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body Knows
이미숙이 배우라는 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어쩌면 이미숙이란 배우를 아무도 모른다. 배우이기에 그녀는 살아왔고 살아갈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그녀 스스로를 위해서.
<최고다 이순신> 1회 시청률이 20%를 넘겼다.
내 복이지, 뭐(웃음).
<최고다 이순신> 1화에 송미령이 자신의 오래된 출연작을 보는 장면이 있다. 자세히 보니까 <겨울 나그네>(1986)던데, 얼마 만에 본 건가?
그 영화가 한 27년 됐지? 사실 내 작품을 다시 볼 일이 없지. 새롭더라. 문제는 그 세월이 실감나지 않는다는 거야. 그저 엊그제 같다. 지금도 그런 감정으로 연기해보고 싶지만 들어오는 건 엄마 역할밖에 없으니까 새삼 현실적인 비애가 느껴졌다.
이젠 특별히 하고 싶은 캐릭터도 없을 것 같다.
맞다. 내게 맡긴 역할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난 사전에 감독이나 작가와 상의하면서 그들과 생각을 조율한다. 이미숙이라면 이 정도는 해줄 거라 생각하는 사람과 작업하면 오히려 내가 나한테 갇히니까 손해다. 내 운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내게 있는 거지.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의 ‘들자’는 각박한 캐릭터인데 밉지 않더라.
항상 강하고 억센 캐릭터에겐 해학이 보여야 미워 보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삶은 해학이다. 삶의 코드는 유머라고. 힘든 일을 하다가도 누군가의 한 마디에 킥하고 웃어넘길 수 있는 것처럼. 억척스런 캐릭터에게 유머가 보이지 않으면 너무 뵈기 싫을 거다. 그래서 들자처럼 억척스러운 엄마 역시 나름의 행복을 느끼는 부분이 있을 테고, 그 캐릭터 안에서 웃음을 발휘할 수 있는 게 과연 뭘까 고민했다.
완벽주의자인가?
완벽한 사람은 없다. 완벽하지 못하니까 완벽해지려고 노력하는 거다. 죽을 때까지 연기해도 완벽이란 건 없을 거다. 그래서 노력하는 거고.
그런 사람이 결국 조직에서 악역을 도맡더라.
살다 보면 인내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지만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형평성이 어긋나는 건 누군가 잡아줘야 된다. 결국 강한 사람이 잡아주고 어떤 체계나 선례를 만들어나가야지. 그냥 한번 하고 마는 건데, 이렇게 생각한다면 무책임한 거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일만 한다면 그런 상황을 또 만들 수 있다는 거고. 난 그런 상황에서 일하는 방법을 모른다. 할 건 하는 거다. 그건 성질의 문제가 아니잖아.
연기한 걸 후회한적 없나.
후회해본 적 없다. 열심히 연기했고, 연기를 위해서 나름 많은 희생을 치렀다. 배우로서 한 점 부끄럼이 없다. 다만 배우로 살아온 한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해선 회의가 있지. 하지만 그 회의감이 연기에 대한 마음을 이기진 못하는 거 같다. 다시 태어나도 배우를 할 거냐고 물어보면 그렇다.
운명적이란 말인가.
연기하길 정말 잘했다. 연기하는 순간 모든 고통과 아픔을 잊어버린다. 그런데 배우가 직업인가? 내겐 그렇지 않은 거 같다. 직업이란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데, 그런 논리로 연기하진 않았다. 30년 넘게 연기했지만 많은 자산을 축적하지도 못했고, 작품을 많이 한 편도 아니다. 그저 캐릭터의 삶이 나를 통해서 어떻게 투시될까 생각만 했다. 그냥 지금의 내가 연기하는 지금의 캐릭터가 중요하다는 거지.
연기하는 캐릭터마저도 당신의 인생이란 말인가.
그렇다.
배우로서 송미령이란 배우를 연기하는 건 어떤가.
흥미로운 부분이다. 사실 송미령의 아웃라인에 대한 소스는 지금의 내게서 얻어낸 부분이 있다. 50대임에도 잘 나가는, 워너비가 될 수 있는 배우.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지만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사건은 달라지겠지. 송미령의 심각함 속에도 부드러운 감정이 있을 거다. 그 지점을 고민하고 있다.
송미령은 배우로서 신뢰해왔던 매니저와 갈등을 겪고 실망하기 시작한다. 사람에게 실망한 경험 없었나.
연예인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섞이지 않는 부류다. 이 사람들의 세계가 그만큼 단순하다. 어떤 상황에 대한 판단이 단순하고, 이성적이지 못하지. 그런 배우와 가장 근접한 건 매니저 같은 사람들인데 매니저는 이득을 위해서 일을 취해야 하는 사람들이고, 배우는 그들에 의해서 움직여야 되는 사람이다. 그런 관계에서 갑자기 신뢰하던 사람이 돌변하면 대처하는 능력은 배우가 월등히 떨어진다. 그것까지 그 사람들이 해줬으니까.
사실 송미령이란 캐릭터가 최근에 좀 시끄러웠던 송사를 연상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캐릭터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놀랍더라.
피할 이유는 없잖아.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빌미를 줄 수도 있다.
내가 살아온 삶이 지금의 결과다. 지금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내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법이란 건 지금까지의 경험과 다른 세계더라. 나는 지금까지 감성적으로, 인간적인 관계로 움직이는 세상에서 살았는데 법이란 종이 한 장 차이로 움직인다. 사실 법을 몰라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법을 들이미니까 당황스럽더라. 결국 내 자신의 떳떳함을 읽어주는 건 대중이다. 물론 대중들은 진위와 무관하게 자극적인 말을 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 사생활이 어떻든 간에 내가 배우로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정확하게 보는 인식은 있단 말이다.
배우로서 충실히 살아왔다는 자신감 덕분인가.
배우니까 기본적으로 연기를 잘해야 되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된다. 사실 배우의 사생활을 평가하거나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미는 건 대중의 역할이 아니다. 그건 내가 할 일이고, 내 주변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내가 말미를 주니까 허를 찔리는 거다. 결국 배우로서의 평가가 중요한 거다. 그런 자신감을 얻을 수준이 되지 않는 배우에게 사람들은 간섭하거나 참견하고 방향까지 제시하려 든다. 결국 중요한 건 행하는 사람의 정체성이 가장 정확하게 있느냐는 거지.
<미라클 코리아>의 MC를 맡았다. 연기 외의 방송활동도 늘어난 것 같다.
세상에 공짜는 없더라. 방에서 TV로 볼 땐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어느 분야든 그만의 고통이 있다. 물론 힘들지 않으면 일이 아니겠지.
<기적의 오디션>에서 탈락자를 발표하고 눈물 흘리는 장면에서 이미숙이란 사람을 잘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누군가를 심사한다는 건 이성적인 일인데 나는 너무 감성에 치우진 사람이더라. 조직의 인사개편엔 미흡한 사람이겠구나 생각했다(웃음). 이런 취약점이 있다는 걸 <기적의 오디션>으로 느꼈다. 능력은 없었어도 내 감정만큼은 진짜였다.
사람들이 말하는 이미숙이 자신과 다르다고 느낀 적 없나.
아마 사람들은 이미숙이라면 세고, 냉정하고, 어렵고, 무섭고, 뭐 이런 수식어들을 생각하지 않을까. 사실 일적으론 그렇다. 나는 프로니까 받은 만큼 해내야 하고, 더 받기 위해서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정에 약하고 감정적인 경우가 많다.
사실 50세를 넘긴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늙어가는 건 피해갈 수 없을 거다. 그만큼 맡을 수 있는 배역의 가짓수도 줄어들 거다.
순응해야지. 발버둥치며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면 역효과가 일어난다. 나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고. 살짝 발상의 전환이 이뤄지면 되는데 사실 그렇기가 조금 힘들더라. 나도 그로부터 편해진 건 불과 2~3년 정도 밖에 안됐다. 그렇다고 나를 놓는다는 게 아니다. 받아들인다는 거지. 그러니까 방법이 생기더라. 내가 해야 할 일이 나타난다. 그래서 지금은 편하다. 다만 배우로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된다는 건 숙제 같다. 어쨌든 생을 마감할 때까지 배우로서 잘할 자신이 있다. 열심히 살아가면 되니까, 정말 그렇게 살 자신 있다.
(ELLE KOREA 4월호 No.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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