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가 떨렸다. 동시에 오금이 저려왔다.


시대를 배반하는 이미지가 눈 앞에서 펼쳐졌다. 유년시절 말로만 들었던 경찰의 시민 폭행현장이 눈앞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생중계를 하던 진중권 교수도 군화발에 밟히고 방송장비를 죄다 뺴앗겼다고 한다. 진보신당 칼라TV도 박살났다고 한다. 새벽 4시 반 무렵, 정부는 특수진압대를 현장에 투입했다. 대테러진압을 대비해 훈련시킨 그들은 시민들을 거침없이 척살했다. 마치 사냥개처럼 달라들었다. 달아나는 시민들을 미친듯이 쫓아와 곤봉으로 내려치곤 넘어지면 밟고 방패로 찍은 뒤, 질질 끌고 갔다. 맙소사, 저게 뭔가. 난 아연실색했고, 두려웠으며 무시무시했다.

그들은 마치 조련된 군견같았다. 군견은 자기 주인 이외에 모든 사람을 물려고 달려든다.
눈 안에 살기가 가득하다. 피흘리고 실려가는 여자 앞에서 실실 쪼개는 그들은 모습은 가히 경악스러웠다.
전경을 미워하지 말라고, 그들도 사람이라고, 다들 위에서 시키니까 하는 일일 뿐이라고, 난 여전히 믿고 있다. 하지만 이런 믿음을 배신하는 상들을 눈 앞에서 접하지 나 자신조차도 가늠할 수 없게 아득해졌댜. 아, 내 믿음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건 씁쓸한 미소조차 지을 수 없는 멍한 정경이었다. 동공에 맥이 풀렸다.
전경들은 이런 교육을 받고 있었다.
그들에겐 인권의 가치관보단 생존의 전략이 중시되고 있었다.
사실 치열한 시위현장에서 진압하다 부상을 당하기도 하는 그들에게 안전을 중시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 즉 가해도구를 통해 자신을 적극적으로 공격하려는 대상에게 대응하는 방식을 교육한다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과 대치하는 시민들은 맨손이다. 난 지금까지 어떤 대치 상황에서도 전경을 가격하는 시민을 본 적 없다. 게다가 방호복에 방어투구, 방패까지 들고 있는 그들을 공격할 엄두를 내는 시민이 얼마나 있단 말인가? 시민이 쇠파이프라도 들고 다니기라도 하는 것이라면 모르겠다. 하지만 맨 주먹과 맨 손으로 그들의 완전무장에 맞서는 시민에게 대응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어폐다.


이해할 수 없다. 난 도무지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시민을 개잡듯이 때려잡는 그들의 태도란 대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잠도 못자게 한다고 시민들한테 욕지거리를 날리는 전경의 모습은 단지 개인적 인격의 문제일까.
모든 것은 교육에서 온다. 평범한 청년들에게 공권력의 옷을 입힌 권력의 체제는 그들에게 폭력을 주입하고 내부적인 분노를 외부로 쏟아내도록 훈육하고 있다. 주인에게 얻어맞으며 길들여진 개들이 무고한 행인을 마구잡이로 물어뜯듯이 그들은 자신에게 주입된 분노를 무고한 시민에게 풀어내고 있었다.

불법집회를 하니까 그렇지, 라는 사람이 종종 눈에 띤다. 좋다. 시민이 거리를 점거했고 야간에 가두시위를 벌이는 게 현 집시법에서 위반되는 사항이라고 하니 불법은 불법이다. 하지만 모든 시위에 허가를 받아야 하는 집시법의 테두리 내에서 정부가 불법이라 규정하면 모든 집회나 시위는 불법이 된다. 애초에 촛불시위를 촛불문화제로 규정한 것도 정부의 논점 흐리기 의도가 개입된 바라 볼 수 있다.
그저 자신들이 정해준-실제로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으니 그렇게 허용해서 아량을 베푸는 척이라도 하려는- 구역 내에서 놀다 가라는 듯한 태도가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 안에서 시민들이 아무리 어떤 목소리를 낸들, 귀를 막고 듣지 않는 정부의 태도에 질려 시민들은 행진을 시작했다.
게다가 장관고시까지 강행한 정부의 태도는 결국 자신들에게 돌팔매질이 오지 않는 이상, 그들의 의사에 귀기울이지 않다도 된다는 듯, 뻔뻔하고 위태롭다. 시민이 거리를 걷기 시작한 건, 더이상 쇠고기 문제만으로 원인을 해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권리를 거리에서 외치고 있다.

선동하지 말라고? 웃기지 마라. 난 당신을 선동하겠다. 당신이 이 글을 잃고 피가 끓었으면 좋겠다. 현실의 분노가 어디로부터 넘어오는 것인지 당신이 한번쯤은 생각해보고 주먹을 불끈 쥐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당신이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다.
저 거리에서 진압봉에 맞아 피흘리고 나뒹구는 이들의 행위는 제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는 저마다 강건하지만 폭력앞에 저마다 무력하다. 나도 무력하다. 너도 무력하고, 어떤 이도 무력하다. 하지만 우리는 무력하지 않다. 아무리 수많은 전경이 몰려와 시민들을 길바닥에 내 팽개쳐도 그에 굴하지 않는 목소리가 모이면 그 폭력은 되려 무력해질 것이다.
당신과 내가 모여 우리를 만든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좌빨이고, 우빨이고, 빨갱이고, 노조고, 나발이고, 우린 그전에 대한민국 국민이고 시민이다.
경찰의 치안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꺾는 것이 아니라 질서 유지와 시민들의 보호에 있다.

애초에 이명박은 도덕성 유무 따위가 자신의 지지율에 영향을 끼치지 않음을 파악했다.
지금 이 강경진압도 자신의 권력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번 작은 도둑질을 해도 사람들이 방관하면 그 다음에는 더 큰 도둑질에 맛들리는 법이다.
우린 지금 그 커다란 도적 행위에 대항해야 한다.
외국에서 소박맞고 돌아와 국민 앞에 깡패가 되는 사람을 대통령이라고 모실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6월이 됐다. 아마 오늘은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에 대한 또 다른 가능성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정부는 선을 넘었다. 더 이상 쇠고기 문제로 이 사태를 규정지을 수 없는 단계까지 와버렸다.
정부가 국민을 때려잡는데 성공한다면 그들의 다음 수순은 뻔하다. 끔찍한 현실이 도래할 것이다. 무언가를 얻는 것은 힘들어도 잃는 것은 쉽다. 계엄령이 아닌 은밀한 매스미디어 공작으로 당신의 귀를 막고, 입을 걸어잠근 뒤, 모든 상황은 당신이 바라지 않는 양상으로 흘러갈 것이다.
우린 그 마지노선에 서 있는 것이다. 결코 물러서지도, 물러서도 안될 지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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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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