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빈'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0.08.02 <아저씨>그 남자, 거침없다.
  2. 2010.07.28 <아저씨> 단평
  3. 2009.06.01 김혜자 인터뷰 2
  4. 2009.05.23 <마더>어미라는 지독한 십자가 2
  5. 2009.05.21 <마더> 단평
  6. 2008.05.31 봉준호 감독 인터뷰

어두운 전당포에 박힌 채 사는 탓에전당포 귀신이란 별명을 얻었다는 그 사내는 말수도, 표정도 없다. 좀처럼 과거를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전당포 주인 사내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은 일면식 없는 남자에게 붙이기 쉬운아저씨라는 호칭으로 적당한 거리감을 둔 채 접근할 뿐이다. 하지만 그 호칭의 거리감을 쉽게 무시하는 유일한 상대가 있다. 술집에서 댄서로 일하는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소미(김새론)는 네일 아티스트로 일하겠다는 야무진 포부를 갖고 살아가는 씩씩한 소녀다. 소미만이 아저씨라 불리는 그 사내, 태식(원빈)의 전당포로 들어설 수 있다. 매일 같이 전당포를 찾아오는 소미는 태식의 말벗이 되고 자신의 외로움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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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단평

cinemania 2010. 7. 28. 03:24

폭력적인 환경에 노출된 소녀와 유일하게 소녀에게 위안이 되는 정체불명의 사내. <아저씨>는 홍콩 느와르의 분위기로 연출된 <레옹>처럼 보인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사내에게 만만한 호칭이 아저씨인 탓에 아저씨라 불리는 사내의 불분명한 정체성은 <아저씨>에서 스토리텔링의 탄력을 이루는 동시에 느와르적인 관성을 매력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자질이 된다. <열혈남아>를 통해 가족애를 비정한 느와르적 자질로 연동하던 이정범 감독은 <아저씨>를 통해 보다 직접적인 느와르적인 감각을 뽐낸다. 특히 효율적인 속도감을 자랑하는 동시에 멋에 치중한 장식이 아니라 생사가 결정되는 찰나의 긴박감이 냉소적으로 표현된 액션신이 인상적이다. 지독하게 진지한 대사 덕분에 오글거림의 역효과가 발견되는 몇몇 찰나만 제외하면 원빈은 <아저씨>가 마련한,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비정한 세계 속에서 완벽하게 빛나는 동시에 어두운, 이상적인 그림이다. 그 그림에 감정을 불어넣는 김새론의 연기도 훌륭하며 그 그림의 선한 명도를 밝히는 보색의 악역과도 같은 조연들의 공헌도도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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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자 인터뷰

interview 2009. 6. 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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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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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한 멜로디가 선명한 음악과 절묘하게 연동되는 김혜자의 춤사위를 담은 오프닝 시퀀스는 단연 압도적이다. 절망과 안도가 체증처럼 내려앉은 얼굴에선 공유될 수 없을 것 같은 감정의 극단적 너비가 고스란히 발견된다. 휘청거리듯 흐느적거리다 살풀이하듯 리듬을 타며 몸을 들썩이는 팔은 축 져진 듯 늘어지면서도 강약을 맞춘다. 형언할 수 없는 표정과 심정을 유추할 수 없게 중의적인 동작으로 절묘하게 음악과 어울리며 몸을 흔드는 김혜자의 모습은 당혹스럽지만 고요하다. 마치 작은 파문이 일어나기 전의 잔잔한 수면처럼 쨍하고 깨질 것만 같은 아슬아슬함이 위태롭게 감정을 동요시킨다. 강렬하면서도 모호한 오프닝 시퀀스는 정서적인 진동을 도모함으로써 뒤따를 이야기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키고 긴장과 평온의 중의적 상태 가운데서 몰입을 도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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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단평

cinemania 2009. 5. 21. 01:57

지금 벌써부터 <마더>를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반전, 반전, 하게 되는데 그 반전이라는 용어의 쓰임새가 이 영화의 결말을 정의하기 좋은 형태인지 의심스럽다. <마더>의 결말이 놀라운 건 사실이나 그게 극적으로 지속되는 분위기의 예상치를 배반하는 형태의 반전이라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 이건 말 그대로 의심되는 문제의 객관식 보기 가운데 가장 정답에 먼 형태라고 생각했던 것이 정답이라는 것을 확인했을 때만큼이나 놀라운 결과일 뿐이다. 그러니 반전에 목매지 말 것. 물론 결말에 대해선 최대한 눈 감고, 귀 막아라. 모르고 볼수록 온전히 재미를 체감할 가능성이 크므로. 물론 입도 닥쳐주는 센스는 잊지 마시고. 너만 재미있게 본다고 장땡은 아니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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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영화가 많을 텐데, 인터뷰까지 하느라 바쁘시겠군요.
영화들이 계속 있지만, 그 사이마다 하면 될 것 같아요. 어차피 영화는 계속 봐야 하는 거니까.

오늘도 봤을 텐데.
매일 두어 편씩 보고 있죠.

심사위원으로서 영화를 바라보게 될 때, 평소에 영화를 보는 시선과 차이가 발생하는 측면이 있을까요?
영화를 평가함에 있어서 채점을 한다라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저도 별로 좋아하는 일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그 이전에 관객으로서 영화를 본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죠. 미장센 영화제 당시 모토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심사기준? 우리 그런 거 없고, 자기 꼴리는 대로 가면 된다.(웃음) 이거였는데, 지금도 그런 기준을 마음 속으로 변함없이 갖고 있어요. 물론 공식적으로 오피셜(official)한 척하기 위한 심사기준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인엣지(inside edge), 아웃엣지(outside edge) 가지고 채점하는 피겨스케이트 심사위원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제 심사위원에게 객관성이란 건 사실 존재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죠. 그래서 제 자신을 영화적으로 가장 새롭고 참신한 느낌으로 흥분시키는 작품들을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심사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다면 감독님을 흥분시키는 영화란 주로 어떤 영화인가요?
되게 사소해도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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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합니다.
전 이상하게 주인공이건 누구건 어떤 인물이 길이든 어디를 뛰어가면 왠지 이상하게 가슴이 막 뛴다고 할까요. 사람이 막 뛰어가면 카메라가 또 따라가겠죠. 뛰어가는 사람을 찍으려면 어쩔 수 없이 따라갈 테니까. 어쨌든 영화의 스토리나 앞뒤 맥락을 떠나서 그런 장면을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벌렁벌렁하면서, 그 영화가 좋아져요.(웃음) 예를 들면 트뤼포의 유명한 <400번의 구타>에서도 보면 고요하게 달리는 장면이 길게 나오잖아요. 그거 봐도 마음이 되게 이상하고, 어제 또 호텔 로비에서 보니까 전주영화제 게스트인 드니 라방이 도착했더군요. 차에서 내리는 걸 봤는데, 그 양반이 옛날에 출연했던 레오 까락스의 <나쁜 피>를 보면 엄청난 달리기 장면이 있잖아요. 컬러풀한 펜스 옆으로 막 지나가는, 그 때 아마 데이빗 보위(David Bowie) 음악이 나왔던 거 같은데 그 장면도 추억처럼 이렇게 떠오르네요. (뛰는 장면들이) 이상하게 저를 흥분케 하는 그런 게 있는 거 같아요. 제가 찍었던 영화에도 대부분 뛰는 장면들이 있기도 했고.

달린다는 이미지가 감독님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나 봅니다.
모르겠어요. 스트레스 해소가 잘 안 돼서 그러나.(웃음) 사실 저는 잘 뛰지 않거든요. 평소에 운동도 잘 안하고 뛸 일도 별로 없는데, 그래서 왠지 마음만이라도 뛰고 싶나 봐요. 지금 경쟁작 12편을 다 봐야 되는데 그 중 네 편을 봤거든요. 그런데 그 중에 세편에 뛰는 장면들이 있었고, 그 중에 한 편은 특히 아름다운 뛰는 장면이 있었어요. 심사 중이니까 (작품명을) 말씀드릴 수 없지만, 그래서 그 영화의 그 장면이 지금 머리에 되게 아른아른 거리네요.

아까 말했던 드니 라방은 레오 까락스 감독님의 작품에 상당히 많이 출연했었죠.
(레오 까락스의) 페르소나죠. 이번에 <도쿄!>옴니버스에서도 또 주인공을 했어요. 드니 라방이.

레오 까락스 감독 작품에 말씀이시죠. 이번에 <도쿄!>덕분에 레오 까락스 감독님도 만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도쿄!>옴니버스를 찍을 때, 감독들 세 명의 스케줄이 다 달랐어요. 제가 제일 먼저 여름에 찍었고, 가을 겨울에 미쉘 공드리랑 레오 까락스가 각각 찍어서 도쿄에서 같이 촬영이 겹친 적은 없었죠. 그런데 홍보용 사진 찍는다고 해서 세 명의 감독이 딱 하루 모인 적이 있었어요. 스케줄이 아슬아슬하게 맞아서 간신히 성사된 건데 그 때 잠깐 봤어요. 말이 되게 없으시더라고요. 공드리는 되게 수다쟁이고, 덕분에 저랑 이야기도 많이 했고요.

사실 감독님을 포함해서 나머지 두 감독님의 영화적 면모를 생각해보자면 세 분의 조합으로 이뤄진 <도쿄!>라는 작품의 이미지를 상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엄청 다 제 각각일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게 옴니버스의 재미 아닐까요? 세 명이 세 파트로 갔는데 비슷하면 좀…그리고 이제 각자 개성이 강하고 다른데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면 묘한 공통점이 있다거나 이런 옴니버스가 베스트일 거 같아요. 그런데 사실 저도 지금은 잘 몰라요. 다른 두 분이 어떻게 찍었는지 시나리오조차 못 봤기 때문에. 이번에 칸 영화제에 가야 저도 이제 볼 테니까요. 그래서인지 제 영화의 프리미어인데도, 남의 영화를 보러 가는 듯하군요. 옴니버스라는 게 기분이 묘하네요. 다른 사람 파트는 못 봤기 때문에, 공드리나 레오가 또 어떻게 했을지.

이번에 <도쿄!>에서 감독님께서 만드신 <흔들리는 도쿄>의 캐스팅도 인상적입니다. 아오이 유우와 카가와 테루유키를 함께 캐스팅한다는 게 만만한 일도 아니었을 것 같고요.
운이 좋았죠. 둘 다 일본에서 정말 엄청나게 바쁘더라고요.(웃음) 사실 근데 이 프로젝트를 하자고 제안이 들어와서 수락한 처음부터 카가와 테루유키는 이미 머리 속에 있었어요. 히끼꼬모리를 주인공으로 한 얘기란 점에서도. 카가와 작품을 예전에도 몇 번 봤지만 칸 감독주간에서 봤던 <유레루>가 결정적이었죠. 2006년에 <괴물>로 칸 감독주간 갔을 때, 같은 섹션에 <유레루>가 있었거든요. 그리고 <유레루>감독인 니시카와 미와를 제가 알고 있었어요. 2003~4년경에 일본의 한 영화제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유레루> 이전에 찍었던 작품들도 굉장히 잘 찍었었어요. 데뷔작인 <산딸기>도 성찰적이면서도 좋았고요. 그래서 <유레루>를 기대했었는데 보고 나니 영화도 물론 좋았지만 카가와 테루유키한테 아주 반했죠. 그래서 <흔들리는 도쿄> 처음 준비할 때부터 카가와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는데 (캐스팅이) 잘 됐어요. 아오이 유우는 저뿐 아니라 어떤 감독들이나 일해보고 싶은 매력적인 여배우인데 사실 반신반의했었어요. 과연 될까 싶어서. 스케줄을 이미 카가와 테루유키에게 맞춰놓은 상태에서 (아오이 유우의) 캐스팅에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이게 안 될 수도 있겠다, 싶었죠. 카가와 테루유키도 거의 1년 스케줄이 다 나와있는 상태에서 비어있는 블록을 잡아 촬영일자를 잡은 건데, 거기에 또 아오이 유우를 맞춰야 되니까. 게다가 사실 아오이 유우는 더 바쁜 사람이고. 근데 아오이 유우 쪽을 처음 만났을 때, 아오이 유우 측에서, <살인의 추억>을 일본 개봉 당시 봤고 너무 좋아한다. 작품은 꼭 하고 싶다. 근데 스케줄이 조금 복잡하게 됐다, 그래서 한번 성사가 안됐었어요. 그래서 몇 달 지나고, 다른 여배우를 누구로 가야 하나 이렇게 찾아보고 있는 단계에서 다시 연락이 왔어요. 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우훗!’ 쾌재를 불렀어요.(웃음) 제가 원하던 대로 돼서 기뻤죠. 그리고 다케나카 나오토라고, 경력이 더 오래됐지만 일본의 오달수 씨라고 할까요. <쉘 위 댄스>에서 열연을 펼치시기도 했죠. 감독이시기도 하고. 아무튼 그 분께도 말씀 드려봤는데, 그분께서는 한국영화 팬이셨어요. 김기덕 감독님 영화도 좋아하시고, 제 영화도 세 편 다 보셨고 좋아하신다고, 한국영화를 해보고 싶었다면서 흔쾌히 수락하셨죠. 그래서 세 명의 배우가 전부다 바쁜 사람들인데 캐스팅하게 됐어요. 다 잘 돼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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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도쿄> 中 아오이 유우와 카가와 테루유키

<도쿄!>는 감독님께서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 찍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사실 로케이션의 문제보다도 언어가 관건이었죠. 영화의 대사가 일본어라서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디렉팅을 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궁금했어요. 통역이 있긴 하지만 잘 할 수 있을까, 약간 무섭기도 하고. 하지만 결국 좋은 경험이 됐어요. 재미도 있었고. 외국어로 연출할 수 있겠구나, 이게 이번에 제 개인적으론 가장 큰 수확이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연재미 씨라고, 이제 뛰어난 통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감정, 배우의 감정이 말로서 표현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 느낌이나 뉘앙스라는 만국공용어가 존재하구나, 라는 걸 느꼈어요. 자기의 슬픔을 일본말로 표현하건, 불어로 표현하건, 영어로 표현하건, 한국말로 표현하건 그건 결국 슬픔이 되더라고요. 그걸 깨닫게 되니까 어느 순간 되게 수월해졌어요. 비록 낱말들은 못 알아듣지만 배우가 대사를 할 때, 이건 NG다, OK다, 라는 것에 대해서 나중에 점점 느낌이 쉽게 왔고, 배우들도 저와 의사 소통하면서 마음이 잘 통하는지 제 결정에 따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본질적으로 같은 거라는 걸 알았다는 게 큰 수확이었어요.

시스템의 차이도 많이 느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일본은 타이트하죠. 한국은 보통 장편영화를 3~4개월 안에 찍는데, 일본은 한달 반에서 두 달, 대작이라 해도 2달 반 정도에 끝내죠. 스케줄이 되게 빡빡하고, 빨리 끝내는 편이에요. 대신 프리프로덕션(pre-production)부터 치밀하게 준비하는 타입이고, 촬영 중간에 좀처럼 쉬질 않아요. 일주일에 6일이건, 7일이건 쉬는 날 없이 막 가요. 스텝들이 월급제 계약식이라서 제작비 측면에서 촬영 기간에 민감하기 때문에. 사실 한국도 이제 작년에 단체협약이 성사되고 나서 그런 시스템으로 바뀌어가고 있죠. 한국도 아마 미래에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다 장단점이 있겠고요. 일본 스텝들의 직업적인 숙련도나 집중력은 되게 뛰어났어요. 하드 하게 단련이 잘 된 덕분인지. 저보다도 나이가 많은 40대 중반의 직업 조감독과 일을 했었는데, 작품 경험한 숫자도 어마어마하게 많고, 그래서 조감독에 대해 다른 스텝들의 리스펙트(respect)나 권위도 장난이 아니었죠. 그 조감독도 그에 걸맞게 책임감이 강하더군요. 이 현장을 자기가 진행시킨다는 것에 대한 의무감이 강하고, 그만큼 아주 정교하게 시간단위로 스케줄을 짜고. 대신 약간 답답한 면이 있어요. 우리나라 같으면 쉽게 돌파할 수 있을 일인데 왜 저렇게 걱정을 할까 싶은 것들. 같은 일을 되게 어렵게 한다고 할까요. 좋게 말하면 돌다리도 두들겨본다, 고 말할 수 있지만 우리 입장에서 보기엔 왜 저런 걸로 에너지를 낭비할까, 싶은 소심해 보이는 측면이기도 하죠. 각각 장단점이 있는 거 같아요.

모든 상황에 대해서 세세하게 짚고 나가는 편인가 봅니다.
아주, 매우 그래요. 그래서 믿음직스럽고 안정감은 있는데, 만약 얘네들이 내가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바꾸거나 급격하게 변화를 줄 때 어떻게 반응할까, 라는 궁금증이 생기더군요.

특히 한국 현장에서는 그런 변동성이 비일비재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감독이 순간적으로 생각이 바뀐다던가. 그리고 그런 걸 순발력 있게, 탄력 있게 따라오는 게 한국 스텝들의 힘이죠. 사실 일본에서 제가 갑작스럽게 테스트를 몇 번 해본 적이 있긴 있어요.(웃음) 저는 제가 직접 콘티를 세밀하게 그려서 제시하는 편인데 스토리보드가 그렇게 있으니까 일본 스텝들도 좋아하더라고요. 그런데 몇몇 순간에 갑작스럽게 변화를 주면서 어떻게 되나 한번 살펴봤죠. 나름 잘 따라오려고 하더라고요.

시장조사를 했다고 봐도 되겠네요.(웃음) 방금 말씀하신 대로 감독님은 콘티를 상당히 디테일하게 그리기로 소문났던데, 아무래도 완벽하게 이미지 구상을 마친 뒤에 카메라로 그것을 완전히 재현하고 싶어하는 까닭이 아닌가 싶습니다.
공간이나 카메라 워크, 카메라의 위치나 프레임들, 이런 건 실제로 미리 세밀하게 준비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러니까 완전히 정해진 촬영장소에서 제대로 관찰한 후에, 콘티를 그리죠. 머릿속으로만 담아두는 게 아니라 정말 실질적인 콘티를 하려고 애를 쓰는 편이죠. 다만 그런 화면 속에 배우가 들어갔을 때 발생하는 변화는 필요하다고 봐요. 배우와의 작업에 있어서는 순간순간적인 감정이나, 현장에서의 느낌을 굉장히 중시하는 편인데요. 배우들이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아이디어나 즉흥 연기 같은 걸 잘 구사하면 되게 좋아하는 편이죠. 드라마나 스토리, 캐릭터의 본질을 해치지만 않는다면 오히려 그런 걸 기대하는 쪽이고요. 오히려 현장에서 변화를 많이 주려고 하죠. (배우들과) 같이 대사도 많이 고치고.

작품마다 공간의 이면이 드러나는 점도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적인 아파트 지하에서 서스펜스가 발생하고, 평온한 이미지의 농촌에서 살인의 스펙터클이 형성되고, 그리고 한강에서 괴물이 출몰한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어떻게 보면 괴물이 나오기에는 가장 썰렁한 장소이기도 하죠.(웃음)

작품마다 일반적인 공간의 이미지를 배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 크게 보면 공간성 이전에 뭔가 어색하고 안 어울리게 같이 뒤섞여 있는 것들이 있죠. 어떻게 보면 악취미이기도 한데,(웃음) 그런 부조화된 상태라던가, 그런 걸 좋아해서 그런 거 같아요. 그러니까 뭔가 되게 심각하고 장중해 보이는 장소에서 사람은 오히려 되게 조잡하고 뻘쭘한 짓을 한다거나,(웃음) 반대로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늘 지나가며 보던 논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거나. 한강이란 어쩌다 휴일에 가서 오리배나 타는 곳인데 어이없이 거기서 괴물이 활보를 한다거나. 사실 되게 생경한 것들이죠. 예를 들어 울산에 있는 오래된 폐공장의 어두운 지하에서 괴물이 나온다면 분위기도 그럴싸하겠지만 이건 뭐, 자전거 빌려 타던 한강 다리 밑에서 (괴물이) 나오니까 뜨악해지는 거죠. 그런 이상한 부조화를 제가 좀 좋아하는 거 같아요.

어쩌면 그게 한국식 장르영화의 리얼리티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할리우드 장르영화와 한국영화 사이에서, 그러니까 (미국과) 한국현실 사이에 갭이 크잖아요.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특징도 한때는 그게 사실적인 리얼리즘이었는데 그게 이제 장르의 컨벤션(convention)으로 오랜 세월 흘러오다 보니 굳어버린 거죠. 중절모를 쓰고, 기관단총을 쓰는 갱스터가 미국의 과거에, 1930년대 금주법 실행 당시엔 실제로 있었던 거잖아요. 근데 그게 하나의 장르가 되고 컨벤션과 클리셰(cliché)가 된 건데, 우리는 한국현실에 살면서 애초에 그런 미국적 리얼리티가 없이 장르만을 봐왔잖아요. 그 갭 자체가 영화상에 적용돼 들어가버린 거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제 영화가) 약간 웃기면서도, 생경하고 특이한 느낌으로 받아들여진 게 아닐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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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이동 경로나 진행 방향에 따라 발생하는 감정의 양상도 다른 것 같습니다. 수직적인 이동이 야기되는 상황에서는 긴장감이 발생하지만 수평적인 상황에서는 처연함이 발생한다고 할까요. <괴물>을 예로 들면 현서(고아성)가 괴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하수구에서 탈출하려 안간힘을 쓸 때는 긴장이 발생하지만 희봉(변희봉)이 괴물과 맞서다 죽는 한강고수부지 씬에서는 처연함이 묻어납니다. 남일이 빌딩에 올랐다가 탈출하는 수직적 상황도 그렇고, 결말부에 강두가 괴물을 저지하는 상황도 수평적이라고 볼 수 있고요. 개인적으로는 비약해보자면 수직과 수평이라는 이미지에 어떤 의미부여가 있었던 건 아닌가 싶더군요.
그렇게 까지 거창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만,(웃음) 사실 제가 수직적인 것에 대한 집착은 있어요. <플란다스의 개>에서도 아파트는 수직적인 공간이었죠. 그래서 수평적인 복도에서 현남(배두나)과 윤주(이성재)가 쫓고 뛰어가면서 벌어지는 사건도 있고, 옥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깊숙한 지하실에서 벌어지는 사건도 있었고. 그리고 <괴물>은 명백하게 현서가 수직적인 공간에 감금되어 있는 거니까, 수직적인 비극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불과 몇 미터의 높이를 올라가지 못해서 안간힘을 써야 하는 공포와 긴장이 있는 거니까. 그런데 수평이 어떤 감정과 연결됐다고 저는 크게 인식 못했는데 말씀하신 걸 듣고 나니까 <괴물>의 변희봉 선생 장면이나, 특히 <살인의 추억>의 백광호(박노식) 현장검증에서 아수라장에서 마무리되는 장면이 떠오르네요. 거기서 보면 고속촬영으로 흐르는 씬에서 논의 흙탕물이 막 튀고 사람들이 모두 뒤엉키죠. 그런 인간군상들이 어떻게 보면 약간 웃기기도 하면서도 처연하고, 우린 다같이 못난이 들이야, 잡혀온 사람들이나, 형사들이나 다같이, 그런 측면에서 처연하다는 표현이 맞는 거 같아요. 사실 난 잘 몰랐는데, 그랬던 거 같네요.(웃음)

아무래도 <괴물>은 괴물이 등장하는 장면의 비용대비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게 최대의 화두가 아니었을까 같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웃음) 그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제가 사용할 수 있는 괴물 샷의 숫자는 이미 정해져 있었어요. 시나리오에 다 있는 장면이지만 단지 백 몇 십여 숏(shot) 안에 무조건 다 표현해냈어야 하니까 괴물 샷을 예산 때문에 줄여나가야 했죠. 그런데 그게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지만 할리우드에서도 다 겪는 일이더라고요. 이안 감독의 <헐크>메이킹을 보면 스토리보드상 CG샷이 4백여 개 정도되는데 이거 백여 개 정도를 줄여야 된다고 프로듀서랑 시각효과 감독이 이야기하면 이안이 영어 못 알아듣는 척하면서 눈만 깜빡이는 장면이 있어요.(웃음) 그런 걸 보면서 위안 삼았죠. 동시에 조금 좋게 생각하면 그런 현실적 한계가 저의 창의력을 자극한 부분도 있었던 거 같아요. 괴물이 카메라엔 안 잡히지만 같은 공간 안에 계속 존재하고 있다는 존재감을 유지시키면서 공포감, 긴장감을 유발시켜야 되니까 그런 연출을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도 더 쥐어짜게 되고, 예를 들어 도입부에서 괴물이 처음 나타났을 때 컨테이너 박스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 안에서 사람들 뒤엉키고, 컨테이너 박스가 이렇게 흔들리고. 그건 CG샷이 아니고 그냥 컨테이너 박스만 뒤에서 기계로 흔든 건데, 관객은 머릿속으로 그 안에 괴물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결국 그 안의 지옥의 아수라장을 예상하는 거잖아요. 그런 긴장감을 어떻게 끌고 가느냐가 관건이었죠. 오히려 좋게 받아들이면 좋은 상황이었던 거 같아요. 게다가 <괴물>이 순 제작비만 백억이 좀 넘은 영화니까 한국 기준으로 봤을 때 대작내지는 블록버스터라고 말하지만 특수효과를 비롯해 찍어내는 내용으로 봤을 때는 정말 저예산 영화나 다름없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플란다스의 개>나 <살인의 추억>때보다 저는 더 많은 압박을 느꼈어요. 그 와중에 무사히 끝난 게 다행이긴 한데, 사실 예산이 두 배나 세배로 더 풍족했었더라면 만약에 어떻게 됐을까, 약간 미련이 남는 지점이 있긴 했죠.

해외에서 감독님의 인지도가 높아진 만큼 감독 제의도 심심찮게 들어올 것 같습니다. 그 중에 제작비 여건이 한국보다 좋은 경우도 있을 법 한데요.
영화의 탄생 때부터 있었던 얘기지만 제작비의 지원이 클수록 그에 상응되는 더 많은 간섭이 있죠. 저는 다행히도 좋은 제작자들을 만나서 한번도 간섭 받은 적 없이 제가 하고 싶었던 걸 다 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극장에서 개봉한 제 세편의 영화들은 다 디렉터스 컷일 수 있었고요. 촬영에서건, 편집에서건, 별다른 큰 압박을 받거나 한 적이 없었어요. 그런 게 저의 행운이었다고 봐요. 내가 내 영화를 100%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저로써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이번에 <도쿄!>도 100% 저의 컨트롤로 완성한 영화인데 그게 충족이 된다면 해외에서도 영화를 해보고 싶어요. 근데 만약 그런 점이 잘 보장되지 않는 작업이라면 수천억, 수조를 줘도 별로 의미는 없는 거 같아요. 사실 미국 할리우드에 제 에이전시(agency)가 생긴 덕분에 할리우드 스크립트 시나리오들은 계속 들어오고 있고, 이런 저런 구체적인 제안을 받은 경우도 있었어요. 일본에서도 장편 영화 제안을 받은 적이 몇 번 있었고, 이미 제가 이미 하기로 한 프로젝트들도 일단 있고. 물론 이번에 <도쿄!>의 <흔들리는 도쿄> 30분 짜리를 짧게 경험해본 것처럼 지금은 조심스럽게 짚어보고 있는 상황이라, 선뜻 뭐라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작품에 대한 컨트롤만 가능하다면 외국에서 영화를 찍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 같아요.

사실 전주국제영화제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은 건 ‘2004 디지털 삼인삼색’을 통해서였습니다.
<인플루엔자>라고. 2004년이었죠.

그 작품이 유일하게 감독님이 디지털카메라로 만든 영화이기도 한데요. 같은 방식의 장편영화를 찍어볼 계획은 없을까요?
지금의 트렌드나 산업의 흐름상 어쩔 수 없이 변하게 되는 부분을 떠나서 순전히 개인적으로만 말해보자면 사실 저는 필름광이에요. 필름으로 찍힌 사진을 좋아하죠. 물론 편하니까 디카를 쓰긴 하지만 그래서 가끔 필름으로 사진도 찍고 그래요. 필름에서만 전해지는 이상한 화학적 느낌과 그 맛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네거티브한 질감 같은 것 말입니까?
예. 그래서 어떻게든 저는 필름을 써보려고 버티는 쪽이 될 거 같아요. 물론 마이클 만 영화에서의 HD는 아름답고 박력 있는 느낌을 주긴 하죠. 요즘은 배급의 경제논리로 디지털 상영도 많이 하지만 전 디지털 프로젝터로 상영되는 스크린의 느낌도 좀 싫어요.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 그래요. 그런데 최근에 그런 선입견을 깨뜨린 게 데이빗 핀처 감독의 <조디악>인데 HD로 촬영했더라고요. 바이퍼 카메라로 찍었는데 화면의 품격이나 느낌들이 정말 좋았고, 저 정도가 나올 수 있다면 HD도 해볼 만 하겠다 싶었어요. 중후한 살인 사건 영화임에도 화면이 묘하게 부드러우면서도 아름답고, 하여튼 그 느낌이 독특했어요. 인상적인 경험이었죠. 라이팅(lighting)이나 시각 효과 자체도 뛰어났던 거 같아요.

<이공> 프로젝트 당시에 다른 감독들이 디지털 촬영으로 갔던 것과 달리 혼자 16mm필름을 사용한 것도 그런 애정 때문이었습니까?
그 때는 이제 몇 가지 사정이 있었죠. 그 때 제가 6분짜리 원씬 원테이크를 찍었잖아요. 어두운 다리 밑에 있는 매점 앞부분에서 찍다가, 밖으로 나왔다가, 이게 다 원테이크다 보니까 큰 노출 변화나 밝기 변화가 생기는데 그걸 디지털 6mm카메라로 하자니 극복하기 힘든 핸디캡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반칙을 좀 했죠. 디지털 프로젝트인데 저만 16mm필름으로 찍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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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마다 인상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세 작품에 등장했던 캐릭터 중 특별히 개인적으로 애정이 컸다고 할만한 캐릭터가 있을까요?
다들 애정이 가지만 딱 하나만 꼽으라면,(잠시 생각하다가) 그냥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지금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한 명은 <괴물>에서의 현서, 고아성 양이네요. 모든 가족이 구하려고 하는 사람이니까, 어쩌면 오브젝트(object)가, 그저 단순히 대상이 될 수 있는 캐릭터인데도 걔는 거기서 더 약한 애를 구하려고 발버둥을 치잖아요. 결국은 끝에 가서 죽음을 맞이하지만 조그마한 남자아이를 보호하고 끝내 자기 아버지에게 인계한 셈이죠. 왠지 현서 생각이 나네.

세 작품은 인물들이 무언가를 찾는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강아지나, 범인이나, 현서나. <플란다스의 개>처럼 강아지를 찾아내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진범을 잡지 못한다는 아이러니가 있었죠. 그리고 <살인의 추억>에서 결국 진범을 찾지 못하는 것이나 <괴물>에서 살아있는 현서를 만나지 못한다는 것도 결국 인물들이 이루고자 하는 바가 해소되지 못한다는 맥락적인 공통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진짜 뭐가 제대로 성사된 적이 없네요.(웃음) 항상 빗나갔군요. 제가 좀 긍정적인 사고를 해야 하는데.(웃음)

어쩌면 그게 감독님께서 인지하시는 현실적 리얼리즘이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그들이 하나같이 서민이란 점도 그래서 왠지 의미심장해 보이고요.
사실 살다 보면 참 뜻대로 안 되는 게 많죠. ‘쿵따리 샤바라’가사에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고’란 가사도 있듯이,(웃음) 되지 않을 때가 되게 많은 거죠. 진짜 그렇죠. 월트 디즈니 영화를 보면 모든 것이 안락하게 봉합되면서 끝나는데 사실 그렇게 되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게 잘 안 되잖아요. 뭔가에 실패하거나 어긋나는 게 우리 삶에 가까운 모습이니까 오히려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거 같아요. 때론 좀 씁쓸하거나 잔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오히려 그게 위로 받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나도 저랬었지. 그렇지만 계속 살아야지 어쩌겠어. (<괴물>에서) 강두(송강호)도 딸을 못 구했지만 세주(이동호)와 함께 밥을 꾸역꾸역 먹잖아요. 산사람은 계속 살아야 하니까. 그게 한편으로 슬프면서도 약간의 낙관성인 거 같고.

비약이 될 수도 있지만 감독님의 정치적 자의식이 개입된 측면이라고 생각해봐도 될까요?
<괴물>이 괴수장르다 보니까 장르 전통에 맞게 직설적이고 썰렁한 정치풍자를 많이 하긴 했지만 정치 이전에 더 큰 생활, 내지는 삶의 영역인 거 같아요. 사소한 게 안될 때도 많잖아요. 짬뽕시켰는데 자장면 나오고.(웃음) 거대한 정치가 아니더라도 그런 것도 원하는 대로 안 되는 거잖아요. 속상하지만 배가 고프면 자장이라도 먹어야 되는 거죠.

<괴물>은 분명 진보적인 메시지를 품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1300만이라는 스코어를 기록했죠. 단순히 그 머릿수를 개개인의 정치의식으로 온전히 치환하는 건 무리겠지만 정말 많은 수의 관객들이 이 영화를 봤습니다. 그런데 불과 2년 만에 보수 정권이 들어서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감독님에게 어떤 아이러니한 단상을 줄만한 사안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괴물>에 의도적인 풍자나 메시지가 있는 건 사실이죠. 그런데 관객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건 여러 가지 맥락이 있을 것 같아요. 가까운 지인의 말로는 어린 초등학생 딸래미가 자기 아빠랑 영화를 보고 극장에서 손잡고 나오면서, 아빠도 내가 어디 잡혀가면 저렇게 해줄 수 있어? 이랬다더군요. 그 아이 입장에선 그런 면이 두드러져 보였을 테니까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될 때 득표수를 보면 1100만 표 정도되더라고요. 근데 방금 1300만이라고 말씀하신 얘기를 들어보니까 티켓 구매수가 득표수보다 많았군요. 물론 그래서 <괴물>이 잘 났다는 게 아니라.(웃음) 어쨌든 정치적인 투표행위, 정당과 인물을 선택하는 문제와 영화를 감상하는 행위는 다른 거 같아요. 영화는 다층적으로 받아들이는 거기 때문에. 변희봉 선생님을 보면서 자기 아버지가 생각나는 사람도 있는 거고, 미국에 대한 풍자나 정치적인 서브 텍스트들을 민감하게 보는 대학생이나 지식인도 있을 수 있는 거고, 내 아빠라면 어떻게 할까, 하고 울고 웃으면서 보는 꼬마도 있을 수 있고, 그렇게 광범위하게 볼 수 있는 거니까. 영화가 <화씨9/11>같은 마이클 무어 다큐멘터리처럼 어그레시브(aggressive)한 직접적인 정치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특히나 극영화들은 대중의 정치적 성향과의 함수 관계 같은 걸 쉽게 짚어볼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아요. 훨씬 혼란스럽고 복잡한 문제겠죠. 일단 <괴물>이 약간이건 많이건 진보적인 성향의 풍자를 담고 있고, 그 영화를 1300만이 봤지만 그 다음해에 바로 보수적인 성향의 정권에 1100만여 명의 사람이 투표를 했다는 게 이상하지 않느냐, 라는 논리를 세울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훨씬 더 복잡한 레이어(layer)들이 있다고 보고요.

감상의 방향은 다양할 수 있으니까요. 한편, <살인의 추억>처럼 <괴물>도 절망을 내포하고 있지만 결말부의 느낌은 좀 더 낙천적인 양상으로 전진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괴물>은 현서가 죽음에도 불구하고 낙천적인 면이 있는 거 같아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영화가 밥 먹으면서 끝나잖아요. 먹는 걸 계속 강조하는 영화이기도 했고. 혈연관계가 아닌 괴상한 인연의 두 사람이 마주앉아서 꾸역꾸역 밥을 먹잖아요. 낙관적인 면이 있었다고 봐요. 반면 <살인의 추억>은 어쩔 수 없이 어둠을 직시해야 하는 영화였죠. 단순히 제목은 역설적으로 추억이지만, 실제론 추억이라 말할 수 있는 과거가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과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현재란 것이죠. 우리가 80년대에 이렇게 연쇄살인범 하나도 못 잡고 여자들을 보호도 못하고 줄줄이 죽이면서 이런 꼬라지로 살았지만 지금 우리는 안 그래, 이런 안도하는 관점에서 과거를 봐서는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이제 2003년 에필로그를 넣기도 했지만, 박두만(송강호)이 관객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라스트 컷을. 과거에 우리가 이렇게 어두운 시절이 있었고, 그렇다면 그 어둠을 지금 우리는 완전히 다 씻어낸 것인가, 그런 질문을 던지는 거였죠. 만약 그걸 강하게 집중해서 봤다면 어둡고 막막해지는 느낌이 있었을 거에요. 좀 부담스러운 면이 될 수도 있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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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과거나 허구를 통해서 현재와 현실을 환기시키는 셈인데, 그것이 감독님이 추구하는 영화적 리얼리즘이라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저는 리얼리티, 사실적이고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관심은 많은데 리얼리즘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없어요. 그걸 추구하지도 않고요. 영화는 판타지라고 믿는 쪽이죠. 대신 한국현실과 판타지가 이상하게 충돌했을 때, 아까 말한 한강둔치에서 뛰어나오는 괴물처럼, 거기서 나오는 생경한 영화적 흥분을 좋아하는 것일 뿐이에요. 대신 내가 한국현실에 대해서 의도적으로 목청 높여 메시지를 부르짖거나 발언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닌 것 같아요. 켄 로치나 올리버 스톤 영화처럼. 다만 제가 한국 사회에 관한 여러 가지 궁금증이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 다들 미쳤나 봐, 왜들 저러지, 너무 무서워,(웃음) 이런 공포감은 있죠.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지 않아요? 누구나 힘들잖아요. 아마 한국사회뿐 아니라 모든 사회가 그럴 수 있겠지만 제가 외국에서 못살아봤고 한국에서만 살아봤기 때문에 저한테 사회나 시스템은 그냥 한국사회인 거죠.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영화에 투영되는 거 같아요. 다만 제가 어떤 계몽적인 메시지를 던질만한 주의, 주장을 가진 사람은 아니고. 제 자신의 생각에도 항상 회의를 품는 성격이기 때문에, 주장을 하는 데는 되게 소심한 사람이고요. 그저 제가 한국사회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의문이나 도저히 이해를 못할 부분, 막연한 공포감들이 영화에 반영되는 셈이죠. 사실 합동분양소처럼 집단 장례식을 한다는 건 그만큼 사람이 떼로 죽는다는 얘기니까 그것만으로도 엽기적이고 공포스러운 일인데, 그 와중에 거기서도 누군가가 2487차 빼라고 막 소리지르고.(웃음) 사실 우리가 매일같이 겪는 일이잖아요. 누구 차 빼달라는 거. 그게 웃기면서도 되게 슬프고 공포스러운 순간이죠. 그런 이상한 감정들이 한국사회에 용광로처럼 뒤얽혀있다고 보기 때문에 보는 이가 어떤 감정을 느끼건 전 그걸 고스란히 표현하고 싶은 거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 영화적 모티브가 된다는 것이군요.
예! 영화나 드라마가 따라갈 수가 없다니까요. 현실적으로 벌어지는 이 시츄에이션(situation)들을 보면 이게 뭔가 싶은 것들이 많이 보이죠.(웃음) 모든 창작자들이 그렇겠지만 주변 현실에서 받는 자극이나 영감이 큽니다.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타인의 창작물을 보면서 느끼는 자극보다도 제가 살아가고 있는 생활이나 주변, 한국 사회의 어떤 순간순간적 모멘트(moment)에서 자극을 받는 경우가 많죠. 개인적인 경험이나.

그런 순간적 자극을 기록해두기도 하나요?
그럼요. 특히 <플란다스의 개>는 소소한 일상적 디테일을 구성할 때 그런 걸 많이 활용했어요. 휴지를 백 미터 굴리는, 그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장면 같은 경우도 실제로 해본 건 아니지만 제가 조감독 때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면서 했던 생각이에요. 조감독 때는 워낙 돈이 없잖아요. 그런데 애는 키워야 되고 생활은 쪼들리니까 맨날 아르바이트하고 그랬는데 그럴수록 예민해지거든요. 돈이 없이 지내보면 알겠지만 슈퍼에 가서 음료수를 살 때 용량 120㎖ 이렇게 써 있으면, 이게 120㎖ 맞는지, 안 맞는지 누가 알아, 누가 재봤어? 이런 생각이 드는 거에요. 아니면, 0.5ℓ 함유? 이 자식들 0.4ℓ넣어놓고 이렇게 파는 거 아냐? 막 이렇게 예민하게.(웃음) 휴지도 보면 겉에 보면 100m라고 써 있는데, 진짜 100m맞아? 이게 과연? 이것도 돈 내고 사는 건데, 운동장100m 트랙 위에 쫙 펴볼까? 이런 상상도 했거든요. 그러다 보면, 이런 건 내가 봐도 너무나 쪼잔하다, 내가 어쩌다 이런 인간이 됐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웃기니까 그런 걸 공책에 적게 됐어요. 그러다 그 이상한 시츄에이션들이 이제 시나리오 속으로 들어가게 된 거죠. 그런 경우가 많이 있었어요.

전주영화제가 끝나면 이제 <도쿄!>프리미어가 열리는 칸영화제로 가시겠군요. 이제 한국을 대표할만한 감독으로 꼽히고 있기도 한데.
김기덕 감독님이 대표할만한 분이죠.(웃음)

최근 영화주간지에서 조사한 영화인 파워리스트마다 감독 중에 가장 상위 랭커를 차지했다던데요.
그니까 그게 참 이상한 거에요. 사실 저를 규정하는 가장 명쾌하고 쉬운 방법은 영화 세편 찍은 감독이라는 거에요. 세 편밖에 못 찍었고, 계속 가봐야 알 수 있는 거죠. 저의 유일한 꿈은 임권택 감독님이나 마뉴엘 드 올리비에라(Manuel De Oliveira)처럼 끝까지 현역으로 남아서 영화를 계속 찍는 게 제 유일한 꿈이에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한번쯤 걸작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졌기 때문에 계속 하려는 것이기도 하죠. 지금의 파워리스트 같은 건 그저 형식적인 거 같아요. 제가 제작사나 영화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저는 그저 제가 찍고 싶은 스토리나 저를 흥분시키는 어떤 한 이미지나 장면에만 병적으로 집착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니까. 어쩌면 파워리스트에서 조만간 사라지게 될지도 모르죠.(웃음) 만약 그래서 계속 영화를 찍을 수 없다면 개인적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방법들을 마련해봐야겠죠.

하지만 김혜자 선생님이 <마더>에 캐스팅됐다는 게 현재 그 파워를 증명할만한 사례가 아닐까 생각되는데요?(웃음)
김혜자 선생님과 접촉했던 건 <괴물>찍고 나서가 아니고요. <살인의 추억> 그 직후에 처음 연락 드린 거에요. 그니까 <마더>는 <괴물>전부터,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던 프로젝트였고, 김혜자 선생님을 전제로 해야만 성립되는 프로젝트라서 배우가 먼저 정해진 상태에서 시나리오도 쓸 수 있었죠. 김혜자 선생님을 처음 뵌 지는 벌써 4년이 흘렀네요. 선생님도 많이 기다리셨죠.

벌써 <마더>의 차기작도 정해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2010년도 쯤에 <설국열차>도 제작하실 예정이죠?
2010년이나 2011년쯤에 되겠죠.

아무래도 지금까지 감독님은 한국적 현실을 영화적 배경으로 삼아왔는데 <설국열차>는 원작만 봐도 범세계적인 프로젝트가 될 것 같습니다.
저의 새로운 도전이죠. 그 영화 찍고 나면 많이 늙을 거 같네요.(웃음) 정신과 육체를 많이 리프레쉬(refresh)하면서 잘 버텨야 할 텐데. 대작이 될 거 같아요. <마더>는 내용은 찐하지만 규모는 크지 않을 것 같고요. 아마 <설국열차>는 몸과 마음의 준비를 잘 해야 할 것 같아요.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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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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