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극장에 갔다. 혼자였다. 자연스러웠다. 남자는 종종 홀로 극장을 찾았다. 처음엔 극장에서 티켓 한장을 산다는 게 조심스러웠다. "한장이요"라고 매표소 점원에게 대답하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인간으로 전락해 버리는 기분이 들어 영 내키지 않았지만 몇 차례 시도해 보니 생각 이상으로 견딜만한 기분이 되고 점점 훈장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 이젠 되레 혼자서 영화를 본다는 게 뿌듯한 업적처럼 여겨졌다. 혼자 티켓을 사고 상영관에 들어서서 텅 빈 스크린을 보며 사색하다 좌석을 채워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땐 홀로 세상을 관장하는 신처럼 위대한 존재가 된 것도 같았다. 그래서 한번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신도 어지간히 외로운 놈이군.' 그 날도 어느 날처럼 홀로 앉아 극장을 훑어 보며 영화가 시작되길 기다리던 중이었다. 갑자기 자신의 옆 자리에 한 여자가 홀로 앉았다. 일행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영 시간이 임박해 오는데 여자의 일행은 오지 않았다. 여자도 특별히 기다리는 일행이 없는 것 같았다. 남자는 그 여자에게 묘한 연민을 느꼈다. 얼굴이 궁금했다. 하지만 남자에겐 그만한 용기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향수 뭐 쓰세요?" '어?' 남자는 고개를 돌렸다. 여자의 눈이 검은 별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근처에서 소리가 날아왔다. "향수 뭐 쓰시는지 알 수 없을까요?" "아, 지오 알마니요." 그 순간 영화 광고가 끝나고 극장 불이 꺼졌다. 남자는 영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대신 우주에 떠있는 까만 별 두 개를 생각했다. 영화가 너무 길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싫지 않았다. '우주의 시간은 유한할지니...' 영화의 시간만큼은 확실히 그랬다. 상영관에 불이 켜지고 남자는 여자에게 물을 기회를 엿봤다. 하지만 여자는 지구의 멸망을 향해 날아오는 유성처럼 빨랐다. 남자는 지구의 멸망을 막아서야 한다는 듯 마음이 급해졌다. 앞서 걷는 여자를 쫓아 뛰었다. "저기요." 여자가 돌아봤다. 다시 우주였다. "향수 왜 물어보셨어요?" "네?" "향수요. 아까 물어보셨잖아요." "아..." 별이 깜빡이며 대답했다. "남자친구 선물하고 싶어서요." 순간 남자는 중력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여자가 유유히 사라지는 사이 발을 떼지 못했다. 지구였다.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다. 대신 세상에서 제일 외로워진 인간이 거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