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의 1983년작 하이틴 슬래셔 무비를 리메이크한 <여대생 기숙사>원작으로부터 틀거리를 빌려온 뒤 보다 현대적인 배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인물의 관계를 변주함으로써 리메이크라는 의미를 확실히 새겨 넣는다. 남자들을 끌어들여 기숙사 안에서 파티를 즐기는 여대생들은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즐길 정도로 개방적인 일상을 즐긴다. 그 가운데서도 ‘세타 파이‘라 불리는 비밀클럽의 멤버로서 우정과 결속을 다짐하며 자신들만의 비밀스러운 회합을 거듭하는 6명의 여대생들은 어느 날, 짓궂은 장난을 계획하지만 그 사소한 장난은 그들의 삶에 지울 수 없는 비극적 기억을 남긴다. 그리고 그 기억은 곧 새로운 현실적 불안으로 떠오른다. 누군가 그들이 지난 파티에 한 일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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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심장을 겨누는 탄환의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는, 자신의 몸을 찢이길 폭탄 위에 서 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는, 이라크 한복판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미군 가운데서도 EOD(폭발물 전담 제거반)는 모든 생의 조건을 내걸고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직책이다. 정체가 불확실한 폭발물이 발견된 현장에서 그들은 생존에 대한 갈망마저도 잠시 내려놓듯 숨을 죽이고 눈 앞에 놓인 공포와 매일 같이 대면해야 한다. 긴박한 임무의 연속 안에서 감각은 무뎌지고, 되레 공포는 잦아드든 것 같지만 종종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급박하게 터져나오는 실전 상황을 대면하다 보면 잠자듯 죽은 공포가 자신의 온 몸을 지배한지 오래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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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을 앞두고 산통에 시달리는 산모의 얼굴엔 만감이 교차한다. 휠체어를 탄 채 분만실로 향하는 산모는 당장 맞이한 고통을 참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동시에 곧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는 마음에 설렘이 가득하다. 하지만 곧 잉태의 축복은 사산의 저주로 돌변한다. 갑작스런 출혈과 함께 유산을 알리던 의사는 곧이어 태아의 주검을 꺼내기 위한 절제술에 돌입한다. 비명을 지르는 아내 앞으로 뒤늦게 분만실에 들어온 탓에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남편이 캠코더를 들이민다. 순간 의사가 말한다. 아이가 살아있어요. 온 몸에 피에 젖은 아이가 아내의 얼굴 앞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다시 한번 날카로운 비명으로 분만실을 뒤흔들던 아내는 비로소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다. 끔찍한 악몽에서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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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너머로 본심을 가린 채 가족을 위협하는 이방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악마적 캐릭터, <오펀: 천사의 비밀>은 기시감을 부르는 영화다. <오멘>과 같은 악마적 아동이 등장하는 오컬트를 비롯해서 <케이프 피어>와 같은 가족지키기 스릴러까지, <오펀>이 흡수한 장르적 전례는 차고 넘친다. <오펀>이 영리한 영화라 말할 수 있는 건 그 덕분이다. <오펀>은 새로운 전형이라기 보단 뛰어난 응용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영악한 유아적 캐릭터를 통해 장르적 착시를 발생시킨 뒤, 관객의 호기심과 긴장감을 동시에 유발한다. 무엇보다도 에스터의 천진난만한 미소가 점차 본심을 드러내는 순간마다 연출되는 긴장감이 서사의 진행과 함께 두텁게 쌓여나간다. 결과적으로 <오펀>이 이룬 장르적 성취의 팔 할은 절대적으로 에스터를 연기하는 이사멜 펄먼의 연기력에 얹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말부에 다다라 내던져진 반전 역시 호불호의 차이를 발생시킬 가능성은 존재하나 이야기의 흐름 안에서 적절한 흐름을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확실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말미에 다다라 난투극으로 변질되는 양상이 영화를 단순화시킨다는 인상도 들지만 역시나 그 순간조차도 절대적인 긴장감이 발생한다. 인상적인 캐릭터와 흥미로운 스토리텔링, 그리고 효과적인 연출력까지, 수준 이상의 만족감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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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적인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외모는 신분을 초월하는 수단이자 때때로 국가의 존망을 좌우할 정도로 막강한 것이기도 했다. 신분상승을 위한 수단으로서 여성의 외모는 유효한 재능이었다. 물론 오늘날에도 여성에게 있어서 아름다움은 유효한 수단이다. 다만 선천적 한계가 그 가능성을 좌우하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엔 후천적 선택에 따라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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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혈이 선명한, 상흔이 뚜렷한, 공포에 질린 소녀가 공장지대에서 발견된다. 신체 곳곳에 학대의 흔적이 가득한 소녀는 좀처럼 말문을 열지 않는다. 소녀가 발견된 공장지대 건물 내부엔 가학적 증거들이 즐비하다. 의문에서 출발하는 이야기. 과연 그 안에선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다큐적 질감의 영상 너머로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사연이 펼쳐진다. 본격적인 사연은 다시 한번 충격과 공포를 동반한 의문으로 시작된다. 의문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또 다른 의문을 증폭시키고 좀처럼 빠져나갈 수 없는 물음표의 미로를 만들어 관객의 시선을 스크린에 봉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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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고, 베고, 찌르고, 가르고, 치가 떨릴 만큼 잔혹한 이미지가 눈 앞을 오간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더욱 잔혹한 건 그 이후다.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은 실로 잔혹한 영화다. 거침없는 시각적 자극을 견디고 나면 동통처럼 짓누르는 심리적 충격이 엄습해온다. 단편적인 이미지의 수준을 넘어 순수의 경지에 다다르는 극악한 세계관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품게 만든다. 좀처럼 끝을 알 수 없는 의문과 함께 감정을 후벼 파는 서스펜스가 한차례 휘몰아친 뒤 후두부를 강타하는 충격적 세계관을 전시한 후, 밑도 끝도 없는 근본적 물음이 제기된다. <마터스>는 어딘가 불순하다고 의식되는 영화다. 극악한 참상 뒤에 베일을 벗는 끔찍한 세계관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의 빌미를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 선의도, 악의도, 결국의 해석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결말은 선의의 여운이라기 보단 악의적 도피처럼 느껴진다. 분명 어떤 의미로든 놀라운 영화다. 감탄과 탄식의 이중주로 놀라움을 채운 뒤 남는 건 끝없는 의문이다. 그러니까 대체 뭘 본거냐. 하지만 끝난 영화는 말이 없다. 그게 좀 마음에 걸린다. 그 불순함을 좀처럼 잊을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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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 건물로부터 달아나 빛을 향해 뛰쳐나오는 소녀. 상처투성이 얼굴로 영문을 모르는 겁에 질린 채 폐허 같은 건물로부터 뛰쳐나오는 소녀의 모습에서 이유 모를 두려움이 전이된다.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이하, <마터스>)은 박차고 튀어나온 호기심 속에서 자리잡은 두려움에서 출발한다. 정체가 한 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시각적인 자극을 넘어선 심리적 중압감이 수혈된다. 순교자(Martyrs)라는 의미의 <마터스>는 신앙이라는 전위적 형태를 파헤쳐 전복시킴으로써 본질을 자각하게 만든다. 피의 전시보다도 피의 목적이 각인된다. 끔찍한 건 이미지가 아니라 이를 둘러싼 세계관이다. 전작 <천상의 목소리>(2005)를 통해 이미 한 차례 신성 모독(?)적 관점을 견지한 전력이 있는 파스칼 로지에는 <마터스>를 통해 그 비관적인 세계관을 불순한 영험적 체험 수준으로 한차례 끌어올린다. 살갗을 벗겨내는 스너프 필름의 생생한 가학의 살 떨림보다 냉소적 극단이 진하게 섞인 선혈의 진심에 마음이 시리다. 이미지에 대한 두려움보다도 잠재된 진심의 농도가 진한 충격을 선사한다. 41회 시체스영화제 2관왕에 오른 <마터스>는 할리우드 제작사와 리메이크 판권 계약까지 체결했다. 영화제 상영 이후 국내 정식개봉이 결정됐다. 순도 100%의 순수악, 나쁜 피가 흐른다. 피가 차오른다. 가자.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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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맺은 계약. 자살을 약속하는 소녀들. <여고괴담5: 동반자살>(이하, <여고괴담5>)은 부제처럼 동반자살을 약속한 동급생 여고 소녀들의 의식을 비추는 가운데 시작된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가운데 촛불을 어스름하게 밝힌 엄숙한 성당에서 각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내고 피를 떨어뜨린 계약서에 손을 얹는 의식은 비장하다. 침묵의 제의를 지배하는 건 정적으로 대변되는 의문이다. 동반자살을 도모하는 소녀들의 사연에 물음표가 새겨진다. 그리고 의문에 휩싸인 정적을 부수는 커다란 울림을 통해 괴담은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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