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먼 그라운드’ 가봤어?”라는 질문을 받았다. 커먼 그라운드라는 곳이 뜨는 공간이란 말이었다. 들어보니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서 만든 공간이라 했다. 새로운 일은
아니다. 영국 런던의 컨테이너 쇼핑몰 ‘박스파크’나 뉴질랜드의 ‘리스타트’ 등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건물의 사례는 이미 적지 않다. 서울 논현동의 ‘플래툰
쿤스트할레’나 한남동 블루스퀘어의 전시관 ‘네모’ 등, 국내에서도 처음이 아니다. 다만
커먼 그라운드는 컨테이너 박스로 지어진 건물 가운데 전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지닌 건축물이라고 했다. 본래
택시회사 부지였던 공터를 코오롱인더스트리FnC(이하: 코오롱)에서 매입해서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 올렸다고 했다. 공식 홈페이지에선
커먼 그라운드가 어떻게 세워졌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고속 촬영 동영상을 볼 수 있었다. 그 영상을
보니 직접 두 눈으로 그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졌다.
커먼 그라운드가 들어선 곳은 광진구 자양동, 더 직접적으론 건대 부근이라고
했다. 7호선 건대 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서 조금 걸어가니
파란 컨테이너들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보니 항구에 적재된 컨테이너들을 보는 기분이라 그 너머에 파란
바다가 펼쳐질 것도 같았다. 어쨌든 양쪽으로 나뉘어 길게 공간을 감싸는 형태로 이어져 쌓인 두 동의
컨테이너 박스엔 다양한 매장들이 들어서있다. 공식적인 보도자료에 따르면 56개의 패션 브랜드와 16개의
F&B, 1개의 문화공간으로 구성돼 있다고 했다. 두 동의 패션 브랜드는 각각 남성용, 여성용으로 나뉘어 있다. 층마다 동마다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악세서리 매장을 비롯한 여성 브랜드가 집결된 한 동은 길게 이어지는 컨테이너 구조에 따라 동선이 이어지는 탓에
약간 통로가 비좁은 동대문 패션몰의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반면 남성용 브랜드가 모인 다른 한 동은 상대적으로 여러 개의 컨테이너가 뻥 뚫려서 이어진
구조 덕분에 동선에 여유가 있는 아울렛 매장처럼 느껴졌다.
흥미로운 건 코오롱에서 운영하는 이 공간에서 코오롱 산하의 패션 브랜드를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인디 디자이너 브랜드나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등 소위 동대문 상권을 통해서 패션계로 진입하는 혈기왕성한 젊은
브랜드들로 포진돼 있었다. 그리고 컨테이너 박스 안팎을 채우는 것도 젊은 피였다. 커먼 그라운드를 누비는 이들 대부분은 10대 혹은 20대쯤으로 보이는 남녀였다. 둘이서 혹은 삼삼오오끼리. 커플 혹은 친구들끼리.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커플에게 대뜸
커먼 그라운드가 마음에 드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다.
“쿨하잖아요.” 커먼 그라운드는 젊은 공간이었다. 세워진
지 오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어린 것과 젊은 건 다른 이야기다. 육체보다도 정신의 문제다. 컨테이너로 만들어서가 아니라 컨테이너로
이런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발상이 이 공간에 모여드는 이들의 정신적 나이를 규정하게 만든다.
광장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자전거 묘기를 하는 이들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규칙성 없이 광장 위로 산재해 움직이던 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었고, 원형의 벽이 형성됐다. 광장 안에 작은 광장이 생겼다. 커먼 그라운드를 주목하게 만든 건 분명 공터를 세워진 컨테이너 박스 자체겠지만 커먼 그라운드에 온다면 광장을
통하게 될 것이고, 광장을 주목하게 될 것이다. 광장 한가운데
서면 좌우로 광장을 감싸듯 이어진 컨테이너 박스 위로 아래를 내려다 보는 이들과 눈이 마주치기 십상이다. 덕분에
난간에서 내려다 보는 클러버들 사이에 둘러싸인 클럽의 댄스 플로어에 선 기분이 들었다. 광장엔 푸드
트럭 세 대가 컨테이너 하나를 가운데에 끼고 어깨를 기댄 것마냥 서있다. 트럭마다 각기 다른 종류의
음식을 판매한다. 음료나 맥주도 주문할 수 있다. 다들 그
주변에 앉거나 서거나 하며 음식을 기다린다 대부분 맥주 한 병씩을 제 앞에 두거나 손에 들고 있었다. 다들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든다. 불편하다기 보단 즐길 만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쿨하다.
어쩌다 문득 커먼 그라운드 옆으로 동네 주민
정도로 보이는 할머니가 구부정하게 무심히 걸어가는 풍경을 보았다. 왁자지껄한 젊음 옆에서도 세월은 무심하게
흘러간다. 커먼 그라운드는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다. 하지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놀이터는 아닐 거다. 물론 세상의 모든 재미를 쫓을 필요는 없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놀이터를 찾으면 된다. 들어왔던 길을 따라 나오며
깨달았다. 커먼 그라운드는 내게 어울리는 놀이터가 아니라는 것을. 서른
살 중반의 나이가 됐기 때문인지, 쿨하지 못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상관
없었다. 물론 그 활기가 싫진 않았다. 그저 내 것이 아니었을
뿐이다. 나는 그걸 인정하기로 했다. 쿨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