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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8.05.29 강예원 인터뷰
  6. 2008.05.29 이상일 감독 인터뷰

오정해 인터뷰

interview 2008. 5. 30.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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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학> 때보다 살이 많이 빠진 거 같아요. 솔직히 첨에는 못 알아봤어요. (웃음)
그러게! 그래서 너무 억울해요! (웃음)

영화 때문에 일부로 다이어트도 했다던데.
초반에만. 영화 들어가기 전까지 오랫동안 쉬다 보니 살들이 편해졌는지 살이 많이 쪘었죠. 아줌마같이 마냥 늘어지게 살았더니. 그러다 영화 들어가면서 나름대로 준비를 한 셈이죠.

일단은 정말 오랜만의 출연작이잖아요. 제가 <서편제>를 봤던 게 굉장히 어릴 때였는데.
몇 살 때였죠?

진짜 어릴 때였어요.
몇 살 때였는데요~? (웃음)

너무 어려서 말하기 민망한데 집요하시긴! (웃음) 그때가 93년도니까 아마 11살이었던 듯.
어머나! 정말 어릴 때네. (웃음)

그 어린 녀석이 뭘 알고 봤겠어요. 그런데 <천년학>을 보니 그 당시 생각이 났어요. 좀 묘했죠. 그런데 소리가 전공인데 어떻게 연기를 하셨네요?
사실 어린 시절 꿈이 연기자였어요. 그래서 어릴 적부터 집에서 연기 흉내를 곧잘 내니까 어머니께서 무언가를 가르쳐보고 싶었나 봐요. 그런데 내가 태어나 살던 전라도 목포에 그 당시 연기 학원은 전무했었죠. 대신 쉽게 찾을 수 있는 무용학원에 다니게 되었는데 그 때가 6살 때였죠.

고전무용? 소리가 아니라?
예. 그런데 갑자기 무용학원 선생님이 이혼을 하셔서 학원이 없어졌어요. 황당하죠? (웃음) 그래서 다른 곳을 찾다 목포 시립 국악원을 알게 됐는데 그곳은 판소리, 가야금, 무용을 다 가르쳤어요. 그래서 그곳을 다니면서 세 가지를 다 배우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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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위복이랄까. 종합예술인이 된 셈이네요! (웃음)
그렇죠. 어쨌든 그렇게 우연히 소리를 배워서 대회도 나가고, 결국 만전 김소희 선생님의 문하로 들어가서 소리가 전공이 돼버린 거죠. 어쨌든 모든 게 연기자의 꿈에서 출발했죠.

그럼 <서편제>는 꿈을 이룬 셈이네요. 그런데 어떻게 <서편제>에 출연을?
92년도에 미스 춘향 선발대회에 나갔는데 임 감독님께서 우연히 TV를 켰다가 날 보셨죠. 지금의 처제가 그 당시 내 친구였는데 자기 형부가 1인2역을 필요로 하는 연극이 있으니 해보라 해서 춘향 선발대회가 끝나고 그 연극에 출연했어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날 찾아서 연극을 보러 오셨고 그렇게 뵙게 되서 영화를 하게 됐죠. 그런데 사실 그때 임 감독님께선 <서편제>의 송화가 아니라 <태백산맥>의 소화를 찾고 있었어요.

<태백산맥>의 소화? <서편제>의 송화가 아니라?
원래 <태백산맥>의 소화로 날 염두에 두고 계셨는데 연극을 보시다가 제 소리하는 모습을 보시고 마음 한 칸에 있던 <서편제>를 떠올리게 되셨죠. 그리고 그 때 나라에서 <태백산맥>의 제작을 막았어요. 그래서 <서편제>가 먼저 들어가게 됐고 난 송화가 됐죠.

<서편제>나 <천년학>은 임 감독님께서 만드신 거지만 한편으론 오정해씨의 존재감을 증명하는 작품이에요. 마치 판소리로 치자면 오정해의 소리에 임 감독님께서 장단을 넣으셨다고 할까. 만약 <천년학>에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출연했다면 어땠을까요?
솔직히 말하면 내가 아닌 다른 소리꾼 후배가 해도 <천년학>은 충분히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지금 국악도 중엔 소리 잘하고 얼굴도 예쁜 후배들이 많기도 하고. 내가 <서편제>에 출연했던 시대보다 요즘은 소리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아졌어요.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단, 이게 단순히 소리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거죠. 바로 송화이기 때문에 내가 해야 했던 것 같아요. <천년학>의 송화에겐 성숙된 세월이 필요했어요. 사랑을 알아야하고 희생을 배워야 하고. 내가 아닌 남을 먼저 배려해 줄 수 있는 자기 자제. 이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분명 삶속에서 그런 과정을 겪어본 사람이 해야 되는 거죠. 그 과정을 아는 사람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셈이랄까. 그래서 아무래도 <서편제>의 송화였던 내가 <천년학>의 송화도 돼야 한다고 감독님께서 생각하셨나 봐요. 하지만 제 솔직한 마음은 임 감독님이 연출했기 때문에 제가 아니었다 해도 충분히 <천년학>은 가능했을 꺼라 생각해요.

처음 <서편제> 당시 연기에 대해 기본적으로 배운 건 없었잖아요. 물론 아까 말한 다른 분야의 공부가 연기에 도움이 되었을 테지만 카메라 앞에 선 연기자의 입장으로서의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일단 소리를 해서 복식 호흡이 되니까 대사하는 건 별로 어색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또 송화라는 캐릭터에 대한 이해는 내 소리 공부과정을 많이 응용하니 어렵지 않았고. 한 가지 제일 어려웠던 건 카메라 앞에 섰다는 점이었죠. 그런데 임 감독님덕분에 내가 카메라 앞에 섰다는 걸 인식 못하게 됐어요. 내가 카메라 앞에 있다는 것을 의식 못하고, 그저 가방 들고 떠돌아다니는 송화로 생각하게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오정해라는 걸 잊어버렸었죠. 어느 순간, 촬영이 다 끝나고 생각하니까 내가 연기를 했더라고요. 그런데 내가 연기를 했다고 생각이 안 들게끔 최면에 걸린 것만 같았어요. 아무래도 그게 임 감독님의 힘인 것 같아. 만약 내가 카메라를 의식했다면 얼마나 어색하고 떨었겠어요. 신인연기자가 자기의 그 역량을 발휘한다는 건 힘들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잘 유도해주세요.

<서편제> 이후, <태백산맥>과 <축제>에도 출연했어요. 그런데 <천년학>까지의 공백이 길잖아요. 그때와 지금 달라진 것도 많고요.
많이 달라졌죠. 일단 영화 현장의 시스템들이 많이 바뀌었더라고요. <서편제> 땐 모니터라는 것도 없었고, 감독님 눈이 모니터였죠. 그런데 오랜만에 나오니까 모든 시스템들이 배우들에게 너무 너무 좋아진 시대가 됐더라고요.

요즘은 자신이 연기한 것도 바로바로 체크할 수 있죠.
네! 너~무 너~무 좋아졌어요. 현장에서 배우에 대한 대접도 예전과는 하늘과 땅 차이에요. 물론 그 때도 많이 좋아졌다고 했었죠. 그런데 지금은 더 좋아졌어요. 일단 인터뷰하는 느낌들도 많이 틀려졌고. 사실 처음에는 많이 바뀌어서 낯설었죠. 우리 마지막 씬 찍는 날 현장 공개를 했잔하요. 그 날 많은 분들이 오셨고, 우리 홍보팀에서도 그런 사실을 미리 알려줬어요. 그런데 전 그냥 현장 스케치만 하는 줄 알고 복장도 별로 신경 안 썼죠. 저는 항상 튀지 않는 걸 좋아해서 우리 스텝들이 현장에서 입는 파카 같은 옷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전 그냥 그렇게 갔는데 그 자리에서 기자회견까지 할 줄 몰랐죠. 그 때 옷이 너무 초라해서 부끄러웠어요. 그런 것이 너무 낯설기도 했고. 또 맨 처음에 제작발표회할 때 웃지도 못했어요. 내 앞에 있는 저분들 눈에 내가 10년 전의 그 송화로 보일까 싶어서. 너무 편안해진 아줌마가 돼서 아직도 내가 배우로 보일까란 생각들 때문에 많이 부담스러웠죠.

연기는 어땠어요? 너무 오랜만이라 생소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맨 처음 <서편제>할 땐 아무 것도 모르니까 오히려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겁이 없기도 했고. 그리고 감독님이 유도한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도 있었죠. 하지만 <천년학>은 4번째 작품이라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오랜만에 해서 그런 것도 있고. 사실 그 가운데 마냥 쉬진 않고 나름대로 연기 활동을 했거든요.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혹시 뮤지컬 말인가요?
네. 뮤지컬과 무대를 통해서 나름대로 연기경험을 조금씩 많이 쌓았는데 오히려 그걸 버리는 게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임 감독님 영화는 배우가 연기에 대한 컨셉을 정해놓고 오면 힘들어져요. 마치 연기자가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을 그대로 화면에 넣은 것 같은 자연스러움을 원하시기 때문에 인위적인 느낌은 절대로 안 되거든요.

임 감독님 영화는 가끔 영화적인 연출이 자제가 돼서 그게 너무나 현실적이라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자연스러워 보여요.
맞아요. 내츄럴하죠. 그래서 임 감독님 영화엔 연기를 잘 하는 사람들이 힘들어요. 그래서 오히려 신인은 풋풋하기 때문에 자연스런 감독님의 연출 컨셉에 더 맞는 것 같아요. 오랜만에 하니 힘든 건 공백 기간 동안 어설프게 쌓은 연기 경험이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넘치는 거죠. 오버하고 있는 모습이 있었어요. 맨 첨에. 그걸 빼는 게 힘들었죠.

임 감독님 영화에 워낙 익숙하니까 그런 사실이 더 와닿았겠네요.
연기자들은 자기 역할에 대해 다양하게 연구하고 컨셉 정하고 이러잖아요. 그런데 그게 임 감독님 영화에선 오히려 해가 되요. 그냥 송화란 인물이 되기만 하면 돼요. 그래서 그 인물로 현장에 와서 감독님이 원하는 씬에 맞게끔 적절하게, 넘치지도 모자라지 않게 들어가고 나오면 되는 거죠. 그런데 너무 많이 준비를 해가지고 오면 그게 인위적으로 되요. 감독님 영화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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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매달리게 되니까.
네. 그래서 저도 초반엔 ‘너, 대사가 아냐. 내추럴하지 않아.’ 이런 식으로 많이 지적을 당했죠. 그리고 나중에 그걸 빼내고 나니 편해지고. 그래서 알겠더라고요. 연기 잘 하시는 분들이 감독님 영화에 오면 왜 힘들지. 어설프게 익힌 나도 힘든데 그분들은 아주 많이 힘들겠죠. 자기 걸 깨지 못하니까. 그런데 조재현씨 같은 경우는 첫 영화인데도 감독님의 그걸 너무 잘 따라가더라고요.

조재현 씨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일단 조재현씨는 국악인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북채를 잡았어요. 전문인이 보기에 어땠어요?
일단은 노력을 굉장히 많이 하시죠. 하지만 이론적으론 알아도 실전경험이 짧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잘 못하는 게 정답일 텐데, 이분은 집중력이 정말 뛰어난 사람이에요. 시작 전까진 막 “내가 어떻게 해, 어떻게 해” 하면서 투덜거리다가 슛만 들어가면 그걸 마치 오랫동안 한 고수처럼 자세를 잡고 하시는 거예요. 저는 너무 놀랐어요. 가르쳐주신 선생님이나 감독님도. 참 대단한 배우죠. 저런 면이 있으니까 조재현이란 이름을 갖는 거라 생각했고.

어떻게 보면 조재현 씨가 임권택 감독님 영화에 어울려 보이는데 뒤늦게 출연한 감도 있어요.
우리 임 감독님은 “저 사람하곤 언젠가 해봐야지.” 하면서도 작품하고 맞지 않으면 안 하세요. 이미지가 좋은 사람을 알고 있어도 작품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안 쓰시는 거죠. 그런데 이번에 감독님께서 조재현 씨가 어떤 것도 소화해내시는 모습에 반하신 거 같아요. 감독님께서 “다음에 또 한 번 하자”고 말씀하시는 것 보면.

임 감독님 영화만 4편에 출연했어요. 반면에 다른 감독의 영화에는 출연한 적이 없네요.
그러게요. 의도한 건 아니고, 처음에 <태백산맥>과 <서편제>는 감독님의 염두에 있었고. <축제>는 솔직히 의외였죠. <축제>는 제가 아닌 다른 사람도 충분히 어울리는데 감독님께서 앞의 두 작품을 통해 저의 내면을 보신 것 같아요. 속마음을 들켰다고 할까. 제 바깥쪽의 한복 이미지, 한국적인 선에 가려진 배우로서의 욕심이. 어쨌든 <축제>에 출연했고 한참을 쉬었죠. 그동안 뮤지컬도 하고 결혼하고 아이엄마까지 되고 이런 저런 일하고. 사실 <천년학>은 임 감독님 스스로도 하시게 될 줄 몰랐던 영화잖아요. 그러니까 이 네 작품에 제가 출연하게 된 건 사실 저 자신도 알 수 없었던 일이었죠. 그런데 다른 분들이 감독님 외에는 영화를 하자고 안했느냐고 자주 물어요. 물론 있었죠. 하지만 그 역할들이 나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안 했던 거뿐이죠. 딱 보니 ‘이건 내 것이 아니구나.’ 싶었어요. 제가 아무리 영화가 하고 싶어도 제 것이 아닌 걸 하고 싶진 않아요. 물론 그게 한국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그런 건 아니에요. 저도 변신도 하고 싶죠. 또 연기자는 어떤 역할이든 매력을 느낀다면 미치광이가 되도 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거든요. 근데 그냥 제 것이 아닌 거 같더라고요. 사실 이번에 외국 감독님한테 섭외가 들어오기도 했었는데.
외국 감독님이요?
네. 그런데 그게 참 맘에 들었었거든요.

어떤 감독님이신지 물어도 될까요?
음..알아도 모른다고 할래요. (웃음) 어쨌든 그게 공교롭게 <천년학>과 같은 시기였던 거죠. 그런데 전 당연히 <천년학>을 했죠. 우리 임 감독님이 제겐 더 중요하니까!

본인한테도 의미가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그럼요. 요즘은 배우들이 여러 가지 일을 함께 많이 하기도 하는데 저는 능력이 안 돼서 한가지씩밖에 못 해요.

그만큼 집중을 하는 거겠죠.
맞아요. 저는 하나에 빠지면 그 하나 밖에 몰라요.

<서편제>는 <서편제>를 위한 오정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천년학>은 오정해라서 <천년학>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아요. 임 감독님께서 <천년학>을 결정하시곤 분명 오정해 씨한테 하자고 연락 주셨겠죠.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땠어요?
감독님께 그 말을 듣고 처음엔 일단 깜짝 놀랐고, 둘째론 “내가 괜히 해서 영화 망치면 어떡하나” 싶었어요. 그리고 임 감독님은 영화를 ‘하자, 안하자’가 아니에요. 일단 “천년학을 한다. 이번에. (네가 출연한) 첫 번째 이야기들(<서편제>) 가운데서 할 거니까 살 좀 빼라.’ (웃음) 이게 섭외였어요. ‘지금 상태로는 안 된다.’ 하셔서 그냥 바로 ‘예.’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운명이었군요. (웃음)
감독님은 항상 저에게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세요. ‘할래? 안할래?’가 아니라, ‘해라!’ 이렇게. 왜냐면 감독님도 저를 잘 알고, 저도 감독님이 아버지 같기 때문에, 뭐 그런 건 전혀 안 이상해요.

<축제>이후에도 임권택 감독님과는 꾸준히 연락하셨겠죠?
그럼요. 그건 당연하죠. 감독님께서 좋은 상 받으시면 가서 축하해드리고, 영화 현장에 아이도 데려가 구경시켜주고 감독님 뵙고 오고. 저한텐 아버지 같은 존재니까. 물론 감독님께 잘 보이려는 게 아니라, 솔직히 제가 잘 보여서 뭐하겠어요. 세 작품이나 했는데~. 그리고 임 감독님 영화에 또 나오게 될 거란 생각은 하지도 못 했고. 그냥 저한텐 소중한 인연이니까요.

<서편제>와 <천년학>은 형제 같은 작품이잖아요. 그리고 <서편제>나 <천년학>은 임권택이란 영화계의 장인이 빚어낸 걸작이라고 생각해요. 판소리로 치자면 소리꾼이 절창할 수 있는 장기 같은 곡이랄까. <천년학>에서 송만석 선생님의 ‘적벽가’처럼. 그런데 오정해 씨는 두 영화에 모두 출연했죠. <천년학>은 임권택 감독님의 100번째 영화이기도 했고. 마치 임 감독님과 오정해 씨는 송화와 동호처럼 운명적인 만남이 아닐까요?
그냥 평범한 인연은 아닌 것 같아요. 물론 감독님이 사적으로 제가 예뻐서 저를 쓰신 건 아니고, 그 작품에 어울리는 여배우가 저라고 생각하셨겠죠. 사실 제가 맨 처음 감독님을 뵐 때 ‘거장 임권택’ 이런 느낌으로 접근한 건 아니었어요. 그냥 너무 평범하고 평탄하고, 그냥 뭐랄까. 아주 편안한 아저씨. 그 땐 아저씨였었어요. 지금은 할아버지지만. (웃음) 그런 느낌이었어요. 저는 영화를 했던 사람이 아니니까. 일반 관객들처럼 ‘임권택 감독님은 영화를 제일 잘 찍으시는 분’, 이 정도 상식밖에 모르고 봬서 그런지 별로 부담스럽지 않았죠. 현장에서도 감독님께선 ‘정해야, 이번에는 뭐 이렇게, 저렇게 해보자.’하시면 ‘예!’하고 대답하고, 이런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14년 이상이 지나니까 감독님은 저를 딸 같다고 하시고, 저도 임 감독님이 아버지 같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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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나 아버지처럼 친근한 사이를 떠나서 감독님으로써 현장에선 뵙는 느낌은 또 다를 법한데요?
‘카리스마’란 말은 아무데나 붙이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 현장에서 몰입하시는 모습을 보면 연세를 가늠할 수가 없어요. 정말 ‘카리스마’가 넘치시죠. 또 하나는 배우에 대한 판단이 빠르세요. 스텝들에 대한 판단도 빠르지만, 이 배우의 한계가 보일 땐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으세요. 예를 들어 감독님의 기대만큼 배우가 못 따라갈 때, 그걸 억지로 막 밀어붙이면 배우한테도 무리가 가고 현장 자체의 분위기에 금이 가죠. 그래서 그 배우의 역량에 맞게 바꿔서 현장 콘티를 만드시죠. 배우들도 무리 없고, 씬에도 무리 없게. 그렇게 현장 콘티가 탄생하죠. 선장 혹은 지휘자처럼 임 감독님께서는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눈에 띠는 부담으로 조율하는 게 아니라 현장의 느낌을, 스텝 한 명까지도 다 유심히 파악을 하세요. 그래서 그 날 컨디션이 아니다 싶으면 무리하게 진행을 절대로 안하시죠. 그리고 괜찮은 날은 최대한 밀고 나가고. 그 역할을 정확하게 하시는 분이세요.

일단 <서편제>에서도 그렇고 <천년학>에서도 맹인연기를 하셨어요. 맹인 연기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처음, <서편제> 때는 잘 몰랐어요. 힘든 건지도. 연기라는 걸 전혀 몰랐으니까. 그런데 이번 <천년학>에서 느낀 건, 배우에게 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니까 안타까웠죠. 부자연스럽고 많이 불편하고, 한계가 있잖아요. 또 사랑하는 마음을 은연중에 표현해내야 하는 역할이잖아요. 거기다 또 소리도 해야 되고. 그나마 이제 연기를 조금 알았다고 <서편제> 때보단 욕심은 더 나니까 이게 한계에 부딪치는 느낌이 들었어요. 보는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사실 하는 입장은 아주 많이 힘들죠. 무엇보다 조재현 씨처럼 눈빛을 활용한 그런 연기가 부럽고 그랬어요. 연기에 대한 욕심이 생기니까 나도 그런 연기를 해보고 싶더라고요.

<서편제>도 그랬지만 <천년학>에서도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나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들이 많이 등장하죠. 그런데 관객들의 눈엔 마냥 아름다워도 만드는 당사자들의 노고는 상당했겠죠? 이동도 많았을 것 같고. 본인은 어땠어요?
힘들지 않았어요. 본인도 기자분이 느끼시는 것과 똑같은 걸 느꼈어요. 촬영을 위해 그곳에 머물며 늘 보다가도 세팅을 하고 촬영을 한 뒤 모니터할 때, ‘아, 여기가 이랬나?’ 싶을 정도로 놀라운 풍경이 그려져요. 그런데 실제로 그곳들을 찾아가보면 실망하실 지도 몰라요. 영화는 정말 빛의 예술인 것 같아요. 빛에 따라 카메라에 빚어지는 앵글이 정말 틀려지거든요. 그니까 영화 속 현장을 실제로 찾아가서 그 영화의 느낌을 찾으시면 대부분 실망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극 중 산자락에서 ‘갈까부다’란 노래하는 장면 기억나세요?

물론이죠. 동호를 옆에 두고 부르는 장면.
거기가 임 감독님께서 그 근처에서 촬영을 하며 여러 번 지나다니던 길이었는데 사실 감독님께선 그 장소를 염두에 두시지도 않았었거든요. 그러다 그곳에 딱 빛이 떨어지는 순간에 거길 보는데 원하시던 영화의 느낌이 오셨나봐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내려서 세팅을 하고 부랴부랴 준비를 해서 찍은 거였어요.

장소 선택은 역시 감독님께서 하시겠죠?
예. 감독님께서 하세요. 직접.

혹시 여행 좋아하세요?
그럼요. 아주 좋아해요.

여행 다니는 듯 해서 좋았겠어요. 영화 찍으면서.
저는 여행을 했어요. 영화를 통해서. 주부가 여행을 하긴 참 어려워요. 더군다나 여자라는 특성상 한계도 있잖아요. 그런데 영화를 핑계 삼아서 안전하게 했죠. 다른 기자 분들이 아이를 떼어놓고 가족을 떠나서 힘들지 않았냐고 많이 물으시는데 사실은 가족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너무너무 즐거웠어요. 짐을 싸고 떠난다는 기분부터가. 그리고 현장에서 우리 스텝들하고 어울리는 그 시간들도 너무 좋았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그 느낌도 좋았고, 무엇보다 영화를 찍는 동안 지방에서 혼자 방을 쓰니까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너무 좋았죠. 물론 아이가 보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굉장히 즐거운 여행이었어요.

<천년학>은 오정해 씨 자신 스스로를 찾는 계기이자 시간이었군요.
맞아요. 그동안 너무 편해서 게으르게 안주하고 있다가 정신이 딱 드는 거 있잖아요. 내가 아직 한 게 없는데 너무 안주하고 있었다는 생각. 그냥 ‘나는 애 엄마니까’ 이런 생각이 저를 너무 편안하게 만든 거죠. 그런데 영화를 위해 준비하며 나를 다시 가꾸는 과정에서 ‘맞아, 나도 여자였지.’이랬어요. 보통 아줌마들은 여자란 생각을 잊고 살잖아요. 자식을 위해서, 남편을 위해서. 저도 그랬던 거죠. 그런데 ‘아니야, 나도 여잔데. 내가 잊고 있었구나.’싶은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러니까 <천년학>은 제게 여자로써도, 배우로써도, 소리꾼으로써도 다시 한 번 깨우침을 준 작품이에요.

임 감독님만큼이나 오정해 씨한테도 큰 의미가 되었네요. 감독님한테 감사드려야 겠는걸요.
너무 감사하죠. 그런데 감사드린다하면 혼나요. “내가 널 위해서 만든 줄 아니!” 이렇게. (웃음)

일단은 극에서 송화가 눈이 멀게 되는 사연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잖아요. 영화 속 풍문처럼 송화를 명창으로 만들기 위해서 아버지가 일부로 눈멀게 하는 약을 탔다는 의견도 있고 실수로 우연히 그렇게 된 거라고도 하잖아요. <천년학>은 그것이 명확히 어느 쪽이다고 말해주진 않아요. 본인 생각은 어때요?
눈을 멀게 한 것이 인위적이란 생각을 <천년학>에서는 안 했어요. <서편제>에서는 그런 암시를 강했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데 이번 <천년학>에선 아비의 마음을 드러내는 대사도 있잖아요. ‘어느 아비가 그랬겠냐고’ 전 그 말을 믿고 싶어요.

그 국밥집 씬.
예. 맞아요.

소리꾼으로서 득음을 한다는 건 단순히 기술적 발전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월의 경지라고 생각해요. 그럼 그런 경지에 오르기 위해선 그만큼의 계기가 필요할 수 있겠죠. <서편제>나 <천년학>에서 시력을 잃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고요. 그리고 전승자로서 계승의 욕심을 위해 그런 계기를 위해 고의로 눈을 멀게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관계에 대한 이해 구조가 달라질 것 같은데, 딸과 아버지의 관계와 전승자와 계승자에 대한 관계로. 어쨌든 그런 전통문화라는 분야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아버지가 아닌 전승자로서 유봉의 입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람이 어떤 일에 미치면 광기가 난다고 하죠. 서양의 어느 화가처럼 귀를 자를 정도로. 그렇게 한 분야에 미치면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그런데 내가 아이를 키워보니까 내가 이렇게 힘들게 공부한 과정을 아이에게 반복시키고 싶진 않더라고요. 부모의 진짜 마음은 그래요. 자기 자식이 아버지나 어머니 가는 길을 간다고 하면 반대하고 싶은 게 부모마음이랄까. 저희 만전 김소희 선생님께서도 따님이 소리하는 걸 반대하셨어요. 반대라기 보단 모른 척하셨죠. 왜냐면 힘들단 걸아니까. 그 과정이. 그런데 그것이 좋아서 그것에 미쳐서 평생을 가는 사람이니까 아까워서라도 이 맥을 이어주는 게 내 자식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죠. 어느 하나에 미친 사람은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선생님이 제자한테 갖는 광기는 분명 있어요. 제 스승님은 자식보다도 제자를 사랑하셨어요. 왜냐면 자기가 이 소리를 너무 좋아하셨고, 좋아하는 소리의 맥을 이을 당신의 제자가 소리를 제대로 이어갈 수 있도록 완벽하게 가르치고 싶으셔서 그 제자를 놓지 않고 있는 모습이 광기 자체죠. 그러다보니 오히려 자식을 챙겨줄, 간섭조차 할 시간이 없었어요. 제자한테 그렇게 쏟는 사람이라. 그래서 오죽하면 자식이 ‘엄마는 자식보다 제자를 더 사랑한다고.’ 할 정도로. 그런 광기, 그런 모습을 제가 봤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봐요. 충분히 이해가 되요. 내가 이렇게 다른 아이들을 레슨을 시켜보니까 가르치는 마음이 자식이상이에요. 그 애정이. 그렇지 않으면 우리 소리는 가르칠 수가 없어요. 악보를 놓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 가르치는 거니까요. 예를 들어 제자의 행동거지가 맘에 안 들면 소리를 가르치기 이전에 인간을 만들어놔야 해요. 그 과정에서 내 자식처럼 잘못한 거 야단치고 잘한 건 칭찬도 해줘야 되고, 그리고 그런 후, 그 안에 소리를 심어주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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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그릇을 만드는 것 같네요.
일반 서양 음악 레슨과는 과정이 많이 달라요. 그런데 받는 제자의 입장에서는 그게 얼마나 혹독하겠어요. 그게 한이 되는 거죠.

<천년학>에서도 등장하는 말처럼 우리 것이 천대받는 시대에요. 물론 천대까진 아니라 해도 우리 것이 많이 간과되고 잊히고 있어요. 그 분야에 몸을 담고 있는 분으로서 후대에 대한 강압을 해선 안 되지만 그것이 끊겨갈 위기라 생각하면 안타까울 것 같아요.
이젠 대중이나 청중이 찾아오길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가야 되요. 그런데 전통의 소리를 젊은 층에게 권하기엔, 젊은 세대가 서양 문물에 젖어있는 정도가 심하기 때문에 그건 강요처럼 들릴 수도 있어요. 마치 숙제처럼. 그러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그런데 우리 음악이 당시 유행하던 유행가란 말이에요. 인기가 있던. 물론 그걸 다시 부활시키기 위해 전통을 뜯어 고치자는 것은 아니에요. 전통은 전통대로 고수하는 분이 계셔야죠. 그리고 그걸 제대로 익힌 다음에 퓨전이나 크로스오버적인 작업을 통해 대중들한테 가까이 가는 거예요. 그렇게 관심을 유발시킨 다음에 그 청중들을 다시 전통으로 안내하는 거죠. 그럼 전통도 고수하면서 동시에 관객들의 외면을 관심으로 돌릴 수 있고. 그런 역할에 <서편제>나 <천년학>같은 영화 이상이 없죠. 과거 <서편제>를 통해서 우리 국악이 한번 부흥을 하기도 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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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솔직히 요즘 사람이다 보니 우리음악을 제대로 들어본 적도 별로 없고 관심 가져본 적도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천년학>을 보니까 우리 음악이 꽤 맛있더라고요. 그 구성진 가락부터 구슬픈 음율까지. ‘아, 이런 맛이 있구나!’ 싶었죠. 물론 그래서 한편으론 ‘내가 많이 늙었나?’ 생각을 하기도. (웃음)
늙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닐걸요? (웃음) 그런 느낌은 젊은 마니아 분들도 많이 느껴요. 그런데 단지 그렇게 소리에 머무를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을 뿐이죠. 우리 소리나, 우리 <천년학>도 같은 느낌이에요. 이 소리를 만날 수 있는 기회만 준다면, 이렇게 들을 수 있게끔 여유만 준다면 충분히 우리 소리를 좋아할 수 있고 <천년학>에 빠질 수 있거든요. 그런데 바삐 바삐 가고 신나거나 달콤한, 감각적인 것에 길들여진 요즘 세대가 일부로 그 늦은 장단을 찾아서 들을 리는 없잖아요. 근데 영화란 매체를 통해 소리를 전달받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죠. <천년학>을 보고 ‘어머, 이것이 소리였던가?’ 하시는 분도 계시고요.

이렇게 우리 것이 소외받고 서양의 것이 주류가 된 시점에서 우리 것이 낯설다보니 오히려 보편화된 서양의 것에 비해 우리의 것이 새로운 신선함이 될 수도 있어요. 마치 틈새시장을 공략하듯. <천년학>은 충분히 그런 역할이 될 법하고. 그런 면에서 <천년학>같은 영화는 전통 문화를 고수하시는 분들에게 힘이 될 만한 사례 아닐까요?
맞아요. 저희가 바라는 게 두 가지에요. 항상. 이 영화가 잘 된다면 우리 소리도 잘되는 것과 마찬가지거든요. 그니까 소리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두 가지를 다 함께 기대해요.

그럼 주변에 교류하시는 소리인들의 반응이 의식되진 않으세요?
사실 이번 <천년학>에서 소리가 참 많은데 그리 많다고 안 느껴지실 거예요. 그것은 소리가 씬과 씬 사이의 다리 역할을 했기 때문이죠. 백미가 될 만한 좋은 소리들만 골라서 느닷없이 끼워 넣은 게 아니라 그 씬에 필요한 가사나 내용이 있는 노래로 다리를 살짝 살짝 얹어가서 소리는 굉장히 많은데 그렇게 막 부담스럽지는 않단 말이죠. 다행히 <천년학>의 송화는 소리를 아주 절창(絶唱)하는 입장이 아니기도 하고요. <서편제>에선 그게 아니었잖아요. 맨 마지막에 득음의 소리를 들려줘야 했기 때문에 제 능력 밖의 일이라 안숙선 명창소리를 립씽크해야 했지만 이번엔 송화의 소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제 소리였잖아요. 그게 뭐 제가 소리가 많이 늘고 높은 경지에 올라서 그랬다는 게 아니라, <서편제>와 달리 <천년학>은 소리의 득음이 아닌 사랑의 이야기니까. 그리고 제가 아닌 다른 사람소리를 쓰면 어색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국악하시는 분들 중, ‘아이구, 저보다 더 소리를 잘했으면.’하시는 마니아 분들도 계실 거예요. 그런데 신영희 선생님께서 <천년학>을 보셨어요. 그래서 ‘선생님 괜찮겠어요. 제 소리로도.’하고 여쭈니까 “충분히 괜찮다. 네 역할과 그 영화의 이미지에 맞게끔 소리를 적절히 냈기 때문에 소리의 감이 좋다.”고 격려를 해주셨어요. 그래서 다소 안심을 했죠. 사실 우리 음악하시는 분들이 욕심이 생길 거라 그 부분이 걱정스러웠죠. 영화를 통해 안숙선 명창이나 신명희 명창같은 분들의 절창한 소리를 들려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까봐. 그런데 그런 대가가 오셔서 격려를 해주시니 마음이 놓였어요.

영화를 단순히 느낌으로 표현해보자면, <서편제>는 마치 피를 토하는 심정, 날이 선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천년학>은 무언가를 끌어안고 품고, 몸이 상승해 오르는 둥근 느낌이었거든요.
그 당시에 CG가 발달이 돼서 <서편제>가 ‘선학동 나그네’, 즉 <천년학>까지 품었다면 그 당시 관객들에겐 어색하고 당황스러웠을 것 같아요. 영화가 시대에 너무 앞서가도 관객에게 외면당하고 그 시대에 맞게 같이 잘 걸어가야 되는 거 같아요. 일단 작품성도 중요하지만 그 작품성을 살려줄 흥행성을 살핀다면. 임 감독님께서 지금에 와서 <천년학>을 말씀하시는 게 너무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감독님의 100번째라는 작품이라는 점에도 너무나 걸맞은 수준 높은 작품이고. <천년학>은 정말 다각도로 볼 수 있는 영화기 때문에, 출연한 배우인데도 불구하고 영화에 대한 느낌이 매번 달라지는 것 같아요. 느낌이 단순히 이거다고 할 수가 없어요. 오히려 <서편제>는 아까 말씀하신대로 날이 서 있어서 어느 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데, <천년학>은 제가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르고, 이야기할 때마다 영화를 생각하면 또 틀려요. 어느 한 방향으로 이야기할 수 없게 통틀어서 어우러진 이야기가 되요. 이 시대에 나와야 할, 감독님의 연세나 작품 수나, 너무나 딱 맞는 작품인거 같아요. 100번째에 걸맞은 작품.

뮤지컬에도 출연하시고 강단에도 섰지만 그 이전에 가정주부의 삶에 충실했죠. 그런데 다시 영화에 출연한다하면 집안의 도움도 컸겠죠? 남편분의 이해도 필요했을 테고.
그렇죠. 절대적이었죠. 그게 없다면 제가 할 수 없었죠. 시어머님께선 항상 ‘네가 할 수 있을 때 안하는 건 죄다. 네가 그렇게 열심히 익혀놓고 그걸 써먹거나 풀지 않고 갖고만 있는 것도 죄다. 네 모든 걸 활용해서 알리고 그걸 사람들한테 사랑받게 하는 건 얼마든지 좋은 일이니까.’ 라고 하셨거든요. 애 아빠도 반대할 때 이유는 하나에요. 내가 힘들어하는 건 하지 말라고. “당신이 해서 즐거움 찾고 즐길 수 있는 일을 해라. 그럼 언제든지 뭘 하든지 이해해주겠다.” 제가 이렇게 영화를 다시 할 수 있었던 건 남편 덕분이죠. 그리고 우리 시댁 식구들. 제일 먼저 영화 시사도 해주시고, 우리 어머님이 직접 오시면 부담스러울 까봐 스텝들 회식이라도 시켜주라고 용돈을 주시기도 했어요. 아무래도 시집은 잘 갔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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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 같아요. 아드님이 올해 몇 살이죠?
11살.

아! 제가 딱 <서편제> 본 나이네요. (웃음)
네. 그래서 아까 11살이랄 때 깜짝 놀랐어요.

아~, 그랬군요. 혹시 아이가 혹시 노래 쪽에 흥미가 있다거나.
아주 많아요. <천년학>에서 그 ‘꿈이로다’라는 노래 있잖아요. 꿈타령.

아. 그 노래 기억나요. 너무 아름다운 장면이라 노래까지 또렷이 기억나네요.
엊그제 밤에 잠자면서 그 노래를 가르쳐줬어요. 영화보고 와서 하도 흉내를 내기에 이왕 흉내 낼 거면 제대로 배우라고. 그런데 그게 굉장히 어려운 노래에요. 그런데 밤 12시에 잠자면서 드러누워서 영화 속 장면처럼 가르쳤어요. (웃음) 그런데 웬걸! 금방 따라하지 않겠어요. 원래 애들이 모방을 잘해서 빨리 배우긴 해요. 그런데 음악적인 감각이 있긴 해요. 피아노도 잘 치고.

그럼 욕심이 좀 나실 법도 한데요?
전 안 내려고요. 아까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부모의 마음이니까. 그리고 음악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예민할 수밖에 없어요. 전 남자아이가 그렇게 크는 게 싫어요. 그냥 털털하고 편안한 게 좋은데 음악을 하면 자꾸 예민해지니까요. 안 했으면 좋겠다는 게 진짜 제 마음이죠. 그런데 애 아빠는 막 그런 반응이 있을 때마다 너무 좋아해요. 소질 있는 거 자꾸 개발시키려 그러고 저는 막 묻어두려고 하고. (웃음) 뭐 어쩔 수 없는 것 같더라고요. 피는.

혹시 아이가 원한다면.
뭐 원한다면 반대 안 해요. 자기 인생이니까. 철저하게. 저는 아이가 원하는 건 반대 안 해요. 그러니까 강요도 절대 안 해요.

적극적이진 않더라도 지원해주실 의향은 있겠죠?
글쎄요. 크게 지원할 생각도 없어요. 스스로 알아서 해야죠. 왜냐면 어렵게 얻어야 그걸 안 놓죠. 부모가 쉽게 제 손에 쥐어주면 쉽게 놔버리는 법이에요. 자기가 정말 하고 싶으면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하겠다는 그 마음이 변치 않아야 끝까지 가거든요. 고생 없이 편하게 쥐어주면 절대로 안 돼요. 저부터도 쉽지 않게 배웠기 때문에 권하지 않아요. 스스로 필요하면 자기가 알아서 찾아가겠죠.

아이는 <천년학>을 재미있게 보던가요?
보고 와서 ‘넌 이해가 되니?’ 했더니 이해가 안 된다 하더라고요. 그리고 영화 속의 송화가 엄마로 보이니 탓도 있을 테고. 그래서 아까 11살 때 (<서편제>를) 보셨는데도 그런 느낌을 기억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우리 아이도 11살인데.

아. 기억한다기 보단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다시 말하지만 그 어린 것이 뭘 알고 봤겠어요. (웃음)
어쨌든 제가 ‘어떻던? 이해가 되니?’ 하고 물으니까 ‘뭔지 잘 모르겠어요.’ 하더라고요. 사실 아이가 영화를 좋아해요. 굉장히. 요즘은 엄마보다도 영화를 많이 봐요. 그래서 저는 솔직히 기대를 많이 했죠. 어떻게 반응을 할까싶어서. 그런데 우리 영화가 주는 중요 장면들은 거의 다 기억을 해요. 그건 인상에 남았던 거죠. 그런데 전체 스토리를 이해하기에 11살은 너무 버거웠나 봐요.

양방언 씨는 만났죠?
네. 봤죠. <천년학> 시사회때.

일단 장르가 다르지만 음악이라는 공통적인 뿌리로 본다면 통하는 부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또 양방언 씨의 음악이 동양적, 특히 한국적인 느낌이 담겨 있잖아요. 이번 <천년학>의 영화 음악을 들어봐도 그렇고.
제가 양방언 씨를 처음 안 건 2000년도에요. 제가 진행하던 라디오 ‘FM 풍류’의 시그널 음악이 양방언 씨의 ‘prince of cheju’, 제주의 왕자라는 곡이었거든요. 이분의 아버지가 제주도 사람이고 어머니가 신해주 사람인데 본인은 일본에서 태어났어요. 그 음악이 너무 좋더라고요. 근데 마침 음반 홍보차 방한해서 우리 프로에 출연했던 적이 있어요. 그리고 그 다음에 앨범을 제대로 들어보니까 음악이 너무 좋았어요. 사실 국악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는 음악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우리 악기의 특성상 조심스런 부분도 많고. 그런데 이분은 그걸 잘 모르니까 자기가 원하는 대로 들리는 대로 음악을 편하게 만들어서 너무 좋았어요. 감독님도 저랑 같은 느낌으로 양방언씨를 선택했죠. 우리 악기와 서양악기의 협연을 했는데 부담스러움이 전혀 없어요. 너무 매끄럽게 음을 진열하는 거예요. 그래서 깜짝 놀랐어요. 6년간 라디오 진행하면서 많은 국악 작곡가들의 퓨전 된, 크로스 오버된 곡을 접했는데 이분 곡처럼 자연스런 곡은 처음 봤어요. 그래서 제가 그분 음악의 팬이 되었고 임 감독님께 자연스럽게 소개해 드릴 수 있었죠.

아, 오정해 씨가 임 감독님께 양방언 씨를 소개해 주셨군요.
예. 소개는 제가 해드렸죠. 왜냐면 양방언 씨라는 존재를 임 감독님은 모르셨고. 그런데 사실 처음 임 감독님께 소개해 드렸을 땐 <천년학> 때가 아니라 <취화선> 때였어요. 예전에 임 감독님께서 “국악 작곡가 중, 좋은 사람 없냐?”고 물으셔서 다른 작곡가들과 함께 양방언 씨를 추천했죠. 저는 그때 양방언 씨의 음악에 심취돼 있었고. 그렇게 소개해드렸는데 감독님께선 ‘누구? 재일교포? 내 영화에 무슨 재일교포야.’이러시면서 아예 거부하시더라고요. 그러다가 제 차에 양방언 씨 음반이 있어서 임 감독님을 차에 태워드릴 때마다 주로 들려드렸죠. 음악을 들어보시더니 누구냐고 막 물어보시길래 ‘아니, 잘 모르겠는데. 더 들어보세요.’ 막 이러면서. (웃음) 그렇게 들어보시게 하고 “음악 좋지 않으세요?” 하고 여쭈니까 “좋다. 누구냐?”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감독님께서 그때 거부하셨던 재일교포 양방언 씨입니다.”라고 하니 깜짝 놀라시는 거에요. 그래서 “이번에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 있는데 한번 보시겠어요?” 하고 또 여쭈었고 가셨죠. 근데 공연을 보고 너무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공연 후, 감독님이 직접 양방언 씨에게 가서 영화 음악을 부탁하셨죠. 그렇게 된 거 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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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방언씨는 이 사실을 아나요?
그럼요. 다 알죠. 임권택 감독님을 개인적으로 많이 좋아하셨어요. 근데 영화음악을 하면서 현장에 그렇게 많이 온 음악감독도 없을 거예요. 진짜 많이 왔어요. 와서 며칠 동안 보고가고. 왜냐하면 <천년학>이라는 작품도 모르겠고, 이게 무슨 내용인지 알아야겠다 싶어서 그랬다 하더라고요. 현장에서 분위기 보고 가고, 자기가 스텝인양 도와주기도 하고, 제주도에서 촬영할 땐 한국식으로 떡도 싸와서 스텝들한테 나눠주기도 하고. 그래서 금방 스텝들이랑 어울렸죠. 감독님한테도 끊임없이 여쭤보고. 그렇게 해서 만든 음악이라선지 심연으로 충분히 와 닿죠. 너무너무 감독님도 흡족해하시고.

잘은 모르지만 우리의 정서가 느껴졌어요. 웅장하지만 소박한, <천년학>의 너그러운 느낌이 많이 묻어났어요. 저도 좋았어요.
예. 맞아요. 정말 좋죠? 정말 너무 음악이 좋아요.

아마 <천년학> 때문에 외국도 좀 나가실 것 같아요. 좀 앞으로 바빠지실 텐데, 아마 아드님도 보고 싶어지겠어요. 하지만 이젠 진짜 해외로 여행가시겠네요. (웃음)
물론 공과 사는 철저하게 분리해야 하니까 상관없는데 바람이 있다면 <천년학>이 외국에서 큰 상을 받지 않아도, 물론 받으면 좋겠지만 그것보단 이 영화가 세계 방방곡곡에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왜냐면 우리나라를 알리는데 너무 좋은 영화잖아요.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풍경이라던가, 우리 옷도, 소리도 있고, 그래서 우리나라를 알리는데 이보다 더 좋은 작품이 없잖아요. 단기간에 어떤 사람 일부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게. 그리고 제가 그에 이바지할 수 있다면 어디든 가고 싶어요. 욕심 같아선 돈 안 받고도 막 보여주고 싶어요. 물론 제작사가 싫어하겠지만. (웃음)


<천년학>은 <서편제>를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큰 선물이 될 거에요.
한편으로 어쩌면 <서편제>의 찡한 느낌을 미리 품고 오시는 분들에겐 실망스러울 수도 있어요. <서편제>의 남매가 밤샘을 하며 서로 울고불고 했던 그런 아픔을 간직하고 또 그걸 바라신다면 ‘왜 그런 장면이 없지?’하고 그럴수 있잖아요. 어르신들은. <천년학>은 머무는 영화가 아니라 훌훌 털어내고 정화시키고 승화되는 이야기에요. 단순하게 <서편제>가 좋았다면 그걸 만드신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란 것만 알고 그렇게 오시면 좋겠어요. 그래서 하나하나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영화가 안내하는 길로만 쭉 따라가시다 보면 수준 높은 감동을 만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동시에 <천년학>같은 영화는 요즘 젊은 관객들에게 생소할 수도 있어요. 그런 젊은 관객들이 <천년학>을 받아들였으면 하는 바람은?
<서편제>도 그랬어요. <서편제>도 ‘과연 이 영화를 젊은 관객이 좋아할까?’ 했죠. 근데 결국은 그 당시, 우리나라의 대부분이 이 영화를 봤어요. 물론 그 이유가 마치 이 영화를 안 봐서는 안 될 것처럼 애국심을 발휘하게 만드는 점도 있었죠. 하지만 한편으론 내 부모님을 보여드리기 위해 젊은 사람이 부모님들 손을 잡고 같이 보게 되다가 <천년학>의 아름다움에 빠져 들 수도 있겠죠. 저도 <서편제> 당시 젊었는데 그 영화가 너무 좋았었고. <천년학>도 그러지 않을까요. 나이를 떠나서, 지극히 한국적인 감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내 가슴에, 내 몸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래 우리 거잖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젊은 사람도 부모님의 눈빛을 대신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서편제>때와 비슷한 말인데 영화관에 올 때까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영화가 좋으니까 극장에 와서 볼 수만 있다면 좋은데. <서편제>때도 그랬어요. 극장에 앉아서 보기만 하면 사람들이 분명 나쁘다고 욕할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이 영화를 보러 극장에 오기까지가 힘들 수 있겠다는. 그때랑 많이 비슷해요. 10년이 넘었는데도.

오랜만에 연기를 다시 하셨지만, 잘 모르겠어요. <천년학> 때문에 나오시긴 했지만 다시 연기를 활발히 할 의사가 있는지는. 물론 임권택 감독님이 부르신다면 또 하실 것 같아요. (웃음)
제가 연기적 특성상 다른 배우들과 차별되는 면은 있죠. 순수 연기인도 아니고. 만약 저를 필요로 하신다면, 그것이 제가 하고 싶은 역할이라면 얼마든지 임권택 감독님이 아니라도 출연할 의사는 있어요. 어쩌면 이젠 임권택 감독님과 멀리 떨어져야 할 것 같아요. 자꾸 저를 통해 감독님이 언급되니까 감독님한테 불편 끼치는 것 같기도 하고, 일부로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자연스럽게 제가 할만한 역을 준다면 그게 누구 감독님이라도 할 거고. 만약 정말 또 임 감독님과 하게 된다면 그것도 제가 할만한 역일 테니 하겠죠. 그런데 솔직히 그럴 일은 없겠죠. 설마~! 네 번이나 했는데? (웃음)

대가의 경지에 오른 소리꾼들을 많이 보셨잖아요. 스승님이신 만전 김소희 선생님부터가 그러셨고. 그런데 제가 봤을 때 영화에서 득음을 했다는 경지의 사람을 꼽으라면 임권택 감독님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처음부터 계속 하고 있어. 깜짝 깜짝 놀라게!(웃음) 맞아요! 그 경지에요. 그걸 제가 설명할 길이 없었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솔직히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걸요? 임권택 감독님께서 100번째 작품을 만드셨지만 이제 또 101번째, 102번째 작품을 만드실 거예요. 그런 분을 가까이서 모시는 한사람으로서 감독님에 대한 개인적 바람이 있나요?
저는 이번 <천년학>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만 우리 감독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편안히 작품에 몰입할 수 있으실 것 같아요. 어떤 부담도 드리지 않고, 편안하게. 우리의 세계적인 감독님이 어떤 시선에도 신경 쓰지 않고 원하시는 작품을 하실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어요.

100번째 작품이 그래서 더 의미가 있는 것도 같아요.
솔직히 100번째 작품, 100번째 작품, 우리가 스스로 말하기도 부담스럽잖아요. 당신은 얼마나 버겁겠어요. 한편으론 마치 이 영화를 끝으로 돌아가시라고 하는 것처럼 들릴 때도 있어요. 제가 옆에서 느끼기도 그래요. 근데 감독님은 돌아가실 때 까지 현장에 계시고 싶은 분이세요. 근데 마치 밖으로 내모는 것 같고. 그래서 그런 100번째라는 숫자로서의 의미보단 이제 다시 첫 번째란 느낌으로 시작할 수 있게. 그런데 <천년학>이 사랑받지 못한다면 감독님께서 그 힘을 어디서 받겠어요. 감독님의 작품이 관객들의 이해를 필요로 하고, 그 이해가 사랑으로 되어야만 훌훌 털어버리고 마음껏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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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학>에서 대사 중 ‘소리에도 길이 있다’고 하잖아요. 오정해 씨도 길이 있겠죠. 본인은 그 길의 어느 정도 오셨다고 생각하세요.
10분의 1?

그럼 나머지 10분의 9는 무엇으로 채우고 싶으세요?
그건 앞서서 간다고 채워 넣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지금 제 나이에 자연스러운 템포대로 계속 꾸준히 가야돼요. 내가 막 지금 빨리 채워 넣는다고 채워지는 게 아니고. <서편제>때와 <천년학>때와 소리가 많이 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제가 막 공력이 엄청나게 좋아져서가 아니라 소리도 나이가 먹은 거예요. 내가 14년이란 생활을 그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 시간이 묻어나서 소리가 성숙해진 것처럼 10분의 9는 자연스럽게 성숙해져가야 하는 과정이거든요. 저는 뭐든지 막 앞서서 가는 걸 싫어해요. 지금 현재, 지금이 소중하니까 지금부터 다 채워 넣고, 그런 다음에 내일도 채워 넣어야죠. 내 앞에 보이는 것부터 차근차근 하는 걸 좋아해요. 막 어떤 한가지만을 보며 가는 건 싫어요. 욕심을 덜어서 다섯 가지가 나란히 천천히 가는 걸 좋아해요. 앞으로의 계획들을 많이 물어보시는데 그건 저도 몰라요. 저도 어디로 갈지. 단지 노력할 수 있는 자세를 항상 가지려고요. 최선을 다할 뿐. 그러지 않았을 때 오는 후회감이 너무 싫기 때문에, 일단 되던 안 되든 내가 할 수 있는 한계까진 가보는 거죠. 어떤 일이든 일단 맡았다면. 그랬을 때 다음에 오는 결과가 설령 나쁘더라도 저는 만족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할 준비가 되어있으면 어떤 일이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었어요. 다른 사람보다도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부리나케 쫓아다닌 기억은 없어요. 다만 일이 찾아왔을 때 그것이 내 것이라면 잡아야죠. 그래서 항상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찾아온 일들에 최선을 다해서 빠져들었던 것 같고. 지금까지 제가 선택한 길에 후회가 없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이야기를 듣다보니까 아무래도 <천년학>의 비상학은 어쩌면 오정해 씨였던 것 같네요.
우리 이러다 나중에 십 몇 년 만에 또 인터뷰하는 거 아니에요? 우리 애 장가보내고! 그동안 뭐하셨어요? 이러면서! (웃음)

음..그때는 11살 때 <천년학>을 본 친구와 인터뷰하면 감회가 새롭겠네요.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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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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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혜 인터뷰

interview 2008. 5. 3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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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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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희 인터뷰

interview 2008. 5. 3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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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 개봉 날이 잡혔죠?
네. 3월 22일!

혹시 완성된 작품은 보셨나요?
아직 못 봤어요. 3월 7일 날 기술시사가 있으니까 그때 볼 예정이에요.(인터뷰는 7일 이전에 이루어졌다.) 저도 예고편만 봤고, 후시 녹음 때 관련 장면만 대충 봤죠.

그렇군요. 저도 일단 <수>의 예고편밖에 보지 못해서 궁금한데 영화와 캐릭터에 대해 간략하게 말해주시겠어요?
하드보일드 클래식! 국내에선 보기 힘든 신선한 장르죠. 어린 시절 헤어졌던 쌍둥이 형제가 19년 만에 만나요. 제가 연기한 형은 킬러고 동생은 임관을 앞둔 경찰이죠. 그런데 동생과 만나게 된 첫날, 동생이 제 눈앞에서 죽어요. 그래서 형은 동생의 복수를 인생의 목표로 삼게 되죠. 그 복수에 대한 이야기에요. 그 과정에서 적들을 상대하고 갈등하게 되는 거죠.

일단 ‘지진희’라는 이름은 사람들에게 젠틀한 이미지로 많이 부각되는데, 저는 지진희씨가 그것과는 다른 의외성을 많이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얼마 전 <오래된 정원>의 오현우나,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의 박석규같은 은근한 껄렁함도 그런 부분들 중의 하나라고 봐요.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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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자신의 이미지가 고정된다는 것에 반감이 생기지는 않아요?
반감은 전혀 없어요. 한 가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제가 맡았던 그 캐릭터들이 매력적이라는 사실이죠. 그게 가장 큰 공통점이죠. 제가 뭘 깨려고 사는 사람도 아니고 그저 세상의 순리에 순응하며 사는 사람이니까요. 그냥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제가 연기한 캐릭터들이 일반적인 평범한 캐릭터들은 아니죠. 물론 저만의 느낌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는 그 캐릭터들을 아끼고 즐겁게 연기했어요.

이번 <수>가 지진희 씨에겐 액션이 처음이라고 봐도 되잖아요? 예전 <H>에서도 형사 역을 맡긴 했지만.
그렇죠. <H>는 <수>와 비교할 정도가 못되죠.

일단 <수>의 ‘수’는 예전 지진희 씨가 연기한 캐릭터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판이한 캐릭터에요. 그렇기에 본인에게는 상당히 즐거운 작업이었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상당히 즐거웠어요! 대충 아시겠지만 <수>의 작업이 굉장히 거친 액션이 많았거든요. 게다가 최양일 감독님이 원하시는 건 리얼 액션이었어요. 그냥 우리가 영화에서 쉽게 보는 연출된 액션이 아닌 진짜 리얼 액션이에요. 단적인 예로 목 졸리는 장면이 있었어요. 실제로 제 목을 노끈으로 졸랐고 저도 그렇게 하자고 했어요. 그때 진짜 숨 막혀 죽는 줄 알았죠. 그리고 그 상황을 벗어나 날 죽이려던 사람과 싸우고 결국 제거하게 되는 모든 과정이 거의 진짜였어요. 그런데 어차피 최양일 감독님에 대한 이야기를 익히 들었고 그 사람의 예전 작품을 보고 나서도 그래야만 할 것이라 생각을 했죠. 촬영하다가 몇 군데 부러질지도 모른다는 각오도 했어요. 어쩌면 그런 마음으로 덤벼들어서 생각보다 덜 다쳤던 것 같아요. 인대가 늘어나고 몇 군데 찰과상 입는 정도는 애초에 각오했던 바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고 온 힘과 정열을 쏟아서 촬영을 마치고 나면 굉장한 희열감 같은 것들이 느껴졌어요. 그리고 여태껏 제가 맡았던 역할들이 내면에 무언가를 꾹 눌러 담아 제대로 풀지 않는 역할들이었죠. 무언가를 분출하고 내뱉는 역할은 처음인지라 그런 것에 대한 희열감도 있었고 해보지 못했던 것을 한다는 해방감도 있었어요. 꽤 즐거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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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쨌건 지진희 씨의 액션은 실감이 안 나는 것이 사실이에요. 그전의 역할들을 보았을 때는 말이죠. 그래서 <수>에 지진희 씨가 캐스팅 된 건 의외라고 생각했어요. 음..혹시 기분 나쁘신 건 아니죠?
물론! 전혀! 괜찮아요. (웃음)

일단 그래서 궁금했던 게 캐스팅의 과정이었어요. 최양일 감독이 먼저 요청을 한 것인지, 아니면 지진희씨 측에서 적극적으로 구애를 한건가요?
사실 캐스팅은 저의 문제이지만 캐스팅의 초반 과정은 제가 관여하는 문제는 아니에요. 어쨌든 일단 캐스팅을 하던 안 하든 감독님이 보자고 하셨어요. 그래서 만나 뵙는 자리에서 이런 저런 이야길 했죠. “감독님께서 저를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쓰러져 죽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연기하겠다.”라고 말했어요. 그걸 감독님께서 만족하셨던 것 같고 감독님 스스로도 <수>의 작업이 꽤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그걸 끝까지 참고 견뎌낼 수 있는 배우를 찾으셨다더군요. 저의 열의가 그런 고민에 통했는지도 모르죠.

최양일 감독님의 촬영 분위기는 소문으로만 익히 들었는데 직접 겪어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잘 아시겠지만 <수>는 공개촬영을 하지 않았죠. 감독님은 현장에 누가 오는 것을 싫어하시거든요. 현장 분위기를 흐리게 될 어떤 요소의 개입도 용납하지 않는 거죠.

영화 자체에 집중하고 싶어 하시는군요.
그렇죠. 그러니까 현장에 집중할 수 있도록 모든 시스템이나 도구가 갖추어져 있어야 해요. 배우들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그것이 충분치 않았을 때는 굉장히 화를 내세요. 하지만 그건 지극히 당연한 거겠죠? 그리고 그런 부분이 잘 준비가 되었을 때는 상당히 만족하시죠. ‘정말 프로구나!’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어요. 너무 많은 것을 배웠고 제가 예전에 영화를 찍으며 안이하게 생각했던 부분들을 버리게 되었고, 물론 <수>를 촬영하기 전 최양일 감독님의 명성을 들었기 때문에 이미 그런 것들을 많이 배제하고 준비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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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영화의 정보를 듣고 시나리오를 접했을 때 이 영화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잘 알았을 텐데, 어떻던가요?
“이야! 이것 재미있겠다. 땀 좀 흘리겠는데! 이 감독님이라면 정말 제대로 만들겠지? 어떨까?” 이런 궁금증, 기대감 등. 일단 땀 흘리는 것도 좋아하니까 그런 부분에 대한 희열감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준비하기 위한 연습과정. 이런 것들을 모두 생각하니 사실 즐거웠어요.

액션 준비 기간은 얼마나 되었죠?

한 2달 정도. 하루에 4~5시간씩 심재명 액션 스쿨에서 준비했죠. 정말 꽤나 재미있는 작업이었고 좋았어요. 거기서 제가 준비했기 때문에 많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마친 것 같아요. 한번은 같이 촬영하던 스턴트맨이 저를 들어 올리다가 무릎이 뒤로 꺾여버려서 곧바로 이송된 적도 있어요. 일단 그 이외에는 크게 사고가 난 것은 없었어요. 그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긴장하고 실전처럼 임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71년생, 30대 중반이 넘었어요. 그렇죠.

이제 그 정도의 나이라면 변신보다는 변화라는 단어가 점점 어울려지는 때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 <수>는 지진희 씨에게는 변신이라는 단어가 어울리겠죠? 어쩌면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이런 연기를 해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개인적인 생각에 남자가 가장 일을 열정적으로 많이 할 수 있는 나이가 30대 중반부터 40대 중반이라고 생각해요. 이미 제가 30대 중후반이긴 하지만 모든 것을 안정적으로 가고 싶진 않아요. 지금이 가장 열정적으로 일할 때고, 그럴 수 있는 안정된 기반이 마련되었고, 좀 더 잘 될 수 있다고 느껴지기에 자신감도 생겨나고요. 이런 최고의 나이에 모든 길을 포기하고 안정적인 길을 가고 싶진 않아요. 지금 이제 시작이라 생각해요. 앞으로 어떤 역할이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훨씬 더 멋있게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또 다른 변신이 있을지도 모르겠죠. 물론 없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저만이 표현하고 보여줄 수 있는 정말 매력적인 모습을 주목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인생에 또 다른 반전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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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역할을 했지만 안 해본 역할이 있어요. 악역은 아직 한 번도 안 하셨죠? 그렇죠.

혹시 악역에 매력을 느낀 적 없나요? 하고 싶다거나.
이유 있는 악역이죠. <하얀거탑>에서 김명민 씨가 연기하는 장준혁처럼. 단순하게 결과를 놓고 보면 그 사람이 나쁘다고 쉽게 말하겠지만 그 사람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그가 그렇게 욕심을 부려야 할 개인적인 이유가 있잖아요. 가정생활이라던가, 부모님에 대한 연민이라던가. 물론 그것들이 잘못에 면죄부를 줄 순 없지만, 그 사람이 남을 밟고 올라가야 할 이유가 있는 거죠. 무조건적인 나쁜 놈은 재미가 없을 것 같아요. 물론 역할이나 상대배우에 따라 많이 좌우되겠지만 악역에 대한 매력은 꽤 크죠. 악역의 이미지를 상상하기 힘든 배우가 아무렇지도 않게 악랄한 연기를 해냈을 때 느껴지는 충격의 강도는 엄청 커질 테니까요.

그전의 이미지가 오히려 반전이 되겠군요.
네. 그렇죠. 그전의 이미지들을 깨부수기 위해 일부로 세게 나가기보다는 아무렇지 않게..예를 들면 일상적으로 거리낌 없이 사람을 죽인다거나 하면 소름끼칠 것 같아요.

함께 출연한 문성근 씨나 이기영 씨 등은 악역에 일가견이 있는 배우들이에요. <수>에서도 그런 뉘앙스가 풍기던데, 그런 분들에게 악역에 대한 영감이라도 얻은 건 없나요?
글쎄요. 영감까지는 모르겠고. 문성근 선배는 일단 절대 악으로 <수>에서 등장해요. 그걸 보면서 ‘진짜 대단하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정말 지금까지 보지 못한 문성근 씨를 보게 될 거에요. 문성근 선배님 또한 “여태껏 자신이 맡았던 악역 중에 최고로 나쁜 놈이다. 이것보다 나쁜 놈이 나오긴 힘들 거다.”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며 ‘정말 나쁜 놈이구나’라고 생각을 했을 뿐이지 다른 생각은 잘 안했어요. 일단 제가 맡은 태수에 집중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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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이야기를 해보죠. 03년도에 <다섯개의 시선>에서 박광수 감독님의 작품에 출연했죠. 박광수 감독님과 인연이라도 있나요?
일단 박광수 감독님께서 ‘같이 찍자!’고 해서 했었죠. 사실 그 이야기를 하자면 조금 긴데..배우로서 일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 처음 만난 영화감독님은 박광수 감독님이었어요. 그때 당시 감독님께서 <이재수의 난>을 한참 캐스팅 작업 중이셨죠. 매니저가 그 자리에 가자고 하는데, 저는 사실 준비된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싫다고 했죠. 그럼 그냥 인사만 드리러 가자고 해서 따라갔다가 얼떨결에 현장에 떠밀려 오디션을 보게 되었어요.

그런데 정말 저는 준비된 것이 없어서 솔직하게 못하겠다고 말하고 나와 버렸죠. 그런데 일주일 정도 되니 캐스팅되었다고 연락이 오더라고요. 하지만 제 스스로 준비가 안 된 상태라고 판단해서 우여곡절 끝에 제가 “죄송합니다. 제가 이제 처음 연기를 하고자 하는 거라 아직 준비된 것이 없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정중하게 사절했죠. 그랬더니 박광수 감독님께서 “나중에 좋은 일 있으면 같이 하자.”고 하셨어요. 그리고 나서 시간이 지나고 박광수 감독님이 <방아쇠>라는 작품을 기획했고 그 작품에 캐스팅되어서 다시 뵈었죠. 나중에 엎어진 작품이긴 한데, 그 작품을 준비하던 중 <다섯개의 시선>에 박광수 감독님께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방아쇠>하기 전에 이거 한번 같이 하자”고 하셔서 감독님의 작품에 제가 출연하게 되었죠.

사연이 있었군요!
예! 그런 셈이죠. 꽤 길었죠? (웃음)

<퍼햅스 러브>에도 출연했는데 비중이 큰 역할은 아니었지만 극의 키워드가 되는 인물이었어요. 그런데 그 영화에 캐스팅된 건 아무래도 <대장금>덕분이겠죠?
예! 아무래도 그 덕이죠. 사실 <퍼햅스 러브>에서 제가 맡은 역할에 유덕화씨가 내정된 상태였어요. 방금 말씀하신대로 그 역할은 영화의 키워드이긴 한데 두드러져선 안 되는 역할이었죠. 그런데 유덕화씨가 그 역할을 맡는다면 분명 워낙 연기도 잘 하고 노래도 잘 하니까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진가신 감독님께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하시다가 어차피 그 역할이 ‘천사’니까 꼭 중국인이 연기할 필요는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더군요. 그러다가 어느 날 홍콩에서 진가신 감독님이 집에 들어가던 중, 웬 여자들이 어디론가 달려가는 걸 봤다고 하더라고요. 진가신 감독님도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종종 자신한테 팬들이 뛰어오는 일이 있어서 의례 그런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여자들이 자신을 지나쳐 다른 곳으로 가더래요. 그래서 궁금해서 뒤를 따라가 봤다더군요. 그 여자들이 도착한 곳은 제가 있었던 곳이었어요. 그래서 진가신 감독님이 저 사람을 알아봐달라고 했다더라고요. 그래서 봄 영화사의 오정환 이사님한테 문의가 왔고 저한테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죠. 그런데 처음에는 거절했었어요.

거절? 좋은 기회였을 텐데 어째서죠?
그렇죠. 그런 감독님과 작업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죠. 그런데 중국어 노래에 춤까지 춰야 되는데 준비가 가능한 시간은 일주일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못하겠다고 의사를 표시했어요. 그랬더니 오정환 이사님을 비롯해 주변에서 다들 이런 기회를 왜 안하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일주일이란 시간 안에 그런 준비를 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런 감독님의 작품에 출연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자신 없는 일을 허락해서 훌륭한 감독님의 작품에 누를 끼치고 싶지도 않았고요. 그렇게 뜻을 전했는데 진가신 감독님이 얼굴이라도 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홍콩으로 가서 감독님을 뵀죠. 그런데 감독님이 말씀하시길 “영화는 편집을 할 수 있고 일주일 뒤에 촬영에 들어가긴 하지만 당신이 찍을 분량을 한 번에 찍는 것이 아니다. 찍는 동안도 충분히 연습이 가능하다.”라고 하시면서 재권유를 했어요. 그래서 결국 승낙을 하고 2달 촬영을 포함해 몇 달 동안 현지에 머무르며 춤, 대사, 노래 등 계속 연습하고 영화에 매진했죠. 거의 밥 먹는 시간 외에는 모두. 잠꼬대까지 중국어로 할 정도였어요. 저에게는 생각만 해도 즐거운 작업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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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팅부터 모두 다 재미있는 사연들 투성이군요!
네.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죠.

좀 경력이 특이한데 애초에 연기와 무관한 인생을 살았던 것 같아요.
사실 고등학교 때 금속공예를 했었고 대학교 때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어요.

포토그래퍼도 하셨죠?
네. 대학 졸업 후 디자인 일을 하다가 내 길이 아니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고민 중 사진을 찍게 되었는데 그 때 ‘사진이 내 길이구나!’하는 생각을 해서 그 쪽으로 눈을 돌렸죠. 나름대로 열심히 했고 또한 잘 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98년도에 IMF가 오면서 개인적으로 복잡한 일이 있었어요. 사실 97년도부터 매니저가 저한테 배우를 해보자고 권유하면서 쫓아다녔었거든요. 하지만 그 당시에는 관심이 없어서 계속 거절하다가 개인적으로 복잡하던 차에 다시 권유가 왔고 ‘일단 1년만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일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죠.

연기를 시작하게 된 것도 꽤 우연스럽네요.
그렇죠. 원래 관심도 없고 할 생각도 없던 일이었는데. (웃음)

그런데 이것도 개인적 추측인데 사실 지진희씨 좀 깨는 사람 아니에요? 어떻게 생각해요.
네. 맞아요! 제대로 보셨네.

그런가요? 하하. 사실은 제가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을 재미있게 봤어요. 대중적 흥행과 평단의 평가와 무관하게. 왜냐 하면 지진희 씨의 연기가 이전과 달리 좀 특별했거든요. 깬다는 생각도 박석규 때문에 하게 되었고. 그런데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은 어쩌면 지진희 씨의 연기에 전환점이 되는 게 아닐까란 생각을 했어요. 최근 <오래된 정원>도 그렇고, 이번 <수>도 보진 못했지만 작품을 선택하는 눈이나 연기의 깊이가 좀 더 심화되었다고 생각해요. 어때요? 지진희 씨에게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이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방금 이야기하신 게 맞아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으로 인해 저의 많은 것이 바뀌었어요! 현장이 즐거워지고, 현장이 부담 없어지고, 현장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건 그 때가 처음이었어요. 그 이후로 제가 굉장히 편해졌어요. 현장이라는 곳이 저 스스로에게. 그래서 만약 누구든 제 자신이 ‘배우로써 업그레이드되거나 발전된 계기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무조건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이라고 해요. 보셔서 그렇게 느끼셨다면 정말 저를 잘 보신듯해요. 그 감독님을 만난 것부터가 복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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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감독님 말이죠?
예.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만 생각하면 아직도 기분이 좋아요. 그 영화 이후로 내게 현장에 대한 공포감이 많이, 아니 거의 없어졌어요. 그 전에는 현장에 가면 늘 “어떡해야 하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투성이었는데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을 하면서부터 “이야~! 정말 재미있다. 즐겁다. 이런 맛에 영화를 하는구나.”라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굉장히 즐거운 작업이 되었어요. <퍼햅스 러브>가 그 이후에 하게 된 영화인데 <퍼햅스 러브>를 할 수 있었던 힘도, 그 다음인 <오래된 정원>을 할 수 있었던 힘도 모두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수>도 마찬가지고요.

음..역시나 큰 의미가 있군요. 그리고 많은 여배우들과 호흡을 맞췄어요. 고현정씨의 복귀작으로 화제가 되었던 <봄날>에도 상대역으로 출연하셨고 이번 <수>에서 강성연 씨,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에서 문소리 씨, 염정아 씨는 2번이나 만났죠?
네. 예전에 <H>와 <오래된 정원>에서.

그 중 특별히 호흡이 잘 맞는 배우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염정아씨와 강성연 씨가 호흡이 굉장히 잘 맞았죠. 서로 배려도 잘 해주고. 그 뒤로도 꾸준히 연락하고 만나는 친구들이고요. 종종 술도 한잔씩 해요.

강성연 씨도 집중력이 대단한 것으로 아는데, 배우로서 함께 작품을 하며 지켜보니 어떻던가요?
굉장한 집중력과 치밀한 준비성! 진정한 프로죠. 현장에서 슛이 들어갔을 때의 집중력은 무서울 정도에요. 단적인 예로 이번 촬영에서 저에게 내동댕이쳐지고 머리끄댕이를 잡아당겨서 질질 끌려서 던져지는 등. 정말 장난 아닌 상황이 많았어요. 굉장히 어렵고 힘든 씬이 많았는데 그것들을 아주 훌륭히 소화해냈어요. 덩치도 작고 여려보이지만 굉장한 파워가 있고 아우라가 있는 사람이에요. 배우로서 부러울 정도로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죠. 춤, 노래, 연기 모든 것이 갖춰진, 그래서 그렇게 에너지가 넘치는 것일지도 모르고. 아마 제 생각에 뮤지컬을 한다면 정말 잘하지 않을까.

노래를 잘 하나 보죠?
그럼요. 예전에 음반도 냈잖아요.

아하! 그랬죠? ‘Bobo’라는 이름으로. 깜빡했네요. (웃음) 혹시 누군가 닮고 싶다고 생각하는 배우 있나요?
글쎄요. 저는 그 누구를 모델로 삼고 싶진 않아요.

어쨌든 지진희 씨는 이야기를 해보니 욕심이 많은 배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그 많은 욕심 중 정말 뚜렷한 한 가지가 있을 것 같아요. 정말 연기자로써 죽기 전에 ‘이런 역할은 해봐야겠다!' 싶은 것 있나요?
한 가지 해보고 싶은 건 코미디. 나중에 나이가 많이 들어서 중년 이후 노년쯤에 코미디를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죽기 전에 가능하다면 뮤지컬을 해보고 싶은 게 소원이에요. 그건 정말 힘든 작업이고 만능이어야만 되는 것이라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배우로써 그런 희망을 지니고 살아요.

<수>는 18세 관람가 영화겠죠? (필자가 인터뷰기사를 작성할 당시까지 <수>의 영상 심의 위원회의 등급 판정은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아마도 그렇게 될 거에요.

보나마나 그렇겠죠? 일단 힘들게 찍은 영화라 애착도 많이 남을텐데 그런 노력을 보여주고 싶은 관람 대상은 누구라고 생각해요?
일단 18세 이상의 분들은 누구나 봤으면 좋겠고요.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엄청난 영화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보기 힘들 영화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나중에 봐도 절대 질리거나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을 좋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도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다!’라는 것을 느끼고 싶은 분들도. 특히 남성분들은 굉장히 좋아할 것 같고요. 명품 영화가 나왔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사실은 저부터가 기대가 큽니다!
그럼 꼭 보세요. 분명! 좋아하실 겁니다!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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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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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개봉이네. (이 인터뷰는 <좋지 아니한가>의 개봉 전날인 2월 28일에 이뤄졌다.) 보라와 아인이 이름이 내걸린 첫 영화인데 긴장되지 않아? 언론 시사 때도 긴장한 눈치던데?
황보라(이하 '황'): 지금도 역시 긴장되긴 해! 그런데 최근 인터뷰를 자주 하니까 긴장이 좀 풀리는 것 같던데? 언론 시사 때보다는 훨씬 나아졌지. 일단 개봉한다 생각하면 기분 좋은 것 같아.
유아인 (이하 '유'): 긴장이 안 되기보단 실감이 안 나나봐. 당장 내일 개봉이라니..
황: 오늘 개봉하는 곳도 있다던데!

하루 정도 일찍 개봉하는 극장도 있더라고. 근데 어쩌다 연기를 하게 된 거야? 어려서부터 연기가 꿈이었어? 아님 우연찮은 입문?
황: 배우가 되겠다고 어렸을 때부터 생각한 건 아닌데..종종 가슴 찡한 소설책보면 이런 감정을 내가 잘 표현할 수 있겠다 느꼈던 것 같아. 그러다 내가 살던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는데 덕분에 막연하던 꿈이 이뤄졌지.
유: 애초에 연기를 염두에 둔 적은 사실 없었어. 원래 고등학교 시절엔 미술을 하기도 했고. 그러다 흔히 말하는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픽업되고, <반올림> 오디션을 통해 시작하게 됐지. 연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건 연기를 하면서부터인 것 같아. 연기를 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연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어. 일단 대구에서 살았으니까 실감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고..

아인이는 노동석 감독님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도 출연했지? 근데 <반올림> 이후라 생각하니 좀 의외인데?
유: 사실 <반올림>이후, 공백 기간동안 많이 고민했어. 그러다 좋은 감독님만나서 좋은 영화를 하게 된 셈이지. 물론 <반올림>도 큰 공부였지만, 그것보단 내가 염두에 둔 연기의 방향은 그게 아니었지. 나름대로 좋은 계기였고 잘 했다고 생각해. 일단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내 자신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은데?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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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찍게 된 거야?
유: 일단 감독님을 만났지. 특별히 오디션이나 리딩 과정은 없었어. 그냥 감독님과 30분 정도 대화 나누고 그러다 영화 찍게 되었어. 생각보다 특별한 것은 없었지? 그런데 말이야. 솔직히 만약 지금도 어떤 작품을 위해 오디션을 보게 된다면 꽤나 떨게 분명해. 남한테 민망할 정도로. 난 아직도 그런 건 쉽지 않나봐. 어쩌면 특별한 오디션이 없었던 게 내가 그 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던 특별한 배경이었을지도 몰라. (웃음)

보라는 연기자이기 전에 CF로 유명해졌잖아. 일단 연예인이니까 유명해지는 건 중요한 일이야. 하지만 그것 때문에 속상한 일도 있을 것 같은데?
황: <좋지 아니한가>를 찍으며 많은 걸 느꼈어. 과거 모 라면 CF로 사람들이 나를 알게 되었고 그 이미지를 통해 ‘그것이 황보라야!’라고 쉽게 말해버려. ‘황보라는 엉뚱한 이미지!' 이런 식으로. 그건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불만이야. 예를 들면 김혜수 선배님이 <타짜> 정마담의 섹시한 이미지를 쉽게 연기했을 것이라 사람들은 생각하지. 하지만 알고 보면 김혜수 선배님도 그 연기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해. 그런데 관객은 원래 김혜수 씨가 원래 섹시해서 정마담이 나오는 것이라 생각하잖아. <좋지 아니한가>의 용선이도 사실 내가 아닌데..

맞어. 당연하다는 듯이 말야.
황: 당연하다는 듯! 맞아! 그렇게! <좋지 아니한가>의 용선이를 보고 ‘딱 황보라네!‘라고 말하는 것이 말야! 그래서 좀 답답해. 물론 이런 마음을 일일이 관객에게 설명을 통해 설득시킬 수는 없을테니 다음 작품을 통해 다른 면을 보여주는 것이 내 몫이자 욕심이야. <좋지 아니한가>는 나름대로 노력을 했고, 많이 깨지기도 해서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 내가 쉽게 연기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속상해. 과거 CF 이미지가 너무 강한 탓도 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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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아직 보라는 보여줄 게 많을텐데.
황: <좋지 아니한가>의 용선이가 되기 위해 나름대로 많이 고민하고 내 자신을 부수기도 하고..별 짓을 다했는데..쉽게 이야기되어 버리는 건 싫어.

노력을 안 해도 자연스럽게 나온 것처럼?
황: 응!

그렇다면 보라와 아인이는 스스로가 어떤 사람이라 생각해?
황 : 난 나를 모르겠는데?
유 : 역시 나도 잘 모르겠어. 음..그냥 영화 속 모습인 것 같아.
황 : 맞어! 영화 속 모습! 솔직히 자기 성격을 어떻게 알겠어?
유 : 왜 따지고 그래? (웃음) 싸우겠어! (웃음)

앗! 미안. 그냥 물어본 건데. (웃음)
황 : 아니, 따진 거 아냐~~. (웃음) 나도 나를 모르는 게 많아. <좋지 아니한가>에서 달의 이면을 볼 수 없듯이. 그래서 전면적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나를 쉽게 생각한다는 것이 납득이 안 갈 때가 많은가봐. 나도 살아가며 알게 되는 내 자신이 신기할 때도 많아. 내 인생이 말 그대로 라이브지! (웃음) 가끔은 스릴있다고 생각도 해. 어쨌든 쉽게 단정 지어 말하긴 힘들어.

내 질문이 막연했나 보다. (웃음) 그런데 <좋지 아니한가>로 둘은 처음 만났지?
유 : 사실 촬영 중에 우리 별로 안 친했어. (웃음)

지금도? 그래도 가까워진 것 같은데.
유 : 지금은 친하지. 하지만 촬영 전부터 끝나기까지는 별로 안 친했어. 영화 속 용태와 용선도 그다지 친한 사이가 아니고.
황 : 우리가 캐릭터에 상당히 열심히 집중을 했지! (웃음)
유 : 캐릭터에 너~무 빠져들었지. 우리가.
황 : 그랬지. 너~무 빠져들었지.
유 : 응. 그런데 생각해보니 썩 그렇다기 보다도~~(웃음)
황 : 뭐~야~!(웃음)

그랬구나. 그런데 <좋지 아니한가>는 영화를 보기 전엔 코믹영화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 생각보다 단순한 영화는 아니지 않아? 인물간의 관계도 그렇고. 처음 시나리오를 받을 때 쉽게 이해가 됐어?
유 : 일단 처음에는 그냥 재미있게 봤어. 다시 한 번 보니 극 속의 인물들의 상황이 좀 와 닿는 것 같던데?
황 : 나도 보면 볼수록. 나는 솔직히 촬영하며 몰랐던 부분을 인터뷰나 시사회를 통해 되게 많이 느꼈어. 진짜 솔직히 한때는 내 캐릭터 이외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잘 몰랐어.
유 : 그건 보라가 몰라도 상관없었을걸! (웃음)
황 : 아. 그래?
유 : 용선이가 용태의 비밀을 알 필요는 없잖아. 어차피 다 개인적인 이야기니까.
황 : 아. 그런 건가? (웃음) 아무튼 뒤늦게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는 솔직히 진짜 몰랐는데. 일단 나는 내 캐릭터 이해하기도 벅차서 크게 신경을 못 썼던 것 같아. 그런데 인터뷰하거나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서 조금 알게 되었지. 소품 하나하나에도 의미가 있더라구. 내가 좀 어리석어서 그래. (웃음)

자학하진 말고. (웃음) 이야기만큼이나 캐릭터들도 범상치 않아. 특별히 감독님께 지도를 받았겠지?
황: 난, 늘~ 지도받고! 늘~ 혼나고! 늘~ 고민하고! 되게 많이 깨졌어! (웃음) 아마 모든 배우들 중에 제가 제일! 아인이는 뭐 잘 하니까. 사실 내가 시트콤이나 광고 같은 이미지가 강해서 감독님도 우려가 많았데. 배우들도 많다보니 내가 오버해서 튀려하지 않을까 걱정했대. 그래서 좀 힘들었지.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 나를 누른다는 게. 나를 튀어보여서는 안되니까. 처음에는 답답하고 속이 꽉 막히는 기분이었다. 이걸 내가 지금 하는 건지, 하지 않는 건지. 사실 마지막 촬영에 되어서야 용선이를 알 것 같더라구. 그래서 아쉬웠어. 아무래도 그래서 감독님이 나를 많이 혼내고 가르쳐 주셨겠지?
유 : 용태는 엉뚱하기도 하고 진지할 때도 있지. 일단 연기하며 고민한 부분은 오버하거나 과장하지 않는 것이었어. 영화의 목적이 웃기는 건 아니었으니까 본인은 진지할 필요가 있었던 거지. 하지만 장치적으로 웃기거나 과장해야 되는 연기가 필요한 부분이 있더라. 캐릭터의 그런 모습까지 나 자신에게 진심으로 이해되게 설득하는 것이 조금 어려웠어. 예를 들면 내가 김혜수 선배님에게 "내가 왕이었소"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장면을 스무 번도 넘게 테이크를 갔었지. 대선배를 앞에 두고! 물론 그때 감독님이 "더 (진심으로 이야기)해"라고 요구하셨는데 난 그게 너무 힘들었나봐. 내가 거기까지밖에 못해서.
황: 난 '눌러! 눌러!' 아인이는 '더해! 더해!' (웃음) 그래도 아인이는 잘 했어.
유: 잘하긴 뭘! 창피해죽겠어.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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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진씨, 김혜수씨, 박해일씨 등. 대선배들이지? 일단 영광이었겠지만 부담되진 않았어? 둘 다 신인이고 어리니까.
유 : 일단 영광이었고 좋았지. 사실 팬의 입장으로서 볼 수 있다는 마음에 설레기도 했어. 처음 볼 때는 떨리기도 했지. 하지만 “부담스럽지 않을까.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도 있었지. 하지만 너무 좋으신 분들이고 편안하게 대해주시더군. 배려가 깊으신 분들이었어. 그러면서도 그리 티내시는 것도 아니고. 일단 질문처럼 둘 다 어리고 신인이니까 기죽고 주눅 들기 쉬웠을 텐데 선배님들께서 배려를 잘 해주셨어. 그냥 크게 울타리를 쳐 놓고 ‘마음껏 뛰어놀아라’ 하신 것 같아. 물론 제대로 뛰어논 건지는 잘 모르겠어.

나름대로 잘 뛰어논 것 같은데? (웃음) 혹시 그럼 특별히 친해진 분은 없어?
유: 사실 특별하게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게 다 가족이었잖아! (웃음) 보라누난 사실 나보다 연상인데 동생 같아. 내가 예의 없는 건가?(웃음)

일단 <좋지 아니한가>에서도 그랬고. 왠지 보라가 아인이보다 동생같아 보여!
황 : 다~! 다~들 그래! 물론 내가 어려 보여서겠지? (웃음)
유 : 그래도 나보다 어려 보이진 않잖아! (웃음)

일단 뭐 보라는 흔히 말해 동안이고 아인이가 진지해보여서 아닐까? 기존 이미지도 그랬고.
황 : 사람의 이미지라는 게 참 쉽게 굳어버린다니까. 하긴 어쩌면 그래서 알아갈수록 재미있고 신비한 일인 것 같아!
유 : 감독님도 아마 그런 부분을 보고 캐스팅 했을 거야.

둘 다 현장에서 막내였잖아. 나름대로 선배님들에게 재롱도 떨고 분위기 좀 띄우지 않았어?
유: 보라 누나가 많이 했지. 난 솔직히 재롱같은 건 잘 못해서.
황: 내가 그냥 애교 있게..
유: 워낙 밝고 명랑하니까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였지.
황: 그런데 분위기 메이커하다가 연기들어가면 주눅 들고, 혼나고. (웃음) 혼자 막 신나서 ‘제가요~저번에요~.’ 이렇게 아양떨다가 '큐!’들어가면 완전 입 다물고 굳어버리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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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아니한가>에서 각각 누군가를 좋아하잖아? 아인이는 원조교제를 하는, 용태말에 따르면 ‘우주에서 제일 나쁜 년’을 사랑하지. 혹시 그런 여자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해?
유 : 그럼!
황 : 진짜? 원조교제를?
유: 좋아질 수 있지! 원조교제했다 해서 그 사람이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건 아니잖아. 사랑하면 그런 것도 감싸줘야 돼.
황:그건 아직 네가 어려서 그래. 그게 솔직히 쉽니?
유 : 그래도 그거 하나 때문에 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할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아. 내가 사랑하니까 그 사람이 그런 일을 못하게 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

워~워~. 둘 다 싸우지는 말고. (웃음)
황 : 난 경호 선생님같은 사람은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아!

박해일 씨가 연기한 캐릭터? 용선이가 경호 선생님을 은근히 연모했잖아. 그래서 아마 양동이도 뒤집어썼겠지? (웃음) 혹시 실제로 학창시절에 선생님 좋아해본 적 있어?
황: 음..없었어. 학창시절에 누구 좋아해 본적이 없어. 그게 내 인생의 한이랄까. 10대에 사랑 못해본 것. 그 때의 감정이랑 지금 20대의 감정은 분명 틀릴텐데.

그렇지. 그럼 말야. 어차피 사랑이라는 건 나이에 구애되는 게 아니잖아. 혹시 누구 진~짜 많이 좋아해본 적 있어?
황 : 그럼. 있지. 물론. 없다면 거짓말이지.
유 : 당연히 있어야지.
황 : 난 사랑할 때는 굉장히 진지하고 확 빠져버려.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헌신하는 스타일이야. 그래서 사실은 겁이 나곤 해. 내가 날 잘 아니까. 하지만 난 사랑 없이 살지 못하는 아이야.

첫 사랑은 언제였어?
유 : 나는..열일곱? 한 5년 전쯤?
황 : 나는 늘 만나는 사람에게 첫사랑이라고 하는데..아! 있다!! (웃음) 우리 아버지! 나는 우리 아버지가 내 이상형이야! 얼마 전에 <1번가의 기적>을 봤는데 하지원씨가 아버지의 영혼을 보는 장면 있잖아.

거의 마지막 즈음에?
황: 응! 거기서 하지원씨가 ‘난 아빠가 내 첫사랑이고..’ 하면서 우는 장면. 암튼 그 장면 보면서 통곡을 하듯이 울었다니까!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사실 상영 전까지만 해도 극장에서 모자 푹 눌러쓰고 안경까지 낀 채 나 아닌척했지. 그리고 ‘내가 어제 <좋지 아니한가>를 봤는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다며!’라고 일부로 크게 떠들고. (웃음) 근데 그 장면 보면서 완전 ‘엉~엉~’ 울어버린 거야. 그래서 아마 사람들 다 알았을걸. 완전 깼지. (웃음) 암튼 내 첫사랑은 아버지야. 난 항상 그렇게 생각했어.

<좋지 아니한가>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야. 혹시 둘 다 각각 자신의 가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황 : <좋지 아니한가>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솔직히 우리 가족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VIP시사회 때 어머니가 영화를 보시곤 ‘딱 우리 가족이네’라고 하더라구! 진짜 비슷한 부분이 많아. 사실 나도 태어나서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거든. 부끄럽기도 하고 무뚝뚝해. 난. 그런데 무관심한 척할 뿐,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잖아. 비슷해. 우리 가족이랑. 감독님께서 ‘이해하려 하지 말고 인정해라’라고 하셨어. 만약 영화처럼 아버지가 원조교제 의혹을 받게 되면 가장 열 받는 건 딸이라 생각해. 그래서 용선이가 쪽팔리고 죽고 싶다을 것 같단 생각을 했어. 그런데 나 지금 질문에 맞는 대답하는 건가? (웃음)
유 : 나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그냥 가족 중에 특별히 나만 그런 것 같아. 나만 동떨어져 있는 것 같고. 나만 관심에 벽을 치고 있는 것 같고.

대화를 자주 나누지 못하는 건가?
유: 어려서부터 떨어져 살기도 했고..어쩌면 내가 가족을 방관자의 입장으로 보는 것 같아. 부모님이 아니라 내가 말야.
황 : 왕따 들은 늘~ 그래.(웃음) 자신이 남들을 왕따 시킨다고 생각하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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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가족의 은밀한 비밀을 알았던 적 없어?
유: 그건 그야말로 비밀인데 어떻게 말해!
황: 맞아. 비밀인데!

아하! 그렇겠구나. (웃음) 내가 너무 생각없이 질문한 건가? (웃음)
황: 힝~. 우린 지금 이례적으로 최대한의 집중을 하는 건데. 원래 우리 집중 잘 못한단 말야~. (웃음)

그럼 나도 정신 차려야지. (웃음) <좋지 아니한가>는 아마 보라와 아인이한테 큰 계기가 될 지도 몰라. 영화배우로서 본격적으로 처음 이름을 알리는 거잖아. 기대되진 않아?
황: 난 첫 작품이기도 하지만 왠지 지금 모든 걸 처음 시작한다는 기분이 들어. 내가 은근히 방송생활은 오래되었거든. 이래 뵈도 2003년 공채 탤런트 출신이잖아. 활동을 하고, 쉬고, 다시 하고, 쉬고, 이런 식의 반복이었지. <좋지 아니한가>를 하면서 느낀 건 내가 세상에 많이 물들었고, 때가 많이 묻었구나라는 것이랄까? 모르면 모른다 말하고 잘 하는 척 안해도 되는데 연기를 잘 하지도 못하면서 잘 하는 척을 했던 것 같아. 이번 영화를 하고 나서 솔직히 내가 연기를 알았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는 것 같아. 아직도 모르는 것투성이지.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다시 백지가 된 것 같다는 것. 그거 하나로도 굉장히 큰 것을 얻었다고 생각해! 난 <좋지 아니한가>가 황보라라는 배우로서의 첫 스타트라고 생각해!
유: 일단 촬영 중에 큰 공부를 했지. 그런데 이제 시간이 많이 지나고 개봉을 앞두게 되니 그 때 느꼈던 것들이 다시 실감나지 않아. 그냥 작년에 촬영할 때, 많이 행복했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많은 것을 느꼈나봐. 현실적으론 개봉 후 얼굴이 많이 알려질지 모르고 그렇다면 연기 생활을 수월하게 할 수 있겠지. 그냥 뭐..그것뿐야.

아직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이제 어린 나이도 아냐. 성인 연기에 대한 고민도 해볼 만하지 않아?
황 : 난 일단 축복이라고 생각해. 임수정씨도 동안이라 어린 연기를 많이 하잖아. 이 나이에 어린 연기를 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그런 고민보단 이미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근데 나 또 질문하고 벗어난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웃음)
유 : 아까도 헷갈리더니! (웃음)

내가 질문을 어렵게 하나? (웃음) 암튼 보라도 동안이잖아.
황 : 그래. 맞아! 동안이니까 동안연기 하는 거지! (웃음) 얼굴도 늙으면 나이 든 역할 하겠지. 뭐.
유 : 그니까 성인 연기에 대해 고민하는 거야! 안하는거야!
황 : 별.로? 쳇! 그럼 아인이 넌 하냐?
유: 나? 나도...없는 것 같은데.. (웃음)
황: 우린 그냥 어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현실에 감사하고 있지! (웃음)
유: 근데 걱정되는 건 일단 지금은 무리겠지만 혹시나 당장 멜로 영화의 주인공이 된다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아.
황: 왜? 뭐가 불가능해?
유: 그건 내가 그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아니고 외적으로, 내적으로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성숙하면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거든. 만약 준비가 되었는데 할 수 없다면 그땐 조바심이 나겠지? 지금은 그냥 이 나이에 고등학생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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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보라나 아인이는 가능성이 많은 나이야. 많은 것을 어필하면 미래를 위해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혹시 어떤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포부같은, 그딴 거 없어? 누굴 닮고 싶다던지.
유 : 사실 연기자가 다른 누군가를 목표로 삼고 좇아갈 수 있지만 그것은 단지 그 사람의 연기보다는 이미지가 아닐까? 연기에는 왕도가 없잖아. 그래서 목표라고 말하긴 애매한 것 같아. 만약 누군가가 되고 싶었는데 진짜 그렇게 돼 버리면 어떡해. 그건 그 사람도, 나도 당황스러운 일 아닐까? (웃음)
황 : 난~! 사람들이 보라를 생각하면 하트가 생각나는 배우가 되고 싶어.

하트?
황 : 사랑말야. 난 김혜수 선배님을 존경하는데 함께 영화를 하며 느꼈지만 이미지가 다가 아니야. 정~말 사랑이 많아! 그래서 나도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연기자가 될 거야. 모든 감정은 사랑 안에서 나오고 사랑은 모든 연기의 기초라고 생각하니까 생각하거든. 그래서 난 하트가 생각나는 보라가 되고 싶어.
유 : 또 원하는 답변이 아닌 것 같은데~. (웃음)
황: 그런가? 죄송합니다~. (웃음)

아냐. 괜찮았어. 일단 보라나 아인이나 본격적으로 출발한다는 것만으로도 좋지 아니한가 싶은데.
황: 와아~
유 : (정윤철) 감독님 개그인데. (웃음)
황: 맞아! 시사회때 했던! (웃음)

이런~들켰군. (웃음) 어쨌든 <좋지 아니한가>가 필요하다 생각되는 관객있어?
유 : 일단 모두가 본다면 좋겠지.
황 : 진짜! 모두가!
유 :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어. 굳이 가족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사랑이 되어도 좋겠지. 감독님은 연예인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하시던데?
황: 진짜?
유: 응. 어쨌든 인간관계의 문제 속에 놓인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어. 만약 보고나면 그런 고민들이 담담해지거나 그로부터 쉬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해.
황 : 맞는 말씀이에요. 동의합니다. (웃음)

어쨌든 이번 영화가 보라와 아인이한테 정말 ‘좋지 아니한가’ 싶길 바래!
황 : 아하~~~또 감독님 개그!!! (웃음) 암튼 고마워!
유 : 감사!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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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예원 인터뷰

interview 2008. 5. 29.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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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시절,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에서 공연을 다니기 시작한 그녀는 2달에 1번 정도는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회관같은 큰 무대에서도 공연을 했다. “음악이란 건 말에 음만 입혔을 뿐 감정표현은 동일하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노래를 했지만, 그곳에서 그녀가 발견한 건 무대였다. “그런 무대에 익숙해서인지 남 앞에 나서거나 보여준다는 것에 희열을 많이 느끼나 봐요.” 그녀가 배우라는 꿈을 자각한 것은 중학교 시절부터였다. 하지만 그녀의 꿈은 분명 어린 시절 무대 위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섣불리 노래를 버리지 않았다. “그 당시 고민을 하긴 했어요. 하지만 그때까지 했던 음악이 아까웠거든요. 그래서 성악과를 갔어요. 굳이 연극영화과를 가야만 연기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녀는 음악이라는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연기를 어떻게 해야겠단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고 일단은 대학진학이 목표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그녀는 일단 성악과를 갔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 노래를 버리지 않고 연기에 대한 진로를 모색하기로 했다. 하지만 학업과 연기의 병행은 만만치 않았다. “처음 들어가자 받은 학점이 올 F였어요. 둘 다 하는 건 쉽지 않았나 봐요. 그래서 연기학원에 들어가 본격적인 연기자 준비를 했죠.” <허니허니>로 인해 처음 연기에 입문하던 당시 그녀는 1년 정도의 연기자 트레이닝 중이었다. 한예진, 지성, 배용준 등 지금 이름만 대도 모두가 알만한 배우들과 함께 동고동락하기도 했다. “나름대로 연기자로서 입문해 활동하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처음은 낯설어서 무섭기도 했지만 그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고 준비를 하다 보니 내 연기가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 1년의 시간은 그녀에게 즐겁고 재미있었던 시절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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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영화였다. 하지만 스스로가 택한 선택은 아니었다. 그녀에게 찾아온 첫 영화 필모그래피는 득보단 명백한 실이었다. 평단의 평가는 냉정했고 관객은 영화의 관람가에 주목했다. 나름대로 어린 나이에 최선을 다해 찍은 영화였지만 현실은 결과만이 중요했고 그녀의 사정 따위는 들어주려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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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자체의 문제도 있었지만 단순한 결과가 내 이미지를 결정짓는 상황은 연기자로서의 기회를 빼앗는 것 같아서 아쉬웠어요. 나름대로 끼와 에너지가 충만했을 때 하고 싶던 일을 못 하게 되는 것이 말이죠. 그리고 한편으로 결과론적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첫 영화는 그녀에게 많은 것을 앗아갔다. 그녀는 그토록 갈망하던 연기자의 길 위에서 헤매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잘못된 길 위에 섰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그 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가 만약 그 당시 <마법의 성>으로 인해 상황이 마땅치 않다는 이유로 누드집을 낸다던가,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끌려갔다면 다시 재기하기도 어려웠을 것 같아요.”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은 그녀를 연기라는 갈망으로부터 이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포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찍어야 할 다른 마침표를 찾았다. 그래서 그녀는 잠시 그 길에서 내려와 다른 길을 걸었다. 멈춰있던 학업에 눈을 돌렸다. “학교생활을 통해 공부와 노래에 전념했어요. 만약 공부만 했다면 참기 힘들었을지도 모르지만 노래를 통해 나의 축적된 끼를 발산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어요.” 그것은 그녀에게 현명한 선택이었다. 물론 연기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녀에게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녀의 학교생활은 그 아쉬움을 달래고도 남았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나도 다시 연기를 하고 싶단 생각을 종종 했지만 크게 힘들진 않았어요. 3년의 학교생활이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을 정도로 금방 지나간 것 같아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소중한 시간들이었어요.” 물론 그 와중에도 그녀를 향한 풍문이 불어오곤 했다. “웬 잠적? 학교만 잘 다니고 있는데. 나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죄진 것도 아니고. 뭘 해도 당당하게 살고 싶었고 내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인정할 생각도 있어요. 한편으론 지나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도 했고요. 그런데 그것을 자꾸 나쁜 기억으로 몰아가려는 거짓 소문들은 솔직히 황당했어요.” 하지만 그녀는 크게 여의치 않았다. 과거에 얽매이지도 않으면서 막연한 미래를 걱정하지 않았다. 그저 현실에 충실하면 언젠가 길은 열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와중에 가능성을 탐색하곤 했다. “오디션을 가끔 혼자 몰래 본적은 있어요. 솔직히 말하면 몇 번 최종까지 올라갔다가 탈락된 적도 있어요. 최종까지 올라갔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언젠가 내가 합격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도 생겼고요. 내 연기가 신인으로서 나쁘지 않다는 자신감을 얻기도 했고.” 그래서 학업에 전념했다. 가능성의 싹을 틔우기 위해 하나의 과정을 마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시 자신의 궤도에 들어서기 위해. 자신만이 가진 매력을 일단 확실히 다지기 위해서라도. “일단 대학을 확실히 졸업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대학에 애착도 있었어요. 물론 학벌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내가 무언가를 마쳤다는 것에 대한 의의가 컸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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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선주 역할에 정말 유명한 배우들도 많이 거론되었어요. 드라마나 다른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고 있는 분들의 이름이 들려오곤 했죠.” <1번가의 기적>이 명란과 필제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 영화는 사실 명란과 선주, 두 여자의 이야기가 중심에 놓인 작품이다. 즉 빈민가에 사는 두 여인의 상처와 희망에 대한 이야기인 것.

그래서 선주 역할은 충분히 하지원과 임창정에 못지않은 스타성이 있는 배우들이 캐스팅 될 수도 있는 배역이었다. “솔직히 비중이 너무 작은 역할을 하고 싶진 않았어요. 건방진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예전에 서태지씨가 CF에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지 못하려면 나오지도 말라.’고 한 카피가 제겐 특별했어요. 오랜만에 등장하는데 가벼운 모습으로 출발하고 싶진 않았어요. 4년의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개인적으로 그래서 <1번가의 기적>에 목숨 걸고 달려들 수밖에 없었어요.”

그녀는 매일같이 윤제균 감독에게 메일을 보냈다. 시나리오에 대한 감상, 선주에 대한 캐릭터 분석, 그게 아니라면 안부라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몇 달 동안 매일같이 그렇게 윤제균 감독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메일을 보내는 족족 수신 체크는 확인되었다. 하지만 윤제균 감독은 묵묵부답이었다. 답장 한번 없었다. 하지만 결국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나중에 영화에 캐스팅되고 나서 감독님께서 저에게 ‘독한 년’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저에게 메일에 답장을 주지 않은 이유를 말씀해주셨는데 저에게 섣부른 희망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하시더라고요. ‘내가 너에게 답장을 주면 네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희망을 갖게 되고 만약 후에 너보다 더 괜찮은 배우가 섭외가 되면 너를 상처 주는 일이 될 테니까. 그런데 너보다 잘 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너에게 배역을 맡긴 거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결국 그녀는 스스로 그녀의 기적을 만들었다. 그녀에게 <1번가의 기적>은 하늘에서 떨어진 일확천금이 아니라 노력의 결실인 셈이었다. 물론 그건 영화를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선주라는 캐릭터에 대한 애정 때문이기도 했다. 강예원과 선주는 어딘가 닮아있었다. “개인적으로 저에게 그 상황이 너무 와 닿았어요. 집안문제도 많았고, 일적인 부분도 있었고. 시나리오를 보는 순간 너무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꽤 욕심이 났던 것 같아요. 그래서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고 그 역할을 하면서 너무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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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1번가의 기적>은 설렘이자 두려움이었다. “지금은 담담하게 이야기하지만 그 당시에는 많이 예민하고 불안했어요. 그렇게까지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도 처음이었던 것 같고요.” 캐스팅되었다 해서 걱정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걱정은 <1번가의 기적> 안쪽이 아닌 바깥쪽에 있었다. 과거에 대한 걱정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감독님께서 많이 걱정하셨어요. ‘혹시 네가 예전의 과거가 들춰지고 그로 인한 악담을 듣는다 해도 절대 상처받지 마라. 그런 것도 다 관심이고 네가 이슈가 되었던 예전 사례 때문에 그런 것뿐이니까, 네가 앞으로 좋은 영화를 하다보면 몇 년 뒤 너의 이미지는 확실히 뒤바뀌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마법의 성> 때문에 더 이상 네가 상처받아서는 안 된다.’ 라고 격려해주셨어요.” 그러나 걱정과 달리 그녀의 현실은 생각보다 순탄했다. “솔직히 악담은 무슨, 오히려 너무 관심이 없더라고요. 특별히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잘 몰랐나 봐요. 물론 무관심도 좋은 건 아니지만 솔직히 이슈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다시 영화에 나오기 위해 몇 년 동안 노력했는데 다시 악담을 듣게 될까봐 두려웠거든요. 관계자분들은 저의 그런 부분에 대해 우려를 했지만 오히려 일반인들은 되레 허무할 정도로 무심하더라고요. 전 <1번가의 기적>의 선주일 뿐, 과거는 상관없었어요.”

그녀는 영화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았다. 자신에게 찾아온 기적 같은 작품에 모든 정성과 열의를 다 했다. 유리를 밟고 지나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진짜 유리에요. 소품이 아니라. 진짜 양말 하나만 신고 밟은 거예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불과 유리인데..유리를 밟는데 너무 무서워서 덜덜 떨리더라고요. 그냥 한번 밟고 지나가면 된다 생각하고 아무 생각 없이 밟고 지나갔어요.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어요.” 그만큼 그녀에게 <1번가의 기적>은, ‘선주’는 너무나도 소중했다. 그래서 촬영 내내 너무나도 행복했고 그 순간 안에 머무르고만 싶었다.

“10시간 정도 비를 맞는 씬이 있었는데 초가을이라 너무 추웠어요. 살이 찢어지는 것처럼. 근데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았는데도 그 촬영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배우로서 연기를 하는 그 공간 안에 있다는 것 자체로도 너무 행복했던 것 같아요. 내일도 계속 촬영했으면 좋겠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녀는 그 모든 게 기적이라고 말한다. <1번가의 기적>은 그녀에게 수많은 기적을 만들어주었고 보여주었다. “거울이 깨지는 순간 그 안에 제 얼굴이 비쳐지는 씬이 필요했어요. 직접 해보고 안 되면 CG를 사용하자고 했는데 마지막 거울을 깰 때 얼굴이 정확히 들어맞았어요. 그래서 CG를 안 쓰고 자연스럽게 그 장면을 사용했어요. 마치 기적 같았어요. 저희는 기적이 참 많아요. 3주 연속으로 흥행 1위를 달리고 있는 것도 기적이라고 생각하구요.”

무엇보다도 그녀에게 가장 큰 기적은 <1번가의 기적>안에 강예원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제가 이 영화에 나오게 된 것 자체가 기적이에요. 저는 솔직히 그렇게 생각해요. 이를 통해서 한걸음씩 나갈 수 있게 되었잖아요. 무대인사 때문에 지방에 내려가는데 함께 있던 하지원씨와 임창정씨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 이렇게 영화 흥행하게 된 것, 행복한 만큼 감사할 줄 알자. 이렇게 흥행작에 출연하게 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모두 기적일지도 모른다. 잘되는 만큼 홍보도 열심히 하고 인터뷰도 잘 해서 우리 스스로 감사한 줄 알자.’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1번가의 기적>은 정말 1번가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기적과 다를 바가 없어요.” 그래서 그녀는 너무나도 아쉬웠다. <1번가의 기적>이 끝남과 동시에 강예원의 기적도 끝나지 않을까. “스탭분들이 너무 잘 해주셔서 고마웠어요. 그래서 쫑파티 때도 너무 아쉬워서 소감 말하면서 혼자 울기도 했어요. 감독님께서 현장의 분위기를 항상 밝게 이끌어주셨어요. 전체적으로 너무 화기애애했고요. 아마 다시 영화를 찍게 되면 이렇게 행복한 촬영현장을 만나지 못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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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해요. 며칠 전에 화장품 가게를 갔었는데 화장품 가게 종업원이 알아보더라고요. 개봉 첫날에 영화를 봤다면서. 덕분에 20%할인도 받았어요. (웃음) 이제는 길거리 다닐 때도 조신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힘들 때는 쳐다보지도 않던 관계자들에게 연락도 오고..그런 건 좀 얄밉더라고요.” <1번가의 기적>은 강예원을 흥행작 출연 배우로 만들었고 적당한 유명세에 올려놓았다. 4년간의 공백은 그녀에게 독이 아닌 약이었다. 그녀는 과거에 발목을 잡히길 거부했다. 오히려 거기서 자신이 출발해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은 나름대로 팔자가 있나 봐요. 내가 그것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게 되고 하고 싶은데 못하게 되고 하기 싫은데 할 수 밖에 없는 일이 되고..이런 갖가지 경우의 수가 팔자인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그냥 운명이었다고 생각해요. 내 팔자는 그냥 3년 동안 학교나 다니고 공부나 하다가 1년 동안 열심히 준비하고 그 뒤로 오디션 봐서 4년 만에 <1번가의 기적>을 찍게 될 팔자였나 봐요. 운명이라면 거슬릴 수도 없는 거고.”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현실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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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현실을 토대로 미래를 구상한다. 흥행작의 출연배우가 되었고 분명 예전보다 많은 기회가 그녀에게 속삭이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섣불리 기회에 올라타려 하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도박보다는 점진적인 발전을 추구한다. “영화가 일단 잘 되었고 좋은 배우들 때문에 사실 저는 업혀가는 거죠. 앞으로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더 노력하고 열심히 해서 친근감 있는 배우로서 인식되고 싶어요. 그렇게 되면 내가 하고 싶었던 역할을 맡을 수도 있을 테고요. 아직까지 주인공 정도의 무게감이 있는 역할에 욕심은 없어요. 아직은 제가 좀 더 배워야 할 것 같고요. 연기로써 한발 한발 딛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거든요. 배우로서의 검증이 필요한 거죠. 저예산 영화도 출연해보고 싶고요. 세 네편 정도 강예원이 배우라는 것을 알릴 수 있는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그녀는 욕심이 많다. 아직은 해볼 것도 많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연기와 더불어 노래라는 자신만의 장기를 드러내고자 한다. “다양한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밝은 캐릭터가 일단 저에겐 어울리는 것 같지만 나이에 따라 좀 더 무거운 역할로 나아가고 싶어요. 중후한 느낌이 드는, 제가 남보다 잘 할 수 있는 범위안의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저는 뮤지컬을 하고 싶어요. 뮤지컬 영화도 해보고 싶고. 조승우씨하고는 초, 중학교 동창이라 친하기도 한데 정말 그 친구하고는 한번 같이 해보고 싶어요. 제가 아직 따라가려면 멀었지만 나중에 나름대로 노력해서 사정을 해서라도 한번 같이 무대에 서보고 싶은 배우에요. 성악과를 나왔다는 메리트를 살려보고 싶고, 자부심도 있어요.”

하지만 그 욕심은 소박하다. 스타가 아닌 배우로서의 강예원을 꿈꾼다. “<마법의 성>으로 잘못된 이미지를 인식시키기도 했지만 다시 영화로 돌아온 만큼 영화배우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싶어요. <마법의 성> 때문에 ‘베드신은 죽어도 안 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작품이 좋으면 충분히 할 수 있어요. 물론 여자배우로서의 이미지에 치명적인 면모가 될지 모르지만 그런 연기가 영화에 필요한 것이라면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전도연씨나 문소리씨 같은 배우를 존경해요. 어떤 역할을 주어도 자신에게 어울리게 소화해내고 파격적인 노출도 필요하다면 과감히 해내는, 그것이 정말 배우답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4년의 시간은 단순히 그녀의 과거를 희석시키는 의의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그 시간동안 자신을 단단히 다져나갔다. 그리고 <1번가의 기적>으로 자신이 쉽게 깨지지 않을 만큼 단단해졌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녀는 벌써 한걸음씩 자신의 꿈으로 걸어가고 있다.

“사실 지금 뮤지컬을 준비하고 있어요. 헤어드레서의 이야기를 다룬 <마리>라는 작품이에요. 그리고 제가 주인공인 ‘마리’ 역에 캐스팅 되었어요. 3월 25일부터 공연이 시작이라 종일 연습하고 있어요. 함께 출연하시는 분이 뮤지컬 대상에서 주연상을 받은 서태화씨의 지인이신 서재영씨에요. 그래서 약간 부담도 되고 한 달이라는 기간이 짧기도 하지만 어쨌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니 기분이 너무 좋아요. 일단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할 거예요.” 거기서 강예원은 4년 동안 잠시 외면해야 했던 배우의 꿈을 꾸고 있었다. “일단 어렸을 때 좋은 경험했다 생각하고 내 자신이 그 덕분에 강해졌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그래서 다시 영화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관객들과 친해져야겠죠. 무엇보다도 나를 보면 사람들이 기분 좋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보기만 해도 미소가 나오는 그런 사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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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키운 건 팔 할이 긍정이었다. 매일 일기를 쓰며 자신을 돌아본다는 그녀에게 과거는 버려야 할 짐에 불과했고 미래에 대한 걱정은 부질없었다. 중요한 건 지금 현재일 뿐이다. 매순간에 충실할 뿐. “하루하루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 같아요. 내일 지나봐야 아는 거고 사람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그냥 오늘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그게 쌓이다보면 후에 기회가 찾아오는 계기가 될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내가 무언가를 이루게 되었을 때 그 노력에 대한 보람도 크겠죠? 그래서 그냥 하루하루 충실히 살려고 노력해요. 항상 다이어리를 가지고 다니며 일기를 써요. 내가 무엇을 했는지 기록하며 혼자 섭섭해 하고 즐거워하며 하루를 돌아보고 체크 해봐요.” 결국 긍정은 그녀의 위기를 기회로 빚어냈다. 4년의 시간은 그녀에게 무의미하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지도, 섣불리 앞을 내다보지도 않았다. 매순간 그 당장에 집중하고 의미를 두었다. “‘받은 상처는 모래알에 버리고 받은 은혜는 대리석에 새긴다.’는 말이 있어요. 내가 받은 상처를 계속 생각해봤자 뭐하겠어요. 그냥 그런 건 잊어버리고 차라리 받은 은혜를 기억하면서 그분들에게 언젠가 보답하겠다고 다짐하곤 해요. 그렇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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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아픔이 있다. 그리고 아픔은 순간의 고통을 각인시킨다. 그래서 때론 그 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상처를 자꾸 돌아보고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4년이란 시간 위에서 강예원은 상처를 걱정하기 보다는 새살이 돋아나길 기다렸다. 기다림은 적절했고 현명했다. 스스로를 학대하지도, 남을 탓하지도 않았다. 현실을 수긍하고 매순간에 감사했다.

그녀는 중학교 시절, 싹을 틔웠던 자신의 꿈을 향해 다시 가고 있다. 잘못된 토양위에서 뿌리째 뽑혀나갈 수도 있었다. 풍문에 날려 꺾여나갈 수도 있었다. 시련과 고난은 그녀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거짓말처럼 자신을 가두려던 <마법의 성>은 허물어버리고 의지와 인내로 <1번가의 기적>을 개척했다. 자신을 향할지도 모를 손가락을 두려워하기 보단 그 손가락들을 무색하게 만들겠다는 자신감으로. 그리고 오랫동안 갈망했던 궤도위로 다시 올랐다. 많은 것을 잃었을지도 모르지만 많은 것을 얻게 된 시절이었다고 그녀는 웃는다. 시련은 사람을 쓰러뜨리기도 하지만 강하게 다지기도 한다. 4년이란 시간이 텅 빈 시간이 아닌 꽉 찬 시간이었다는 것은 단단한 미소로 증명된다. 튼실한 알곡을 거두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 참 잘 여물었다. 강예원. 그 단단한 알맹이가 거둘 또 다른 수확을 생각하며 필자는 문득 미소를 지어본다.

(무비스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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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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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는 고뇌한다. 무언가를 이루지 못해서, 무언가가 되고 싶어서. 자신을 둘러싼 규정과 정해진 정답 대신 자신만의 삶을 갈구한다. 이상일 감독이 그려내는 젊음은 그렇다. <식스티 나인>처럼 깡있는 발랄함으로 내달리기도 하고 <스크랩 헤븐>의 주체할 수 없는 허탈감으로 내려앉기도 했다. 그리고 <훌라걸스>. 그곳에서 소녀들은 외친다. ‘내 삶은 내꺼야!’ 석탄처럼 어두운 갱 속에서 화려한 무대로 도약하고자 하는 소녀들의 몸부림이 그곳에 있었다.

치기어리고 대책 없음이 젊음에 대한 모욕이라 생각한다면 이상일 감독의 영화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 고백하자면 필자는 그래서 이상일 감독의 영화가 좋다. 하지만 거기서 의문이 발생한다. <식스티 나인>이, <스크랩 헤븐>이, 그리고 <훌라걸스>가 이상일의 목적지인가? 그는 야자키인가? 신고인가? 기미코인가? 그는 분명 아직 어딘가로 가고 있다. 그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젊은 피가 어디로 솟구치길 원하는가? 내가 던지는 물음표는 그가 내미는 느낌표로 돌아왔고 그 사이에 맺힌 이상일의 고뇌가 알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터져 나온 수많은 알맹이는 단 한마디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이.상.일.이다.’

한국에 온 것이 처음은 아니다. 올 때마다 기분이 어떤가?
부산영화제 때문에 종종 왔었고 서울에 오게 되는 경우는 영화 홍보 때문이었다. 항상 일 로만 오게 되서 아쉽다.

민감한 질문 하나 하겠다. 간담회 때도 그리 달가워하진 않던데.
(웃음)얼굴에 드러나던가?

약간? (웃음) 재일 교포 출신 성분 때문에 한국을 찾게 되면 항상 그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 솔직히 기분이 어떤지 궁금하다?
예전에 한국에서 하인즈 선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사례를 보면 한국인들은 아마도 해외에서 성공한 한국인들에게 관심이 많고 호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아무래도 나에게도 역시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어 하는 것 같고, 결국 그런 질문들은 그런 관심의 표출이라 생각된다.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는 것에 어떤 제약이나 차별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혹시 그게 감독의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 아닐까? 감독으로 이름을 알리기 전에 그런 경험이 없는가? 영화와 무관했던 시절에라도.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조선학교를 다녀서 주변사람들이 모두 동포였기 때문에 그런 기억이 없다. 그 뒤 대학교에 진학해서도 그런 일은 없었던 것 같다. 감독이 된 이후로 출신성분은 오히려 내게 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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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다?
일단 외국인 출신이라 일본인들보다 주목을 쉽게 받게 된다. 남들과 다르다는 점은 그런 면에서 유리하다. 또한 나의 출신 성분은 이야기를 끌어내는데도 유용하다. 일본인들과 다른 출신이라는 것은 분명 내가 그들과 다른 사고방식을 지니고 다른 시선을 지니게 하는 부분이니까. 그래서 일본인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볼 때도 있고 다른 각도로 보게 될 때도 있고. 아무래도 나의 출신 성분은 내게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는 것 같다.

첫 작품이자 졸업 작품인 <아오, 청>이 평단의 지지를 얻어 수상도 많이 했고 두 번째 작품인 <보더라인>도 해외 영화제에 초청되고 괜찮은 평가를 얻어냈다. 이는 분명 감독이라는 네임밸류에 긍정적인 작용을 했을 법한데.
일단 무언가를 만들어서 사람들의 앞에 내놓는 입장이니 어떤 형태로든 그것이 주목을 받을 필요성은 있다. 그러므로 내가 만든 성과물에 대한 최소한의 달성을 얻었다는 점은 중요한 일이다. 일본에선 감독 데뷔보다도 감독으로써 영화를 지속적으로 만드는 것이 더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으려면 자신이 만든 작품에 대한 성과물이 필요하다. 그 성과물은 작품에 대한 평단의 평가든, 관객의 동원이든 어떤 형태로라도 자신의 작품을 어필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결국 내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초기 작품들의 긍정적 반응들에 대한 연장선상이 되는 셈이고 그런 점에서 나 자신에게 큰 의미가 있다.

작년 한해는 이상일 감독에게는 특별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훌라걸스>가 일본 아카데미에서 수상도 많이 하고 흥행도 어느 정도 이뤄졌으니 이상일이라는 이름이 감독으로서 확실히 각인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일본에서는 사실 영화감독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는 일이 거의 없어서 그 이상은 잘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칭찬을 듣게 되면 약간 우쭐해지는 스타일이라 스스로 들뜨는 기분을 자제하려고 노력한다. (웃음)

겸손할 줄 알았는데 의외다.(웃음) 한국에서도 이상일이라는 이름이 감독으로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얻는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의 영화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게 되면 그저 순수하게 기쁠 뿐이다.

이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이상일 감독의 영화는 모두 젊은 세대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식스티 나인><훌라걸스>를 보면 그 젊은 세대가 존재하는 시간은 과거 60년대이다. 흘러간 과거를 통해 젊음이 이야기된다는 것은 조금 묘하다. 특별한 의도라도?
사실 60년대에 특별히 의미를 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려보고 싶은 이야기나 다가가고 싶은 캐릭터가 그 시절에 존재했던 것뿐이다. 말 그대로 60년대가 내 영화의 시간배경이 된 것은 우연이라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영화를 만들고 나서 스스로 생각해보니 만약 내가 현재를 배경으로 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조금 부정적인 시선을 지니게 되는 것 같았다.

어떤 이유에서 부정적인 시선을 지니게 되는가?
부정적이라는 단어가 조금 부적절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동시대의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 자신이 좀 더 심각해지는 면이 있다. 일단 나 자신이 지금의 젊은 세대이고 이 세계의 현실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40여 년 전의 젊은이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경험하지 못한 하나의 판타지가 된다. 그래서 원래 젊은이들이 지닌 에너지나 열기, 어리석음 그 자체 본래의 성향을 그려보고자 하는 순수한 의도에서 그 시절이 적합했던 것 같다. 결국 겪어보지 못한 과거는 내가 그리고자 하는 이야기의 적절한 밑거름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 부정적인 시선이 드러난 영화가 <스크랩 헤븐>이라고 봐도 되나?
글쎄다.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스크랩 헤븐>이 그런 이유에서 나온 영화인지도 모르겠다.

<훌라걸스>나 <식스티 나인>에 비해 <스크랩 헤븐>은 어둡고 무겁다. 초기작들도 그렇게 볼 수 있는데 어떤 이야기가 자신에게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는가?
사람은 누구나 여러 가지 성향을 자신의 내면에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고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내가 만든 영화도 내안의 한 가지 감정을 투영한 것이 아니라 그때마다의 상황에 맞는 감정이나 경험들, 혹은 이전부터 자신의 내면에 축적되어 지니게 된 여러 가지 것들이 하나의 영화를 형성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가 완성된 후에 그것을 들여다보면 내가 만든 작품에 대한 반론이 생기기도 해서 다음에는 그것과 완전 다른 방향으로 가고 싶어지기도 한다. 결국 나 자신도 나에게 어울리는 색을 잘 모르겠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꺼려지는 일이다. 무엇이 나에게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듣는 건 그리 좋은 일이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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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가 발산하는 에너지를 무모하게 소진시키기 보단 적극적인 의지로써의 소비를 꾀하는 것 같다. 그 의지가 관객에게 어떻게 읽히길 원하나?
사람의 삶은 다양한 선택의 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선택이 시작되는 것은 젊은 나이라고 생각한다. 각자가 여러 가지 선택을 할 때 그 개개인은 자신 스스로를 통한 선택을 했으면 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결코 편한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 책임에 대한 각오도 해야 하고 그 선택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도 해야 한다. 그런 생각 속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니 그런 의도가 읽혀지길 원한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적 기질을 드러낸다. 그것은 자신들의 의지가 무언가를 행하려고 할 때 기성세대로부터 비롯된 환경이나 가치관에 부딪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발작용이 묘사되는 듯하다. 쉽게 말하면 세대 차이라고나 할까. 한국에서도 그런 문제가 심각하게 드러나곤 하는데 일본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일단 성장하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가치관을 선택하고 자아를 형성해가는 과정에서 기성세대가 먼저 축적한 가치관들과 부딪치고 갈등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건전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없다면 이상한 것이다. 특히 내 영화는 젊은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까 그런 부분은 당연히 드러날 수밖에 없는 부분인 듯하다.

작년 일본 영화가 외화의 점유율을 많이 뛰어넘었다.
많이라.. 많이 까지는 아니고..조금. (웃음)

물론 이를 영화산업의 질적 발전의 척도로 삼을 수는 없지만 분명 일본 영화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고무된 상황일 것이다. 이상일 감독 본인을 포함해서 말이다. 한국도 몇 년 동안 자국 영화의 점유율이 외화를 누르고 있다. 하지만 요즘 한국은 영화산업의 위기론이 제기되는데 과열 투자로 인한 거품현상 때문이라는 의견도 나오는 실정이다. 그런 면에서 일본의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나?
물론 자국영화가 사랑을 받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현재 일본에서 흥행되는 작품들 중 필요 이상의 관심을 얻는 작품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내가 개인적으로 보고 싶거나 사람들이 많이 봐주길 원하는 작품이 외면되는 상황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 상황의 단순한 측면만을 보고 기뻐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분명 한국에서도 그런 고민을 품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 아닐까 싶다.

최근 일본영화는 젊은 성향의 영화가 많이 제작되는 것 같다. 일단 이상일 감독의 영화도 그렇고. 젊고 연기를 잘 하는 배우들이 많은 덕일 수도 있고. 가벼운 소재로 특별한 감성을 주입하기도 하고 독특한 발상으로 다가가기도 한다. 소박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어쩌면 그것은 현재 일본 영화만의 매력이 아닌가 싶은데.
그건 한국인의 시각이기에 일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읽어지고 매력처럼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간단히 말하면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들의 특색이 한국인보다는 일본인들에게 쉽게 어필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솔직히 종종 한국 영화를 보면 부러울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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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점이?
현실적인 문제 때문일 수도 있는데 영화를 기획할 때 제약을 받는 부분이 존재한다. 젊은 세대의 이야기가 많이 되는 것은 질문처럼 젊은 배우들의 역량 덕분일 수도 있지만 뒤집어 말하면 젊은 관객층의 동원이 용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그런 영화만 제작되는 것이 아니지만 다른 취향의 영화들이 기획되고 제작되는 환경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현실적인 문제제기를 딱 부러지게 들이댈 수 있는 괜찮은 작품이 기획되고 제작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종종 한국영화처럼 심각한 현실적 단면을 들추는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해보고 싶기도 하다.

일본인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헐리웃 블록버스터나 지브리산 애니메이션 우선이라고 들었다. 물론 작년 일본 영화의 자국 점유율이 늘었지만 이런 경향이 오래 지속된 것으로 안다.
그건 아마도 관객들이 요구하는 성향의 영화가 명확히 드러나는 부분이라 보인다. 현실적인 문제나 아픔보다도 자신과 무관할 수 있는 판타지나 자신이 손가락질 당할 필요 없는 긍정을 2시간동안 즐기고자 하는 듯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환경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고.

이런 부분은 감독으로서 느끼는 고충이 아닐까 싶다.
결국 관객들이 원하는 성향에 따라 그들의 흥미를 떨어뜨리지 않고 나의 문제제기를 작품 안에 잘 포함시켜가며 관객들을 극장으로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관객의 만족과 나의 만족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도록 말이다.

앞에서 일본에서 영화감독이란 위치가 대중적으로 크게 어필할 수 있는 자리까지는 아니라고 했다. 예전에 안도 마사노부가 감독과 함께 내한했을 때 자신에게 열광하는 한국 관객들을 보고 자국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놀라웠다는 소감을 밝힌 적도 있는데, 일본에서 배우든 감독이든 영화인이 일반인들에게 인지되는 위치가 어느 정도인가?
일단 개개인의 차이가 많은데 안도 마사노부 같은 경우는 그 배우의 인지도가 떨어진다기 보단 개인적인 소신에 의해 대중성이 높은 작품을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단 영화보다는 TV에 자주 나오는 배우들이 대중들에게 쉽게 인지되는 것이 사실이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를 한국 영화 중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고 송강호가 인상적이라 했는데..혹시 <괴물> 봤는가?
물론 봤다.

방금 말한 두 편의 영화 외에 인상 깊은 한국의 영화나 배우들이 있다면 말해 달라!
<오아시스>. 설경구와 문소리.........너무 평범한 대답인가? (웃음)
좋은 영화는 누가 봐도 좋은 것 같다.

최양일 감독을 비롯해 일본 영화계에서 활동하는 재일교포 출신의 영화인이 5~6명 정도 있다고 말했는데 혹시 그들과 은연중 연대감이 생기는 경우는 없는가?
연대감이라 할 수 있는 그런 경우나 관계는 없는 거 같다.

개인적으로 친한 분은?
최양일 감독님은 몇 번 뵌 적이 있다. 그때마다 ‘자네. 감독 협회에 빨리 가입해!’라고 하신다. (웃음) 그리고 ‘어려운 일 있으면 이야기해’라고도 하시고. 하지만 크게 친분이 있는 사이까진 아직 아니다.

최근 최양일 감독이 국내에서 <수>라는 영화를 찍었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영화를 찍어볼 의사가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 결정된 게 어떤 것도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 찍어야 될 필요성이 있는 작품이라면 꼭 찍고 싶다.

혹시 지금 기획되고 있는 작품이나 아직 기획되진 않았더라도 차기작에 대한 대략적인 구상이 있다면?
지금 기획 개발이 시작된 단계라 뭐라 말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몇 가지 생각이 있긴 하다. 물론 노코멘트다. (웃음) <훌라걸스>의 성공덕분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좋아져서 기획 개발 과정에 그런 것을 많이 반영할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이상일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서 감독이 엉뚱하거나 장난끼가 많은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마치 <식스티 나인>의 야자키(츠마부키 사토시)처럼. 자신에 대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혹은 주변에서 본인이 어떤 사람이라고 하던가?
주변에서 뭐라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웃음)
일단 <식스티 나인>의 야자키는 사실 나와는 전혀 다르다. 나는 어떤 상황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 전혀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오히려 내가 되었으면 하는 부러운 캐릭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감독의 영화에서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캐릭터가 있는가? 아니면 자신을 모델로 해서 만든 캐릭터라든지?
사실 어느 한 캐릭터를 찍어서 말하기는 힘든 것 같다. 캐릭터마다 조금씩 나의 일부분이 표현된 것 같기도 하고..어쩌면 <훌라걸스>에서 토요카와 에츠시가 연기한 기미코의 오빠가 나와 가장 닮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듣고 보니 왠지 그럴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루 종일 인터뷰 중인 것으로 아는데 <훌라걸스>가 한국에서 개봉하면 이 수고를 보답받길 바란다.
<훌라걸스>를 관람한 한국 관객들이 이 영화를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다. 그럼 충분하다!

(무비스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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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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