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주말 동안 집안에서 퍼져있었다. 금요일까지 마감해줘야 할 외고를 토요일 아침에서야 가까스로 마감해서 넘겨주고 나서 무기력해졌다. 이틀을 온전히 버렸다. 마이클 잭슨 Thriller 25주년 앨범과 최근에 구입한 Placebo, Eminem 신보만 줄창 틀어놓고 그냥 자빠져 있었다. 말 그대로 시간을 죽였다. 잠도 많이 잤다. 간만이었다. 아직도 녹취조차 못 들어간 인터뷰가 두 개나 남았고, 리뷰도 하나 써서 넘겨줘야 한다. 화요일 즈음이면 방송 원고도 넘겨줘야겠지. 다음 주엔 또 일이 쌓일 테고. 기이하게 바쁘다. 이상하게도 매일 같이 일이 쌓이고 덜어지지 않는다. 게으른 탓이다. 나사가 하나 풀린 기분이랄까. 의욕에 비해 진도가 안 나가는 기분. 누가 보면 떼돈이라도 버는 줄 알겠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다. 그냥 입에 풀칠하지 않을 정도랄까. 다음주엔 봐야 할 영화도 많다. 방송에서 소개하는 개봉작이 4편에서 3편으로 줄어서 그나마 일이 덜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영화는 봐야 한다. 혹자는 영화를 보지 않고도 소개쯤은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아무래도 난 그게 좀 어렵다. 내 성격상 그게 쉽지 않다는 건 내가 잘 안다. 그렇게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다. 난 내가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것을 마치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게 어렵다. 바로 티가 날 거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영화를 보고 소개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업적이라도 되는 건 아니고. 그나마 가능하다는 거지.

 

사실 최근에 여러 가지로 신변에 변화가 있다. 여자친구와 헤어졌고, 회사가 한 고비를 넘겼다. 사실 여러 가지로 진통이 있었던 두 가지 일이 어떤 식으로든 해결이 됐다. 그냥 둘 다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후자는 명백히 잘 된 일이고, 전자는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 내가 간절할수록 상대는 괴로울 일이라면 내가 포기할 때 상대도 편해진다. 깨끗하게 단념했다. 아니, 단념이전에 스스로 편해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놨다. 허전한 건 사실이지만 예전만큼 아프진 않다. 그냥 그 아이나 나나 각자의 길로 다시 들어서는 게 서로에게 발전적인 상황이 될 것 같다는 마음에 스스로 편해졌다. 친구라도 될 걸 그랬나, 싶은데 잘 모르겠다. 가능할까. 딱히 다른 기대감에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한 시절을 함께 보낸 애인과 친구가 될 수 있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 나쁜 이별도 아니었으니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고. 쌍욕하면서 헤어진 것도 아니고 생각보다 담담하면서도 친근하게 이별을 고하고 맞이했다. 이 정도면 꽤나 깔끔하지 않았나. 쿨한 것과는 다른 차원의 상황이기도 하고.

 

어쨌든 주말이 지나고 다시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 집에서 10분 거리에 놓인 회사로 터벅터벅 걸어가다가 여유가 있으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한 잔 사 들고 가던가. 최근 가장 발전적인 변화는 회사가 우리 집에서 10분 거리로 이사를 했다는 거. 서태웅이 괜히 북산고를 선택한 게 아냐. 그리고 그 주변에 있는 커피전문점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무려 1500원에 판다는 거. 시럽 넣지 않는 아메리카노를 선호하는 나에겐 훌륭한 조건이다. 최근에 함께 일하기로 한 선배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불참을 통보해서 약간 난감하긴 했지만 이 역시도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해결될 조짐이 보인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어쩌면 내 개인적인 환경이 변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건 뭔가 확실해지면 좀 더 언급하고, 아니면 묻어야지. 어쨌든 나쁘지 않다. 지금 상황. 그런데 연애도 칼로리를 소모하는 작업이었을까. 연애도 끝나니 쉬고 싶다. 누구는 그러던데. 없으면 절실해진다고. 글쎄, 지금은 아니올시다. 그냥 담담한 기분. 그냥 동네에 오후 즈음에 별 생각 없이 만나서 맥주나 한 잔 하면서 수다 떨 수 있는 불알 친구나 하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건 좀 아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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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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