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the factory girl
누군가에 기대서 자기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삶이란 결국 비참해지기 마련이다. 씨스타는 자신들이 꿈꾸던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그 무대에서 당당하게 떠올랐다. 그 누구의 뮤즈가 아닌 씨스타로서.
백지 같았던 스튜디오가 유쾌한 활기로 채색되기 시작했다. 씨스타의 멤버들이 들이닥친(!) 스튜디오는 곧 깔깔거리는 웃음과 왁자지껄한 대화로 출렁이기 시작했다. 패션매거진에 관심이 남다르다는 소유를 비롯한 씨스타의 멤버들은 앤디 워홀의 뮤즈 에디 세즈윅을 모티프로 둔 콘셉트를 재확인하며 ‘시도해보지 못했던 콘셉트에 대한 설렘과 걱정’을 표하면서도 유쾌하게 떠들어댔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씨스타를 잘 몰랐다. 유행하던 몇몇 노래를 듣고 흥얼거린 적은 있어도 크게 관심을 갖고 찾아 듣진 못했다. 자랑이라서 떠드는 게 아니다. 언어 그대로 그랬다는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대중음악 시장이 아이돌 댄스뮤직 일색으로 변모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이는데 소홀해졌던 탓이다. 하지만 종종 TV를 통해서 본 씨스타를 통해서 바비인형처럼 메마르기만 한 여타의 아이돌 걸그룹들과 차별되는 매력을 발견했던 적은 있었다고 말해두고 싶다.
솔직히 아이돌로 분류되는 어린 가수들은 대부분 재미가 없다. 흥미가 당기지 않는다. 나이가 든 탓일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 멤버들은 연습생 시절부터 소속사로부터 길들여져서 지나치게 착하기만 하다. 착하다는 게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그 착함이 천편일률적이고 빤하다는 말이다. 무대 위에서 선보이는 탁월한 군무처럼 무대 밖에서도 자신을 가리고 그룹의 멤버 중 하나로서 복무한다. 예상 밖의 무언가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런 면에서 실제로 만난 씨스타의 멤버들에게는 뜻밖의 생동감이 느껴졌다. 개성이 뚜렷한 멤버들의 에너지가 보인다. 자신들을 포장하거나 가리지 않는 솔직한 매력이 있었다. 그랬다. 씨스타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피말리는 아이돌 그룹들의 스타덤 경쟁에서 살아남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있었던 것이다. 지난 6월 11일, 정규 2집 앨범 <Give it to me>를 발매하며 1년여 만에 활동을 재개한 씨스타는 이제 정상급 아이돌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성과를 얻어냈다. 2010년, 데뷔 때만 해도 씨스타는 아이돌 홍수 속에서 기획된 그저 그런 걸그룹 중의 하나 즈음으로 여겨졌다. 데뷔곡 ‘Push Push’는 가요 프로그램에서 20위권 순위에 오르는 무난한 성적표를 받았으니 그리 나쁘지도 않았다. 하지만 다른 걸그룹보다 나은 점도 없었다. 심지어 흉흉한 ‘일진’ 루머까지 나돌며 이미지에 타격까지 입었다. 하지만 그대로 추락하지 않았다. 씨스타는 점점 누군가의 아류가 아닌 씨스타만의 퍼포먼스를 찾기 시작했고, 히트 넘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벽하게 씨스타만의 정체성을 어필한 건 2012년에 발매된 미니앨범에 수록된 ‘나혼자’를 통해서였다.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가사에 호소력 있는 가창력이 더해지고, 옆으로 살짝 트인 원피스를 입고 상체보단 미니멀한 하체의 움직임을 강조한 안무로 몸매를 언뜻 드러내는 방식은 대단히 우아하면서도 고혹적인 매력을 발산했다. ‘군바리’ 혹은 아저씨들을 넘어서 적지 않는 여성팬까지 호감을 갖고 주목하도록 만들 정도였다. ‘나혼자’는 그야말로 씨스타가 지닌 디바로서의 가능성과 마른 몸매가 아니라 군살 없이 건강한 보디라인만의 섹시함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 씨스타만의 재능이 폭발한 무대였다. 직후에 이어진 ‘Loving U’는 그 반대로 씨스타만의 발랄함을 잘 표현한 무대였다. 디바로서의 재능과 멤버들의 개성을 살린 퍼포먼스를 깨달은 것 같았다.
최근 2집 앨범으로 돌아온 씨스타는 소위 말하듯, 가요계를 평정했다. 타이틀곡 ‘Give it to me’를 비롯한 대부분의 수록곡이 각종 음원 차트의 상위권을 장악한 것은 물론 다양한 채널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도 숱하게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2010년 데뷔 이후로 다양한 히트곡들을 양산하며 ‘뷰티풀 몬스터’라 불렸던 그 이전까지의 인기와도 격차가 느껴질 정도로 이번 2집 활동은 씨스타의 성장을 확인하고 체감할 수 있는 바로미터였다. 덕분에 보라는 “이만한 반응을 예상하지 못해서 얼떨떨한 기분”을 느꼈고, 다솜은 “기대 이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서 행복”했다. 게다가 아직 본격적인 해외 활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자신들을 응원해주는 해외 팬들이 생긴 것도 놀라운 발견이라고 한다. “방송이나 공연을 위해서 처음 가본 도시에서 씨스타 노래를 따라 불러주시는데 정말 놀랐다.”(보라) 전세계적인 대세가 된 K팝의 위력을 체감할 수 있는 말인 동시에 씨스타의 새로운 가능성을 예감하게 만드는 말이다. 1년여 만에 씨스타로서 활동을 재개하는 멤버들은 저마다의 설렘과 긴장을 안고 있었다. 그 사이에 ‘씨스타 19’라는 이름으로 유닛 활동을 했던 효린과 보라보다도 1년여 만에 씨스타로서 무대에 올랐던 다솜과 소유의 심정이 더 궁금했다. “2집 활동으로 얻게 될 반응이 궁금했다. 1년 만에 함께 하는 무대였기 때문에 팬들만큼이나 우리도 많이 기다렸다.”(다솜) “기대보단 부담이 컸다. 올 초에 언니들이 유닛 활동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기 때문에 넷이서 함께하는 무대는 그보다 완성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소유) 동생들만큼이나 언니들도 설레고 떨렸다. “타이틀곡 외에도 좋은 노래들이 많기 때문에 수록곡들도 많이 사랑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효린)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색다른 매력을 보여드릴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컸다.”(보라)
데뷔 이래로 씨스타에겐 크고 작은 변화들이 있었다. 씨스타와 함께 20대의 문턱을 넘으며 보다 성숙해지는 변화를 체감하게 된 다솜처럼 사적인 변화도 있었지만 씨스타로서의 변화가 멤버들에겐 보다 크게 와닿는다. “알아봐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생긴 만큼 무대에 임하는 각오가 달라졌다.” 효린의 말처럼 씨스타라는 이름 안에서 느낀 팬들의 사랑이 점점 커가는 것을 보며 하나같이 더 많은 ‘책임감’를 안고 무대에 오르게 됐다. 효린이 매일 같이 포털사이트에서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보는 것도 그래서다. “씨스타의 무대와 노래를 어떻게 보고 들어주시는지 공부하기 위해서 모니터한다.”(효린) 대중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만큼 그 관심의 방향을 살피고 새로운 방향에 대한 기대를 품어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댓글을 보면 몸매에 대한 칭찬이 많은 편인데, 물론 기분은 좋다. 하지만 음악적으로 좋은 평가를 발견했을 때 더 기분이 좋다.”(소유) 소유 개인으로서가 아닌 씨스타로서 실력을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에서 씨스타의 긍정적인 내일이 예감된다. 성격상 로맨스를 꿈꾸는 사람이 아니라는 효린과 우연히 만나 첫 눈에 반하는 사랑을 꿈꾼다는 다솜이 다르듯이, 씨스타의 네 멤버들은 저마다 각양각색의 성격과 취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시스터(sister)’와 발음이 유사한 씨스타의 네 멤버들은 친자매처럼 살갑고 돈독하다. “저희 넷은 화합이 잘되는 편이다.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갈등이 전혀 없다.”(효린)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다. “데뷔 초반엔 의견 차이도 있었다. 지금은 서로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의견 조율도 쉽고, 다들 털털하고 쿨한 성격이라 잘 맞는 거 같다.”(다솜) 어쩌면 씨스타라는 이름으로 한데 모인 네 멤버들이 하나의 방향을 바라보며 지난 4년여의 시간을 건너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저마다 다른 멤버들의 매력을 하나씩 꼽으며 부럽다고 토로하는 네 멤버들을 보면서 씨스타의 새로운 성장을 예감했다. 하나같이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는 효린, 보라, 소유, 다솜 그리고 씨스타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춤과 노래를 통해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미래를 꿈꾸고 있다. 아직 20대 초반인 만큼 얼마든지 새로운 꿈을 꿔도 좋을 나이다. 얼마 전 “초등학교 4학년 시절부터 키웠던 강아지가 눈을 감아서 메이크업이 다 지워지고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었다”던 효린은 ‘넓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동물들과 함께 하는 삶’을 상상한다. 지난 2월까지 시트콤 <패밀리>에 출연했던 다솜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희열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되길’ 희망한다. “아직 구체적인 생각이 없다”는 보라도 ‘서른 즈음엔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길’ 바란다. 언젠가 그녀들은 씨스타가 아닌 효린으로서, 보라로서, 소유로서, 다솜으로서 자신만의 무대에 올라야 할지도 모른다. 처음 씨스타로서 무대에 올랐던 그때처럼 새로운 기대와 불안을 안고. 하지만 씨스타의 무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꿈은 계속된다. 아직 꿈은 그 무대에 있다. (ELLE KOREA 8월호 No.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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