면서 그런 이야기들에 더 많은 관심이 생기기도 하고, 많이 찾아보게 됐어요. 감독님이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직접 주변에서 있었던 이야기도 많이 듣다 보니까 생각보다 그런 가정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혹시 동생 있나요? 남동생이 있어요.
평소에 동생과의 사이는 어떤가요?
동생이랑 되게 친해요. 다만 어렸을 때 싸우지 않았던 형제나 남매 없잖아요. 초등학교 때는 싸우기도 많이 싸웠죠. 그런데 어릴 때 싸우는 게 더 무서운 거 같아요. 제 무릎에 막 연필심 박힌 적도 있고. (웃음)
과격했군요. (웃음)
그런데 다른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다 한번씩 연필심이나 샤프심 박히고 그랬던데. (웃음) 그런데 지금 와서 저도 생각해보면 조금 무섭게 느껴져요. 제 동생이 진짜 착한데 그때 제 동생이 저한테 분명 그랬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상상이 안 가죠. 어렸을 때는 다듬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더 과격한 거 같기도 하고, 지금으로선 상상이 안돼요. 내 동생 같은 애가 연필심을 나한테 박았다고? 이젠 이런 생각이 들 정도지만 분명히 그땐 그렇게 싸웠거든요.
양익준 감독님은 <똥파리>에서 가장 많이 상대하는 배우이기도 했습니다. 영화에서는 상당히 무시무시한 인간이지만 실제론 상당히 인간적인 사람 같더군요.
꺄하하하, 막 이러시고. (웃음)
양익준 감독님과 호흡을 맞추는 건 어땠나요? 연기하는 모습과 평소 모습이 극단적으로 달라진다는 것도 옆에서 보는 입장에선 묘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혹시 연기적으로 짓눌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나요?
밀리지 말아야겠다거나 그런 건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냥 연희로서 그 사람을 만났을 뿐이죠. 제가 감독님에게 놀란 부분은 다른 데 있어요. 처음에 만나서 6시간 수다 떨었다고 했잖아요. 그때 얘기하시면서 담배도 피우고 그러셨는데 저는 담배연기를 싫어해요. 원래 안 피우는 사람들은 담배 연기 싫어하잖아요. 그런데 감독님이 담배를 피는데 (고개를 뒤로 돌리고) 이렇게 내뿜는 거에요. 담배 피우는 사람 중에 예의 있는 사람들은 보통 옆으로 뿜거든요.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사람들은 제가 앞에 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내뿜죠. 난 정말 연기가 너무 싫고, 견디기 힘든데. 그런데 감독님은 고개를 돌리고 뿜는 거에요. 진짜 작은 부분이지만 오히려 그런 세심한 부분이 크게 느껴지잖아요. 그래서 이 사람 되게 좋은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되게 감동받았어요.
상대를 배려해주는 법을 아는군요. 그리고 감독님 또 어떤 점이 있느냐면 ‘미안’이란 말이 반사적으로 나와요. 예를 들면 같이 앉아있을 때 다리를 조금 건드릴 수 있잖아요. 그럴 때마다 반사적으로 ‘미안’이란 말이 나와요. 지나가다가 종종 어깨를 부딪히면 상황이 애매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못할 때도 있잖아요. 그런데 감독님은 반사적으로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는 거에요. 반사적으로 나온다는 건 몸에 배어있다는 의미잖아요. 이 정도는 사과하지 않아도 될 거 같은 상황인데도 그냥 반사적으로 하는 거죠. 이런 것도 상대에 대한 배려죠.
양익준 감독님이 자신을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서 말씀해주신 적이 있나요?
감독님께서 예전에 <KBS독립영화관> 진행을 맡으셨는데 거기서 제가 출연했던 <이슬 후>라는 단편작품을 소개한 적이 있었어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 받았던 작품인데 거기서 제가 되게 좋았대요. 그래서 그 때부터 제 팬 됐다고 그러시던데요. (웃음)
연희는 집안에서 살림을 도맡죠. 무대인사 때 카페홍보까지 하는 거 보니까 마치 살림꾼이 따로 없더군요.
음, 감독님 표현을 빌리면 오지랖이 넓어서 그렇다고. (웃음)
친구들 사이에서 주도하는 입장인가요? 아니면 따라가는 입장인가요?
주도하는 걸 좋아해요. 한번 내가 여기서 주도해야겠다 싶으면 하게 되는 거 같아요. 그런데 제가 어디서나 항상 주도할 순 없잖아요. 여기는 제가 주도할 데가 아니다 싶은 느낌이 들 땐 아예 빠져있어요. 제가 좀 적극적으로 해야겠다 싶으면 완전히 적극적으로 하는 스타일이고, 아니면 아예 방관하고 빠져버리는 스타일이죠.
“왜 남에게 보여주지 못할 영화를 만드는 거지?” <삼거리 극장>에서 했던 대사였죠. <삼거리 극장>은 많은 관객을 만나기 힘든 영화였습니다. 다행히도 이번에 <똥파리>는 전국 50개가 넘는 상영관에서 개봉된다고 하네요. 배우 입장에서 자신의 영화가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없을 땐 아쉬움이 클 거 같아요.
그렇죠. 아쉽죠. 특히 제가 해서 그렇다는 점도 있겠지만 <삼거리극장>도 그렇고, <똥파리>도 그렇고, 저는 두 영화가 다 너무 좋거든요. <삼거리극장>은 시나리오 처음 받았을 때부터 완전히 영화와 사랑에 빠졌었어요. 결과물도 너무 재미있었고 좋았는데 많은 관객을 만나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죠. 제가 나왔다는 이유는 그냥 저 혼자 그러려니 하면 되는데 정말 좋은 영화라서 아쉬운 거죠.
인터뷰를 상당히 많이 했더라.
한 4~50개는 했을 걸. 진짜 ‘Breathless’야. 숨을 쉴 수가 없어. (웃음)
제법 유명인사가 됐다. 방금처럼 싸인을 요청하는 사람도 있고.(오픈된 1층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가운데 싸인을 요청하는 팬이 있었다.) 좀 불편하더라. 밖에서 많이 알아보지 않는 게 좋지. 그런 걸 즐기는 분들도 있겠지만 나한텐 별로 즐길 거리가 안 돼. 물론 어느 정도까지는 기분이 괜찮았는데 너무 많아졌거든. 그냥 내가 살아가는 일상이 좋지. 시사회가 열린 극장 9백석에 8백 명 이상이 꽉 차있는 걸 보면 잠깐 ‘와!’하지만 뒤돌아 서서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이 다 길 가다가도 날 알아보는 거 아닌가 싶어지니까. 그래서 수염 깎고, 머리 길러야겠네, 이 생각만 하고 있다. (웃음) 물론 아까 그 분은 감사하지. 그렇게 부드럽게 들어오시면 좋거든. 그런데 거칠게 오시는 분들이 있어. 좋은 건 좋아도 싫은 건 싫은 게 인간의 속성이잖아. 아까 그 분은 날 불편하게 하지 않잖아. 그런데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있거든. 언젠가 관객들의 뇌리 속에서 잊혀지겠지. 그때까지 짱 박히려고. (웃음)
일반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두 번 봤는데 매 번마다 관객 반응이 폭발적이더라.
서울극장 무대 인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극장에 갔을 때 확실히 느꼈다. 내가 누군가를 열광시키려고 만든 영화는 아닌데 이 사람들이 되게 열광하고 있다는 걸. 그러니까 한번쯤은 누가 뱉어내 줬으면 하는 이야기였는데 아무도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그런데 누가 했어. 좀 나쁜 비유 같지만, 처음엔 불편한데 거기에서 내가 미워하는 놈을 누가 대신 때려주는 기분을 느끼는 거야. 그러면서도 자기가 직접 대하고 싸우면서 풀지 못하고 누군가가 대신해줬다는 게 약간 걸리는 사람도 있겠지. 어쨌든 <똥파리>를 보면서 대리배출이 된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 거 같아. 누구나 쏟아낼 게 있는 만큼 쏟아내야 되는 거 같다. 굳이 아낄 필요도 없고, 있는 대로 쏟아내야 될 거 같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나온 영화를 보면 그 사람이 내 대신 뭔가를 막 쏟아내고 있는 거 같더라. 막 지르잖아. 에너지가 엄청난 배우지. 다 배출시켜버리잖아. 그냥 내 대신 뭘 뱉어주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개인적으로 되게 좋아한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엄청난 에너지를 담아서 연기하는 사람이다. 최근작인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봤나?
그건 못 봤다. 사실 사람들이 모르는 <크루서블>보면서 미치는 줄 알았어. ‘신은 죽었다!’(포효하듯) 이러는데 죽겠더라고. 우리들이 가진 에너지보다 굉장히 큰 거지. 그 사람은 배우이기 이전에 배출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랄까.
자신을 위해 만든 영화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밝혔다. 하지만 그게 단순히 자전적인 영화라는 의미는 아닌 거 같다. 자전적인 이야기는 아니지. 그 안에 내 마음이 다 담겨있다지만 내 얘길 이야기에 가져다 붙일 수는 없잖아. 내 개인적인 얘기를 영화에 그대로 투영한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 그건 복사를 하는 거지.
만약 <똥파리>와 비슷한 경험을 지닌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고스란히 영화로 만든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거다.
그럼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증오로 가득가득 차 있겠지. 그걸 누가 보겠어.
그렇다면 자신을 위한 이야기라는 말의 의미가 어떤 범위로 활용된 것인지가 궁금하다.
자신의 이야기가 투영되지 않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있나. 일기를 쓰는데 남의 일을 쓰진 않잖아. 소설을 통해 완전한 픽션을 만드는 분들조차도 자신의 숨결들을 넣잖아. 그러니까 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이 나오고. 그렇게 자신의 일부가 차용된 거지.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살아온 삶과 환경, 주변의 친구들의 삶과 환경, 그리고 앞집이나 건너 집에 있었던, 내가 봤거나 들었고 그로 인해 느꼈던 것들이 다 들어있지. 그냥 내 마음은 한껏 들어갔다. 가족에 대해 싫다고 느꼈던 마음들은 다 들어갔지. 그렇다고 우리 아버지가 어머니를 칼로 찔러서 죽였나, 아니면 내가 용역소에서 일을 했나. 그건 아니지. 단지 어떤 봐왔던 것에 완전한 상상력이 결합된 산물이지. 다만 그 안에 담긴 마음만 속이지 않으면 될 것 같다.
아까 말했듯이 일반관객과 영화를 두 번 봤다. 처음 볼 땐 나도 영화에 몰입하는 입장이었지만 두 번째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반응을 틈틈이 관찰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건 상훈이 욕설을 할 때 낄낄거리던 관객들이 바로 뒤이어 적나라한 폭력에 돌입하니 다들 ‘헉!’하더라. 상당한 충격을 느낀다고 해야 하나. 사실 영화를 보는 관객 대부분은 영화적 수위의 경험을 겪지 못한 사람들이라 그 폭력적 현장을 바라보는 생소함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상황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느낌이 들더라.
1부터 10까지의 레벨에 따른 수위 차이는 있겠지만 최소한 1정도를 안 겪어본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까?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부모님을 통해서 이 세상에 나왔고 어떤 기간 동안은 부모와 살아야 한다. 그 과정이 항상 좋았던 건 아니라는 거지. 고마움도 있겠지만 분명히 부딪힘도 있었을 테고. 특히 한국에선 가족이 고마움보단 미움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지 않나. 개념상으로는 제일 가까워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제일 멀고 스스로를 제일 힘들게 하는 존재처럼 느끼곤 한다. 집이 부자고 가난하고를 떠나서 그런 개념이 발생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 있나? 외국 같은 경우는 성인이 되면 적절히 알아서 나가거나 내보내는데 한국은 움켜쥐고 있잖아. 내가 대신 무언가를 해야 되고, 아니면 해줘야 될 것 같고, 이상하게 갖지 않아도 될 부담감들을 지니고 사는 것 같다. 자유로워야 되는데 자유롭지 못한 거랄까. 왜 그렇게 살까. 나는 이제 독립한지 7년 반 정도 됐다. 진작 나왔어야 됐지만 나 역시도 용기가 없어서 늦어졌지. 어쨌든 당연히 나와야 되잖아. 부모님을 끌어안고 평생을 살 건가. 그래야 여자친구도 만나서 여자친구가 집에 올 수 있고, 야한 것도 하지. (웃음) 그게 삶이잖아. 물론 꼭 여자친구뿐만 아니라, 자기 일생에서 친구도 만나고 자기의 공간이 있어야 자기 삶에 대해서 고민도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지. 중간에 누구 하나 없이 스스로 혼자 남게 될 때 들 수 있는 생각들이 있잖아. 그런데 집에선 문만 열면 가족인 거야. 연희 같은 경우도 (손가락을 작게 벌리며) 요따만한 집에서 꾸역꾸역 모여 사니까, 문만 열면 가족이 보여.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365일, 24시간 계속 따라오면서 보인다면 미치는 거지.
사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할수록 불행에 쉽게 노출되는 게 아닐까. 가난할수록 집도 좁아지고 그만큼 서로에 대한 간섭도 커질 가능성이 생긴다. 그리고 독립이 늦어질수록 가장은 자식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리고 자식들은 아버지의 경제적 능력에 대한 요구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 결국 경제력이 집안의 화목과 직결될 가능성이 커진다. 가난할수록 불화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지는 구조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그 가난을 방조하는 사회가 그 모든 불행의 배후일 수 있다.
물론 100% 가난이라고 할 순 없지만 개인의 가난보다도 이 사회가 가난했고 한국이 가난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이건 조금 다른 얘기일 수 있지만 일본에게 지배도 받고, 한국전쟁도 겪고, 그렇게 역사적으로 힘이 없어서 불행했던 나라였던 거지. 그러다 보니까 어느 순간에 아버지들은 가족을 먹여 살려야 되니까 계속 나가서 돈 벌어오는 기계가 돼버렸고, 엄마는 자기 삶의 정체성을 고민하기 이전에 자식들을 가르쳐야 하는 사람이 돼버린 거다. 자식 교육은 엄마, 돈 벌어오는 건 아버지, 그렇게 나뉘어버렸는데 사실 알고 보면 그런 임무를 마땅하게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 수 있는 거지. 그냥 같이 더불어 자유롭게 살면 좋을 텐데, 누가 누굴 가르쳐야 한다는 개념이 생기니까. 어쨌건 그래도 엄마는 자식들과 싸우건, 친하게 지내건, 부대끼면서 살기라도 하는데 아버지는 계속 돈 벌어야 되니까 나가서 사느라 가족들과 소통할 시간도 없지. 대다수의 아버지들은 좀 소통이 안되잖아.
<똥파리>는 그런 현실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 영화 같다.
내 가족 안에서 출발했겠지. 주변 친구들의 가족 이야기도 그렇고. 친구들과 중학교 때 가끔 술 먹고 그러면서 가족 이야기가 나오면 대부분 아버지 이야기가 나왔다. “난 싫어! 아버지가!” 이러는 친구가 있었는데 알고 보면 부모님이 이혼해서 아버지가 따로 나가서 살고, 그래서 미워하지만 한편으로 그리움이 있다. ‘애’와 ‘증’이 있지. 대개 그랬던 거 같다.
결국 부모를 부정해봤자 변하는 건 없다. <똥파리>의 증오도 결국 그런 깨달음에 도달하게 위해 증오를 묘사하는 영화가 아닐까.
아버지가 폭력의 괴물이다, 라는 게 아니라 이 사회가 그런 괴물을 만들었다는 거지. 아버지가 누굴 괴롭히거나 때리고 싶어서, 아니면 칼로 죽이고 싶어서 그랬겠어. 사회가 압박을 가하는데 사회적으로 약자이다 보니까 풀어낼 곳이 없지. 그게 이상하게 제일 편하고 쉽게 대할 수 있는 가족 안에서 풀어지는 거지. 사실 불쌍한 거야. 살아가는 숨통이 없으니까. 집에서 셋방살이하듯 소통도 안 되고, 가족으로서 대접도 못 받고, 그렇게 집에 와도 외로워지는 거지. 폭력적이지 않은 아버지들도 마찬가지고. 가장이라는 짐이 왜 아버지에게만 얹어져야 할까. 나는 네 어머니야, 나는 네 아버지야, 나는 당신의 아들이고, 너는 내 아들이야. 이런 구별을 통해 서로 의무를 얹혀주기 보다 좀 친구 같이 살 수 없을까, 라는 고민이 들더라.
상훈은 주먹질과 욕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사람이다. 아버지에 대한 깊은 증오만큼이나 그 관계를 끊을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단지 그 안에서 고립된 거다. 연희와 소통할 수 있는 건 연희가 그 증오를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 쳐주는 인물이기 때문이 아닐까. 결과적으로 상훈이 삶을 바꿔보려는 결심을 품는 것도 연희가 어느 정도 계기가 된 거라고 생각한다. 궁금한 건 눈 딱 감고 상훈을 위한 해피엔딩을 마련할 수도 있었을 텐데 당신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는 거다.
만약 (결말부의 상훈이)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똥파리>가 <피와 뼈>처럼 됐을 거다. (웃음) 사실 그 자체가 내겐 화해가 되는 거지. 상훈이 죽었다는 건 단지 어떤 한 사람이 없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상훈이 사라짐으로써 당연히 사라져야 할 어떤 연결 고리가 끊어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끊어야 했을 어떤 고리를 이 지점에서 끊기 위해서 라이타 불로 상훈의 제를 지낸 게 아닐까라고,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다. 완성된 영화를 보고 인터뷰를 거듭하면서 계속 느껴지는 게 그렇더라. 결국 상훈을 죽임으로써 화해를 신청하는 거다. 이는 내가 서른 두세 살이 돼서 시나리오를 썼을 당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던 거 같다. <똥파리>는 2006년의 양익준이었던 셈이다.
결국 상훈은 당신의 마음 속에 있던 증오와 미움이었던 것 같다. 만약 그때가 아니었다면 <똥파리>는 어떤 이야기가 됐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만약 지금 이런 얘기를 한다면 다른 선택을 했었을 수도 있겠지. 이야기 구조가 완전히 바뀔 수도 있고. 어쨌든 내가 지금 <똥파리>시나리오를 다시 쓴다면 조금 변화된 이야기가 나오리라는 건 확실하다. 만약 그 이전에 썼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나왔을지 모를 일이고. 이제야 조금씩 이해도가 생기다 보니까 지금은 화해의 제스처를 취할 수 있는 거고 살가워질 수 있지만 만약 20대 사이에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면 더 무거워지거나 악랄해지고 아팠을 거다. 캐릭터 자체가 완전히 미운 사람들로 표현됐을 거고. 나도 이제 많은 고민을 해오면서 가족 개개인의 잘못이 절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거지. 내가 아버지를 미워했지만 사실 아버지의 뒤에는 사회가 있는 거니까 난 결국 사회를 미워하는 것과 같다. 가족을 둘러싸고 있는 아버지가 바로 사회인 셈이다.
<똥파리>는 어쩌면 당신에게 필요했던 비상구였을지도 모르겠다.
화장실이지. 그냥 다 뱉어버릴 수 있는 화장실. 그런데 지금 시원해, 이런 건 아니다. 그냥 난 만들어놨고, 관객들은 감흥을 받을지 모르겠지만 난 이걸 가지고 더 많은 고민을 해야 되겠지. 영화적 고민이 아니라 내 삶에 대한 고민을. 가족이나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살 것인가. 그게 <똥파리>이후에 내 고민이 되겠지. 그 고민이 얼추 끝나서 <똥파리>가 정리되고 다시 내 생활을 찾게 되면 그 다음부터 다른 영화를 고민할 수도 있을 거다. 당분간 아무것도 안될 거야. 지금은 그냥 무작정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어야겠지. 내 영화는 순위에서 한참 밑에 있을 거니까 그런 거 개의치 않고 다시 하고 싶을 때 하면 되고. 난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똥파리>를 만든 게 아니라 단지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할 수 있었던 표현의 통로가 영화밖에 없었던 거지. 10년 동안 했던 게 영화니까.
“우물쭈물하는 새끼가 제일 싫어.”라는 대사가 인상적이더라. 내가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다. 내가 너무 선택을 못해왔던 사람이라서 내 스스로를 위해 말하는 거다. 내가 누구를 위해서 이 영화를 만들었어. 관객을 일단 배제해버렸으니 남은 건 나지. 그 다음이 내 주변 친구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 관객들, 이 사회, 순위가 그럴걸. 우물쭈물하면서 살지 말라는 1순위도 나인 거지. 내가 그렇게 살지 못했으니까. 예전에 여자친구 있을 때 어느 술집에서 술을 마실까 선택하지 못하고 40분 동안 끌고 다닌 적이 있었다. 겨울이라 덜덜 떨고 추워죽겠다는데. (웃음) 난 항상 선택이 느리다. 식당에서도 메뉴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사람은 항상 선택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데 선택하지 못하고 중간지점에 머무르곤 하다 보니까 항상 불안하고 어떻게든 해야 되겠다는 압박을 느낀다. 시나리오를 쓰면서도 그런 걸 많이 느꼈다. 만식이를 좋은 놈으로 그릴까, 나쁜 놈으로 그릴까, 고민에 봉착한다. 그걸 한동안 오래 고민하면 답이 안 나와. 짧고 굵게 고민해야 된다. 좋은 놈으로 하자. 그럼 그 순간, 나쁜 놈은 없어지는 거지.
그 전에 “밖에서는 병신 같은 게 집에서는 김일성 같이 굴라 그래.”라는 대사도 기억난다.
원래 정인기 씨가 자기 와이프 때리는 연기하는 장면에서 원래 좀 더 이어지는 다음장면이 있었다. 상훈이가 “밖에서는 병신 같은 게 집에서는 김일성 같이 군다”고, 정인기 씨를 막 때리는데 와이프가 미친 듯이 맞는 남편을 위해서 상훈에게 울면서 그만 하라고 하잖아. 그 다음 장면이 있었어. 상훈이 의도한 건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여자를 구해준 거잖아. 그런데 이상한 거야. 너를 이렇게 폭행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을 내가 이렇게 패주는데 얘는 왜 막지? 그래서 쪼그리고 앉아서 그 여자도 뺨을 막 때리면서, “왜 그렇게 병신같이 사냐? 애들이 불쌍하지도 않아? 용기를 내! 용기를 내라고!” 원래 이렇게 소리지르면서 넘어가거든. 그런데 일단 내 연기가 좀 안 좋아서 잘렸지. 한참 딜레마에 빠져 있던 차라.
용기를 내라는 게 어떤 의미인가?
그건 이 세상에 사는 엄마들한테 하는 소리다. 엄마들은 선택을 못하면서 살아왔고 그 삶이 늪인 줄 알면서도 그 익숙함에 빠져버렸다. 맨날 너희 때문에 도망 못 간다고 핑계대지만 명확하게 생각하면 자식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못나가는 거거든. 물론 그것도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 까닭이지만 분명 선택할 수 못하고 사슬에 묶여있는 거지. 어머니와 대화를 오래해 보시면 알 텐데, 어머니도 자기가 제일 행복해야 한다는 걸 안다. 자식을 위해서 반드시 먼저 살지 않는다. 다만 가족이라는 익숙함에 빠져 있다 보니까 핑계를 대면서 나가지 못하는 거다. 정말 살기 힘들면 나가야지, 이혼해야지. 왜 굳이 붙어있으면서 힘든 상황을 연출하는데. 그래서 상훈이 부르짖는 거지. 용기를 내라고. 그러니까 그 우물쭈물하게 되는 순간에 제일 나약하고, 불쌍하고, 멍청해지는 것 같아. 일단 선택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거든.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 지하도가 있고 지상이 있어. 둘 다 도착해서 만나는 지점은 똑같아. 그런데 어디로 가지, 망설이다 보면 결국 터널과 지상 사이의 돌기둥에 부딪혀서 사고가 나거든. 사실 내 경험담이다. (웃음) 내가 운전한 건 아닌데 한 사람은 지하로 내려가면 된다, 나는 지상으로 가면 된다, 그러고 있으니까 운전자가 어쩔 줄 모르더라. 진짜 부딪힐 뻔 했다니까. 막판에 그 친구가 알아서 꺾더니 가까스로 지하로 갔지. 상훈이 후반부에 선택한 것도 그거겠지. 마지막에 부딪힐 순 없으니까. 일단 내가 죽겠거든. 이제 조금 편해지고 싶은 거지. 막장까지 보고 나니 ‘아, 이제 이렇게 살면 안되겠구나. 좀 더 사람같이 살면 안 될까’라고 생각하겠지.
한강에서 상훈이 연희와 함께 캔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상훈이 자신의 진심을 유일하게 내뱉는 장면이랄까. 연희한테 ‘느그 부모는 잘 사냐?’라고 말하는 거. 은연 중에 비교해보고 싶었던 거겠지. 우리 부모는 이따위로 사니까. 연희 사정을 은연 중에 알 수도 있겠지만 자기가 잘 산다니까 한번 대충 떠보는 거지. 친구들끼리도 우리 집이 거시기할 때, 잘 사냐고 물어보잖아.
“부모한테 잘 해라.” 라는 말이 아이러니하게 들리던데.
지가 그렇게 못 살아왔으니까.
상훈에게 있어서 희망이 되는 대상은 형인이다. 때때로 상훈은 형인이에게 형 같기도 하고, 아버지 같기도 한 모습을 연출한다. 유일하게 자신의 폭력에 대해서 사과하는 대상이기도 하고. 최대한 지켜줘야겠다는 본능이 강해지는 대상이다.
상훈이 선택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처럼 어머니나 아버지도 선택을 못하고 살아왔는데 형인이마저도 선택을 망설이며 살고 있다. “플스(PS) 사줘, 말아?” 물어보면 대답을 못해. 근데 상훈이 가는 건 싫고, 그러면서도 사달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고. 상훈이가 볼 땐 그 모습에서 아마 자기가 느껴졌을 거야. 과거에 동생이 아빠를 말리러 가는 걸 그냥 지켜만 봤잖아. 그때 자기가 말려줬다면 어땠을까 계속 생각하게 되고. 그런 꼴이 보기 싫으면 말리던가, 차라리 집을 나가던가, 뭐라도 선택하면 되는데 그냥 계속 집에서 보고만 있어. 또 그러다 말겠지. 그렇게 우물쭈물하는 순간에 누가 죽어. 영재 뺨을 때리면서 ‘우물쭈물대는 순간에 네 주변에 있는 한 사람 죽어나간다’는 말을 하는 건 자기 마음의 연장이지.
상훈이 영재에게 보내는 감정도 미움은 아닌 느낌이다. 뭔가 자꾸 거칠게 배려하는 것 같다고 할까.
영재는 미워서 때리는 게 아니다. 그런 폭력을 행사하는 건 애를 죽이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거기서 나가고 싶게 만드는 거겠지. 여기로 오지 못하게, 이게 두려운 일이라는 걸 알게끔 하는 상훈의 제스처지. 미워서 때리는 거 같진 않다. 잘 모르겠지만 그런 것 같아.
상훈은 자신에 대한 보호 본능만 남은 존재다. 자신이 배출하는 혐오를 통해서 타인을 단절시키는 방식으로 세상에서 생존한다. 적도 아군도 모조리 패는 사람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연희만큼은 밀어내지 않는다.
비슷한 인간이라고 생각이 되겠지. 혼자 다니는 늑대들은 외롭다. 혼자 먹잇감을 사냥해야 되고 추운 겨울도 혼자 나야 되니까. 이런 놈이 돌아다니다가 같은 늑대를 만나게 된 거야. 얘네 둘은 안 싸워. 왜냐면 비슷하다는 걸 아니까. 그렇게 스쳐 지나갈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어쨌든 뭔지 모르겠지만 자기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거야. 이복누나 같기도 하고, 죽은 여동생 같기도 하고, 형인이 같기도 하고, 왠지 나 같기도 하고. 교복 입은 X만한 고삐리고, 별로 가진 것도 없는 강해 보여. 악은 꽉 차있는데 한쪽은 껍데기가 다 벗겨져서 피가 질질 흘러. 이상하게 설명할 수 없는 끌림이 있는 거지. 그냥 머리로는 설명할 수 없어. 마음으로 느끼는 거지. 나랑 비슷한 건 알아보잖아.
자식들은 자신의 부모를 부정하지만 어느 새 자신의 부모를 닮아간다. 자신이 혐오하는 것들을 부정하면서 어느 새 그와 닮아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똥파리>도 안 닮아가려고 발버둥치는 거는 방법이지. 발버둥이라도 쳐야지. 그래야 변화의 시작점이라도 생기지. 그런데 발버둥을 안 치니까 문제인 거야. 오리도 물에 떠있으려면 발을 굴려야 되는데, 우리는 발짓조차도 안하고 있잖아. 그조차도 하지 않는다면 결국 덮어놓겠다는 거지. 그 밑엔 진짜 징그럽고 무서운 게 있고 그걸 열어보고 소각을 하던, 어디 묻어버리던, 뭐라고 해야 될 텐데 그냥 가려만 놓는 거잖아. 어떤 제스처라도 취해야지. 나는 취한 제스처가 이 <똥파리>지.
상당히 강한 제스처다.
세게 풀지 않으면 똑같이 반복된다. 다시 똑같이 돌아간다. 연기할 때 뺨 때리는 장면 있잖아. 미안해서 대충 때리면 처음부터 다시 찍어야 돼. 한번에 때리라고 하잖아. 내가 뭘 풀어놨는데 대충 하면 다시 처음부터 해야지. 그러니까 세게 한번 내보내는 거지. 왜 우물쭈물해. 그냥 확 저질러버리는 거지. 한번씩은 다 선택하잖아. 그런데 가장 불편한 문제에 대해서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어떤 제스처도 취하지 않아. 삶에 있어서 제일 많은 영향을 끼치는 문제부터 해결해야지. 한국에서 제일 중요한 건 가족이잖아. 그 안에서의 문제를 제일 먼저 고민하고 풀어야 되는데 그걸 놔두고 다른 걸 먼저 하고 있어. 그게 일단 해결이 돼야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자기 삶을 사는 거지. 계속 내 삶이 가족으로 인해 지배당하고 영향력을 받는데 어떻게 다른 삶이 가능해. 나는 이제라도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상훈을 단순히 기능적으로 연기한 건 아닌 거 같다. 본인의 잠재된 진짜 감정을 캐릭터에 쏟아낸 느낌이랄까.
당신도 화가 날 때가 있을 거다. 그리고 다들 여러 개의 본인을 갖고 있지 않을까. 나한테도 증오에 차 있는 양익준이 있고, 사랑 받고 싶은 양익준도 있고, ‘푸르나’를 보고 싶은 양익준이 있기도 하겠지. (웃음) 그렇게 수억만 개의 양익준이 있는 건데 그걸 다른 식으로 이야기하면 감정들이겠지. 양익준이 갖고 있는 감정들. 다만 평상시엔 상훈처럼 살면 안 되잖아. 하지만 그런 표현들을 하고 싶을 때가 분명히 있다. 버스 기사 아저씨가 핸드폰으로 통화하면서 버스 운전하는 걸 보면 상상으로, “날 죽일 셈이야? 이 XX놈아, 전화기 안 꺼!” 이러는데 현실에선 가만히 앉아서 보고 있겠지. 그런데 그 상상은 가짜일까? 그거 진짜잖아. 평상시에 그렇게 발설하지 못할 뿐이지 정말 불쾌할 때, “야, 이 XX!”하고 싶잖아. 그런 진실된 상상을 영화 안에서 뿜어내는 거지.
상훈은 당신이 한번쯤 상상하던 상상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상훈은 당신이 평소에 드러내지 못했던 속내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예전엔 아버지한테 “왜 그랬어!”라고 얘기하고 싶었던 거지. “왜 그랬어요! 왜! 잘할 수도 있었잖아요!” 그런데 잘 하기 힘든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걸 이제야 좀 알게 된 거다. 이 세상이 잘할 수 없게 만들었으니까. 어쨌건 인간한테는 숨구멍이 있어야 된다. 내게는 <똥파리>영화가 숨구멍인 거고, 연기가 숨구멍이었던 거고. 아까 기능적인 연기가 아닌 거 같다는데 나 그렇게 안 한다. 그런 건 할 줄 모른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걸 할 뿐이지. 그래서 배우들에게도 연기에 대해서 어떤 언급도 안 하는 거고.
김꽃비 양에게도 들었지만 디렉팅을 전혀 하지 않았다던데. 왜냐면 내 영향을 주고 싶지 않거든. 그 사람들은 자기네 것을 표현하고 쏟아놓는 사람인데 내가 그 사람들한테 “이렇게 쏟아내 줘.”라고 하면 그 사람들 숨구멍은 어디 있겠어. 누구한테 지시 받는 표현은 재미없지. 만약 그렇다면 나도 영화를 찍을 필요가 없고. 캐스팅할 필요도 없고. 아역배우한테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해달라는 말 절대 안 한다. 알아서 해야지.
예전에 연출했던 중편 <바라만 본다>에서도 연기를 겸했었다. 상훈은 자신이 연기해야 한다고 확신하고 들어간 건가.
<바라만 본다>는 원래 어떤 친구를 캐스팅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워크샵에서 시나리오가 너무 이상하다는 얘기를 듣고 고민하다가 시나리오를 확 바꾸게 됐다. 그때 캐릭터가 변하더라. 그러다 보니까 그 친구에게 이 캐릭터는 좀 아닌 거 같았다. 그런데 주변에서 네 사랑이 투영된 이야기 아니냐고, 네가 해보라고 부추기는 거다. 나도 욕심이 없었던 건 아니었고, 결국 하게 된 거지. 하지만 <똥파리>는 아예 처음부터 작정하고 한 거였다. 하지만 다음엔 모르겠다.
클라이막스에서 약간 헷갈리는 점이 있다. 영재의 우발인지, 만식의 지시인지.
우발이다. 사실 그 부분은 서로 이해도가 조금 부족했던 부분이 있었다. 환이가 많이 연습하는 스타일이었다. 다른 인터뷰에서도 얘기했지만 집에서 너무 많이 고민해오고 그러길래 시나리오 보지 말라고, 시나리오에 빠지지 말라고 했지. 네가 하는 거니까 제발 그 캐릭터에 빠지지 말라고. 너라면 어떻게 할 건지 판단하라고, 네가 겪어왔던 환경이나 감정을 넣으면 된다고. 자꾸 생각을 통해서 제3의 것들을 만들지 말라는 얘기였지. 그게 아니라면 내가 이환을 캐스팅할 필요가 있나. 차라리 사람 죽인 사람을 캐스팅하지. (웃음) 그런데 환이가 연습을 많이 하고, 제가 볼 땐 자꾸 불필요한 것들을 많이 끌어오는 친구였다. 사실 나는 100% 우발을 생각했다. 그냥 휴지 달라고 해서 휴지 꺼내다가 망치를 발견했고, 망치는 자기 고참을 그걸로 때리니까 뺏어서 챙겨온 거뿐인데 그 때 손에 잡힌 거지. 그래서 내가 이걸 챙겨왔나, 멍해진 찰나에 상훈이가 돌아봐. 어떡하지. 아, XX! 이렇게 된 거지. 그런데 거기서 연출의 역량과 배우의 표현력이 관객에게 혼돈을 준 부분이 있다. 그건 인정한다. 좀 더 설명하자면 영재한테도 차곡차곡 쌓인 게 있으니까. 자꾸만 때리면서 우물쭈물하지 말라고 하잖아. 상훈은 얘를 내보내려고 했던 건데 영재한텐 그게 스트레스였던 거지. 사실 영재도 얼마나 불쌍해. 영재가 진짜로 상훈에게 그렇게 하고 싶었겠어. 세상에 부르짖고 싶었던 거겠지. “왜 나를 이따위로 만들었어. 왜 너는 나보고 병신이라고 해. 나를 좀 내버려둬!”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게 자신도 모르게 망치로 표현이 된 거지. 시간이 지나고 자신에 대해서 고민할 시간이 되면 엄청난 후회와 번민이 생길 거다. 누군가를 그렇게 해했다는 것에 대해서. 사람을 죽여서 시원하다고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
만약 영재가 계획적 지시에 따라서 이해하게 된다면 만식을 정말 악역으로 인지하는 셈이다.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전복되고 이야기에 대한 접근까지도 변할 수 있다. 결국 영화적 의도가 완전히 다른 것이 될 수도 있다. 이럴 땐 디렉팅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나.
준비를 많이 해오고 자기에게 확신이 없는 배우가 있다. 환이가 그랬던 부분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변해가고 있기 때문에 아마 다음 작품에서 자기 것들을 많이 보여줄 수 있을 거다. 시행착오의 시기는 누구나 있는 법이다. 그 땐 그 자유로움에 좀 부대껴도 된다. 그리고 어느 정도 넘어가게 되면 대개는 자유로움에 익숙해지거든. 그런데 자유롭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 계속 힘들어지지. 자율성을 줬는데 자유롭지 못하면 어떻게 해. 항상 지시에 의해서 움직이다 보면 오히려 혼란에 빠지기 쉽다.
결말에서 영재를 보면 절망적인데 연희를 보면 한편으로 희망을 놓고 싶지 않다. 어쨌든 영화는 어떤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퀘스천(question), 쩜쩜쩜(…)이다. 나도 잘 모르니까, 나도 그걸 생각하는 과정 중이거든.
결과적으로 어떤 식으로 방향을 설정해선 안 된다고 믿는 것 같기도 하고.
각자 선택하는 거지. 제가 계속 얘기한 것도 선택이잖아. 스스로 결정하고 우물쭈물하지 않으면 돼지. 이 영화가 무슨 답을 줘. 어떤 책이 누구에게 답을 줄 수 있나? 1 더하기 1은 2다. 그런 산수 문제 정도? 도덕 책이 답을 줘? 그렇게 살면 안 된다. 결국 어떻게 살까 제시를 해주는 것뿐이지. 거기서 선택을 해야 되는 거다. 히틀러가 히틀러의 독재를 선택한 것처럼, 양익준은 양익준으로서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생각하다 보니까 <똥파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선택을 한 거고. 어떤 관객은 <똥파리>를 보고 진짜 짜증나서 “집에 가서 아버지한테 XX놈아, 한번 해야겠다.” 싶어서 했더니 의외로 아버지가 “시원하냐? 술이나 한잔 하자.” 그럴 수도 있고. (웃음) 그렇게 각자 선택을 하는 거지. 이 영화에 결말은 없다. 이 세상에 결말이 어디 있어. 내가 80살까지 살다 죽어도, 세상은 계속 돌아가지. 다만 최대한 우리가 고민해서 조금 더 환경이 나아지면 누가 편할까. 본인들이 편하겠지. 그렇게 본인들이 최대한 편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나갔으면 좋겠다는 거지. 우물쭈물하면 장기적으로 힘들어 진다. 그리고 나만 힘드나. 내 주변, 가족, 다 힘들어진다. 누군가는 선택해야지.
이 영화가 99%의 절망으로 가득하지만 1%의 희망이 있다고 생각되는 건 그 부분에 있다. 영화는 어떤 희망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안에서 희망을 만들어야 하는 건 관객이다. 결국 영화 밖에 희망이 있다. 이 영화가 절망으로 가득함에도 일말의 희망을 줄 수 있다고 믿는 건 바로 그런 고민을 부르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마주한 두 손바닥의 간격을 벌리면서) 세상의 규정이 이만큼이라면 언젠가는 이만큼 넓어질 수 있다. 증오가 희망으로 변할 수도 있고, 한 사람의 마음이 백 명을 움직일 수도 있는 거다. 나는 <똥파리>를 만들었고 누군가가 그걸 보고 난 이후에 그게 가능해질지 아무도 모르는 거다.
<똥파리>를 보게 된 어떤 관객 가운데 누군가는 영화 속의 현실을 자신의 체험처럼 간직한 사람도 있지 않을까. 영화를 통해서 자신의 과거나 현실을 목격하게 되는 사람은 어떤 면에서 충격을 얻지 않을까. 사실 내부에서 보는 것보다 외부에서 목격하게 될 때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않나. 그 사람들의 관점에서 <똥파리>가 어떻게 비춰질지 궁금하진 않나.
나도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의 가족 안에서 살아왔다. 7년 반 전까지, 그러니까 20대 후반까지, 상황은 조금 달랐을 지 몰라도 뭐가 얼마나 다르겠어. 단지 내가 지금 얘기를 안 하는 건 이게 개인영화로 비춰지면 안 되기 때문이지. 개인사까지 드러낼 필요는 없잖아. 나는 영화로서 보여줬으니 된 거다. <똥파리>가 거짓말하지 않는 그런 영화로만 비춰지면 되는 거다. 내게는 내 개인의 영화고, 어떤 관객이 보면 그 개인의 영화가 될 수 있는 거고. 다만 그들이 이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고민하고 나는 나대로 상훈이라는 캐릭터를 보면서 반추하기도 하겠지. 나도 어쩌면 저렇게 될 수 있었겠지. 하지만 난 지금 좀 잘 살아오고 있어. 그런데 진짜 그렇게 된 사람들이 상훈을 본다면 그 사람들에게도 뭔가가 오겠지. 그럼 상훈이처럼 다시 새로운 삶을 살아보겠다고 마음먹을 수도 있고. 그런 가능성이 충분히 내포되지 않았을까.
상훈은 대한민국 가족이라는 부조리한 조직에서 잉태된 최악의 괴물이기도 하지만 가장 불운한 피해자이기도 하다. 정도 차가 있을 뿐, 대한민국에서 아들, 딸이라고 불렸던 대다수의 마음 속엔 잠재적으로 상훈이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국에 이런 가족 문화가 60%는 될 거라고, 물론 <똥파리>는 영화인 만큼 특정한 관계의 수위를 더 강하게 묘사했지만 대충이라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 그 정도는 될 거라고 했더니 누가 그러더라. 60%는 개뿔, 100%지! (웃음) 누군지 기억은 안 나는데 나보다 나이가 좀 더 있으신 분이 그러더라.
한국에서 자식으로 살아본 사람치곤 <똥파리>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겠지. 참 이상한 일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똥파리>라는 영화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행복한 사회일까 의문이 든다.
한 70%는 다운시켜야지. 완전히 없어지길 바라지도 않아. 그래서 여전히 엔딩에서 영재는 그런 일을 하는 거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영재도 그런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 각자 그 이후를 살아가면 되는 거지.
오래 전에 했던 짧은 인터뷰를 보니까 <똥파리>이후로 연기와 연출 중 한가지 길을 선택하겠다고 했던데. 그건 그 기사를 쓴 기자 분의 자의적 해석이었다. 그냥 고민을 해보겠다 그랬지. 한번 해서 맛이 들렸는데 연기든 연출이든 그만 두진 않을 거다. 그냥 조금 더 두고 봤으면 좋겠다. 아니면 관심을 끊던가. (웃음) 그냥 내가 살아가면서 결정하면 되는 거니까. 누가 백마디 천마디 하지 않아도 난 이미 내 스스로 결정할 준비가 남들보단 조금 더 돼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똥파리>가 좋다면 <똥파리>를 좋아하면 되지, 나한테까지 좋아한다고 말할 필요는 없는 것처럼.
50개관에서 개봉된다. 어쩌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둘 수도 있다. 만약 그렇게 되면 그만큼의 제약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거 가지고 또 싸워야지. 돈 생기면 이제 지원받지 않고 내가 번 돈으로 영화 찍으면 되잖아. 그래도 모자라면 그때 또 만들었을 전세 빼지. (웃음) 한번 해 봤는데 두세 번 못 하겠어? 한번 해보면 자신감이 붙는다. 나에게 믿음도 생기고. 한 달에 백 만원도 없이 살아본 적도 있는데, 어떻게든 살겠지. (자지러지게 웃음)
<똥파리>는 아버지 세대를 부정하는 영화 같지만 결국 그 본심은 자신의 증오와 그로부터 자행되는 폭력을 극복해야 자신의 삶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다. 결국 그 선택은 각자 자신의 몫이다. 당신도 그런 선택을 통해서 여기까지 왔다. <똥파리>도 그 선택의 일종이었고. 그리고 그 이후로 당신에게 주어진 바가 있을 거다. <똥파리>라는 선택이 당신에게 남긴 건 뭔가?
좀 더 많은 가족과의 대화와 통화? 그리고 내가 자랑스럽다? 이렇게 내가 노출되는 부분에서 오는 장점도 있다. 부모님이 TV를 통해서 내가 여태껏 영화 했던 흔적을 보게 되면서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냐고 안쓰러워해 주시더라. 떨어져 있으니까 그리움을 알게 되는 거지. 같이 살면 그립지 않잖아. 그러니까 함부로 하게 되고. 조금 떨어져 살면 더 좋은 관계가 이뤄진다. 대신 한 달에 한두 번씩 자주 만나면 되잖아. 그 정도면 되지, 아닌가? 부모님 두 분끼리 같이 잘 사시고, 난 내 할일 하면서 여자친구 생기면 같이 잘 살면 되고. 다만 너무 안 찾으면 문제가 되지. 가끔씩 전화도 드리고, 찾아야지. 그렇게 살면 그리움도 적정하게 유지되고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많은 분들 빨리 자립하세요. (웃음)
자립한 1인으로서 자립하는 시기는 언제가 적당하다고 보나?
좀 없을 때 나오는 게 좋을 거 같다. 그래야 세상을 살면서 성장에 필요한 촉진제를 얻을 수 있는 거 같아. 어떤 부모님이 천억을 갖고 있어서 아들이 백억 갖고 나오면 그게 재미있나? 집에서 사는 거나 거기서 사는 거나. 한 천억 가지고 있으면 집이 한 천 평 되려나? 그럼 같이 살아도 되겠네. 저 멀리서. (웃음) 약간 모자라고 약간이나마 뭔가 하고 싶은 게 있을 때 자립하는 게 제일 좋을 거 같다. 그런 과정이 있어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과 탄력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자신만의 ‘비타민C’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어쨌든 영화는 어떤 직접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일단 당신이 원한 건 구체적인 대안에 접근하는 건 아니었던 것 같다.
<똥파리>가 무슨 답을 내리는 영화는 아니다. “이걸 이렇게 해라”라고 하는 건 골 빈 선생님이 하는 짓이지. 그림에 소질이 있는 친구에게, “너 그림에 소질이 있는 거 같은데 한번 배워보는 게 어때?”라고 제시할 순 있다. 그런데 주변에서, “배워, 그림 해! 너는 그림 해야 돼.”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할 필요가 있나. 가능성에 대해서 제시해주는 게 제일 좋지 않을까. 대신 희망을 줘야지. 사람이 잘한다 그러면 진짜 잘한다니까. 그런데 못한다 그러면 진짜 못해. “너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그러면 자기가 정말 괜찮은 사람인지, 사랑 받아도 되는 사람인지 고민을 한다니까. 그런데 “너 정말 X같이 생겼다. 너 정말 애가 왜 그러냐?” 그러면 정말 그 말에 빠져서 그렇게 된다니까. 희망을 줘야지, 사람한테. 이 세상도 X같은데, 니기미. (웃음)
정제되지 않은 육두문자와 거침없는 구타는 스크린 너머의 세상을 온전히 타자화시킬 것 같지만 실상 그곳은 그래서 현실적이다. 가난 앞에 무기력한 수컷들은 가족들에게 무차별적인 증오를 휘두르고 가족은 점차 부서져 나간다. 상훈(양익준)은 그 증오를 먹고 자란 짐승이다. 분노와 증오를 되새김질하며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주먹을 날리고 욕을 던진다. 욕을 빌리지 않고서야 진심을 표현할 수도 없는 상훈은 폭력이 잉태한 사생아처럼 살아간다. 오로지 주먹질을 통해서 삶의 시효를 연장해나갈 뿐 스스로의 삶을 위한 배려 따윈 없다. 증오와 분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허우적거리기보단 더욱 깊숙이 내려앉아 독을 품는다. 배다른 혈육에게 마음을 쓰면서도 스스로를 저주하듯 살아간다.
상훈에게 있어서 폭력이란 유일하게 삶을 작동시키는 방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폭력을 증오하기 때문에 폭력을 휘두르며 살아간다. 그의 삶 자체가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다. 목을 조르고 손목을 긋고 싶은 혈연의 증거다. 손목의 핏줄을 잘라서 모두 쏟아버리고 싶은 혈연이라는 원한이 그의 몸 속을 돌고 돈다. <똥파리>는 모든 이의 혐오를 살만한 존재의 외피를 넘어 내면을 추적하고 관찰하는 영화다. 그 안엔 어떠한 위로나 염원이 없다. 그저 최대한 진심에 접근해갈 뿐이다. 상훈의 진심을 추적하는 과정은 사회에 만연한 폭력의 뿌리를 추적해가는 것과 같다.
사회적으로 도태되고 경제적으로 몰락한 수컷들은 응어리진 증오와 분노를 자신의 보금자리에 배출한다. 집안에서 폭군처럼 굴며 주변에 자리한 구성원의 모든 것을 흔들고 부순다. 그 폭력의 중심에서 자라난 또 다른 수컷들은 그 삶을 증오하는 방식으로 또 한번 폭력을 재생산하고 잠재적인 잉태를 부른다. 결국 맞는 자도, 때린 자도 하나같이 만신창이가 된다. 그의 삶이 걸쳐있는 영역 전체가 너덜너덜하다. 그럼에도 나름의 방식을 통해 삶은 지속된다. 연희(김꽃비)는 유일하게 상훈이 휘두르는 폭력을 온전히 체감하면서도 그에 굴하지 않는 인물이다. 상훈이 연희에게 마음을 여는 것도 이런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연희와 상훈은 서로에게 있어서 출구와 같다. 아버지와 남동생 영재(이환)와 함께 살아가는 연희는 가족이라는 폭력에 고립된 신세다. 상훈은 해소되지 못하는 폭력의 징후에 감금되어 지독한 증오를 통해 삶을 지탱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처지를 통해 자신을 보고 연민을 느낀다.
빈정거리는 욕설로 이뤄지는 대사는 때때로 농담과 같은 언어적 유희가 되어 관객의 웃음을 야기시키지만 이를 담보로 거리감을 좁힌 관객을 곧바로 살벌한 폭력의 현장에 방치해버린다. 어떤 이는 그 폭력 앞에서 생소함을 느끼고 겁에 질려 주저앉을 것이다. 어떤 이는 그 폭력 앞에서 지독한 기시감을 느끼고 뺨을 얻어맞은 채 눈을 부릅뜰 것이다. <똥파리>는 그 어느 쪽에게도 관대하지 않은 영화다. 주저 않은 쪽도, 뺨을 얻어맞은 쪽도 하나같이 두려움을 감내해야 한다. 그 폭력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통증을 공유해야 한다. 그 과정은 실로 절망적이다. 때때로 어떤 가능성을 품어보기도 하지만 결국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수 없다. 단지 그 안에서 가장 지독한 폭력을 구사하던 대상이 몰락하는 방식이 발견될 뿐이다. 폭력을 구사하던 육신의 주체가 만신창이가 되어 사라질 뿐, 폭력은 계승되고 유지된다.
<똥파리>는 99%의 절망으로 채워진 영화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래서 <똥파리>는 희망적인 영화다. 절망을 관통하기 때문에 희망적이다. 슬픔에서 비롯된 연민을 부를지언정 스스로 희망을 연출하지 않는다. 역설적이지만 그것이 이 영화의 유일한 1% 희망이다. 그 절망을 목도하는 자들은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유전되고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면 99%의 절망과 1%의 희망은 역전될 수 있다. 그 1%의 희망이 가능할 때 <똥파리>는 완전한 100%의 절망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 단지 전세대의 폭력을 증오하는 것으로, 혹은 부정하는 방식으로서 단절하는 것으로선 그 부조리를 끊을 수 없다.
스스로가 변해야 한다. 그 폭력의 기저를 살피고 자신을 돌봐야 한다. 자신이 부정하던 방식으로 스스로를 몰락시켜선 안 된다. <똥파리>를 하이퍼 리얼리즘 영화로 둔갑시키는 이 세태를 고민해야 한다. 가난을 비극으로 치환하고 가정을 폭력의 도가니로 변질시키는 건 그저 아버지가 무능해서가 아니다. 증오를 통해선 그 현실을 바꿀 수 없다. 그저 증오를 배출하는 혐오의 덩어리로 몰락할 뿐이다. 실상 가장 큰 비극은 그것이 영화 밖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크고 작은 부조리 속에서 가족은 살아간다. 그 안에 ‘똥파리’들이 자라나자신만의 폭력을 합리화한다. 그 사슬을 끊어야 한다. 실상 자신이 폭력의 온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걸 알았을 때 세상은 변한다. 스스로가 변해야 세상도 변한다.
어떤 이는 그 폭력 앞에서 생소함을 느끼고 겁에 질려 주저앉을 것이다. 어떤 이는 그 폭력 앞에서 멱살을 잡힌 채 뺨을 얻어맞으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똥파리>는 그 어느 쪽에게도 관대하지 않은 영화다. 주저 않은 쪽도, 멀쩡하게 일어서서 눈감지 못하는 쪽도 하나같이 폭력을 감내해야 한다. 정제되지 않은 육두문자와 거침없는 구타는 스크린 너머의 세상을 온전히 타자화시킬 것 같지만 실상 어느 곳보다도 현실적인 풍경이다. 가난 앞에 무기력한 수컷들이 무차별적인 증오를 휘두르는 사이 점차 부서지고 파편화되는 가족들의 모습은 지독하게 낯익은 풍경이다. 지독한 폭력에 노출된 가족은 헤어날 수 없는 부조리의 자궁에서 또 다른 증오를 잉태한 채 자라고 엉킨다.
<똥파리>는 99%의 절망으로 채워진 광경이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래서 희망적이다. 슬픔에서 비롯된 연민을 부를지언정 스스로 희망을 연출하지 않는다. 절망을 관통하고 멈춰선 채 응시한다. 통증을 각성시키고 폭력을 환기시킴으로써 파묻어 부정하던 폐부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도록 유도한다. 따뜻한 위안이기 보단 거친 윽박을 지른다. 당황스럽겠지만 객석에서 일어날 때 즈음엔 진통과 함께 밀려드는 일말의 가능성을 품고 구상해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그것이 이 영화의 유일한 1%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 절망을 목도하는 자들은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유전되고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면 99%의 절망과 1%의 희망은 역전될 수 있다. 그 1%의 희망은 결국 영화 밖에 있다. 똥파리는 죽어도 세상은 여전히 똥 무더기다. 혐오의 대상이 사라져도 혐오의 세계는 남는다. 그걸 걷어내야 한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건 영화가 아닌 관객이다. 바로 당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