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이란 말은 부질없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뒤집어 가정하는 건 어디까지나 불필요한 첨언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현실이 아닌 허구 안에서 가정이란 유효한 착상이다. 논픽션이 아닌 픽션의 세상을 그리는 이야기꾼들에게 가정이란 발칙한 야바위이자 무궁무진한 떡밥이니까.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하, <바스터즈>)은 픽션으로 디자인된 논픽션의 세상, 다시 말하자면 영화로 이입된 현실의 역사를 전복시키고 깔깔거리는 유희다. 어쩌면 메가폰을 쥔 당사자가 쿠엔틴 타란티노란 사실만으로도 알만한 사람들에게 <바스터즈>는 싹이 노란 영화일 것이다. 그리고 <바스터즈>는 과감하게 돌진하는 피칠갑의 난장 속에서도 과장과 비유를 뒤흔들어 능수능란한 유머로 발화시키는 타란티노적 시네마천국이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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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미국의 동시상영관에서나 줄창 틀어대던 싸구려 B급 영화를 현대에서 재현해보겠다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야심이 짙게 드리운 <그라인드 하우스>는 시종일관 농후한 장난끼가 가득하다. <데쓰 프루프>와 <플래닛 테러>, 그리고 4편의 페이크 예고편으로 이뤄진 종합세트는 시대를 역행하는 이미지와 내러티브로 채워져 있다. 흔히 말하는 오늘날의 웰메이드 영화는 상극에 가깝다. 맥락이 무성의한 서사 구조와 시종일관 필름의 훼손도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이미지, 게다가 중간부분을 날려먹었음을 당당하게 알리는 미싱 릴(missing reel)까지, 연출된 저속함과 위장된 열악함이 가득하다. 먼저 국내에서 개봉된 <데쓰 프루프>와 마찬가지로 <플래닛 테러> 역시 고의성이 다분하게 단연 후진 완성도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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