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링 위에서는 더 이상 서로에게 주먹을 날리는 복서들의 혈전이 펼쳐지지 않는다. 대신 윤활유와 불꽃이 튀는 로봇들의 철()전이 벌어진다. 로봇들은 원격 조종에 의해서 링 위에서 주먹의 방향을 정한다. 과거 링에 올라 챔피언을 꿈꿨던 찰리 켄튼(휴 잭맨)은 이제 링 밖에서 로봇을 조종하며 새로운 삶을 꾸린다. 하지만 링 위에서보다도 링 밖에서 그의 챔피언 벨트는 더욱 요원해 보인다. 그리고 전전긍긍하던 그에게 이혼한 전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맥스(다코다 고요)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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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스발(하비에르 바르뎀)은 두 아이의 아버지다. 그는 가난한 가장이다. 그는 마약 거래와 밀입국자들의 취업을 알선하는 브로커로 삶을 꾸려왔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삶은 그렇게 흘러 넘어왔다. 그에게는 남다른 능력도 하나 있다. 죽은 자를 보는 것, 그리고 말을 하는 것.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본적이 없다.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다. 그는 서서히 직감한다. 선명하지 않은 삶의 흐름 속에서도 선명해지는 것이 있음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는 죽은 자를 본다. 그리고 그들과 대화를 한다. 그러나 어떤 이의 죽음은 목격이 가능해도 대화가 불가능함을 안다. 아니, 더 이상의 대화가 필요 없음을 안다. 그건 바로 자신의 죽음이다. 그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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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어머니의 과거를 명예롭게 여겼다. 어머니는 이스라엘의 첩보 조직 모사드의 비밀 요원으로 활동했다. 레이첼(헬렌 미렌)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들에게 실험이란 미명 하에 잔혹한 학살을 주도했던 어느 박사를 처단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녀의 한 쪽 볼을 가로지른, 깊은 창상이 짐작되는 긴 흉터는 일종의 훈장과 같다. 딸은 어머니의 애국적 활동을 기리고자 책을 집필했고 이를 헌정했다. 이를 지켜보는 어머니의 표정에는 감격보다도 근심의 기운이 역력하다. 사라지지 않는 지난 날의 상흔처럼 레이첼에게는 남모를 비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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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냉정하다. 태건호(정재영)는 유능한 채권추심원이다. 그물을 던지듯 추심 대상자들을 포획하고 그들로부터 걷을 돈을 확실하게 건져낸다. 그가 냉정해진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는 채권추심원이 되어 남의 빚을 대신 받아내며 자신의 빚을 청산한다. 그런 그에게 어느 빚보다도 무거운 간암 진단이 떨어진다. 누군가의 간을 기증받아야만 그는 삶을 연장할 수 있다. 채권을 추심하듯 간을 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는 일말의 희망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찾는다. 한 여인이 그의 목숨을 덧댈 수 있는 간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만만한 여자가 아니다. 차하연(전도연)은 정재계의 거물들을 상대로 한 탕을 노리는 지능적인 팜므파탈이다. 하지만 그녀는 현재 교도소에서 출감을 기다리고 있다. 그녀의 출감을 기다리는 이들도 있다. 그녀의 간을 얻기 위해서는 그녀를 노리는 적들을 대신 헤쳐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녀도 믿을 수 없다. 그 여자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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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에서 근무하는 존(로버트 드니로)은 가석방 심사관이다. 가석방 심사 자격을 원하는 죄수들은 그의 앞에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반성의 기미를 보인다. 혹은 연기한다. 그의 업무는 바로 그 연기를 구분하고 진심을 파악하는 일이다. 그의 앞에 어느 날과 같이 한 죄수가 앉았다. 그는 방화죄로 검거되어 형을 치르고 있다고 했다. 이름은 스톤(에드워드 노튼). 그는 자신이 가석방될만한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죄를 뉘우치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존은 고민한다. 그런 그의 곁에 미모의 여성이 나타난다. 스톤의 아내 루세타(밀라 요보비치)라고 했다. 죄수의 주변인과의 만남은 부적절하기에 그녀를 피하던 존은 거듭되는 그녀의 요구를 뿌리치지 못하고 그녀와 마주 앉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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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안정적이면서도 불안정한 숫자다. ‘은 무난하다. ‘하나하나가 만나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결국 언젠가 권태는 밀려온다. ‘은 그래서 보다 지속적인 흥미를 자극하고 보다 공고한 관계로 거듭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정적이다. 하지만 그만큼 하나하나사이의 관계를 흔드는 또 다른 하나와의 유지가 요구된다. 그래서 은 그만큼 보다 심오한 숫자다. 사회의 최소단위는 에서 시작되지만 으로 넘어갈 때 본격적인 사회적 현상이 발생한다. ‘이 사회를 이루는 필요조건이라면 은 결국 사회를 이루는 최소한의 충분조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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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 출장을 다녀온 아내의 감기 증상이 심각하다. 남편은 지독한 감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쓰러진 아내는 곧 죽음을 맞이한다. 역시 감기 증세가 발병했던 아들도 일순간 세상을 떠났다. 죽은 건 아내와 아들뿐만이 아니었다. 전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각국 정부와 보건기구는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할 수 있는 건 발병의 근원지를 찾고 환자들을 격리 수용시키는 것뿐,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지 못한다. 그 가운데 어떤 이는 정부의 음모를 선동하고 나서고, 급속도로 확산되는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요동치던 불안은 결국 거대한 폭동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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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베스트셀러 작가 마르틴 주터의 동명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릴라 릴라>는 우연과 필연이 뒤엉켜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눈덩이 구르듯 발전해 나가는 과정을 감당하지도 막아서지도 못하는 한 남자에 관한 사연이다. 그리고 한 남자와 한 여자에 관한 러브스토리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게 다 그 죽일 놈의 사랑 때문이다. 카페의 평범한 웨이터에 불과하던 다비드(다니엘 브륄)는 마리(한나 헤르츠스프룽)라는 여인에게 사로잡히고, 그녀가 문학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 하지만 우연히 얻게 된 정체불명의 인물이 남긴 소설을 자신의 것처럼 사칭해 마리에게 접근한 다비드는 그녀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 성취감을 맛보는 것도 잠깐일 뿐, 그것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 사건임을 곧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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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뜬 그의 눈 앞에 놓인 건 낯익은 풍경이 아니다. 그곳은 그가 머물던 곳이 아니다. 게다가 몰골도 말이 아니다. 지난 밤을 함께 했던 친구들도 말이 아니다. 심지어 모두 다 있는 게 아니다. 좀처럼 찾을 수 없는 한 친구와 연락이 닿는 것도 아니다. 행적이 기억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그들이 널브러진 그 방에서 난데없이 출몰한 어떤 동물의 출처도 아는 바가 아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상황이 그들이 의도했던 것이 아니다. 기억이 사라진 지난 밤의 흔적은 끔찍한 숙취(hangover)뿐만이 아니다. 그리고 이건 그들의 첫 번째 경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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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 차게 시작한 베이커리 사업은 씁쓸한 과거의 실패담이 돼버렸고, 비호감이 철철 넘치는 룸메이트는 상의 한마디 없이 역시 비호감인 여동생을 집에 모셔놓고도 기고만장으로 일관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애인에게는 그저 수많은 섹스 파트너 가운데 하나로 취급 당할 뿐인, 그 혐오스러운 일상의 주인공은 바로 애니(크리스틴 위그). 그리고 어느 날, 그녀의 절친한 친구 릴리언(마야 루돌프)이 그녀에게 기쁜 한편으로는 우울한 소식을 전한다. 함께 늙어가는 노처녀 친구가 자신의 결혼 소식을 전한 것 그리고 들러리 대표로 서주기를 부탁 받은 것. 둘도 없는 친구의 일생일대의 이벤트를 위해서 애니는 그 요청을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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