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반나절을 누워있었다. 명확하게 머리를 반으로 가르고 왼편 측두부를 찌르고 들어오는 통증에 온전히 짓눌려 있었다. 편두통이 왔다. 간만이었다.
매우 어렸을 적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극장이란 곳에 갔던 날이었지. 가족 모두가 함께 손을 잡고 매우 건전한 <베어>를 보러 갔다. 하지만 내게 <베어>는 기억날만한 장면이 없는 영화다. 볼 수가 없었으니까. 영화가 시작된 직후, 안구부 주변을 비롯한 머리의 절반을 얼얼하게 만들 정도로 갑작스럽게 찔러대는 통증이 표피의 안으로부터 진동하듯 전해졌다. 엄마에게 매달려 징징거리다 가까스로 잠이 들었던 어린 나는 후에 눈을 떠보니, 통증의 소멸과 함께 <베어>의 그 명장면을 지켜볼 수 있었다. 곰이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던 그 감동적인 장면을 나는 맥락 없이 그 파편적인 이미지만으로 감상했다. 덕분에 내게 <베어>란 영화는 그 장면만으로 대변되는 영화가 돼버렸다. 긴 필름의 너비는 그저 숭고한 이미지 한 조각으로 남았다.
나중에서야 그 당시 내가 겪었던 통증의 실체를 알게 됐다. 불미스럽지만 편두통의 증상을 자각한 건 중학교 2학년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교실에서 수업을 들으며 칠판을 보고 있는데 칠판의 절반 정도가 잘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전구증상, 그러니까 밝은 태양이나 전구를 봤을 때 눈에 남는 그 반짝이는 잔상 같은 것이 내 시야의 절반 가량을 덮어버리고 있는 거다. 내 눈이 이상하나 싶었지. 동시에 초점도 흐려지고. 그러다 잠시 후, 마치 안개가 개듯 그런 증상이 완연히 사라진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이다. 왼편 안구 부근을 비롯해 좌두부 전체로 통증이 밀려온다. 마치 크레센도의 세기와 같이 퍼져나가기 시작하는데 단순히 뻐근한 느낌의 통증에서 어떤 무엇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무차별적 진통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일단 통증이 밀려오면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다. 유일한 처방은 잠을 자는 것이다. 물론 그 파국적인 통증을 견디며 잠을 이루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잠을 통해 통증을 잊어야 한다. 어차피 그 통증이란 몇 시간 정도가 경과하면 잦아들게 돼있다. 오랜 경험이 알려준 지혜다. 문제는 잠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통증이 점차 격해지며 잠을 이룰 가능성도 희박해지기 때문에 보다 필사적으로 잠에 매달리게 된다. 때때로 심각할 때는 메스꺼움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건 일종의 멀미 증상과 비슷한 것이다. 두뇌에 가해지는 심각한 통증이 일종의 평형감각까지 마비시킬 정도로 대단한 탓이다. 어쨌든 가까스로 잠을 이루게 되면 성공이다. 그 이후에 잠에서 깨어날 때 즈음, 통증은 어느 정도 가라앉게 돼있다. 물론 그 후에도 그 날 동안은 몸에 힘이 들어갈 때마다 후두부에 날카로운 것이 찌르고 들어오는 듯한 통증이 엄습한다는 걸 느껴야 하겠지만.
오랜만에 편두통을 앓았다.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건 아니지만 잊을만하면 아주 문득 찾아오는 불청객이 됐다. 그 전구증상이 눈앞에 나타날 때면 긴장될 수 밖에 없다. 그 통증도 통증이거니와, 지금 당장 하던 어떤 것이라도 손에서 놔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덕분에 어제는 생각했던 일을 절반도 못했다. 지금도 약간의 통증이 잔상처럼 남아있음을 느낀다. 몸에 약간의 힘이 들어가거나 고개를 과하게 돌리면 불현듯 통증이 고개를 내민다. 고등학교 때부터 몇 년간은 월 단위로 주기적인 통증을 맞이해야 했던 기억이 난다. 전구증상의 전조가 나타나면 당장 하던 모든 걸 포기했다. 곧 지긋지긋한 통증이 조금이라도 더 커지기 전에 눈을 붙여야 한다는 것부터 자각해냈다. 다행히 지금은 잦은 일이 아니지만 아주 간혹 문득 그 통증의 실체를 느끼고 나면 여전히 그것이 지긋지긋한 일임을 알게 된다.
언제 갑작스럽게 날 쥐고 흔들지 모르는 편두통처럼, 내 삶도 언제 갑작스럽게 어디론가 튕겨 날아갈지 모르듯 흘러왔다. 지난 20대가 그랬고, 최근 몇 년간은 정말 예상 따위란 할 엄두도 날 수 없게 굴러온 기분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런 흐름들이 내게 결과적으로 좋은 방향을 향해 이어져왔다는 것이다. 오늘에 만족하고, 오늘에 충실하자 마음먹게 되는 것도 그런 현재 시제의 결과가 내게 있어서 어떤 어제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기 때문일지라. 학교에 대한 꿈을 접고, 공부에 대한 애착을 뒤로 한 채, 내게 그것이 어떤 기회가 될 것이라는 야심 따위를 품을 여유도 없이, 일단은 주어진 길을 징검다리 밟듯 따라오며 여기까지 왔다. 여전히 난 대단한 것을 이루리란 야망을 품지 못하고 있다. 내 주제도 알고, 내 능력의 한계도 잘 안다. 다만 난 내게 가능한 길의 끝까지 가보리라, 마음 먹고 있다.
세상에 길이 남을 훌륭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다만 내가 쥐고 있는 것들만큼은 죄다 태울 수 있을 것처럼 살아보련다. 쥐고 있는 것이 얼마 많지 않다는 게 걸리지만, 적어도 그런 한 줌의 삶이라도 잘 쥐고 가야지. 최소한 지긋지긋한 고통에서 헤어날 수 없더라도, 내겐 보다 소중한 내일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품을 수 있도록, 오늘을 걸어가야지. 내 남은 20대 마지막 1년은 내게 있어서 좋았던 시절이었노라, 언젠가 되새길 수 있도록. 어제보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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