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이 개막됐다. 장예모가 연출한 천이백억 짜리 개막식 공연이 화제다. 역시 중국은 쪽수면 장땡, 이란 반응부터 장예모의 블록버스터 클리셰라는 말까지, 물론 호화롭고 웅장했을 것이다. 물론 난 안 봤다. 관심이 없어서도 아니고,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이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인지 몰랐다. 맙소사. 그저 오늘 갑자기 잡힌 인터뷰 준비로 2시간 밖에 잠을 못 잤고 날씨가 미친듯이 더웠을 뿐이다. 알았으면 봤겠지. 혀를 차든 우와, 하든 간에 단 한번뿐인 볼거리는 일단 봐두는 게 상책이니까.
어쨌든 올림픽이 개막됐다. 애초에 말이 많았던 올림픽이었다. 베이징에서는 인공강우를 뿌려대고 공장의 생산을 중단하고 차량 2부제까지 철저히 실시함으로써 맑은 하늘을 되찾았다고 하지만 선수들은 심각한 대기오염에 투덜대고 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그 이전엔 티벳 탄압으로 인해 올림픽의 평화정신을 훼손하는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 바람이 불기도 했다. 그 와중에 세계 각지의 성화 봉송엔 테러(?)의 물결이 있었다. 게다가 그것을 막겠다는 중국인민들의 몰지각한 타지거리점령 행위도 있었다. 우리도 크게 데였다. 시청 한복판에서 중국 애들한테 떡실신당한 한국인이 여럿 있었는데 경찰들도 속수무책이었단다. 자국인들이 자국에서 중국애들한테 멱살잡히고 다구리 맞고 있었는데 한국 경찰들 다 어디 갔었냐고? 성화 보호했다. 걔네 들이 지금 촛불 때려잡고 있는 거다. 어쨌든 이 글의 본론은 이게 아니고.
올림픽 개막식이 베이징에서 한참인 지금, 러시아는 전쟁을 선포했다. 올림픽은 세계 평화의 제전이라는 슬로건이 무색하다. 이미 그루지야 기지를 폭격한 러시아는 아마 군대를 몰고 제대로 밟아주겠다고 벼르는 양상이다. 그루지야의 친서방정책에 열받았던 러시아가 남오셰티아 공화국과 그루지야의 영토분쟁을 그루지야를 밟아줄 절호의 찬스로 삼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중요한 건 전쟁과 평화의 제전이 공존하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란 물음이다. 이는 올림픽에 더 이상 평화의 제전이란 수식어가 일종의 액세서리에 불과한 것이나 다름없음을 선포하는 시대적 이미지가 아닐까. 올림픽이라는 매스게임은 이제 메달 따먹기의 장일 뿐, 혹은 말 그대로 스포츠라는 유희를 즐기고자 하는 빅매치일 뿐, 그것이 모토로 했던 전세계 화합의 수식어와는 무관해지는 양상임을 인정해야 한다. 되려 국가간의 경쟁 속에서 상대에 대한 손가락질이 오가는 형국이다. 자기 국가에 대한 자존심을 메달의 수로 증명하려 하고 그를 통해 상대방보다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의욕에 불타는 지금의 올림픽이 과연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무조건 1등의 단상에 올라 애국가를 부르고 태극기를 바라봐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작위적인 금빛 드라마가 감동적인가?
올림픽의 기원이 된 그리스의 올림피아제 기간엔 이에 참가하는 폴리스 간의 전쟁행위도 중단됐다. 적어도 올림픽이란 이런 것이다. 그것이 본질적으로 평화를 일깨우는 깊은 잠재력이 있다고 비약할 수는 없지만 잠시라도 폭력의 창을 거두고 서로의 육체적 경쟁을 통해 인간적 유대감을 도모하고자 하는 인간적 화합의 장이었던 것이다. 그게 올림픽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올림픽은 그것과 상당히 먼 것이 돼버렸다. 그게 베이징올림픽 탓이냐고? 아, 그건 아니고.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라면 우리가 바라보는 올림픽은 무엇인가란 말이다. 박태환이 금메달을 따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고, 한국축구가 16강을 넘어가길 간절히 고대하고, 적어도 우리가 일본보단 금메달 수가 많아야 할 텐데 걱정하는 것이 올림픽이라면 이미 우리도 글러먹었다는 거다. 물론 이기는 게 뭐가 나빠? 라고 한다면 그건 나쁘지 않다. 단지 뭐가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고 그저 금메달 따먹기에 혈안이 됐다는 게 문제란 거지. 결국 메달 따는 편이 우리 편, 못 따면 듣보잡. 이것이 우리가 처한 무한경쟁체제의 현실 아닌가. 결국 인간들의 땀내나는 경쟁의 의미는 퇴색되고 누가 이기고 지는가라는 성적표만이 중요해질 뿐. 우리에게 올림픽은 이 정도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우리 정신차려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