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영1960년작 <하녀>는 분명 독보적인 걸작이다. 중산층 가정의 가장으로서 부와 명예를 축적한 남성의 감춰진 욕망이 화근이 되어 또 다른 욕망의 포로가 된 채, 불순한 관계의 늪을 허우적거리고 이내 파국적인 운명을 맞이한다는 김기영<하녀>는 형식과 내용 면에서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작품이며 그 특성은 현재까지도 유효할만큼 대단한 에너지를 품은 작품이기도 하다. 관객에게 허락된 내외적인 시야, 즉 관찰과 추리라는 방식에 각각 맹점을 만들어 넣는 저택의 구조적 활용, 인물의 내면 심리 묘사는 압도적이면서도 탁월한 서스펜스를 발생시킨다. 무엇보다도 <하녀>는 자본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물질주의가 싹트기 시작하는 당대 사회적 분위기, 즉 시대적 리얼리즘을 서스펜스의 태반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보다 비범하다. 자신의 육체를 담보로 신분의 상승을 꿈꾸는 하녀의 욕망이 부유한 중산층의 억눌린 욕망의 삽입을 유도하며 보다 거대한 괴물같은 욕망을 잉태하고 영화는 무시무시한 광기의 에너지로 장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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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 단평

cinemania 2010. 5. 4. 12:08

임상수의 <하녀>는 마치 김기영의 <하녀>를 희롱하듯 완성된 작품이다. 서스펜스가 완전히 탈색된 가운데 서구적인 디자인의 저택 내에서 과장된 연극적 제스처와 표정으로 일관하는 인물들의 행위는 온전히 제 정신이 아닌 블랙코미디의 양상을 띠고 있다. 여기서 리메이크라는 의미는 일종의 농담에 가깝다. 임상수는 단지 <하녀>를 수단으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하나 추가했을 뿐이다. 고로 임상수의 <하녀>를 두고 리메이크의 완성도를 논하는 건 딱히 의미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상류층 사회의 천박함으로 무장된 악의적 조롱에 가까운 <하녀>는 모든 시퀀스를 비롯해 배우들의 연기까지 임상수의 손에 놀아나는 것처럼 완성됐다. 김기영의 <하녀>가 욕망의 시대를 그리는 작품이라면 임상수의 <하녀>는 욕망이 뭔지도 모르는 껍데기들의 난장과 같다. <하녀>에 호의를 표할 수 없지만 이것이 어떤 의미가 없는 작품이라 말할 수도 없다. 결국은 임상수의 의도를 존중할 수 있느냐, 에 따라 관람의 성패가 갈릴 가능성이 다분하다. 결말부의 난장판은 임상수의 의도를 관통하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하지만 <하녀>는 진심을 겨냥한 과녁이라기 보단 끝없는 희롱처럼 보인다. 그것이 조금 불쾌하다. 원작에 대한 리메이크적 의미를 벗어던진다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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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상수 출연 전도연, 이정재, 서우, 윤여정 개봉 5월 예정

 

부와 명예를 축적한 남성의 어긋난 욕망이 하녀의 표독스런 시선에 포착되는 순간, 평온한 중산층 가정에 불길한 전조가 감돈다. 치부처럼 드러난 욕망이 또 다른 욕망의 포로가 되어 불순한 관계의 늪을 허우적거린다. 자본주의가 걸음마를 시작할 1960년대 무렵을 배경으로 어느 중산층 가정의 파괴적인 몰락을 그려나가는 김기영 감독의 1960년작 <하녀>는 시대적 리얼리즘을 광기의 에너지로 승화시킨, 독보적이고 파격적인 작품이다. 자본의 유무가 권력의 우열로서 확장되기 시작하던 자본주의의 요람적인 징후는 <하녀>를 이루는 무시무시한 광기의 원천이자 소스나 다름없다. 하녀의 얼굴은 곧 시대의 숨은 욕망이나 다름없다. 자신의 육체를 담보로 신분상승을 꿈꾸는 하녀의 욕망은 부유한 중산층의 빈곤한 정서와 밀착하고 질환적인 병폐에 가까운 욕망이 괴물처럼 자라나 삶을 집어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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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9번째 작품을 완성하려는 감독은 깊은 고민에 놓였다. 그의 초기작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으로서 명성을 누리고 있지만 근래에 그가 만든 작품들은 졸작이라는 오명 속을 헤맨다. 그에게 팬이라고 접근하는 이들도 그의 초기작을 칭송하면서 그의 근작에 대해서는 말문을 닫는다. 시나리오조차 탈고하지 못한 그는 영화 제작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서조차 중간에 달아날 정도로 심각한 강박을 느끼고 있다. 이탈리아 영화계의 거장 귀도 콘티니(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자신의 새로운 영화를 갈망하지만 좀처럼 창작적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9살 유년 시절과 어른으로서 자라버린 현재 사이를 방황하며 자신의 주변에 자리한 여인들과 조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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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챙이 앞뒤로 달린 디어스토커를 쓰고, 어깨를 덮은 긴 케이프가 인상적인 인버네스 코트 안에 단정한 라운드 슈트를 갖춰 입은 채 중후한 파이프 담배를 물고 한 손엔 지팡이를 쥔, 우리가 생각하는 셜록홈즈의 모습. 1887년 아서 코난 도일의 주홍색 연구에 처음 등장한 이래로 세기를 초월해 고전적인 추리문학의 아이콘이 된 셜록홈즈는 19세기와 20세기 사이 영국을 배경으로 활약하는 셜록홈즈는 아서 코난 도일의 고전추리소설 셜록홈즈시리즈의 셜록홈즈란 분명 그런 남자다. 세련되고 지적인 이 영국탐정은 그가 등장하는 원작소설을 굳이 접하지 않은 이에게조차 그 이미지를 어필할 정도로 시대를 뛰어넘어 장르적인 아이콘으로서 확고한 위치를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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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스런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사건에 연루된 소년과 소녀. 용의자의 자살로 수사는 종결되고 사건은 마무리된다. 그리고 18년 후, 살인사건을 담당했던 형사 사사가키가 성인으로 성장한 소년과 소녀, 료지와 유키호의 행방을 쫓는다. 일본의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이자 대표작으로 꼽히는 백야행(白夜行)은 밀폐된 인물의 심리와 퍼즐 같은 서사적 진행을 통해 추리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작품이다. 미스터리한 장르적 구조 속에 내재된 멜로적 감수성은 백야행의 특이점이라 할만한 지점이다. 은밀하게 감지되는 두 남녀의 감정적 교류가 평행적 거리감을 유지한 채 조각처럼 나열된다. 칠흑의 아스팔트를 얇게 가린 흰 눈처럼 멜로적 감수성을 가린 장르적 연막, 백야행은 추리극의 베일로 감싼 멜로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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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꿈을 꾼다. 그리고 꿈은 언제나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소녀는 어머니의 사고가 있던 날의 기억을 잃었다. 그래서 정신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던 중이다. 하지만 비로소 퇴원했고, 자신을 데리러 온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엔 반가운 언니가 있지만 반갑지 않은 새엄마도 머물고 있다. <안나와 알렉스: 두자매 이야기>(이하, <안나와 알렉스>)는 그 자매와 새엄마 사이의 갈등을 다룬 이야기다. 안나(에밀리 브라우닝)와 알렉스(아리엘 케벨)는 아버지(데이빗 스트라탄)의 새로운 연인 레이첼(엘리자베스 뱅크스)을 경계하고 그녀를 주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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