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차마 손을 흔들 수가 없어서, 그냥 뒤돌아보다 걸어갔다. 그게 또 못내 마음에 걸려. 손이라도 흔들어줄 걸 그랬나.
오랜만에 만난 그 아이가 사랑스러워서 마음이 벅차 올랐는데 다시 또 한없이 가라앉았다.
웃었다.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 우리 헤어진 적 없는 거야. 그렇지? 하지만 그 아이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 종종 웃어주건만 예전처럼 마냥 밝지 않아.
밥을 먹었다. 밥 먹으면 친해진다잖아. 근데 이 집 돈까스 좀 맛이 없나. 물리나. 밥이 잘 넘어가지 않네. 평소 그 아이보다 먼저 먹곤 했는데 그 아이가 밥을 먼저 먹었다. 그래서 나도 결국 꾸역꾸역 씹어 삼켰다. 배고팠다고 했지만 평소보다 그리 빨리 먹은 것도 아니었다. 은근히 깨작거리는 젓가락이 마음에 걸려 출렁.
손을 잡았다. 손을 내주는 그 아이의 몸짓이 무겁다. 모른 척 휘어잡았다. 꽉 쥔 손에 그 아이 손이 느슨했다. 손을 잡고 있으니 마음이 시렸다.
차를 마셨다. 은근히 서먹서먹한 분위기 속에서 그 아이는 말을 삼키고 있었다. 그냥 먼저 꺼냈다. 나한테 뭔가 할 말 있는 거 같은데? 아무렇지 않은 듯, 이미 다 알고 있었지만, 그냥 그렇게.
어차피 이미 사태는 벌어졌다. 난 왜 거기까지 가서 그 아이를 만나고 있었나. 사실 되돌리고 싶었다. 일산까지 1시간을 넘게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사실 어떻게든 그 아이 마음을 되찾아 오리라, 전략은 없지만 마음만 승승장구하게 붕 떴다.
현실은 쉽지 않았다. 그 아이는 웃기도 하고, 이내 울기도 했다. 마음이 아프다. 내 말에 그 아이도 울었다. 나도 울었다. 우린 울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별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아. 그 아이는 끝까지 이별을 놓지 않았다. 화를 내는 것도 아니었다. 옛날 얘기를 했고, 내가 사실 이랬노라, 그런데 이렇더라, 후회한다, 정성 가득 회한을 담아 그 아이의 마음을 돌려보려 애썼지만 불가항력이었다. 마치 떠나간 기차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울면서도 끝까지 묵묵히 이별을 다짐했다. 슬펐다. 어쩌겠나. 그냥 문득 이 찻집을 나서면 이 아이와 정녕 끝일까 두려워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는 것을. 가능하다면 평생 그 찻집 그 자리에 머무르고 싶었다.
시간이 왔다. 막차 시간이 가까웠다. 속세적인 고민이 엄습했다. 이 와중에도 막차 시간 따위를 고민해야 하나. 하지만 여기는 일산. 우리 집까지 택시비는 무시무시해. 아, 정말 슬프다. 어쩌면 너와 나의 거리가 우리 사이를 이처럼 갈라놓는 건지 몰라. 그렇게 생각하니 더더욱 서러웠다. 운전면허라도 일찍 따둘걸. 항상 3호선 타고 다니는데, 대화 역 볼 때마다 마음이 넘칠까. 벌써 두려워. 참지 못하고 널 보러 끝까지 달려버리진 않을까. 벌써 두려워.
미션은 실패했다. 그 아이의 뜻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마지막 이별까지 사랑해야 하나. 참 성인군자요. 어쩌겠소. 젠장. 한번 그 아이를 안았다. 울먹인다. 너 이렇게 울먹이면서까지 날 보내야겠니. 이게 정말 이별이란 거니? 아, 정녕 그런가. 아아, 님은 갔지만 난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말이 쉽나. 하지만 정녕 님을 보내지 못하겠어. 하지만 님은 결국 떠났고, 난 남아서 버스를 기다렸다. 우린 이렇게 헤어졌다. 하지만 난 여전히 끝이 아니라 믿는다. 정녕 구원은 올까. 그 아이가 다시 성령처럼 강림해주길, 그건 무리인가. 정말 우리 사랑은 옛노래처럼 흘러가나.
그렇게 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아이를 찾지 못한 채. 외로움만 주렁주렁 달고 돌아와버렸다. 하지만 난 여전히 기다리고 있어. 난 여기 열려있을게. 생각나면 찾아오길. 진심으로 빌었다. 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