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1.22 <키친>예쁜 음식은 맛보기 불편하다.
  2. 2008.05.31 박진희 인터뷰

집안 가득 햇살이 가득 찼다. 보기만 해도 따스한 광경이다. 집안 구석구석까지 빛이 들어서있다. 그 광경만으로 반 허공에 뜨는 기분이다. 예쁘게 내려앉은 빛이 곱고 화사하다. 하지만 동시에 어딘가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은 이질감이 느껴진다. 그 채광 좋은 집엔 젊은 부부가 산다. 자상한 상인(김태우)과 천진난만한 모래(신민아)가 아기자기하게 살아가는 둘만의 공간이다. <키친>은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이들이 어느 정도의 진심을 공유할 수 있는가에 관한 사연이다. 한 공간을 공유하고 있지만 때로 다른 것을 보고 생각하게 된 어떤 이들의 마음을 비추려 한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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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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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바쁘겠네요.
조금 바쁘게 지낼 때도 있었던 거 같긴 한데, 뭐, 촬영할 때보다야 바쁘겠어요.

드디어 내일 <궁녀>가 개봉하는데 기분은 어때요?
사실 어제까지만 해도 긴장돼서 되게 떨리고 걱정도 컸던 거 같아요. 이상하게도 막상 오늘, 개봉 하루 전날이 되니까 극히 평온하네요. 내 자식이 내 손을 떠나서 완전히 독립을 했으니까 이제 와서 좌지우지 할 게 없기도 하고, 일단 열심히 만들었으니 이젠 편하게 그냥 관객들한테 맡겨야 되는 거지, 내가 불안해하거나 혹은 어떤 감정을 갖는다고 해서 그다지 제 신상에 도움이 되진 않더라고요. 딱 오늘이 되니까 평온해진 거 같아요.

오늘 몇 시간 뒤에 일반시사회 무대 인사도 있다고 들었는데, 바로 옆에 있는 극장에서.
예. 그런데 오늘 여기 와서 저렇게 걸려있는 걸 보니까요. (극장에 걸린 <궁녀> 대형 포스터를 가리키며) ‘나 참 많이 컸구나’란 생각이 들어요. 진짜 너 사람 됐다, 그런 느낌?

너무 겸손하신 거 아니에요? 그래도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잖아요?
아니요. 낯설어요.

그래요?
음, 어쩌면 낯선 느낌이라기보단, 약간……, (고심하다가) 아! 그런 거 같아! 너도 이제 이렇게 대단한 배우들과 같이 나란히 있을 때가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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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잘 웃는 편인 거 같아요. 씩씩해 보이는 느낌이랄까.
예. 그런 게 있나 봐요. 많이들 그렇게 말씀해주세요. 씩씩하고 건강해 보이는, 그런 이미지가 있다고. 너무 다행이에요. 사실 제가 추구하는 인간형도 그렇고, 이렇게 건강하고 씩씩한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나약하고, 그러니까 외모적으로 왜소한 게 아니라 성격 자체가 그런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뭐든지 도전하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닌 긍정적인 마인드를 좋아하지, 아, 나 못할 것 같아, 이런, 해보지도 않고! 그런 적극적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하여튼 건강하면서 긍정적인 이미지라는 건 적극적이고 뭔가 씩씩하게 해내려는 그런 의지가 있다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제 개인적으론 굉장히 듣기 좋아하는 말이에요.

그래서인지 천령이,
되게 씩씩해요?

너무 어울렸던 거 같아요.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잖아요. 천령의 적극적인 모습이 그냥 박진희 그 자체로 느껴지기도 했어요.
가끔씩 ‘이 영화를 선택하신 이유가 뭐에요?’라고 물으시는 분들이 있어요. 사실 그 질문의 의도는 ‘천령이 굉장히 진희씨랑 닮은 데가 많다. 바르고 정의로운 면이라든지 여러가지로 굉장히 박진희랑 비슷하다. 그런데 혹시 그런 천령의 캐릭터가 자신과 비슷하다는 점이 시나리오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주요한 요소로 작용하지 않았느냐’는 분들의 질문과 비슷한 건데요. 사실 천령은 이성적이긴 하지만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고는 감정에 치우쳐서 앞만 보고 달리는 스타일이잖아요. 사실 전 그렇지 않거든요. 그리고 한편으로 이제는 틀이 생긴 거 같아요. 박진희한테. 박진희라는, 사각의 액자 틀이 만들어진 거죠. 이제 박진희, 하면 좀 바르고 정직한 애라는 틀이 만들어져서 제가 그런 연기를 하면 사람들이 그런 이미지로 더 봐주고 그런 모습들이 이제 더 많이 부각된다고 할까요? 그래서 천령도 사실 그런 건 아닌데 굉장히 착하고 정의롭다는 이미지가 더 부각된 게 아닌가 싶어요.

올 해 들어서 예전보다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여요. 물론 <만남의 광장>은 개봉일이 미뤄진 케이스지만 결국 올해만 드라마 한편과 영화 두 편으로 관객 앞에 섰네요. 하지만 올해는 분명 박진희란 배우를 각인시키는 해가 되고 있는 것만 같아요. 좀 더 이미지가 구체화된 것 같다고 할까요?
<돌아와요 순애씨>가 잘되고, <쩐의 전쟁>이 잘 되면서 잘 돼서 참 좋다, 다행이다, 즐겁다는 것도 느꼈지만 다른 한편으론 잘 되는 게 이런 거구나란 생각을 했어요. 그 이유가 그런 거였어요. 나는 늘 내가 원하는 연기를 했었고, 난 변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내 다른 모습들을 봐주고 관심 있어하고, 그래서 어느 순간엔 이것저것도 아니었던 내 이미지를 찾아주기도 하고, 나한테 없었던 이미지를 찾아주기도 하고. 그래서, ‘아, 주목 받는다는 게 이런 거겠구나’, 그런 느낌이었어요, 사실은. 지금까지 제가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 온 것이 아니라 이젠 나의 이미지를 대중들께서 많이 봐주시는 거 같아요. 그런 게 비단 연기를 잘해서였다면 배우로서 행복하고 뿌듯했을 텐데 사실은 그건 조금 아닌 것 같아요. 그 동안 작품을 안 해왔던 건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와서 그런 말씀들을 해주시는 건 아마도 제가 최근에 출연한 작품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뭐랄까, 좋은 운을 탔다고 해야 하나? 그러다 보니 이제 관심들을 가져주시는 일부분에 속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심지어 난 옛날과 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내 모습이 새롭다고 느낀다거나, 아니면 이제야 박진희의 진정한 모습을 찾았다라고 느끼는 게 아닐까요?

사실 데뷔 초의 이미지는 여성스럽고 가녀린 이미지가 부각됐던 것 같아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점점 억척스러운 내면을 드러내는 듯 했어요. 그런 변화가 어쩌면 세월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럽게 진행된 것처럼 보였어요.
당연하죠. 질문의 의도를 제가 제대로 받아들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제가 어렸을 땐 여성적이고, 가녀리고, 조금 얇은 이미지였다면 지금은 굵고 억척스런 이미지가 됐죠. 그런데 제가 아직까지도 소녀처럼 가녀리게 나오면, 그건 보기 힘들거든요. (웃음) 저도 나이를 먹었고 저보다 가녀린 분들이 가녀린 연기 많이 하고 계시는데 이젠 가녀리지도 않은 제가, 난 아직도 가녀리고 싶다고 가녀린 연기를 한다면 보시는 분들이 그다지 즐거울 것 같진 않아요. 그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이미지를 변화시키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이제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변하고, 그러니까 캐릭터도 변하고, 이렇게 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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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예전의 모습들을 다시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참 연기적으로 순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뭐냐 하면 요즘은요, 감정이 때묻었나 봐요, 옛날에 비해서. 그래서 웬만큼 슬픈 영화를 봐도 그렇게 눈물이 안나요. 근데 옛날에는 조금만 슬퍼도 어떻게 그렇게 울었는지 몰라요? 그러니까 낙엽이 떼구르르 굴러가도 눈물이 났다는 것처럼, (웃음) 진짜 조금만 슬퍼도 너무 와 닿았다면 요즘엔 웬만큼 슬퍼도 눈물이 안 나는 거에요. 사실 제가 얼마 전에 부산영화제 개막작을 보면서 정말 엉엉 울었었거든요.

아, <집결호> 끝까지 보셨군요?
예. 근데 그게 사실 슬픈 영화는 아니잖아요. 근데 거기서 느꼈던 건 인간의 참혹함이란 거죠. 생과 사에 대한. 멜로, 사랑으로 슬픈 건 거기에 비하면 고급스러운 감정이죠. 이별해서 아프고, 그거에 비하면 너무나 고급스러운 감정이잖아요.

마치 밥을 먹는 것과 커피를 마시는 것의 차이처럼요.
그러니까요! 그건 진짜 먹고 살아야 되고 그런, 오늘 죽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이니까. 그건 너무 슬프잖아요, 그 사람들이 얼마나 처참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저렇게 언제 죽을지 모를 그 상황 속에서 자기 자신을 달래도 보고, 다그쳐도 보고, 안심시켜도 보고, 그랬던 거잖아요. 그런 극적인 상황을 맞닥뜨리니까 너무 슬픈 거에요. 근데 그걸 보면서 엉엉 울고 나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배우로서 때묻었구나, 짜증난다, 박진희, 너. 이런 생각을 했어요.

예? 왜요?
옛날 작품에서 연기하는 걸 보면, 별 것도 아닌 대사를 할 때도 막 울어요. 물론 연기적인 테크닉은 굉장히 부족했을지 모르겠지만 되게 감성적으로 마음껏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참 많이 틀려진 것 같고.

어쩌면 그게 때묻었다기보다 성숙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죠. 사실 옛날에는 삼각 관계 같은 걸 잘 이해 못했었어요. 물론 성격상도 그렇지만, ‘삼각 관계를 왜 만드는 거야? 왜?’ 그랬어요. 만약에 기자님과 어떤 여자분이 좋아해서 만나고 있는데, 제가 기자님을 좋아하게 됐다고 쳐봐요. 그럼 그걸 왜 고백하는 거야? 그러니까 노출된 삼각관계 말이에요. 예를 들어 내가 짝사랑이라면 그건 거기서 그만 두면 되는데, 품고 있지 않고 ‘왜 말해! 말해서 어쩌자는 거야!’ (웃음) 이런 식으로 그런 감정을 이해 못했었어요. 근데 요즘에는 달라졌죠. 그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암흑 속에 살고 있었을 그녀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만의 이유가 왜 없었겠어요. 그녀도 왜 고민을 안 했겠어요. 이거 말하면 저렇게 사랑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몹쓸 짓 하는 건데, 왜 생각을 안 했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 밖에 없었던 그녀만의 뭔가를 고민한다는 거죠, 지금은. 옛날엔 그건 너무 이기적이고 나쁜 거라고 치부했다면 지금은 그건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고 그냥 그녀의 감정에 충실했던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걸 우리가 옳거나 그르다고 말할 순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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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시선에 변화가 생긴 것 같네요.
맞아요. 옛날에는 순수해서 직선적으로 감정을 받아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슬픈 건 슬프게, 행복한 건 행복하게, 이런 순수한 마음으로 감정을 받아들였다면 지금은 행복하지만 슬픈 거, 슬프지만 행복한 거, 이런 걸 굉장히 찾게 되는 거 같아요. 외모적으로도 지금은 참 많이 사람이 됐어요. (웃음)

아니, 그럼 그전엔 사람이 아니었나요? (웃음)
예전에는 볼 살도 너무 통통했고.

에이~, 옛날에도 충분히 예뻤어요.
아이구~! 그냥 뭐 칭찬이시겠죠. (웃음)

아니에요. 알고 보면 박진희 씨 좋아하는 남자 팬들이 얼마나 많았는데요. 솔직히 전 박진희 씨가 낯설지 않은 이유가 하나 있어요.
뭔데요?

고등학교 때 1년 동안 같이 앉게 된 친한 친구 녀석이 항상 옆에서 박진희 씨 노래를 불렀거든요.
(웃음) 아, 정말이요?

그래서 오늘 그 친구한테 박진희 씨 인터뷰한다고 문자도 보냈었죠. 그랬더니 그 친구가 난 직접 손잡아 볼일도 없을 테니 싸인 이라도 받아주라는 간곡한 부탁을 하나 챙겨왔죠.
당연히 해드려야죠! (웃음) 사실 그런 게 있는 거 같아요. 저도 저랑 특별한 인연은 없지만 저랑 제일 절친한 친구가 너무나 좋아해서 맨날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있어요. 걔가 성시경 씨를 좋아해요. 그런데 성시경 씨가 라디오 DJ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무슨 일만 있으면 거기 나갈 일 없는지 물어봐요. 꼭 자기를 위해서 한번만 나가달라고. 이번에 <궁녀>할 때도 그랬어요. (웃음) 그런데 얼마 전에 TV를 보는데 야심만만에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저랑 별 관계도 없고 한번도 만난 적도 없는데 관심 있게 보게 돼요. 그러니까 그런 게 있나 봐요. 내 친구가 너무 좋아하면 난 관심이 없어도 그냥 유심히 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괜히 좀 나랑 마치 인연이 있는 듯한 느낌 있죠? (웃음) 그런 거 같아요.

그래서 지금도 왠지 만나야 될 사람을 만난 것 같아요. (웃음)
그러게. (웃음) 나도 어제 야심만만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게 성시경 씨가 무슨 말을 하면 유심히 듣고,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보는 거에요. 그리고 그에 대한 토론을 해요. 남자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여자들끼린 그래요. (웃음) 야심만만 끝나고 그 친구랑 통화하는 거에요. 약간 선수 아냐? 이러면서. (웃음) 아무튼 그러면 남 같지 않은 그런 게 있는 거 같아요.

그래요. 참 남 같지가 않아요. (웃음)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죠. (웃음) 전 <궁녀>가 여성영화라고 생각해요. 시대극이면서 전문 장르지만 그전에 눈에 들어오는 건 여자들이었거든요. 그렇게 스크린의 전면을 여자들이 뒤덮어버리는 자체만으로 뭔가 이색적이었어요.
제가 예전에 류승완 감독님이 전도연 씨와 이혜영 씨와 했던 <피도 눈물도 없이>를 보면서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에서 여자들이 만든 액션영화인 거잖아요. 너무 멋있다고, 완전 브라보를 외쳤었거든요. 그러니까 그건 관객의 입장으로도 보겠지만 제가 여자고, 여배우이기도 하니까. 사실 제가 항상 아이러니 하다고 느끼는 게 한국 관객들 중 여자도 많지 않나요? 20대 초반, 20대 후반, 30대 초반까지. 그런데 참 여자영화가 없어요. 그래서 여자영화가 나오면 반가워요. 왜 관객들은 여자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여자 영화가 잘 안 나오고, 여자 영화가 잘되는 경우도 별로 없죠? 전 왜일까가 아직도 굉장히 궁금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린 여자끼리 만든 영화라는 자부심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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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까지 여자분이셨으니까.
우리가 처음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모였을 때 여자들이 쫙 모였죠! ‘우리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으면 좋겠어?’ 서로 질문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입을 모아 했던 말이 있었죠. 궁녀는 베일에 가려져 있고 중심이 아닌 겉도는 이미지니까 우리가 그것을 중심으로 끌어왔을 때, 기존 관객들이 가질 수 있는, 혹은 궁녀에 대한 어떤 조그만 정보라도 가진 사람들에게 그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자. 그렇다면 그게 뭘까? 그래서 여자 영화지만 남자 영화만큼 힘있는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저희의 의지가 결론으로 내려졌죠. 너무나 다행히도, 물론 감독님께서 연출을 너무나 잘 해주셨기 때문이겠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까 정말 힘있는 영화가 나온 것 같았어요. 남자 영화 못지 않게, 아주 강렬한 힘이 있는 영화가 나온 것 같아서 기분 좋더라고요.

최근 여성성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들은 단순히 여성을 섹스어필의 소재로 소비하는 방식에 편중됐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궁녀>는 한복과 공포로 치장했음에도 여성의 날카로운 내면을 잘 묘사했단 생각이 들어서 흥미로웠어요.
사실 저희가 의도한 부분들이 굉장히 많죠. 배우들은 연기하면서 그런 부분들을 염두에 두지 못하면 연기할 수 없어요. 그래서 그런 내면들에 대한 고민도 굉장히 많이 했지만, 장르가 장르이다 보니까 관객들이 그것까진 알아주긴 굉장히 힘들 것 같고, 그건 어쩌면 배우의 욕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마 관객 분들은 천령의 내면, 혹은 여자들의 내면까지 생각 못하고 그저 ‘저 영화 잔인해, 저 영화 무서워’ 이런 것만 보지 않으실까 싶어요. 물론 아무래도 기자님이시니까 그런 내면까지 봐주신 게 아닐까…(웃음) 사실 배우의 욕심으로는 일반 관객도 그런 내면을 바라봐주셨으면 좋겠죠, 그런 욕심이 있어요. 음……만약 제 욕심만큼 관객들이 저희 영화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봐준다면 뭐, 천만만 보겠어요? 4천만 국민께서 다 보시겠죠. (웃음)

또 흥미로웠던 건 공포가 돌출되는 근원 지점이 사랑이란 감정이 억압된 여자의 내면에서 발생한 히스테리란 점이였어요. 그래서 전 궁녀가 결국 여자들의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잠깐, 아니, 저희 연출부셨나요. 혹시? (웃음) 저희 시나리오를 읽었어요?

시나리오는 아쉽지만 못 봤습니다. (웃음)
너무 영화에 대해서 꿰차고 계시는 것 같은데……(웃음) 예. 맞아요. 사실은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여자들의 얘기죠. 저희 영화에서 제일 불쌍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전)혜진이가 맡았던, 마지막에 거의 미쳐가는 정열이. 그리고 그나마 가장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여자는 희빈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 이유는 희빈은 어찌됐건 왕의 성은을 입고 왕의 사랑을 받은 셈이니까요. 물론 자신의 어떤 욕망을 채우지 못하고 결국 월령의 원혼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았지만, 천령도 자신의 사랑에 있어서 아이까지 낳고 그 사랑을 이루지 못했단 말이에요. 월령도 마찬가지죠. 대리인으로 사랑을 받았을 뿐이지, 자신의 사랑을 이룬 건 아니죠. 옥진이마저도 결국은 자기가 너무나 사랑하던 남자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그 사람을 그리워하다가 생을 마감하잖아요. 점 에로틱하게. (웃음) 근데 정열이 같은 경우는 남자인 누군가에게 사랑 받아보지도 못하고, 그걸 상상하고 질투만하다가 그냥 사그라진 여인이란 말이에요. 그니까 사실 누구 하나 완벽한 사랑을 충족 받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들인 셈이죠. 그런 것들의 시발(始發)은 궁녀라는 것 자체, 즉 그 당시 궁녀가 갇혀 지내고 외로워 하면서 남자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단 점이죠. 물론 <궁녀>에서는 어떻게 보면 남자들이 마치 여자들을 농락하고 버린 것처럼만 표현했지만 그건 영화적인 요소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하고요. 기본적으로 옛날의 궁녀들이 농락당했는지, 안 당했는지를 떠나서 늘 남자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을 지닌, 굉장히 외로웠을 거란 말이죠. 거기서 시작된 실마리가 저희 영화에선 더욱 확대되고 그렇게 표현이 된 거죠. 그래서 궁녀라는 여성 자체가 굉장히 외롭고, 늘 이성에 관한, 사랑에 대해서 동경하고 열망하는 부분이 있는 사람들이지 않았을까라는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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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천령이 고문을 당하고 나와서 모든 상황을 깨닫게 됐을 때 그냥 이젠 다 묻어두겠다는 뉘앙스가 느껴졌어요. 그건 어쩌면 자신은 이루지 못했지만 사랑을 이룬 다른 여성에 대한 동병상련이거나 대리만족이 아닐까 싶었죠.
음, 연출부를 하셨어야 했어. (웃음) 그렇죠. 사실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사회 초년생으로 열정만 가지고 부딪히고 깨지면서 일을 열심히 하다가 어느 순간, 어떤 타이밍이 되면 지금까지 어렵게 적응하던 사회에 잘 적응하게 되고, 순응하고, 합류하게 되는 지점이 있잖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천령이 굉장히 큰 사건을 통해서 자신이 이루지 못했지만 더 큰 무언가를 이루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거기에 순응하게 되는 그런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아니,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제가 활동할 때 고등학생이었던 거네요?

아, 네. 그렇죠. (웃음)
(윤)세아가 저랑 한 살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 처음 만나서 밥 먹는 자리에서, ‘진희 선배, 진희 선배’ 이러면서 존댓말 하는 거에요. 그래서 나랑 한 살 차이밖에 안 나니까 말 편하게 하라고 그랬더니, 세아는 자기가 어렸을 때부터 TV에서 봐온 사람이라서 나이가 훨씬 더 많은 줄 알았대요. 그래서 굉장히 선배라고 생각을 했던 거죠. 그런데 자기랑 나랑 한 살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 무슨 어렸을 때부터 TV에서 봐, 그러니까 열아홉 살 때 내가 스무 살이었던 건데, 자기가 어렸을 때 나를 얼마나 봤겠어요. 심지어 전 스무 살 때 데뷔했으니까 최소한 세아가 날 TV에서 보기 시작한 건 그녀가 열아홉, 내가 스무 살 때란 말이에요. 그녀가 어린 나이도 아니었고. 근데 이미지가 그런 게 있나 봐요. 굉장히 어렸을 때부터 활동한 거 같고, 봐온 것 같은 이미지. 전 그래서 아까 그렇게 말씀하실 때 그런 느낌으로 생각했던 거에요. 진정한 고등학생이 아니라 그냥 그런 느낌으로 말한 거라고, 그런데 진짜 고등학생 때였네요.

진정한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웃음)
(힘빠진 목소리로)이럴 때는요. 굉장히 세월이 빠르다라는 걸 느껴요. (웃음) 아니, 왜냐면 그런 거 있잖아요. 옛날에는 촬영장에 가도, 다 오빠들이었어요. 진짜, 인터뷰할 때도 저보다 나이 많으신 분들이었고.

기자 분들도 다.
예! 그래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내가 얘기하는 게 맞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고. 근데 요즘은 거의 동년배들이 많아요. 촬영장에 나가도 뭐 이렇게, 스물 여덟, 아홉, 서른, 서른 하나, 서른 둘, 이 나이대가 딱 많은 거 같아요. 아니면 아예 그보다 어린, 이제 막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이거나.

막내라고 부르는.
예. 그래서 촬영장에 나가면 이제 다 같이 늙어간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나이대라서 너무 편한 거에요. (웃음) 얘기하기도 편하고, 삐쳐도 옛날처럼 소심하게 고민하는 게 아니라 ‘소주 한잔 먹고 풀죠’ 해버리던지, ‘너 왜 그래~’ 이러면서 풀고. 옛날보단 굉장히 편안한 상황이 됐죠.

어쩐지 <궁녀>를 찍으면서 장녀 역할을 했을 것 같았어요. 어느 새 후배들을 아래 두고 있는 선배가 됐네요.
(짧은 한숨을 쉬면서)사실은 그런 생각을 잘 안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선배로서 권위 의식을 가지면 정말 안되겠다라는 생각. 제가 후배일 때 굉장히 권위 있는 선배님들을 보며 느꼈던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았어요. 그게 권위로 느껴지면 단점이고, 그게 그분의 아우라로 느껴지면 장점인 거죠. 근데 전 단점을 훨씬 더 많이 느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저도 선배라는 이름 하에 권위를 누리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굉장히 위험한 거 같아요. 권위를 부리기 시작하면 그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명명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나보다 어린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으면 나는 내 시대의 것밖에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랑 동료가 되고 친구가 돼야 어린 사람들의 문화나 생각을 흡수할 수 있죠. 문화적인 일을 한다는 내가 어린 사람들의 생각을 흡수하지 못하면 그냥 나는 내가 태어난 78년생의 사람으로만 살고 있는 거니까. 그래서 선배라는 생각을 잘 안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만약 선배라고 생각해야겠다고 마음먹을 때는 정말 좋은 선배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 그러니까 모범이 되는 선배가 됐으면 좋겠어요. 뭐가 됐던지 간에. 저 선배는 연기를 잘 하는 배우라서 현장에서도 굉장히 놀면서 하나 보다는 말보단, 저 선배는 내가 보기엔 재능보다는 노력을 더 많이 하는 스타일 같다는 말을 후배들한테 듣고 싶어요. 현장에서 내 연기가 늘 부족하다고 느껴서 항상 뭔가 연구하는 모습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그들도 그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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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다는 인상이 느껴지네요. 그런데 그게 박진희 씨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로서 평범함은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는데 박진희란 배우에겐 장점으로 작용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물론 평범하지 않은 외모덕분인지도 모르지만.
아니에요. 외모도 굉장히 평범해요. (웃음) 요즘은 모든 게, 모든 상황에 양면이 있다는 생각을 해요. 정말 그 한 면만 가지고 있는 건 없는 거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생각을 하느냐, 어떤 마인드를 갖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거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평범하다는 건 사실 배우로서는 자랑거리는 아닐 수도 있어요. 하지만 단점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관객들이 조금 더 자연스럽게 같이 호응할 수 있고, 호흡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는 배우라고 느낄 수 있으니까. 아니면 제가 다른 여배우처럼 완전히 예쁘게 생겼다거나 정말 특별한 이미지를 지녀서 어떤 역할은 정말 박진희가 해야 된다는 말을 듣지는 못해도, 캐릭터 자체가 무난하다 보니 어떤 역할을 해도 어울리지 않냐는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러니까 그건 다 장단점이 있어서 어떤 장점을 좀 더 부각시키느냐가 중요한 거 같아요. 너무 예쁘게 생긴 여배우들은 사실 외모로는 지적할 게 없으니까 연기를 못 한다는 둥, 성격이 이상하다는 둥, 이런 지적을 받는다면, 우리같이 평범하게 생긴 사람들은 평범하게 생겼으니까 사실 그다지 지적 받을 게 없는 거 같아요. (웃음) 뭐, 이렇게 노멀(normal)하니까.

개인적인 생각에 평범한 외모는 아닌 거 같은데요. 서구적인 외모라고 생각하는데.
얼마 전에 저한테 도시적인 이미지가 있다는 말을 듣고 굉장히 깜짝 놀랬어요. 저는 도시형 인간이 아니거든요~! (웃음) 저는 도시가 너무 싫고, 커리어 우먼 이런 말 듣는 건 싫어요. 반짝반짝 거리는 게 싫고, 직선적인 것도 싫어요. 도시는 약간 그런 느낌이잖아요. 전 그냥 꾸불꾸불한 게 좋고, 나무가 좋고요, 그냥 설렁설렁 사는 게 좋아요. 깝깝하고 각박하고, 빠른 거! 전 빠른 도시가 너무 싫어요. 근데 저보고 도시적이라고 해서 저는 깜짝 놀랬죠. 그리고 저는 심지어 생긴 것도 이렇잖아요, 눈이 정말 큰 것도 아니고, 코도 이렇게 (손가락을 코 주변에 세우면서) 오똑한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진짜 서구적, 아니면 도시적으로 생긴 분들은 고소영 씨나 한가인 씨 같은 분들 아닌가요? 그런 분들은 코도 정말이지, 와아~,(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그렇잖아요. 저는 그렇지 않죠. (웃음)

이런 말 조심해야 되요. ‘박진희, 난 솔직히 못생겼다, 파문!’ 이럴지도 몰라요. (웃음)
그 누구시더라, 저기 <M>에 나오시는 저분이, (극장에 있는 강동원 사진을 가리키며) ‘제가 뭐가 잘 생겼어요.’ 이 말해서 굉장히 욕 먹었던 거처럼요? 에이~, (손사래 치며) 제가 무슨. (웃음)

<궁녀>에서 처음으로 극의 흐름에 중심이 되는 꼭지점, 즉 원톱의 위치에서 연기를 했잖아요. 이런 점도 본인에게 어떤 작용을 하지 않았을까요?
예. (잠시 생각하다가) 촬영 전에 시나리오 작업하고, 연습할 때는 그런 게 사실 부담으로 왔어요. 잘 해야겠다, 관객들을 2시간 동안 빨아들일 수 있는 에너지를 갖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라고 스스로 조심하려고 했고 실제로 그랬던 게 있었죠. 근데 촬영을 들어가면서 그런 부담감에 휩싸이면 배가 산으로 가기 마련인 거 같아요. 내 자신에게 집중해도 모자란 연기를 가지고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 영화는 어떻게 나올까라는 생각을 하면 정말 배가 산으로 가거든요. 촬영할 때는 그런 생각들을 굉장히 배제했었고, 거의 하지 않았어요. 솔직히 이젠 결과물이 나왔으니까 요즘에서야 정말 내 연기의 장점과 단점이 어떤 부분인지, 또 어떤 느낌으로 연기를 했는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건 촬영할 때보단 촬영하기 전이나 촬영이 끝난 후, 지금에서야 훨씬 더 크게 와 닿죠. 시작지점에선 내가 원톱으로 한 이 영화가 과연 어떻게 시작될까라는 생각을 했다면, 끝나고 나선 이제 결과물이 나왔고, 그 결과물이 평가 받아야 되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책임감이나 부담감, 의무감이 훨씬 더 커진 거 같아요.

한편으로 박진희라는 배우가 동적인 에너지를 지닌 배우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저런 활동적인 배우가 뭔가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많았을 텐데 너무 늦게 기회를 찾은 게 아닐까 싶기도 했어요.
제가 사실 보여주고 싶은 건 많은데 보여줄 게 없어요. (웃음) 보여줄 게 많은 배우였으면 좋겠는데 그다지 보여줄 게 많지 않아서 참 고민이죠. 그래서 제 스스로 아직 박진희란 배우는 참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보여줄 것이 없기 때문에 이걸 한꺼번에 보여주면 사람들이 질려 할 것이다라고. 그러니까 계속 연마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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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요? 활동시기마다 약간씩 텀(term)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학업에 열심이라고 듣기도 했지만, 어떤 연기적인 재충전의 시기를 스스로 유지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그런 거 같아요. 작품을 끊임없이 하면서 연기에 대한 감을 늘 잃지 않으려는 배우들이 있는가 하면, 한 작품을 하고 나서 재충전을 가졌다가 다시 한 작품을 하는 배우들이 있는 거 같아요. 전 사실 후자 쪽이거든요. 그러니까 썼던 에너지를 다시 충전해서 쓰고, 작품을 하면 좀 쉬면서 뭔가 다시 정돈하고 시작하는 스타일인 거 같아요.

그러면 올 해는 일단 에너지를 쓰는 해네요.
굉장히 많이 썼죠. 사실 <만남의 광장>은 작년에 찍었는데 개봉이 늦어졌던 영화니까 괜찮지만, <쩐의 전쟁>이랑 <궁녀>를 하면서 사실 에너지를 굉장히 많이 소진했었죠. 당분간은 조금 쉬게 될 것 같아요.

만약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궁녀>를 보면서 감정이입이 될 것도 같아요. 동성끼리 폐쇄적인 집단을 형성하니까 그 안에서도 계급적인 알력이 생기고, 그런 어떤 미묘한 집단적 동질감이 많이 느껴졌거든요. 그걸 여성의 입장에서 보니까 재미있었어요.
혹시 굉장히 여성적인 성향이 많다는 말 듣지 않으세요?

저요? 일단 세심하다는 이야긴 종종 듣긴 하는데, 남자를 사랑하는 정도까진 아니에요. (웃음)
사실 저는 지금까지 <궁녀>를 본 남자분들 중에 이렇게 여성적인 시각을 잘 이해하시는 분들이 되게 드물다고 느꼈거든요. 맞아요. 그런 게 있죠. 그러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그 작은 공간 속에 있는 여자들끼리 서로 암투를 벌이고 그러잖아요. 권력싸움을 하면서. 그래서 우리 배우들끼리 <궁녀>는 사극판 여성 느와르다, 막 이런 얘기도 하고 그랬었거든요. 사실은 우리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 중 한가지가 그건데요. 어떤 사회도 다르지 않다는 거죠. 궁궐 안에서 궁녀들이 작은 소단위의 집단으로 모이니까 마찬가지로 계급이 생기고, 자기들끼리 아웅다웅하는 모습들이 보이잖아요. 그건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죠? 넓게 보면 이 사회도 마찬가지잖아요. 결국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우리가 속해 있는 어느 공동체나 다르지 않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궁녀>를 통해서.

그래서 사실은 귀신보다 여자가 더 무섭다고 생각했었어요. (웃음)
(박수 치면서)그렇죠! (웃음)

확실히 남자의 무서움과 여자의 무서움은 다른 거 같아요. 남자의 무기는 주먹이지만 여자의 무기는 손톱이니까. 눈에 띠지 않는 날카로움이나 사나움 같은 게 많이 느껴졌어요.
그렇죠.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는데~!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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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는 사극으로서도 처음이었잖아요. 어땠어요?
사실 사극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있었어요. 말투도 사극 톤으로 써야 되고, 그래서 드라마 같은 경우도 사극이 싫었던 건 아닌데, 굉장히 두려움을 느껴서 선택하는데 있어 조심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궁녀>는 워낙 독특한 소재고, 또 제가 너무 좋아하는 영화사 아침의 정승혜 대표님께서 저를 추천해주셨기 때문에, 그리고 감독님을 만나 뵙고 확신했어요. 정말 이 영화를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보여주자고 하시는 게 너무나 확실했기 때문에 <궁녀>를 확신하고 정할 수가 있었죠.

그런 면에서 보면 10년 차 배우의 영화로서 <궁녀>는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도요. 그래서 참 복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배우를 10년 하면서 10번째 영화에서 원톱을 했고, 또 지금 시기도 나쁘지 않은 거 같아요. 지금 극장에 걸리는 영화들이 장르가 다 틀리잖아요. 그래서 정말로 나쁘지 않다, 그리고 복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죠.

그럼 10년 뒤의 자신을 생각해본다면 어떨까요?
모르겠어요. 솔직히 그때까지 아직 연기를 하고 있을지는, 제 바람으로는 하고 있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어쨌든 연기를 하고 있을지 안하고 있을진 잘 모르겠지만, 그때도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내가 생각하는 나의 장점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제 기본적인 삶의 모토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거든요? 그런 생각들을 버리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그걸 지키려고 스스로도 굉장히 노력해야 하지만 그에 큰 상처를 주는 어떤 일이 없어야겠죠.

그렇다면 여배우로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거라고 생각하세요?
굉장히 고단한 일인 거 같아요. 하지만 고단한 일이면서 행복한 일이죠. 근데 저는 긍정적인 사람이니까 아주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아주 행복하고, 굉장히 많이 만족하고 있어요. 물론 힘들 때도 있죠. 하지만 어떤 사람들이 안 힘들겠어요. 다 힘들죠. 물론 정말 못 먹고 못 입는 사람과 좀 잘입고 잘 먹는 사람과의 행복을 단순히 비교할 순 없겠지만, 아주 월등하게 차이가 있지 않은 이상, 기본적으로 사는 사람을 비교하면 힘든 것 자체는 다 마찬가지죠. 행복이란 건 자기만의 기준에서 정해지는 거잖아요. 근데 힘든 건 늘 내가 제일 힘들게 느껴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건 수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힘든 걸 느끼는 내 자신이 제일 힘든 거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여배우도 힘들지만, 여대생도 힘들고, 아주머니도 힘들고, 우리가 다 힘들다는 거죠. 누구나 쉬운 삶을 살겠어요? 그래서 누구나 다 힘들지만 저는 사랑 받는 직업을 하며 사니까 나는 굉장히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그렇게 씩씩하게.
그럼요! (웃음) 아! 그거 해드려야죠! 친구분 싸인!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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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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