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드는 연쇄아동살해사건이 발생한다. 대통령이 직접 경찰청을 방문해서 범인 검거를 독려할 만큼 국민들의 관심이 지대하다. 덕분에 경찰 조직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총력을 기울이던 중, 유력한 용의자가 검거 현장에서 경찰의 오발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게 전전긍긍하던 수뇌부는 새로운 대안을 마련한다. 진범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진범이라 위장시킬 만한 대체자를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이 사건의 연출자로 낙점된 건 광역수사대 에이스로 꼽히는 철기 반장(황정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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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연음으로 이어진 제목은 그 형태만으로도 의미심장하다. 초점이 나가버린 듯한 세상 속에서 제대로 된 이상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은 고통이고 꿈은 절망이다. 하지만 어떤 이는 꿈을 칼처럼 갈아 세상을 베어내려 한다. 하지만 그 꿈은 자신에게 닿아있는 것부터 베어나간다. 자신을 지키던, 혹은 자신이 지키려던 신념부터 파괴한다. 마치 서로 다른 땅을 딛고서도 같은 달을 볼 수 있는 것처럼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은 때로 다른 길을 걷는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이상주의자들의 파국적 사연을 줄기로 드라마를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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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 노출뿐이라 생각한다면 빈곤한 상상력을 탓할 필요가 있다. 직관적인 이미지는 자극의 잠재적 성과를 되레 반감시킨다. 선명한 이미지의 관찰보다도 불투명한 실루엣이 발생시키는 상상력이 감상적 욕구를 자극하곤 한다. 이미지가 발생시키는 자극의 충만보다도 잠재적인 욕구를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보다 매혹적이다. 여인의 나신을 고스란히 노출하는 관능적인 티저포스터가 눈길을 사로잡는 <오감도>는 분명 파격적이고 창의적인 에로티시즘의 상상을 예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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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도> 단평

cinemania 2009. 7. 7. 12:00

에로스에 대한 다섯 개의 시선. 과감하고도 감각적인 누드 이미지를 내건 티저포스터는 <오감도>가 구사할 에로티시즘에 대한 기대감을 부추긴다. 그러나 기대는 거기까지, 영화는 포스터가 주는 모종의 기대감과 동떨어진 결과물에 불과하다. <오감도>는 일관된 주제를 관통하지 못하는 옴니버스이자 기획에 따른 기대감을 배반하는 결과물이다. 창의적인 해석력도, 과감한 묘사력도 선보이지 못한다. 도전적이라기 보단 과욕에 가깝고, 창의적이라기 보단 자만에 가깝다. 에피소드를 통과할수록 티끌과 같은 권태가 쌓여나간다. 또한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처럼 축적된 권태의 무게를 견디는 것도 만만치 않은 고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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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신문물과 구시대적 풍습이 공존하는 일제 치하의 경성은 분명 흥미를 끌만한 이미지를 제공하는 시대다. <그림자 살인>은 그 과도기적 시대상을 무국적의 그릇으로 활용한다. 친일 세도가들이 득세하고, 이를 비호하며 밥그릇을 유지하는 관료들이 자리잡은 암울한 시대상 한편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민초들의 활력이 거리를 지배한다. 요즘 세상 의리 없이 살아도 돈 없이는 못 살겠습니다. 만시경을 들고 바람난 유부녀의 불륜 현장을 추적해 얻은 사진과 기사를 신문사에 팔아 넘기는 진호(황정민) 역시 앞선 대사와 마찬가지로 국가의 흥망과 무관하게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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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전례가 있음에도 서양의 신문물과 과거 조선의 관습들이 공존하는 20세기 초 일제치하 경성이 호기롭게 묘사된다. 변화와 정체가 혼재된 과도기의 이미지는 시대에 대한 윤리적 평가를 희석시키며 장르적 발상을 유리하게 이끄는 그릇임에 틀림없다. 탐정추리극이라는 타이틀을 자신만만하게 내건 <그림자 살인>은 살인의 배후를 쫓는 전형적인 후더닛 구조의 미스터리로 시작된다. 인과관계의 나열로 놓고 보자면 플롯의 개연성은 인정할만하다. 다만 내러티브의 구조가 미숙하다. 추격전과 액션 시퀀스까지 동원하며 너비를 벌리지만 수집된 양식을 펼쳐 보이기 급급할 뿐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지 못한다. 동시에 적당한 수위의 장막이 걷히면 정답을 유출시키는 이야기는 영민한 편이 아니다.

 

이야기보다도 캐릭터가 눈에 띈다. 그러나 캐릭터들도 장르적 매력에 기인하는 건 아니다. 배우들의 표현력은 나쁘지 않다. 캐릭터 설정의 문제다. 애초에 핀트가 잘못 맞춰져 있다. 사건에 개입되는 당위부터 확실치 않은 캐릭터들은 역할에 대한 설득력을 명확하게 차려 입지 못한다. 추리물을 표방했지만 야심은 다른 쪽에 걸쳐 있다. 시대적 착취에 대한 응징을 마다하지 않으며 직업 윤리와 고위층의 도덕적 해이마저 도발하는 후반부는 전반부와 분위기가 판이하다. 말미에 다다라서 반복되는 클라이맥스는 도돌이표처럼 권태롭기도 하다. 어쩌면 동일한 얼굴로 분열된 양면성의 이미지야말로 <그림자 살인>이 노출하고자 하는 핵심적 이미지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장르와 역사 의식이라는 이중주 사이에서 애매한 표정을 짓는 <그림자 살인>은 시대에 대한 딜레마를 뛰어넘지 못한 장르물처럼 보인다. 혹은 뛰어넘을 마음이 없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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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부탁으로 성신여대 방송실에서 배우론(?)을 짧게 녹음하게 됐다. 버리긴 아까워서 원고를 남긴다. 12명은 성신여대 방송실에서 선정했으며 그 기준은 대종상 수상자 명단에 두고 있다 한다.

원래 원고상에서는 경어체 문장을 썼으나 다시 문어체로 바꿨다.
배우는 가나다 순으로 나열됐다.

김윤진

 

김혜수

 

문소리


박중훈


설경구 

 

송강호

 

이영애

 

장동건

 

장진영


전도연

    

최민식


황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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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 인터뷰

interview 2008. 5. 30.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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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더워져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웃음) 의도했던 건 절대 아닌데.

원래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편인가?
사실 공포 영화를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관객들을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포물은 좋아하지 않지만, 정말 짜임새 있는 스토리가 끌어 가는 힘있는 스릴러물은 좋아한다. <검은집>은 그런 점에서 맘에 들었고.

개인적으로 유선 씨는 액션 배우라고 생각한다. (웃음) 몇몇 드라마를 통해 종종 보여준 모습을 사례로 들자면. 이번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단순 주먹다짐에서 살벌한 칼부림으로. (웃음) 몸을 뒹구는 격투씬을 비롯해 여러모로 힘들었을 것 같다.
사실 육체적인 면보단 정신적인 면에서 많이 힘들었다. 만약 내가 귀신이라면 차라리 쉬웠겠지만, 사람이란 존재 자체만으로 공포를 느끼게 하는 건 쉽지 않다. 내 캐릭터가 관객을 서늘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내가 그 몫을 할 수 있을 지부터 시작해서 머릿속으로 그런 고민들이 끊이질 않아 정신적 부담이 컸다. 사실 육체적으로 부딪치는 건 견디면 되니까, 그건 큰 고통은 아니었던 것 같다.

황정민 씨는 힘들어 보이더라. 코도 진짜 물린 걸로 알고 있다. 꽤 아파 보이기도 하고. (웃음)
괴성을 그냥~~, 끝나고서도 계~속~ 지르는데 어찌나 민망하던지. (웃음) 진짜 이빨 자국 제대로 남았더라. 아팠을 거야. (웃음)

설마 개인적인 감정을 그런 식으로?(웃음)
나름대로 조절한다고 한 건데. (웃음)

신이화라는 역을 처음 접했을 때, 어떻던가? 아무래도 만만해 보이는 역은 아니었을 텐데.
어쩌면 그 동안 나 스스로 강하고 흡입력 있는 걸 원했던 것 같다. 내가 지닌 격정적인 뭔가를 밖으로 분출하고 싶은 욕망들이 내면에 많이 있었다고 할까. 하지만 그런 캐릭터가 쉽게 찾아지는 건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여배우가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가 어느 정도 선에서 한정된 탓도 있고. 그런 측면에서 신이화는 너무나 단비 같았다. 내가 그 동안 갈구했던 캐릭터라서 너무나 반갑고 흥분되는 기회였지.

<검은집> 이전에 이미 2번의 공포 영화 경험이 있지만 어떤 주체가 되느냐에 따라 <검은집>은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 같다.
사실 이거 스포일러 감인데. (웃음) <검은집>이 장르적으로 관객에게 책임져야 될 몫, 즉 관객에게 긴장과 스릴을 주며 공포로 몰아넣어야 하는 몫의 상당부분을 내가 떠맡았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진행과정과 스토리가 갖는 힘도 있지만 내 연기가 그런 어필을 할 수 있어야만 장르 자체가 살 수 있다고 판단되더라. 역할에 대한 부담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컸던 것도 그래서였고. 작품에 내가 맡은 캐릭터를 얼마나 잘 녹여낼 수 있을까라는 건 늘 생각했던 문제지만 평소 이상의 부담이 지워진 듯한, 영화의 장르적 책임감을 내가 상당 부분 짊어져야 된다는 부담이 굉장히 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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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만나보니 연기를 통한 모습과는 확실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 동안 여자로서 선이 굵은 연기를 많이 했다. 여자배우로서 그런 이미지로 각인되는 게 부담스러울 때도 있을 것 같다.
그 동안 다소 선이 굵은 연기를 많이 보여줬으니 그에 비해 가늘고 섬세한, 좀 더 디테일한 작업들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편안하거나 일상적으로 풀어진 역할도 해보고 싶고. 근데 항상 난 임팩트가 강한 캐릭터에 많이 끌리더라. 예를 들면 <몬스터>의 샤를리즈 테론을 보고 몇 날, 며칠 동안 잠 못 이룰 정도로 설렌 적도 있다. 최근 <블랙북>의 여배우도 시작부터 끝까지 날 빠져들게 만드는, 흡입력 있는 캐릭터였다. 마치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닌 실제 인물의 모습 아닐까 싶을 만큼. 늘 일상적이지 않은 캐릭터에 많이 끌리는 것 같다. 내 취향 탓인가? (웃음)

<검은집>의 신이화도 그런 측면의 선택일 법한데, 하지만 개인적인 갈등이 없었을까? 강한 이미지의 캐릭터가 대중적으로 각인된다는 것이 때론 불편할 수도 있다.
주변에서 그런 우려를 많이 해주시지만 오히려 막상 난 전혀 고민이 안된다. 만약 나란 배우의 가능성을 어느 한 캐릭터의 이미지로 몰아서 한계를 짓는다면, 오히려 난 그들의 안목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배우로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얼만큼 갖고 있는지는 물론 나도 모른다. ‘저 배우는 너무 강한 역할만 해서 좀 그렇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어느 한 켠에 있겠지만, 어딘가엔 내가 표현한 것을 보고 되려 그 외의 다른 건 어떻게 소화할지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를 지닌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의 작업 기회가 왔을 때, 기존 이상의 이미지들을 내가 창조하고 만들어가면 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배우를 한 번 연기한 이미지로 한정 짓는다면, 배우가 작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두려움이 클까. 당연히 모두가 그렇진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런 자신감은 다양한 경험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다.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서의 경험과 드라마와 영화로의 경험들까지. 어떻게 생각하나?
난 어려운 숙제를 만날 때 의욕과 활기가 더욱 충전되는 스타일이다. 어려운 과제를 만났을 때, ‘이걸 풀 수 있을까, 어떻게 풀지?’ 란 생각을 하기도 전에 직접 풀어보고 싶은 거지! (웃음) 과연 이걸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어떤 식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란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전에 무조건 일단 달려들어서 풀어보고 싶은 욕망이 내 안에 있는 거 같다. <검은집>의 신이화 역은 누가 봐도, 어떻게 표현하면 된다는 그림이 명확하게 서는 인물이 아닌 어려운 캐릭터다. 자칫 잘못하면 영화 속에서 우스운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식칼 들고 다니는 모습을 잘못 표현하면 엽기적이고 우스운 꼴이 될 수도 있으니까. 모험일 수도 있지만 그걸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풀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좀 있었다.

싸이코패스(psychopath)란 소재가 낯설다는 점도 하나의 어려움이 아니었을까.
일단 그들의 존재에 대해 이해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기 위해 많은 자료들을 참고했다. 예를 들면 기존의 연쇄살인범들에 대한 인터뷰나 연구 논문 같은 것들. 그것들을 통해 그들의 유년 시절 가정환경과 성장과정 등을 알게 됐고, 그들의 욕망이 분출되는 계기나 과정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계속 생각하게 됐다. 그런 고민을 신이화에게 대입해서 어떤 성장과정 속에서 어떻게 자랐을까를 추측했다. 예를 들면 '다리를 전다'는 사실은 장애를 지닌 것이고, 그로 인해 어렸을 때부터 대인관계에 위축되고 소외감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 또 불우한 환경 속에서 사랑이란 걸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에게 필요한 걸 직접 구하지 않으면 자신이 취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강한 생존 본능이 생겼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인물에 대한 비하인드(behind)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연기를 하기 전에 예습부터 하느라 애 먹었겠다. (웃음)
하지만 그 시간이 내겐 소중했다.

물론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을 테니까, 나름대로의 설렘도 있었을 거다.
그렇지. 어떻게 보면 원작 속에 이미 존재했던 인물과 달리 <검은집>의 신이화는 한편으로 재창조된 인물이나 다름없다. 외형적인 느낌부터 시작해서 원작의 사치코로부터 내가 참고하거나 가져올 게 별로 없었을 정도로 다른 인물이라고 판단했다. 처음부터 괴기스러움을 풍기는 인물이 아닌, 자연스러운 일상 속에 묻혀 살아가던 사람의 정체기 드러나는 순간의 섬뜩함을 노린 영화니까. 나는 시나리오만을 토대로 더 깊숙이 들어가서 그 인물을 느끼려고 많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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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할 지 모르지만 혹시 주변에 그런 인물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없나? (웃음)
글쎄. 만난 적 없길 바라고, 앞으로도 만나고 싶지 않은데. (웃음) 처음 준비할 때는 자료를 보면서 정말 이렇게 무서운 사람들이 있을까 싶더라. 평범해 보이는 이들이 알고 보니 무서운 자들이었단 사례들을 자꾸 접하다 보니 사람에 대한 벽이 생길 정도였다. 그러다가 그들의 성장 과정이 남다르다는 것, 예를 들면 어린 시절 심각한 폭력을 경험했다거나 가정에서 사랑 자체를 경험해보지 못했단 사실을 발견했다. 받지 못했기 때문에 주는 방법도 알지 못하는 거지. 마치 신이화처럼. 그리고 아까 말했던 것처럼 강한 생존본능에 의해서 우리가 아닌 자신만을 생각하게 되고, 일단 내가 살아가기에 급급한 상황에 집착하게 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태어날 때부터 전두엽에 문제가 있다는 부분의 사실을 떠나서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렇다면 그들을 암적인 존재나 다른 인격체로 치부하며 무조건 선을 긋고 격리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렇게 급변하는 시대와 각자 살아가기 힘든 사회에서 오히려 누구나 이기적인 모습을 할 때가 많지 않나. 내가 잘 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밟고 일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어떻게 보면 그것도 죄의식을 못 느낀다는 측면에서 싸이코패스적 성향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이건 우리 모두에 대한 고민이지 불과, 그들이 우리와 다르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같이 연기했던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특히 강신일 씨와는 예전에 연극 <날 보러 와요>로 친분이 있던 사이기도 했고.
사실 그분의 경력과 신뢰받는 위치가 내겐 부담스러운 부분일 수도 있는데 연극할 때부터 정말 너무 편안했다. 때론 후배로서 연기할 때, 자칫 선배 눈치가 보일 때가 있다. ‘나 잘하고 있는 거야?’ 싶은. (웃음) 그렇게 위축되거나 눈치 보일 수 있는데, 강신일 선배님은 사람 자체가 너무 포근하고 인자하시다. 한 6년 전쯤, 연극에 발 내디딘 지 얼마 안되던 신인 시절에도 선배님과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사람이 주는 느낌 자체가 편안했던 덕분이었다.

개인적인 인상으론 덩치가 크진 않은데 후덕한 느낌을 주는 배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분의 손까지 잘랐으니. (웃음)
이런! (웃음) 종종 선배니까 후배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답답함을 느껴서 직접적으로 지적할 수도 있는데 강신일 선배님은 끝까지 그냥 지켜보신다. 그러다가 내가 도움을 얻고자 할 때나 정말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땐, 굉장히 조용하고 진지하게 한두 마디 던져주신다. 하지만 방법적인 부분에 대한 충고가 아니라 연기에 접근하는 방법에 대한, 즉 표현에 대한 방법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내가 방법을 발견하고 찾을 수 있게끔 조언을 해주신다. 좀 더 멀찍하게 방향을 잡아주는 거다. 그게 나한텐 지혜롭게 다가오는 충고가 된다.

황정민 씨는 어땠나? 극 중에선 칼부림하는 사이였는데. (웃음)
정민 오빠는 굉장히 창의력이 있는 배우다. 내가 내 틀 안에 갇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자꾸 넘나들어야 되겠다는, 내 틀 안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그 이상의 뭔가를 자꾸 연구하고 끄집어내려고 해야겠단 생각을 갖게 만든 사람이다. 그만큼 자기 연기와 캐릭터를 놓고 고민할 때 항상 남들이 선택하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고 뭔가 새로운 것이 없을지를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이 선택해서 갈법한 연기 스타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좀 더 다른 선택을 많이 해보려고 노력하더라. 그래서 기존 영화 속 캐릭터들이 살아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황정민스러운 선택과 노력들이 캐릭터를 조금 남다르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것들을 많이 배웠지.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는 주로 누가 맡았나? 의외로 강신일 씨가 많이 했을 것 같은데.
그렇진 않아! (웃음) 강신일 선배님은 촬영장에서 말씀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종종 애써서 유머를 하다가 반응이 썰렁하면 혼자 자책한다. (웃음) “또 재미없는 거지. 아, 또 내가 괜한 말 한 거지.” 이런 식으로. 오히려 그 때문에 더 웃음짓게 된다. 그런 선배님의 존재 자체가 사람들한테 편안함을 준다. 어렵거나 부담스러운 느낌이 드는 선배가 아닌 그냥 편안한, 존재 자체가 훈훈해서 너무 좋은. 반면, 정민 오빠가 주로 코믹한 상황이나 웃음을 많이 유발시켰다. 많은 분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오빠만의 유쾌함이 있다. 늘 진지하기만 한 사람이 아닌, 굉장히 유쾌한 사람이다. 덕분에 현장에서 많이 웃을 수 있었던 이유를 많이 제공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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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습하고 어두운 세트 촬영이 많았다. 특히 지하실 같은. 그런 공간에서의 촬영으로 다소 지치진 않았나?
세트가 일단 지하로 설정돼서 천장도 거의 다 덮어버렸고, 결국 공간 자체가 많이 폐쇄적이라 답답했다. 일단 계단을 내려가서 지하실 들어갈 때까지 시간이 되게 오래 걸렸다. 그래서 계단 내려가는 것까지 하면 내 기억에 한 이 주 정도의 시간을 거기서 머무른 셈이다. 정말 정민 오빠 말처럼 빨리 탈출하고 싶을 정도로 답답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게다가 난 내 집이었으니까 내 집처럼 누비는 자연스러운 설정을 위해 맨발로 다녀야 했다. 그런데 지하가 과거 목욕탕이라 바닥에 깨진 타일도 있고 종종 치우지 못한 유리조각 같은 게 많았다. 테이핑을 발바닥에 해주긴 했는데 그게 자꾸 떨어져서 나중엔 그냥 맨발로 누볐다. 아무래도 공간 때문에 겪게 되는 어려움이 많았다.

단순하게 나이만을 따진다면 데뷔시기가 다소 늦은 편이다. 물론 나이가 크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데뷔가 늦어서 필모그래피가 많이 쌓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 지금 시점에서 내 경력이 나만의 진지한 선택과 의미 있는 작업들로 좀 더 쌓여있다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 하지만 일찍 데뷔했다 해도 지금 나이에 만난 작품들처럼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좋은 롤(role)을, 과연 그때도 만날 수 있었을까란 생각도 든다. 어떻게 보면 30대 이후가 연기를 하는 배우로서 안에 있는 것들을 끌어낼 수 있는 깊이가 마련되는 때가 아닐까 싶다. 무게가 좀 더 실리는 듯한. 그래서 내가 일찍 데뷔하지 못해서 놓친 작품들보다 지금부터 앞으로 만날 작품들이 더 설레고 기대되는 것 같다.

그래도 지금까지 실속은 차린 것 같다. 항상 주연급의 비중은 아니었는데도 나름대로 캐릭터들이 기억에 남는다. 아무래도 그건 선이 굵은 역할을 많이 맡았기 때문이 아닐까.
전면 주연이란 타이틀도 장단점이 있을 거다. 드라마든 영화든 타이틀 롤이 되는 배우는 필두에 서서 처음부터 끝까지 전반적인 작품을 끌어가야 한다. 그만큼 그 배우가 뭔가 전폭적으로 보여줘야 되는 책임과 부담감을 짊어지는 셈이지. 결국 잘 되면 그 배우 덕분이지만, 안 되도 그 배우 탓일 수 있다. 누릴 수 있는 혜택만큼 짊어져야 되는 부담도 많을 거다. 그렇다면 말씀하신 것처럼 난 실속 있는 거지. (웃음) 롤의 비중과 무관하게 난 작품에서 충분히 내 역량만 발휘하고 나올 수 있었으니까. 그런 롤이 그런 면에선 더 매력적일 수 있다. 하지만 물론 나도 전면에 나서고 싶은 욕심이 날 때도 있다. 그게 없으면 솔직히 사람이 아니지. (웃음) <검은집>도 정민 오빠 얼굴이 포스터를 다 차지하고 있잖아! (웃음) 물론 영화상으로 확인할 수 밖에 없는 역할의 한계가 있어서 뒤에 숨겨져 있어야 되는 탓도 있지만. 사실 <황진이>의 송혜교 씨가 부럽기도 하다. 그녀가 지금쯤 갖고 있을 법한 심리적 부담도 굉장히 크겠지만 배우가 원 톱으로, 영화에 대한 관심과 부각을 혼자 다 받고 누렸으니까. 물론 그 배우가 전적으로 모든 책임을 질 필요는 없지만 영화의 핵이었던 만큼 책임감과 부담은 여전히 계속되겠지. 얻는 게 있으면 잃어버리는 게 있는 거니까. 일단은 내 역할 안에서 편하게 생각하려고 한다.

사실 지금까지 본인이 출연한 영화가 흥행한 적은 없다. <4인용 식탁>이나 <가발>이나, 그런 면에서 <검은집>의 흥행을 내심 기대될 법하다. 공포영화치곤 상당히 많은 개봉관을 잡았다는 소식도 들었는데.
매번 열정적으로 한 일에 대해서만큼은 항상 스스로 많은 기대감이 든다. 사실 <가발>같은 경우도 많이 고생했다. 내가 말 못하는 설정이라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굉장히 고민했고, 감독님과 많이 상의하면서 나름대로 정성껏 찍었다. 하지만 관객들한테 외면당한 결과로 인해 당시엔 상실감이 컸다. 영화가 안된 이유가 왠지 내가 강하게 어필을 못한 부분 탓이란 생각도 들었다. 사실 <가발>의 ‘지현’은 엔딩의 감정을 책임지는 인물이라 마지막의 표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에 대해 시종일관 많은 고민을 했지만 그게 관객에게 다가가지 못한 것 같아서 스스로 죄책감이 들었고 그로 인해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가발>은 내가 열정적으로 깊이 몰입한다고 해서 관객도 같이 그 안으로 빠져들어 주는 간 아니라는 어려운 과제를 만나게 된 계기였다. 이번 <검은집>도 힘들게 고민하며 정성껏 찍었기 때문에 역시 기대감이 생기고, 애착이 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보다 몇 배 많은 기대감과 관객에게 좀 더 인정받고, 평가 받고 싶은 욕심들이 자꾸 생겨나게 되는 작품인 것 같다. 그래서 그걸 좀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기 위해 노력하는데 쉽지 않다. (웃음) 결국 내게 그런 기대와 바람이 생기는 건 그만큼 내가 그 안에서 열심히 노력했고 고민을 많이 했다는 거라 생각한다. 결과와 상관없이 내겐 굉장히 의미 있는 작품으로 기억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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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역할을 해본 것도 이 영화가 처음이다.
맞다. 아이가 있었던 것도 처음이고.

그래서인지 처음인데 이런 식으로 하면 섭섭하지 않을까 싶더라.
너무 언발란스해서? (웃음) 근데 너무 다행스러운 건, 영화를 보신 분들은 보기 전엔 캐스팅에 갭이 큰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가 막상 영화를 보고 나서 그게 부조화스럽다는 거북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으셨다고 하더라.

나도 전혀 거북하지 않았다. (웃음)
만약 두 사람이 부부로서 생활하는 모습이 영화 속에서 장면으로 보여졌다면 관객에게 어색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검은집>은 부부가 맞물린 일반적인 생활보단 각자 다른 공간에서의 이미지들을 중심으로 표현해서 두 사람은 다른 개체로서 보여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게 전혀 문제되지 않는 이유인 것 같다.

지금까지의 필모그래피를 보니까 로맨스의 혜택을 누려본 적은 없어 보인다. 여자배우로서 찐한 사랑연기도 한번쯤은 해보고 싶을 텐데.
정말 징글징글할 만큼 처절한 사랑 얘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 아니면 그냥 가볍게 드라마에서 많이 봄직한 삼각 관계, 사랑의 줄다리기 뭐 이런 거라도? (웃음) 농담이고, 징글징글하게 처절하고 지독한 사랑 이야기 한번 해보고 싶다.

하긴 이제 눈에 힘 그만 줄 때도 됐다.
맞아! 이제 눈에 힘 빼야 돼! (웃음)

그래서인지 독신녀나 프리랜서 같은 이미지가 어울려보인다. 실제로 그런 역할도 많이 했고. 그런데 배우가 아니라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 것 같나?
난 어렸을 때부터 배우가 되겠다며 한 우물만 판 케이스라, 다른 데로 눈 돌려본 적 없다. 내 친구가 한번은 나한테 “너 이거 안 하면 뭐 할래?" 라고 이야기할 정도다. (웃음) 사실 다른 재주가 없다. 그렇다고 내가 재미있어하는 것도 없고, 자랑은 아니지만 심지어 특별한 취미도 없다. 연기 외에 크게 즐거운 건 없는 것 같다. 물론 내가 연기를 특출 나게 잘 하는 건 아니지만, (웃음) 연기 말곤 재미있는 게 없다. 운동이나 레포츠를 즐기는 것도 아니고, 활발하게 사람들 만나러 다니는 외향적인 성격도 아니다. 일없을 때는 주로 집에 있거나 작품을 끝낸 뒤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게 전부다. 그래서 다른 직업이나 내가 잘 할 법한 뭔가를 생각해보면 문득 떠오르는 건 없다. 그래도 내가 MC를 몇 번 했었잖나. 중고등학교 때 방송반 이었다. 그냥 서클 활동에 불과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 때 했던 훈련들이 결국 내가 MC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만약 다른 분야를 한다면 그 정도? MC나 아나운서? 그 이외의 것은 생각하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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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면 일단은 카메라밖에 대안이 없다. (웃음)
다들 “결국은 카메라 앞에 서는 거네!” 라고 이야기 하더라. (웃음)

그럼 그런 계기는 어디서 시작된 건가?
일단 남들 앞에 서는 것 자체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토요일마다 학예회 시간이 있었는데 그로 인해 내 자아를 깨닫게 됐다. (웃음) 내가 애들을 꾸려서 각자 역할을 정해주고 콩트를 만들거나, TV 프로그램을 패러디해서 발표하거나, 가수 모창을 한다거나 그런 걸 좋아했다. 무엇보다 내가 뭔가를 할 때 아이들이 웃고, 박수쳐 주고 환호하는 것들에 나름 희열을 많이 느꼈던 거 같다.

기획이나 연출자로써의 싹도 보이는데?
물론 역할을 분배하고 기획하는 건 필두에 나서기 위해서지! (웃음)

결국 주인공까지 다 해먹는 것이 목적? (웃음)
사실 기획이나 연출에 대한 꿈도 있다. 그런데 그건 배우로서 존재감 있는 위치에 선 뒤에 확장하고 싶은 꿈이다.

혹시 연기자가 됐단 사실을 후회해본 적은 없나?
음...앞에서 말한 것처럼 별다른 취미생활이나 연기 이외의 것을 통한 만족감이 없다 보니 연기를 못 하게 되면 실제는 너무 괴로운 거다. (웃음) 삶이 너무 단조롭고 무기력해지는 것처럼 내 존재감이 안 느껴지는 거지. 물론 올 해는 쉬더라도 조금 여유로울 수 있을 듯 하지만 신인 시절은 달랐다. 본의 아니게 갑자기 쉼이 길어진 적이 있었다. 자의가 아니라 특별한 기회나 프로포즈가 없어서였지. “배우가 되겠다는 내 선택만큼은 흔들림이 없고, 소신과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이렇게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과연 이게 내 길이 맞는 건가?” 쉬는 동안 그 고민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결과적으로 우린 누군가 인정해주지 않으면 기회조차 얻을 수 없으니까. 배우가 남들에겐 화려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인내의 시간이 많이 필요한 직업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프리랜서가 맞긴 맞다. (웃음)
그렇지. (웃음) 한번은 쉬는 동안, 할 일 없으니 운동하러 갔다가 옷 갈아입으려고 라커문을 열었는데, 갑자기 설움이 막 북받쳐서 눈물이 핑 돌더라. 결국 라커에 머리를 박고 숨죽여서 얼마를 울었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찡하다.

듣는 나도 찡하다. 이젠 그것도 추억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문소리 씨가 토크쇼에서 “난 항상 다음 작품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면서 작품을 선택했다.”고 했다. “이게 내 마지막일지도 몰라. 아무도 날 더 이상 안 찾아줄지도 몰라.”란 생각으로 항상 작품을 선택했다고. 대본을 수두룩하게 받아보는 몇몇 배우들을 빼면 모든 배우들에게 마찬가지로 그런 원초적인 불안함이 항상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직업 자체의 특성에서 비롯된 직업병일 수도 있겠지. 내가 직접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하지 않는 이상, 날 신뢰하고 믿어주는 누군가에게 선택 받는 기회를 얻어서 연기할 수밖에 없는, 수동적인 초조함과 불안함이랄까.

그런 점에서 <검은집> 캐스팅은 꽤나 반가운 기회라 볼 수 있다.
그래서 <검은집>은 더욱 열정적으로 노력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그 결과가 기대되고 잘 됐으면 하는 염원도 더 많이 갖게 되는 거지.

아까 말한 것처럼 작품을 마치고 나면 공허함이 밀려든다. 물론 캐릭터에 따라 다르지만 강한 캐릭터일수록 그로부터 빠져 나오는 게 어려울 것 같다. 신이화도 만만찮은 캐릭터였는데 어떤가?
만약 영화 속 상황 안에서 정서적으로 굉장히 힘든 상황을 겪었거나 심리적인 고민이 많은 캐릭터였다면, 끝낸 뒤 그런 감정과 정서가 여운으로 남아 한동안 계속 슬픔에 젖거나 우울하고 다운되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신이화 같은 경우는 사실 정서가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면에 뭔가를 많이 갖고 있던 인물들보단 오히려 빠져 나오기가 훨씬 수월했다. 다만 내가 이 인물을 짊어지고 관객에게 좀 더 다가갈 수 있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던 시간들이 이젠 없어져버린 셈이다. 촬영 종료와 더불어 내 역할이 없어진 그 상황으로 인해 ‘이젠 내가 할 게 없다’는 허탈함과 공허함이 컸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는 누군가? 연기가 인상적이라던가, 꼭 롤모델이나 이런 게 아니라도.
배우가 아무리 연기를 잘 해도 매번 작품마다 빛이 날 수는 없는 것 같다. 자기한테 맞는 옷이 있는 거니까. 어떤 작품에선 정말 기막힐 정도로 배우의 열정에 감탄하지만, 다른 작품을 보면 아까 그 배우의 색깔이 없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래서 어느 배우 한 사람보단 그 배우의 가장 빛났던 작품이 더 인상적으로 남는다. 그런데 요즘, 유독 멋있다고 느껴지는 배우가 ‘공리’다. 최근 <황후화>를 보면서 그녀만이 표현할 수 있는, 그녀이기 때문에 가능한 강한 카리스마가 영화를 장악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안으로 머금은 비장한 슬픔과 상처 같은 것들도 느껴진다. 무게감 있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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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강한 캐릭터에 끌리나 보다.
그런가 봐!! (웃음) 이야기하다 보니 또 그렇네!! (웃음)

그냥 개인적인 목표나 바람 같은 거 있을까? 굳이 배우로서가 아니라도.
개인적인 욕심은 토끼 같은 자식을 낳고, 화목하고 예쁜 가정을 꾸미는 거다. 그리고 엄마가 배우를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아이들이 자부심이 느끼고 엄마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자랄 수 있는, 엄마의 일을 인정하고 신뢰해주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도 그만큼 자랑스런 엄마가 되고자 노력하는 그런 모습들. 그런 것들을 예쁜 그림처럼 그려본다. 물론 내가 배우로서 풀어야 될 숙제들을 좀 더 풀어낸 다음, 가장 좋을 때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 보고 싶다.

지금까지 액션 연기도 종종 했다. 어떻게 보면 <검은집>도 나름 액션아닌가. (웃음) 전문적인 액션 연기에 도전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해보고 싶다! 더 나이 먹기 전에! (웃음) 사실 어렸을 때부터 액션영화에 대한 흥미나 호감이 남달랐다. <다이하드>나 <터미네이터>, <에일리언> 시리즈 같은 영화들에 열광하면서 자랐고, 성장기 때부터 여전사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웃음) 그걸 꿈꾸고 동시에 뭔가 실현해 보고 싶기도 했다. <킬 빌> 같은 캐릭터도 해보고 싶고.

그럼 해외로 나가야 할지도...
아니, 우리나라에서도 <킬 빌> 같은 거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웃음)

음..어쩌면 류승완 감독 정도면 가능할지도. 그런데 역시나 로망마저도 선이 굵은 거 같다. (웃음)
난 왜 이렇게 굵은 거야! (웃음)

드라마와 영화를 모두 경험했는데, 각각 쫑날 때 느낌은 어떻게 다른가?
사실 영화가 더 애틋하게 남는 거 같다. 드라마는 캐스팅 후, 첫 촬영까지의 시간이 많지 않아서 촬영 동안 그 캐릭터가 되어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영화는 사전에 이미 캐릭터에 대한 입력을 끝내고 철저히 준비한 후, 첫 촬영부터 이미 그 캐릭터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드라마보다 준비 과정이 밀도 있고, 촬영 과정 중의 순간적인 고민들이 세심하게 녹아 들어가기 때문에 끝난 후에 작품에 대한 애정이 더 심하다. 여운도, 애착도 더 길게 간다. 영화 작업이 그래서 배우들한테 의미가 있는 거 같다. 그래서 자꾸 영화를 하고 싶어하는 것도 같고.

사실 배우에게 유리한 건 영화보다 드라마일 것 같은데? 드라마는 자신의 연기가 부족했던 순간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많으니까. 하지만 영화는 돌이킬 수 없다. 어쩌면 그래서 영화에 더 몰입하는 까닭일지도 모르지만.
드라마는 빠듯한 스케줄 속에서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다. 모니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보니 내가 어떻게 하는지 체크할 수도 없다. 그래서 순간적인 몰입과 확신으로 연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내가 그 캐릭터와 이미 일체가 되어있다. 그런 후엔 이동하면서 대본을 훑어보고도 감정을 쭉 뽑아낼 수 있게 된다. 그런 게 드라마의 매력이다. 사실 영화는 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방법을 고민한다. 근데 드라마는 그럴 시간이 없다! (웃음) 어떨 땐 대본을 받고 빠른 시간 내에 외운 후 그냥 연기하게 되는데, 순간 내가 그 인물의 감정을 쭉 외운 대사만을 통해 표현하고 있을 때의 짜릿함이 있기도 하다. 드라마만이 지닌.

어떻게 보면 드라마는 매일같이 학교에 등하교 하는 기분일 것 같고, 영화는 단체로 합숙수련회 다녀오는 기분이 아닐까 싶다. (웃음)
멀리 수련회 다녀오는. (웃음)

이번에 드라마 <엔젤>에 출연한다고 들었다.
미국에 가서 한 달 정도 로케를 하고 왔다. 비운의 죽음을 맞는 캐릭터인데, 일단 서울에서 야외 촬영 하루 분량 정도가 남았다. 난 특별 출연 개념이라 방송 땐 초반 분량 3회 정도만 나오고 빠진다. 그런데 역할이 나름 의미 있는 역이다. 초반에 장진영 씨가 맡은 캐릭터가 로비스트가 되는 계기와 원인을 제공하는 인물이니까. 초반 도입에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캐릭터라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어서 참여했다. 특별히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려는 개인적인 욕심보단 좋은 취지의 작품에서 짧게나마 중요한 계기가 된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차인표 선배님도 <하얀 거탑>에서 짧게 출연했지만 굵은 인상을 남긴 것처럼. 짧지만 드라마에 중요한 인상을 남기는 역할이라 하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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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차기작에서 해보고 싶은 장르나 역할이 있다면?
사실 내가 안 해본 캐릭터가 너무 많아서 뭘 해도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한번쯤 해보고 싶은 캐릭터는, <블랙북>이나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에서의 여자 캐릭터도 너무 매력적이었던 거 같다. 사실 요즘 영화를 보면 여배우가 남자배우의 부속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많이 본듯한 캐릭터에 적당한 롤이 아니라 영화 전체에 힘이 될만한 선 굵은 캐릭터랄까? 영향력 있고 흡입력 있는, 물론 그게 선이 강하고 안 강하고를 떠나서. 또 말하다 보니까 그 쪽인가? (웃음) 어쨌든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다.

만약 공포영화 제의가 또 들어온다면?
공포영화 또 들어오면 화날 것 같은데! ‘이것 보세요!’ 막 이럴지도. (웃음)

하지만 시나리오가 좋다면 또 할 것 같은데.
그러겠지. 내 팔자가. (웃음) 이번엔 또 어떤 롤일까? (웃음)

다시 연극 무대에 서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물론 있다. 처음 연극을 할 당시가 연기 초년 시절이었다면 지금은 이런 저런 경험들을 한 다음이고, 인생을 조금 더 산 후니까. 지금 무대에 서면 느낌이 틀릴 것 같다. 어쩌면 마치 처음 서는 것처럼 설레고 떨릴 것 같기도 하고. 역시나 확실한 건 좋은 시기에 좋은 작품으로 서고 싶다. 일단 급한 욕망부터 좀 먼저 끄고, 영화 작품에 좀 더 몰두해보고 싶다.

취미가 없다고 했지만, 영화를 굉장히 많이 보는 것 같다. 그게 취미 아닐까?
전문 분야니까! 공부 차원에서 봐야지!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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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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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룡 인터뷰

interview 2008. 5. 3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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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의 원년 멤버다. 아직도 <난타>로 기억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너무 오래했다. <난타>를. 5년 동안 했으니까. 사실 난 영화 하려고 프로필 찍어본 적도 없고, 오디션을 본 적도 없다. 내가 <난타>이후로 접한, 대사가 있는 정극이 연극 <웰컴 투 동막골>이었다. 알다시피 장진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었고. 장진 감독은 한번 연을 맺으면 끌고 간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장진 감독의 다음 영화에 합류하다 보니까 또 자연스럽게 영화 쪽으로 합류하게 된 거 같다.

초창기 멤버라서 자부심이 강할 것도 같은데. 브로드웨이도 다녀왔고.
브로드웨이 뿐 아니라 외국을 너무 많이 다녔지. 누구도 안 부러울 만큼. 유럽 17개국은 그냥 기본이었고.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노르웨이, 두바이. 여기저기 막 다녔지. 너무 좋았다. 국가대표라는 마인드가 생길 정도로 자부심도 엄청 컸고. 난 등에 태극기까지 오바로크해서 달고 다닐 정도였으니까. 사실 지금은 로컬 쇼(local show)나 코리아 하우스처럼 관광객을 위한 쇼 형식이 돼버려서 약간 아쉽긴 한데, 어쨌든 외화를 벌어들이는 문화 상품이니까.

장진 감독과 1년 차 선후배 사이라던데. 대학 시절부터 친분이 돈독한 사이였나 보다.
그렇지. 졸업작품도 같이 했는데. 내가 주인공을 맡은 <길>이라는 작품이 있다. 전위극 <까>를 만든 강만홍 교수 작품. 그 때 우리 반 멤버가 황정민, 정재영, 장진 감독, 임원희. 와~! 진짜 빵빵 하지 않아? (웃음) 다 우리 반이었어. 내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최고네. (웃음)

전에 장진 감독이 <거룩한 계보> 시절 인터뷰 때 류승용 씨가 대학 시절 연기가 좋았다고 칭찬했던 게 기억난다. 그런데 의외로 졸업 후 선택한 건 <난타>였다. 대사 한마디 없는.
배우마다 시작하는 지점과 정점, 그리고 하향 곡선 같은 게 각각 있잖아. 난 그시기가 내 동기들이나 다른 배우들에 비해 조금 다르거나 늦었을 뿐이지. 나이를 먹거나 안주하게 되면 할 수 없는 작업이 있다. 그게 <난타>같은 거지. 사실 영화는 배우의 길을 걷고자 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물론 지금 이렇게 된 게 당연한 결과라거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게 아니라, 차근차근 하다 보면 언젠간 할 수 있겠단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난타>같은 건 나이가 들면 절대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 직접적인 계기는 뉴욕의 라마마 극장에 <두타>가 초대받아서 공연하러 갔다가 거기서 <스톰프(stomp)>와 <튜브(tubes)>같은 넌버벌 퍼포먼스(non verbal performance) 공연을 봤다. 막 두들기는. 그리고 왜 우리나라엔 저런 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귀국했는데 송승환 대표님이 <난타> 오디션을 보더라. 그래서 옳다구나 하고 오디션 본거지.

뉴욕에 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던 것도 아닐 테고.
여비를 우리가 대서 고생했지. 밥도 다 사먹고, 비행기표도 우리가 사서 갔으니까. 그래도 그냥 뉴욕이란 곳에 가보고 싶었다. 그것도 연극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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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그게 지금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필모그래피 적으로도 특별해 보이고.
사실 필모그래피 적으론 전혀 도움이 안 되지. 왜냐면 영화감독이나 영화 관계자들은 대사와 연기를 원하기 때문에. 물론 지금에 와선 도움되는 프로필이 됐지만, 아무 경력이 없는 배우에겐 되려 도움이 안 된다. 만약 <난타> 배우 출신이 영화오디션을 보러 와서, “저 <난타> 했습니다.” 그러면 도움이 안 되지~! 대사를 한마디도 안 했는데~! (웃음) 그런 면에 있어서 내가 <난타>를 좋게 홍보할 수 있는 사례가 된다면 좋겠다. 그런 배우들도 얼마든지 잠재력이 있다는 걸. <점프>나 <난타>에 출연하는 배우들처럼, 배고프지만 열정을 가진 친구들을 돌아볼 수 있는 어떤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나로 인해서.

재미있는 이야길 들었다. 장진 감독과 10년 동안 별다른 연락을 안 하다가 연기를 하고 싶어서 찾아갔었다고.
사실 난 그때 대안이 장진 감독밖에 없었다. 내가 장진 감독한테 간 그때가 서른 둘 정도였으니까. 내가 다른 극단에 가기에는 나이가 굉장히 애매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극단은 동인제 시스템이라 오디션 봐서 들어가기도 어려웠고. 그래서 그때 학연이란 것에 처음으로 도움을 받았지. 장진 감독을 통해. 그리고 그 전엔 장진 감독도 바빴고, 나도 바빴고. 사실 그땐 내가 술을 많이 마시던 때였다. (웃음) 장진 감독은 지금의 직함을 위해서 진짜 열심히 일하고 있었고. 나도 <난타>로 창작 욕구를 한참 풀어내고 있었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렇게 되기 위해서 각자의 길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던 거 같다. 언젠가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만날 인연이었는지도 모르지.

정재영 씨와도 대학 동기다. 거기서부터 이어진 인연이라 <거룩한 계보>에서의 어울림은 당연히 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고. 정준호 씨한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난 정준호보단 류승룡이 더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표면적으론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근데 지금 <황진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황진이>가 <거룩한 계보>처럼 마케팅하는 게 당연하다. 솔직히 그게 자본주의니까. 아무래도 스타들이 관객의 눈길을 끌기엔 적합하지. 물론 <거룩한 계보> 당시에 조금 서운한 감은 있었지. 사실 세 친군데~! (웃음) 근데 지금은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만약 장진감독이 날 밀어준답시고 ‘정재영, 정준호, 류승룡’ 이렇게 올렸는데, “어? 누구야?” 이러는 것 보단 나중에 영화를 보고 “어? 정재영하고 정준호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류승룡도 눈에 띠던데? 왜 이 배우는 포스터에 없지?” 이럴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런 말 듣는 게 더 통쾌하다! (웃음) <황진이>도 마케팅 팀에서 필요한 만큼만 나를 적당히 활용하는 것 같다. 솔직히 마케팅은 상업적이어야 할 자본주의적 메카 아닌가? 그래서 이번에도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마케팅이 날 활용하는 게. 그리고 이런 모습은 내가 어느 정도에 와 있는가를 알 수 있는 척도가 된다. 기자시사 때 무대인사를 하느냐, 그리고 기자 간담회에 참석하느냐 뭐 이런 것들 있잖아. 무대 인사만 하고 기자 간담회 때 빠지느냐 안 빠지느냐. 이게 굉장히 예민한 부분이 될 수도 있다.

<황진이> 때도 기자 간담회 후 포토 타임 때, 사진 기자들 요청으로 다시 올라왔던 기억이 난다.
마케팅 팀이 실수를 했다. 되게 당황했지. 내 차례를 빼먹다니. (웃음) 그런데 많이 겪어본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무덤덤했지. 오히려 그런 걸 겪어봐서 다행인 거 같다. 나중에 꼭 그런 후배들한테 배려하고 싶다는 마음을 지니고 있으니까.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왜 그, 뻘쭘한 거 있잖아! 뻘쭘한 거! (웃음) <천년학> 때는 어떤 기자가 “이번 작품을 임하면서 임권택 감독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조재현 씨, 오정해 씨, 오승은 씨 이야기해 주세요.” 이러더라. 물론 무비스트는 아니었고. (웃음) 그러니까 재현이 형이 마이크를 들더니 어디 기자냐고 묻고 “배우도 기본이 있어야 되듯 기자도 기본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넷이 앉아있을 때 똑같은 질문을 할 땐 나중에 (코멘트를) 자르는 한이 있어도 넷에게 질문을 하는 게 예의다.”라고 하더라. 후배에 대한 배려였지. 재현이 형도 연극 출신이니까.

내심 고마웠겠다.
꽤 고마웠지. <거룩한 계보> 때, 현장 공개를 처음 해봤다. 갑자기 장진 감독이 “야, 승룡이! 너도 해!” 그래서 얼떨결에 끌려갔지. (웃음) 근데 그때 얼굴 표정 다시 보면 되게 슬프다. 기자 간담회 때 파란 마이에 흰 와이셔츠 입었는데, 재영이가 옷 빌려줘서 입은 거다. 내가 이런데 서도 될지 싶을 만큼 너무 어색했다. 그런데 재영이가 갑자기 정준호씨와 자기 가운데에 날 껴 넣는 거다. 그러더니 양쪽에서 막 어깨동무하고. 사실 그때 난 삐뚤어져 있었던 것 같다. 열등감이란 게 사람을 추하게 한다. 사실 난 열등감이 없는 남자라고 자부했었는데 아니더라. 결국 <거룩한 계보> 관련 사진에 그게 남더라. 만약 정재영, 정준호, 나 이 순으로 섰으면 난 잘렸겠지. 사실 요즘에 <황진이> 때도 많이 느끼거든. (웃음) 재영이가 그걸 안거지. 그래서 날 못 자르게 하려고 가운데 넣고 어깨동무까지 한 거다. 나중에 재영이가 그 얘기를 하더라. 그런 자그마한 배려가 솔직히 고맙더라.

그렇겠다. 지금 그 때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겠다. <황진이>에서는 중심인물 중 한 명 아닌가.
그런데 앞으로 그런 후배들이 많이 올라오겠지. 무대 인사엔 오고 기자 간담회 때는 안 오는. 이번에 <황진이> 때도 (오)태경이나 (정)유미 같은 애들이 막 뻘쭘한 게 보이더라. 왜냐면 올라가야 되는지 안 올라가야 되는지 헷갈리니까. 내가 막 당황했던 거 있잖아. <박수칠 때 떠나라> 때도 아무도 말을 안 해주는 거야. 홍보 팀이던, 마케팅 팀이든. 알아서 빠지라는 식이지. 근데 무대인사는 하라 그러고. 이번에 태경이나 유미한테도 그런 모습이 느껴지더라고. 그래서 내가 도와줬지. 그러니까 무대 인사를 시키던 나중에 간담회에 빠지던 그 기준에 따라서 준비가 안 된 배우들한테는 사전에 적절한 코멘트나 배려가 있어야 할 것 같다. 당황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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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수가 많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유명세를 탈만한 작품이 많았다. 물론 본인 연기가 인상적이었지만 감독이나 동료 배우를 잘 만난 덕인 것 같기도 하고.
난 복이 많은 것 같다. 물론 내 뒤에서 하느님께서 도와주시는 덕분이지만. 일단 장진 감독처럼 유니크(unique)한 글을 쓰는 사람의 작품으로 첫발을 디딘 것부터가 복이었지. 그리고 <열혈남아>하면서 설경구 선배를 만났고. 그리고 임권택 감독님의 작품에 출연하게 됐고. <소나기는 그쳤나요>를 보고 캐스팅을 하셨단다. 어쨌든 감독님께서 총명하실 때 그분의 작품을 했다는 게 영광이지. 흥행의 성패를 떠나서. 가을에 겨울잠을 자려고 먹이를 많이 먹듯이, 에너지 충전을 굉장히 많이 한 것 같다. 앞으로 연기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에너지들을, 임권택 감독님을 통해서. 촬영장에서 해야 되거나 하지 말아야 될 행동들, 또한 임하는 자세들 그런 것들을 너무 많이 배웠지. 임권택 감독님한테. 그리고 거기서 조재현 선배를 만났고. 그리고 또 <황진이>의 장윤현 감독님은 정말 조용한 카리스마다. 배우의 감정선을, 특히 여배우의 감정선을 가장 잘 표현해 낼 수 있는 그런 감독인 것 같다. 그리고 또 송혜교 씨나 (유)지태란 친구를 만났고. 계속 그렇게 연결이 되는 것 같다.

배우나 감독에 상관없이 영화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돈독해지는 편인가 보다. 실제로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으로 아는데.
그건 내가 스타가 아니기 때문인가? (웃음) 영화는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잖아. 화가나 시인이나 음악가들과 달리 영화는 철저하게 같이 하는 작업이니까. 차승원 씨도 같이 하는 배우들하곤 일단 굉장히 친해지려고 노력을 많이 하거든. 왜냐면 연기할 때 불편하니까. 물론 촬영 후에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가 남는 건 아니지만 한번이라도 지방에 내려가서 동거동락하며 지낸 친구들은 다 담는 편이다.

처음 카메라 앞에 섰을 당시 느낌은 어땠나?
너무 편했다. 아마도 처음엔 <아는 여자>였기 때문에 너무 편했던 것 같고. 가벼운 씬이었으니까. 두 번째는 <소나기는 그쳤나요>의 농부 연기였는데 그것도 너무 편했다. 시골이잖아. 난 그런 게 편하거든. (웃음) 사실 난 개인적으로 <고마운 사람>이 너무 편했던 것 같아. 텐션(tension)이 없잖아. 나도 편한 호흡의 연기가 어울릴 수 있겠다고 느낀 게 <고마운 사람>이었지. 사실 긴장하기 시작한 건 <거룩한 계보> 때였지. 아무래도 앞의 영화보단 역할도 커지고 상업적인 성격이 강해지니까 내가 씬을 책임져야 된다는 걸 느꼈거든. 그리고 눈앞의 카메라가 관객과 소통하게 되는 지점이란 걸 깨달았거든. 저 렌즈가 10만 명의 눈이 될 수도 있지만 백만 명의 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까. 또 대형 스크린으로 보는 눈도 있지만 DVD를 통해서, 아니면 추석날 TV를 통할 수도 있잖아! (웃음) 렌즈를 눈으로 딱 느끼는 순간, ‘아, 이게 장난이 아니구나’ 싶더라. 그만큼 촬영 기간 동안 자기 관리도 중요하게 되고. 대사나 이런 것도 자연스럽거나 그렇지 못하게 그 날 현장 분위기 때문에 대사도 연기가 어색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게 평생 남을 장면이라 생각하면 두고두고 후회될 것 같더라.

단순한 질문일지 모르지만 연극의 무대와 스크린의 카메라의 차이를 느꼈다면?
일단 영화는 이야기의 흐름과 무관하게 상황에 따라서 뒤죽박죽으로 씬을 가져가니까 그런 부분이 힘든 것 같다. 마지막 장면을 제일 처음 찍기도 하고, 첫 장면을 제일 마지막에 찍기도 하고. 근데 그게 영화만의 마력인 거 같아. 마치 퍼즐처럼 맞춰가는 작업이니까. 그리고 각각의 분야를 지닌 수십 명의 사람들과의 작업을 통해 완성된다는 점도 연극과 달리 영화를 리얼리티에 가깝게 만드는 작업이지. 또 대형 스크린을 통해 결과를 보게 된다는 것도 재미있고. 인터넷 관객 수치 등으로 평가를 살필 수 있다는 것도 묘하고. 연극은 관객과 그때그때 다이렉트(direct)로 호흡하고 느끼니까 그날그날에 따라 틀리잖아. 그런 짜릿함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연극과 상대적으로 영화만의 매력을 느껴본 적은 없나? 영화는 이런 거구나 싶은.
정말 짜릿한 건, 영화가 배우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는 거지. 조명이나 기타 여러 가지 효과들이 배우를 돕는다. 사실 연극은 배우들과의 호흡, 연습량, 즉 배우들의 역량이 작품을 판가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영화는 감독의 현장 디렉션에 따라 상황이 변하기도 하고, 분장, 조명 같은 장치적 효과가 배우의 결점을 채워주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있으면 그걸 잘 모르지. 스크린의 결과를 보고 그분들한테 감사하는 거지. 그래서 갑자기 막 문자 보내게 되고. (웃음) 분장이나 빛을 통해 배우의 연기를 더욱 깊고 진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되고. 내 부족한 연기를 채워주는 사람들한테 감사할 수 밖에.

영화의 장치적인 효과를 많이 느꼈나 보다.
많이 느꼈지! 음악도 그렇고. 무엇보다 <황진이>를 통해 조명과 카메라를 알게 됐다. 이제야 비로소! 그 전엔 그냥 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지 그런데 <황진이>는 촬영하고 조명, 분장 이런 효과에 유난히 공을 많이 들이길래 유심히 지켜보곤 했다. 촬영 기간이 길기도 했지만. 감정을 따라잡는 조명, 그거 알아? 분위기에 따라서, 반전에 따라서. 배우의 눈빛을 살려주는. 놈이가 옥사에서 이야기하다가 눈가가 갑자기 은빛이 되는 순간, 소름이 쫙 끼치더라. 그건 조명의 힘이거든. 못 느꼈나?

음..솔직히..
그럼 안 되는데! (웃음) 황진이와 옥사에서 대화를 나누는 씬에서 눈가에 은빛이 쫙 돈다. 눈물이 올라오는 순간을 조명으로 딱 잡아준 거지. 그때 너무 소름 끼치더라.

앞으론 그런 부분에 대한 고려도 많아지겠다. .
먼저 영화 캐릭터 전체에 대한 고민이 많이 있어야 되겠지. 전체 영화에서 내가 해야 될 몫이 있으니까. 물론 혼자만 잘 하겠다고 발버둥치는 건 보기 싫고, 영화에 내 캐릭터를 잘 녹여낼 수 있게 감독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과 의견을 나눠야겠더라. 그리고 현장 당일 날은 정말 베스트를 해야지. 후회 없이. 한 컷,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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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열은 <황진이>에서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다. 비열하지만 가장 솔직한 인간적 욕망을 드러내는 캐릭터. 그리고 내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지만 동시에 사극이니까 그 시대에 걸맞은 외관을 위한 노력도 있었을 거다.
<스캔들>에서 배용준 씨 캐릭터를 만든 분장 팀 한필남 팀장님이 외피적인 모습 때문에 굉장히 많이 고민했지. 왜냐면 내가 너무 없어 보이니까. (웃음) 재력가이자 권력가이며 쿨한 바람둥이고, 샤프한 척도 해야 되고, 그런데 그러기엔 내가 너무 없어 보이는 거지. 굉장히 많이 고민했다. 외피적인 모습을 만들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 살도 많이 빼고. 사실 극 초반이 힘들었다. 희열이란 캐릭터가 지니고 있는 속내, 까놓고 말하면 바람둥이지. 난 술도 안 마시고, 룸싸롱 같은데 가서 여자 끼고 놀아본 적도 없다. 그래서 그런 모습이 너무 어색한 거야. (웃음) 그래서 그걸 이겨내려고 초반엔 노력했었고, 그 뒤로는 쉽게 풀렸던 거 같다. 희열 같은 인물은 지금 이 시대에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고. 결국 옛날부터 계속 있었던 거지. 그런 놈 죽으면, 그런 놈 하나 태어나고. 권력에 대한 야망과 여자에 대한 소유욕을 지녔지만 겉으론 드러내지 않는 이중적인, 이런 인물들은 항상 있었지. 평소엔 평강(平康)하지만 외부적인 자극이 닥치면 분노가 일어나고 막 질투도 일어나는 건, 인간 누구에게나 있거든. 나도 있고, 기자님에게도 있고. 난 그런 지점에서 접근했다. 주변 환경에 따라서 누구나 그럴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접근했지.

희열이 도덕적인 인물은 아니지만 인간적으론 이해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난 충분히 그럴 수 있단 생각이 든다. 그 정도의 권력을 지닌 희열이 황진이한테 쿨하게 잘해줬는데, 이 여자가 딴 남자를 사모하고 목 빠지게 기다리면 질투가 안 나겠나?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지만 남자는 살인한다. 여자들은 딱 끊고 말아버리지. 도마뱀처럼. 그런데 남자는 집요하단 말이야. 그런 면에서 희열은 굉장히 솔직한 인물인 거 같다. 단순한 선악 구도에선 악당이지만 탁 털어놓고 솔직하게 보면 제일 인간적이지. 상대적으로 놈이는 굉장히 유토피아적이고 비현실적인 인물이잖아. 지금 시대를 현재로 옮긴다면 희열은 현직 검사 정도, 되게 잘나가는! 근데 놈이는 자기 앞가림도 못하고 맨날 경찰서 들어갔다 나오고. 그런데 누굴 택하겠냐고, 요즘 여자애들이. 누굴 택하겠어요? (홍보사 이 모씨한테) (웃음)

(당황한) 홍보사 이모 양: 희..희열?
그래. 당연한 거야. 이 대답이! (웃음) 그런데 영화의 매력은 바로 그거지. 비현실적이지만 올바른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현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사랑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에 경종을 울려주는, 현실적이란 핑계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가치관들에 경종을 울리는 순수한 사랑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 그 말을 하는 것 같아.

희열 같은 경우는 가장 솔직한 질투가 드러난 인물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황진이>에서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사실 놈이가 비겁한 놈이지. 안 그래? 황진이 시집간다니까 꼰 지르고 모른 척 하고. 결국 황진이가 기생 된 건 놈이 탓이지. 결국 끝까지 지켜주지도 못하고, 현실도피적인 인물이지. 안 그래? (또 홍보사 직원한테) (웃음) 아, 근데 이러면 홍보 잘못하는 건가? (웃음)

가만히 보니까 남자 배우 복이 참 많다. 정재영 씨부터, 차승원, 설경구, 조재현, 유지태, 정준호 씨.
이범수 씨랑 뮤직비디오도 찍었다. (웃음) 그냥 뭐 고맙지. <열혈남아>에서 윤제문 씨도 같이 했었고.

윤제문 씨는 연극도 많이 하시니까 연대감도 있었겠다.
그렇지. 나랑 동갑인데. 카리스마도 있고. 좋아요. 사람.

가만히 보니까 동갑 배우가 많다. 차승원 씨도 동갑이고.
70년생 너무 많아. 진짜. 정재영, 황정민 같은 내 동기들부터 시작해서. 친하진 않지만 감우성, 이병헌, 김수로, 김혜수 등 진짜 되게 많네! 아, 강성진도 있네. (웃음)

서울 예대 시절의 인맥들에게 도움을 많이 얻고 있는 거 같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으로.
사실 공식적인 자리를 떠나 개인적으론 직접 연락하는 경우는 드물다. 서로 매체를 통해서 소식 듣고 그런 편이지. 어쨌든 든든하지. 얼마 전 어떤 잡지 같은 경우에 정민이가 <검은 집>으로 표지 모델을 했고, 중간에 내 인터뷰 기사도 세 면 정도 나오고, 재영이도 <신기전> 때문에 나왔다. 동기 셋이 한번에 딱 나온 거지. 그리고 각자들 다 봤겠지. 근데 서로 “야, 너 나왔더라.” 이렇진 않죠, 우리가. (웃음) 그리고 설마 걔네 들이 “아, 이게 이제 치고 올라오네.” 이러겠어? (웃음) “승룡이 고생하더니 이제 조금씩 주목 받는구나.” 하고 좋아하겠지. 설마 “아, 큰일났네.” 이러진 않을 거 아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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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간의 좋은 자극이 될 것 같다.
음..사실 그런 건 전혀 없고. (웃음) 농담이고, 그렇지. 서로 각자 좋은 자극이 되겠지.

혹시 본인을 자극하는 배우가 있나?
자극뿐만 아니라 담고 싶은, 또 닮고 싶지만 닮을 수 없을 것 같은 배우가 송강호 선배지. 뭐 다들 많이 이야기하겠지만, 연기에 있어서는 거의 멘토(mentor)라고 생각한다. (신)하균이나 재영이나 정민이도 공히 말하는 게 강호 형 연기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고. 왜냐면 너~무 자연스러우니까. 제작자나 작가, 감독이 생각하지 못한 걸 배우가 만들어내니까 소름이 끼치는 거지.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 중 가장 편하게 연기했다 싶은 역할이 있나?
<소나기는 그쳤나요>에서 농부. 그런 수더분한 아저씨 있잖아. 난 그게 너무너무 편하다. 그건 우리 동기들도 비슷할 거다. 우린 헝그리 족이었거든. (정)재영이나 (황)정민이나. 예대 시절에 두 부류가 있었어. 집에 돈 좀 있는 애들, 그래서 그때부터 일찌감치 차 타고 다니는. 근데 정민이나 나는 항상 야상, 등산화, 군복 바지나 입고 다니고. (웃음) <나의 결혼 원정기>나 <너는 내 운명>같은 순박한 연기들이 그런 데서 나오는 거지. 나도 그런 모습들이 그래서 좀 편하고. 물론 그것뿐만 아니라 <사생결단>이나 <피도 눈물도 없이>같은 마초적인 연기도 되잖아. 근데 전자보단 후자가 난이도가 조금 낮은, 쉬운 연기인 것 같다. 평탄한 호흡을 길게 가져가야 하는 연기가 굉장히 어렵지. 그래서 난 그런 연기에 도전하고 싶고.

현재 영화판에서 연기력을 인정받는 배우들을 보면 연극 무대 출신인 경우가 많다. 방금 말한 송강호 씨도 그렇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연극을 경험한다는 건 연기자에게 가장 좋은 경험이 아닐까 싶다.
일단 연극은 기본적으로 인간적이다. 먼저 그걸 깨닫게 하고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르친다. 무엇보다 굉장히 엄한 곳이지. 그렇기 때문에 작품에 임하는 자세도 틀리고. 연극은 한 대본을 보통 3개월씩 연습을 하잖아. 결국 시나리오를 통한 작품 분석, 인물 분석에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지. 호흡이나 발음, 발성 같은 것도 아예 안 배운 사람들 보단 낫겠지. 발음이나 발성 때문에 지적 받는 배우들 많잖아. 솔직히.

확실히 연극 출신 배우들은 발성이 좋은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독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땐 그걸 빼면 되지. 그러니까 <황진이>같은 경우엔 호통치는 연기가 많아서 발성을 이용할 때가 많았지만 <열한번째 엄마>같은 경우엔 발성을 전혀 안 썼거든. 하지만 분명 발성을 해야 될 때, 그 연습을 안 한 사람은 안 나는 거지. 그런 면에선 굉장히 유리한 거지. 그리고 질문 외적인 이야기지만 오디션을 봐서 그 사람을 얼마나 깊게 알겠어. 사실 연기는 하고 싶은데 기회가 없기 때문에 연극을 먼저 하는 경우가 많지. 난 그렇게 생각한다. 난 운이 좋아서 사진도 안내고 오디션도 안 봤지만 백날 프로필 넣고 오디션 봐도 안 되는 사람이 허다하거든. 영화는 그 바닥에서 검증된 배우들을 위주로 보기 때문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유)해진이는 참 대단한 사람이지. 해진이도 단역 오디션부터 시작했으니까. 그렇게 밟아간 경우는 굉장히 드물거든.

유해진 씨와도 같이 공연한 사이 아닌가.
같이 머리 빡빡 깎고 뉴욕 가서 <두타>했지. 고생 많이 했어. 같이 조치원 비데 조립공장가서 한달 동안 일한적도 있는데, 류사장, 유회장 막 이러면서. (웃음) 조치원 공장에서 일하는 아줌마들이 초등학교 선생님인 자기 딸 소개시켜준다고 눌러 앉으라고 막 그랬어. 진짜! (웃음) 왜냐면 일을 너무 잘하니까. 여담인데 한달 아르바이트로 갔다가 우리가 공장 시스템을 바꿔버렸어. (웃음) 너무 비효율적이더라고. 분업도 안되고. 그래서 우리가 되게 효율적으로 만들었지. 그리고 ‘오침(午寢) 시간을 줘야 한다. 그래야 효율적이다.’ 그래서 오침도 했잖아. (웃음) 어쨌든 해진이와는 같이 고생 많이 했지. 그 친구도 혈혈단신 연극하겠다고 청주에서 올라와서 맨날 후배들 자취방 돌아다니면서 자고, 세트 아르바이트도 굉장히 많이 하고.

최근 <이장과 군수> 주인공도 맡았고, 그런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 뿌듯하겠다.
음..사실 이제 터닝 포인트가 필요할 시기지. 해진이가 나보단 부담이 훨씬 클 거다. 지금 그걸 고민해야 될 타이밍이니까. 지금까진 잘 왔잖아. 그런데 지금이 더 중요하잖아. 그래서 아마 해진이가 고민이 많겠지.

<황진이>는 첫 사극 연기였는데 어떻던가?
너무 좋았다. 난 사극 체질인가 봐. (웃음)

사극이랑 꽤 어울리는 캐릭터이긴 하다. 일단 턱수염만 봐도. (웃음) 분장을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그래도 분장 도움을 많이 받았지. 보면 알겠지만 눈썹도 다 깎아주고, 수염도 많이 다듬고. 볼도 많이 깎았다. 볼 터치로. (웃음) 옛날부터 내가 탈춤 반이나 민속극 같은 걸 선호했었기 때문에 이번에 많이 도움이 된 거 같기도 하고.

남자 배우 복은 많지만 아직 여자 배우 복은 없는데.
송혜교 씨가 처음이지. 이러면 오정해 씨가 섭섭해할 텐데. (웃음)

그래도 오정해 씨는 극중 거리를 둔 상대였으니까.
나만 많이 좋아하고 그랬으니까. 근데 오정해씨는 되게 특수한 케이스잖아. 국악인이자 음식점 경영자. (웃음) 그리고 또 강의도 하시고, 라디오 DJ도 하시고. 사실 깊은 공감대를 갖기는 힘들었던 거 같다. 그래도 학번은 나와 같았고. 그냥 작품을 떠나서는 편했지

송혜교 씨와의 연기 호흡을 맞추는 건 어땠나?
사실 (송)혜교랑은 호흡이 안 맞아야 잘 나올 것 같은 대립 구조잖아. 베드씬도 그렇고. 처음엔 너무 당황해서 대사도 까먹고 그랬다. “명월이 인사 드리옵니다.” 그러는데, 대사가 생각이 안 나는 거야! (웃음) 다 그렇게 한번 해보라고. 내가 “송도에 있는 모든 기생들이 권주가를 내게 올리는데..” 이대사를 해야 되는데, “아! 잠깐만요!” 그랬다. 대사가 생각이 안 나더라. 첫 촬영 전에 밥도 두세 번 먹긴 했는데 제대로 꾸며놓으니까 어지럽더라. 대사 다 까먹었어. (웃음) 어쨌든 호흡은 잘 맞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연기도 잘 나온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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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베드씬이 있다는 말을 듣고 망설였다가 15세 관람가라는 걸 알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하던데.
사실 베드씬이라기 보단 보료씬이지. (웃음) 음..솔직히 그런 연기는 하고 싶지 않다. 물론 내가 이미지 때문에 안 벗거나 이런 건 아니고. (웃음)

사실 이미 <고마운 사람>에서 보여줄 건 다 보여준 걸로 아는데?
그거랑은 틀리지. 그건 그냥 샤워하는 거잖아. 난 적나라한 베드씬 같은 건 죽어도 못해. “연기인데 뭐 어때?”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난 못할 것 같아. 난 못해! (웃음) 만약 내가 그렇게 돈을 벌어다 주면 아내가 기분이 상할 것 같다.

아내에 대한 배려 때문에?
철저하게.

지독하게 가정적이다. (웃음)
난 거기서 오는 행복이 너무 많고 크기 때문에, 가정에 대한 욕심이 연기에 대한 욕심보다 더 크다. 난 무조건 가정이 먼저에요. 물론 가정이 먼저라고 해서 일도 안하고 가정에 처박혀 있자는 건 아니고! 그럼 백수지! (웃음) 어쨌든 가정이 행복하기 때문에 내 일이 잘 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난타>의 주방장이었는데, 아내를 위해 요리를 해주기도 하나?
평소 집사람이 만든 요리를 내가 맛있게 먹어주는 우리 집사람의 가장 큰 행복이다. 집사람의 요리를 내가 맛있게 먹을 때 내가 행복할 정도로 제일 행복해하거든. 그런 행복을 자주 뺏고 싶진 않은데, 한 달에 한 두 번은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를 해주지. 특별 식으로. 그것도 와이프가 굉장히 행복해하거든. 나 추어탕 같은 건 나 되게 잘 끓이거든.

결혼은 인생에 많은 변화를 부른다. 류승룡 씨같은 경우는 상당히 안정적인 여유를 준 것 같다.
너무 좋다. 집은 어떤 것보다도 편한 안식처다. 온천보다도, 스위트 룸보다 더 좋은. (웃음) 비록 비좁고 조그만 집이지만, 난 우리 집이 제일 편하다. 왜냐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우리 아내와 아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아들이 한번 웃어주면 너무 행복한 것 같다. <황진이> 오백만 터지는 것만큼이나. (웃음) 그러니까 일단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지.

어쨌든 가장으로서 경제적인 고민도 많아졌을 텐데. 그런 점에서 출연 기회가 많아져서 그만큼의 여유도 있을 것 같다.
솔직히 별로 그렇진 않고. (웃음) 사실 그제 세금을 처음 내봤다. 종합소득세. 사실 그전까진 환급을 많이 받았는데 이번엔 몇 백만 원을 그냥 냈다. 그래서 난 되게 당황했거든. 손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그래서 재영이한테 전화했더니 재영이는 비교도 안되게 많이 냈더라. 물론 걔가 많이 낼 줄 알았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지. 난 아직 그 정도로 서민이다. (웃음) 어쨌든 세금 잘 내야지! 사실 돈이 생기자 마자 부모님 집 옮기는데 다 보탰다. 그래서 지금 돈이 하나도 없어. 마이너스 통장이야. (웃음)

어쨌든 이제 세금도 낼 만큼 수입이 생긴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은 좋아진다는 의미도 될 듯 한데.
그 동안 연기를 하기 위해서 일을 많이 했지. 가락시장에서도 일했었다. 결혼하고도 10개월 동안 실내 인테리어 일했다. 솔직히 말하면 잡부지. (웃음) 어쨌든 연기를 위해서 이런저런 일을 많이 했지. 생계 유지를 위해서. 이제는 여유로워졌다기 보단 연기를 위한 일만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러니까 그 동안은 연기로 생활비를 벌 수 없으니까 그걸 위해서 굉장히 많이 일을 했었거든. 근데 이젠 연기에만 몰입할 수 있고, 그래서 와이프도 굉장히 행복해한다. <아는 여자>나 <박수칠 때 떠나라> 때도 그랬고, 영화 없으면 난 일하러 나갔다. 연극이나 영화 하는 친구들이 일없으면 집에서 놀거나 맨날 술이나 마시는 이런 모습이 너무 싫었다. 그렇게 놀다가 여자 만나서 바람 피다가 이혼하는 사람도 많고, 이런 게 너무 싫었거든. 불과 작년만해도 난 거의, 아, 작년은 바빴구나. (웃음) 재작년만 해도 과수원에서도 일하고, 공장가서 일하고 그랬다. 틈만 나면. 근데 거기서 배운 게 많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 중 재미있는 사람 많거든. 관찰을 많이 했지. 그런 게 연기에 도움이 많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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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농부 같은 역할이 편한 게 아닐까? (웃음)
그런가? 이제 골프장 같은 데를 가봐야 회장님 연기도 할 텐데. (웃음) 하긴 내가 뭐 검사해봐서 검사했나? (웃음)

하긴 뭐 <황진이>에서 사또 역할도 어울리던데.
그렇지. 사또 해봤나? 내가 뭐, (웃음)

혹시 연기라는 길을 택한 걸 후회해 본 적은 없었나?
후회한 적 한번도 없다. 한번도 해본 적 없는 거 같아. 86년부터 했는데.

그럼 반대로 이 길을 택해서 참 다행이다 싶었던 적은?
음..그게 요즘인데. 전도에 도움이 되더라고. (웃음) 어떤 식으로든. 내가 영화도 나오고 그러니까 이 사람도 우리 교회 다닌다는 식으로.

신앙은 아내한테 영향 받은 건가?
내가 전도를 한 건데. 요즘은 그분이 더 독실해졌다. (웃음)

외모에서 풍기는 강한 인상 때문에 거칠고 험한 역할의 섭외가 많이 들어올 것 같은데.
그렇지. 형사 아니면 깡패. 그런데 우리 나라 남자배우들이 거의 그래. 깡패 아니면 형사 아니면 검사. 설경구 선배도 그렇고, 송강호 선배도 그렇고. <열한번째 엄마>도 보면 아마 기절할거다. 아동 학대, 여성 폭력, 도박. 이걸로 이제 악역의 마지막 종지부를 찍고 싶은데~. (웃음) 그런데 환경이 불우한 사람들은 그런 환경이 대물림 되는 경우가 많다. 어쩔 수 없는 환경에 태어나서 그렇게 자랄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 난 그 배역에 너무 연민이 가더라. 그리고 저예산 영화지만 시나리오가 너무 좋아서 참여했다. 많이 울었지. 함께 출연한 (김)혜수씨도 보고 많이 울었다.

혹시 본인이 해보고 싶은 역할이나 출연하고 싶은 장르가 있나?
난 진짜 웰메이드 휴먼 드라마 하고 싶다. 아름다운 영화 있잖아. 자극적인 영화 말고. <웰컴 투 동막골>에서 재영이가 같은 역할. 인간적이잖아. 아니면 <왕의 남자>에서 감우성 씨 같은. 매력적이잖아. 무엇보다 벗지 않아도 되니까. (웃음) 벗지 않아도 좋은 그런 역할들이 얼마든지 있어. (웃음) <아들>에서 차승원 씨 같은 역할도 되게 좋잖아. 사실 되게 욕심부렸었다. 너무 하고 싶었거든. 근데 그 놈의 인지도. 하아~.(웃음)

장진 감독과 대화 좀 했을 법한데?
장진 감독한테 하고 싶다고 했더니, “승원씨는 이거 2억에 하거든. 되게 싸게 하는 거야.” 그래서 “저 2천에 할게요.” (웃음) 또 그러니까 “야, 차승원 씨는 2억에 2백만을 책임질 수 있는 배우야. 근데 너는 2천 줘도 넌 2만?” (웃음) 그래서 “알았어요.”했지. 물론 반 농담으로 나눈 이야기다. 사실 난 유명해지거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에 대한 욕심은 없다. 근데 이렇게 하고 싶은 역할을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걸 알게 되니까 인지도도 중요하더라. 왜냐면 시나리오가 너무 좋아서 난 하고 싶은데 투자자나 제작자는 인지도 없는 배우는 안 쓰려 하니까 이럴 때 너무 속상한 거다. 그런 면에서 <황진이>는 제작자나 투자자, 감독님한테 너무 감사하지. 왜냐면 내가 캐스팅될 때만해도 <박수칠 때 떠나라>밖에 개봉을 안 했었거든. <열혈남아> <천년학> <거룩한 계보> 이런 건 다 찍기 전이나 찍고 있었고. 장편 하나보고 이 역할을 결정했다는 건 그 분들이 혜안이 있다거나. (웃음)

연기가 자신을 흔든 계기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
연기라, 일단은 내가 방황하던 시절, 뭐 솔직히 안 놀아본 사람 없잖아. 중3, 고1때. 난 중3만 마치고 학교에서 배울 건 다 배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만 두려고 고등학교에 갔지. 그런데 교문에 들어가니까 선생님들이 막 달려오더니 발로 뻥 차고 머리를 막 깎는 거야. 완전 정신 못 차렸지. (웃음) 원래 풍생고 유명하거든. 근데 그때 교화로 연극부에 들게 했다. 그때 했던 게 <방황하는 별들>이란 뮤지컬의 복서였는데 너무 재미있더라. 그래서 그때부터 마음잡았지. 그게 나 뿐만이겠어? 연기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이렇게 바뀔 수가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 삶이. 어쨌든 교화가 계기가 됐지. 그리고 연기를 하기 위해서 그때부터 다시 공부도 했고. 정말 연기하려고 내가 하기 싫은 영어와 수학을 했다니까! 진짜. (웃음)

개인적으로 가장 큰 바람이나 목표가 있다면.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 그리고 남편이 되고 싶다. 아들한텐 정말 존경 받는 아버지가 되고 싶고,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남편이고 싶다. 주색잡기를 좋아하면 정말 추하게 늙잖아. 추접하게. 비참하게. 그러고 싶진 않다. 정말 며느리한테도 사랑 받는 멋있는 시아버지나 자랑하고 싶은 아버지가 되고 싶지.

다시 한번 느끼지만 정말 가정적이다. (웃음) 희열이란 캐릭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여기서 희열이 느껴지면 큰일나지! 그리고 사실 내가 코메디에 자질이 있다. 장진 감독도 그걸 아는데 나중에 히든 카드로 써먹으려고 아직 숨겨두고 있는 거야. (웃음)

이거 기사화 시켜도 될까?
아, 뭐, 상관없다. 혹시 알아? 누가 먼저 배역 줄지?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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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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