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피라미드를 훔친 범인의 정체를 두고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그리고 스스로 세계 최고의 악당이라 자부하는 그루의 뚜껑도 열렸다. 사실 자신의 비열함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한 그루가 저지르는 악행이란 카페에서 자신의 앞에 선 이들을 얼음으로 얼리기, 주차된 차 사이로 끼어들어 도로 어지럽히기, 길 가는 꼬마 울리기 등과 같이 사소한 것들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루는 원대한 계획을 세운다. 바로 달을 훔치는 것. 달을 훔치고 나면 세상 모든 이들이 자신의 악행을 널리 인정해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수요가 늘어나면 공급도 따라 늘어나기 마련이다. 매력적인 슈퍼히어로의 수요가 올라갈수록 그에 상응할만한 능력을 지닌 슈퍼악당들의 공급도 따라야 한다. 영웅보다도 매력적인 악당이 늘어간다는 건 단지 우연이 아닌 셈이다. <슈퍼배드>는 그런 세태에 힘입어 기획된 작품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히어로의 망토 끝자락 따위조차 구경할 수 없는 이 작품은 오로지 누가 누가 더 나쁜 놈인가를 경쟁하는 천진난만한(?) 악명 배틀을 아기자기하게(!) 묘사한다. 하지만 <슈퍼배드>는 단지 악당 캐릭터들의 활약상을 왁자지껄하게 전시하는 액션 코미디로서의 카타르시스에 주력하고 마는 작품이 아니다.
달을 훔쳐내겠다는 계획을 완수하기 위해 자신의 라이벌 벡터가 강탈한 축소 광선 무기를 탈환해야 하는 그루는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쿠키를 파는 세 소녀를 입양해서 벡터의 집에 위장 잠입시킨다. 자신들을 거두어줄 부모를 찾던 세 소녀와 단지 작전을 위해 아이들을 입양한 그루의 불협화음은 점차 묘한 가족애로 거듭나고 그 사이에서 그루도 점차 변화를 거듭한다. <슈퍼배드>의 서사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애정결핍의 트라우마를 품은 악당의 가족주의적 성장을 다룬 드라마다. 이 지극히 빤한 설정은 <슈퍼배드> 안에서 묘한 의외성을 발휘하는 요소이자 결정적인 감동적 찰나를 빚는 유효한 자질로 작동한다. 애니메이션 특유의 분위기 안에서 과장된 설정을 마음껏 악용하며 웃음을 빚어내는 가운데서도 드라마틱한 이야기의 감수성은 <슈퍼배드>를 단순한 일회성 유희로 몰락시키지 않는다.
대부분의 훌륭한 애니메이션이 그러하듯이, <슈퍼배드> 역시 귀엽고 아기자기한 캐릭터를 통해 승부수를 던진다. 무엇보다도 <슈퍼배드>에서 눈에 띄는 건 좀처럼 종의 정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미니언’이다. 캐릭터의 정체에 대한 일말의 설명도 없이 시종일관 다용도(?)적인 쓰임새를 자랑하는 이 미니언들은 <슈퍼배드>의 소소한 재미를 책임지는 일종의 수식어 캐릭터나 다름없다. 익살스럽거나 귀여운 주요 캐릭터들의 공백을 메우는 동시에 천진난만하면서도 장난끼 넘치는 활력을 자랑하는 미니언들은 어떤 식으로든 활용이 가능한, <슈퍼배드>의 슈퍼 길티 플레저로서 작품의 개성을 드러내는 가장 탁월한 무기로서 기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