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봤다. 재미있었다. 기대 이상이었다. 그 아이도 재미있게 볼 수 있겠어.
꼭 보라고 해야지. 아니면 내가 같이 봐줄까?
아, 문득 생각났다. 그랬지. 그랬었어.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는 길이 한없이 길었다.
헤어지자고 했다. 세 번째다. 그래도 잡고 싶었다. 그 아이는 단호했다.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도 헤어지자고 했다.
어지러웠다. 거짓말 같았다. 장난치는 거지? 받아 넘기고 싶었다. 에이, 왜 그래. 하지만 차마 입이 열리지 않았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날 보고 웃고 있었던 그 아이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날 향해 웃어주던 그 아이가 날 보고 헤어지자고 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그럼에도 문득 마지막까지 붙잡고 싶었다.
불과 한 달 전이었다. 그 아이를 다시 잡았던 것이. 뭐가 잘못됐을까? 무릎이라도 꿇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처량해. 역효과만 날 거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다. 그 아이가 둥둥 떠내려가잖아. 여보게, 저 아이 좀 잡아주시게. 머뭇거리는 사이 한참을 더 내려가.
2년을 가득 채우지 못하고 끝을 바라보고 있다. 처음 좋아했던 상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날 진심으로 좋아해준다는 친구와 사랑이란 걸 나눠 가져본 건 처음이었다. 어떤 사람은 그랬다. 네가 처음이라 그런 거야. 어떤 사람은 그랬다. 진짜 헤어질 때 되면 눈물도 안 나온다.
그런가. 지하철에서 멍하니 앉아있다 가까스로 집에 들어왔다.
엄마도 강아지도 하나같이 초현실적이다. 난 이리도 마음이 무거운데 세상은 여전히 말짱해.
방에 들어왔다. 문득 그 아이에게 불러줬던 노래가 생각났다.
찾아서 겨우 틀고 노래를 듣다 따라 불렀다. 크게 불렀다. 목소리 사이로 새어 나오는 울음이 끼어들 틈 없이 크게 불렀다.
마루에 있는 엄마가 내 우는 소리를 들을까 입을 눌러 막고 오열했다. 난 눈물이 많은 남자구나. 그 아이 덕분에 세 번이나 확인했다.
네가 곁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난 세상에서 가장 가진 것 없는 사람이 돼버렸다.
네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난 세상을 가진 것 같았다. 자신 있었다. 나 이런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어요. 이만하면 대단하지 않나요. 모든 걸 잃었다. 초라했다. 남들에게 얼굴이라도 비춰질까 두려웠다. 숨고 싶었다.
여전히 난 널 생각하고 있다.
네가 날 빛나게 했어. 빛을 잃었다. 한없이 어둡기만 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예전 사진들을 다시 봤다. 하나하나 기억이 다시 살아나. 그때 그 표정들, 날 보며 웃고 있었던 네 얼굴.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기억 앞에서 무너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그냥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기억을 삼켜야 하나.
다시 시작해볼까. 그럴 순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