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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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드라마 <키드갱>이 종영됐다고 들었다. 최근 <두사람이다>를 비롯해서 자신이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를 각각 한 편씩 끝냈는데 소감이 어떤가?
<키드갱>과 <두사람이다>의 촬영시기가 비슷했는데 그 때 우정 출연으로 <기다리다 미쳐>란 영화까지 3개를 같이 했었다. 그래서 너무 힘들었는데 끝나고 나니 후련하기도 하다. 그 뒤로 조금 쉴 시간이 있어서 가까운데 여행도 다니면서 쉬다가 지금은 홍보에 총력을 다하느라 다시 바빠졌다. (웃음)

여행을 좋아하나 보다.
집에서 쉬는 것도 좋지만 한번씩 여행 갔다 오는 것도 좋아한다.

처음 짝사랑으로 시작했다. 처음 출연한 <클래식>부터.
그렇지.

그런데 <키드갱>에선 결혼도 했다. (웃음)
내가 듣기론 원래 결혼 예정이 없었다더라. 원래는 아마 도희(빈우)랑 다른 사람이 연결될 예정이었는데, 빠듯한 일정 속에서 촬영되다 보니까 스토리가 바뀐 것 같다. 아마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려고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개 좋아하나? 아까부터 눈이 자연스럽게 (인터뷰 장소에 있는 개한테) 가더라.
좋아한다.

덕분에 <해변의 여인> 생각이 났다. (웃음) 사실 그 때 개 끌고 다니는 청년은 예상밖이라 인상적이었다. <극장전> 생각도 났고, 그런 출연의 배경도 <극장전>과 무관할 것 같은데?
감독님은 <극장전>의 상원이가 감독을 지망하는 대학생 역할로 성장한 거라고 개인적으로 말씀해주셨다. 큰 의미는 없지만 전작과 연결되는 의미랄까.

올해 들어 본인의 이미지에 역행되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 <두사람이다>에선 과감한 어필이었던 것 같고, <좋지 아니한가>는 좀 깼다. (웃음)
약간의 반전이랄까. (웃음)

아주머니한테 접근하는 다단계 청년이라니. (웃음) 항상 건실한 청년으로만 생각했는데, 그래서인지 나름대로 신선했다.
방금 말한 것처럼 날 건실한 청년 이미지로 생각했던 분들이 <좋지 아니한가>나 <두사람이다>를 통해 다른 모습을 보고 당황스러워 하고 그로 인해 재미있다고 느낀다면 내게 그런 모습은 고소할 것 같다. 그 분들은 영화 속의 내 모습을 보고 재미있어 한다면 난 그런 날 보는 분들의 반응을 보고 재미있어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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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사람이다>가 <새드무비>이후로 두 번째다. 자신의 얼굴을 포스터에 내 건 영화는. 그런데 <새드무비>는 사람이 너무 많았고. (웃음) 여덟에서 하나보단 셋 중 하나가 더 낫지 않나? 확실히 비중이 커진 셈이니까.
내가 출연한 작품인데 불구하고 영화포스터에 내가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기 때문에 그 동안은 무심결에 영화를 보다가 나를 발견해 준 분들이 반가웠다. 그 대신 이젠 내 얼굴을 간판으로 걸고 영화를 보게 될 분들이 생겼기 때문에 부담감도 조금 생기는 것 같다.

<두사람이다>는 기존의 작품들에 비해 출연량도 많았을 텐데.
드라마처럼 지속적으로 소화할 분량들은 일정한 에너지로 쭉 끌고 가야 한다면 <두사람이다>같은 경우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에서 뭔가 확실히 실어줄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했었던 것 같다. 사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부담됐다. 그 동안 해왔던 것들과 전혀 다른 모습이니까. 내가 그걸 한다면 과연 잘 어울릴까, 나랑 잘 매치가 될까, 그런 걱정을 되게 많이 했었다. 만약 안 어울린다면 배우로서 이건 정말 큰 타격이니까. 저 배우는 그냥 착한 동네 청년 같은 역할밖에 못한다고 낙인 찍힐까 봐. 그래서 시나리오 보면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스스로가 봤을 때 어떻게 생각하나. 본인에게도 색다른 모습이었을 텐데.
나도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을 통해서 내 모습을 쭉 봐왔지만 지금 같은 모습은 처음이다. 극적인 분위기 자체가 음산한 공포영화도 처음이고, 피를 묻힌 것도 처음이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그래서 어느 정도 만족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내 눈에 계속 보이는 허점들을 보완해야겠단 생각도 든다. 그래도 한번 도전해봤기 때문에 잃은 것보단 얻은 게 더 많았던 역할이었던 것 같다.

새로운 모습을 통한 모종의 만족감도 있었겠다.
나에 대한 또 다른 자그마한 가능성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지.

그런데 <두사람이다> 현장에서 연장자 역할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이런 경험도 거의 처음일 법한데.
그만큼 시간이 흘렀구나 싶더라. 데뷔한지 5~6년 정도 됐는데, <클래식> 때는 완전 막내였다. 스텝 분들도 다 형이었으니까. 그래서 막 형, 형, 그러면서 쫓아다니며 소주 한잔 받아먹고 그랬다. (웃음) 사실 그런 경우가 익숙했는데 지금은 어느덧, 나보다 어린 스텝들도 있고 심지어 <두사람이다>는 같이 하는 두 배우들조차 나보다 어렸으니까 묘하더라. 그렇다고 내가 그 두 사람보다 월등히 뛰어난 건 아닌데, 시간이 좀 흐른 탓에 은근히 맏형으로서의 부담감이 생기더라. 사실 난 현장 분위기가 재미있어야 촬영할 맛이 나는 편이다. 현장 분위기가 좀 삭막하고, 동료들 간에 불협화음이 있다던가, 사이가 안 좋으면 난 정말 못 하거든. 근데 <두사람이다>현장은 공포 영화지만 스텝들이 워낙 좋았다. 감독님도 밝은 성격이고, 촬영감독님, 조명감독님은 완전 밝은 분이셨고. 그에 잘 편승해서 스텝들과 촬영 중간중간 나머지 시간엔 잘 웃기도 하고, 떠들기도 하고, 그래서 부담감이 많이 줄었던 거 같다.

<두사람이다>가 첫 공포인데, 아이러니하지 않았나? 영화는 어두워도 현장은 밝으니까.
그렇지. 그런데 <두사람이다>의 스텝들이 모두 프로답다고 느꼈던 적이 많았다. 밥 먹거나 그런 쉬는 시간엔 다들 재주껏 놀다가 촬영이 들어가면 그 순간만큼은 정말 진지하게 영화에 대해서만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영화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란 것도 깨달았지.

그런데 <클래식>에 캐스팅이 안 됐다면 군대 갔을 거란 이야긴 들었다.
인생이 바뀌었지. (웃음) 그 당시 내 친구들은 다 군대 갈 시기였고, 나도 날짜를 받아놓은 상태였고. 정말 우연히 <클래식>이란 시나리오가 내 손에 들어와서, 태어나 처음 오디션이란 걸 보고 <클래식>으로 얼굴을 알리면서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됐으니까.

그럼 그때 본격적인 연기자 준비를 했던 건 아니었나 보다?
모델 활동 하면서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모델 활동을 좀 하다가 군대를 갖다 와서 일단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뭔가 더 겪어본 다음에 배우를 해야겠단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 당시 군대를 빨리 가려고 했었던 거고.

처음 카메라 대면할 때 어땠나?
진짜 완전 쫄았다. (웃음) 일단 내가 연극영화과 출신도 아닌 경영학과 출신이니 카메라를 경험한 적도 없었고, 그 당시엔 DVD같은 것도 없어서 영화 촬영 현장을 미리 접해볼 기회도 없었고, 일단 영화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전혀 몰랐다. 카메라가 어떻게, 무슨 렌즈가 어디를 얼마나 찍는지도 몰랐고. 그래서 난 무조건 전신이 다 나온다고 생각했다. 클로즈업이든 바스트건 상관없이. 그래서 전신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다 긴장한 상태에서 촬영했다. 종종 영화를 보면 배우들이 감독님한테 혼나는 경우 있잖아. 그래서 난 혹시나 그러지 않을까 싶어서 더욱 노심초사 긴장했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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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함께 출연했던 조승우 씨가 많은 조언을 해주지 않던가?
그때 승우 형이 사소한 것들이지만 누가 알려주지 않는다면 지금도 굉장히 헷갈릴 수 있는 것들에 대한 팁을 많이 줬다. 예를 들면 이렇게 대면하고 있는 씬에서 카메라가 날 찍고 있을 때의 시선 처리 같은 거, 그 사람이 카메라 오른쪽에 있으면 그 사람의 오른쪽 눈을 보고 이야기하는 게 좋다라는. 그리고 내가 감정이 심어져 있는 대사를 할 땐 승우형이 눈을 감아줬다. 자신의 눈빛을 보고 연기하는 배우가 혼선을 갖거나 시선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물론 대사는 제대로 쳐주지만 눈은 감고 있었던 거다. 그렇게 상대배우를 배려하는 어떤 방법도 배웠다. 그때그때마다 조금씩 팁을 주고 가는 거지.

별 거 아닌 듯 하지만 실속 있는 조언들이다. 그런데 배우이기 이전에 지니고 있던 꿈은 없었나?
아마 배우가 아니었다면 회계사나 세무사 쪽을 공부하고 있었겠지. 전공이 그 쪽이니까. 아니면 내가 약간 미술 쪽에 관심이 있어서 인테리어를 공부할지도 모르고. 그래서 원래는 미대를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내가 머리 속에서 구상한 걸 꺼내서 실물화하는 작업인데 왜 정물화 시험을 봐야 하는지 그 당시엔 전혀 이해를 못했다. (웃음) 물론 기본적인 미술 감각을 테스트하는 것이란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그 땐 공감이 안 갔던 거지. 왜 데생을 하고, 왜 아그리파상을 그려야 하는지. 그래서 사업가의 꿈을 안고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렇다면 배우라는 길에 들어선 계기는 어디서 시작됐다고 생각하나?
중학교 때부터 학예회나 체육대회, 성당 발표회 같은 데 나가서 가수들 흉내 내면서 춤추고 노래하고, 그런 걸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평소엔 얌전하다가 그럴 때만 그렇게 되더라. 그런 잠재된 끼가 있었나 보다.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막연하게 연예인이 되겠다는, 말 그대로 연기자가 아니라 연예인이 되고 싶단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연극영화과가 있는 예고에 시험을 봤다가 떨어졌다. 결국 서울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그 땐 아직 어리니까 대학교가서 해봐도 늦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고등학교에서 친구들과 적당히 운동하면서 놀고, 적당히 공부해서 지금 대학에 입학했지. 한편으론 대학교 가면 나 스스로도 무언가 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고, 집에서도 약간 관대해질 것이라 생각했고.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이창동 감독님의 <초록물고기>를 우연히 집에서 혼자 봤는데 너무 재미있게 봤다. 특히 한석규 선배님 연기에 감탄해서 마지막엔 펑펑 울 정도였지. 막연하게 연예인이 되보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 진지하게 바뀌는 계기였던 것 같다. 진짜 저렇게 한번 되보고 싶다는 생각을 지닐 수 있었던 계기. 그때부터 연기자라는 직업을 새롭게 인식했고 그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집에서 관대해 질 것이란 기대감은 그 당시 그런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반대가 있었다는 이야기인가?
요즘은 내가 활동하니까 부모님께서 종종 웃으면서 농담도 하시는데 ‘우리 집안에 그런 애가 한 명 나올 때가 되긴 했다.’란 말씀도 하셨다. (웃음) 사실 아버지께서도 키가 크시고 얼굴은 나보다 더 작다. 우리 집안 체형들이 다 길쭉길쭉한 편이라, 옛날부터 할아버지도 배우 하란 말을 들으셨단다. 그런데 그 당시는 ‘딴따라’라고 부르면서 사회적인 인식이 별로 안 좋았던 시절이라 생각도 못했었다고 한다. 또 우리 집안이 대대로 공무원 집안이다. 아버지께서도 공무원이시고. 그렇다고 집안에서 내가 이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땐 반대는 안 했다. 일단 부모님께서 내가 어렸을 때부터 터치는 잘 안 하시는 편이었다. 오히려 그 역할은 우리 집에서 다니던 성당에서 정신적으로 맡아준 거 같다. 지금 형이나 나나 부모님께서 맞벌이하실 때도 비뚤어지지 않고 자기 할일 잘 했던 게 성당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부모님께서는 우리한테 무언가를 던져서 맡겨주시면 그냥 지켜보신다. 그냥 지켜보시다가 크게 엇나갈 것 같으면 한마디 해주시는 정도. 그런데 정말 내가 나중에 가정을 갖게 되면 그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버지의 교육 철학은 굉장히 좋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지금은 완전한 내 서포터시지. 아주 훌륭한 홍보 대사다. (웃음)

유전자의 영향인가.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곱게 자란 느낌이다. (웃음) 반듯한 느낌이기도 하고. 그런 이야기 평소에 듣지 않나?
반듯해 보이는 건 우리 형이 좀 더 그렇다. 난 좀 모자람 없이 넉넉하게, 부유하게 자랐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사실 겉보기만 그렇고 부모님들께서 키우시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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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오해가 캐릭터에도 반영된 게 아닐까 싶다. 그걸 올 해 들어서 2번에 걸쳐서 깬 셈이고. 그리고 아닐 것 같은 사람이 그럴 때 충격은 2배가 된다는 점에서 그 2번의 연기는 효과적이었다. 동시에 이는 본인에게 연기의 영역을 더욱 넓혀준 계기가 됐을 법하다. 그런데 평소에 그런 연기적 변신에 대한 욕구가 없었나?
<야수>의 권상우 씨처럼 남자답게 멋있고 강인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역할이 굉장히 하고 싶고 부러웠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하면 관객들이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서 늘 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었지. 그런데 지금도 그런 강인한 역할을 연기하기엔 내가 좀 어리단 생각이 든다. 아직은 겉으로 풍기는 이미지도 남자다움보단 소년스러움을 많이 갖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런 걸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도전을 못 했던 것 같다.

어쩌면 <두사람이다>이 그런 의미에서 어느 정도 자신감을 충족시켜주지 않았을까? 사실 <두사람이다>의 반전은 이야기보단 배우의 이미지가 깨진다는 점에서의 충격이 더 와닿았다.
내가 이 역할을 선택한 이유는 도전과제가 있는 역할이었기 때문이었다. 또 초, 중반부와 후반부에 달라지는 2가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으니까, 그것도 하나의 이유였던 것 같다. 한 작품 안에서 2가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예 처음부터 강인한 역할을 했다면 너무 부담스러웠을 거다. 그런데 중간에 늘 하던 역할이 섞여있어서 조금은 쉽게 결정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예전에 <혼자가 아니야>란 시트콤에서도 은근히 웃겼던 기억이 난다. <두사람이다>를 통해서 처음으로 공포 연기를 보여줬는데 그런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준 만큼 새롭게 뭔가 해보고 싶다는 목표가 생길 법도 하다.
남을 웃겨도 보고, 울려도 봤는데 이젠 <두사람이다>를 통해서 공포감까지 줬다. 그게 배우가 해야 할 일인 거 같다. 근데 내가 남들을 진짜 제대로 울려 본 적은 없었다. 물론 우는 것도 마냥 슬픈 게 있고, 혹은 연민의 정으로 울 수 있는 거지만. 그래서 나중엔 좀 제대로 울려줄 수 있는 그런 역할도 해보고 싶다.

울리고 싶다고 하니 여자 많이 울리는 스타일은 아니었나 보다.
물론 아니지! (웃음)

농담이고, 그런데 혹시 싫어하는 사람과 잘 만날 수 있는 편인가?
난 싫어하는 사람과 안면 씻고 정색하는 성격은 못 된다. 그래서 그 사람의 언행이나 태도가 맘에 안 들어도 같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옆에서 계속 말해도 난 그냥 ‘그래. 넌 그래라.’란 식으로 그냥 신경 끄고, 그 사람을 위해서 뭘 해 주거나, 정을 주진 않는 거지. 그러니까 다 받아주긴 하는데 선을 정확히 그어놓는다. 친해지려고 안 하는 편이랄까. 그래도 좀 친해진 사람하고는 장난 아니게 친해지는 편이고.

아무래도 <두사람이다>에서 연기한 캐릭터가 증오를 숨긴 인물이기 때문에 본인은 어떤 사람일까 싶었다.
내가 AB형이라서 그런지, (웃음) 내 감정을 숨기는 건 잘한다. 많이 싫어도 싫은 내색 잘 안하고, 많이 기뻐도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내 사람들 사이에선 많이 표현하지만, 정말 아닌 사람들 앞에선 적당히 하고. 근데 정말 키까지 큰데 그래 버리니까 싱겁다고들 하지. 그런 모습을 본 사람들이. 싱거운 놈이라고.

외모 때문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아까 말한 반듯한 청년 이미지 때문에. (웃음) 그런데 얼마 전, 모 TV프로에서 스스로 텔레마케터를 했다고 고백했다던데.
그게 모델 활동 시작할 무렵, 그러니까 2001년도 쯤에 스키를 장만하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텔레마케터도 해보고, 아파트 공사 현장에 보일러 설치하는 것도 해보고, 아르바이트 많이 했다. 커피숍에서 알바도 했고, 이것저것 많이 했다.

커피숍 다닐 때 고정 팬 확보 좀 되지 않았을까? (웃음)
사실 그 때부터 조짐이 보였던 거 같다. (웃음) 나이 많은 누나들 있잖아, 그 당시에 내가 대학교 1~2학년 때였는데, 3~4학년 정도 되는 그런 누나들이 종종 쪽지도 주고. (웃음)

갑자기 <좋지 아니한가>가 떠오르는데. (웃음) 어쨌든 올 해 예년에 비해 많은 활동 중이다. 나름대로 얻은 것도 많을 것 같은데.
가장 좋았던 건 사람들을 많이 얻었다는 것. <키드갱>을 통해 손창민 선배님이란 대배우와 어울리면서 함께 웃고, 힘들 게 촬영했던 것만으로도 고맙고 그런 기억들이 아마 평생 남을 것 같다. 물론 건달이 좋은 이미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그전에 연기한 지극히 착해고 로맨틱한 남자들보단 훨씬 인간적인 냄새가 많이 나는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칼날이란 역할에 굉장히 많이 동화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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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도 직접 돌보고.
아기도 좋아하는 편인데, 예준이가 너무 예뻤다. 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다들 너무 예뻐했지. 아기가 울어야 할 때 울고, 웃어야 할 때 웃고 심지어 심각한 표정까지 지어버리니까 다들 감탄했지. 나도 빨리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더라.

약간 이른 질문일지 모르지만 미래의 가족 계획 같은 건 없나?
난 결혼을 일찍 하고 싶었다. 사실 내 목표는 28살에 결혼 하는 거였다. 사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가장 왕성할 때가 이십 대 후반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아이를 가져서 그런 가정 안에서 내 생각들을 정리하고 뭔가 안정된 자세로 매진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거지. 우리 아버지께서 스물 여덟에 장가를 가셨다. 공무원 임용고시 붙자마자 장가를 가셨는데 장가를 일찍 가셔서 형이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이 아니다. 근데 그게 너무 보기 좋았다. 한편으론 아버지를 닮고 싶단 생각이 많아서 그러고 싶었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이젠 늦었지.

<두사람이다>에서 ‘찌르는 사람이 있으면 찔리는 사람이 있다’는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본인은 누굴 찌르는 편인가, 누군가에게 찔리는 편인가?
사람들이 보통 이기적인 거 같다. 그래서 찔리는 건 아는데 찌르는 걸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자기도 모르게 누구를 찌르긴 찌른 것 같은데, 자기 자신은 남으로부터 찔린 것만 기억하고자 하는 심리가 있지 않을까. 나도 그 대사를 보면서 살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찌른 경우가 분명히 있었을 텐데 싶더라. 친구들과 어울리는 순간에 나도 모르게 말실수를 해서 나도 모르게 상처를 주는 순간이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들을 하니까 좀 더 말과 행동을 신중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공인이기도 하니까.

관계에 대한 생각을 한번쯤은 하게 되는 영화인 것 같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소중한 두 사람은 누구인가? 혹은 자신이 배우가 되는데 가장 기여한 두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나?
가장 소중한 두 사람은 아버지, 어머니. 그건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마 부지부동이었을 거다. 배우가 된 것도 모두 그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집안에 대한 걱정이나 고민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할 수 있게 환경을 잘 만들어준 것도 부모님 덕분이니까. 언젠가 아니, 언젠가 라기 보단 이건 계속 갚아나가야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작게든, 크게든.

이제 첫 영화로부터 5년이 지났다. 그 동안에 출연한 영화들이 쌓였는데, 그 중 자신이 배우가 됐음을 실감한 작품이 뭔가?
내가 처음으로 배우를 하고 있긴 있나 보다 했던 게 <극장전>이었다. 그 전까진 연예인이란 타이틀이 어울렸다면, <극장전>덕분에 홍상수 감독님과 작업하고 나니 영화계에 계시는 분들이 배우라는 타이틀을 걸어주는 것 같더라. 감독님께서 날 믿고 캐스팅해주신 덕분이고 그 덕에 생애 첫 영화제가 칸 영화제가 되기도 했다. 내 인생에 있어서 배우라는 타이틀을 걸어준 건, <극장전> 그리고 홍상수 감독님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엄청난 인연이자 행운이다. 그렇다면 홍상수 감독님이 자신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을 법도 한데.
나도 그게 의아했다. 왜 나일까? 그리고 홍상수 감독님은 예쁘거나 잘 생긴 배우조차 일상적으로 만들어서 표현하고, 그로부터 어떤 독특한 향을 느끼게 하는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키만 멀대 같이 크고 어린 날 뭘 보고 캐스팅하시나 생각했다. 촬영을 하는 중간중간에도 그런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촬영은 정말 재미있었고 그러다 보니까 결과물에 대해서 궁금증도 생기고 기대감을 갖게 됐다. 그리고 후에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서, 이래서 날 캐스팅 하셨구나 싶더라. 키 크고 트렌디한 느낌의 이기우를 옆집 수험생 같은 느낌으로 완전히 탈바꿈 시켜 주셨다.

지금까지 행보를 보면 차근차근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느낌이다.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영역을 개척하는 듯한데, 앞으로 자신의 타이틀을 걸고 싶은 욕심은 없나?
시기라는 게 있는 것 같다. 내가 10편 가량의 영화를 하면서 현장에서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이나 인간관계를 맺는 이런 것들도 다 시기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처음은 호기심에서 출발하고, 중간은 알아가는 재미였지만 이젠 배우로서 너무 당연하고, 반드시 해야 되는 과정이 된 것 같다. 그리고 그걸 깨닫게 된 순간부터 난 한 영화의 주인공이 될 자격도 갖추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쯤 그걸 하면 참 좋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있다. 시기적으로 볼 때 10편 정도가 적은 편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한두 편의 영화로 확 뜨는 스타가 되기보단 작게나마 조금씩 덧댄 이미지를 보여주는 게 내 계획이었거든. 조금씩은 계획대로 되가는 거 같다. 그래서 이젠 주연에 대한 욕심도 조금 생긴다.

혹시 정말 해보고 싶은 역할이나 함께 작업하고 싶은 감독이 있나?
예전에 <극장전>할 때, 이십 대 중반에도 종종 이야기했었지만, 군대 갔다 오고 서른 넘어서 홍상수 감독님 영화에 한 번 더 출연해보고 싶단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그리고 지금 원래 내가 촬영에 들어갈 영화가 있는데, 차승원 선배님과 한석규 선배님이 출연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란 작품이다. <키드갱>의 칼날이 좀 진중한 역할이었다면, 거기선 좀 껄렁껄렁한 역할이다. 그런 역할을 지금 내 나이일 때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처음 데뷔했을 때가 23살이었는데, 그런데 지금은 서른 되기까지 3년 남았다. 서른 되기 전까지 이루고 싶은 목표 같은 건 없나?
벌써 그렇게 됐다. 생각도 못했는데. (웃음) 배우로서 영화를 만드는 분들이나 관객들한테 영화인이라는 것을 각인시켰으면 좋겠다. 이기우는 영화를 계속 할 사람이란 확신을 주거나 영화를 계속 해줬으면 좋겠단 바람이 남을 수 있는 배우. 사실 그건 서른 살이 아니라 마흔 살, 쉰 살까지 가지고 가야 할 목표인 거 같다. 끊임없이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있는 거니까, 이기우에 대한 수요를 느끼게 할 그런 작품들을 많이 하고 싶다.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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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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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서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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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아닌가?
와인 맞다. 와인 좀 드실래요?

근무 중 음주는 안 된다. 그것도 대낮부터. (웃음)
오히려 낮에 마시면 좋은데.

그런가? 사실 와인에 문외한이라, 와인 애호가인가 보다.
사실 와인만큼 맥주도 좋아한다. (웃음)

그럼 술을 좋아하는 건가?
소주나 위스키 같은 건 잘 못 마신다. 그래서 잘 마시지도 않고.

다행이다. 소주 좋아했으면 지금 소주 마시고 있을지도 모를 일인데. (웃음) <올드보이> 당시엔 역할이 작았음에도 인상이 깊었다.
어쩌면 사람들이 그런 이미지를 원했던 것일 수도 있지. 왜냐면 한국에는 그런 이미지를 낼 수 있는 영화나 배우가 흔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이미지를 그리워했고, 그만큼 좋아했던 것 아니었을까.

사실 그 역할이 그런 선풍적인 반응을 끌어냈다는 것이 본인한테 의외였을 텐데.
맞다. 되게 의외였지. 사실 출연하기 전까지 고민 많이 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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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장화, 홍련> 오디션에서 떨어진 인연으로 <올드 보이>에 출연하게 됐다고 들었다. 김지운 감독이 박찬욱 감독에게 추천한 덕분에. <장화, 홍련>은 어떤 역할이 탐났나?
무슨 역할인지는 몰랐고, 사실 (소속사에서) 오디션 보라고 해서 본거다. (웃음)

여행, 책, 그리고 음악을 상당히 좋아한다던데, 세가지 다 홀로 즐길 수 있는 취미다. 원래 혼자만의 독립된 공간을 선호하는 편인가?
사실 혼자 있을 수 밖에 없으니까 혼자 즐길 수 밖에 없는 거지. 혼자 있을 수 밖에 없는 걸 비관하고 슬퍼할 수는 없잖아.

환경적 요인으로 그런 취향에 빠져들게 된 거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너무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만큼 혼자 있는 것도 좋아하고. 똑같이 좋아한다. 그런데 내 직업상 내가 원하는 시간에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틈이 많이 없다. 친구들도 자기 인생이 있고, 자기 삶이 있기 때문에. 내 촬영이 새벽 2시에 끝나면 그 시간에, 친구를 불러서 놀 수 없는 거니까. 친구들도 그 다음날 출근해야 하고 나름대로의 일상이 있으니까. 하지만 친구는 많은 편이다. 연예인치곤 굉장히 많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가려져 있는 이미지다. 신비롭다고 할 수도 있고. 그런 이야기 많이 듣지 않나?
많이 듣는다. 그건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내 외모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사실 <두사람이다>의 연기는 그 동안의 역할 중 가장 평범한 캐릭터였던 것 같다. 물론 외부적인 상황이 고생스러웠지만 캐릭터의 본질을 만드는 건 무난하지 않았을까.
말한 대로 다가가긴 쉬웠을 수도 있다. 그런데 다른 부분에서 힘들었다. 기자시사회 때도 했던 말인데, 다 아물었던 상처, 두꺼워진 딱지를 다시 떼내서 피 흘리는 느낌이었다고. 그 말대로다. 내 삶의 바탕에 힘든 일이 많았는데, 표연하게 살아왔던 게 있어서 다가가긴 쉬웠지만 힘들었다. 내가 내 몸을 다시 뜯어서 청소해내는 느낌으로 찍은 영화였거든. 그만큼 아파하면서 찍었고, 쉽지만은 않았다.

자신의 인생에서 있었던 어떤 심리가 영화 속 캐릭터와 닮아있는 부분이 많은 건가.
그렇다. 닮아있는 부분이 많아서 개인적으론 힘들었다.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게.

그에 대해 묻는 것은 실례일까.
사실 난 말하는 게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 내가 걱정하는 건 동생과 언니다. 난 내 자신이 드러나는 것에 대해 거리낌없이 말하곤 하지만 그런 것들 때문에 우리 가족들이 상처를 받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가끔씩은 자신의 보호를 위해서 혹은 자존심을 위해서 내가 모르는 곳에서 거짓말하게 되는 경우도 있나 보더라. 어쨌든 난 아빠 없이 살았다. 그리고 그런 이후로 경제적인 부분이 힘들어서 고등학교 때부터 일을 했었다. 그런 것에 대한 상처가 있었던 거 같다. 나도 모르게. 물론 그 당시엔 그냥 아르바이트 같은 거 하면서 친구들과 재미있게 어울리며 살았는데 은연 중에 상처가 된 거 같다. 애정 결핍이지.

그런 이야길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나?
거부감은 없다. 난 그냥 배우이고 싶지, 내 이미지를 파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렇게 살고 싶진 않다. 그렇게 살면 정말 재미없을 것 같고. 내가 어떤 힘든 삶을 살았는데, 그걸 연기를 통해서 보여줬고 어떤 사람들에게 그게 공감이 됐다면 난 됐다. 힘들어하건, 부끄러워하건, 좋아하건, 아파하건, 그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을 전해줘서 결국 눈물을 흘리거나 웃는다면 그게 좋은 영화인 거 같다. 영화를 보면서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좋은 거니까. 영화나 소설을 보거나, 음악을 듣고 웃거나 울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그것들이 만들어줄 수 있는 기억을 갖는다는 건 좋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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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배우를 꿈꾸게 된 계기는 뭔가?
고등학교 때 연극반이었다. 사실 연극반에 들어가고 싶어서 들어간 건 아니고, 친구들과 다 같이 들어갈 수 있는 특별활동이 연극 반밖에 없었다. (웃음) 열명 정도의 친구들이 한꺼번에 다 들어갈 수 있어야 했거든. 그래서 그냥 연극반가서 다같이 놀기 위해서 들어갔지. 그런데 대회를 나가게 됐다. 선생님이 나가라 그래서 연극 대회를 나갔는데, 정말 안 그럴 것 같던 내 친구들이 땀 흘리면서 무대를 만들고 망치질 하더라. 난 배우였기 때문에 그런 작업은 안 했는데, 나도 정말 안 그럴 것 같던 내가 대사를 외우고 있더라. 그렇게 외우라고 해도 단어들은 외우지 않았는데. (웃음) 그런 게 되게 신기했지. 다같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열심히 하는 모습들이 뭔가 하나로 함축된 가족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좀 불안정한 가정에서 살아서인지 하나의 완전한 집단에 있는 듯한 느낌이 너무나 좋았다. 보호받는 느낌이랄까. 지금도 항상 영화 현장에 있으면 보호받는 느낌이 든다. 물론 촬영도 끝나면 확 깨지지만 촬영할 때만큼은 그런 느낌이 되게 좋다. 물론 연기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말할 것도 없고.

그렇다면 본인이 배우로서 생각하는 이상적인 연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힘든 듯이 연기하는 걸 싫어한다. 이자벨 위페르, 줄리엣 비노쉬, 장만옥 이런 배우들을 좋아하고 사랑하는데 그들 중 힘들어 보이듯 연기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들의 영화를 역시 너무 사랑하는데, 그녀들의 영화를 왜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그냥 영화 속의 그녀들이 누구인지 의문을 갖게 만들지 않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난 그녀들이 정말 영화처럼 그런 경험을 했을 것만 같고, 그렇기 때문에 연기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될 만큼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연기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모자람도 없고, 넘치는 것도 없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그녀들의 연기는 항상 그런 게 느껴진다. 나도 그런 연기를 하고 싶고.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그런 영화들을 많이 보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연기를 하고 싶다 생각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거 같다. 그래서 <바람피기 좋은 날>처럼 농담하는 듯한 연기도 자연스럽게 하고 싶었다. <두사람이다>도 고통에 시달리면서 연기했지만 ‘정말’ 같은 연기를 하고 싶었다. 그게 욕심이지. 너무 오버스럽게 하고 싶진 않다.

캐릭터를 선택할 때 어떤 캐릭터에 끌린다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끌리는 이유? 그런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뭔가 잡아당기는 것 같다. 마치 자석의 마이너스가 플러스를 끌어당기듯.

그렇다면 자신이 택한 캐릭터 중에 특별한 애착이 남는 캐릭터를 꼽을 수 있나?
내가 <두사람이다>까지 (정식 개봉한 작품만) 7편의 영화를 찍었는데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 모든 작품의 캐릭터가 다 내 안에 있었다. 그렇지 못했다면 연기 못했을 거다. 난 아직 능력이 없어서 내 안에 없는 어떤 것들을 만들어서 연기할 순 없다. 내가 나이 먹고 연륜이 돼서 다 경험해보지 않았거나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어떤 것들을 감독 이야기만 듣고 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의 경지에 이를 만한 단계가 되면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진 모르지. 지금의 난 경험해보거나 상상해본 적 없는,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단 느낌이 없는 연기는 못하겠더라. 지금까지 내가 할 수 있었던 연기는 내가 뭔가를 상상할 수 있었던 것들이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 춤을 추기 시작했거든.

캐릭터들이?
그 캐릭터들이 씬을 만들어서 연기를 하고, 난 그럼 그냥 그걸 따라 할 뿐이거든. 그런 게 없으면 연기할 수 없는 거다. 지금까지 했던 연기들은 그런 게 보여서 따라간 거였고.

자신이 할 수 있을 것 같단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란 이야기 같다. <두사람이다>는 육체적인 고통이 상당했을 것 같다. 영화에서 본인이 빠지는 씬이 없기도 했고.
일단 내가 빠지는 씬이 없고 촬영 일정이 촉박해서 힘들었다. 그런데 <두사람이다> 찍으면서 한번도 늦은 적이 없었다. 단 1분도. 한 시간이라도 일찍 왔으면 일찍 왔지. 그리고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이번에 알았다. 사실 이전에 다른 영화는 늦은 적 있었거든. 그래서 혼난 적도 있고. 그런데 이번엔 그런 적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아침잠이 없어졌거든. (웃음)

벌써? (웃음)
아마 걱정을 많이 해서 그랬을 거다. 그래서 두세시간 일찍 온 적은 있어도 일분도 늦은 적은 없었다. 그러니까 마음도 편하더라. 마음이 편하니까 혼자 있을 때처럼 모든 게 빨리 되고, 집중이 잘 되더라. 한마디로 그런 거지. 공부할 때 집중이 잘 되면 좋잖아. 벼락치기하듯. <두사람이다>는 그런 기분이었다. 맨날 맨날 벼락치기 하는 기분이었지. 버겁게 벼락치기하는 게 아니라 벼락치기해서 시험 잘 봤을 때, ‘내가 어떻게 기억했지?’ 이런 생각할 때 있잖아.

순간 집중했는데 그게 끝나니까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는 느낌?
맞아! 정확해! (웃음) 그런 기분이었어. 기자 시사회 때 누가 ‘어떻게 그렇게 잘 울었어요?’ 라고 물어보더라. 85분 중에는 40분 이상 우는 장면이 나왔으니까 너무 많이 울긴 했지. 하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다. 가인이라면 많이 울었을 것 아니에요. 가인에게 많이 몰입했던 거 같다. 그리곤 항상 ‘내가 왜 울었지?’ 이런 느낌이었지. 하지만 가인을 연기하면서 힘든 건 눈물 흘리기 전에 계속 고통스러워하는 가인의 마음을 견디는 것이었다. 물론 고통스러워하는 걸 영화에 담기 위해 표현하는 게 힘들다는 것이 아니라, 그걸 내 안에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는 게 힘들었지.

그 캐릭터의 내면에 담긴 고통을 직접 느껴야 한다는 것이?
그걸 항상 갖고 있어야 했다. 몇 달 동안, 그게 되게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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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에 몰입하면 그 캐릭터에 본인 스스로가 많이 빠져드는 편인가?
정말로 그만 했으면 싶을 정도로 굉장히 많이 빠져들지. ‘그만 좀 해! 윤진서!’ 이렇게 나 자신에게 말할 정도로 많이 빠져드는 타입이다. 그래서 문제야. 그게 장점이자, 단점인 거 같아.

그런 경우엔 캐릭터에서 빠져 나왔을 때 허탈감이 크거나, 그 반대로 빠져 나왔다는 안도감이 들 것 같다.
다.행.히.도! 윤진서란 사람은 건망증이 심해서 촬영이 끝나면 딱 잊는다. (웃음) 마지막 촬영이 끝나는 순간 잊는 거지. 난 건망증이 정말 심하다. 일년에 핸드폰 몇 번씩 잃어버리는 사람, 내가 그렇고. 맨날 지갑도 잃어버려서 카드 재발급 받는 사람도 나고. (웃음) 난 그런 타입의 인간인데, 연기할 때도 마찬가지인가 보더라.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잊어버리지 않아야 될 순간에 대해선 잘 잊어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촬영 중엔 버리고 싶어도 절대 못 버린다. 사실 <두사람이다>는 제발 집중에서 빠져 나오고 싶었던 영화였거든. 물론 촬영할 때 말고 쉬고 있는 순간만큼, 그냥 2~3일 촬영 없을 때 제발 좀 편하게 있자고 스스로 다스리는데 그게 안되더라. 2,3일 있다가 있을 촬영을 그 때도 생각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두사람이다>는 특이했던 게, 내가 그 전까지 했던 작품들은 마지막 촬영이 끝나면 다시 나로 돌아와 있었거든. 그때부터 난 걔(자신이 연기한 영화 속 인물) 모르는 사람인 거야. 그런데 <두사람이다>는 그렇게 안됐어.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여행을 좀 오래 갔다 왔다.

어디?
유럽.

파리도 갔다 왔나? 프랑스 배우들 좋아하는 만큼 프랑스도 좋아하겠지.
편하다. 불어를 할 줄 아니까 그냥 편한 거 같다.

익히 들은 바로는 4개 국어를 한다던데.
그건 한국어까지 포함해서. (웃음) 영어, 불어, 일어.

대단하다. 특별한 계기라도 있나?
그 정도만 하면 여행하는데 불편함은 없는 것 같더라. 무엇보다도 언어는 문화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말이 아니라. 한국말에 존댓말도 있고, 반말도 있는 것처럼. 어떤 언어든지 그렇다. 그 나라의 문화가 언어에 있다. 언어를 잘 한다는 건 그 나라의 문화를 빨리 받아들인다는 거지. 그런 면에서 언어에 익숙한 건 배우로서도 좋은 일인 거 같다. 한번도 언어를 배우며 힘들어 한적은 없었다. 물론 모국어처럼 잘 하는 건 아니고 여행을 다니면서 사람 사귀는데 불편함이 없는 정도다. 되게 잘 하는 건 아니고. 오해하진 마라. (웃음) 어쨌든 언어를 통해서 사람들을 사귈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다.

일단 대화가 되면 더욱 깊게 다가갈 수 있으니까.
그렇지. 그리고 그 사람들도 더 쉽게 이야기하고, 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으니까. 더 쉽게 표현할 수 있고. 물론 그런 것들을 얼마나 좋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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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아도 외국을 나가고 싶을 것 같다. (웃음) 그런데 <두사람이다>를 통해 펜싱도 했는데, 운동 좋아하나?
좋아하지.

사실 별로 안 좋아할 줄 알았다. 여행이나 독서, 음악 같은 정적인 취미를 즐기는 사람이라 그런 동적인 취미는 없을 줄 알았지. 특별히 즐기는 운동 있나?
운동하는 자체를 즐긴다. 일단 항상 개인 트레이너와 운동을 하는데, 개인적으론 등산을 좋아한다. (전)도연 언니와는 등산하다 친해지기도 했고. 그리고 물에 들어가는 걸 좋아하는데 그래서 수영도 좋아한다. 난 물속에 있을 때가 공기 중에 있을 때보다 편한 거 같아. (웃음) 그리고 이어폰 꽂고 음악 들으면서 달리는 것도 좋아하고.

그런데 이번에 <두사람이다>는 물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고 들었는데.
말하면 되게 긴데, 너무 힘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촬영을 위해서 투명하게 제작된 욕조가 있었는데 그 안에 1톤 가량의 물을 채웠다. 그리고 내가 그 안에 들어가서 수평으로 누워서 촬영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촬영한 걸 천장으로 거꾸로 뉘인 거지. 난 수영도 잘 하는 편이고 물속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서 당연히 거부감 없이 촬영을 했지. 그래서 물 속에 들어가 뒤로 누웠는데 그러면 코로 물이 막 들어온다. 그 때 내 입이 봉해져 있는 상태였고 눈엔 눈알만한 렌즈를 끼고 있었다. 본인이 끼지는 못하고 전문가가 와서 끼워주는 건데 그게 되게 아프다. 끼고 있는 상태에도 말을 할 수 없게 아팠다. (웃음) 근데 그걸 끼고 입도 봉하고, 코로 물이 들어온다. 물속에 있는데, ‘나 이러다 죽는구나’ 싶더라. 그래서 당장 나왔다.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감독님, 저 못하겠어요.’ 그랬더니 감독님도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면서 CG팀으로 막 달려가더라. 그래서 CG팀과 회의를 했는데, CG팀에서 촬영 장면 없이는 그 장면을 만들 수가 없다고 결론이 났다. 결국 감독님이 내게 와서 사정했다. ‘진서씨, 몇 초만 갈게요. 한번만 해주세요.’ 그런데 한번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까 일단 무서움이 앞서더라. 그래서 도저히 들어갈 수 없어서 일단 못 하겠다고 버티는데 그 상황에서 스텝들은 쥐 죽은 듯 조용하고, 그 와중에 ‘진서씨 한번만 부탁이에요.’라는 감독님 목소리는 스피커를 통해서 쩌렁쩌렁 울려대니까 안 할 수가 있나. (웃음) 감독님이 너무 미웠다. 그 상황만큼은. (웃음) 결국 스텝들한테 너무 미안해서 했다.

정말 그 순간만큼은 <두사람이다>를 선택한 걸 후회했을 것 같다.
후회했다. 배우란 직업에조차 회의를 느꼈으니까. ‘뭐야? 배우는 영화 찍다 죽어도 돼?’ 이럴 정도의 반발감이 들었지. ‘내가 영화 찍다 죽으면 너네 되게 시원하겠다.’ 이런 생각까지 할 정도로. 정말 너무 싫었다. ‘난 죽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그런 사람한테 이렇게까지 시킬 수 있지? 배우는 정말 소모품이구나.’ 그 순간에 이런 안 좋은 생각들을 하면서 결국엔 했지. 아니나 다를까 다시 물이 막 들어오고 참다가 다시 나왔다. ‘다신 못해요. 죽어도 못하겠으니 더 이상 안되면 이 장면 없애버리세요. 정말로 못하겠으니까.’ 이런 심정으로 물에서 나오는 순간, 그 동안 내 코로 들어갔던 물이 안에서 내 얼굴을 밀어내는 거다. 처음으로 안압(眼壓)이란 걸 느꼈다. 정말 눈알이 빠져나올 거 같고 앞이 안보이더라. 안으로 들어간 물이 코에서 역류해서 눈 안에서 계속 도는 거다. 정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휴지 한 각을 다 꺼내서 코를 풀었다. 정말 휴지 한 각이 모두 흥건히 젖을 정도로. 그리고 그제서야 안압이 사라졌다. 정말 시력을 잃는 줄 알았다. 얼마나 무서웠겠어. 그래서 그 다음날 쉬라고 할 줄 알았는데 아침 11시부터 촬영하더라. (웃음)

그런데 그 씬에서 그것 말고도 또 고생담이 있다고 아는데, 위에서 쏟아낸 피를 침대에 누운 채로 맞는 장면도 실제로 직접 연기하지 않았나.
빨간 물이 쏟아져도 눈을 감지 말라더라. 그래서 ‘눈을 안 감아야지’ 하다가도 정말 많은 양의 빨간 피가 얼굴에 쏟아지면 마음과 달리 눈이 감긴다. 그래서 정말 하루 종일 그것만 찍었다. 결국엔 잘 찍었지만, 그 후로 며칠이 지나도 귀랑 코에서 핏물이 나왔다. 물론 다쳐서 나온 게 아니니까 아프진 않았지. 그냥 나오는 거니까. 하지만 기분이 너무 안 좋다. 생각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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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생각 안하고 싶다. (웃음) 여러 가지로 고생 많았다. 지금까지 연기한 것 중 가장 노동적인 연기를 한 셈인데, 솔직히 본인이 생각하는 연기는 아니었을 것 같다.
내가 동적인 인간이긴 하다. 운동 좋아하고, 등산 좋아하고, 수영 좋아하고, 달리기 좋아하고, 그럼 말 다했지. 동적인 건 좋아하는데, 다만 고통스러운 걸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누가 좋아하겠어.

그렇다면 배우로서 스스로 연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 영화는 뭔가?
대중적으로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었는데, 연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던 영화는 이자벨 위페르가 나온 <피아니스트>, 그리고 레나 올린과 줄리엣 비노쉬가 나온 <프라하의 봄>. 아무래도 내가 여자이다 보니까 여배우를 보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녀들을 보며 처음으로 멋있단 생각을 했다. 단지 그녀들의 연기가 멋있었다기 보단 그런 연기를 통해 살아가는 배우들이 멋있었다. 마치 맨 얼굴의 연기라고 할까. 그냥 그 사람들에겐 그게 느껴진다.

확실히 영화를 볼 때, 배우의 연기에 눈이 많이 가는 편인가 보다.
배우의 어떤 역동력 같은 걸 먼저 느끼는 편이다. 정말 좋은 영화를 봤을 때, 그런 작품으로부터 오는 느낌과는 다르다. 배우의 역량을 발휘하는 원동력은 개인적으로 배우들한테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연기를 보고 감독들이 영화를 칭찬하는 건 아니잖아. 좋은 영화를 보고 하지. 연기는 항상 똑같다. 이런 연기 한번 해보고 싶단 생각은 영화와 연기를 보고 하지. 대신 좋은 작품을 보면 이런 작품에 출연해보고 싶다고 생각을 하게 되고. 굉장히 좋은 배우를 보고 이런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을 하듯.

전도연 씨와 친하다고 했는데, 배우 전도연은 어떻게 생각하나?
도연 언니는 친해지고 나서 더 존경하게 된 선배다. 한국에서 몇 명 안 되는,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배우인 거 같다. 영화에 희생할 줄 아는 배우, 되게 힘든 건데. 그런데 담배 한대만 피워도 될까?

상관없다. 담배 피운 지는 오래됐나?
핀지 두 달 됐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비스티 보이즈>의 윤종빈 감독님이 담배를 정말 잘 피웠으면 좋겠고, 욕도 되게 잘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 이야길 듣는 순간, 그 다음날부터 담배랑 욕을 입에 붙이고 살았다. (웃음)

그거야말로 연기에 희생하는 배우의 자세 아닌가? (웃음)
엄청난 희생이지! (웃음) 몸이 망가진다. 술이랑 담배, 욕까지 붙이고 사니까.

배우라는 게 본인을 망가뜨려도 될 정도로 그렇게 큰 욕심인가?
내 인생의 목표이고, 그래서 행복해지는데. 이게 다 그냥 날 위한 거다. 삶이 행복해지려고 이러는 거니까.

지금 장률 감독의 <이리>에도 캐스팅된 걸로 알고 있다. 사실 <비스티 보이즈>도 그렇고, 대중적인 느낌의 영화는 아니다. 배우로서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뭔가?
일단 작품을 보고 결정하는 것 같다. 역할이 아무리 좋아도 작품이 별로라고 생각되면 어쩔 수 없이 역할도 내키지 않는 것 같고, (웃음) 역할이 별로라도 작품이 좋으면 내 역할마저도 살아나는 것 같다. 그래서 전체적인 작품을 보고 나서 내가 맡은 역할이 맘에 드는지 본다.

일단 편수로 따지자면 많은 작품을 했다.
그렇지. 편수로 따지자면. (웃음)

그 작품들 안에서 개인적으로 후회되는 작품은 없나?
후회되는 작품은 없다. 왜냐면 내가 만났던 감독들은 모두 좋은 감독님들이었거든. 왜 좋은 감독이란 소리를 듣는지 작품을 하고 나니 알 것 같더라. 난 시간으로 나이를 먹는 것 같지 않고 작품으로 나이를 먹는 거 같다. 한 작품 하면 나이를 먹는 거다. 그래서 후회되는 작품은 한 작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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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본인에게 가장 많은 나이를 먹게 해준 작품은?
<두사람이다>. 다른 영화는 한 살쯤 먹게 해준 것 같은데, <두사람이다>는 두 살쯤 먹게 해준 것 같다. 물론 남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지만 작품과 상관없이 개인적으론 <두사람이다>를 찍으면서 연기가 많이 늘었다는 생각을 했다. 배우로서 표현하는 방법을 컨트롤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출연 분량이 많아서 그런가? (웃음)

가장 큰 경험이라 그랬을지도 모르고. 본인은 스스로가 몇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셀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여행을 다니는 건 새로운 나를 찾기 위해서다. 어쩌면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일 수도 있지. 진정한 나를, 새로운 나를 찾는 것. 가끔 나한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을 때도 있다. 어떤 여행은 혼자 책보는 게 좋을 때도 있고, 어떤 여행은 술 먹고 취해서 클럽을 전전해야 좋을 때가 있다. 뭔가 마음에 와 닿는 여행이 될 때도 있고. 그건 정말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다르지만. 난 사실 여행을 하기 위해서 영화를 찍는다. 영화를 찍다가 정말 힘들면 ‘내가 이걸 안 하면 돈을 어떻게 벌겠어, 여행 가려면 돈을 벌어야지.’ 이렇게 인내하면서 참고 영화를 찍는다. (웃음)

여행 자금을 위해서 연기를 한다?
내가 어디 가서 얼마나 돈을 벌겠나. 그런데 여행을 하면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영화 생각만 하고 있다. 여행 중엔 끊임없이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넌 누구야?’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난 영화배우가 맞나 보다. 난 영화배우 구만.’ 이렇게 되더라. (웃음) 그리고 그런 생각들을 할 때 행복하다. 무엇보다도 결국 내가 나답지 않은 걸 찾아서 들고 왔을 때 되게 행복하고, 그런 의미에선 영화가 여행일 수도 있다.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찾는 사람의 입장에선 영화와 여행은 같은 목적이겠다.
맞다.

앞으로 계획된 여행 있나?
계획된 여행이 2개 있다. 사실 3일 전에도 필리핀 섬에 있다가 왔다. <두사람이다>가 개봉하면 며칠간 무대인사를 한다. 그 일정 끝나는 대로 일본 가려고 생각 중이지. 내가 일본어 까먹을만하면 일본에 가거든. (웃음) 그나마 가까우니까. 그런데 9월 6일날 서울영화제 개막식이 있다.

이번에 홍보대사를 맡은?
맞다. 그 일정 때문에 일단 귀국했다가 그 후에 또 파리에 갈까 생각중이다. 파리에 갔다가 이번엔 모나코도 가보고 싶다.

일상이 영화와 여행의 반복이다. 그런데 본인의 말대로 새로운 자신을 찾는다는 목적에서 영화도 여행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치 평생 여행을 다니는 사람같이 느껴진다.
그게 내 인생인 거 같다. 그럴 때가 제일 행복하고. 그런데 요즘 어머니께서 ‘네 마이너스 통장을 어떻게 해야 하니? 그만 여행 다니고 이제 돈을 모아야 하지 않겠니?’ 이런 말씀 많이 하신다. (웃음) 그런데 여행하는 게 좋은데 어떡하나? 돈을 꾸준히 벌 수 있는 어떤 안정보다도 어떤 모험 같은 연기와 여행을 하는 게 내 인생인 거 같다. 그냥, 그래. 그게 나인 거 같다.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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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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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잃어버린 서울의 밤거리. 유흥의 자본으로 세워진 네온사인들은 어두운 밤거리를 밝히고 그 아래엔 밤을 잊은 호스티스들이 향흥의 환락가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받아먹고 살아간다. <비스티 보이즈>는 도시의 밤이 만들어낸 빛의 허상을 좇아 거리로 내몰린 불나방 같은 청춘들에 대한 이야기다.

전작 <용서받지 못한 자>를 통해 군대라는 남성적 특이집단을 들춘 윤종빈 감독은 <비스티 보이즈>를 통해 남성 호스티스라는 또 다른 특이집단을 들춘다. <용서받지 못한 자>와 <비스티 보이즈>는 남성성에서 뻗어나간 양극단의 환경을 배경으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대척점에 놓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은 진배없다는 점에서 동일한 속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체제적 복종을 완수하기 위해 개인을 억누르는 군대와 수익적 복종을 위해 개인을 억누르는 남성 호스티스의 세계는 어떤 면에서는 닮았다. 다만 그것이 남성성이란 지점의 양극단이란 점에서 명확한 거리감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호스트가 자신의 손님을 물주로 삼는다는 ‘공사’, 자신이 일하는 업소에 돈을 끌어서 쓴다는 의미의 ‘마이킹’, 실적에 따른 성과급수당을 지칭하는 ‘티씨(T/C)’ 등, 그 세계만의 전문용어가 소통되는 <비스티 보이즈>의 세계는 분명 특화된 구역이다. <비스티 보이즈>는 호스트바라고 불리는 특수한 세계를 스크린에 호기롭게 재현하며 리얼리티의 흥미를 유발한다. 하지만 <비스티 보이즈>가 작동시키는 리얼리티는 단순히 영화가 두른 병풍에 불과하지 않다. 강남 일대의 풍경을 담아낸 네거티브 질감의 영상은 그 거리에 팽만한 욕망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들춘다. 때때로 페이크 다큐나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같은 현실감이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철저한 현장조사를 거쳐 만들어낸 영화의 리얼리티가 탁월한 까닭이며 동시에 연기라는 장막을 걷어내고 실제 자신을 캐릭터에 이입시켰다고 생각될 정도로 캐릭터에 잘 스며든 배우들의 연기가 누구 하나 손색없는 덕분일 것이다.

몰락한 강남 2세인 승우(윤계상)는 잠시 호스트의 삶에 기대고 있을 뿐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하면서도 자신의 현실에서 발생하는 괴리감을 때론 감당하지 못한다. 업소의 에이스로 추대될 만큼 호스트로서의 자질이 충분하지만 그 위장된 얼굴로 가린 내면의 자격지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 삶에 저항하듯 다혈질의 성격을 토해내곤 한다. 그 와중에 지원(윤진서)을 만나 그녀를 통해 삶의 통로를 찾아나가지만 진심을 가늠할 수 없는 바닥에 내몰린 승우는 끝없이 의심을 헤매다 결국 치정의 미궁으로 스스로 빠져든다. 도박의 늪에 빠져 큰 빚에 억눌린 재현(하정우) 역시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으로부터 도피하려다 극단에 내몰린 경우다. 하지만 재현은 현실에 타협하며 끝없이 출구를 마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비굴하게 내몰리면서도 눈치를 살피는 약삭빠른 근성은 천덕꾸러기처럼 그를 괄시하게 만드는 반면, 그가 호스트로서 천연덕스럽게 살아갈 수 있는 생존력의 기반이 된다.

강남의 밤거리에 불을 밝힌 호스트바는 물질적 욕망이 넘실거리는 향락의 무대와 같다. 청춘을 볼모로 한 청년들은 그곳에서 몸바쳐 주머니를 채운다. 청년들은 저마다 가지각색의 표정으로 손님의 시중을 들지만 꿈은 결코 그 자리에 있지 않다. 그곳으로 흘러 들게 된 사정이야 어찌됐건 재현이나 승우에게 호스트바는 자신의 삶을 꿈꾸게 할 기회의 땅임과 동시에 언젠간 박차고 나가야 할 바닥이자 나락의 비상구로 통하는 길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없어 희망도 없는 청년들은 암담한 현실로부터 벗어나 강남의 네온사인 아래 모여든다. 꿈을 쫓기 보단 돈을 쫓는 법을 먼저 배운 청춘들은 어떤 가치도 깨닫지 못한 채 돈을 향해 뛰어간다.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란 말처럼 승우나 재현이 소비하는 호화로운 삶은 그들의 현실에서 껍데기로 소화되는 것에 불과하다. 고급 차를 몰고 명품 옷을 입고 비싼 임대료를 내고 강남에서 살아도 그들은 결코 부유한 강남의 아들이 될 수 없다. 자본이 꾸며놓은 진풍경 아래 살아가지만 그들의 호사는 그 거리의 주인의 모습이 아니라 향락을 서비스하는 거리의 노예에 불과하다. 에이스가 되고, 텐프로(10%)가 된다 한들, 수입의 주체가 아닌 소비의 주체로 몰락할 수 밖에 없는 자본의 저변에 불과하다. 그건 어머니의 가게에서 이름은 같으나 얼굴이 다른 지원(윤진서)에게 목걸이를 사주지 못하는 승우의 꿈과 같다. 마치 자신의 것처럼 모든 것을 누리지만 결코 그것을 소유하지 못하는 변두리의 주체. 끝없이 물욕이 샘솟는 그 거리에서 그들은 자본의 주인이 되길 원하지만 소모품으로 전락할 따름이다.

이는 88만원 세대의 절망감과 무관하지 않다. 원대한 꿈보다 자본의 속박을 먼저 체감하는 청춘은 그 수하로 무기력하게 편입되어 덧없는 물욕을 꿈꾸지만 쳇바퀴 도는 제자리의 삶은 꿈을 아득하게 밀어내고 현실의 무게는 더더욱 삶을 짓누른다. 끝없는 경쟁을 고수하는 교육과정을 체득하고 사회로 나와 취업난에 허덕이며 자본에 의한 패배주의를 체감한 젊은 세대의 무기력함은 막연한 미래를 꿈꾸며 현실을 소모하는 호스트의 삶과 진배없다. 경쟁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고달픈 삶을 자연스럽게 익힌 청년들은 자본의 첨탑에 기어오르기 위해 스스로를 탕진할 따름이다. 손님들과 잔을 주고받으며 진심을 연기하는 호스트들이 메말라가는 자신의 영혼을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은 자신이 내몰린 구석에서 처량함조차 잊으며 피폐한 삶에 스스로를 내던진다.

결국 반짝거리는 조명처럼 환락이 넘실거리는 서울의 밤을 뜨겁게 누비던 승우는 갈 곳을 잃고 나서야 스스로가 어두운 곳에 내몰렸음을 깨닫고 좌절한다. 한편, 현실로부터 달아나듯 사라진 재현은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에서조차 진심을 가장한 호스트의 얼굴로 살아간다. 그건 압구정의 밤처럼, 신주쿠의 밤도 자본으로 세워진 네온사인 불빛에 불나방들이 몰려드는 덕분이다. 그리고 지금도 영혼을 저당 잡은 청춘들은 자신의 허영심을 충족시켜줄 공사상대를 찾아 술을 따른다. 어지러운 세상, 파이팅 하면서. 그렇게 밤조차 밀어낸 도시의 허영심에 미혹된 불나방 같은 청춘들은 그것을 희망이라 믿고 그쪽으로 날개를 퍼덕이다 제 몸을 태우고 스스로 소진되거나 끝없이 몸을 부딪히며 살아간다.

(무비스트)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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