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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예련 인터뷰

interview 2008. 5. 30.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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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공포영화다.
솔직히 공포 영화를 좀 기피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또 한다. 운명인가보지. (웃음)

팔자가?
그런가 보지. 그래도 이미 찍은 거니까 잘 홍보됐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젠 다시 공포 영화를 하라고 하면 한번은 다시 생각해봐야 될 것 같다. 다음 작품은 좀 밝거나 공포가 아닌 작품을 선택하고 싶다. 공포라는 것 자체가 좋은 건 아니잖아. 이미지적으로.

여자 배우에겐 치명타일지도 모르지. 그래도 그나마 아직 개봉하지 않은 <도레미파솔라시도>는 밝은 분위기다.
그게 중간에 개봉을 해줬어야 되는데, 원래 12월에 개봉했을 영화인데 중간에 꼬이면서 어쩌다 보니 연달아서 공포영화를 계속 하게 되는 셈이 됐지. 솔직히 <구타유발자들>은 내 캐릭터와 무관하게 점점 영화의 수위가 너무 세서 그런지 공포 영화를 연달아 세 편 한 것처럼 아는 사람이 많더라.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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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구타유발자들>은 공포가 아닌데 살벌하더라.
공포보다 더 무섭다던데? (웃음)

좀 치가 떨리는 느낌이겠지. 하긴 공포영화에 어울리는 눈이다.
무섭다는 이야기겠지! (웃음)

속을 알 수 없는 느낌이랄 수도 있고, 아직 기자 시사 전이라 <므이>를 못 봐서 잘 모르지만, 시놉시스만 봐도 어딘가 베일에 가려진 캐릭터처럼 보인다.
그 말이 딱 그 역할에 어울린다. 정말 알 수 없는 애다.

근데 그건 배우의 이미지가 반영된 것 같기도 하다. 속을 알 수 없는 느낌이랄까? 이런 이미지 좋지 않아? 신비롭기도 하고.
별로에요~!(웃음) 하지만 사람이 속을 다 드러내 보이며 사는 것도 그리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알 수 없다? 솔직히 난 알 수 없단 이야기 종종 듣긴 했다. 사실 AB형이거든. (웃음)

공포 영화는 원래 좋아하는 편인가?
보기는 보는데, 좋아서 찾아보는 스타일은 아니다.

공포영화를 찍는 입장이 되니 어떤가?
찍는 건 하나도 안 무섭다. 오히려 60명이 넘는 스텝들이 있어서 즐겁다. 영화 자체가 어둡고 무섭다 보니 오히려 현장을 더 밝게 만들기 위해서 사람들이 장난도 많이 치는 편이다. 사실 공포는 없는 걸 만들어내는 거잖아. 현실이 아니니까. 그런데 거기서 조금만 잘못 하면 코미디가 되지. (웃음)

잘못 하면 유치하니까.
개인적으로 촬영할 땐 이게 정말 무서울까 의심했던 장면들이 사운드와 영상 편집을 끝낸 영화로 보니 너무 무섭더라. 그래서 공포영화는 정말 사운드라는 걸 이번에 제대로 느꼈다. 불과 그걸 찍을 때는 별로 안 무서울 것 같았는데, 솔직히 <여고괴담> 때 처음이라 낯설어서 많이 못 봤던 것을 이번엔 많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공포 영화 현장은 아이러니하다. 배우는 공포를 봐야 하는데 현장은 공포스럽지 않으니까.
몰입을 많이 해야지. 그만큼 집중력도 강해야 하고. 물론 어떤 영화나 마찬가지겠지만 공포 영화는 더 집중해야 되는 것 같다. 그냥 사람들과 웃고 떠들다가도 갑자기 씬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생기니까 그럴 때, 순간 몰입해야지. 아니면 자기가 절제를 하던가. 사람들과 대화를 해도 머릿속엔 씬에 대한 생각이 있어야 되고 그렇게 해야지. 나도 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 노력할 줄은 안다.

노력할 줄 아는 건 중요하지.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래.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데, 열심히 하는 것만 중요한 건 아니라더라.

그럼 뭐가 더 중요한가?
열심히 하는 건 누구나 다 하니까, 그러니 일단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하다고 누가 그러더라. 열심히 했다고 했더니, 우리나라의 세상 누구나 무슨 일을 하든 열심히 한다고, 열심히 안 하는 사람이 누가 있냐고, 연기도 백이면 백 다 열심히 한다고, 열심히 했다는 건 중요한 게 아니라 당연하니까 잘 하는 게 중요하다고. 근데 정말 그 말이 맞는 거 같아. 열심히 하면 뭐하나. 관객들이 ‘연기 열심히 했으니까 봐주자’ 이러진 않잖아. 잘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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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뭐든 잘 해야 인정받지. 어떻게 보면 야박하지만 그건 그 바닥만 그런건 아니다. 우리도 열심히 쓰지만 잘 써야 욕 안 먹는다. (웃음) 어쨌든 베트남에서 로케이션 촬영까지 했는데, 낯선 환경에 대한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다.
걱정을 너무 많이 하고 갔지만 오히려 그에 못 미쳤던 거 같다. 생각했던 것보단 더 편하게 지냈다. 두세 달 동안 음식을 비롯해 모든 불편함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지 걱정했지. 그런데 정작 음식도 잘 맞았고, 촬영장 시스템도 잘 준비돼 있어서 좋았고. 그리고 <므이>는 베트남에서 처음으로 허가 받은 우리 영화다. 길거리에서 촬영할 때는 공안들이 길 전체를 다 막아주고 그랬다. 물론 그만큼 관여도 많이 했지만, 몰래 찍지 않아도 되니까 편했다.

날씨도 더웠을 것 같은데?
날씨는 되게 더웠지. 습해서 땀도 많이 났는데, 우리나라 여름은 안 덥나? <도레미파솔라시도>는 6,7,8월 진짜 더운 한 여름에 찍는데 겨울 배경 씬이라 가죽자켓 입고, 긴 팔 입고 잠바입고도 찍었다. 한 번 그걸 겪으면 그 정도쯤이야. (웃음)

추운 척은 해야 되는데 땀은 흐르고.
그러니까. 땀이 막. (웃음)

아오자이(태국 전통 의상)는 불편하지 않았나? 밀착감이 상당하던데.
하반신은 편하다. 통 큰 바지라서, 그런데 상반신이 너무 타이트해서 좀 불편하지. 특히 밥 먹을 때! (웃음)

하지만 옷맵시에 자신감이 없으면 소화하기 힘든 옷이다. 모델 출신의 자신감도 누렸을 법한데? (웃음)
아오자이 입은 사진 나간 뒤, 만나는 사람마다 거의 다 똑 같은 말들을 하더라. 너무 잘 어울린다고. 심지어 최근에 본 내 사진 중에 제일 예쁘다나? (웃음) 그게 잘 어울렸나 보다. 어쩌면 다들 예의상 그랬을 거 같아. (웃음)

이국적인 외모도 한 몫 한 것 같다.
아주 어렸을 땐, 다들 어머니한테 진짜 혼혈 아니냐고 묻곤 했다. 심지어 어릴 때는 눈이 좀 파란 편이라 다들 정말 혼혈인 줄 알았다더라. 나는 어렸을 때부터 주목을 받은 거지! (웃음)

이런, 설마 공주? 물론 난 인내심이 강해서 괜찮다. (웃음) 베트남은 어땠나?
음..처음 가봤는데 좋았다. 베트남이란 나라가 다시 보였지. 아름답고, 사람들이 너무 귀엽다. 참 좋은 나라다.

처음 <여고괴담>을 찍었을 당시와 달리 <므이>를 찍고 난 후의 차이가 있나?
되게 부담된다. 요즘 ‘넌 왜 공포만 해?’ 이런 소리 너무 많이 들어서. 솔직히 그건 아닌데. 그래서 부담된다.

이미지 때문에?
여러 가지로. 어쨌든 이제 내 작품이니까 잘 됐으면 좋겠다. 그만큼 관심 가져줬으면 좋겠고. 다만 앞으로 내가 연기를 하는데 있어서 그런 이미지에 틀이 박혀있지 않을까라는 경계심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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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특별히 하고 싶은 장르라도 있나?
멜로? 막 이래. (웃음)

솔직히 여배우 입장에선 호러퀸보단 멜로퀸이 더 듣기 좋겠지.
나도 여자인데 가냘프고, 여려 보이고 싶지. 공포, 호러, 막 이러면 무섭지. (웃음)

그런데 드라마 출연 경험이 없다.
그게 진짜 신기한가 봐! 요즘 인터뷰할 때마다 물어보더라. 왜 드라마 안 하냐고? 신기해요? 그게?

과연 드라마에 출연할 기회가 없었을까란 의문이 드는 거지.
드라마 제안을 받을 때마다 제안하는 쪽에서도 똑같이 묻는다. ‘왜 드라마 안 해요?’ 라고, 그럼 난 이렇게 이야기한다. ‘마음에 드는 좋은 작품이 없었어요.’ 같이 작품하자는 감독님들도 처음 만나면 첫 번째로 물어보는 게 그거다. 거의 열이면 열 분이 전부 그 질문하는 거 같다.

영화에 대한 애착이 큰 탓인가를 알고 싶을 수도 있다.
솔직히 내가 드라마로 처음 시작한 것이 아니라 영화로 처음 시작했으니까, 장르가 틀리기 때문인 탓도 있다. 선뜻 영화를 시작해서 시나리오도 계속 들어오고, 그래서 계속 영화를 했던 거다. 물론 딱히 드라마에 대한 욕심이 크게 없었다. 영화란 장르가 너무 좋았고, 작업 때도 너무 즐겁게 일해서 그런 거 같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영화가 너무 좋았다. 사실 <여고괴담>이나 <구타유발자들> 다 흥행되지 않았는데 시나리오는 내게 계속 들어왔다. 그래서 영화가 흥행이 안 됐지만 난 남았구나란 생각을 했지. 영화가 흥행이 안돼도 날 보는 사람은 있단 생각을 하니까 열심히 해야겠다 싶기도 하고. 뭔가 꾸준하게 하는 것도 좋고.

그럼 앞으로 특별히 드라마에 대한 계획은 없는 건가?
사실 보고 있는 것도 조금 있다. 앞에서 말한 이미지적인 문제도 있어서 지금이 변신을 해야 될 중요한 시기란 판단도 들어서 고민 중이다. 드라마로 스타트를 하느냐, 영화를 꾸준히 계속 하느냐.

좀 더 인지도를 넓히고 싶단 욕심은 있다면 드라마도 할만하다. 그런 욕심 없나?
당연히 있지. 그래서 영화가 흥행됐으면 좋겠고, 그로 인해 영화가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고. 사람들이 나란 배우한테 관심 가져주면 좋지. 그건 당연히 내가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지닐만한 욕심이죠. 내 일이 아무도 모르게 일할 것도 아니니까. (웃음) 하지만 만약 내가 인지도를 쌓고 싶거나 누군가에게 얼굴이 알려지고 싶어서 연기를 시작했다면 이 일 안 했을 거다. 굳이 피곤하게 살 필요 없다고 생각하니까. 다만 그게 어떤 게 먼저냐에 따라 다른 거 같다. 만약 인지도를 먼저 쌓고자 했다면 드라마도 하고, 쇼 프로그램도 자주 나갔겠지. 물론 딱히 그런 걸 기피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생각하는 길이 조금 다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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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뭔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캐스팅 제안을 계속 받았다. 그러다 고3말 스무 살 무렵, ‘보그’란 잡지 화보를 찍었다. 지금은 한 페이지 찍는 것도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그 땐 12페이지를 찍었다. 그게 전환점이 된 거지. 그 때 주목 받으면서 계속 잡지모델을 했고, 그러다가 CF를 찍었고.

잡지 모델부터 시작한 배우가 많지만 대부분 하이틴 대상의 중철지 출신이다. 그런데 고3때 ‘보그’라니 지금처럼 꽤 성숙한 외모였나 보다.
성숙 하다기 보단 이미지인 거 같아요. 반대로 난 중철지에 어울리지 않는 모델인 거지. 모델도 각자 할 수 있는 파트가 다른 거지. 느낌이 다르니까.

우연히 모델이 된 것이 배우의 계기가 된 만큼 배우가 된 것도 우연이다. 그렇다면 이 바닥에서 제대로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언제일까?
<여고괴담>제의 들어오면서?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연기라는 걸 하나?’ 그러면서 그냥 멋모르고 시작했던 그때부터, 열심히 하면서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무모했을 수도 있는데, 그런 과정이 어떻게 보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 계기였을 것도 같다.
오디션 통과하면서 나한테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어요. 4500:1이라는 경쟁률에 13명을 뽑아서 3명을 뽑는 거였으니, 사실 지금 활동하는 분들 중에 그 13명에 낀 사람이 많다.

<구타유발자들>때 경력이 많은 배우들한테 많은 걸 배웠을 것 같다. 짧은 시간 동안 극단의 상황 변화를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했고.
난 두 번째 작품밖에 안 됐고 연기를 잘 모르고 한 거니까. ‘내가 저 선배들 앞에서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이럴 정도로 떨리는 마음에 촬영에 임했다. 선배님들한테 너무 많이 배우고, 많은 걸 얻은 거 같다. 솔직히 난 정말 미흡했고 연기도 못했는데 그런 모습이 드러나지 않게 선배님들께서 다 메워주셨다. 나의 부족함이 안보이게끔 옆에서 도와주시고, 뒷받침을 해주신 거지.

그런데 남자배우 복은 아직 별로 없다. 항상 여자들뿐이야. 물론 <구타유발자들>은 죄다 남자지만, 좀….이러면 <구타유발자들>에 함께 출연한 분들이 서운할까?
솔직히 별로 없어요! 그래서 그냥 포기했어요! (웃음)

아직 포기할 나이는 아닌 거 같은데. (웃음) 어쨌든 첫 영화 찍을 당시와 비교해서 지금은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다.
개봉한 건 두 작품이지만 영화 현장은 다섯 작품째니까 그래도 나름대로 옛날보다는 아는 게 늘었지. 그래서 <므이> 촬영 때도 조안 언니랑 우스갯소리 많이 했다. ‘에이그~, 지금은 이제 조금 안다고, 카메라 앵글보고~, 그래도 이제 뭐 안다고~.’ 막 이러면서.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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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느끼는 변화는 없을까?
얼굴? (웃음) 사실 별로 달라진 건 없다고 생각하는데, 요즘 종종 성숙해졌다는 이야기 많이 듣는다. 옛날보단. 이제 연기 시작한지 2년 조금 넘었으니까 정말 얼마 안 됐지. 그래도 그 동안 했던 활동을 보고 좋아 보인다고 격려해주는 사람들을 보면 개인적으로 고무되는 것 같아.

<므이>가 어떤 영화일지 궁금하다.
일단 아름답고 귀여운 베트남의 모습을 잘 반영했다. 색감도 예쁘다. 하지만 일단 심리적 공포물인 만큼 타지에 들어선 외부인인 (조)안이 언니의 시점과 함께 영화로 들어갈 수 있다면 굉장히 높은 공포심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도 없는 낯선 곳에 대한 공포. 한편으론 전설이나 저주를 풀어가며 생각도 하게 되고, 나름 반전도 있고. 일단 공포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거지. 사운드 때문이라도~. (웃음)

그런데 가끔 혼자서 집에서 보는 게 더 무섭던데?
공포 영화 소리 끄고 보면 하나도 안 무서워! 그니까 소리 끌 수 없는 극장 와서 봐!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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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

유선 인터뷰

interview 2008. 5. 30.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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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더워져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웃음) 의도했던 건 절대 아닌데.

원래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편인가?
사실 공포 영화를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관객들을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포물은 좋아하지 않지만, 정말 짜임새 있는 스토리가 끌어 가는 힘있는 스릴러물은 좋아한다. <검은집>은 그런 점에서 맘에 들었고.

개인적으로 유선 씨는 액션 배우라고 생각한다. (웃음) 몇몇 드라마를 통해 종종 보여준 모습을 사례로 들자면. 이번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단순 주먹다짐에서 살벌한 칼부림으로. (웃음) 몸을 뒹구는 격투씬을 비롯해 여러모로 힘들었을 것 같다.
사실 육체적인 면보단 정신적인 면에서 많이 힘들었다. 만약 내가 귀신이라면 차라리 쉬웠겠지만, 사람이란 존재 자체만으로 공포를 느끼게 하는 건 쉽지 않다. 내 캐릭터가 관객을 서늘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내가 그 몫을 할 수 있을 지부터 시작해서 머릿속으로 그런 고민들이 끊이질 않아 정신적 부담이 컸다. 사실 육체적으로 부딪치는 건 견디면 되니까, 그건 큰 고통은 아니었던 것 같다.

황정민 씨는 힘들어 보이더라. 코도 진짜 물린 걸로 알고 있다. 꽤 아파 보이기도 하고. (웃음)
괴성을 그냥~~, 끝나고서도 계~속~ 지르는데 어찌나 민망하던지. (웃음) 진짜 이빨 자국 제대로 남았더라. 아팠을 거야. (웃음)

설마 개인적인 감정을 그런 식으로?(웃음)
나름대로 조절한다고 한 건데. (웃음)

신이화라는 역을 처음 접했을 때, 어떻던가? 아무래도 만만해 보이는 역은 아니었을 텐데.
어쩌면 그 동안 나 스스로 강하고 흡입력 있는 걸 원했던 것 같다. 내가 지닌 격정적인 뭔가를 밖으로 분출하고 싶은 욕망들이 내면에 많이 있었다고 할까. 하지만 그런 캐릭터가 쉽게 찾아지는 건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여배우가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가 어느 정도 선에서 한정된 탓도 있고. 그런 측면에서 신이화는 너무나 단비 같았다. 내가 그 동안 갈구했던 캐릭터라서 너무나 반갑고 흥분되는 기회였지.

<검은집> 이전에 이미 2번의 공포 영화 경험이 있지만 어떤 주체가 되느냐에 따라 <검은집>은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 같다.
사실 이거 스포일러 감인데. (웃음) <검은집>이 장르적으로 관객에게 책임져야 될 몫, 즉 관객에게 긴장과 스릴을 주며 공포로 몰아넣어야 하는 몫의 상당부분을 내가 떠맡았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진행과정과 스토리가 갖는 힘도 있지만 내 연기가 그런 어필을 할 수 있어야만 장르 자체가 살 수 있다고 판단되더라. 역할에 대한 부담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컸던 것도 그래서였고. 작품에 내가 맡은 캐릭터를 얼마나 잘 녹여낼 수 있을까라는 건 늘 생각했던 문제지만 평소 이상의 부담이 지워진 듯한, 영화의 장르적 책임감을 내가 상당 부분 짊어져야 된다는 부담이 굉장히 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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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만나보니 연기를 통한 모습과는 확실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 동안 여자로서 선이 굵은 연기를 많이 했다. 여자배우로서 그런 이미지로 각인되는 게 부담스러울 때도 있을 것 같다.
그 동안 다소 선이 굵은 연기를 많이 보여줬으니 그에 비해 가늘고 섬세한, 좀 더 디테일한 작업들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편안하거나 일상적으로 풀어진 역할도 해보고 싶고. 근데 항상 난 임팩트가 강한 캐릭터에 많이 끌리더라. 예를 들면 <몬스터>의 샤를리즈 테론을 보고 몇 날, 며칠 동안 잠 못 이룰 정도로 설렌 적도 있다. 최근 <블랙북>의 여배우도 시작부터 끝까지 날 빠져들게 만드는, 흡입력 있는 캐릭터였다. 마치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닌 실제 인물의 모습 아닐까 싶을 만큼. 늘 일상적이지 않은 캐릭터에 많이 끌리는 것 같다. 내 취향 탓인가? (웃음)

<검은집>의 신이화도 그런 측면의 선택일 법한데, 하지만 개인적인 갈등이 없었을까? 강한 이미지의 캐릭터가 대중적으로 각인된다는 것이 때론 불편할 수도 있다.
주변에서 그런 우려를 많이 해주시지만 오히려 막상 난 전혀 고민이 안된다. 만약 나란 배우의 가능성을 어느 한 캐릭터의 이미지로 몰아서 한계를 짓는다면, 오히려 난 그들의 안목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배우로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얼만큼 갖고 있는지는 물론 나도 모른다. ‘저 배우는 너무 강한 역할만 해서 좀 그렇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어느 한 켠에 있겠지만, 어딘가엔 내가 표현한 것을 보고 되려 그 외의 다른 건 어떻게 소화할지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를 지닌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의 작업 기회가 왔을 때, 기존 이상의 이미지들을 내가 창조하고 만들어가면 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배우를 한 번 연기한 이미지로 한정 짓는다면, 배우가 작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두려움이 클까. 당연히 모두가 그렇진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런 자신감은 다양한 경험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다.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서의 경험과 드라마와 영화로의 경험들까지. 어떻게 생각하나?
난 어려운 숙제를 만날 때 의욕과 활기가 더욱 충전되는 스타일이다. 어려운 과제를 만났을 때, ‘이걸 풀 수 있을까, 어떻게 풀지?’ 란 생각을 하기도 전에 직접 풀어보고 싶은 거지! (웃음) 과연 이걸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어떤 식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란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전에 무조건 일단 달려들어서 풀어보고 싶은 욕망이 내 안에 있는 거 같다. <검은집>의 신이화 역은 누가 봐도, 어떻게 표현하면 된다는 그림이 명확하게 서는 인물이 아닌 어려운 캐릭터다. 자칫 잘못하면 영화 속에서 우스운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식칼 들고 다니는 모습을 잘못 표현하면 엽기적이고 우스운 꼴이 될 수도 있으니까. 모험일 수도 있지만 그걸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풀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좀 있었다.

싸이코패스(psychopath)란 소재가 낯설다는 점도 하나의 어려움이 아니었을까.
일단 그들의 존재에 대해 이해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기 위해 많은 자료들을 참고했다. 예를 들면 기존의 연쇄살인범들에 대한 인터뷰나 연구 논문 같은 것들. 그것들을 통해 그들의 유년 시절 가정환경과 성장과정 등을 알게 됐고, 그들의 욕망이 분출되는 계기나 과정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계속 생각하게 됐다. 그런 고민을 신이화에게 대입해서 어떤 성장과정 속에서 어떻게 자랐을까를 추측했다. 예를 들면 '다리를 전다'는 사실은 장애를 지닌 것이고, 그로 인해 어렸을 때부터 대인관계에 위축되고 소외감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 또 불우한 환경 속에서 사랑이란 걸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에게 필요한 걸 직접 구하지 않으면 자신이 취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강한 생존 본능이 생겼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인물에 대한 비하인드(behind)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연기를 하기 전에 예습부터 하느라 애 먹었겠다. (웃음)
하지만 그 시간이 내겐 소중했다.

물론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을 테니까, 나름대로의 설렘도 있었을 거다.
그렇지. 어떻게 보면 원작 속에 이미 존재했던 인물과 달리 <검은집>의 신이화는 한편으로 재창조된 인물이나 다름없다. 외형적인 느낌부터 시작해서 원작의 사치코로부터 내가 참고하거나 가져올 게 별로 없었을 정도로 다른 인물이라고 판단했다. 처음부터 괴기스러움을 풍기는 인물이 아닌, 자연스러운 일상 속에 묻혀 살아가던 사람의 정체기 드러나는 순간의 섬뜩함을 노린 영화니까. 나는 시나리오만을 토대로 더 깊숙이 들어가서 그 인물을 느끼려고 많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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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할 지 모르지만 혹시 주변에 그런 인물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없나? (웃음)
글쎄. 만난 적 없길 바라고, 앞으로도 만나고 싶지 않은데. (웃음) 처음 준비할 때는 자료를 보면서 정말 이렇게 무서운 사람들이 있을까 싶더라. 평범해 보이는 이들이 알고 보니 무서운 자들이었단 사례들을 자꾸 접하다 보니 사람에 대한 벽이 생길 정도였다. 그러다가 그들의 성장 과정이 남다르다는 것, 예를 들면 어린 시절 심각한 폭력을 경험했다거나 가정에서 사랑 자체를 경험해보지 못했단 사실을 발견했다. 받지 못했기 때문에 주는 방법도 알지 못하는 거지. 마치 신이화처럼. 그리고 아까 말했던 것처럼 강한 생존본능에 의해서 우리가 아닌 자신만을 생각하게 되고, 일단 내가 살아가기에 급급한 상황에 집착하게 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태어날 때부터 전두엽에 문제가 있다는 부분의 사실을 떠나서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렇다면 그들을 암적인 존재나 다른 인격체로 치부하며 무조건 선을 긋고 격리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렇게 급변하는 시대와 각자 살아가기 힘든 사회에서 오히려 누구나 이기적인 모습을 할 때가 많지 않나. 내가 잘 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밟고 일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어떻게 보면 그것도 죄의식을 못 느낀다는 측면에서 싸이코패스적 성향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이건 우리 모두에 대한 고민이지 불과, 그들이 우리와 다르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같이 연기했던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특히 강신일 씨와는 예전에 연극 <날 보러 와요>로 친분이 있던 사이기도 했고.
사실 그분의 경력과 신뢰받는 위치가 내겐 부담스러운 부분일 수도 있는데 연극할 때부터 정말 너무 편안했다. 때론 후배로서 연기할 때, 자칫 선배 눈치가 보일 때가 있다. ‘나 잘하고 있는 거야?’ 싶은. (웃음) 그렇게 위축되거나 눈치 보일 수 있는데, 강신일 선배님은 사람 자체가 너무 포근하고 인자하시다. 한 6년 전쯤, 연극에 발 내디딘 지 얼마 안되던 신인 시절에도 선배님과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사람이 주는 느낌 자체가 편안했던 덕분이었다.

개인적인 인상으론 덩치가 크진 않은데 후덕한 느낌을 주는 배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분의 손까지 잘랐으니. (웃음)
이런! (웃음) 종종 선배니까 후배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답답함을 느껴서 직접적으로 지적할 수도 있는데 강신일 선배님은 끝까지 그냥 지켜보신다. 그러다가 내가 도움을 얻고자 할 때나 정말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땐, 굉장히 조용하고 진지하게 한두 마디 던져주신다. 하지만 방법적인 부분에 대한 충고가 아니라 연기에 접근하는 방법에 대한, 즉 표현에 대한 방법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내가 방법을 발견하고 찾을 수 있게끔 조언을 해주신다. 좀 더 멀찍하게 방향을 잡아주는 거다. 그게 나한텐 지혜롭게 다가오는 충고가 된다.

황정민 씨는 어땠나? 극 중에선 칼부림하는 사이였는데. (웃음)
정민 오빠는 굉장히 창의력이 있는 배우다. 내가 내 틀 안에 갇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자꾸 넘나들어야 되겠다는, 내 틀 안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그 이상의 뭔가를 자꾸 연구하고 끄집어내려고 해야겠단 생각을 갖게 만든 사람이다. 그만큼 자기 연기와 캐릭터를 놓고 고민할 때 항상 남들이 선택하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고 뭔가 새로운 것이 없을지를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이 선택해서 갈법한 연기 스타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좀 더 다른 선택을 많이 해보려고 노력하더라. 그래서 기존 영화 속 캐릭터들이 살아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황정민스러운 선택과 노력들이 캐릭터를 조금 남다르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것들을 많이 배웠지.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는 주로 누가 맡았나? 의외로 강신일 씨가 많이 했을 것 같은데.
그렇진 않아! (웃음) 강신일 선배님은 촬영장에서 말씀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종종 애써서 유머를 하다가 반응이 썰렁하면 혼자 자책한다. (웃음) “또 재미없는 거지. 아, 또 내가 괜한 말 한 거지.” 이런 식으로. 오히려 그 때문에 더 웃음짓게 된다. 그런 선배님의 존재 자체가 사람들한테 편안함을 준다. 어렵거나 부담스러운 느낌이 드는 선배가 아닌 그냥 편안한, 존재 자체가 훈훈해서 너무 좋은. 반면, 정민 오빠가 주로 코믹한 상황이나 웃음을 많이 유발시켰다. 많은 분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오빠만의 유쾌함이 있다. 늘 진지하기만 한 사람이 아닌, 굉장히 유쾌한 사람이다. 덕분에 현장에서 많이 웃을 수 있었던 이유를 많이 제공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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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습하고 어두운 세트 촬영이 많았다. 특히 지하실 같은. 그런 공간에서의 촬영으로 다소 지치진 않았나?
세트가 일단 지하로 설정돼서 천장도 거의 다 덮어버렸고, 결국 공간 자체가 많이 폐쇄적이라 답답했다. 일단 계단을 내려가서 지하실 들어갈 때까지 시간이 되게 오래 걸렸다. 그래서 계단 내려가는 것까지 하면 내 기억에 한 이 주 정도의 시간을 거기서 머무른 셈이다. 정말 정민 오빠 말처럼 빨리 탈출하고 싶을 정도로 답답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게다가 난 내 집이었으니까 내 집처럼 누비는 자연스러운 설정을 위해 맨발로 다녀야 했다. 그런데 지하가 과거 목욕탕이라 바닥에 깨진 타일도 있고 종종 치우지 못한 유리조각 같은 게 많았다. 테이핑을 발바닥에 해주긴 했는데 그게 자꾸 떨어져서 나중엔 그냥 맨발로 누볐다. 아무래도 공간 때문에 겪게 되는 어려움이 많았다.

단순하게 나이만을 따진다면 데뷔시기가 다소 늦은 편이다. 물론 나이가 크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데뷔가 늦어서 필모그래피가 많이 쌓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 지금 시점에서 내 경력이 나만의 진지한 선택과 의미 있는 작업들로 좀 더 쌓여있다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 하지만 일찍 데뷔했다 해도 지금 나이에 만난 작품들처럼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좋은 롤(role)을, 과연 그때도 만날 수 있었을까란 생각도 든다. 어떻게 보면 30대 이후가 연기를 하는 배우로서 안에 있는 것들을 끌어낼 수 있는 깊이가 마련되는 때가 아닐까 싶다. 무게가 좀 더 실리는 듯한. 그래서 내가 일찍 데뷔하지 못해서 놓친 작품들보다 지금부터 앞으로 만날 작품들이 더 설레고 기대되는 것 같다.

그래도 지금까지 실속은 차린 것 같다. 항상 주연급의 비중은 아니었는데도 나름대로 캐릭터들이 기억에 남는다. 아무래도 그건 선이 굵은 역할을 많이 맡았기 때문이 아닐까.
전면 주연이란 타이틀도 장단점이 있을 거다. 드라마든 영화든 타이틀 롤이 되는 배우는 필두에 서서 처음부터 끝까지 전반적인 작품을 끌어가야 한다. 그만큼 그 배우가 뭔가 전폭적으로 보여줘야 되는 책임과 부담감을 짊어지는 셈이지. 결국 잘 되면 그 배우 덕분이지만, 안 되도 그 배우 탓일 수 있다. 누릴 수 있는 혜택만큼 짊어져야 되는 부담도 많을 거다. 그렇다면 말씀하신 것처럼 난 실속 있는 거지. (웃음) 롤의 비중과 무관하게 난 작품에서 충분히 내 역량만 발휘하고 나올 수 있었으니까. 그런 롤이 그런 면에선 더 매력적일 수 있다. 하지만 물론 나도 전면에 나서고 싶은 욕심이 날 때도 있다. 그게 없으면 솔직히 사람이 아니지. (웃음) <검은집>도 정민 오빠 얼굴이 포스터를 다 차지하고 있잖아! (웃음) 물론 영화상으로 확인할 수 밖에 없는 역할의 한계가 있어서 뒤에 숨겨져 있어야 되는 탓도 있지만. 사실 <황진이>의 송혜교 씨가 부럽기도 하다. 그녀가 지금쯤 갖고 있을 법한 심리적 부담도 굉장히 크겠지만 배우가 원 톱으로, 영화에 대한 관심과 부각을 혼자 다 받고 누렸으니까. 물론 그 배우가 전적으로 모든 책임을 질 필요는 없지만 영화의 핵이었던 만큼 책임감과 부담은 여전히 계속되겠지. 얻는 게 있으면 잃어버리는 게 있는 거니까. 일단은 내 역할 안에서 편하게 생각하려고 한다.

사실 지금까지 본인이 출연한 영화가 흥행한 적은 없다. <4인용 식탁>이나 <가발>이나, 그런 면에서 <검은집>의 흥행을 내심 기대될 법하다. 공포영화치곤 상당히 많은 개봉관을 잡았다는 소식도 들었는데.
매번 열정적으로 한 일에 대해서만큼은 항상 스스로 많은 기대감이 든다. 사실 <가발>같은 경우도 많이 고생했다. 내가 말 못하는 설정이라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굉장히 고민했고, 감독님과 많이 상의하면서 나름대로 정성껏 찍었다. 하지만 관객들한테 외면당한 결과로 인해 당시엔 상실감이 컸다. 영화가 안된 이유가 왠지 내가 강하게 어필을 못한 부분 탓이란 생각도 들었다. 사실 <가발>의 ‘지현’은 엔딩의 감정을 책임지는 인물이라 마지막의 표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에 대해 시종일관 많은 고민을 했지만 그게 관객에게 다가가지 못한 것 같아서 스스로 죄책감이 들었고 그로 인해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가발>은 내가 열정적으로 깊이 몰입한다고 해서 관객도 같이 그 안으로 빠져들어 주는 간 아니라는 어려운 과제를 만나게 된 계기였다. 이번 <검은집>도 힘들게 고민하며 정성껏 찍었기 때문에 역시 기대감이 생기고, 애착이 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보다 몇 배 많은 기대감과 관객에게 좀 더 인정받고, 평가 받고 싶은 욕심들이 자꾸 생겨나게 되는 작품인 것 같다. 그래서 그걸 좀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기 위해 노력하는데 쉽지 않다. (웃음) 결국 내게 그런 기대와 바람이 생기는 건 그만큼 내가 그 안에서 열심히 노력했고 고민을 많이 했다는 거라 생각한다. 결과와 상관없이 내겐 굉장히 의미 있는 작품으로 기억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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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역할을 해본 것도 이 영화가 처음이다.
맞다. 아이가 있었던 것도 처음이고.

그래서인지 처음인데 이런 식으로 하면 섭섭하지 않을까 싶더라.
너무 언발란스해서? (웃음) 근데 너무 다행스러운 건, 영화를 보신 분들은 보기 전엔 캐스팅에 갭이 큰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가 막상 영화를 보고 나서 그게 부조화스럽다는 거북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으셨다고 하더라.

나도 전혀 거북하지 않았다. (웃음)
만약 두 사람이 부부로서 생활하는 모습이 영화 속에서 장면으로 보여졌다면 관객에게 어색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검은집>은 부부가 맞물린 일반적인 생활보단 각자 다른 공간에서의 이미지들을 중심으로 표현해서 두 사람은 다른 개체로서 보여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게 전혀 문제되지 않는 이유인 것 같다.

지금까지의 필모그래피를 보니까 로맨스의 혜택을 누려본 적은 없어 보인다. 여자배우로서 찐한 사랑연기도 한번쯤은 해보고 싶을 텐데.
정말 징글징글할 만큼 처절한 사랑 얘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 아니면 그냥 가볍게 드라마에서 많이 봄직한 삼각 관계, 사랑의 줄다리기 뭐 이런 거라도? (웃음) 농담이고, 징글징글하게 처절하고 지독한 사랑 이야기 한번 해보고 싶다.

하긴 이제 눈에 힘 그만 줄 때도 됐다.
맞아! 이제 눈에 힘 빼야 돼! (웃음)

그래서인지 독신녀나 프리랜서 같은 이미지가 어울려보인다. 실제로 그런 역할도 많이 했고. 그런데 배우가 아니라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 것 같나?
난 어렸을 때부터 배우가 되겠다며 한 우물만 판 케이스라, 다른 데로 눈 돌려본 적 없다. 내 친구가 한번은 나한테 “너 이거 안 하면 뭐 할래?" 라고 이야기할 정도다. (웃음) 사실 다른 재주가 없다. 그렇다고 내가 재미있어하는 것도 없고, 자랑은 아니지만 심지어 특별한 취미도 없다. 연기 외에 크게 즐거운 건 없는 것 같다. 물론 내가 연기를 특출 나게 잘 하는 건 아니지만, (웃음) 연기 말곤 재미있는 게 없다. 운동이나 레포츠를 즐기는 것도 아니고, 활발하게 사람들 만나러 다니는 외향적인 성격도 아니다. 일없을 때는 주로 집에 있거나 작품을 끝낸 뒤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게 전부다. 그래서 다른 직업이나 내가 잘 할 법한 뭔가를 생각해보면 문득 떠오르는 건 없다. 그래도 내가 MC를 몇 번 했었잖나. 중고등학교 때 방송반 이었다. 그냥 서클 활동에 불과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 때 했던 훈련들이 결국 내가 MC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만약 다른 분야를 한다면 그 정도? MC나 아나운서? 그 이외의 것은 생각하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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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면 일단은 카메라밖에 대안이 없다. (웃음)
다들 “결국은 카메라 앞에 서는 거네!” 라고 이야기 하더라. (웃음)

그럼 그런 계기는 어디서 시작된 건가?
일단 남들 앞에 서는 것 자체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토요일마다 학예회 시간이 있었는데 그로 인해 내 자아를 깨닫게 됐다. (웃음) 내가 애들을 꾸려서 각자 역할을 정해주고 콩트를 만들거나, TV 프로그램을 패러디해서 발표하거나, 가수 모창을 한다거나 그런 걸 좋아했다. 무엇보다 내가 뭔가를 할 때 아이들이 웃고, 박수쳐 주고 환호하는 것들에 나름 희열을 많이 느꼈던 거 같다.

기획이나 연출자로써의 싹도 보이는데?
물론 역할을 분배하고 기획하는 건 필두에 나서기 위해서지! (웃음)

결국 주인공까지 다 해먹는 것이 목적? (웃음)
사실 기획이나 연출에 대한 꿈도 있다. 그런데 그건 배우로서 존재감 있는 위치에 선 뒤에 확장하고 싶은 꿈이다.

혹시 연기자가 됐단 사실을 후회해본 적은 없나?
음...앞에서 말한 것처럼 별다른 취미생활이나 연기 이외의 것을 통한 만족감이 없다 보니 연기를 못 하게 되면 실제는 너무 괴로운 거다. (웃음) 삶이 너무 단조롭고 무기력해지는 것처럼 내 존재감이 안 느껴지는 거지. 물론 올 해는 쉬더라도 조금 여유로울 수 있을 듯 하지만 신인 시절은 달랐다. 본의 아니게 갑자기 쉼이 길어진 적이 있었다. 자의가 아니라 특별한 기회나 프로포즈가 없어서였지. “배우가 되겠다는 내 선택만큼은 흔들림이 없고, 소신과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이렇게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과연 이게 내 길이 맞는 건가?” 쉬는 동안 그 고민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결과적으로 우린 누군가 인정해주지 않으면 기회조차 얻을 수 없으니까. 배우가 남들에겐 화려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인내의 시간이 많이 필요한 직업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프리랜서가 맞긴 맞다. (웃음)
그렇지. (웃음) 한번은 쉬는 동안, 할 일 없으니 운동하러 갔다가 옷 갈아입으려고 라커문을 열었는데, 갑자기 설움이 막 북받쳐서 눈물이 핑 돌더라. 결국 라커에 머리를 박고 숨죽여서 얼마를 울었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찡하다.

듣는 나도 찡하다. 이젠 그것도 추억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문소리 씨가 토크쇼에서 “난 항상 다음 작품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면서 작품을 선택했다.”고 했다. “이게 내 마지막일지도 몰라. 아무도 날 더 이상 안 찾아줄지도 몰라.”란 생각으로 항상 작품을 선택했다고. 대본을 수두룩하게 받아보는 몇몇 배우들을 빼면 모든 배우들에게 마찬가지로 그런 원초적인 불안함이 항상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직업 자체의 특성에서 비롯된 직업병일 수도 있겠지. 내가 직접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하지 않는 이상, 날 신뢰하고 믿어주는 누군가에게 선택 받는 기회를 얻어서 연기할 수밖에 없는, 수동적인 초조함과 불안함이랄까.

그런 점에서 <검은집> 캐스팅은 꽤나 반가운 기회라 볼 수 있다.
그래서 <검은집>은 더욱 열정적으로 노력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그 결과가 기대되고 잘 됐으면 하는 염원도 더 많이 갖게 되는 거지.

아까 말한 것처럼 작품을 마치고 나면 공허함이 밀려든다. 물론 캐릭터에 따라 다르지만 강한 캐릭터일수록 그로부터 빠져 나오는 게 어려울 것 같다. 신이화도 만만찮은 캐릭터였는데 어떤가?
만약 영화 속 상황 안에서 정서적으로 굉장히 힘든 상황을 겪었거나 심리적인 고민이 많은 캐릭터였다면, 끝낸 뒤 그런 감정과 정서가 여운으로 남아 한동안 계속 슬픔에 젖거나 우울하고 다운되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신이화 같은 경우는 사실 정서가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면에 뭔가를 많이 갖고 있던 인물들보단 오히려 빠져 나오기가 훨씬 수월했다. 다만 내가 이 인물을 짊어지고 관객에게 좀 더 다가갈 수 있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던 시간들이 이젠 없어져버린 셈이다. 촬영 종료와 더불어 내 역할이 없어진 그 상황으로 인해 ‘이젠 내가 할 게 없다’는 허탈함과 공허함이 컸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는 누군가? 연기가 인상적이라던가, 꼭 롤모델이나 이런 게 아니라도.
배우가 아무리 연기를 잘 해도 매번 작품마다 빛이 날 수는 없는 것 같다. 자기한테 맞는 옷이 있는 거니까. 어떤 작품에선 정말 기막힐 정도로 배우의 열정에 감탄하지만, 다른 작품을 보면 아까 그 배우의 색깔이 없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래서 어느 배우 한 사람보단 그 배우의 가장 빛났던 작품이 더 인상적으로 남는다. 그런데 요즘, 유독 멋있다고 느껴지는 배우가 ‘공리’다. 최근 <황후화>를 보면서 그녀만이 표현할 수 있는, 그녀이기 때문에 가능한 강한 카리스마가 영화를 장악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안으로 머금은 비장한 슬픔과 상처 같은 것들도 느껴진다. 무게감 있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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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강한 캐릭터에 끌리나 보다.
그런가 봐!! (웃음) 이야기하다 보니 또 그렇네!! (웃음)

그냥 개인적인 목표나 바람 같은 거 있을까? 굳이 배우로서가 아니라도.
개인적인 욕심은 토끼 같은 자식을 낳고, 화목하고 예쁜 가정을 꾸미는 거다. 그리고 엄마가 배우를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아이들이 자부심이 느끼고 엄마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자랄 수 있는, 엄마의 일을 인정하고 신뢰해주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도 그만큼 자랑스런 엄마가 되고자 노력하는 그런 모습들. 그런 것들을 예쁜 그림처럼 그려본다. 물론 내가 배우로서 풀어야 될 숙제들을 좀 더 풀어낸 다음, 가장 좋을 때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 보고 싶다.

지금까지 액션 연기도 종종 했다. 어떻게 보면 <검은집>도 나름 액션아닌가. (웃음) 전문적인 액션 연기에 도전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해보고 싶다! 더 나이 먹기 전에! (웃음) 사실 어렸을 때부터 액션영화에 대한 흥미나 호감이 남달랐다. <다이하드>나 <터미네이터>, <에일리언> 시리즈 같은 영화들에 열광하면서 자랐고, 성장기 때부터 여전사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웃음) 그걸 꿈꾸고 동시에 뭔가 실현해 보고 싶기도 했다. <킬 빌> 같은 캐릭터도 해보고 싶고.

그럼 해외로 나가야 할지도...
아니, 우리나라에서도 <킬 빌> 같은 거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웃음)

음..어쩌면 류승완 감독 정도면 가능할지도. 그런데 역시나 로망마저도 선이 굵은 거 같다. (웃음)
난 왜 이렇게 굵은 거야! (웃음)

드라마와 영화를 모두 경험했는데, 각각 쫑날 때 느낌은 어떻게 다른가?
사실 영화가 더 애틋하게 남는 거 같다. 드라마는 캐스팅 후, 첫 촬영까지의 시간이 많지 않아서 촬영 동안 그 캐릭터가 되어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영화는 사전에 이미 캐릭터에 대한 입력을 끝내고 철저히 준비한 후, 첫 촬영부터 이미 그 캐릭터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드라마보다 준비 과정이 밀도 있고, 촬영 과정 중의 순간적인 고민들이 세심하게 녹아 들어가기 때문에 끝난 후에 작품에 대한 애정이 더 심하다. 여운도, 애착도 더 길게 간다. 영화 작업이 그래서 배우들한테 의미가 있는 거 같다. 그래서 자꾸 영화를 하고 싶어하는 것도 같고.

사실 배우에게 유리한 건 영화보다 드라마일 것 같은데? 드라마는 자신의 연기가 부족했던 순간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많으니까. 하지만 영화는 돌이킬 수 없다. 어쩌면 그래서 영화에 더 몰입하는 까닭일지도 모르지만.
드라마는 빠듯한 스케줄 속에서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다. 모니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보니 내가 어떻게 하는지 체크할 수도 없다. 그래서 순간적인 몰입과 확신으로 연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내가 그 캐릭터와 이미 일체가 되어있다. 그런 후엔 이동하면서 대본을 훑어보고도 감정을 쭉 뽑아낼 수 있게 된다. 그런 게 드라마의 매력이다. 사실 영화는 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방법을 고민한다. 근데 드라마는 그럴 시간이 없다! (웃음) 어떨 땐 대본을 받고 빠른 시간 내에 외운 후 그냥 연기하게 되는데, 순간 내가 그 인물의 감정을 쭉 외운 대사만을 통해 표현하고 있을 때의 짜릿함이 있기도 하다. 드라마만이 지닌.

어떻게 보면 드라마는 매일같이 학교에 등하교 하는 기분일 것 같고, 영화는 단체로 합숙수련회 다녀오는 기분이 아닐까 싶다. (웃음)
멀리 수련회 다녀오는. (웃음)

이번에 드라마 <엔젤>에 출연한다고 들었다.
미국에 가서 한 달 정도 로케를 하고 왔다. 비운의 죽음을 맞는 캐릭터인데, 일단 서울에서 야외 촬영 하루 분량 정도가 남았다. 난 특별 출연 개념이라 방송 땐 초반 분량 3회 정도만 나오고 빠진다. 그런데 역할이 나름 의미 있는 역이다. 초반에 장진영 씨가 맡은 캐릭터가 로비스트가 되는 계기와 원인을 제공하는 인물이니까. 초반 도입에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캐릭터라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어서 참여했다. 특별히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려는 개인적인 욕심보단 좋은 취지의 작품에서 짧게나마 중요한 계기가 된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차인표 선배님도 <하얀 거탑>에서 짧게 출연했지만 굵은 인상을 남긴 것처럼. 짧지만 드라마에 중요한 인상을 남기는 역할이라 하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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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차기작에서 해보고 싶은 장르나 역할이 있다면?
사실 내가 안 해본 캐릭터가 너무 많아서 뭘 해도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한번쯤 해보고 싶은 캐릭터는, <블랙북>이나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에서의 여자 캐릭터도 너무 매력적이었던 거 같다. 사실 요즘 영화를 보면 여배우가 남자배우의 부속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많이 본듯한 캐릭터에 적당한 롤이 아니라 영화 전체에 힘이 될만한 선 굵은 캐릭터랄까? 영향력 있고 흡입력 있는, 물론 그게 선이 강하고 안 강하고를 떠나서. 또 말하다 보니까 그 쪽인가? (웃음) 어쨌든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다.

만약 공포영화 제의가 또 들어온다면?
공포영화 또 들어오면 화날 것 같은데! ‘이것 보세요!’ 막 이럴지도. (웃음)

하지만 시나리오가 좋다면 또 할 것 같은데.
그러겠지. 내 팔자가. (웃음) 이번엔 또 어떤 롤일까? (웃음)

다시 연극 무대에 서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물론 있다. 처음 연극을 할 당시가 연기 초년 시절이었다면 지금은 이런 저런 경험들을 한 다음이고, 인생을 조금 더 산 후니까. 지금 무대에 서면 느낌이 틀릴 것 같다. 어쩌면 마치 처음 서는 것처럼 설레고 떨릴 것 같기도 하고. 역시나 확실한 건 좋은 시기에 좋은 작품으로 서고 싶다. 일단 급한 욕망부터 좀 먼저 끄고, 영화 작품에 좀 더 몰두해보고 싶다.

취미가 없다고 했지만, 영화를 굉장히 많이 보는 것 같다. 그게 취미 아닐까?
전문 분야니까! 공부 차원에서 봐야지!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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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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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그리고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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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마이클 베이에게 <트랜스포머>는 황당한 이야기였다. 1년 반 전쯤이었을까. 그를 찾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내민 <트랜스포머>는 그에게 ‘바보같은 장난감’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의 끈질긴 권유는 그에게 묘한 기대감을 심었고, 영화를 만들면서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건 정말이지 대단한 프로젝트라고! “영화를 만들면서 난 <트랜스포머>의 팬이 됐다. 그 때 확신했다. 나처럼 원작만화의 팬이 아닌 이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매력이 충분하다고.” 하지만 로봇만큼이나 사람도 중요했다. 로봇들과 어울릴 수 있는 당찬 기질과 순수한 열정의 소유자가 필요했다.

마이클 베이와 메간 폭스의 만남이 운명일까라고 묻는다면 호주, 런던 등지에서 600여명의 여성을 상대로 9번에 걸친 치밀한 오디션을 언급해야겠다. 마이클 베이가 얼마나 많은 검증을 요구했는지, 그리고 <트랜스포머>에 탑승한 메간 폭스가 얼마나 많은 검증을 거쳐야 했는지에 관해서. 어쩌면 “일자리가 필요해서 많이 헤맸는데, 마이클 베이의 눈에 낙점을 얻었으니 할리우드에서 최고의 일자리를 얻은 것 같다.”는 당돌한 그녀가 마이클 베이를 위한 매력적인 잇걸(itgirl)이었음은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물론 마이클 베이는 시나리오조차 완성되지 않았던 <트랜스포머>를 그녀에게 신뢰하도록 만든 보증서였다. 물론 그녀 자신 스스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긴장의 연속이었다고 말한다. 다만 여섯 번째 오디션 중, 불현듯 ‘아, 내가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미약한 기대를 품었을 뿐.

역경 그리고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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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머>는 기대감만큼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도면 속의 로봇을 현실감 있는 캐릭터로 스크린에 구현하는 문제. 사실 마이클 베이는 단순히 로봇의 리얼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불어넣고 싶었다. 그건 애정에서 비롯된 산고(産苦)와도 같았다. “오토봇의 리더 옵티머스 프라임은 멋있는 이름만큼이나 진정한 슈퍼 히어로다. 범블비도 귀엽다. 디셉티콘의 프렌지는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캐릭터다.”

결국 그는 거대한 로봇들의 아버지가 됐다. 그런 애정은 우리 눈앞에 움직이는 강철 생명체의 심성을 믿게 만들었다. 사실 원작 만화의 딱딱한 박스 형태보다는 정교한 모델이 영화에 어울릴 것이란 판단했고, 원작과 다른 영화상 로봇의 도면은 '이건 <트랜스포머>가 아니다'는 기존 팬들의 반발을 불렀다. 하지만 기존 캐릭터들의 디자인에서 향상시킨 구상은 결국 영화의 질감을 완성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고, 영화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한 결정은 팬들의 마음을 돌려세웠다. 결국 애정이 충만한 의지는 로봇들을 단순한 영화의 도구가 아닌 살아 움직이는 주인공으로 탄생시켰다.

하지만 배우의 눈앞에 로봇은 보이지 않았다. 동료와 적의 구분을 막론하고 보이지 않는 로봇들을 상대로 연기를 해야 했던 메간 폭스는 지표가 없는 망망대해 위에 떠있는 듯했다. 특히, 천 여명의 스텝들에게 둘러싸여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상대하는 순간마다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 된 기분까지 들었다. 그를 위해 크기가 각각 다른 로봇을 대체하는 긴 쇠막대기와 마분지에 그려진 캐릭터의 얼굴이 그 끝에 걸려지기도 했지만 오히려 몰입에 방해가 될 지경이었다. 로봇에 따라 달라지는 건 쇠막대기의 높이일 뿐이었지만 그녀는 그때마다 로봇들과 만나 교감해야 했다. 그 와중에 마이클 베이는 좀 더 역동적인 연기를 요구했다. 연약한 여성의 이미지를 벗고 위기에 맞서는 전사의 자질을 갖추길. 보이지 않는 로봇을 머리 속으로 그리고, 쉴 새 없이 뛰고 구르는 동안, 그녀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단했다. 하지만 범블비에게 애정을 품을 정도로 그녀는 로봇들과 교감을 나누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했다. “매력적이다. 지금 봐도 알 수 있지 않나?”라는 마이클 베이의 말이 호들갑스럽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영화 그리고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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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와 흥행 감독이란 수식어는 마이클 베이를 사치스럽게 한다. 하지만 그는 효율적이다. “사실 난 촬영을 빨리 하는 편이다.”는 마이클 베이 본인의 말처럼 <트랜스포머>는 82일만에 촬영이 끝났다. 3억 달러의 예산을 넘긴 <스파이더맨3>와 <캐리비안의 해적3>의 절반 비용으로 <트랜스포머>가 완성됐다는 사실은 영화를 본 이들에게 또 다른 놀라움이다.

위에 언급한 두 작품들보다 적은 5백 여 개의 비쥬얼 이펙트(visual effect)로 채운 <트랜스포머>의 질감은 생생함 그 자체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3억달러의) 예산이 사용됐는지 모르겠다.”는 그의 말은 단순한 빈정거림이 아니다. 특히나 효율적으로 영화를 작업한다고 알려진 스티븐 스필버그와의 만남은 그런 작업을 더욱 수월하게 하는 방편이 됐다. 결국 <트랜스포머>의 화려한 특수효과를 위해 사용된 예산은 4천 2백만 달러에 불과했다.

86년 생, 메간 폭스는 어린 시절 소문난 말괄량이였다. 나무를 타기도 하고, 벌레를 집안에 들여놓기도 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개구장이도 사춘기를 건넜고, 학창시절 그녀는 조용했다. 그래서 그녀는 외톨이였다. 그래서일까. 잘 나가는 친구들과 함께 하지만 외톨이 같은 샘(샤이아 라포프)에게 끌리는 미카엘라는 그녀에게 매력적이었다. “실제로 로봇이 눈 앞에 나타난다면 정신 놓고 울기만 했을 것 같다.”는 그녀는 스스로 용감하지 않은 사람이라 말한다. 그녀를 끌어당긴 건 분명 미카엘라에게 잠재된 ‘따뜻한 인간미’였다. 하지만 그것은 수백 명 사이에서 마이클 베이의 시선을 끌어들인 진정한 용기였을지도 모른다.

현재 그리고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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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커다란 아이디어를 고민해서 영화를 만든다.”는 마이클 베이에게도 <트랜스포머>는 큰 산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트랜스포머>가 자신의 영화 중 가장 획기적인 프로젝트임을 자부한다. 물론 <트랜스포머>가 가능했던 건 마이클 베이의 탁월함 덕분이다. 아직 개봉 전인 <트랜스포머>의 후속작 여부가 궁금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벌써부터 제작사가 후속작에 대한 시나리오 작업을 의논해온다는 마이클 베이의 귀뜸은 “후속작이 만들어진다면 디셉티콘이 한국에 착륙하는 장면을 넣겠다.”는 농담마저 은연중에 기대하게 한다. 어쩌면 그의 다음 행보는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일지도 모른다. 할리우드판 <괴물>의 메가폰을 잡게 될지도 모르는 것. 바쁜 <트랜스포머>의 일정 탓에 아직 플레이시키지 못한 테잎이 결정을 유보시키고 있지만 “굉장히 멋진 영화란 말을 많이 들었다."는 말은 묘한 기대감을 부른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트랜스포머>를 보여주게 된 건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던 멋진 일이다.”라는 그가 한국과 또다른 인연을 이어갈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트랜스포머> 이후, 메간 폭스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물론 모든 것이 과거가 된 지금, 촬영 동안의 기억이 꽤나 즐거운 추억이 됐음을 실감한다는 건 그녀만의 수확이다. 물론 세계적인 관심을 부르는 <트랜스포머>의 후광이 그녀에게 위력적인 계기를 선사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관심은 영화를 통해 현실화될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지금은 내 자신의 실력을 쌓아가는 단계라고 생각한다.”는 겸손함은 그녀가 할리우드에서 반짝이고 말 초신성(supernova)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벗어나게 한다. 물론 그녀가 일단 해야할 일은 생애 첫 주연 여배우가 누릴 수 있는 기대와 긴장의 간격 안에서 대기하는 것. 물론 현재 런던에서 커스틴 던스트와 함께 촬영 중이라는 <How to Lose Friends & Alienate People>을 통한 메간 폭스와의 두 번째 만남이 어떻게 다가올지를 기다리는 것도 좋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그녀 스스로가 가장 하고 싶다는 말, “난 메간 폭스입니다.”라는 첫 인사가 아닐까.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 이름을 기억해두는 것이다.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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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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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룡 인터뷰

interview 2008. 5. 3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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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의 원년 멤버다. 아직도 <난타>로 기억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너무 오래했다. <난타>를. 5년 동안 했으니까. 사실 난 영화 하려고 프로필 찍어본 적도 없고, 오디션을 본 적도 없다. 내가 <난타>이후로 접한, 대사가 있는 정극이 연극 <웰컴 투 동막골>이었다. 알다시피 장진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었고. 장진 감독은 한번 연을 맺으면 끌고 간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장진 감독의 다음 영화에 합류하다 보니까 또 자연스럽게 영화 쪽으로 합류하게 된 거 같다.

초창기 멤버라서 자부심이 강할 것도 같은데. 브로드웨이도 다녀왔고.
브로드웨이 뿐 아니라 외국을 너무 많이 다녔지. 누구도 안 부러울 만큼. 유럽 17개국은 그냥 기본이었고.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노르웨이, 두바이. 여기저기 막 다녔지. 너무 좋았다. 국가대표라는 마인드가 생길 정도로 자부심도 엄청 컸고. 난 등에 태극기까지 오바로크해서 달고 다닐 정도였으니까. 사실 지금은 로컬 쇼(local show)나 코리아 하우스처럼 관광객을 위한 쇼 형식이 돼버려서 약간 아쉽긴 한데, 어쨌든 외화를 벌어들이는 문화 상품이니까.

장진 감독과 1년 차 선후배 사이라던데. 대학 시절부터 친분이 돈독한 사이였나 보다.
그렇지. 졸업작품도 같이 했는데. 내가 주인공을 맡은 <길>이라는 작품이 있다. 전위극 <까>를 만든 강만홍 교수 작품. 그 때 우리 반 멤버가 황정민, 정재영, 장진 감독, 임원희. 와~! 진짜 빵빵 하지 않아? (웃음) 다 우리 반이었어. 내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최고네. (웃음)

전에 장진 감독이 <거룩한 계보> 시절 인터뷰 때 류승용 씨가 대학 시절 연기가 좋았다고 칭찬했던 게 기억난다. 그런데 의외로 졸업 후 선택한 건 <난타>였다. 대사 한마디 없는.
배우마다 시작하는 지점과 정점, 그리고 하향 곡선 같은 게 각각 있잖아. 난 그시기가 내 동기들이나 다른 배우들에 비해 조금 다르거나 늦었을 뿐이지. 나이를 먹거나 안주하게 되면 할 수 없는 작업이 있다. 그게 <난타>같은 거지. 사실 영화는 배우의 길을 걷고자 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물론 지금 이렇게 된 게 당연한 결과라거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게 아니라, 차근차근 하다 보면 언젠간 할 수 있겠단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난타>같은 건 나이가 들면 절대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 직접적인 계기는 뉴욕의 라마마 극장에 <두타>가 초대받아서 공연하러 갔다가 거기서 <스톰프(stomp)>와 <튜브(tubes)>같은 넌버벌 퍼포먼스(non verbal performance) 공연을 봤다. 막 두들기는. 그리고 왜 우리나라엔 저런 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귀국했는데 송승환 대표님이 <난타> 오디션을 보더라. 그래서 옳다구나 하고 오디션 본거지.

뉴욕에 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던 것도 아닐 테고.
여비를 우리가 대서 고생했지. 밥도 다 사먹고, 비행기표도 우리가 사서 갔으니까. 그래도 그냥 뉴욕이란 곳에 가보고 싶었다. 그것도 연극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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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그게 지금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필모그래피 적으로도 특별해 보이고.
사실 필모그래피 적으론 전혀 도움이 안 되지. 왜냐면 영화감독이나 영화 관계자들은 대사와 연기를 원하기 때문에. 물론 지금에 와선 도움되는 프로필이 됐지만, 아무 경력이 없는 배우에겐 되려 도움이 안 된다. 만약 <난타> 배우 출신이 영화오디션을 보러 와서, “저 <난타> 했습니다.” 그러면 도움이 안 되지~! 대사를 한마디도 안 했는데~! (웃음) 그런 면에 있어서 내가 <난타>를 좋게 홍보할 수 있는 사례가 된다면 좋겠다. 그런 배우들도 얼마든지 잠재력이 있다는 걸. <점프>나 <난타>에 출연하는 배우들처럼, 배고프지만 열정을 가진 친구들을 돌아볼 수 있는 어떤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나로 인해서.

재미있는 이야길 들었다. 장진 감독과 10년 동안 별다른 연락을 안 하다가 연기를 하고 싶어서 찾아갔었다고.
사실 난 그때 대안이 장진 감독밖에 없었다. 내가 장진 감독한테 간 그때가 서른 둘 정도였으니까. 내가 다른 극단에 가기에는 나이가 굉장히 애매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극단은 동인제 시스템이라 오디션 봐서 들어가기도 어려웠고. 그래서 그때 학연이란 것에 처음으로 도움을 받았지. 장진 감독을 통해. 그리고 그 전엔 장진 감독도 바빴고, 나도 바빴고. 사실 그땐 내가 술을 많이 마시던 때였다. (웃음) 장진 감독은 지금의 직함을 위해서 진짜 열심히 일하고 있었고. 나도 <난타>로 창작 욕구를 한참 풀어내고 있었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렇게 되기 위해서 각자의 길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던 거 같다. 언젠가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만날 인연이었는지도 모르지.

정재영 씨와도 대학 동기다. 거기서부터 이어진 인연이라 <거룩한 계보>에서의 어울림은 당연히 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고. 정준호 씨한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난 정준호보단 류승룡이 더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표면적으론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근데 지금 <황진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황진이>가 <거룩한 계보>처럼 마케팅하는 게 당연하다. 솔직히 그게 자본주의니까. 아무래도 스타들이 관객의 눈길을 끌기엔 적합하지. 물론 <거룩한 계보> 당시에 조금 서운한 감은 있었지. 사실 세 친군데~! (웃음) 근데 지금은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만약 장진감독이 날 밀어준답시고 ‘정재영, 정준호, 류승룡’ 이렇게 올렸는데, “어? 누구야?” 이러는 것 보단 나중에 영화를 보고 “어? 정재영하고 정준호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류승룡도 눈에 띠던데? 왜 이 배우는 포스터에 없지?” 이럴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런 말 듣는 게 더 통쾌하다! (웃음) <황진이>도 마케팅 팀에서 필요한 만큼만 나를 적당히 활용하는 것 같다. 솔직히 마케팅은 상업적이어야 할 자본주의적 메카 아닌가? 그래서 이번에도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마케팅이 날 활용하는 게. 그리고 이런 모습은 내가 어느 정도에 와 있는가를 알 수 있는 척도가 된다. 기자시사 때 무대인사를 하느냐, 그리고 기자 간담회에 참석하느냐 뭐 이런 것들 있잖아. 무대 인사만 하고 기자 간담회 때 빠지느냐 안 빠지느냐. 이게 굉장히 예민한 부분이 될 수도 있다.

<황진이> 때도 기자 간담회 후 포토 타임 때, 사진 기자들 요청으로 다시 올라왔던 기억이 난다.
마케팅 팀이 실수를 했다. 되게 당황했지. 내 차례를 빼먹다니. (웃음) 그런데 많이 겪어본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무덤덤했지. 오히려 그런 걸 겪어봐서 다행인 거 같다. 나중에 꼭 그런 후배들한테 배려하고 싶다는 마음을 지니고 있으니까.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왜 그, 뻘쭘한 거 있잖아! 뻘쭘한 거! (웃음) <천년학> 때는 어떤 기자가 “이번 작품을 임하면서 임권택 감독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조재현 씨, 오정해 씨, 오승은 씨 이야기해 주세요.” 이러더라. 물론 무비스트는 아니었고. (웃음) 그러니까 재현이 형이 마이크를 들더니 어디 기자냐고 묻고 “배우도 기본이 있어야 되듯 기자도 기본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넷이 앉아있을 때 똑같은 질문을 할 땐 나중에 (코멘트를) 자르는 한이 있어도 넷에게 질문을 하는 게 예의다.”라고 하더라. 후배에 대한 배려였지. 재현이 형도 연극 출신이니까.

내심 고마웠겠다.
꽤 고마웠지. <거룩한 계보> 때, 현장 공개를 처음 해봤다. 갑자기 장진 감독이 “야, 승룡이! 너도 해!” 그래서 얼떨결에 끌려갔지. (웃음) 근데 그때 얼굴 표정 다시 보면 되게 슬프다. 기자 간담회 때 파란 마이에 흰 와이셔츠 입었는데, 재영이가 옷 빌려줘서 입은 거다. 내가 이런데 서도 될지 싶을 만큼 너무 어색했다. 그런데 재영이가 갑자기 정준호씨와 자기 가운데에 날 껴 넣는 거다. 그러더니 양쪽에서 막 어깨동무하고. 사실 그때 난 삐뚤어져 있었던 것 같다. 열등감이란 게 사람을 추하게 한다. 사실 난 열등감이 없는 남자라고 자부했었는데 아니더라. 결국 <거룩한 계보> 관련 사진에 그게 남더라. 만약 정재영, 정준호, 나 이 순으로 섰으면 난 잘렸겠지. 사실 요즘에 <황진이> 때도 많이 느끼거든. (웃음) 재영이가 그걸 안거지. 그래서 날 못 자르게 하려고 가운데 넣고 어깨동무까지 한 거다. 나중에 재영이가 그 얘기를 하더라. 그런 자그마한 배려가 솔직히 고맙더라.

그렇겠다. 지금 그 때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겠다. <황진이>에서는 중심인물 중 한 명 아닌가.
그런데 앞으로 그런 후배들이 많이 올라오겠지. 무대 인사엔 오고 기자 간담회 때는 안 오는. 이번에 <황진이> 때도 (오)태경이나 (정)유미 같은 애들이 막 뻘쭘한 게 보이더라. 왜냐면 올라가야 되는지 안 올라가야 되는지 헷갈리니까. 내가 막 당황했던 거 있잖아. <박수칠 때 떠나라> 때도 아무도 말을 안 해주는 거야. 홍보 팀이던, 마케팅 팀이든. 알아서 빠지라는 식이지. 근데 무대인사는 하라 그러고. 이번에 태경이나 유미한테도 그런 모습이 느껴지더라고. 그래서 내가 도와줬지. 그러니까 무대 인사를 시키던 나중에 간담회에 빠지던 그 기준에 따라서 준비가 안 된 배우들한테는 사전에 적절한 코멘트나 배려가 있어야 할 것 같다. 당황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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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수가 많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유명세를 탈만한 작품이 많았다. 물론 본인 연기가 인상적이었지만 감독이나 동료 배우를 잘 만난 덕인 것 같기도 하고.
난 복이 많은 것 같다. 물론 내 뒤에서 하느님께서 도와주시는 덕분이지만. 일단 장진 감독처럼 유니크(unique)한 글을 쓰는 사람의 작품으로 첫발을 디딘 것부터가 복이었지. 그리고 <열혈남아>하면서 설경구 선배를 만났고. 그리고 임권택 감독님의 작품에 출연하게 됐고. <소나기는 그쳤나요>를 보고 캐스팅을 하셨단다. 어쨌든 감독님께서 총명하실 때 그분의 작품을 했다는 게 영광이지. 흥행의 성패를 떠나서. 가을에 겨울잠을 자려고 먹이를 많이 먹듯이, 에너지 충전을 굉장히 많이 한 것 같다. 앞으로 연기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에너지들을, 임권택 감독님을 통해서. 촬영장에서 해야 되거나 하지 말아야 될 행동들, 또한 임하는 자세들 그런 것들을 너무 많이 배웠지. 임권택 감독님한테. 그리고 거기서 조재현 선배를 만났고. 그리고 또 <황진이>의 장윤현 감독님은 정말 조용한 카리스마다. 배우의 감정선을, 특히 여배우의 감정선을 가장 잘 표현해 낼 수 있는 그런 감독인 것 같다. 그리고 또 송혜교 씨나 (유)지태란 친구를 만났고. 계속 그렇게 연결이 되는 것 같다.

배우나 감독에 상관없이 영화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돈독해지는 편인가 보다. 실제로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으로 아는데.
그건 내가 스타가 아니기 때문인가? (웃음) 영화는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잖아. 화가나 시인이나 음악가들과 달리 영화는 철저하게 같이 하는 작업이니까. 차승원 씨도 같이 하는 배우들하곤 일단 굉장히 친해지려고 노력을 많이 하거든. 왜냐면 연기할 때 불편하니까. 물론 촬영 후에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가 남는 건 아니지만 한번이라도 지방에 내려가서 동거동락하며 지낸 친구들은 다 담는 편이다.

처음 카메라 앞에 섰을 당시 느낌은 어땠나?
너무 편했다. 아마도 처음엔 <아는 여자>였기 때문에 너무 편했던 것 같고. 가벼운 씬이었으니까. 두 번째는 <소나기는 그쳤나요>의 농부 연기였는데 그것도 너무 편했다. 시골이잖아. 난 그런 게 편하거든. (웃음) 사실 난 개인적으로 <고마운 사람>이 너무 편했던 것 같아. 텐션(tension)이 없잖아. 나도 편한 호흡의 연기가 어울릴 수 있겠다고 느낀 게 <고마운 사람>이었지. 사실 긴장하기 시작한 건 <거룩한 계보> 때였지. 아무래도 앞의 영화보단 역할도 커지고 상업적인 성격이 강해지니까 내가 씬을 책임져야 된다는 걸 느꼈거든. 그리고 눈앞의 카메라가 관객과 소통하게 되는 지점이란 걸 깨달았거든. 저 렌즈가 10만 명의 눈이 될 수도 있지만 백만 명의 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까. 또 대형 스크린으로 보는 눈도 있지만 DVD를 통해서, 아니면 추석날 TV를 통할 수도 있잖아! (웃음) 렌즈를 눈으로 딱 느끼는 순간, ‘아, 이게 장난이 아니구나’ 싶더라. 그만큼 촬영 기간 동안 자기 관리도 중요하게 되고. 대사나 이런 것도 자연스럽거나 그렇지 못하게 그 날 현장 분위기 때문에 대사도 연기가 어색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게 평생 남을 장면이라 생각하면 두고두고 후회될 것 같더라.

단순한 질문일지 모르지만 연극의 무대와 스크린의 카메라의 차이를 느꼈다면?
일단 영화는 이야기의 흐름과 무관하게 상황에 따라서 뒤죽박죽으로 씬을 가져가니까 그런 부분이 힘든 것 같다. 마지막 장면을 제일 처음 찍기도 하고, 첫 장면을 제일 마지막에 찍기도 하고. 근데 그게 영화만의 마력인 거 같아. 마치 퍼즐처럼 맞춰가는 작업이니까. 그리고 각각의 분야를 지닌 수십 명의 사람들과의 작업을 통해 완성된다는 점도 연극과 달리 영화를 리얼리티에 가깝게 만드는 작업이지. 또 대형 스크린을 통해 결과를 보게 된다는 것도 재미있고. 인터넷 관객 수치 등으로 평가를 살필 수 있다는 것도 묘하고. 연극은 관객과 그때그때 다이렉트(direct)로 호흡하고 느끼니까 그날그날에 따라 틀리잖아. 그런 짜릿함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연극과 상대적으로 영화만의 매력을 느껴본 적은 없나? 영화는 이런 거구나 싶은.
정말 짜릿한 건, 영화가 배우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는 거지. 조명이나 기타 여러 가지 효과들이 배우를 돕는다. 사실 연극은 배우들과의 호흡, 연습량, 즉 배우들의 역량이 작품을 판가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영화는 감독의 현장 디렉션에 따라 상황이 변하기도 하고, 분장, 조명 같은 장치적 효과가 배우의 결점을 채워주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있으면 그걸 잘 모르지. 스크린의 결과를 보고 그분들한테 감사하는 거지. 그래서 갑자기 막 문자 보내게 되고. (웃음) 분장이나 빛을 통해 배우의 연기를 더욱 깊고 진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되고. 내 부족한 연기를 채워주는 사람들한테 감사할 수 밖에.

영화의 장치적인 효과를 많이 느꼈나 보다.
많이 느꼈지! 음악도 그렇고. 무엇보다 <황진이>를 통해 조명과 카메라를 알게 됐다. 이제야 비로소! 그 전엔 그냥 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지 그런데 <황진이>는 촬영하고 조명, 분장 이런 효과에 유난히 공을 많이 들이길래 유심히 지켜보곤 했다. 촬영 기간이 길기도 했지만. 감정을 따라잡는 조명, 그거 알아? 분위기에 따라서, 반전에 따라서. 배우의 눈빛을 살려주는. 놈이가 옥사에서 이야기하다가 눈가가 갑자기 은빛이 되는 순간, 소름이 쫙 끼치더라. 그건 조명의 힘이거든. 못 느꼈나?

음..솔직히..
그럼 안 되는데! (웃음) 황진이와 옥사에서 대화를 나누는 씬에서 눈가에 은빛이 쫙 돈다. 눈물이 올라오는 순간을 조명으로 딱 잡아준 거지. 그때 너무 소름 끼치더라.

앞으론 그런 부분에 대한 고려도 많아지겠다. .
먼저 영화 캐릭터 전체에 대한 고민이 많이 있어야 되겠지. 전체 영화에서 내가 해야 될 몫이 있으니까. 물론 혼자만 잘 하겠다고 발버둥치는 건 보기 싫고, 영화에 내 캐릭터를 잘 녹여낼 수 있게 감독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과 의견을 나눠야겠더라. 그리고 현장 당일 날은 정말 베스트를 해야지. 후회 없이. 한 컷,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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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열은 <황진이>에서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다. 비열하지만 가장 솔직한 인간적 욕망을 드러내는 캐릭터. 그리고 내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지만 동시에 사극이니까 그 시대에 걸맞은 외관을 위한 노력도 있었을 거다.
<스캔들>에서 배용준 씨 캐릭터를 만든 분장 팀 한필남 팀장님이 외피적인 모습 때문에 굉장히 많이 고민했지. 왜냐면 내가 너무 없어 보이니까. (웃음) 재력가이자 권력가이며 쿨한 바람둥이고, 샤프한 척도 해야 되고, 그런데 그러기엔 내가 너무 없어 보이는 거지. 굉장히 많이 고민했다. 외피적인 모습을 만들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 살도 많이 빼고. 사실 극 초반이 힘들었다. 희열이란 캐릭터가 지니고 있는 속내, 까놓고 말하면 바람둥이지. 난 술도 안 마시고, 룸싸롱 같은데 가서 여자 끼고 놀아본 적도 없다. 그래서 그런 모습이 너무 어색한 거야. (웃음) 그래서 그걸 이겨내려고 초반엔 노력했었고, 그 뒤로는 쉽게 풀렸던 거 같다. 희열 같은 인물은 지금 이 시대에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고. 결국 옛날부터 계속 있었던 거지. 그런 놈 죽으면, 그런 놈 하나 태어나고. 권력에 대한 야망과 여자에 대한 소유욕을 지녔지만 겉으론 드러내지 않는 이중적인, 이런 인물들은 항상 있었지. 평소엔 평강(平康)하지만 외부적인 자극이 닥치면 분노가 일어나고 막 질투도 일어나는 건, 인간 누구에게나 있거든. 나도 있고, 기자님에게도 있고. 난 그런 지점에서 접근했다. 주변 환경에 따라서 누구나 그럴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접근했지.

희열이 도덕적인 인물은 아니지만 인간적으론 이해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난 충분히 그럴 수 있단 생각이 든다. 그 정도의 권력을 지닌 희열이 황진이한테 쿨하게 잘해줬는데, 이 여자가 딴 남자를 사모하고 목 빠지게 기다리면 질투가 안 나겠나?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지만 남자는 살인한다. 여자들은 딱 끊고 말아버리지. 도마뱀처럼. 그런데 남자는 집요하단 말이야. 그런 면에서 희열은 굉장히 솔직한 인물인 거 같다. 단순한 선악 구도에선 악당이지만 탁 털어놓고 솔직하게 보면 제일 인간적이지. 상대적으로 놈이는 굉장히 유토피아적이고 비현실적인 인물이잖아. 지금 시대를 현재로 옮긴다면 희열은 현직 검사 정도, 되게 잘나가는! 근데 놈이는 자기 앞가림도 못하고 맨날 경찰서 들어갔다 나오고. 그런데 누굴 택하겠냐고, 요즘 여자애들이. 누굴 택하겠어요? (홍보사 이 모씨한테) (웃음)

(당황한) 홍보사 이모 양: 희..희열?
그래. 당연한 거야. 이 대답이! (웃음) 그런데 영화의 매력은 바로 그거지. 비현실적이지만 올바른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현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사랑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에 경종을 울려주는, 현실적이란 핑계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가치관들에 경종을 울리는 순수한 사랑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 그 말을 하는 것 같아.

희열 같은 경우는 가장 솔직한 질투가 드러난 인물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황진이>에서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사실 놈이가 비겁한 놈이지. 안 그래? 황진이 시집간다니까 꼰 지르고 모른 척 하고. 결국 황진이가 기생 된 건 놈이 탓이지. 결국 끝까지 지켜주지도 못하고, 현실도피적인 인물이지. 안 그래? (또 홍보사 직원한테) (웃음) 아, 근데 이러면 홍보 잘못하는 건가? (웃음)

가만히 보니까 남자 배우 복이 참 많다. 정재영 씨부터, 차승원, 설경구, 조재현, 유지태, 정준호 씨.
이범수 씨랑 뮤직비디오도 찍었다. (웃음) 그냥 뭐 고맙지. <열혈남아>에서 윤제문 씨도 같이 했었고.

윤제문 씨는 연극도 많이 하시니까 연대감도 있었겠다.
그렇지. 나랑 동갑인데. 카리스마도 있고. 좋아요. 사람.

가만히 보니까 동갑 배우가 많다. 차승원 씨도 동갑이고.
70년생 너무 많아. 진짜. 정재영, 황정민 같은 내 동기들부터 시작해서. 친하진 않지만 감우성, 이병헌, 김수로, 김혜수 등 진짜 되게 많네! 아, 강성진도 있네. (웃음)

서울 예대 시절의 인맥들에게 도움을 많이 얻고 있는 거 같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으로.
사실 공식적인 자리를 떠나 개인적으론 직접 연락하는 경우는 드물다. 서로 매체를 통해서 소식 듣고 그런 편이지. 어쨌든 든든하지. 얼마 전 어떤 잡지 같은 경우에 정민이가 <검은 집>으로 표지 모델을 했고, 중간에 내 인터뷰 기사도 세 면 정도 나오고, 재영이도 <신기전> 때문에 나왔다. 동기 셋이 한번에 딱 나온 거지. 그리고 각자들 다 봤겠지. 근데 서로 “야, 너 나왔더라.” 이렇진 않죠, 우리가. (웃음) 그리고 설마 걔네 들이 “아, 이게 이제 치고 올라오네.” 이러겠어? (웃음) “승룡이 고생하더니 이제 조금씩 주목 받는구나.” 하고 좋아하겠지. 설마 “아, 큰일났네.” 이러진 않을 거 아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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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간의 좋은 자극이 될 것 같다.
음..사실 그런 건 전혀 없고. (웃음) 농담이고, 그렇지. 서로 각자 좋은 자극이 되겠지.

혹시 본인을 자극하는 배우가 있나?
자극뿐만 아니라 담고 싶은, 또 닮고 싶지만 닮을 수 없을 것 같은 배우가 송강호 선배지. 뭐 다들 많이 이야기하겠지만, 연기에 있어서는 거의 멘토(mentor)라고 생각한다. (신)하균이나 재영이나 정민이도 공히 말하는 게 강호 형 연기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고. 왜냐면 너~무 자연스러우니까. 제작자나 작가, 감독이 생각하지 못한 걸 배우가 만들어내니까 소름이 끼치는 거지.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 중 가장 편하게 연기했다 싶은 역할이 있나?
<소나기는 그쳤나요>에서 농부. 그런 수더분한 아저씨 있잖아. 난 그게 너무너무 편하다. 그건 우리 동기들도 비슷할 거다. 우린 헝그리 족이었거든. (정)재영이나 (황)정민이나. 예대 시절에 두 부류가 있었어. 집에 돈 좀 있는 애들, 그래서 그때부터 일찌감치 차 타고 다니는. 근데 정민이나 나는 항상 야상, 등산화, 군복 바지나 입고 다니고. (웃음) <나의 결혼 원정기>나 <너는 내 운명>같은 순박한 연기들이 그런 데서 나오는 거지. 나도 그런 모습들이 그래서 좀 편하고. 물론 그것뿐만 아니라 <사생결단>이나 <피도 눈물도 없이>같은 마초적인 연기도 되잖아. 근데 전자보단 후자가 난이도가 조금 낮은, 쉬운 연기인 것 같다. 평탄한 호흡을 길게 가져가야 하는 연기가 굉장히 어렵지. 그래서 난 그런 연기에 도전하고 싶고.

현재 영화판에서 연기력을 인정받는 배우들을 보면 연극 무대 출신인 경우가 많다. 방금 말한 송강호 씨도 그렇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연극을 경험한다는 건 연기자에게 가장 좋은 경험이 아닐까 싶다.
일단 연극은 기본적으로 인간적이다. 먼저 그걸 깨닫게 하고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르친다. 무엇보다 굉장히 엄한 곳이지. 그렇기 때문에 작품에 임하는 자세도 틀리고. 연극은 한 대본을 보통 3개월씩 연습을 하잖아. 결국 시나리오를 통한 작품 분석, 인물 분석에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지. 호흡이나 발음, 발성 같은 것도 아예 안 배운 사람들 보단 낫겠지. 발음이나 발성 때문에 지적 받는 배우들 많잖아. 솔직히.

확실히 연극 출신 배우들은 발성이 좋은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독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땐 그걸 빼면 되지. 그러니까 <황진이>같은 경우엔 호통치는 연기가 많아서 발성을 이용할 때가 많았지만 <열한번째 엄마>같은 경우엔 발성을 전혀 안 썼거든. 하지만 분명 발성을 해야 될 때, 그 연습을 안 한 사람은 안 나는 거지. 그런 면에선 굉장히 유리한 거지. 그리고 질문 외적인 이야기지만 오디션을 봐서 그 사람을 얼마나 깊게 알겠어. 사실 연기는 하고 싶은데 기회가 없기 때문에 연극을 먼저 하는 경우가 많지. 난 그렇게 생각한다. 난 운이 좋아서 사진도 안내고 오디션도 안 봤지만 백날 프로필 넣고 오디션 봐도 안 되는 사람이 허다하거든. 영화는 그 바닥에서 검증된 배우들을 위주로 보기 때문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유)해진이는 참 대단한 사람이지. 해진이도 단역 오디션부터 시작했으니까. 그렇게 밟아간 경우는 굉장히 드물거든.

유해진 씨와도 같이 공연한 사이 아닌가.
같이 머리 빡빡 깎고 뉴욕 가서 <두타>했지. 고생 많이 했어. 같이 조치원 비데 조립공장가서 한달 동안 일한적도 있는데, 류사장, 유회장 막 이러면서. (웃음) 조치원 공장에서 일하는 아줌마들이 초등학교 선생님인 자기 딸 소개시켜준다고 눌러 앉으라고 막 그랬어. 진짜! (웃음) 왜냐면 일을 너무 잘하니까. 여담인데 한달 아르바이트로 갔다가 우리가 공장 시스템을 바꿔버렸어. (웃음) 너무 비효율적이더라고. 분업도 안되고. 그래서 우리가 되게 효율적으로 만들었지. 그리고 ‘오침(午寢) 시간을 줘야 한다. 그래야 효율적이다.’ 그래서 오침도 했잖아. (웃음) 어쨌든 해진이와는 같이 고생 많이 했지. 그 친구도 혈혈단신 연극하겠다고 청주에서 올라와서 맨날 후배들 자취방 돌아다니면서 자고, 세트 아르바이트도 굉장히 많이 하고.

최근 <이장과 군수> 주인공도 맡았고, 그런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 뿌듯하겠다.
음..사실 이제 터닝 포인트가 필요할 시기지. 해진이가 나보단 부담이 훨씬 클 거다. 지금 그걸 고민해야 될 타이밍이니까. 지금까진 잘 왔잖아. 그런데 지금이 더 중요하잖아. 그래서 아마 해진이가 고민이 많겠지.

<황진이>는 첫 사극 연기였는데 어떻던가?
너무 좋았다. 난 사극 체질인가 봐. (웃음)

사극이랑 꽤 어울리는 캐릭터이긴 하다. 일단 턱수염만 봐도. (웃음) 분장을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그래도 분장 도움을 많이 받았지. 보면 알겠지만 눈썹도 다 깎아주고, 수염도 많이 다듬고. 볼도 많이 깎았다. 볼 터치로. (웃음) 옛날부터 내가 탈춤 반이나 민속극 같은 걸 선호했었기 때문에 이번에 많이 도움이 된 거 같기도 하고.

남자 배우 복은 많지만 아직 여자 배우 복은 없는데.
송혜교 씨가 처음이지. 이러면 오정해 씨가 섭섭해할 텐데. (웃음)

그래도 오정해 씨는 극중 거리를 둔 상대였으니까.
나만 많이 좋아하고 그랬으니까. 근데 오정해씨는 되게 특수한 케이스잖아. 국악인이자 음식점 경영자. (웃음) 그리고 또 강의도 하시고, 라디오 DJ도 하시고. 사실 깊은 공감대를 갖기는 힘들었던 거 같다. 그래도 학번은 나와 같았고. 그냥 작품을 떠나서는 편했지

송혜교 씨와의 연기 호흡을 맞추는 건 어땠나?
사실 (송)혜교랑은 호흡이 안 맞아야 잘 나올 것 같은 대립 구조잖아. 베드씬도 그렇고. 처음엔 너무 당황해서 대사도 까먹고 그랬다. “명월이 인사 드리옵니다.” 그러는데, 대사가 생각이 안 나는 거야! (웃음) 다 그렇게 한번 해보라고. 내가 “송도에 있는 모든 기생들이 권주가를 내게 올리는데..” 이대사를 해야 되는데, “아! 잠깐만요!” 그랬다. 대사가 생각이 안 나더라. 첫 촬영 전에 밥도 두세 번 먹긴 했는데 제대로 꾸며놓으니까 어지럽더라. 대사 다 까먹었어. (웃음) 어쨌든 호흡은 잘 맞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연기도 잘 나온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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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베드씬이 있다는 말을 듣고 망설였다가 15세 관람가라는 걸 알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하던데.
사실 베드씬이라기 보단 보료씬이지. (웃음) 음..솔직히 그런 연기는 하고 싶지 않다. 물론 내가 이미지 때문에 안 벗거나 이런 건 아니고. (웃음)

사실 이미 <고마운 사람>에서 보여줄 건 다 보여준 걸로 아는데?
그거랑은 틀리지. 그건 그냥 샤워하는 거잖아. 난 적나라한 베드씬 같은 건 죽어도 못해. “연기인데 뭐 어때?”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난 못할 것 같아. 난 못해! (웃음) 만약 내가 그렇게 돈을 벌어다 주면 아내가 기분이 상할 것 같다.

아내에 대한 배려 때문에?
철저하게.

지독하게 가정적이다. (웃음)
난 거기서 오는 행복이 너무 많고 크기 때문에, 가정에 대한 욕심이 연기에 대한 욕심보다 더 크다. 난 무조건 가정이 먼저에요. 물론 가정이 먼저라고 해서 일도 안하고 가정에 처박혀 있자는 건 아니고! 그럼 백수지! (웃음) 어쨌든 가정이 행복하기 때문에 내 일이 잘 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난타>의 주방장이었는데, 아내를 위해 요리를 해주기도 하나?
평소 집사람이 만든 요리를 내가 맛있게 먹어주는 우리 집사람의 가장 큰 행복이다. 집사람의 요리를 내가 맛있게 먹을 때 내가 행복할 정도로 제일 행복해하거든. 그런 행복을 자주 뺏고 싶진 않은데, 한 달에 한 두 번은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를 해주지. 특별 식으로. 그것도 와이프가 굉장히 행복해하거든. 나 추어탕 같은 건 나 되게 잘 끓이거든.

결혼은 인생에 많은 변화를 부른다. 류승룡 씨같은 경우는 상당히 안정적인 여유를 준 것 같다.
너무 좋다. 집은 어떤 것보다도 편한 안식처다. 온천보다도, 스위트 룸보다 더 좋은. (웃음) 비록 비좁고 조그만 집이지만, 난 우리 집이 제일 편하다. 왜냐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우리 아내와 아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아들이 한번 웃어주면 너무 행복한 것 같다. <황진이> 오백만 터지는 것만큼이나. (웃음) 그러니까 일단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지.

어쨌든 가장으로서 경제적인 고민도 많아졌을 텐데. 그런 점에서 출연 기회가 많아져서 그만큼의 여유도 있을 것 같다.
솔직히 별로 그렇진 않고. (웃음) 사실 그제 세금을 처음 내봤다. 종합소득세. 사실 그전까진 환급을 많이 받았는데 이번엔 몇 백만 원을 그냥 냈다. 그래서 난 되게 당황했거든. 손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그래서 재영이한테 전화했더니 재영이는 비교도 안되게 많이 냈더라. 물론 걔가 많이 낼 줄 알았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지. 난 아직 그 정도로 서민이다. (웃음) 어쨌든 세금 잘 내야지! 사실 돈이 생기자 마자 부모님 집 옮기는데 다 보탰다. 그래서 지금 돈이 하나도 없어. 마이너스 통장이야. (웃음)

어쨌든 이제 세금도 낼 만큼 수입이 생긴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은 좋아진다는 의미도 될 듯 한데.
그 동안 연기를 하기 위해서 일을 많이 했지. 가락시장에서도 일했었다. 결혼하고도 10개월 동안 실내 인테리어 일했다. 솔직히 말하면 잡부지. (웃음) 어쨌든 연기를 위해서 이런저런 일을 많이 했지. 생계 유지를 위해서. 이제는 여유로워졌다기 보단 연기를 위한 일만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러니까 그 동안은 연기로 생활비를 벌 수 없으니까 그걸 위해서 굉장히 많이 일을 했었거든. 근데 이젠 연기에만 몰입할 수 있고, 그래서 와이프도 굉장히 행복해한다. <아는 여자>나 <박수칠 때 떠나라> 때도 그랬고, 영화 없으면 난 일하러 나갔다. 연극이나 영화 하는 친구들이 일없으면 집에서 놀거나 맨날 술이나 마시는 이런 모습이 너무 싫었다. 그렇게 놀다가 여자 만나서 바람 피다가 이혼하는 사람도 많고, 이런 게 너무 싫었거든. 불과 작년만해도 난 거의, 아, 작년은 바빴구나. (웃음) 재작년만 해도 과수원에서도 일하고, 공장가서 일하고 그랬다. 틈만 나면. 근데 거기서 배운 게 많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 중 재미있는 사람 많거든. 관찰을 많이 했지. 그런 게 연기에 도움이 많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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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농부 같은 역할이 편한 게 아닐까? (웃음)
그런가? 이제 골프장 같은 데를 가봐야 회장님 연기도 할 텐데. (웃음) 하긴 내가 뭐 검사해봐서 검사했나? (웃음)

하긴 뭐 <황진이>에서 사또 역할도 어울리던데.
그렇지. 사또 해봤나? 내가 뭐, (웃음)

혹시 연기라는 길을 택한 걸 후회해 본 적은 없었나?
후회한 적 한번도 없다. 한번도 해본 적 없는 거 같아. 86년부터 했는데.

그럼 반대로 이 길을 택해서 참 다행이다 싶었던 적은?
음..그게 요즘인데. 전도에 도움이 되더라고. (웃음) 어떤 식으로든. 내가 영화도 나오고 그러니까 이 사람도 우리 교회 다닌다는 식으로.

신앙은 아내한테 영향 받은 건가?
내가 전도를 한 건데. 요즘은 그분이 더 독실해졌다. (웃음)

외모에서 풍기는 강한 인상 때문에 거칠고 험한 역할의 섭외가 많이 들어올 것 같은데.
그렇지. 형사 아니면 깡패. 그런데 우리 나라 남자배우들이 거의 그래. 깡패 아니면 형사 아니면 검사. 설경구 선배도 그렇고, 송강호 선배도 그렇고. <열한번째 엄마>도 보면 아마 기절할거다. 아동 학대, 여성 폭력, 도박. 이걸로 이제 악역의 마지막 종지부를 찍고 싶은데~. (웃음) 그런데 환경이 불우한 사람들은 그런 환경이 대물림 되는 경우가 많다. 어쩔 수 없는 환경에 태어나서 그렇게 자랄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 난 그 배역에 너무 연민이 가더라. 그리고 저예산 영화지만 시나리오가 너무 좋아서 참여했다. 많이 울었지. 함께 출연한 (김)혜수씨도 보고 많이 울었다.

혹시 본인이 해보고 싶은 역할이나 출연하고 싶은 장르가 있나?
난 진짜 웰메이드 휴먼 드라마 하고 싶다. 아름다운 영화 있잖아. 자극적인 영화 말고. <웰컴 투 동막골>에서 재영이가 같은 역할. 인간적이잖아. 아니면 <왕의 남자>에서 감우성 씨 같은. 매력적이잖아. 무엇보다 벗지 않아도 되니까. (웃음) 벗지 않아도 좋은 그런 역할들이 얼마든지 있어. (웃음) <아들>에서 차승원 씨 같은 역할도 되게 좋잖아. 사실 되게 욕심부렸었다. 너무 하고 싶었거든. 근데 그 놈의 인지도. 하아~.(웃음)

장진 감독과 대화 좀 했을 법한데?
장진 감독한테 하고 싶다고 했더니, “승원씨는 이거 2억에 하거든. 되게 싸게 하는 거야.” 그래서 “저 2천에 할게요.” (웃음) 또 그러니까 “야, 차승원 씨는 2억에 2백만을 책임질 수 있는 배우야. 근데 너는 2천 줘도 넌 2만?” (웃음) 그래서 “알았어요.”했지. 물론 반 농담으로 나눈 이야기다. 사실 난 유명해지거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에 대한 욕심은 없다. 근데 이렇게 하고 싶은 역할을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걸 알게 되니까 인지도도 중요하더라. 왜냐면 시나리오가 너무 좋아서 난 하고 싶은데 투자자나 제작자는 인지도 없는 배우는 안 쓰려 하니까 이럴 때 너무 속상한 거다. 그런 면에서 <황진이>는 제작자나 투자자, 감독님한테 너무 감사하지. 왜냐면 내가 캐스팅될 때만해도 <박수칠 때 떠나라>밖에 개봉을 안 했었거든. <열혈남아> <천년학> <거룩한 계보> 이런 건 다 찍기 전이나 찍고 있었고. 장편 하나보고 이 역할을 결정했다는 건 그 분들이 혜안이 있다거나. (웃음)

연기가 자신을 흔든 계기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
연기라, 일단은 내가 방황하던 시절, 뭐 솔직히 안 놀아본 사람 없잖아. 중3, 고1때. 난 중3만 마치고 학교에서 배울 건 다 배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만 두려고 고등학교에 갔지. 그런데 교문에 들어가니까 선생님들이 막 달려오더니 발로 뻥 차고 머리를 막 깎는 거야. 완전 정신 못 차렸지. (웃음) 원래 풍생고 유명하거든. 근데 그때 교화로 연극부에 들게 했다. 그때 했던 게 <방황하는 별들>이란 뮤지컬의 복서였는데 너무 재미있더라. 그래서 그때부터 마음잡았지. 그게 나 뿐만이겠어? 연기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이렇게 바뀔 수가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 삶이. 어쨌든 교화가 계기가 됐지. 그리고 연기를 하기 위해서 그때부터 다시 공부도 했고. 정말 연기하려고 내가 하기 싫은 영어와 수학을 했다니까! 진짜. (웃음)

개인적으로 가장 큰 바람이나 목표가 있다면.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 그리고 남편이 되고 싶다. 아들한텐 정말 존경 받는 아버지가 되고 싶고,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남편이고 싶다. 주색잡기를 좋아하면 정말 추하게 늙잖아. 추접하게. 비참하게. 그러고 싶진 않다. 정말 며느리한테도 사랑 받는 멋있는 시아버지나 자랑하고 싶은 아버지가 되고 싶지.

다시 한번 느끼지만 정말 가정적이다. (웃음) 희열이란 캐릭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여기서 희열이 느껴지면 큰일나지! 그리고 사실 내가 코메디에 자질이 있다. 장진 감독도 그걸 아는데 나중에 히든 카드로 써먹으려고 아직 숨겨두고 있는 거야. (웃음)

이거 기사화 시켜도 될까?
아, 뭐, 상관없다. 혹시 알아? 누가 먼저 배역 줄지?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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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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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환(이하 서): 힘들어 보인다.
유지태(이하 유): 난 하나도 안 힘든데, 혜교씨가 진짜 힘든 것 같다. 한국 여배우 중에 이렇게 인터뷰 많이 한 여배우는 없을걸.

민용준(이하 민): <황진이>에 대한 기대감이 크기 때문에 한국영화의 위기의식이 혜교씨에게 덧씌워진 탓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영화 외적인 부분들로 인한 개인적인 부담감이 있을 법도 한데?
송혜교(이하 송): 연기할 때는 그런 부담감을 느끼거나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연기만으로도 버겁고 벅찼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못했던 거지. 오히려 요즘 홍보하면서 만나는 기자님들이 하시는 말 한마디 한마디 때문에 더 부담이 되고 있는 게 아닐까.

서: 영화를 본 소감은 어떤가?
송: 처음 그리고자 했던 데로 잘 나온 거 같다. 그런데 작품을 본 모든 분들의 마음에 다 들 수는 없겠지. 처음 의도한대로 작품이 나왔기에 난 만족한다.
유: 메이킹이 마음에 들어서 흡족했지.

민: 원작을 봤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에 원작에 비해 영화는 무게감을 많이 줄인 느낌이다. 로맨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유: <황진이>는 100억이 든 영화다. 소설이나 영화나 둘 다 대중 예술에 속하지만 두 분야는 각각 상업적으로 소비될 수 있는 규모나 지속성이 다르다. 마켓에서의 유효성을 보자면 소설에 비해 영화는 단기간이다. 아마도 원작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기기엔 대중과 호흡에 불편한 느낌이 있었을 거다. 그래서 대중성을 살리다 보니 멜로 라인이 부각됐던 게 사실이지. 영화가 관객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니까. 단지 영화와 소설의 차이를 꼬집기 보단, 소설을 보는 재미만큼 영화를 보는 재미를 발견했으면 좋겠다. 종종 소설 원작 영화들이 소설에 짓눌리는 경우가 많지 않나? 예를 들면 <제5원소>나 <다빈치 코드>처럼. 난 <황진이>에 관해선 감독님의 선택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민: <황진이>의 시나리오를 펼치기 전엔 기존의 황진이를 먼저 떠올리고 접근했을 법도 하다. 그런데 시나리오 속 황진이가 그런 관점과 다르다는 점은 묘했을 법도 한데.
유: 그게 우리 <황진이>의 매력이지.

서: 인간 황진이에 집중하기 위한 감독의 의도 때문에 상대적으로 예인 황진이의 모습은 많이 눌렸다. 반면, 놈이 캐릭터는 인간 놈이보다 의적 놈이에 더 많이 집중을 한 느낌이다. 그런데 황진이와 놈이 캐릭터를 함께 살리다보니 영화에 집중하기 힘들단 생각도 들었다.
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황진이>의 스토리 라인을 끌고 가는 건 놈이이기도 하다. 원작을 봤다면 알겠지만.

서: 원작은 놈이를 소위 임꺽정 같은 인물처럼 묘사하며 중요하게 다뤘지만 사실 <황진이>를 찾는 관객들에게 그 부분에 대한 기대치는 솔직히 없다고 본다. 황진이의 인생 굴곡과 사랑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놈이의 역할은 충분했을 텐데 굳이 놈이를 부각시켜서 영화에 끌고 와야 했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유: 서로 상호작용을 해야 되는데 방해가 된다고 느낀다면 그건 문제가 있는 거겠지. 편집을 잘못 했을 수도 있는 거고. 하지만 그와 반대로 황진이와 놈이의 교감에 대한 상호작용을 통해 감동을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 황진이에만 집중했다면 예인 황진이를 부각시켜야 했을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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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둘 다 오랜 연기경력을 지녔음에도 사극은 처음이다. 어땠나?
송: 연기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감정 씬들에 대한 어려움보단, 처음이라선지 사극 대사가 너무 어려웠다. 간단한 의미의 대사들임에도 불구하고, 의도한 대로 나오지 않아서 방황하거나 긴장한 적도 있었다. 그런 것들 때문에 초반에 힘들었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 그런데 그때마다 감독님께서 도와주시고, 현장 분위기가 익어갈수록 나도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그런 두려움들도 많이 없어졌다. 그 이후로는 수월하게 진행된 거 같다. 여러 가지로.

서: 기존의 연기와는 다른 점이 많은데 캐릭터를 잡아갈 때 어떤 것에 중점을 두었나?
송: 그런 질문들 참 많이 한다. 그런데 난 지금까지 어떤 모델을 두거나, 어디에 중점을 두면서 계산된 연기를 해본 적이 없다. ‘여기서 난 이렇게 표현을 할 거야.’했을 때,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표현된다면 난 정말 천재겠지. 물론 계산된 연기를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난 그렇게 하고 싶어도 그렇게 되지도 않고. 영화를 찍는 몇 개월 동안 시나리오를 끼고 황진이로 살면서 매순간순간 느끼는 그대로, 그냥 매 순간순간의 몰입으로 연기를 할 뿐이다. 어떤 것에 중점을 두고 하는지는 모르겠고, 어떻게 하는 지도 모른다.

서: 결과적으로 본인의 연기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
송: 본인의 연기를 보고 만족하는 배우들은 없지 않나.
유: 잘 했지. (웃음)
송: 난 아쉬운 것도 많고, ‘의외로 나에게 저런 면이 있었구나’싶은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고, 반반?
유: 그 정도면 잘 한 거 아냐? (웃음)
송: 억지로 막 이래. (웃음)

민: 개인적으로 혜교 씨의 황진이는 송혜교 절반에 황진이 절반을 섞어놓은 느낌이더라.
유: 연기에 배우의 색깔이 들어간다는 말처럼, 송혜교씨의 색깔이 드러나지 않으면 그 송혜교의 황진이가 아니겠지.

민: 매력적인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건 배우한테 설레는 일이니까, 그런데 그런 캐릭터를 자기만의 느낌으로 지닐 수 있다면 더없이 특별한 일일 것 같다.
유: 배우는 자기 색깔로 연기하는 게 가장 중요한 거라고 생각한다.

서: 유지태 씨의 색깔은 뭐라고 생각하나?
유: 유지태의 색깔이겠지. (웃음)

서: 정말 만약이지만, <황진이>가 흥행에 실패해도 송혜교는 성공적으로 영화계에 안착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송: 정말요? 다행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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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파랑주의보> 때는 흥행 참패 여부를 떠나 드라마 속 이미지를 고스란히 스크린에 끌고 왔다는 인상이 있었다.
송: 그건 내가 수락한 거다. 왜냐면 스크린에 처음 진출하는 거고, 내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큰 역할, 큰 영화에 출연하고 싶지는 않았다. 너무 모험 없이 안전하게 가려는 게 아니냐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일단 내가 기존에 잘 하는 것들로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남들이 뭐라 그러던 간에. 결국 좋은 결과는 안 나왔지만, 그 때 아팠던 건 그 때 다 털어버리면 끝이다. 물론 이번 <황진이>는 잘 됐으면 좋겠지. (웃음) 하지만 얻은 게 많다. 흥행을 떠나서 이렇게 큰 작품을 만났다는 것만으로 행운인 것 같고, 황진이를 연기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럽고, 그것만으로도 난 거의 다 가졌지. 거기서 흥행이라는 것까지 갖게 되면 더욱 좋겠지만, 일단 내가 연기자로서 갖고 싶었던 것들은 다 갖게 된 거 같다.

민: 작품에 대한 욕심도 있었겠지만 연기 변신에 대한 욕심도 분명 <황진이>를 선택하는데 작용했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
송: 그게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기존의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싶다거나 탈퇴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진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날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이미지를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보단, 본인 자체가 기존에 비슷한 인물을 계속 연기하다 보니까 재미도 없고, 흥도 안 나고, 어떤 연기를 해도 성취감도 안 들었던 것 같다.

민: 가끔은 역할에 갇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 기존의 연기가 싫다는 건 아니다. 그냥 너무 많이 하다 보니까 내 스스로가 너무 재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제 또 다른 역할을 하고 싶다 해서 무작정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배우건 새로운 역할을 하고 싶고, 또 다른 새로운 역할을 찾지만 그에 반해 영화를 만드는 분들은 그 배우의 한 가지 면만을 보고 비슷한 역할만을 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여러 장르의 캐릭터를 해보지 못하게 되는 것 같더라. 나도 비슷한 컬러(color)의 캐릭터들만 들어오다가 <황진이>라는 작품이 들어온 거지. 그래서 놓칠 수가 없었다.
유: 대부분 연기자들이 악수(惡手)를 두게 되는 게 타입캐스팅(type casting)을 할 때라고 본다. 칭찬받아 왔던 연기와 비슷한 것만 연기하는 거지. 송혜교씨는 이번 영화를 통해 자신이 해오지 않았던 연기를 했으니까 그만큼 값진 게 없겠지.

민: 유지태씨는 영화는 많이 출연했지만 드라마는 출연하지 않더라. 내 기억이 맞다면, 옴니버스 드라마 <유실물>밖에 없는 걸로 안다.
유: 맞다. 그거밖에 안 했다.

민: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유: 그냥 영화 쪽에 공감대가 많았던 것 같은데. 관객으로서, 배우로서 영화를 좋아했었고. (권)상우랑 종종 서로의 필모그래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난 영화만 16편을 했는데, 상우도 드라마까지 합치면 대략 나랑 비슷하다. 상우도 열심히 살았지만 나도 열심히 살았지. (웃음) 다만 난 영화를 팠고, 상우는 드라마와 병행한 거지. 결국 비슷한 거 같다.

민: 반면, 송혜교씨는 <파랑주의보> 때부터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았다. 그건 영화에 매진하겠다는 의사인가?
송: 물론 영화만 할래, 이런 건 없다. 솔직히 난 영화만의 매력을 아직까진 잘 모르겠다. 이제 <황진이>가 두 번째 작품인데, 컷이 많다보니까 거의 드라마 찍듯이 너무 바쁘게 찍어서 정신없었다. 그래서인지 남들이 얘기하는 그 매력이 어떤 건지 잘 모르겠더라. 하지만 영화도 좋긴 하다. 그렇다고 이거 하나만 쭉 가겠단 생각은 없지. 연기데뷔 10년 만에 영화엔 데뷔했다. 그러다 보니 워낙 탤런트란 이미지가 강하더라. 그래서 이렇게 시작했으니 영화배우란 이름을 듣고 싶다. 그래서 영화 몇 편을 더 한 뒤에 드라마를 병행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그래도 그런 와중에 정말 좋은 드라마가 있으면 할 생각 있다.
유: 생각해보면 나도 진짜 드라마를 했어야 했는데. (웃음) 드라마를 안 한 게 좀 후회가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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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두 사람은 나이차와 무관하게 데뷔시기가 비슷하고 경력도 그렇다. 그런데 호흡을 맞춘 건 처음인데.
유: 난 영화만 하고, 혜교씨는 드라마만 하고, 그래서 엇갈린 거겠지. (웃음)
송: 난 유지태씨랑 같이 연기할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저 배우랑은 연기할 일이 있을까? 왠지 없을 것 같아.’라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오히려 조만간 같이 연기하게 되지 않을까 짐작했던 배우와는 인연이 없고, 예상치 못한 분이랑 이번에 한 것 같다. 솔직히 마치 딴 세계의 사람 같았다. (웃음) 근데 만나보니까 안 그렇더라.

민: 애초에 친분 같은 건 전혀 없었나?
송: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딴 세계 사람인 줄 알았지! (웃음)

서: 지태씨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은데. (웃음)
유: 글쎄. 난 지금까지 상대배우들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 본적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그냥 송혜교씨 같은 ‘좋은 이미지의 배우와 함께 하는구나. 잘 했으면 좋겠다.’ 정도? 그리고 난 시작할 때보다 끝날 때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배우와 다시 만나서 연기를 또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그 배우에 대한 가장 좋은 상(像)이 아닐까.

서: 사실 지태씨가 예전에 비해 유독 이번엔 상대배우인 혜교씨 칭찬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다. 마치 팔불출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웃음)
송: 나한테 힘을 넣어주시려고 그러는 거겠지. 사실 내가 기사 체크하는걸 알거든. (웃음)
유: 아니, 뭐, 잘 한 걸 잘 했다고 얘기하는 거니까.
송: 기자님이 그 말씀하셔서 이제 칭찬 안 하겠다.

서: 뭐, 어차피 이게 인터뷰 없는 걸로 아는데. (웃음)
유: 팔불출이어도 좋다! (웃음) 윤여정 선생님도 혜교씨를 참 좋아하신다. 혜교 씨가 그만큼 잘 한 거지. 나도 좋았다. 재미있었고.

민: 근데 유지태씨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니까 코믹한 연기를 제대로 해본 적은 없는 거 같다. 물론 <주유소 습격 사건>을 했지만 정극적인 코믹 연기는 아니었고.
유: 코믹이야 말로 감독색깔이 굉장히 중요한 장르라고 생각한다. 코미디가 개그화되면 저급해질 경우가 많다. 코메디와 멜로, 호러 같은 영화는 기획영화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감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감독님이 같이 코미디하자고 하면 할 것 같은데. 근데 사실 내가 좀 썰렁하다. (웃음) 다른 식의 코미디를 해야 되겠지.
송: 블랙 코미디같은? (웃음)

민: 혜교씨 같은 경우엔 <순풍 산부인과>의 코믹한 이미지도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송: 나도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 당시엔 내 연기보다 고등학생의 나이에 딱 맞았던 것 같다. 사실 그 때 성격은 주위 사람들한테 오해 살만큼 내성적이었으니까. ‘조그만 게 왜 이리 도도해, 새침때기야’, 이런 소리 들을 만큼. 오히려 요즘 더 발랄하고 명랑해진 거 같다. 근데 지금 다시 보면 되게 웃기다. 내 모습 아닌 거 같아. 볼 살이 곧 터질 것처럼 너무 빵빵해!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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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그 때에 비하면 살이 많이 빠졌다.
송: 많이 빠졌지. 그 때는 고등학생이라서 젖살도 있었고.

서: <파랑주의보> 때보다도 많이 빠진 거 같다.
송: 여자 배우들은 늘 다이어트 생각하고 있으니까. 근데 <황진이> 때는 일부로 다이어트 안 하고, 많이 챙겨먹었는데도 많이 빠지더라.

서: 혜교 씨는 지금도 그렇지만 연기할 때 약간 숨넘어갈 듯 대사치는 게 있더라. 호흡을 단절하면서 말하는 게 아니라 한번에 다 하려는 듯한.
송: 내가 약간 흥분하면 나오는 건데, <황진이>에서도?

서: 딱 한 씬에서. 초반에 발 걷고 등장한 이후, 수 놓으면서 대화할 때.
송: 내가 찝찝한 부분이 거기였던 거야! 얘기하지 마시지! (웃음) 그게 초반에 찍은 아씨 시절인데, 그래서 내가 영화를 보며 아씨 시절 나오면 귀를 막아버리잖아. 왜 그건 후시 안했나 몰라? (웃음) 처음인데, 그거 지적하신 분은. 굉장히 예리하네요.

서: 사실 송혜교 씨에게 관심이 많아서. (웃음) 드라마 볼 땐 그게 송혜교의 매력이라 생각했는데 스크린에서는 좀 아니더라.
송: 고쳐야 될 점이지. 매력은 아니고, 솔직히 나도 알고 있다. (웃음)

민: 영화배우로서의 갈망도 있을 것 같다. 특별히 스크린을 통해서 해보고 싶은 역할이나.
송: 해보고 싶은 역할이 정말 너무 많다. 요즘 내가 인터뷰를 통해서 독특한 캐릭터를 해보고 싶단 말을 많이 하기도 했고. 예를 드는 두 작품이 다 박찬욱 감독님 영화인데,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영애 선배님이 했던 역할이나,

민: 혹시 나머지 작품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송: 맞다. 임수정씨 역할도 되게 매력 있었다. ‘야, 저 예쁜 배우가 저런 모습의 연기까지 되는구나.’라고 감탄하면서 봤으니까. 나도 한번 저런 캐릭터 만나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서: 확 와 닿네. 송혜교의 ‘너나 잘하세요.’
송: 그 정도로 독특한 캐릭터를 만나보고 싶다.

서: 그런데 아까 지태씨가 말한 것처럼 정형화된 타입의 연기를 하는 것이 악수가 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 그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도 독이 될 수 있다.
송: 강박 관념으로 도전하는 것보단 그냥 스스로 연기를 즐기기 위해서지. 일단 내가 연기를 즐기지 못하면 관객들도 똑같이 그걸 느낀다고 생각하니까. 일단 내가 메리트(merit)를 느껴야 되기 때문에 찾는 거다. 새로운 걸. 지금까지 지속해왔던 내 연기가 나 자신에게 재미있다면 계속 그걸 해야겠지만 내가 그걸 못 느끼니까.

서: 그럼 그전에 재미없게 한 연기도 있었다는 소리?
송: 비슷한 연기를 하다보니까 너무 많이 해서 새로운 걸 찾는다는 소리죠! 내가 말을 잘 못하나? (웃음)

서: 스타와 배우의 간극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혜교씨 본인이 느끼는 부분이 궁금하다. 본인은 그 간극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나?
송: 내가 느끼는 게 대중들이 느끼는 것과 같다고 본다. 일단 나도 배우지만 아직 스타 이미지가 많이 강하겠지. 그렇다고 굳이 그런 이미지를 부술 필요는 없다. 스타라는 이미지도 날 사랑해주시는 팬들이 만들어 주신 중요한 것이니까. 물론 연기를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그게 큰 장애물이 될 수도 있겠지. 욕심이 많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양쪽에 모두 충실하고 싶다. 나이를 한두 살 더 먹고 연기자의 이미지에 점점 더 가까워진다면 한쪽을 포기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두 가지 다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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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항상 대중과 스타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리는 것 같다. 스타이기 때문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부분도 있고, 스타이기 때문에 함부로 평가 할 수 없는 부분도 있고.
유: 그런데 난 스타와 배우를 어떻게 나누는지 잘 모르겠다. 솔직히 영화배우는 스타여야만 영화를 할 수 있다. 거대자본을 움직이는 상업영화는 스타여야만 선택 받을 수 있고. 배우와 스타를 어떤 기준으로 나누려하는지? 스타가 아닌 영화배우는 없는 거다.

서: 원론적으로 이야기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유: 원론적이라기 보단, 단적으로 말해서 스타가 없으면 투자가 안 된다. 자본이 움직이지 않으면 영화는 존재하지 않고. 순수예술이 아닌 상업예술이니까.

서: 그렇지만 스타라는 존재 자체가 흥행과 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잖나.
유: 그렇지. 그런 다음에 작품성과 같이 연동이 되는 건데.

서: 그렇기 때문에 배우들 스스로 그런 생각들을 갖는 것 같다. 본인이 지닌 스타로서의 인기가 연기적 역량으로 더해지면 좋을 것이란 생각을 하니까.
송: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그런 생각을 안 한다.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 비쳐질 뿐이지 거지 일할 때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배우가 먼저 그런 말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런 말을 하게끔 대중들이 그렇게 생각을 해요. 그런 말을 들을 수밖에 없게끔. 우리가 아무리 영화배우라고 외치면 뭐해요. 보는 관객들이 ‘넌 아직 덜 됐어’라고 말하면, 우리가 아무리 외쳐도 인정하지 않는데.

서: 그 평가의 기준을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것 아닐까. 단순히 스타와 배우의 구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 난 스타라는 기준에 대한 피해의식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민: 결국 스타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은 인지도의 여부로 판가름 나는 것 같다. 그게 관객이든, 투자자든. 그건 결국 영향력일 수도 있고. 그리고 그런 구분은 그런 영향력에 대한 반작용일 수도 있다. 방금 말한 것처럼 피해 의식일 수도 있고.
유: 물론 그런 위치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겠지. 스타성을 가지고 있다는 건 엄청 큰 거다.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연기라는 기준은 매체의 특수성이 다 다르기 때문에 섣불리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명한 건 영화는 스타의 등장을 필요로 하고 스타가 주연을 하는 거지. 그 논리는 뗄 수가 없다. 물론 독립영화는 스타가 등장하지 않아도 되지. 하지만 <황진이>처럼 100억이나 들어가는 상업 영화에서 스타는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민: 류승룡씨도 하고 싶은 연기를 위해서라도 인지도는 중요한 것 같다고 하더라.
유: 당연히 중요하다. 내가 드라마 안한 것이 후회된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연기적인 측면, 드라마 하시는 분들은 정말 순발력이 빠르다. 그런 부분에서 아쉽고, 또 하나는 대중적인 인지도다. 아무래도 드라마가 영화보단 대중적으로 친밀감이 높지 않나. 한류스타들의 파워도 드라마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더라. 종종 내가 그런 파워를 지니지 못한 것이 아쉽다. 어떤 영화를 한류스타가 하고 싶다고 하면 그 순간 투자는 다 끝난다.
급이 다르다고 할까. 물론 드라마를 했느냐, 안했느냐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건 아니겠지만, 분명 드라마를 하면서 얻어지는 부분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것들을 내가 너무 한계지어서 생각하지 않았나 싶은 거지. 하지만 내 밥그릇이 영화를 좋아하는 밥그릇이니까 영화를 한 거겠지. (웃음)

서: 그렇다면 본인이 지금까지 끊임없이 캐스팅 될 수 있는 까닭은 뭐라고 생각하나?
유: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은 없는데. 요즘에는 결정해도 못 들어가는 영화가 있으니까 요즘에 생각해봐야겠네. (웃음) 영화배우가 영화 찍는 게 뭐 큰일은 아니기도 하고. 영화배우 유지태로서 지금 입장에서 불만은 하나도 없다.

민: 그런데 요즘 연극 무대에 종종 서고 있다. 아무래도 영화에 한정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가 아닐까 싶은데.
유: 연극을 하는 건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자기 계발도 있고. 영화 연기를 하다 보면 미니멀(minimal)한 연기, 드라이(dry)한 연기를 하게 되고 절제하는 내면 연기들을 많이 하게 된다. 반면 다양한 것들을 채울 수 있는 외향적인 연기를 훈련해야 되는데 연기자로서 무대만큼 좋은 시험대가 없으니까. 내가 영화를 만들고 싶기 때문에 인프라를 형성하려는 의도도 크다.

민: 감독에 대한 열망도 있는 듯 한데, 이미 단편영화도 2편을 만들었다. 어떤가? 연기하는 것에 비해 연출하는 건?
유: 글쎄. 작품 하는 건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기자는 보여주는 매력이 있다면, 연출자는 만드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서: 배우와 감독으로서 지태씨의 자의식은 무엇인가?
유: 그냥 자유롭게 연기 생활을 했으면 좋겠고, 자유로운 영화인이 됐으면 좋겠다. 조지 클루니가 ‘그림이 되기 보다는 화가가 되겠다.’는 이야길 했는데 참 멋있는 비유 같다. 쉽게 말해서 배우보단 감독에 더 열의를 갖고 있다는 말이 될 텐데, 그 사람이 출연한 영화들도 참 매력적이지만 그 사람이 만드는 영화들도 참 멋있는 것 같다. <굿 나잇, 앤 굿 럭> 같은 영화도 그렇고. 자유로운 영화인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 같다.

민: 유지태씨는 오랫동안 영화계에 몸담고 있었던 만큼, 최근 한국영화 위기라는 상황에 대한 남다른 의식이 있을 법도 하다.
유: 지금까지 해왔던 방법 말고 다른 시스템에 대한 도전을 해봐야 되겠지. 일본 영화나 미국 영화처럼 프로듀서 중심의 영화제작 시도도 필요하고. 한국 영화가 찾아가야 할 길을 제대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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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황진이> 이후, 계획이 궁금하다.
송: 올해가 가기 전에 영화 한편 더 하고 싶고, 내년쯤 드라마도 하고 싶다. 계획은 그런데 그렇게 될지 모르겠네. (웃음)
유: 단편영화 한편 만들 생각을 하고 있다. 올해 안에 영화 한 편 출연할 수 있으면 좋겠고.

민: 지태씨는 이제 어떤 연기보다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여쭤봐야 할 것 같다. (웃음)
유: 영화는 여러 장르를 생각하고 있다. 연극을 했던 것도 영화화의 일환이 되는 거고. 시놉시스들이 다 영화화될 수 있으니까.

민: 혜교씨는 지금 당장은 푹 쉬고 싶겠지만, 영화든 드라마든 자극적인 캐릭터와 기존의 캐릭터가 둘 다 들어온다면 어떤 캐릭터를 선택할 것 같나?
송: 자극적인 거. 안 해봤던 거.

민: 너무 깨는 역이 들어와도?
송: 두렵지는 않은데, 예쁜 모습 많이 보여드렸는데, 뭐.

서: 그게 불만인 사람도 있을걸. 망가져도 예쁘잖아.
송: 꼭 망가져 드려야 되겠다(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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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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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혜 인터뷰

interview 2008. 5. 3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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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고등학생이다.
몇 살인 줄 알았어요?

못해도 스무 살은 넘었을 거라 생각했지.
다른 분들도 다 그러더라.

그런 질문 받으면 기분이 어떤가?
원래 어렸을 땐 나이 들어 보인다는 이야기 듣는 사람이 나이 들어서는 어려 보인단 이야기 많이 듣는다더라. 그래서 그냥 그거 믿고 살고 있죠. (웃음)

학창시절에 쫓아다니는 남자 좀 있었을 것 같은데?
없었어요~~! 여중 여고의 슬픔을 모르시는군. 흑. (웃음)

여중 여고의 슬픔은 잘 모르지만 남중 남고의 슬픔은 잘 알지. (웃음) 조금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지만 ‘많이 컸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난 박신혜하면 예전에 시트콤에 출연했던 모습이 아직도 많이 기억난다.
드라마에서의 모습을 많이 기억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시트콤에서의 모습을 많이 기억하는 사람도 있더라. 다양하게 기억된다는 건 일단 좋은 일인 것 같아서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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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연기를 시작하건 <천국의 계단>이지만 아역 연기였다는 점에서 아무래도 자신의 캐릭터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연기를 한 건 시트콤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나이에 맞는 발랄함도 있었고. 그때에 비하면 많이 성숙된 연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일단 아역 박신혜가 아니라, 나이와 상관없이 연기자 박신혜로 봐주는 것 같아서 오히려 그게 나에겐 더 플러스가 되는 것 같다. 이렇게 됨으로써 내 또래 연기자들이 가질 수 있는, 아역 연기자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나는 자연스럽게 버린 채 시작할 수도 있고, 뭐가 됐건 나쁠 건 없다.

우리나라는 사실 청소년 연기를 이십 대 배우가 많이 한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청소년기에 이십 대 연기를 한다는 건 특별해 보인다. 어떻게 보면 동년배의 어린 배우들 사이에서 박신혜를 두드러지게 보이게 만드는 요인이라고도 생각되고.
그런 것 때문에 날 부르는 감독님들이 있나 보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실제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덕분에 사람들에게 쉽게 어필할 수도 있는 것 같고. 물론 나이에 맞는 연기가 자연스러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나와 동떨어진 성인 연기를 한다기보단 나와 어울릴법한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니까. 아역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그냥 여자 박신혜가 나이와 무관하게 할 수 있는 연기를 했을 뿐이지. 어떻게 보면 풋풋한 연기를 원해서 나를 원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이십 대의 배우들이 청소년 연기를 종종 하는 건 내 또래 배우가 별로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실제보다 많은 나이의 역할을 연기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나? 박신혜라는 배우를 나이에 상관없이 캐스팅한다는 건 그에 대한 모종의 기대감이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기대감이란 바로 그런 풋풋함이겠죠? 그러니까 아직 세상과 많이 접촉하지 않은 느낌을 원하는 것도 있을 테고. 예를 들면 솔직히 난 아직 가슴 아픈 사랑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사랑에 대해서는 서툰 나이니까. 사람들이 보기에 사랑을 안 해본 사람이 사랑을 하려고 하니까 저렇게 서툰 거구나라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감독들이 신인을 찾는 이유도 그런 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상대 배우와의 서먹서먹한 첫만남이 호흡을 맞추면서 친숙해지는 것과도 비슷한 것 같다.

감정이 없던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감정이 생기는 것처럼?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느낌인 것 같다.

원래 연기를 지망했나?
우연찮게 오디션을 보게 됐다.

본인이 직접?
주변에서 오디션을 권유해서 보게 됐는게 붙어버렸다. 원래 뮤직비디오 주인공 공개 오디션을 봤는데 그땐 너무 어릴 때라 뮤직비디오에 출연은 못했고.

몇 살 때였길래?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리고 원래 난 가수 준비를 하다가 연기를 하게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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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팩토리의 보아가 될 뻔했다는 사연이 그것이었나 보다?
이승환 공장장님이 예전에 그렇게 말한게 아직도 떠돈다. (웃음) 어쨌든 노래와 함께 연기를 배웠는데 연기 선생님께서 노래보다 연기를 제대로 시켜보라는 권유로 뮤직비디오를 찍게 됐다. 그런데 그게 잘 어울려 보여서 결국 연기를 하게 된 거다.

그럼 춤과 노래 연습은 얼마나?
2~3년 정도? 처음엔 활동 중에도 계속 트레이닝을 했었다.

설마 나중에 판 내는 거 아닌가?
그건 아닐 것 같은데. 혹시 모르지. 그런데 솔직히 나 노래 별로 못한다. (웃음)

사실은 흔히 말하는 길거리 캐스팅 때문에 연기를 시작하게 된 것이 아닐까 했다. 외모상으로 눈에 띠고, 그 나이 때 연예인들이 종종 그렇듯이, 그런데 연기를 보면 준비를 거친 느낌이 들더라. 어색함보단 안정감이 있다.
한 3년 정도의 준비기간이 있었다.

가수에서 배우로 진로를 전향한 뒤에?
사실 가수 준비 중에 연기 교육을 병행했는데 연기를 배우는 속도가 더 빨랐다. <꽃> 뮤직비디오를 찍은 후, 프로필 사진 찍고 몇 달 뒤에 <천국의 계단> 아역 공개 오디션에 갔다. 사실 회사에서 오디션 신청 막바지쯤에 사실을 알고서, 결국 난 생각도 못하다가 오백 명이 넘는 경쟁에 갑자기 끼어들었지. 그런데 난 사람을 만날 때, 눈을 마주치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다른 곳을 보고 대화를 하면 말은 하는데 마음이 통하지 않는 것 같아서. 그런데 감독님이 프로필을 보더니 쭉 둘러보시더라. 그런데 내가 거의 정면쯤에 있었는데 감독님과 제대로 눈이 마주쳤고 그 때 염두에 뒀다 한다. 눈빛이 좋았다고 나중에 말씀해주셨으니.

지금은 고등학생인데, 학업과 연기를 병행하는 게 쉽진 않을 것 같다.
난 일없으면 무조건 학교 간다. 쉽지는 않지만 하고 싶은 일을 놓치고 싶지도 않고, 학교 생활도 잘 해보고 싶다.

배우 이외에 다른 꿈은 없었을까?
사실, 어렸을 때는 여경찰이 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연기가 너무 재미있고 즐겁기 때문에 이젠 다른 걸 한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는 것 같다.

하긴 6학년 이후로 계속 이 바닥에 있었으니 다른 생각이 들기도 힘들었겠다. 어쨌든 <전설의 고향>은 호러물이고, 동시에 사극이다. 둘 다 처음인데 한번에 겪었다.
너무 급하게 촬영해서 부담감은 있었는데, 다른 부분의 부담감은 없었던 것 같다. 워낙 새로운 걸 즐기는 편이기도 하고. 옆에서 도와주는 분들도 많았고, 다른 분들이 열심히 촬영에 임하셨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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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고생이 많아 보이던데. 물에 빠지는 씬도 유독 많고, 촬영이 끝나고 안도감이 들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사실 물에 빠지는 씬도 많고, 넘어지는 장면도 많아서 힘들었다. 더위가 심해서 짜증이 많이 나기도 했고. 그런데 나보다 더 일찍 현장에 나와서 준비하는 분들도 있고, 나보다 더 늦게 끝나도 빈틈없이 챙기시는 분들도 있는데 내가 불평을 할 수는 없더라. 그리고 내가 조금이라도 안 웃으면 심각해 보여서 그럴 때마다 무슨 큰일 있는 줄 알고 신경을 많이 써주더라. 그래서 난 촬영하면서 힘들어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 전에 연기할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면서 촬영을 했다.

첫 주연 영화인데 개봉일이 밀려서 조바심 나진 않았나?
<전설의 고향>은 촬영이 이뤄지면서 동시에 CG작업을 했다. 그런데 후반작업을 동시에 하니까 뒤죽박죽 섞이는 게 많더라. 그래서 더 걱정이 있었다. 만약, 시간이 더 있다면 여유를 갖고 마무리 작업까지 완벽하게 한다면 좋을 텐데 하는. 그런데 올 해 개봉하게 되니까 후반작업도 잘 된 것 같아서 다행이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혹시 무서운 영화 좋아하나?
좋아한다.

사실 호러 영화는 무섭지만 호러 영화 촬영장은 무섭지 않다. 촬영장 분위기는 어땠나?
나도 이번에 알았는데 스텝들끼리 서로 격려하는 것보단 배우들이 직접 격려해주는 게 분위기에 도움이 많이 되더라. 그리고 그런 걸 보고 인기 많은 배우들이 어째서 그런 건지 이해가 갔다. 스텝들 한 분마다 친절하고 소중하게 대하는 모습을 싫어할 수가 없더라. 그런 걸 보고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전체적인 분위기가 좋아야 한다는 걸 경험으로 느꼈다. 일단 내가 사람 만나는 걸 워낙 좋아해서, 현장 분위기를 굉장히 좋아할 수 있었다. 일단 영화의 분위기는 세트 분위기가 어두워서 분위기 조성은 잘 된 거 같더라.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많이 했겠다.
아무래도 막내니까 내가 많이 뛰어다녔다. 사람들이 많이 피곤해서인지 많이 힘들어하더라. 그래서 내가 많이 뛰어다니면서 장난도 치고, 오빠언니들 웃으라고 애교도 많이 부리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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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중에 귀신을 봤다고 들었는데.
사실 귀신을 제대로 본 건 아니고, 첫날에 가위에 눌렸었다. 그나마 누가 깨워져서 그나마 빨리 풀렸다. 그리고 수중씬 촬영을 위해 수면으로부터 2~3미터 밑에서 산소호흡기를 떼고 올라와야 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수직이 아니라 대각선으로 올라와야 하니까 올라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 그러다가 숨을 참는 시간이 1분 이상으로 길어져서 물도 먹게 되고 눈 앞이 깜깜해졌다. 그 때 숨을 못 쉬어서 죽는 줄 알았다.

일단 본인은 영화 경험이 거의 없었다. 촬영장에서 의지를 했던 사람이 있다면?
일단 감독님께서 많이 끌어주셨다. 그리고 재희 오빠도 그렇고, 진우 오빠도. 같이 맞춰가면서 같이 이끌어나갔다. 서로 연기에 대해 상의하고 조언도 해주면서 의견 교환을 많이 나눴지.

연기를 맞추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큰 어려움은 없었다. 평소 생활부터 워낙 즐겁게 지내서. 재희 오빠가 날 많이 챙겨줬다. 실제 촬영 때 어머니 다음으로 많이 호흡을 맞춘 탓도 있고.

1인 2역 연기를 했다. 또한 평면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범상치 않은 입체적인 캐릭터라서, 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내용을 다 알고 있는데도 좀 혼란스러웠다. 소현을 보여주면서 효진의 내면도 종종 드러내야 하고, 그런데 소현과 효진은 다른데 그걸 표현해내기가 너무 복잡하더라. 사실은 분리를 시키려고 많이 노력했다. 소현과 효진의 명확한 구분이 있어야 되니까. 소현은 굉장히 착하고 효진은 굉장히 못 된 캐릭터다. 그렇게 구분이 명확한 인물을 한 명에 담으려니까 혼란스럽고 그래서 힘들었다. 하지만 혼란스러워야 맞는 것 같더라. 그래서 차라리 이렇게 복잡한 심정을 그대로 감정 이입시켜서 연기를 하자고 했던 게 도움이 된 것 같다.

시나리오를 접했을 때 쉽게 이해가 되던가?
일단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다. 내용상 이해를 쉽게 하기엔 어려움이 있어서. 그런데 여러 번 읽다 보니 이해가 되고 재미있더라. 그리고 중간중간 재미있는 소재도 많아서 끌리기도 했고.

연기가 잘 안 풀리는 순간에 어떻게 극복했나?
성격이 급한 편이라 쉽게 조급해진다. 하지만 그런 순간만 견디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을 다시 차분히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다. 가만히 앉아서 연기에 대해 생각하거나 귀를 막고 다시 한번 대본을 읽으면서 정리를 했다.

어린 나이에 알려졌다가 쉽게 잊혀져 가는 배우들이 많다. 그 나이에 누군가에게 주목 받고 있다는 사실이 버겁진 않나?
아직까진 확 못 느끼겠다. 물론 중간에 일을 쉴 땐, 몸이 좀 근질거리는 느낌은 있었다. 그리고 내가 작품은 많이 출연했지만 실제로 내가 크게 떴다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 없으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그렇게 크게 많이 알려졌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아직은 차근차근 나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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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좋아하는 영화 장르 있나?
추리물 되게 많이 좋아한다. 사실 영화는 장르 구별 없이 대부분 좋아한다. 폭력적인 장면이 있어도 그게 내용이 있는 거라면 좋아한다.

제일 처음 카메라를 접했을 때에 비해 지금의 느낌은 얼마나 달라진 것 같나?
처음엔 카메라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시선을 어느 쪽에 맞춰야 하는지 하나도 몰랐다. 그런데 지금은 좀 여유가 생긴 것 같다. 그때에 비하면. 물론 아직도 카메라 앞에 서면 많이 긴장되고 떨린다.

해보고 싶은 연기나 역할이 있나?
좀 강한 거? <귀엽거나 미치거나>같은 왈가닥 역할도 다시 해보고 싶은데, 그 반대도 해보고 싶다. 조용한 아이. 슬픈 아이가 아니라 세상 앞에 무덤덤하고 재미없는 아이. 세상에 무관심한. 솔직히 딱히 정해놓은 건 크게 없는 것 같다. 물론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시나리오가 좋고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역할이라면 하고 싶겠지. 딱 이것만 할거라고 생각할 때도 아니니까.

연예계에 빨리 입문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만만치 않았을 텐데.
누군가가 연예인을 하려 한다면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직업인 것 같다. 물론 끼를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물론 노력을 통해 되는 사람도 있고. 하지만 사람이란 게, 자신이 잘 되는 게 있고 잘 안 되는 게 있는데 욕심을 내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함부로 도전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거 같다. 겉으론 화려하지만 알고 보면 불행한 사람도 많지 않나.

본인도 자신의 선택에 후회한 적 있나?
후회는 많이 했는데, 막상 이 일을 그만 두면 몸이 근질거려서 못 견딜 것 같더라.

존경하는 배우가 있나?
고두심 선생님, 나문희 선생님, 여운계 선생님. 왜냐면 지금도 인기가 굉장히 많지만 젊은 시절에도 인기가 많은 분들이었으니까. 젊은 시절, 하이틴 스타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해보면, 지금이 정말 대단해 보인다.

열 여덟 살이면 누구 말처럼 한참 좋을 나이다. (웃음) 이십 대가 될 날도 이제 몇 년 안 남았다. 스무 살에 대한 기대감 같은 거 있을까?
연기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시니컬한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지만, 아직은 나이가 어려서인지 실제론 안 나올 것 같다. 솔직히 어색해 보일 것만 같다. 나이가 들고 눈빛이 좀 달라지고, 외관상 변화처럼 내적인 모습도 따라 바뀌는 부분이 있을 테고. 그럼 결국 연기 폭이 더 넓어지지 않을까. 아무래도 십대의 경험보단 이십 대의 경험이 더 깊을 테니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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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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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소수의 지성인이 아닌 다수의 관객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다수의 관객이 즐길 수 있는 영화란 어떤 영화라고 생각하나?
솔직히 한 편의 영화가 모든 관객을 만족시키기엔 어렵다. 어쨌든 다수라는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아무래도 흥행이 기준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중국 본토의 영화시장이 성장하고 영화의 제작편수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 중국의 영화인 중 한 사람으로서 이런 변화는 고무적일 것 같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는 게 아닐까 싶다. 요즘 중국의 영화 시장은
양적으로 팽창하는 게 사실이다. 거의 하루에 한편 단위로 제작 편수가 늘어날 정도로 활성화 되고 있으니까. 결과적으로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활동 공간이 더 많아진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다.

반면에 시장의 확대라는 건 상업적인 기질의 영화에 대한 요구로 점철될 수도 있다. 일방적인 소비의 목적으로 영화가 취급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 고민도 많이 하고 실제로 그런 문제에 대한 토론도 많이 이뤄진다. 그런데 과거를 보면 중국 감독의 95%가 거의 다 예술영화를 찍고 5%도 안 되는 감독들만이 시장성 있는 영화를 찍었다. 그렇게 예술성에 편중한 영화를 찍어내니까 관객들이 극장에서 중국영화를 보려고 안 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박스오피스 5위 내는 거의 다 할리웃 영화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장이 죽어버리다 보면 시장이 없어져버리는 사태로 연결될 수 있다. 내 생각에 기본적으로 시장이 먼저 커져야 투자 회사에서도 이익을 기대하게 되고 그로 인해 투자가 이뤄져서 영화산업이 활성화된다. 그렇게 되야 영화 판에 여유 공간이 형성돼서 예술영화도 지원해줄 수 있고, 다방면의 시도가 이뤄질 수 있는 거다. 그런 관점에서 현재 중국 시장을 살펴본다면 시장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 그리고 중국영화를 박스오피스 3위 안에서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 건 분명 그런 노력을 통한 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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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는 상품이기 전에 예술이다. 결국 흥행을 먼저 염두에 둔다는 건 목적이 전도된 거 아닌가.
예전에 중국에서 ‘흥행하는 영화라 해서 좋은 영화는 아니다’라는 설을 들었는데 나는 그 말이 이상했다. 좋다거나 나쁘다를 말하기 위해선 표준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예술창작에선 표준이 없다는 거다. (테이블을 가리키며) 내가 이 테이블을 이 쪽에 놓는 것도, 저쪽에 놓는 것도 모두 창작이라 한다면, 누가 와서 나에게 이건 저기에 놔야 된다 라고 하는 건 옳지 않다. 영화도 많은 돈이 투자돼서 만들어지는 만큼 일종의 사업이기 때문에 관중들을 불러모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면 그게 결코 좋은 영화라고 말할 수 없는 거다. 예를 들어 지금의 강제규 감독이 아시아와 한국에서 흥행을 이끌지 못했다면 과연 좋은 감독이란 명성을 얻을 수 있었을까? 강제규 감독 영화의 작품성은 결국 흥행성이 받쳐주었기 때문에 확인된 결과다.

작년, <황후화>의 국내 개봉을 위해 장예모 감독이 내한한 당시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블록버스터는 할리우드에 대항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런 견해에 동의하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박스오피스는 거의 할리우드 영화로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중국영화를 박스오피스 상위권에서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할리우드의 영화를 단순히 시장성만으로 본다면 우리도 그에 대항할만한 시장성을 고집해야 한다.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고자 하면 과거처럼 할리우드 영화에게 점령당하는 거다. 근래 중국 관객들이 중국 영화를 점차 선호하게 되는 변화는 모두 그런 고민을 통해 노력했던 부분들이 거둔 효과다. 난 감독이란 ‘동사(動詞)’같은 존재라고 본다. 왜냐면 움직여서 영화를 찍고 그런 행위를 계속해야 되니까. 영화는 말로만 찍는 게 아니다. 장예모 감독은 영화를 실천하는 사람이고, 중국 영화계에서 공헌이 큰 감독이다. 그런만큼 세태를 잘 파악하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상업 지향적인 태도에 따른 비난도 따르고 있다.
몇몇 영화평론은 상업적인 영화를 찍는 감독들에게 공격적인 말을 서슴지 않는다. 내가 너무 대중성을 노리고 상업적인 영화만 찍는다고. 하지만 만일 내가 소수 관객의 권리를 위한 영화를 찍는다면 그게 오히려 가식적인 것 아닌가. 그냥 그런 영화로 상 하나 타기 위한 심산이 될 테니까. 난 영화를 찍기 전에 ‘관객들이 무엇을 원할까?’ 혹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려고 할까?’ 이런 생각부터 먼저 한다. 그런데 요즘 몇몇 젊은 감독들은 영화제에서, 예를 들면 칸 영화제나 베를린 영화제 같은 ‘영화제에서 어떤 영화를 좋아할까?’를 먼저 고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마치 상을 타기 위해서 영화를 만드는 것 같다. 그럼 그 영화 자체는 심사위원 몇 명을 위한 영화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그런 관점에서 생각하면 오히려 상업영화가 더 낫지 않은가? 난 소수의 심사위원을 위한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다수의 관객들을 고려하며 영화를 만든다. 전문적인 영화 매체와 인터뷰를 하다 보면 감독들과 예술을 논하고자 하는데 나는 좀 더 현실적인 상황을 이야기하고 싶다. 내겐 이 시장, 즉 중국의 영화 시장에 대한 진실된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 좀 더 추가한다면 좋은 감독은 많은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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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웃 블록버스터에 대항하는 수단으로서 규모를 키운 영화들을 제작하는 건 좋다고 본다. 다만 그런 환경이 내실을 갖춘 소규모 영화들의 발달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거다. 예를 들면 작년 지아장커 감독의 <스틸 라이프>같은 경우는 중국에서 개봉관을 잡지 못해 난항을 겪었다고 들었다. 반면, 장예모 감독의 <황후화>는 같은 시기에 대규모 개봉이 이뤄졌다. 이런 사태는 우려스럽지 않나?
일단 확실한 건, <황후화>가 중국에서 개봉했기 때문에 <스틸라이프>의 시장이 줄어든 건 아니다. 일단 <스틸라이프>는 중국에서 관객들의 관심을 부를만한 영화는 아니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그 영화가 영화제를 위해 만든 영화나 다름없기 때문에. 중국의 영화평론가들이 첸카이커 감독과 장예모 감독, 펑 샤오강 이 세 명의 감독들이 중국의 영화시장을 너무 크게 장악하기 때문에 소규모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의 영화가 많이 눌렸다고 이야기 하곤 한다. 그런데 1년 12달 중, 내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하는 건 기껏 한달 남짓이다. 내 영화가 개봉할 때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결국 11개월이라는 시간이 남는다. 그 나머지 시간 동안에 개봉되는 영화들의 흥행성이 떨어지는 건 결국 그들이 관객의 마음을 못 잡은 것 아닌가? 그건 우리 탓이 아니다. 작년, 중국에서 <스틸 라이프>보다 적은 예산으로 완성된 <크레이지 스톤(crazy stone)>이란 영화는 오히려 흥행이 좋았다. <스틸 라이프>보다도 더 소규모적인 영화였지만. 왜냐면 그건 영화제만을 고려한 영화가 아니라 관중들을 위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결국 예술성이 뛰어나도 흥행성이 전무하다면 좋은 영화라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인가?
그렇다. 그리고 나는 영화를 구분할 때, 상업영화와 예술영화로 구분하는 것보단 영화의 규모를 기준으로 구분하는 게 옳다고 본다. 대중을 위한 영화인가 소수를 위한 영화인가. 예술성이 뛰어난 영화는 처음부터 소수 관객을 위하는 영화니까 그런 영화가 흥행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왜냐면 애당초 출발하는 지점이 그러했기 때문에.

영화의 성향에 따라 흥행성에 대한 기대감도 맞추어야 한다는 건가?
애초에 영화가 지니는 태도에 따라 이루고자 하는 결과를 정확히 짚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긴 힘들다. 상도 타고, 흥행도 잘 된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나도 심사위원을 해봤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이 어떤 영화를 좋아할지도 잘 알고 있다. 그런 영화들이 많은 숫자의 대중에게 관심을 얻고 흥행에 성공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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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 지향의 판세에 따른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도 근래 몇 년 사이 대작영화의 흥행으로 규모가 큰 영화의 제작 편수가 많아졌고 그에 따라 제작비도 수직 상승했다. 그런데 그에 대한 부작용들이 오늘에 이르러 많이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대작 영화들이 항상 관객에게 사랑 받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런 영화들이 무너지면 시장 전체의 위기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물론 여러 가지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중국과 한국의 씬을 단순 비교한다는 건 어림없지만 이런 사례는 중국에서도 검토 대상이 될만한 사안 아닐까?
일단 내가 한국의 상황을 잘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만약 관객들이 소규모의 영화들을 선호해서 나타나는 상황이라면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만약 블록버스터가 외면당한다면 그건 관객들이 그에 싫증을 낸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 그것이 아니라면 분명 영화 내부적인 문제가 존재한다는 거다. 단지 규모에서 발생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그 때는 그 문제의 핵심을 먼저 파악하고 접근해야 한다. 관객이 좋아하는 방향에 따라 영화도 변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건 한국이나 중국이나 마찬가지다.

<집결호>는 최근 중국에서 제작되던 블록버스터들과 시대 배경이 고대에서 좀 더 현대로 옮겨져 왔다. 사실 고전적인 시대 배경과 무협적인 소재를 취하는 게 중국의 관객들을 공략하는 안전한 방법 아닌가? 그런데 <집결호>는 그런 코드와 무관하다. 어쩌면 일종의 모험이 될 수도 있다.
새로운 시도라고 본다. 난 처음에 코미디 영화로 데뷔해서 그 영화로 흥행 감독이 되었다. 그런데 이후에 다른 장르를 시도하니까 더욱 흥행했다. 관객들이 감독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좋아한다는 건 다행스런 일이다. 사실 <집결호>는 감동을 위한 영화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전쟁 영화를 선호하니까 전쟁으로 포장을 한 셈이라고 해도 좋다. 예전엔 중국에서도 전쟁영화를 많이 찍었다. 하지만 그건 국가 홍보용으로 찍은 영화들이라서 가식적인 메시지로 채워져 있었다. 홍보용이다 보니. 이번 영화를 위해 내가 직접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 팀을 찾았고, 한국의 MK 픽쳐스의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특수분장이나 특수효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한국의 스텝들과 같이 5개월 동안 많이 고생해서 찍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찍어놓은 영화를 보면 여태까지 중국에서 봐왔던 전쟁영화와는 정말 다른 생생한 작품을 찍어냈다.

<집결호>는 여러모로 <태극기 휘날리며>를 닮았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감독 당신에게 꽤나 인상적인 영화였나보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첫번째로 감동적인 스토리가 있다. 그 다음에 생생한 전쟁의 질감이 잘 묘사됐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이런 질감이 표현된 영화다. 난 유럽의 세일링(selling) 담당자들과의 대화 중, 전쟁영화를 언급해야 할 때는 <태극기 휘날리며>를 떠올린다. 이번 <집결호>를 위해 <태극기 휘날리며>의 스텝들이 많은 준비를 했고, 그 때보다 더욱 기술이 발전된 덕분에 <집결호>에 많이 응용됐다. <집결호>의 하이라이트 몇 장면을 중국의 스텝들에게 보여줬었는데 반응이 좋았다. 한국의 스텝들을 다 중국으로 초청해서 같이 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일 정도로. 구체적으로 지금 기획되고 있는 오우삼 감독의 <적벽>이나 루주안 감독의 <남경대학살>같은 영화에서도 적극적으로 그런 의견이 나올 정도다.

그런데 <태극기 휘날리며>는 외국의 힘을 빌리지 않고 한국의 기술로 완성된 영화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기술로만 완성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을 법도 한데?
강제규 감독이 <태극기 휘날리며>를 찍을 당시, 한국 스텝으로만 이 영화를 만들어 내겠다는 결심을 하고 촬영에 임했다고 들었다. 그렇게 <태극기 휘날리며>를 찍었기 때문에 좋은 스텝들을 양성할 수 있었고 이렇게 수준 높은 스텝들이 한국에 많아졌을 거다. 그런 면에서 강제규 감독이 한국과 아시아 영화에 공헌한 부분이 많다. 한편으로 강제규 감독이 그런 결심을 했던 건 일종의 모험이었고 큰 용기가 필요했을 거다. 나도 처음엔 <집결호>의 모든 스텝들을 중국인으로 쓰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중국의 스텝들은 솔직히 그럴 정도의 수준에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모험하기에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헐리웃 스텝과의 작업은 생각해보지 않았나?
만약 <집결호>를 한국의 스텝들과 할 수 없었다면 헐리웃의 스텝들을 초청하려 했을 거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비싸다. 그리고 만약 헐리웃의 스텝들이 중국까지 오려고 할 것인가도 미지수다. 그들에게 중국은 생소해서 위협적 일수도 있고 중국 시장의 성장을 생각한다면 경계심이 생겨 도움을 주려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한국 스텝과의 작업에 문제는 없었나? 언어소통 이라던지.
별로 그런 건 없었다. 좋은 통역도 있었고. 영화인들과 작업하다 보면 꼭 말을 다하지 않고
절반만 이야기해도 무엇을 말하는 건지 다 안다. 한국 영화계에 기술적으로 훌륭한 인재들이 많은 까닭은 한국이 그런 블록버스터급의 영화들을 먼저 시도했기 때문이다. <집결호>를 통해서 본 한국 스텝들은 할리웃의 수준, 혹은 그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한국이 소규모 영화의 제작만을 지향했다면 이런 인재들은 없었을 것이다.

의아했던 건 무술감독도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무술감독은 중국에도 많고, 오히려 더 유능할 것 같은데?
만일 쿵후 같은 무술 영화를 찍었다면 중국 무술 감독을 썼겠지만 <집결호>는 전쟁 영화이기 때문에 전쟁 영화에 정통한 좋은 무술 감독을 찾았지만 중국에 그런 분야에 걸맞은 무술 감독이 없었다. 그리고 폭파 장면 같은 위험한 특수효과를 위해서는 무술감독과의 싸인이 잘 맞아야 촬영 시 안전성 문제가 많이 줄어든다. 언어상의 소통이 되지 못해 사람이 다칠 수도 있으니까. 한국의 스텝들과 작업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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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작 형태의 영화 제작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는 헐리웃에 대항하는 비헐리웃 영화계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런 합작영화들이 앞으로 지닐 수 있는 비전을 생각해본다면?
합작영화는 좋은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홍콩과 중국의 합작영화가 많이 만들어졌고, 그 결과 현재 중국은 홍콩 감독들의 주류시장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과 중국 영화계가 기술 교류를 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한국과 중국이 각자 서로의 기술을 교류하면서 서로의 장점을 취하고 시장을 넓히는 계기가 될 테니까. 난 종종 한국 드라마를 부모님께 권해드리는데 그럴 경우 부모님도 잘 보시더라. 그런데 아마 미국 드라마를 권해드리면 좋아하진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같은 동양 사람이니까 가족에 대한 관념을 비롯해서 문화적 공통점이 많기 때문에 공감대의 여지도 큰 것 같다. <집결호>는 아시아 영화인들이 함께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스텝들이 한국 스텝들과 함께 작업하며 한국 스텝들의 우수한 기술력과 프로다운 의식수준을 많이 배웠을 거다. 결국 공동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긍정적인 현상인 셈이다.

오우삼 감독은 최근 본국으로 돌아와 <적벽>을 기획 중이지만 중국 감독 중 헐리웃에 진출해 성공한 대표적 케이스다. 본인도 헐리웃에 진출해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헐리웃의 기술을 이용한다거나 자본을 끌어들여 찍는 건 괜찮다. 하지만 난 중국의 영화를 찍고 싶다. 왜냐면 난 중국의 생활에 익숙하고 그런 모습을 잘 찍어내기 때문에. 내가 헐리웃에 가서 미국의 생활을 영화로 담아내는 건 어색한 일이다. 그런 건 미국 감독들이 더 잘 할 테고. 한국 영화는 한국 감독들이 만들어야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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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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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

조은지 인터뷰

interview 2008. 5. 30.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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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캐스팅으로 모델 활동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연기를 하게 된 계기는?
그 당시엔 모델들이 찍은 카다로그 같은 걸 보고 배우 섭외가 들어오곤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고.

다른 모델 출신 배우들처럼? 예를 들면 이나영 씨라든지.
이나영 언니는 나보다 몇 년 앞에 시작했고, 난 거의 마지막에. 배두나 언니, 공효진 언니나 다들 그런 식으로 먼저 배우로 진출했다. 나도 결국 막차를 탔고.

그럼 첫 영화가 된 <눈물>이 그렇게 찍게 된 건가?
그렇지. 그런 식으로 오디션 보러오라는 접촉이 왔다. 그리고 오디션 봤다가 출연하게 됐지.

그게 벌써 7년 전이다. 한마디로 배우경력이 7년차란 뜻인데 이런 말 듣게 되니 감회가 새롭진 않나?
아직까진 배우로서의 연륜이 쌓인 게 아니기 때문에 아직은 항상 신인 같기만 하고, 뭐 그렇지. 정말 많이 알려져서 유명세를 치르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출연 작품수가 꽤 많다. 영화도 10편 가까이 찍었고, 드라마도 세 편 정도. 그런데 그 중, 임상수 감독 영화는 2편이다. 임상수 감독님과의 특별한 친분이 생기진 않았나?
직품할 때마다 배우와 감독이란 사무적인 관계로 만났을 뿐, 그 이외에 사적으로 만나거나 연락하고 지낸 적은 없어. 아무래도 <눈물> 당시엔 내가 너무 어릴 때라 그다지 긴밀하게 친해지지 못한 탓도 있고.

첫 영화인 <눈물>에 노출씬이 있었어. 어린 나이에 엄청난 부담 아니었을까?
그땐 사실 너무 어렸을 때라 노출씬이 있을 거라 생각도 못 했었다. 노출해야 된단 이야길 들었을 땐 갑작스러워서 눈물이 막 나더라. 막 울다보니 촬영이 지연될 정도였지.

<눈물>을 찍기 전에 특별히 연기를 준비했던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연기를 했다.
처음엔 그냥 시키는 대로 했지, 아마? 그냥 그 땐 연기도 몰랐고. 사실 내가 배우나 연기자가 되겠단 생각을 전혀 못했을 때 갑자기 그런 기회가 왔었고. 우선 그 당시엔 한번 해도 좋을 것 같단 생각에 무턱대고 했지. 어떤 사람에게 그런 기회가 쉽게 오겠어. 결국 지금은 운명처럼 받아들인 셈이지만, 그 당시엔 좋은 기회라 생각했고 그래서 많이 따라갔고, 또 한편으론 하고 싶단 의욕을 많이 비췄기 때문에 많이 배울 수도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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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눈물>은 조은지 본인에겐 연기자라는 터닝 포인트라고 봐도 좋다는 이야기인데,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는 조은지의 두 번째 터닝 포인트가 아닐까?
같은 생각이다. 사실 처음엔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를 너무 하고 싶어서 덤볐지만, 그 이후엔 연기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왜냐면 30대 중년이 느낄법한 뼈아픈 심리를 내가 보여줘야 한다는 부분에서 부담감이 컸다.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 촬영 내내 오케이 사인이 나도 굉장히 신경 쓰였고. 마치 뒤가 구린 양? (웃음) 그래서 정말 ‘내가 잘 해서 오케이 사인을 받은 건가, 아니면 그냥 포기하신 건가.’ 이런 생각도 많이 했었고. 그리고 내가 스스로 항상 소옥의 심리를 마지막까지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도 좀 쉽지가 않았지. 사적인 자리에서까지 그런 감정을 놓을 수가 없어서 굉장히 힘들었던 것 같다. 그 생활이. 그래도 노력했던 부분들을 어느 정도 많이 봐주시는 거 같아서 다행이다. 사실 내가 그 전에 해왔던 역할들이 조금 도발적이고, 캐릭터 있는 연기를 했기 때문에 더 눈에 띠는 것 같기도 하고.

하긴 <달콤, 살벌한 연인>이나 <파리의 연인>에서도 두드러지게 눈에 띠더라.
그래서 스스로에게 조금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단 생각을 하게 되니 많이 부담스러웠지. 하지만 오히려 이전에 전혀 다른 연기를 보여줬기 때문에 이번의 연기가 사실 어색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다른 뭔가가 묻어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내 노력이 묻어난다는.

유부녀 역할은 두 번째다. 02년도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이하 <철없는>)에 이어서. 정말 그 땐 철없는 아내였는데, 이번엔 나름대로 성숙한 느낌이 물씬 풍기더라.
그런데 내가 솔직히 <철없는> 이야기만 나오면 굉장히 마음이 아프다. 왜냐면 사실 너무 좋은 영화였는데 내가 망친 것 같아서. 훌륭한 감독님의 좋은 연출과 좋은 시나리오, 그리고 좋은 연기자들과 함께 할 수 있었는데 내가 그 역량을 못 쫓아갔다. 그런 반면에 난 너무 큰 것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고. 물론 <철없는>을 의식하며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를 한 건 아니지. 솔직히 <철없는> 땐 중년의 원숙함이 드러나야 할 상황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는 보여줘야 했는데 그게 사실 안 됐거든. 난 다시 찍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후회가 남을 만큼 너무 좋은 작품이다.

후회가 깊게 남았나보다.
우선 죄송할 따름이지. 분명 더 잘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후회도 남고. 솔직히 그 당시 한국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영화라서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영화였을 것 같긴 했는데 난 시나리오 보면서 너무 재밌더라. 한국에서 이런 영화가 빨리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데 의욕에 비해 실력이 부족했던 거지.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때보다 지금 배우로서의 욕심이 더 생긴 탓일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라는 묘한 제목의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
솔직히 난 너무 의아했다. 내가 소옥 역을 봤을 때, 기본적으로 지금까지 해왔던 나의 연기와 성향 자체가 틀렸던 역할이었기 때문에 우선 첫 번째로 탐이 났고, 두 번짼 훌륭한 시나리오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영화로 보인 만큼 혹은 그보다 더 훌륭한 시나리오였고 그래서 너무 재미있겠단 확신이 생겼다. 무거운 소재임에도 무겁지 않게 잘 풀어갔단 생각이 들어서 이 작품을 꼭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일단 시나리오보기 전에 제목만을 본다면 꺼림칙하진 않았을까? 불륜의 뉘앙스가.
일단 그 당시에 그냥 제목만 보고 정말 세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 밖에는, 글쎄. 사실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가 불륜이란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한테 보여주기 위한 영화는 아니니까. 물론 그런 부분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코드가 있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냥 영화로 볼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난 그 캐릭터에 대해 욕심이 났었고, 내용 자체에서도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정말 재미있겠단 생각만으로 봤기 때문에.

나이차가 많이 나는 선배 연기자 두 분과 함께 출연했다. 나름대로 좋은 경험이었을 것 같은데.
일단 알다시피 두 분과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데, 내가 나이가 많게 나오는 역할이었잖아. 연기를 하는 상황에서 날 그냥 아줌마로 봐주셨기 때문에 나도 거기에 많이 맞추려 했고 우선적으로 선배님들이 내 눈높이에 많이 맞춰주셨다. 그런데 사실 내가 연배가 많은 선배님들과의 연기 경험이 많거든. 의외로. 그런데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같은 경우는 인물이 많지 않고 대부분의 씬이 한 공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이야기도 많이 나눴었고 덕분에 연기에 대해 많이 배우기도 했고.

많이 친해졌을 법한데.
지금은 말장난을 칠 정도로 친밀해졌다. 굉장히 좋으신 분들이라 많이 배려해주시더라. 사실 촬영 당시엔 서로 예민해지는 부분들이 많아서 그냥 일상적 대화만 했고, 깊게 나눌 수 있는 대화는 영화 끝나고 나서 더 많이 하게 된 것 같다. 크랭크업한 뒤에 부산 국제 영화제 같은데서 만나서. 좋은 소식이 많이 들려와서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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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연히 미니 홈피를 가봤는데.
다들 가 보셨나? 어째 다들 그러던데.

모 포털 사이트에 대놓고 떠 있다. 인터뷰 준비하는 입장에서 안 가보고 배길 수 있나. (웃음) 조은지 미니홈피 이렇게 당당히 떠있는데. (웃음) 그런데 영화 좋아하는 것 같더라.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를 찍는 동안, 두 선배님들은 영화를 통해 영화를 떠난다. 본인은 방에서만 찍어서 서운하지 않았을까?
사실 내 촬영분량이 없는데 촬영장에 놀러갔었다. 두 번 정도? 하지만 서운하고 그런 건 없었는데?

그래도 조금이라도 부러운 기분이나마 들지 않았을까?
아유~! 이거 뭐 부럽다고 대답해야 되는 건가? (웃음) 그건 아닌데. 아무 감정 없었어요.

협조를 안 해주시네. (웃음) 그럼 화제를 전환해서, 제작비가 많이 부족한 환경에서 영화를 찍었다고 들었다. 김태식 감독님은 집까지 저당 잡혔다고 간담회 때 밝히던데. (웃음) 어쨌든 그 결실이 드디어 빛을 본다. 외국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고. 나름대로 뿌듯하겠다. 개봉한다니.
지금 이 영화 찍은 지 2년 만에 개봉하는 건데, 사실 처음엔 이런 영화는 개봉을 해야 되는 영화니까 개봉을 할거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록 가물가물해지니..다들 열심히 찍었는데 잊힐 것 같다 생각하니 사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물론 모든 작품들이 그렇겠지만 정말 열심히 찍었기 때문에 이걸 선보일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되게 서운하고 그랬었거든. 근데 해외에서 너무 좋게 봐주니까 그런 계기로 인해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 자체가 나로서는 다행이지.

나름대로 외국에서 인정받고 있는 건 참 좋은 일이면서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되는 것도 한편으론 씁쓸하지만. 그런데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가 첫 영화인 김태식 감독은 현장에서 어떤 편인가. 지도를 많이 해주시는 편?
우선, 박광정 선배님의 연기에 대해서 감독님 자신이 너무 만족하고 계셨지만 난 바꿔야 되고 버려야 될 부분이 많았다. 감독님께서 그런 부분에 대해 계속 주의주시고 조언해 주셨다. 그게 많이 힘이 됐지. 그리고 감독님이 굉장히 재미있는 편인데 어느 부분에선 심오하다. 무거움과 가벼움의 그 중간이랄까. 그런 분이라 특별히 뭔가 어렵지는 않았다. 워낙 상황에 잘 맞춰주셔서. 그리고 덕분에 마음이 잘 맞아서 영화가 잘 된 거 같아. 내 생각엔.

좀 섬세한 사람인 것 같던데. 그런데 의외로 위트도 많은 편 인가 보다.
아, 맞다. 되게 섬세하다. 그래서 가벼운 농담은 전혀 못하신다. 주로 이야기를 듣고 한 박자 뒤에 웃게 되는 그런 농담. 사람을 생각하게 하고 ‘아~!’하면서 머릴 탁 치게 되는.

하이 레벨 개그를 즐기시는구나.
맞아. 하이레벨, 혹은 블랙코미디? (웃음)

한영애 씨의 ‘누구 없소’를 부르던 장면이 인상에 남는다. 노래 좋아하나?
나 노래방 되게 좋아한다.

즐겨 부르는 노래는?
이글스(Eagles)의 데스페라도(desperado).

의외로 감성적인 느낌인데? 좀 시원시원한 노래 불러제낄 거 같은데.
배우는 누구나 다 감성적이다. (웃음)

사실 조은지는 <파리의 연인>이나 <달콤, 살벌한 연인>의 왈가닥 이미지에 가까운 사람 같다.
사실 지극히 평범한데. 그냥 매일 밝은 사람은 아니고. 음, 뭐라고 해야 하나. 그냥 되게 평범해. 웃길 때 웃고, 안 웃길 때 안 웃고. 하긴 이건 다 그렇겠다. (웃음) 그냥 스트레스 받을 땐 짜증내고. 그런데 대부분의 배우들도 그렇다. ‘저 사람 정말 특이해.’ 이럴만한 배우는 만나본 기억이 없거든. ‘저래야 배우 되는구나.’라고 생각될 만한 특별한 면은 없는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더 대단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캐릭터가 강해보이는 외모다.
맞다. 외모!

그래서 더 오해가 생길 수도 있는 것 같다.
사실 모든 일에 있어서 어지간하면 웃어야 되고 그래야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눈물>을 찍을 당시, 굉장히 화기애애했다. 그 같이 출연하는 배우들도 또래이고, 감독님도 많이 장난치면서 우리한테 많이 맞춰주고. 근데 현장의 분위기와 무관하게 촬영 때는 ‘아, 이세계가 보통이 아니구나!’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삭막해진다. 그때 당시엔 내가 웃고 싶지 않은데 웃어야 할 때가 너무 많았다. 사실 살짝 고민했던 게 내가 이 직업이 맞는 건가 고민하기도 했다. 웃지 않아도 부드러운 인상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난 웃지 않으면 화난 것 같고 그 자리가 불편해 보인다는 오해를 산다.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분위기에 맥을 끊어버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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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은 나도 충분히 이해할 것 같은데! 나도 사실 아무렇지 않은데 왜 안 좋은 일 있냐고 물어서 곤란할 때 많다! (웃음)
반가운데! (웃음) 어쨌든 그래서 그 후론 많이 웃고 그러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 그래서 처음엔 힘들었는데, 확실히 웃는 게 좋긴 좋은 것 같다. 즐겁지 않아도 웃으며 일하면 정말 이게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주문에 걸린 것처럼 정말 사람이 즐거워진다.

아줌마처럼 뽀글거리는 파마도 했다. 아줌마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음. 우선은 목소리. 뉘앙스나 목소리 톤 자체, 그리고 아줌마들이 할 수 있는 특유의 행동 있잖아. 제스처 같은 경우에 신경을 썼지. 그리고 내가 결혼은 안했지만 연애는 했다. 그래서 똑같다고 생각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날 두고 다른 여자를 만나고, 그걸 눈치 채게 되고, 또 그걸 모른 척 하고, 내지는 용서하고, 그런 심정을 많이 인정하고 끌어갔다.

사실 소옥이라는 여자가 남편의 바람을 알면서도 많이 묻어가는 느낌이 들지 않나?
어떤 부분에서?

일단 영화에서 직접 어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뉘앙스가 보인다.
아, 그 전에 잘 넘겨줬다. 그런데 또 이번에 그런 상황이 터졌구나하는?

소옥이 태한에게 한탄하는 씬에서 많이 보이더라. 그렇게 생각하니 소옥이란 여자가 미련해보이지만 좋아하는 감정이 남으면 어쩔 수 없겠단 동정도 생기더라. 본인은 그 입장을 어떻게 이해했을지 궁금한데.
일단 정신 차려야지! (웃음) 그런데 이건 사람이라면 다 똑같은 거 같다. 사랑을 하게 되고 정말 이 사람 없인 못 살겠다는 기분, 정말 콩깍지가 씌워지는. 물론 냉정해서 감정을 잘 수습하는 분들이 있는 반면, 그 사람한테 목매는 사람도 있다. 소유욕 같은 게 강한 사람들 있거든. 그게 굉장히 크기 때문에 ‘그래도 난 이 사람을 가질 거야.’라는 생각을 하는 거지. 그리고 소옥이 그 후자 쪽이었던 거고. 뭔가 나한테 실수를 했어. 그럼 ‘다신 너 안 봐.’하고 돌아서는 사람이 있는 반면, 돌아서도 이 사람은 사랑하니깐 다시 돌아보는 거지. 그리고 어느 정도 동정도 있었던 거 같다. 중식에 대한.

중식 같은 경우는 ‘불륜은 없고 사랑만 있다’는 캐릭터다. 여자로서 그런 남자를 동정할 수 있단 말인가?
아으~! 솔직히 이해 안 되지! (웃음) 근데 사람들은 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자기가 하면 연애라고 하듯, 자기가 그 상황에 있지 않은 이상 그걸 받아들이긴 힘들다. 그런데 난 연기로써 그 상황에 놓여 있었고 그런 부분을 이해해야 했던 거지.

사실 의도적인 건 아니지만 태한은 소옥을 통해 중식에게 복수를 하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어쩌면 그건 소옥도 예상에 없던 한 번의 외도를 통해 남편의 외도에 역으로 복수를 하게 되는 것처럼 느껴지더라.
그럴 수도 있지.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끼리 그 상황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하게 되다보니. 왜 그 중간에 있잖아. ‘손님 와이프 바람났어요?’ 하고 소옥이 낄낄대다가, 태한이 ‘네.’ 라고 했을 때 엄습하는 침묵의 동질감처럼. 물론 감정에 의해 순간 이끌릴 수 있겠지만 은밀한 복수감도 있었던 거 같다. ‘너만 딴 여자랑 자냐? 나도 딴 남자랑 잔다’는. 태한 역시도 소옥이 중식의 아내란 걸 알고 왔지만 ‘내 아내와 잔 그 놈의 부인과 자면 복수하는 나도 거다’란 생각 같은 거 없이 동침하는 거니까. 그래서 그런 부분이 컸던 거 같아요.

뜬금없지만 나중에 진짜 아줌마가 되면 어떻게 살 거 같나?
나는 뭐, 그냥 잘? (웃음) 그냥 아줌마 되면 잘 살려고 노력해야지.

그럼 어떤 아줌마가 되고 싶어요?
네에~?? (웃음) 그냥 여유롭게 사는 아줌마 정도?

생각해보면 <철없는>도 단순히 인간관계만을 보면 삼각관계였다. 그런데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도 결과적으론 삼각관계다. 본질은 달라도 외면적인 규격이 비슷하니 비틀어서 비교를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철없는>은 레즈비언, 즉 동성간의 사랑이 소재였기 때문에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와는 비교할 수 없는 거 같다. 그리고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는 막판에 그래서 그렇지, 그 이외엔 그런 인상이 없잖아. 사실 하룻밤의 불타는 사랑정도에 그칠 뿐이지 소옥과 태한이 끝까지 연을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태한과 소옥이 잠을 잤다는 사실도 의아하고.

명확하지가 않지.
맞다. 그런 게 명확하지도 않으니 한편으론 관계를 놓고 말하는 건 무의미한 것 같다.

일본과 미국에서 리메이크 된다고 하던데, 민망한 질문이 될 수도 있겠지만 본인 역할을 누가 해줬으면 좋겠단 배우 있나?
아하하!! 아~, 창피해. (웃음) 누가 했으면 좋을까? 근데 아무래도 적당히 젊은 여자가 했으면 하지. 난 개인적으론 여자 배우 중에 메릴 스트립을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메릴 스트립은 나이가 좀. (웃음) 케이트 윈슬렛? 푸근하면서도 매력적이고. 정말 아줌마스런 역할도 잘 어울릴 것 같아. 비디오 상으로만 봐도.

얼마 전 <리틀 칠드런>이 기억난다. 꽤 어울리겠는데?
그렇지! 그분한테는 죄송하지만! (웃음)

7년이면 나름대로 오래 활동한 셈이다. 그 동안에 애착이 간다거나 기억에 남는 캐릭터 있을까?
사실 모든 캐릭터가 다 애착이 가지만 그중에 나와 가장 비슷했다고 생각되는 게 있긴 하다. 내가 일본 영화를 한 번 찍었었다. <호텔 비너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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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 씨와 함께 나왔던?
맞다. 그 영화에서 내 역할이 극중에선 나름 밝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면이 두드러진다. 그런 부분에서 솔직히 이 친구가 되게 와 닿는 것까진 아니었는데 그냥 좋더라. 사실 그 때는 그 모습이 내 상황이었던 것만 같았다. 배우로서 길을 헤매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한 애착이 많이 갔다. 그리고 아까 기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내 두 번째 터닝 포인트가 된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의 소옥 연기도 깊게 애착이 간다.

지금 캐스팅 돼서 준비 중인 영화가 있는 걸로 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핸드볼 영화고 여자이야기다. 임순례 감독 작품이기도 하고. 그런데 예전에 <아프리카>로 여자이야길 한적 있다.
그게 내 두 번째 작품이었지. <아프리카>가.

그런데 뭔가 반복되는 느낌이 든다. 첫 영화였던 <눈물>과 이제 개봉할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가 저예산의 독립영화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면, 두 번째 작품인 <아프리카>와 차기작인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여자이야기라는 것.
그러네! 그렇게 이야기하시니까 맞네! (웃음) 우연이지. 뭐, 좋은 작품들이고.

김정은 씨와는 두 번째로 만난다. <파리의 연인>이후로.
감회가 새롭지. 사실 드라마 같은 경우는 되게 빨리 진행되니까 서로 이야기를 할 자리도 없고 여유도 없었다. 그런데 요즘 같은 경우엔 핸드볼 연습 끝나고 나서 수고했다고 격려해주면서 같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리가 많아져서 우선은 좋다. 그리고 정은언니를 내가 어렸을 때 봐선지 항상 날 어리게만 본다. ‘네가 몇 살이라고? 말도 안 돼!’ 이러면서. (웃음)

처음 시작은 소녀였는데.
소녀? 양아치였지. 솔직히. (웃음)

너무 솔직한데. 나이는 소녀니까 그냥 소녀로 하자. (웃음) 어쨌든 이제 아줌마까지 왔다.
그럼 내년엔 할머니까지 가려나? (웃음)

본인은 자신이 어디정도까지 온 거 같나? 인생에서, 배우에서, 여자에서.
인생에서는 4분의 1정도 왔나? 그리고 여자로선..뭐라고 할까, 숙녀? (웃음) 그리고 배우는 한참 멀었지.

뭔가 하고 싶은 연기나 역할, 뭐 그런 거 없나?
사실 난 5년 전부터 똑같았다. 중성적인 이미지, 힐러리 스웽크처럼! <소년은 울지 않는다>에서 보여줬던 그거. 사실 5년 전부터 인터뷰를 통해서 어필했는데 아무도 안 불러준다! 그런데 주변에서 종종 넌 눈이 커서 무서운 역에 어울리니 공포물이나 해라! 그러더라. (웃음)

혹시 좋아하는 배우 있나? 구차하게 롤 모델까진 아니라도.
내가 친분이 있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난 솔직히 이야기하면 강혜정과 공효진. 물론 그 사람이 출연한 모든 작품들이 깊게 와 닿은 건 아니지만 그녀들의 최근 작품이나 대표작이 될 만한 작품을 보곤 욕했다. ‘미친년이야, 너는.’ 이러면서. (웃음) 정말 대단한 거 같다. 물론 더 훌륭한 연기 보여주는 분들이 많지. 그런데 지금 내 나이 또래에 저만큼의 성향이 있고 그걸 저만큼 뽑아낼 수가 있다는 것 자체가 난 되게 존경..같은 나이에 이런 말하려니 자존심 상하네. (웃음) 어쨌든 그러니까 대단하잖아! 솔직히 강혜정이 찍었던 작품은 세 번부터 여섯 번까지 다 봤거든. 한밤중에. 특히 강혜정의 <연애의 목적>이나 <올드보이>는 한 여섯 번 봤다. 그래도 볼 때마다 정말 대단하다.

연기자로서 배울 점이 많다는?
그니까 용기 있는 사람! 솔직히 강혜정이란 친구는 정말 배우라는 게 딱 맞는 사람이다. 그리고 진짜 용기 있는 배우다. 난 항상 강혜정을 보면 항상 배워야 될 것 같고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어떤 연기자들 같은 경우엔 항상 비슷한 이미지의 연기만 보여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 작품에 모든 걸 다 뽑아내지 않고 다음 작품을 위해 적당히 아껴두는, 머리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마음으로, 가슴으로 연기하는 배우들도 많지만 강혜정이란 배우는 한 작품에 혼신을 다하는 것 같다. 막말로 혼신을 다한다는 게 쉬운 건 아니거든. 그런데 강혜정은 그런다. 그래서 대단하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고.

상당한 호감인가보다. 강혜정 씨의 연기가.
난 진실된 게 좋다. 왜 그런 거 있잖아. 관객의 눈에 띠는 연기를 고민하기보단 남들 눈에 띠지 않아도 뒤에서 빛을 발하기 때문에 눈에 들어오는 연기를 주시하고 본다. 그리고 그런 걸 할 수 있는 게 참 대단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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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젊은 나이인데 좀 평범하면서도 예쁘게 보이는 여자 캐릭터를 한번쯤 해보고 싶진 않을까?
아니, 내가 민망할 것 같아. (웃음) 사실 난 나와 친한 사람, 그러니까 내 지인들한텐 상당히 애교를 떤다. 귀여움을 피우는 거지. 그리고 그것도 사실 여성스러운 매력이잖아. 그런데 그런 것까진 할 수 있어도 굉장한 비련의 여주인공 내지는 굉장히 예쁘고 섹시한 캐릭터는 솔직히 좀 아니다. 솔직히 그건 아니지. (웃음) 그런데 <미녀는 괴로워>에서 김아중은 참 대단하더라. 본인 자체가 너무 예쁜데 그런 역할을 그렇게 멋지게 소화해냈다는 게 참 대단하더라.

그런데 본인도 감초 같은 역할을 많이 했다.
한약이다. 난, 몸에 좋은. (웃음)

그리고 아직 자신은 배우로서 연륜이 쌓이지 않았다고 했다. 앞으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연륜이 쌓이면 하고 싶은 역할이나, 혹은 배우로서 욕심을 부리고 싶은 꿈이 있나?
아까도 말했듯 <소년은 울지 않는다> 같은 중성적 이미지가 될 수 있겠지. 물론 어떤 배우들이 됐건 역할의 비중 같은 부분에선 어느 정도의 욕심이 다 있기 마련이지. 내가 좀 더 잘 할 수 있고, 좀 더 많이 보여서 또 다른 기회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나도 그런 욕심은 많은데 솔직히 아직까진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 아직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이 있기도 하고. 지금은 되게 어린 배우들이 많이 데뷔한다. 어린 친구들이. 어떻게 보면 내 나이를 봤을 때, 난 중간에 딱 걸쳐있는 그런 배우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어쨌든 지금 아직도 난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으니까, 연기라는 것 사실 잘 모른다. 그래. 감초. 좋지.

나름대로 맛을 내려면 감초가 필요하니까.
그럼. 영화가 맛을 내려면 나같은 감초가 필요하지!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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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

박지아 인터뷰

interview 2008. 5. 3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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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하더라.
영화 자체가?

아니, 박지아란 사람이. 내가 연극을 잘 보는 편이 아니기도 하고. <숨> 이전에 김기덕 감독의 영화 두 편에 출연했다는 사실 말곤 확실한 게 없더라.
그래. 내가 생소했겠지. (웃음)

일단 <숨>의 연은 평범한 캐릭터가 아니었는데 캐릭터를 이해하는 게 쉽진 않았을 것 같다. 물론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다 그렇지만. 예전에 출연한 <해안선>이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도 그랬듯이.
쉽지가 않았다. 항상 그렇듯이. <숨>은 표면적으로 남편의 바람으로 인해 사건이 벌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내가 캐릭터를 이해하는 관점은 그보다 깊어질 필요가 있었다. 남편의 바람 때문에 발생한 치정문제로는 납득이 안 되더라. 그래서 과거를 스스로 설정하고 거슬러가야 했다.

캐릭터의 과거를 스스로 가정한 건가?
그런 셈이지. 이 여자에게 분명 결혼 전, 연애기간이나 중매 기간이 있었을 테고 결혼해서 애를 낳는 어느 정도의 세월을 짐작해가는 가정 하에서부터 시작을 했다. 이 여자가 이렇게 된 데에는 남편하고의 결혼 생활, 혹은 그 이전에 남편과는 상관없었을 수도 있는 과거의 기억들, 즉 유년 시절이나 가정사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 같은 것들. 아예 캐릭터의 처음을 설정하고 상상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런 이해를 지니고 있어야 드라마가 엉성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짧은 기간이지만 촬영하는 내내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영화에서 드러나지 않는 캐릭터의 내면까지 다 받아들이고 생각하려고 한 거지. 물론 표현되는 게 쉽진 않으니까 그런 것들이 영화에선 단순히 그저 그렇게 표현됐을 수도 있겠지만, 난 <숨>을 위해서 캐릭터의 이전 상황들을 좀 많이 갖고 가는 것으로 시작해서 촬영에 들어갔던 거다.

<숨>을 보고 나니, 만약 ‘<시간>의 연인이 <숨>의 부부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란 생각을 했다. 그 지독한 사랑이 이런 애증으로 발전했다 생각하면 그것도 재미있을 거라고.
아까 말씀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 같은데 내 상대역인 하정우 씨와 촬영하며 의견을 많이 교환했었다. 하정우 씨 같은 경우는 나보다 시나리오를 먼저 받았었고 시나리오가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을 봤던 상황이기도 했고.

하정우 씨보다 캐스팅이 늦었나보다.
하정우 씨가 이미 되어있었고 내가 나중에 된 거지. 어쨌든 정우 씨한테 내가 ‘이게 단순히 남편의 바람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도 여러 가지 추론도 해봤다’고 하면서 의견을 내놓는데 내 생각하고 많이 다르지 않더라. 그런 식으로 그 이전 상황들을 추측했지만 그 부분이 아까 말처럼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어떤 한 사람의 작품이 지난 작품들과 연관을 가지면서 맥락이 이어질 수 있는 것처럼 김기덕 감독님의 영화도 그런 것 같다. <숨>의 부부관계를 놓고 생각해보면 <시간>과 연관 지을 수도 있고, 또 4계절을 묘사하는 걸 보면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을 그려볼 수도 있고, 또 여자가 추후에 남편의 아내로 복귀하는 양상을 보면 <해안선>이 떠오르는 부분이 없지도 않다. 작품 간에 일부일지라도 연관 지을 수 있는 코드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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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에서 찰흙 공예 하는 장면 있잖나. 설마 직접 만든 것?
아, 그건 작가분이 만들어 주신 거다.

그래도 나름대로 작품에 손질하는 모습이 나오던데, 원래 취미가 있던 건 아닌가?
촬영 전, 그런 부분에 대한 대비가 필요할 것 같아서 조금 준비를 했다. 다행히 아는 분 중 공방하는 분이 계셔서 어설프지 않으려고 며칠 공방을 다니면서 연습을 하고 간단한 기술을 익혔다. 물론 쉽지가 않더라. 그냥 간단하게 감독님이 써준 시나리오 내에서 내가 따라할 수 있는 걸 배워서 흉내 낸 것뿐이지. 그리고 그런 걸 하려면 손톱을 기르면 안 된다 그래서 손톱도 다 잘랐었다.

일단 김기덕 감독 영화에 세편이나 나왔다. 그리고 세편의 영화에서 비중이 크건 작건 어두운 이미지의 역할을 소화했고. 그런데 이번 <숨>에선..
무슨 말 할지 알겠는데? (웃음)

짐작했겠지만 노래 부른 것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어이없진 않았을까? (웃음)

당황스럽긴 했지. (웃음) 일단 배우한테도 놀랐지만 김기덕 감독 영화에서 이리 발랄한 장면을 본 적이 있었던가 싶어서 놀랍기도 했다. 어쨌든 일단 <숨>을 포함해 이 배우가 기존에 보여주던 이미지와 너무 상반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좀 깬다는 기분? (웃음)
내가 처음에 시나리오 받고 생각한 건 사실 근사한 그림의 4계절을 불러내는 멋진 여배우였다. 봄의 사랑, 여름의 사랑, 가을의 사랑들을 내가 멋지게 장첸에게 선물하는 모습들을 상상하고 준비했었다. 그러니까 시나리오를 봤을 땐 근사하게 4계절을 노래하는 프랑스 여배우 같은 그런 근사한 이미지를 생각하고 자뻑했던 거지. (웃음)

그런데 영화에서는 지독하게 발랄하지 않나? (웃음) 어쩌다가?
감독님 생각에는 그럴 수 있는 여잔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충분히 따뜻하고 밝은 면이 있고 어설프더라도 누군가에게 애교도 떨 수 있는 여자인데 상황이 그 여자를 그렇지 못하게 만드는. 그래서 그 상황에서 그 여자가 보여주지 못하는 속내를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고. 사실 난 노래만 할 거라 생각하고 노래만 그냥 외워서 와서 감독님한테 ‘노래만 하면 되죠?’하고 물었더니 ‘율동도 해야지’하시더라. (웃음)

율동도 직접 짠 건가?
직접 짠 거다. 점심시간에, 잠시 시간 줘서. 사실 내가 ‘노래도 못하고 율동도 어설픈데 지금 이렇게 급조하듯 하게 되면 굉장히 어색하고 화면에 이상하게 보일 텐데, 그냥 내가 애초에 생각했던 것처럼 근사하게 분위기 잡고 노래하는 걸로 가면 안 되겠냐’고 제안했었다. 그랬더니 ‘노래 못해도 되고 율동이 어설퍼도 된다. 그냥 그런 마음이 있는 여자의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거니까 노래도, 율동도 더 신나게 해라. 네가 진심으로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 따듯한 마음을, 사랑을 보여주면 된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그걸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더라. 그런 선물을 주고 싶은 사람인데 줄 사람도 표현할 수도 없는 여자의 상황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거지.

준비했던 이미지와 달라서 당황이 많이 됐을 것 같은데.
그것보다 그 장면 찍을 때 장첸이 심각하게 문을 열고 막 들어와서 내가 노래를 시작하니까 못 견디고 막 웃더라. 그래서 애먹었다. (웃음) 어쨌든 감독님 말씀처럼 굳이 근사하게 해야 될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내가 원래 생각했던 부분을 버리는 건 상관없었는데 좀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초반 작업할 때쯤엔 내가 노래도 잘 못하고 괜히 엉성하게 어설픈 코메디같은 장면이 될 것 같아서 부담이 많이 됐었는데 시사회에서 보니 그냥 애교스러운 정도와 비스무리하게 느껴져서 약간 안심이 됐다. 또 어떤 분들은 김기덕 감독님 영화에 이런 밝은 장면이 거의 없어서 그 점을 좀 예쁘게 봐주신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다행히도 잘 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웃음)

어쨌든 그 장면이 개인적으로 꽤 재미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노래는 잘 못하더라. (웃음) 어쨌든 이야기 듣고 보니 노래를 잘 했으면 의도와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 돼 버렸을 수도 있었겠단 생각이 든다.
난 잘 한 거 같은데. (웃음) 영화가 그렇게 나와서 어쨌든 다행스럽기도 하고. 감독님께서도 노래를 잘 하는가 못하는가가 보단 노래를 통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부분으로 표현해주길 원하셨던 것 같고. 사실 그 때 일단 나부터 감기까지 걸렸고 현장이 막 급박하게 돌아가서 정신이 없었다.

하긴 서대문 형무소를 가봐서 알지만 바람도 잘 통하는 곳일 텐데. 겨울에 봄옷입고, 여름 옷 입고. 꽤 추웠을 것 같다. 감기를 달고 살았을 것 같은데.
정말 감기에 너무 많이 걸렸다. 콧물이 막 질질 흐를 정도로 심하게. 장첸이 보다 못해서 알약을 주더라. ‘이거 진짜 잘 듣는 거니까 먹으라’구. 그리고 난방기를 떼놔도 열이 오질 않더라. 그냥 닿는 부분만 잠깐 뜨겁고 그것마저도 촬영 들어가면 켤 수도 없었지. 그리고 조명기도 몇 대 없었고. 그래도 촬영 전에는 벌벌 떨고 있다가 슛 들어가면 아무렇지 않게 얼른 하고, 계속 그랬다.

길에는 눈이 버젓이 쌓여있는데 여름옷입고 걸어가는 장면은 보는 내가 다 춥더라. (웃음)
지금도 생각만으로 살 떨리는 것 같다. (웃음)

그런데 중간에 아이가, 속된 말로 오두방정 떨면서 (웃음)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도 뜬금없었다, 한 편으로 웃기기도 했고.
사실은 그 씬이 그냥 엄마가 들어와서 애가 잠든 모습을 보는 그런 장면이었는데 그렇게 바뀐 거다. 근데 내 생각엔 아마 감독님은 엄마가 없을 때는 그렇게 까불 정도로 밝은 어린 애가 엄마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멈추는 아이의 행동과 표정을 보여주면서 이 여자의 삶도 같이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애가 느끼는 엄마가 그런 거지. 엄마가 들어와서 반갑게 엄마한테 달려가는 게 아니라 자신이 했던 걸 멈춰야 될 것 같은. 함께 그림을 그리던 좋은 시절도 있었지만 그 시간이 지난 그 때, 아이에게 엄마가 조금 이상하다 느낄 수밖에 없는 직감적인 것. 애기 입장에선 엄마가 뭔가 이상하고 본능적으로 부담스러움이 느껴지는 불안감의 심리 같은 게 표현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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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숨>에 출연해서 김기덕 감독 영화만 세편 나왔는데 김기덕 감독과 인연이 된 계기는 뭔가? 처음 <해안선> 때 오디션이 있었단 말은 들었는데.
그 당시 오디션이 있었고 오디션을 봤었다. 그때가 김기덕 감독님께서 <나쁜 남자> 끝내고 <해안선> 준비할 때였고 난 공연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내가 하던 공연에 <나쁜 남자>에 출연했던 배우가 출연하던 중이었고 감독님은 <나쁜 남자> 개봉 후, 격려차 공연 보러 오셨다가 나를 본거다. 그런데 그 이전에 한번 뵌 적이 있었다. 감독님께서 그 때를 기억하셔서 ‘아, 그때 만났던 사람이네.’ 하시더라. 그런데 <해안선> 오디션 있다는 말을 내가 듣게 되었고, 그래서 원서를 내고 오디션을 참가하게 됐다.

아. 우연찮게 눈에 띈 게 도움이 된 셈?
그런데 감독님이 날 염두에 둬서 오디션을 보러 오라고 했던 건 아니었다. 그냥 내가 예전부터 김기덕 감독님의 작품들을 워낙 좋아해서 오디션이 있단 말을 듣고 스스로 찾아간 거지. 운이 좋았다고 할까.

어쨌든 <해안선>은 오디션을 통했었지만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때는 감독님의 부름이 있었을 것 같은데?
<해안선> 촬영 후, 한참 시간이 지난 다음에 감독님과 우연찮게 만나서 같이 밥을 먹게 됐는데 감독님께서 말씀하시더라. ‘지금 준비하는 영화에서 얼굴을 다 가리고 나오는 여자가 있는데 역할이 그래서 캐스팅하기가 쉽지가 않네. 그냥 지아가 하면 되지 않으려나?’ 라고 농담같이. 그래서 내가 하겠다고 해서 하게 된 거다.

<숨>도 마찬가지인가?
감독님 말씀으론 <숨>의 시나리오를 써놓고 여러 배우들을 생각했다가 내가 해도 괜찮겠단 생각을 갖고 계셨다더라. 그러다가 내게 전화를 하셔서 스케줄이 어떻게 되냐고 한번 물으신 적이 있었다. 그렇게 통화 끝내고 한참 지나서 다시 전화가 왔다. 그 때 내가 공연 할 때였는데 공연 전에 시간 잠깐 낼 수 있겠냐고 해서 그렇게 만났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썼는데 한번 지금 읽어봐라’고 하셔서 감독님과 만난 카페 그 자리에서 한 한 시간 동안 다 읽었다. 읽고 나니 감독님께서 ‘어떠냐, 해보고 싶은 생각 있으면 같이 하고 싶다’고 하셔서 하게 된 거다.

솔직히 <숨>도 쉬운 영화는 아니잖나. 일단 이야기의 맥락은 짚어지지만 세부적으로 상징과 은유로 채워져 있어서 그걸 읽어내는 건 쉽지 않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만만치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 법한데. 캐릭터 자체만 봐도 그렇고.
그러니까 욕심이 너무 나는데 사실 그 반대편에선 쉽지 않겠다는 생각 때문에 걱정이 들더라. 근데 너무 욕심이 나서 내가 하겠다고 덥썩했지. (웃음) 걱정은 일단 그 다음으로 미루고. 내가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사람의 만남을 절박하게 갈구하는 상황이라는 게 와 닿더라. 물론 영화에 표현되는 현상을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내가 처음 시나리오를 읽은 느낌은 그랬다. 그러니까 그냥 남편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자기 삶에서 숨 쉴 수 없어서 어디선가 호흡하고 싶기에 편안한 숨을 필요로 하는 여자가 숨이 필요하지 않은 남자를 찾아간다는, 그게 너무 절박하게 와 닿아서 그걸 잘 표현해내지 못할까봐 일단 걱정이 많이 됐지. 그러니까 너무 안 됐더라고. 느낌이.

한편으론 연이 팜므 파탈스럽게 느껴졌다. 되게 악역 같다는 생각. 지독하게 고독한 장진의 낙을 끌어내어 이 남자의 밑바닥에 남겨진 생기를 죄다 빨아들인다는 느낌이랄까? 알고 보면 지독하게 나쁜 년인 거다. (웃음)
아, 그렇게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일단 감독님 영화가 말이 별로 없잖나. 그래서 생기는 일 인거 같기도 한데. 물론 모든 영화가 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해석이 많이 틀려지기도 하지만 특히 김기덕 감독님 영화가 그런 면이 좀 큰 거 같더라. 영화의 코드를 자기의 생각들과 맞추는 거지. 결국은 영화를 보고 나면 정말 상상도 못했던 얘기들을 할 때가 있으니까. 그런데 방금 전의 이야기도 그렇게 이해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쉽게 보면 장진을 위로하러 간 거지만, 사실 결과적으론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면 될 사람을 일 년이란 시간을 주면서 괴롭힌 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냥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고 어차피 죽을 사람인데 괜히 내가 그를 구해줄 수도 없으면서 꼭 구해주는 양, 봄을 주고 여름을 주고 가을을 주고, 결국 자신은 아이가 있고 남편도 있어서 결국은 가정으로 돌아가 버리는 여자니까. 어떻게 보면 나쁜 여자인 셈이지.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는 것 같지만 자기 욕심만 채우는 나쁜 여자인 셈이지.

한편으론 노골적이진 않아도 연이 남편에게 은근히 복수를 꾀하는 것 같았다. 남편의 외도를 자신이 답습하면서 그것을 남편 앞에 고의적으로 전시하는 듯한. 그러면서도 남편에 대한 일방적인 증오를 보이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남편 되게 사랑했나봐. 그래서 그런가. 그게 일방적인 시선에서 보면 연이 장진이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그 이전에 너무 사랑했었던 남편이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으니까 다른 누군가에게 표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사랑이 다른 어디로 보내지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사랑했던 거 같아. 남편을. 그니까 미워서. 바람피워서 미운 게 아니라 너무 사랑하는데 그 사랑을 외면하니까.

그래서인지 장진이 불쌍하고 연이 사악해보이더라. 장진에겐 껍데기 같은 사랑을 전하니까.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김기덕 감독님하곤 세 번째인데 현장에선 어떤가. 이젠 나름대로 익숙해졌을 법한데.
음, 질문하면 답해주는 편이다. 굳이 여기선 이렇게 해야 된다는 답을 갖고 계시진 않고. 본인이 쓰려고 생각한 그림들은 있겠지만 배우에게 그 그림처럼 해줘야 된다는 요구보단 이미 이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맡긴 배우의 감정이 흘러가는 걸 기다려주고, 본인은 이렇게 생각했지만 배우는 저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배려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야겠다는 정답에 배우를 맞추고 캐스팅한단 느낌은 안 든다. 그냥 같이 하자고 할 땐, 그 배우가 다르게 표현해도 진실 되게 표현할만한 애니까 같이 하자고 하는 것 같다. 이미 캐스팅할 때부터 그냥 그 배우를 믿는 느낌이랄까.

그다지 많은 걸 요구하기 보단 배우들의 본능적인 감각을 끌어내고, 요구할 것만 같은데.
일단 말이 없으시다. 그래서 여기서 이렇게 하고 여기선 어떻게 하고 그냥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그렇게 따라가면 되는데 그걸 안하시니까 나름대로 더 생각을 많이 해야 된다. 반대가 되는 거지. 자신을 최대한 스스로 끌어내게 되는. 그러니까 지금 이 씬에선 내가 뭘 해야 맞는지를 본인 스스로 체크하지 않으면 뭘 할 수가 없다. 말씀을 잘 안 해주시니까. 한편으론 그런 게 감독님의 방법일 수 있는 거고.

오히려 무언의 압박이 되겠다.
그럴지도. 일단 그래도 자연스럽게 내가 뭘 하면 되겠단 생각이 드니까 큰 부담까진 아니고.

김기덕 감독은 언제나 그렇지만 이번에도 단기간에 영화를 완성했다. 쉽지 않은 내용과 어려운 캐릭터를 단기간에 이해하고 설정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
뭐, 어렵지. 그냥 연기를 하는 것도 난 아직 어려운데 짧은 시간에 촬영이 끝나가니까. 촬영 전에 시나리오를 볼 땐, 이 씬에서 내가 취해야 될 반경이나 영화상에서 해줘야 될 부분들이 이런 느낌이란 걸 미리 파악하고, 오늘 이 씬은 이렇게 해야겠단 생각으로 현장에 간다. 그런데 막상 촬영이 끝나고 집에 와서 생각해보면 오늘은 이것도 못했고, 이 씬도 망쳤고, 이 씬도 망쳤고, 찍는 내내 그랬다. 그래서 촬영이 다 끝나고 걱정을 많이 했고, 시사회 한다는 말 듣고 긴장되더라. 내가 내 눈으로 봐야 되니까, 내가 망친 것들을. 그런데 영화란 건 나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다보니 내가 망쳐버린 것들을 이렇게 저렇게 편집하고, 음악도 들어가고, 많은 것이 더 첨가되면서 혼자 막연히 걱정했던 것보단 무난하게 넘어가게 된 것 같다. 그 짧은 시간동안 찍으면서 인물에 몰입하기 위해 걱정했던 것들이 내 능력과 무관하게 결과적으론 나왔으니까.

대부분 배우들이 겸손하게 그렇게 말하더라. 난 연기 못했는데 편집을 잘했더라고. (웃음)
난 진짜 못 했다. 그런데 촬영기간도 짧아서 걱정을 많이 했고.

영화에서 대사가 별로 없다. 처음 대본을 받아보고 ‘왜 내 대사는 별로 없어.’하고 투덜거렸을 법도 한데. (웃음)
처음 <해안선>때도 대사가 없었지. 그래서 이건 뭐, 막막했지. 가령 ‘화를 낸다’를 어떻게 화를 내라는 건지, 손을 올리라는 건지 아니면 인상을 쓰라는 건지. 그때는 그랬다. 그런데 이번엔 그런 걱정은 안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최근 이런 질문들에 답하다보니 스스로 생각하게 된 건데, ‘아, 큰 걱정은 안하고 찍었네!’ 싶더라. 그러니까 <해안선> 땐, 대사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고민스러웠는데 이번엔 걱정을 별로 안하고 찍었더라. <해안선>때와 달리 요령이 생겼다고 할까. 말을 하고 안하고에 따라 방법이 달라지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거지. 예를 들면 배고프다는 걸 내가 ‘배가 고파’라고 말을 하는 것과 ‘아~’(배고픈 시늉)라고 하는 것과 같이 방법이 틀려지는 거라 생각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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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김기덕 감독 영화 두 편에 나온 게 연습이 됐을 법도 한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어있더라.

그런데 평범하지 않은 연기를 하다가 평범한 연기를 하면 되레 더 힘들지 않을까?
그런데 내가 사실 평범한 것도 많이 한다.

아, 연극 말인가?
맞다. 내가 영화를 통해 노출된 건 조금 세고 비정상적인 인물들이었기에 나 자신조차 많이 어둡게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연극에선 그렇지 않았다. 물론 연극도 무난하지 않은 연기를 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영화보단 훨씬 평범한 역할을 한 적이 많다. 어쨌든 나 자신은 내가 표현해내는 것들에 애정을 지니는 편이다. 그리고 사실 난 코미디영화도 너무 좋아하고, 재미있고 웃기는 걸 많이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숨>은 마치 연극을 보는 것 같기도 하더라. 특히 연이 장진을 면회할 때, 연이 벽지를 바꾸는 장면들은 마치 무대에서 배경을 전환하는 작업처럼도 느껴졌다. 연극을 한다는 기분도 느껴졌을 것 같은데?
물론 들었지. 그게 왜냐면 봐서 알겠지만 보안과장이 모니터로 보는 씬들 있잖나. 그게 결국엔 누군가의 관점에서 나를 보는 행위가 되니까. 마치 내가 창문을 통해서 누군가를 관찰하면 창문 너머의 광경이 무대가 되는 것처럼. 또 지금 이렇게 인터뷰하는 모습을 기자님이 카메라로 찍어주면 이게 무대가 되는 거고. <숨>에서도 보안과장의 모니터가 보는 공간은 무대가 됐던 거지.

그럼 영화와 연극을 겸한 입장에서 영화와 연극의 차이가 많이 느껴지겠다.
음. 물론 큰 차이가 있겠죠? 연극과 영화는 일단 크기부터 굉장히 차이가 나니까. 그런데 난 그 차이를 알겠지만 그냥 모른 척 하고 싶다. 배우는 누구인척 하거나 어떤 인물인척 하는 게 아니라 그 인물의 진심을 말하거나 대신 이야기해주면 되는 거다. 근데 그건 무대에서나 영화에서나 마찬가지다. 물론 카메라 앞에선 고갤 어떻게 돌려주면 예쁘게 나오겠단 생각을 할 수 있고, 무대에선 내가 어떻게 걸어야 그 인물답겠다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사실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것일 뿐이지. 그 인물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하는 건 영화든 연극이든 마찬가지니까. 다른 부분이 많지만 난 크게 다르지가 않다. 결국은 연기를 하는 거니까.

그럼 혹시 무대나 카메라 중 어디가 더 편하다는 생각은 없나?
다 불편한데! (웃음) 무대는 무대대로 매일 매일이 너무 고통이고, 또 영화는 영화대로 카메라 앞에 서는 순간마다 그렇다. 그런데 그냥 아닌 척 할 뿐이지. 내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가의 과정이 아니라 관객은 결국 결과를 보게 되니까.

그런데 연극은 극이 끝나면 바로 청중의 박수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영화는 그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시간을 기다려야 된다. 두 장르를 끝낸 뒤의 감흥의 차이는 있을 것 같은데?
조금 시간이 좀 달라지는 거지. 공연은 커튼콜이 끝나는 순간, 오늘 공연이 어땠는지 바로 듣게 되는 거고, 영화는 촬영이 끝나고 작품이 완성된 후에 영화를 본 관객의 평이 따르는 거고. <숨>도 개봉하면 관객 평이 막 올라오겠죠. 누군가는 인터넷에 ‘거지같았다!’ 이럴 수도 있는 거고. (웃음) 결국 공연보고 공연평 올라오는 거나 마찬가지지. 단지 연기 후 평가가 따르는 유예기간이 있는 거랄까.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예전부터 원래 좋아했다는데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사실 여성에게 불쾌하게 여겨질 부분이 있다. 물론 함의는 그게 아니라 해도 단순히 현상을 받아들이면 여성으로서 불쾌해질 수 있는 거다. 여자로서 그런 부분이 의식되진 않던가?
<해안선> 끝나고 몇몇 글에서 여자를 폄하하는 거 아니냐는 글을 봤다. 그 때 또 한참 페미니즘이니 하면서 여성인권에 대한 시선이 부각되는 때였고. 그런데 영화라는 건 그런 이야기들을 해야 되는 것 같다. 감독님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 그 이야길 하면 되고, 거기 반대하는 의견이 있는 이는 글을 올리는 거고, 또 이 사람들의 말에 다른 의견이 있으면 그건 아닌 거 같다고 말하면 되고. 그런데 뭐가 옳다거나 나쁘다는 이야기를 할 건 아닌 거 같다. 현실적인 문제제기는 그런 부분을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이 하면 되는 거지. 저널리스트든 사회운동가든. 그리고 영화에서는 극단적일지라도 창조적인 허구를 통해 현실을 짚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 <해안선>이 여성을 폄하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동시에 그런 상황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잖아.

<해안선>과 <사마리아>는 비슷한 국면이 있었다. 여성이 피해자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론 남성들의 비루한 욕망을 구원하는 출구 같다는. 오히려 난 남자란 게 저 정도밖에 못 되는 존재인가 싶더라. 그런데 <해안선> 찍을 땐 힘들었을 거 같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처음이기도 했고.
처음이어서 좀 힘들었지. 그런데 사실 내가 <숨>보단 <해안선>때가 나았다. (웃음) 그때는 멋모르기도 했고, 촬영하던 섬도 너무 좋았었다. 힘든 걸 되게 즐거워했었던 것 같고. 지금은 그때보단 나이도 좀 들었고, 그때와 다르게 책임감이 더 많아지기도 했고. <숨>이 더 힘들긴 힘들었던 거 같아. 심리적으로.

영화 찍다보면 시나리오도 많이 변하잖나. 그런데 듣는 바에 의하면 김기덕 감독님은 전환이 굉장히 빠르다더라. 그래서 영화도 단기간에 완성되는 거고. 그런데 기존 이야기의 포맷이 금방 금방 바뀌는 순간들을 박지아 씨는 적응하기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면 즉흥적인 연기가 필요한 연극을 많이 경험했으니까. 그래서 어쩌면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박지아란 배우가 참 어울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바뀌는 부분들이 내가 관통하고 있는 연이라는 인물 안에서 정해지지 바깥에서 뜬금없이 변화가 요구되진 않는다. 그러니까 배우가 그냥 그 인물만 잘 취하고 있으면 이렇게 저렇게 상황이 바뀌어도 이렇게 저렇게 취하면 되니까. 사실 감독님이 특별하게 요구를 하는 부분도 별로 없고. 그런데 그게 나여서가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아마 비슷할 거다. 그 인물에 대한 것만 갖고 있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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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첸과 호흡을 맞췄는데 장첸이 한국말을 못하니까 애로사항이 없지 않았겠다.
그런데 알아듣는다. 내가 뭘 하려는지. 예를 들어서 뭘 살며시 들어서 ‘당신을 때리려고 해’를 표시 안 해도 알고 대응하는 식이다. 일단 시나리오 자체를 이해하고 있으니까. 그 정보 안에서 내 말의 뉘앙스와 감정의 표현을 받을 줄을 알더라. 사실 촬영 전에 만나기가 힘들어서 연기에 대한 의견 교환이 전무한 상태였다. 근데 촬영 때 의견을 교환한다면 통역을 통해서 이야기해야 되는데 굉장히 빨리 진행되는 상황 안에서 이런 과정은 어렵겠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많이 됐다. 하지만 첫 촬영해보니까 경험이 많고 워낙 연기 잘하는 배우니까 알더라. 예를 들어 탁구 치는 것처럼 쳐서 보내면 받아쳐온다. 그러면 내가 그걸 또 받아치면 되는 거고. 그러니까 장첸도 진이란 인물을 품고 있고 나도 연이란 여자를 품고 있으니까. 서로의 입장이 이렇더란 걸 잘 알고 있으니 말이 통하지 않아도 금방 할 수 있게 되더라. 그래서 처음 걱정했던 것보단 훨씬 수월하게 찍었지. 사실 많이 배웠다. 내가. 정말 영화를 이렇게 하는 거라는 걸. 워낙에 많은 경험을 했고 노력도 함께 하는 배우더라. 괜히 그냥 장첸이 유명한 배우가 아니구나 싶더라.

상대적으로 하정우 씨는 언어가 통해서 호흡 맞추는데 안정적이었을 것 같다.
처음 볼 때 예전에 내 공연을 봤다고 하더라. 나보다 나이가 어려서 누나라고 부르기도 하고. 그런데 나나 정우 씨나 그다지 성격이 쾌활한 편이 아니라 낯을 많이 가렸었다. 그래도 촬영 중간에 서로의 캐릭터와 연기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지. 직접 의사소통을 하니 편한 점이 많긴 했다.

<시간>에서도 그랬지만 <숨>에서 나온 집도 꽤 인상적이더라. 인테리어도 그렇고. 구조도 그렇고.
거기가 그 조각 만들어주신 분집이다. 그 분이 작업실도 빌려주시고, 댁도 빌려주시고, 결국 그렇게 그 근처에서 다 촬영했다. 집이 너무 예쁜데 영화현장이 되면서 막 긁히고 그래서 결국엔 감독님이 촬영보다 바닥 긁히는 걸 더 조심하라고 그럴 정도였다. 진짜. (웃음)

김기덕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를 다시 쓰는 경우가 많다.
아니지 않나? (웃음)

조재현 씨는 다섯 번이나 출연했는데.
아~맞다.

하정우 씨도 두 편이었고. 일단 본인부터가 세 편째네!! (웃음) 그런데 평범한 여자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없나?
많지~! (웃음)

특별히 영화를 통해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
또 <숨>의 연 같은 역할을 준다 해도 또 해보고 싶고, 반대의 역할을 준다고 해도 또 해보고 싶다. 역할의 성향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재미를 느끼면서 연기할 수 있는 지가 중요하다. 내가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작업 현장인가라는 것도 그래서 중요하고. 물론 하고 싶지 않은 캐릭터도 분명 있겠지만 그런 건 별개다. 그냥 <숨>보다 과해져도 상관없고 훨씬 무난해져도 상관없다. 그냥 조근 조근한 아줌마도 해보고 싶고, 옆집 언니 같은 거도 좋다. 있는 듯 없는 듯 저 여자가 나왔었나 싶은 것도 해보고 싶고.

옛날에 <버스 정류장>에서처럼? 그리고 그 전에도 출연작이라고 나온 건 많던데.
프로필에 경력 상으로 나온 건 많다. 사실 <마리아와 여인숙>처럼 엑스트라가 대부분이지. 어쨌든 그래도 경력은 경력이니까. (웃음) <버스 정류장>같은 일상적인 역할도 사실 재미있었다. 무난한 수학선생님이었는데 튀지 않는 그런 역할이 오히려 더 어려울 수 있다.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가만히 뭔가를 해야 되는데 튀어서는 안 되니까 그게 더 어려운거 같아요.

사실 <버스 정류장>은 개인적으로 기억에 뚜렷이 남는 영화다. 왜냐면 내가 극장에서 영화볼 때 정확히 7명 있었으니. (웃음)
정말? 요즘 케이블 채널에서 종종 하더라.

한번 기회 되면 확인해봐야겠는데. (웃음) 이제 다시 연극도 하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려 한다. 지금 영화를 찍고 있으니까 연극은 안하겠다거나 이런 건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건 배우지, 영화배우도 연극배우도 아니니까. 내가 하고 싶은 역할이 영화에 있으면 영화배우가 되는 거고 연극에 있으면 연극배우가 되는 거고.

가장 최근에 했던 연극은 뭐였나?
<장군 슈퍼>라고, 극단 청국장이라는 곳에서 만든 거다. 요즘 새로 만들어진 극단인데 거기서 <춘천, 거기>라는 작품도 했었다. 그리고 <장군, 슈퍼>공연 중에 김기덕 감독님이 캐스팅 제의를 했었다. 사실 감독님이 그 공연 중에 촬영하시겠다고 박박 우기시는 걸, 공연과 영화를 절대 같이 할 수는 없고, 하고 싶긴 한데 그렇게 진행하시면 할 수가 없다고 했더니 감독님이 공연 끝나기를 기다려주셨다. 그래서 공연 끝나자마자 촬영을 시작하게 됐지.

혹시 그냥 뭔가 막연하게라도 자신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그냥 뭐, 연기 인생에서 대단한 배우가 되겠다는 이야기할 나이는 이제 지난 것 같네. (웃음) 내가 재미있는 건 꾸준히 쥐고 계속 하고 싶다. 그러다보면 내 그림이 점점 선명해지겠지. 그런 거지, 뭐. ‘뭐가 되겠습니다.’ 이런 건 이젠 아무래도 내겐 아니다.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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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

양진우 인터뷰

interview 2008. 5. 3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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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좋아하나 보더라. 예전인터뷰 기사에서 콜드 플레이(coldplay)와 오렌지 페코(orange pekoe)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그룹들이라 눈에 들어왔다.
원래 내가 작곡하려고 장비까지 다 구입했다. 어릴 때 호주에서 지낼 때 우연히 노래를 들었는데 너무 좋더라. 그래서 이게 무슨 노래인가 했더니 조빔 노래더라.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Brasileiro de Almeida Jobim). 그 때 처음 재즈를 접하고 동시에 음악을 좋아하게 됐다. 학생 시절 돈이 궁할 때도 CD사는 게 낙이었다. 비닐을 벗기 전까지의 설레임! 그러다가 막상 듣고 나서 맘에 안 들면 배신감 느끼고. (웃음)

CD도 굉장히 많겠다.
근데 호주에 다 놔두고 왔다. 형한테 다 주고 오고.

아까워서 어떡하나. (웃음) 여행도 좋아하나?
너무 좋다. 사실 다음 주에 <로맨스 헌터>끝나면 태국 가려고 했다. 너무 추울 때 촬영을 많이 해서 따뜻한 곳에 가고 싶더라. 그런데 19일부터 바로 영화 개봉하고, 일단 출연하기로 한 <세븐 데이즈> 준비도 해야 되고. 사실 아직 새로 나온 대본도 못 봤다. <로맨스 헌터> 때문에 아직 아무것도 못 하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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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도 지금 따뜻하지 않나?
지금이면 많이 따뜻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호주로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안 가본 곳, 새로운 곳에 가고 싶기도 하고. 2년 전인가 3년 전에 일 때문에 잠깐 갔었다. 일주일동안. 내가 여기 어떻게 살았을까. 그런 느낌까지 들 정도로 낯설더라.

호주는 언제부터 산건가? 혹시 태생부터?
초등학교 때 이민갔다. 그리고 2001년도 쯤에 들어왔다. 대학교 졸업하고. 벌써 6년 전이네.

그럼 이젠 완전 적응됐겠다. 그래도 처음엔 좀 힘들었을텐데?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다르다고 느껴지니까. 자신도 모르게 외국 생활과 외국 사람들에 익숙해져 버리니까 처음에 와선 뭔가 조금 답답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냥 많이 무뎌졌다.

한국어에 익숙해지는 것도 힘들었겠다.
3년 걸렸다. 굴러가는 발음 빼는 것만. (웃음) 이젠 내가 먼저 그런 부분의 이야길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거의 모른다. 솔직히 사람들이 아예 모르는 게 낫기도 하고. 뭐랄까. 외국에서 왔다하면 시선이 곱지 않은 경우가 많더라. 그냥 그런 사람들 때문에 먼저 그런 이야긴 안한다. 나중에 알게 되더라도.

연기를 하기 위해 입국했다고 들었는데, 전공이 원래 연기였나?
아니다. 국제 경영학과. 사실은 연기보단 제작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 시절 방송 학과랑 복수전공을 하기도 했는데 졸업은 경영학과 전공이었다. 어쨌든 졸업반일 때 일본에 교환 학생으로 갔었다. 한 학기 정도. 그런데 그 당시 일본에 참 좋은 작품이 많았다. 미국이나 유럽 수준의 드라마나 영화들이. 부럽더라. 외국에서 인정도 많이 받고. 그 때쯤 한국에서도 영화 붐이 일어났다. <친구>같은 영화들이 꽤 많이 흥행되고. 그래서 한국에서 영화를 배우고 싶어졌다. 한국에서도 세계에 내놓을만한 작품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교환 학생이 끝나고 호주로 돌아가서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한국으로 나와버렸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내가 크리스천인데 한국오기 전, 한 달 동안 기도를 많이 했다. 어떡해야 할지. 전공 다 버리고 갑자기 호주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게 보통일은 아니잖나. 큰 회사들이 학교로 와서 컨택(contact)하고 다른 친구들은 면접보는데 나는 다른 짓을 하고 있으니, 엄청 고민되더라. 한 달 동안 기도를 하다가 ‘이게 길인가보다’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제작이 아니라 연기를 하고 있다.
사실 그 때 좀 어려서 아무 것도 몰랐다. 어리석었다고 할까. 그냥 연기하면서 영화를 배우면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무대포로 바로 나왔다. 연기 공부하면서, 전체적으로 훑어보듯 배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연기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 갔는데 제일 처음에 그냥 알겠더라. “아, 나 진짜 직업 선택 잘 했구나.” (웃음) 사실 처음에 너무 못했다. 발음도 이상하고, 또 영어발음도 안 고쳐지고. 뭘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무작정 했는데 사람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생기더라. 내가 진짜 사랑하는 일을 찾았구나 싶은. 지금도 그런 느낌을 가지고 한다. 매번 그렇게 그 마음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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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동물 좋아하나?
너무 좋아한다. 개들하고도 잘 논다.

<파란 자전거>에서 코끼리 사육사로 나오잖나. 개하고는 스케일이 다른데. (웃음) 코끼리와 촬영하는데 애 먹은 일은 없나?
사실 코끼리랑 찍는 게 2씬 밖에 안 된다. 아마 2~3일 촬영 분량 정도? 그런데 코끼리 가까이 갈 일은 없었다. 그냥 코끼리 용변 치우는 것만. 멀리서. 왜냐면 훈련된 코끼리가 아니고 그냥 동물원에 있는 그런 코끼리들이라 다른 누군가가 우리에 들어오면 되게 싫어한다. 누가 들어오면 막 달려온다. 그래서 촬영하는데 진짜 고생했다. 가만히 안 있어서. 아무리 저쪽에서 빵을 주고 그래도 우리가 들어가면 그쪽으로 막 달려오는 거다. 그것 때문에 조금 고생했다.

아, 그랬던 것 같다.
응? <파란 자전거>를 본건가?

난 올 초에 우연히 봤다. 일반 관객 모아놓고 하는 모니터 시사회로. 아, 아직 못 보셨나?
못 봤어요.

어째서? 아직 기술 시사도 안했나? (이 인터뷰는 기자시사회 전에 이뤄졌다.)
감독님이 기술 시사 때 부르질 않더라. 완전 편집이 확정된 상태가 아니었다나. 나중에 보라고 그러시더라. 어땠을까? 일단 나도 되게 궁금한데.

갑자기 주객이 전도되는 기분인데. (웃음) 일단 난 한 장면이 깊게 남았다. 영화는 못 봤지만 연기한 장면은 기억날까? 동규가 창고에서 철사로 만든 아기코끼리 발견하는 장면.
아, 알겠다. 사실 촬영 첫날부터 나흘 동안 밤을 샜다. 첫 촬영부터. 그 때 난 <전설의 고향> 촬영 끝내고 바로 전주로 넘어갔는데 바로 첫 촬영으로 밤을 샜다. 첫 날부터, 그 다음 날도 또 새고, 또 새고, 나흘 동안. 그런데 둘째 날인가, 셋째 날인가 제일 중요한 씬을 찍는다는 거다. 그 씬을. 나도 시나리오 읽으면서 ‘와, 이건 진짜 잘해야겠다.’고 염두에 둔 씬이었는데 그렇게 며칠 동안 촬영하니까 막 지쳐버린 거다. 몸이. 가만히 앉아있어도 죽겠더라. 그래서 완전히 이상하게 연기가 나와 버렸다. 눈물도 안 나오고, 감정도 안 올라오고. 그래도 억지로 어떻게 했다. 그런데 그 날 촬영을 마치고 잠을 못 자겠더라. 그래서 또 잠을 못 자고 그 다음날 아침에 현장에서 감독님을 뵀는데 감독님도 잠을 못 잤나보더라. 감독님도 굉장히 중요한 씬이라 생각했을 테니. 근데 감독님은 내가 힘들어하는 걸 봤다더라. 촬영 들어가기 전에, ‘얘가 좀 안좋구나’ 싶었던 거지. 그래도 저예산 영화니까 편차는 마쳐야 되니 안 찍을 수도 없어서 찍었던 거다. 그런데 감독님께서 “어땠냐? 어제.”라고 물어보시더라. 그래서 “솔직히 제가 하고 싶은 만큼 안 됐어요.”라고 솔직히 대답하니까 “다시 찍을래?”라고 물으시더라. 그래서 반갑게 “네. 다시 찍어요!” 그래서 그 다음날 다시 찍었다.

그래도 그렇게 찍어서 다행이다. 상당히 중요한 장면인데. 사실 그 장면이 이 영화에서 몇 안 되는 클라이맥스잖나.
그 장면은 나도 너무나 욕심이 났던 장면이라서. 무엇보다도 감독님께서 <파란 자전거>에 애정이 많았고, 나도 이 작품에 애정이 많았는데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보니까 강행을 하게 됐고 그래서 놓친 부분이 굉장히 많았다. 감독님도 편집하며 아쉬움이 굉장히 많았을 거다. 여유가 있었으면 좀 더 멋지게 찍을 수 있었을 텐데. 우리가 아침을 굶어가면서, 야식을 굶어가면서 찍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서. 그런데 모르겠다. 아직 영화를 안 봐서 너무 궁금한데. 어떻게 나왔을지!

그런데 도대체 어째서 처음부터 사흘이나 날을 샜을까? 사람을 안 재울 정도로 중요한 촬영이었던 건가?
그니까 해질 때 촬영하고 해 뜰 때 숙소로 갔다가, 다시 해질 때 갔다가 또 해 뜨면 숙소로 가고, 첫날부터 밤 씬을 강행했다. 우리가 전주에 있는 한옥마을에서 촬영했는데 조그만 슈퍼를 정리해서 자전거포로 만든 거다. 그런데 그곳을 빌릴 수 있는 기간 안에 그 분량을 최대한 빨리 많이 찍어야 되니 밤을 안 샐 수가 없더라. 마지막엔 구경하던 아저씨가 술 먹고 난리쳐서 애 먹기도 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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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손에 장애가 있는 역할이라 의수를 끼고 연기했다. 꽤 불편할 것 같더라.
진짜 의수 만드는 분한테 가서 제작한 손이다. 최대한 우리는 진짜 손처럼 만들고 싶어서. 그 분이 굉장히 오래 하신 분이라 여러 장애우들과 접하셨나 보더라. 그래서 장애우 분들에 관한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최대한 감추려고 한다더라. 장애우들이. 항상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닌다고. 최대한 안보이게 하려고 장갑을 낀다던지, 주머니에 넣는다던지. 그래서 딱 달라붙는 바지도 안 입는단다. 헐렁한 바지만 입는다. 손이 주머니에 잘 들어가는.

나도 중학교 시절에 손에 장애가 있던 친구가 있었는데 항상 긴소매 옷을 입고 소매로 손을 감싸고 다니더라. 그 기억이 난다.
<파란 자전거>에는 장애를 극복하는 메시지도 많이 담겨있는데, 나도 촬영을 하고 나니 숨길 필요가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봐 스스로가 먼저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차별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먼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오히려 내가 마음을 못 열어서. 남들이 마음을 닫아놓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닫아서. 그러니까 상대방에게 다가가기 어렵고, 상대방이 나에게 다가오기 어렵고. <파란 자전거>는 그런 걸 극복해나가는 이야기가 담긴 영화다.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의 사랑을 통해서.

관계에 대한 이야기죠. 그런데 영화를 보기 전에 두 남녀의 로맨스로 오해할 여지가 있을 것 같던데. (웃음) 사실 그것보단 아버지와 아들의 부자 관계가 중요한데.
처음부터 감독님께서 대사, 캐릭터 분석하며 이야기하신 게, 가족영화다.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나도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아버지와의 관계 때문에 공감이 갔다. 그게 글로만 읽었는데 너무 와 닿더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굉장히 많아서. 그래서 읽자마자 바로 감독님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너무 하고 싶다고. 이런 감정은 오랜만에 느껴서. 뭔가 와 닿는. 그래서 연기할 땐 그런 느낌이 안 살아날까봐 더 떨렸고.

공감했다니 실제 아버지가 어떤 분일지 궁금하다.
시나리오를 읽고 공감했었던 이유가 서로 사랑하지만 표현을 못하는 거, 표현의 장애랄까? 아버지가 무뚝뚝한 경상도 분이다. 말도 많이 없으시고 말을 해도 그냥 ‘촬영은 잘 하고 있냐. 밥 먹었냐. 아픈 덴 없냐.’ 그런 식의 일상적인 대화만 하게 된다. <파란 자전거>의 아버지와 동규처럼. 아버지는 뭔가 해 주고 싶은데 동규는 맘이 이미 닫혀있고 원하는 것도 없고, 오랜 시간을 그렇게 지내다 보니 서로 대화도 없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서먹서먹해지고. 그런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런 관계가 굉장히 많지 않나? 아무래도 많은 남자들이 공감할 것 같다. 나도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고. 근데 또 그게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니까. 안 그러려 해도. 그래서 동규도 마지막에 후회를 많이 하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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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버지께서 처음에 연기한다 그러니 뭐라던가.
사실 나도 아버지 반응이 제일 궁금했다. 일단 어머니께선 잘 생각했다면서 서포트를 많이 해 주셨다. 사실 아버지께서 의사다. 그래서 고지식하신 면도 많으시다. 근데 처음 뜻을 밝히니까 의외로 “이왕 할 거면 최고가 돼야지.” 하시더라. 뜻밖이었고 되게 고마웠다. 아버지께서 격려해주시니까.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을 이해해주시니까.

왠지 영화에서 오광록 씨가 연기한 아버지와 같은 인자함이 확 느껴지는데.
그래서인지 내가 광록이 형을 굉장히 가깝게 느꼈다. 매일 술 마시고 취해도 좋고, 힘든 거 없었고.

오광록 씨와 많이 친해졌나보다. 꽤나 독특한 캐릭터가 매력적인 분인데.
굉장히 샤프하시다. 그냥 뭐 하나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도 없고. 되게 재밌으시다. 그리고 그냥 대충 하실 것 같은 상황에서도 놓치는 거 하나 없다. 다들 알아차릴 정도로 술이 취했단 생각이 들 때도 사람들을 다 관찰하고 있을 정도로. 되게 부드러우면서 굉장히 날카롭고.

섬세할 것 같다. 시인이잖나.
내가 광록이 형을 처음 봤을 때가 <파란 자전거> 촬영 때문에 전주 내려가기 전 첫 회식 때였다. 그런데 이미 광록이 형은 어디서 또 한잔 하시고 오셨더라. 그런데 오자마자 막 시를 읊으시더라. (웃음) 그런데 내가 술을 못 한다. 그런데 막 술을 먹이셔서 내가 막 도망쳤다. 그리고 나중에 광록이 형하고 술 자주 마셨다. 그런데 나중에 “난 네가 이렇게 서글서글한 애인지 몰랐다.”고 하더라. 첫인상이 자기 것만 챙기고 대충대충 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나. (웃음) 그런데 형한테 연락도 자주 하고 그러니까 달리 보였나보다. 광록이 형하고 영화하면서 많이 배웠다. 배우로서의 자세부터. 무엇보다 너무 좋은 분이다.

첫 주연이라 본인에게 <파란 자전거>의 의미가 클 것 같은데.
그래서 촬영할 때 힘든 게 힘든 게 아니었다. 애정이 생기니까. 많이 힘든 거 못 느끼고 촬영했던 것 같다.

혹시 왼손잡이?
아니, 오른손잡이.

그런데 의수는 오른손에 끼웠잖나. 의수 끼고 자전거까지 타던데.
촬영할 때만 끼긴 했는데 엄청 불편했다. 오른손이 없는 셈이었지. 양말을 신는 것조차 힘들었다. 안에 있는 오른손도 답답했고. 그런데 <파란 자전거>를 찍고 바로 <동갑내기 과오하기 레슨 2>를 촬영하러 갔는데 왜 자꾸 왼손으로만 연기를 하냐고 하더라. (웃음) 나도 모르게 모든 걸 다 왼손으로 하고 있는 거다. 오른손은 주머니에 들어가 있고. 아차 싶었지.

어떤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나?
<메멘토>같은 거.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는 없는데, 뭐랄까. 감독만의 특별한 스타일이나 독특한 상상들. 그런 게 돋보이는 그런 영화가 좋다. <펄프 픽션>이나 <파이트 클럽>같이 기발하고 독특한 스타일의 영화들을 주로 좋아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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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다. 차분한 성격인 것 같은데. 정적인 영화 좋아할 줄 알았다.
많이 조용한 성격이긴 하다. 나가서 시끄럽게 나서고 그런 성격은 아니니까. 솔직히 그래선지 그런 역할의 제의를 많이 받더라. 그래서 이번에 <파란 자전거>의 동규가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웃기만 하는 이미지가 싫어서. 웃는 얼굴이 익숙하고 그러다보니 사람이 부드럽게만 보인다고 그래서 그런 이미지에 틀어박힐까봐. <파란 자전거>의 동규는 영화에서 웃는 게 두세 번밖에 안 나온다. 그리고 이번에 준비하는 <세븐 데이즈>에선 완전 마약에 빠진 친구로도 나오고. 사실 <로맨스 헌터>의 정호재는 내 성격이랑 비슷한 면도 많고 그래서 하고 싶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세븐 데이즈>는 나름대로 기대가 될 것 같다.
나름대로 변신이니까. 미쳐버릴 수 있는 그런 캐릭터라서. 원래 선아 누나 때문에 하게 된건데.

김선아 씨 덕분에? 친하나?
같은 사무실이라 인사하면서 몇 번 이야기 나눈 정도? 그렇게 뭐 친한 것도 아닌데, 시나리오 읽고 나니 내 눈빛이 딱 생각나더란다. 그 캐릭터가. 그런데 영화에서 많이 등장하는 캐릭터는 아니다. 10회차 정도밖에 안 되는 분량이니까. 근데 좀 포인트가 있는 그런 캐릭터다. 영화에 전환을 주는.

선한 마스크가 오히려 악역에 어울릴 때가 많다. 악역 해보고 싶단 생각은 안 해봤나?
사실 악역을 굉장히 해보고 싶다. 난 사실 미소지으면서 부드러운 이미지 드러내는 역할을 정말 하기 싫다. 그런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악역도 굉장히 하고 싶은데 쉽지가 않네. 그래서 <세븐 데이즈>같은 작품에 출연하는 것도 반갑고 앞으로도 조금씩 조금씩 변할 수 있겠죠.

일본 드라마에도 나왔다고 하던데.
사실 일본에서 출연한 드라마가 시청률이 굉장히 좋았다. 일본에선 드라마가 낮에 하는데 그 당시 동시간대 드라마 중 시청률이 제일 좋았으니까. 그래서 오히려 한국보다 일본에서 사람들이 알아보기도 하고. 그 이후로 일본에서 DVD나 영상화보집도 내게 되고, 덕분에 돌고래와 수영도 해보고.

돌고래?
원래 돌고래랑 같이 수영해보고 싶었다. 일본에서 영상집을 찍는데 내가 호주가서 하자고 제안했다. 일본에서 하지말고. 그랬더니 호주에서 뭐하고 싶냐고 묻길래 처음엔 상어 케이지에 들어가서 상어들 보는 거 하고 싶다고 하니 그건 촬영하기 너무 힘들다고 질색하더라. (웃음) 그래서 그럼 돌고래랑 같이 수영하고 싶다고 했고 그래서 호주 씨월드에서 촬영했다. 암벽타기 하는 것도 찍고, 서핑하는 것도 찍고.

운동 좋아하나? 자전거는 잘 타던데.
헬스 같은 건 재미없다. 대신 사람들과 모여서 할 수 있는 운동은 좋아하지. 등산도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해보지 못한 운동 있으면 그냥 한다. 그래도 특별히 잘하는 운동은 없다. 그래도 다 한다. 이번에 럭비클럽을 내가 만들었다. 사람들 모아서 여름에 시작해 보려고. 근데 우리나라에 럭비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걱정이지. (웃음)

의외다. 정적인 것만 좋아할 줄 알았는데. 생각도 많을 것 같고.
엉뚱한 생각을 많이 하긴 한다. 걱정 같은 건 잘 안하는데 엉뚱한 생각들은. 나 혼자 생각하면서 웃기도 하고. 어이없는 생각들. 상황에 맞지 않는 느닷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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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대로 된 로맨스 연기는 해본 적 없다. <파란 자전거>에서도 막장에 다다른 연인과 새로운 예감이 보이는 연인 사이에 있고.
음..그런 생각은 안 해봤는데 말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네. 약간 억울한데. (웃음)

현실에서라도 해야지. (웃음) 이상형은 아니더라도 좋아하고 싶은, 혹은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가 어땠으면 하는 거 있나?
독립적이면서도 도도하고 섹시하고 강한 여자, 그리고 가정적인 면이 있는 사람. 가정을 잘 꾸려나갈 것만 같은. 무조건 착한 여자보단 자기 의견이나 자기 생각들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당돌함이 있는 게 좋다. 그러면서도 가정에 충실하고. 찾기는 힘들겠지만.

정말 찾기 힘들 것 같은데! (웃음) 어쨌든 마술사, 라디오 PD, 조선시대 선비, 그리고 코끼리 사육사까지 연기를 통해 해봤다. 조만간 마약 중독자도 될 테고. 그런데 만약 연기 안했다면 본인은 뭐 했을 것 같나?
아마 호주에서 조그만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걸. 열심히. 조용하게 지내고 있을 듯.

경영학과 출신인데 전공에 대한 꿈은 없나?
지금도 전공을 살리고 싶은 생각은 있다. 그런데 그건 10년이나 20년 뒤의 미래 이야기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제일 즐겁다. 지금은.

지금은 연기자다. 그리고 10년 뒤 다른 걸 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뭔가 막연한 목표라도 있다면?
난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오랜 시간이 지나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손자 손녀들이 내가 출연한 영화를 봤을 때 ‘재미있다’, ‘멋있다’란 말 들을 수 있는 좋은 작품들에 많이 출연하고 싶다는 것. 오래오래 50년, 100년 동안 남을 좋은 영화들. 주인공이 아니라도 좋다. 그런 영화에 출연할 수 있다면. 그게 내 꿈이다. 오래 남고 싶다는 것. 지금은 일단 내가 하는 연기자로서.

<파란 자전거>는 그런 작품이 될 수 있을까?
일단 봐야 알지! (웃음) 그래도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인 건 확실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기회가 많을 테고.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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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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