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예산면 운곡리의 조필성(김윤석)은 한적한 시골에서 치안 유지보다도 집안의 경제난 해소가 더 고민스러운 한량 형사다. 만화방을 운영하며 남편의 쥐꼬리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아내(견미리)의 바가지는 득달같고, 두 딸에겐 매일같이 면목이 없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행운이 찾아온다. 소싸움 대회를 주관하던 중, 불현듯 찾아온 예감에 아내의 통장을 훔쳐다 판돈을 걸자 열 배의 배당금이 쏟아진다. 하지만 행운은 곧 불운으로 돌변한다. 친구에게 맡긴 배당금을 찾으러 가던 중, 희대의 탈주범 송기태(정경호)를 만나고, 돈도, 자존심도 모두 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그리고 추격이 시작된다. 거북이 달린다.
<살인의 추억>은 시골이란 정체된 정서의 공간에 스펙터클한 서스펜스를 채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추격자>는 추격의 대상을 숨기지 않고도 긴박한 추격전을 만들 수 있음을 (한국의 영화적 토양에서) 증명했다. 신분을 감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추격자>와 유사한 구도를 보유한 <공공의 적>은 형사로서의 제도적 처벌보다도 개인적인 복수심에 근간에 둔 주먹질을 연출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결말을 그린다. 앞서 나열한 세 영화의 공통분모는 무능한 경찰력이다. 과학수사를 운운하거나, 직감을 따라가거나, 혹은 불법을 자행하거나, 범인들은 항상 형사들을 제치고 능수능란하게 빠져나간다. 이는 <거북이 달린다>도 다르지 않다. 다만 여기서 ‘거북이’는 형사를 겨냥한 단어가 아니다. 구체적인 언어를 동원해 설명하자면 ‘시골’의 ‘서민’‘가장’형사다.
향토적 풍경을 바탕으로 축조된 수사물이란 점에서 <거북이 달린다>는 <살인의 추억>과 <추격자>를 연상케 하는 장르적 환경과 구조를 지닌다. 동시에 그 추격의 주체와 객체가 형사와 범인이라는 공적 신분을 벗어나 개인과 개인의 대결 양상으로 치닫는 피날레를 연출한다는 점에서 <공공의 적>이 떠오른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거북이 달린다>는 앞선 세 영화와 활성화된 에너지의 유형이 다르다. 앞선 세 영화가 고체처럼 단단하게 응축된 서스펜스를 기본적인 영화적 질량으로 삼은 장르물이라면 <거북이 달린다>는 액체처럼 유연하게 출렁이면서 종종 넘쳐흐르는 방식의 코미디에 가깝다. 눈에 띄는 건 스토리보다도 캐릭터이며 전반적인 분위기보다도 순발력 있는 리듬이 관건이다.
서울에서 내려온 날렵한 탈주범과 그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시골의 느슨한 형사 사이엔 좀처럼 메울 수 없는 빈틈이 보인다. 공권력을 농락할 정도로 두뇌가 비상하고 운동신경 또한 발군인 송기태에게 조필성은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적수다. 이는 ‘토끼와 거북이’의 토끼처럼 방심하기 좋은 상대인 셈이다. (동화의 관계를 염두에 둔 제목처럼) <거북이 달린다>는 방심하는 토끼를 쫓아 달리는 거북이의 고군분투를 그린 영화다. 그리고 그 거북이는 시골에 사는 서민이자, 가장이며, 아버지다. 형사의 추격전이라기 보단 촌놈의 사투에 가깝다. 촌스럽고 느슨한 루저의 승리를 연출하기 위한 서사를 그린다. 이성적으로 직조된 것이라기 보단 감정적인 결과물에 가깝다. 그만큼 선악의 관계는 배제되고 개인적인 사연이 중시된다. 형사도, 범인도, 제 나름의 사연이 있다. 다만 그 사연의 비중이 다르고 그만큼 캐릭터에 대한 편애가 형성된다.
드라마틱한 감정을 주조하는 코미디로서 좀 더 효율성이 뚜렷한 <거북이 달린다>는 장르적 동선을 밟아나가는 덕분에 장르적 기시감을 부르지만 종종 느슨하게 풀리는 속도감을 활용해 유머를 발생시키고 드라마틱한 감정을 주조하는데 좀 더 효율성이 뚜렷한 작품이다. 장르적 비범함보단 평이한 드라마로서의 야심이 짙다. 추격전의 구도에 곁가지를 치는 가족주의의 감성으로 이뤄진 <거북이 달린다>는 지극히 단순한 내러티브를 지니고 있지만 종종 명확하게 나아가지 못하고 주춤함으로써 일관성 있는 리듬감에서 벗어나곤 한다. 하지만 연주력의 공백을 메우는 건 배우라는 악기다. 주연과 조연 가릴 것 없이 <거북이 달린다>의 캐릭터를 이루는 배우들은 제 역할에 충실하다. 특히 김윤석은 마치 악센트와 같은 강세를 찍으며 단조로운 이야기에 특별한 음색을 새긴다. 다만 대비를 이루는 캐릭터의 세기가 좋은 형태를 이루지 못해 종종 사연의 중심이 흐트러지는 인상이 감지되고 그만큼 결말부를 장식하는 쾌감이 약해진다.
그럼에도 <거북이 달린다>는 환경을 잘 응용한 코미디이자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한 오락영화다. 과하거나 부족한 지점이 눈에 띄지만 마이너스와 플러스의 총합의 균형이 적절하다. 무엇보다도 캐릭터가 얻는 마지막 성취를 방해하고 싶지 않다. 촌놈을 위해 배려된 작위적 송가라지만 그 소박한 에너지가 온전히 전달되는 기분이다. 그 순박한 자질이 밉지 않다.
아내가 결혼했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이 제목은 불순하다. 치토스 한 봉지 더도 아니고, 결혼을 한번 더라니. P2P파일도 아니고 아내를 공유해야 한다는데, 남편은 그러란다. 속도 좋다. 물론 당연할 정도로 분노하고 울분도 터뜨린다. 하지만 선택해야 한다. 결코 소유권을 포기하고 싶진 않다. 결국 결심한다. 그래서 전처가 아닌 아내가 결혼한다. 사랑이 뭐길래. 오, 놀라워라. 그대 향한 그 마음. 한반도 역사상 남편을 공유하는 아내는 있었지만 아내를 공유하는 남편이 있었나. 가부장적 권위는 과거의 잔재가 됐다. 여성의 권위가 때때로 남성을 압도하는 시대에서 노덕훈은 현재 대한민국 수컷들의 고민과 맞닿는다. 아내가 결혼했다. 객석의 누군가가 이를 받아들이던, 말던, 노덕훈은 그것이 행복이라 결론내린다. 마초 독재 시대가 지고 있다. 노덕훈은 새로운 징조다. 이혼율이 급증하는 현대 사회에서 결혼은 어떤 의미가 있나. 그 남자의 선택이 흥미롭다.
강철중(설경구) <강철중: 공공의 적 1-1>
형아가 돌아왔다. 싱아횽에 필적하는 강철중이 돌아왔다. 상사에게 개기고, 범인과 일대일 맞짱을 요구하는 강철중은 여전히 꼴통이다. 하지만 그도 무언가에 굴복 당하는 중이다. 무서울 것 없이 살아왔지만 가난한 가장이라는 죄책감을 피할 수 없다. 강철중의 정의구현은 그 지점에서 발효된다. 뼈빠지게 범인 잡으러 10년 동안 뛰었지만 집 하나 마련하기 어렵다. 되려 등쳐먹고 호의호식하는 작자들을 보니 심기가 불편하다. 자본주의가 야기한 상대적 박탈감이 강철중의 주먹을 지지한다. 주먹질이 현실의 부조리를 타파하진 못해도 대리만족은 이룬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라는 단순 무식한 신념이 통쾌하기 그지 없다. 대한민국 서민 안티히어로가 재출범했다. 하지만 강철중도 돈 앞에서 무력하다. 범인을 때려눕힌다고 집이 장만되는 건 아니다. 돈 앞에 장사 없는 시대다. 강철중의 주먹이 통쾌해도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강철중의 유효기간도 갱신된다. 아이러니한 인기다.
<강철중: 공공의 적 1-1>(이하, <강철중>)의 흥행 소식이 반가울 것 같아요. 지난 출연작들은 아쉽게도 흥행성적이 좋지 않았으니까요. 아무래도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겠죠. 혹시 실제로 알아보는 사람이 늘었나요? 시선들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예전보다 멀리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어? 어? 이러는 분이 많이 늘었고, 종종 직접 다가와서 영화 잘 봤다고 얘기해주시는 분들도 계시죠. 그러다 보면 정말 많은 분들이 (<강철중>을) 보시긴 보셨구나, 라는 게 아무래도 피부로 느껴져요.
주변의 관심이 늘었다는 게 몸으로 느껴지면 심리적으로 조심스러워지는 측면도 생길 수 있을 텐데요. 그렇죠. 좀 더 조심성 있게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어요. 게다가 다들 좋게 말씀해주시니까요.
연기데뷔작은 TV청소년드라마 <반올림>이었죠. 덕분에 <폭력써클>에서 연기한 한종석은 상당히 의외였던 거 같아요. 엉뚱하고 소심해서 웃음을 주던 소년이 저토록 무시무시해질 줄 누가 알았겠어요? 원래 종석이라는 캐릭터로 <폭력써클>오디션을 본 게 아니었어요. 중간에 많이 바꾸게 됐죠. 오디션 보고 나서 이 캐릭터, 저 캐릭터, 바꿔가며 리딩해보고 그랬어요. 재구를 하게 된 적도 있었고요. 그러다가 나중에 감독님께서 종석이를 리딩해봐라, 하셨고 결국 넌 종석이를 해라, 그렇게 됐죠. 제가 처음으로 하게 된 영화니까 당연히 다른 건 생각하지 않고 그저 열심히 해야 되는 거란 마음을 갖고 연기했던 거 같아요.
결국 박기형 감독님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종석이라는 인물을 맡기게 됐다고 볼 수 있겠네요. 혹시 그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언급해주진 않았나요? 감독님께서 저한테 그 캐릭터를 맡기고 싶다고 생각하셨던 게, 종석은 많은 친구들과 대결하는 구도에 서 있잖아요. 일단 거기서 짱인데, 짱은 무조건 크다는 인식이 있잖아요. 캐릭터 분석표를 봐도 원래 종석은 덩치 크고, 키도 큰 친구였거든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그 반대로 생각하게 됐다고 하셨어요. 작고 왜소해 보이지만 날렵한 친구가 나쁜 악당 대장을 하면 어떨까, 달리 표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서 그랬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흔히 말해서 깡다구가 센 친구였죠. (웃음) 눈빛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무시무시했어요. 나쁜 놈이죠. 지옥에 갈 못된 놈. (웃음) 한종석은 있으면 안 되는 애에요.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첫 영화였고요. 나름대로 개인적인 준비과정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일단 악역이 나오는 남자영화를 많이 봤어요. 감독님께서는 <좋은 친구들 Goodfellas>에서 조 페시 연기를 많이 보라고 하셨고요. 그래서 알겠습니다, 하고 봤죠. 느껴지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나쁜 악당들의 무서움이란 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제 느낌을 관객에게 똑같이 느끼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 질문도 많이 받았을 거 같아요. 원래 좀 한 주먹하고 놀았던 거 아니냐는. (웃음) 물론 아니고요. (웃음) 저는 원래 운동을 했었거든요. 그리고 저희 집이 용인에 있는데 도외지에서 학교를 다녀서 그런지 특별히 나쁜 친구라고 할만한 애는 없었어요. 제가 원래 웃기는 얘기해주는 거 좋아하고 사람들 재미있게 해주는 거 좋아해서 친구들과는 사이가 좋았어요.
팬카페도 있더군요. 아무래도 <폭력써클>을 인상적으로 보셨던 분들이 대다수로 보이더군요. <폭력써클>을 시작으로 많이 늘었죠. 아, 물론 그렇게 많은 분들이 계시는 건 아니고요. (웃음) 그나마 그 전보단 많이 생겼죠. 관심 있게 봐주시는 분들이.
그 분들이 <강철중>을 봤다면 얼마나 반가워하셨을까 짐작이 갑니다. (웃음) <강철중>까지 포함한 세편의 영화에서 항상 고등학생을 연기했습니다. 1학년 두 번, 3학년 한번, 그랬죠.
폭력써클>당시에는 실제 고등학생이기도 했죠? 19살 말, 고3이었죠. 해가 바뀌면서도 촬영을 했어요. 19살 때부터 찍어서 20살 때 종료됐죠.
졸업 후로도 영화를 통해서 고등학교 생활을 연장한 셈이네요. (웃음) <두사람이다>에서는 불량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결국 폭력적인 상태로 돌변하는 연기를 했어요. <강철중>에서는 말 그대로 불량청소년이었고요. <폭력써클>이 차기작 캐스팅에 미치는 영향이 존재했던 게 아닐까 싶더군요. 제가 원해서 오디션을 봤고, 제가 정말 필요해서 캐스팅된 거 라면 상관없어요. 하지만 솔직하게 개인적으로 우려가 되는 부분은 있죠. 그런 제 모습을 보신 분들이 강하게 어필된 부분만 인식하실까 봐 조금 우려되는 부분이 있는 거 같아요.
아무래도 부모님께서 우려되시는 부분이 있을텐데요. 마음이 편하시진 않으실 것 같아요. (웃음) 그나마 이번에 <강철중>에서는 어머니께서 덜 그러시더라고요. <폭력써클>때는 정말 너무나 마음이 안 좋으신 게 보이는 거에요. (웃음) 시사회가 끝나고 어머니께, 재미있게 봤어요? 그러니까 그저, 음, 이러면서 말이 없으시더라고요. (웃음) 그래도 아버지는 잘했다고 하셨고요. 그나마 어머니께서 이번에 <강철중>은 마지막에 친구들과 만나서 포옹하고 그렇게 풀어주는 모습이 너무 좋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이제는 좀 더 풀어진 역할 좀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도, 그럴게, 그랬죠. (웃음)
연기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운동을 했는데 그만두게 됐어요. 그리고 원래 목표가 운동에 관련된 일을 하는 거였지만 한편으로는 영화배우, 탤런트와 같은 연기자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어쩌다 부상 때문에 운동을 그만 두게 됐는데 그러니까 연기가 되게 하고 싶어졌어요. 막연했던 부분이었는데 구체적으로 정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됐죠. 그래서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본격적으로 트레이닝을 받고 기회가 와서 시작하게 됐죠. 사실 <반올림>공개 오디션을 볼 때는 그런 경험이 한번도 없었으니까 전 그냥 시합 나간다고 생각하고 했어요. 어차피 한번 보면 말 사람이지, 이런 마인드로 했었는데 그게 굉장히 득이 됐던 거 같아요. (웃음) 아무 것도 모른 상태에서, 누가 감독님이고, 누가 작가 분인지도 모르고 그냥 했으니까요.
아무래도 관중이 있는 시합에 출전했던 경험이 오디션에도 도움이 된 건 아닐까요? 그리고 연기할 때도 그런 시선들을 극복하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근데 전혀 다르더라고요. 처음 <반올림>들어갈 때 제가 3주 동안 한의원을 다녔거든요. 많은 스탭들이 쭉 서 있고 카메라 앞에 처음 서보니까 너무 긴장이 돼서 이 주위(얼굴 볼 부위)에 열이 안 가라앉고 다 빨개진 거에요. 왜 그럴까, 해서 한의원에 갔더니 기가 막혀서 그런데요. 너무 긴장을 해서 순간적으로 탁 막혀버렸다나. 그래서 3주 동안 얼굴에 침 맞고 나니까 괜찮아졌어요. 계속 마음으로 떨지 말자, 긴장하지 말자, 다짐했죠. 제가 촬영초반에는 카메라 울렁증이 너무 심하거든요. <폭력써클>하고 <두사람이다>할 때도 그랬고, <강철중>에서도 그랬고, 울렁증이 너무 심해요.
확인해보지 못한 당사자로서는 의외네요. 영화상에서는 그런 흔적을 느낄 수 없었으니까요. 처음 시작할 때가 굉장히 심해요. 그걸 없애려고 혼자 스스로 집중하자, 며 계속 마음 속으로 다짐하죠. 그나마 이제 (벌린 손을 좁혀오면서) 이만큼씩 점차 줄어드는 거 같아요. 초반부 첫 촬영은 너무 떨려요. 죽을 것 같아요. 진짜. (웃음)
작품을 거치면서 극복되는 게 느껴지나요? 크게 나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 조금씩은 나아진다는 느낌이 있죠. 예전 같으면 더 심했을 텐데 이번에는 조금 덜 하다는 게 조금 느껴지거나 기간이 좀 더 줄어드는 건 느껴져요.
강우석 감독님은 어땠나요? 무서웠죠! (웃음)
아무래도 편할 수 없는 게 사실이었겠죠. 그런데 왜 무서웠을까요. 말씀이 없으셨어요. 특히 고등학생 역할로 나오는 저희들에겐 더욱 그랬죠. 말씀은 없으시고 종종 소리도 지르시니까. 근데 최근에 감독님께서 인터뷰 하신 걸 보고 왜 그러셨는지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대선배님들과 저희가 같이 하다 보니 저희들 부분에서 연기 집중력이 떨어지면 영화가 우스워진다고 말씀하셨는데 일리가 있어요. 그래서 일부로 저희 근처에도 안 오셨고, 당연히 저희는 옆에 오시면 모를까 감독님 옆에 함부로 못 갔죠. (웃음) 근데 진짜로 항상 말하는 거지만 아버지 같은 느낌이 있어요. 속으로 따뜻한 가부장적 아버지 같은? (웃음)
강우석 감독님께서 특별히 디렉션은 주시던가요? 일단 준비기간이 길었어요. 첫 오디션 보고 나서 이게 픽스된 게 아니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촬영 들어가기 전까지 사실 시나리오 전체를 본 적이 없었어요. 항상 쪽대본을 보고 리딩하고, 촬영해보고 그런 식이었죠. 그러다가 감독님께서 이런 부분을 수정해봐라, 라고 조감독님께 말씀하시면 조감독님께서 저한테 이런 부분 이렇게 말씀하셨으니까 염두에 두고 있어, 라고 전달해주시고, 그러다가 어느 정도 픽스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도 항상 연습을 많이 했어요. 카메라로 계속 찍고. 결국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면서 감독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이전까지 연습했던 건 다 비워라. 네가 맡은 태준 캐릭터만 생각하고, 백지상태가 된 채 와서 내 디렉션에 대해서 반응해야 한다. 결국 현장에서 디렉션을 많이 받았죠.
경험이 많은 감독과 배우들과 함께 연기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당한 자극이 될만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군요. 제가 <강철중: 공공의 적 1-1>에서 연기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영광이죠. 언제 그런 대선배님들하고, 강우석 감독님하고 해볼 수가 있을지 알겠어요. 만약 제가 오디션에 떨어지고 다른 사람이 캐스팅됐으면 진짜 눈에 불 켜고 봤을지도 몰라요. 진짜 어떻게 하나 보자, 라면서 진짜 이렇게(눈을 부릅뜬 채) 봤을 거 같아요. (웃음)
<강철중>의 안태준은 처음엔 리더가 아니었지만 차츰 리더격으로 성장하는 캐릭터에요. 혹시 본인은 친구들 사이에서 리더 역할을 맡는 편인가요? 저는 주로 이끄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주말에 친구들을 만나면 무조건 저희 집 가는 거죠. 저희 집으로 가서 짐 풀어놓고, 볼 차러 가자, 이러는 편이죠. 라면을 끓여먹어도 저희 집에서 끓여먹으니까요. 매맞을 때 빼고는 친구들 앞에 나가는 걸 좋아했어요. (웃음)
책상 밀고 앞으로 나가는 거 아니면 말이죠. (웃음) 친한 친구들 성향이 활동적일 거란 생각이 드네요. 본인도 실제로 보니 꽤 호탕한 성격인 거 같고요. 그런 게 너무 좋아요. 저희는 남자학교라서 학교가 엄격한 편이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규율에 대한 스트레스도 많고, 머리도 못 기르고, 명찰조차 삐뚤어지면 안되고, 그러다 보니까 오로지 친구들하고 노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었죠.
<두사람이다>에서 최상경 역이 생각나네요. 그 친구도 사실 본래 쾌활한 성격이었으니까요. 그런 거 같아요. (웃음)
그런데 <두사람이다>는 우정출연으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더군요. 친분이 있었나요? 오기환 감독님하고 친분이 좀 있었어요. 어떻게 하다가 몇 번 뵙게 됐는데 그러다가 감독님과 가까워 졌죠. 그러다가, 너 이거 한번 하자, 그렇게 된 거에요.
나름대로 역할 비중이 크진 않았지만 준비해야 할 부분이 많아 보이던데요. 펜싱 4개월 정도 배웠어요. 원래 윤진서 씨 전에 (캐스팅됐던) 이수경 씨와 같이 연습하고 있었고 그 뒤로 윤진서 씨와도 연습했죠. 개인적으로 펜싱은 전혀 몰랐는데 취미삼을만큼 특기가 생긴거죠. 한국체대에서 배우고, 서울체고에서도 배웠어요.
원래 운동을 했으니까 운동신경은 좋을 것 같아요. 운동을 해서 좋은 부분이 확실히 있는 거 같아요. 일단 재미있었죠.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직접 해본다는 게 정말 좋았던 거 같아요.
사실 지금까지 출연한 영화에서 상대방과 대결하는 장면이 꼭 등장했어요. 그런 측면에서는 과거 운동 경험의 덕을 봤을 것 같은데요. 도움은 되죠. 신체를 빨리 릴렉스 시킬 수 있다고 할까요. 그런데 앵글에 담아야 되는 거라서 더 힘든 점도 있어요. 예를 들어 발차기를 해도 카메라에 보이게 차야 되는 거라서요. 제 몸에 익었던 자세를 고쳐야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 건 고치기가 힘들어요. 정두홍 무술감독님께서도, 운동하면 이런 경우엔 고집이 생겨서 오히려 더 안 좋다, 그러시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힘든 게 있죠.
몸에 이미 밴 습관을 고치는 건 힘드니까요. 게다가 상대배우들은 사실 그런 경험이 부재한 사람도 많아서 되려 조심스러워지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강철중>에서 교문에서 시비 붙은 상대랑 싸우러 가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런데 촬영 중에 서로 합이 안 맞아서 저한테 그 분이 입 주변을 잘못 맞았어요. 그래서 자세히 보면 입 주위가 같은 장면인데도 조금 달라요. 그 뒤로 나머지는 며칠 뒤에 다시 찍었거든요.
입이 부었나 보군요. 예. 그래서 이게 나만 잘해도 안되고 이분만 잘해도 안된다는 걸 알았죠. 서로 합이 맞아야 되는 거에요. 간단하게 생각할 건 절대 아니더라고요. 몸만 쓰는 게 아니라 서로의 호흡이란 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특별히 좋아하는 영화 장르가 있나요? 저는 액션도 좋고, 코미디도 좋지만 휴머니즘을 전달하는 영화가 제일 좋은 거 같아요. 사실적이면서도 인간적인 거, 그런 게 전 되게 좋아요.
감성적인 면이 있나보네요. 혹시 눈물이 많은 편인가요? 조금……눈물 안 날 것처럼 생겼는데 눈물 좀 흘려요. (웃음)
<강철중> 이전까진 대부분 단선적으로 연기했어요. 그런데 <강철중>에서는 나름대로 감정적 변화를 보이는 역할을 연기하게 됐군요. 감정을 연기한다는 게 어땠나요? 제가 이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웃는 연기를 할 때는 진짜 즐거워서 하잖아요. 화난 건 진짜 화나서 해야 하고, 마찬가지로 슬퍼서 울 때는 이 상황이 슬퍼서 울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만약 다른 생각을 끌어와서 눈물을 흘린다면 그게 합당한 건지, 저는 거기에 대해서는 생각이나 고민이 많았었어요. 이 감정을 그 감정으로 해도 되는 걸까 말이죠. 연예TV프로그램에 나오는 어떤 연기자는 인터뷰 중에 그런 상황에서 다른 생각한다고 하는 분들도 있잖아요. 저는 저런 것에 동의를 못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제 생각이 맞을 거라고 봐요. 극에서 슬퍼야 맞는 거 같아요.
하지만 연기를 하다 보면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런 연기를 끌어내야 하는 상황이 닥쳐올지도 몰라요. 아직까진 이런 경험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감독님께서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시면 거기에 대해서 항상 생각을 하죠. 종종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생각도 못했던 부분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어차피 비슷한 거 같아요. 생각을 못했던 부분이라 해도 감독님이 필요해서 하라고 하시는 것일 테니까, 거기서 최대한으로 그 생각에 맞게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동년배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 경우에는 무의식적으로라도 경쟁의식이 생기진 않던가요. 마음 속으로 선의의 경쟁의식은 있죠. 그래서 더 시너지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고요. 그렇다고 내가 좀 더 파이팅 해야지, 이런 건 아니었고요. (웃음)
또래배우들과 함께 있으면 현장 분위기에 적응하기에 편한 점은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좀 어려웠죠. (웃음) 선배님들이 많다 보니까. 그나마 예전보단 요즘에 선배님들 뵙기가 조금 더 편해진 거 같아요. 영화촬영기간 동안에는 강철중, 이원술로 상대하다 보니 제가 감히 어떻게 할 엄두도 안 났는데 이젠 촬영 끝나고 나서 설경구 선배님, 정재영 선배님, 강신일 선배님, 이렇게 무대 인사도 같이 다니고 하다 보니까 전보다는 마음이 더 편해진 거 같아요. 대화도 더 많이 했고요.
<폭력써클>에서 연기했던 한종석 캐릭터는 몰입도가 상당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역할에 몰입하고 나면 빠져 나오는 것도 중요하죠. 연제욱: 그게 좀 오래 걸렸던 거 같아요. 맞죠? 형? (옆에 있는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인다.) 매니저: 한 6개월 정도를 종석이란 캐릭터에 빠져서 종석이로 살았거든요. 저를 포함해서 주위에 사람들이 잘 몰입하라고, 종석아, 종석아, 불렀으니까요. 준비했던 기간까지 합치면 대략 1년 정도의 시간을 종석이로 살았다고 할 수도 있어요. 기간이 좀 걸렸어요. 강하게 사로잡힌 게 있었어요. 매니저: 그래서 이제 그걸 무화 시켜주기 위해서 얘기도 많이 하고, 다른 역을 찾아보고 그랬죠. 아시다시피 역할이 너무 셌잖아요. 연제욱: 영화외적으로 설정을 했던 부분도 있거든요. 종석이는 원래 가난한 집에 살았고 아버지는 포악하고, 따뜻한 어머니가 없는 그런 가정에서 자랐을 거라고 설정을 했죠. 어릴 때부터 극단적인 루저였을 거란 생각으로 완전 몰두했어요.
아무래도 캐릭터에 짓눌리는 면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그런 경험을 겪은 만큼 캐릭터에 몰입하는 것 자체에 대한 걱정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지금도 많이 서툴지만, 그땐 너무 많이 서툴러서 몰입하고 빠져 나오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던 탓도 있죠. 경험이 없다 보니까요. 그래도 그것 때문에 배웠으니까 만약에 다음 번에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면 그 땐 좀 더 쉬워지겠죠.
그런 면에서는 <강철중>이 나름 좋은 간접경험이 됐을 것 같네요. 설경구 씨나 정재영 씨처럼 연기 몰입도가 높은 배우들의 실전을 옆에서 지켜봤으니까요. 두 분과 호흡을 맞추는 장면도 많았는데 어땠나요? 어휴~~~(감탄하듯), 연기를 하면서 눈을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더 끌어올려져요. 연기를 하면서 생각지도 못하게 감정이 끌어올려지는 경우가 있잖아요. 말로 설명하기가 좀 힘들긴 한데 선배님들과 함께 연기를 하면 제 능력이상으로 끌어올려지는 게 있는 거 같아요.
원래 예상했던 게 80~100이라면 120까지 나오더라는 말이죠? 예. 워낙 몰입도가 높으셔서 저까지 더 몰입해서 같이 끌어올려주시는 거 같아요.
까마득한 선배라서 일단 긴장도 많이 됐을 텐데요. 정말 많이 떨렸어요. 태준하고 철중하고 처음 만나는 씬이 설경구 선배님하고 처음 촬영하는 날이었거든요. 제가 선배님하고 한다는 것만으로도 어찌나 떨리던지 진짜, 아~~, 게다가 선배님 눈이 너무 무서워서요. (웃음) 그래서 진짜 많이 떨렸던 거 같아요. 너무 어려웠어요. 진짜 현장에선 너무 어려웠어요.
그 동안 영화 속에서 친구들과의 관계에 얽힌 역할을 맡게 됐는데, 그런 연기를 하다 보면 실제 현실상의 친구들이 그리워지는 순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전 친구들과 있는 걸 되게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니까요. 다같이 노는 게 너무 좋고 일단 편하잖아요. 서로 특별한 말하지 않아도 그냥 같이 있다는 게 너무 좋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좀 외로워요. 대부분 다 군대를 갔거든요.
친구들도 <강철중>을 봤겠군요. 다 봤대요. 휴가 나온 친구들도, 공익근무하는 친구들도 봤다고들 하고, 친구들은 다 봤어요.
친구들은 다 군대에 가게 되는 상황에서 본인도 그에 대한 고민이 생기진 않던가요? 아직은 막연한 거 같아요. 피부로 느껴지는 부분이 없어요. 분명 가야 되는 거고 친구들도 대부분 가 있지만 전 아직까진 피부로 느껴지는 부분이 없어요.
처음에 연기를 한다고 했을 때 친구들 반응은 어땠나요? 크게 동요는 안했…...아니, 모르죠. 얘네들이 저한테 표현을 안 해서 나만 모를지도 모르니까요. (웃음) 어쨌든 운동 그만두고 나서 연기트레이닝 받고 <반올림>에 출연하게 됐을 때 애들이 되게 놀랬었죠. 놀라는 그 와중에 그러더라고요. 넌 개그맨 될 줄 알았는데 이럴 줄은 몰랐다고. (웃음) 친구들 반응이 이랬는데, 결국 개그맨 얘기는 이제 안 꺼내더라고요.
개그맨 운운하는 거 보니까 친구들 사이에서 상당히 유머감각이 있는 편이었나 보죠? 아, 제가 학창시절에 한참 배꼽 좀 빼줬죠. (웃음) 한번은 어머니께서 학교 체육대회에 오셨다가 제가 누군지 몰라보셨대요. 그래서 담임선생님한테 제욱이는 어디 있냐고 물었는데 담임선생님이 저기 앞에 나가있는 애가 제욱이라고 그래서 깜짝 놀랐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학교 다닐 때 수업 중에 친구들이 지루해할 때가 있잖아요. 그럼 친구들이 저한테 싸인을 보내요. 그럼 제가 선생님한테 말을 걸기 시작하는 거에요. 이 선생님께서는 뭘 좋아하시지, 생각해서 거기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다 보면 선생님께서 더 신이 나셔서 이야길 하시는 거죠. 한번은 친구가 핸드폰을 뺏겼을 때, 그 친구 아버지인 척 해서 핸드폰 돌려받은 적도 있어요. (웃음)
그때부터 이미 싹이 노랬군요. (웃음) 그런데 어머니께서 아들을 몰라보셨다고 했는데 집안에서는 그런 모습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편이었나 보죠? 그래도 연기를 시작하고 나서 집안의 웃음 코드가 저로 바뀌었죠. 예전에는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 특유의 스트레스가 있었던 거 같고, 중학생 때도 운동까지 하다 보니 집으로 돌아오면 오면 11시가 넘었거든요. 그래서 바로 자고 아침7시에 일어나 학교 가야 되니까 어머니께 제 모습을 보여드리기가 쉽지 않기도 했죠. 시합을 보러 오시면 맞고 때리고 그러니까 마음 아파하시는 부분도 있었고요. 그런데 어느 날 그런 저를 보시고 뒤집어지신 거죠. (웃음) 그 때 제가 <웬만하면 그들을 막을 수 없다>시트콤에 나왔던 노란 이소룡 옷을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운동장 가운데서 입고 애들을 웃기고 있었으니까요. (웃음)
어머니께 재미있는 아들이 됐군요. (웃음) 아무래도 연기를 시작하게 됨으로써 나타난 변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연기자가 된 이후로 스스로에게 감지되는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원래 워낙 활발했지만 좀 더 활발해진 면이 있죠. 무엇보다도 사람들과 대화하는 폭이 더 넓어졌다고 할까요, 예전에는 한가지만 가지고 얘기했다면 이젠 조금 더 생각할 수 있는 게 많아진 거 같아요. 그리고 연기를 시작하고 나서 책을 많이 보게 됐고 영화도 많이 보게 됐고요.
예전엔 운동 때문에 바빠서 못했던 일도 많이 하게 됐을 테고요. 영화는 원래 좋아했지만 책도 많이 보게 됐고 그러려고 노력하게 됐죠.
연기에 대한 막연한 꿈을 현실에서 이뤄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막연했던 생각을 확실히 구체화시키는 데는 어떤 계기가 필요하죠. 그런 지점이 있었을까요? 아직 확신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열심히 더 해야겠다는 투지가 생길 수 있었던 계기는 있었죠. <반올림>때 제가 원래 뚱뚱했었어요. 그런데 중간쯤에 제 수영장 씬이 나오는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반올림>감독님께서 그 장면에 나오려면 넌 살을 빼야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그 때 제가 좀 더 내 모습이 화면에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참 하던 차였거든요. 그런 찰나에 감독님께서 살 빼면 너 하고 싶은 거 한번 시켜준다고 그러시는 거에요. 그럼 저 몸 만들 테니까 수영장 씬 넣어주세요. 이렇게 말씀드렸더니, 너 할 수 있냐, 그래서, 할 수 있다, 그랬죠. 결국 살을 뺐고 수영장 씬을 하게 됐어요. 덕분에 일단 외양적으로 변화가 생겼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걸 하면 이렇게 한번 해주실 수 있겠느냐, 라는 저의 제안을 통해 얻어지는 바가 있었잖아요. 그래서 노력하면 되는 게 있구나, 라는 교훈을 얻었죠.
노력하는 만큼 보답 받는 즐거움도 없으니까요. 그렇게 연기자로서 뭔가 얻어가는 것들이 생길 거에요. 적게는 사람을 얻었다던가, 크게는 정말 자신의 내면적인 성숙을 깨닫게 될 수도 있겠죠. 한 작품을 끝내고 나면 그런 것들이 더 크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아직 출연작 수가 많진 않지만 되려 이럴 때 각각의 작품이 더 소중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느 순간마다 그렇게 무언가 배우고 있다는 소중함이 있어요. 촬영 중간에도 배워지는 게 있고, 촬영이 끝나고 집에 가는 동안에도 아!(뭔가 떠올리는 표정으로) 이렇게 되는 순간이 있죠. 제 영화를 직접 보게 될 때는 특히 더 그렇죠. 매 순간순간마다 생각해야 되고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알고 싶어지는 것도 많아지고, 그 안에서 아, 그렇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도 생기죠. 그래서 이번에는 이렇게 해서 이렇게 됐으니까 다음에는 저렇게 해봐야지, 라는 생각도 하게 되니까요.
처음 자신의 얼굴이 TV에서 나오는 걸 보는 순간 기분이 어떻던가요? (웃음) 제가 직접 첫 회 녹화를 했었어요. 근데 보시면 아실 텐데 말도 못해요. 어휴~~! 그때 앞머리도 일자로 잘랐다가 갑자기 촬영이 금방 진행돼서 그것도 웃기고 또 어찌나 뚱뚱한지, 게다가 얼굴은 빨갛고 막 그러는데, 어이구~.(웃음)
스크린은 TV와 또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은데요. 사실 처음 영화를 볼 때는 죽을 거 같아요. (고개를 도리질 치면서) 부끄럽죠. 전 정말 숨을 안 쉬는 거 같아요.
긴장이 돼서겠죠? 예. 그래서 숨을 죽이는 게 아니라 숨을 안 쉬고 보는 거 같아요. 특히나 그렇게 사이즈가 큰 화면에서 제 얼굴이 나오는 걸 지켜보면 숨이 쉬어지지 않는 기분이죠. (웃음)
자신이 찍힌 영상을 보게 되면 실제로 내가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텐데요. 한종석 같은 경우에서는 정말 내가 이렇게 나쁜 놈이 아닐까, 생각해보긴 했어요. (웃음) 제가 생각해도 한종석은 나쁜 놈이라고 생각되니까요. 그리고 <강철중>에서 학교교문 앞에 찾아온 다른 학교 애가 죽은 친구를 조롱하고 빈정거릴 때도 내가 이렇게 했었구나, 라는 걸 느꼈어요. 저는 제가 거기서 그렇게 했다고 생각 못 했었거든요.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나온 거 같아요. 아무래도 자기 얼굴로 표정을 짓거나 대사를 할 때 모니터로 보면서 하는 게 아니니까 제가 생각한 것들이 있을 테니까요. 물론 세세한 부분들까지 다 머릿속에서 계산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스크린에서 볼 때는 간혹 그렇게 보여지는 게 있었어요.
학업도 병행해야 할텐데 힘들진 않나요? 지금 휴학했어요. 올 해 다시 들어가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수시나 시험을 좀 보려고요.
학교를 옮길 생각인가요? 그냥 1학년으로 들어가서 입학을 하려고 생각 중이에요.
다니던 학교가 있는데 굳이 학교를 옮기려는 이유가 뭘까요? 학교에서 배우고 싶은 게 분명히 있는데 그게 잘 안 맞더라고요. 제가 공연예술학과다 보니까 뮤지컬을 위주로 하고, 정극 연기수업은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밖에 없었어요. 좀 배우고 싶었던 건 그쪽이었거든요. 그리고 무대연기 경험도 할 수 있었으면 했죠. 연기 외적으로 영화적인 것들을 학문으로 공부할 수도 있을 테고요. 물론 그게 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란 건 알아요. 하지만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해요.
직접적인 이론에 대한 중요성도 간과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럼 휴학하게 된 건 연기적 병행 때문이라기 보단 그런 학업에 대한 고민 때문인가요? <폭력써클>촬영 중에 입학하게 됐고, 그 와중에 한 학기가 시작해서 초반에 잘 못 다니게 됐었죠. 촬영이 다 끝나고 나서 제대로 학교를 다니다 보니 이게 아니다 싶은 게 있었어요. 연기이론 같은 걸 배우고 싶었는데 노래하고 춤추고 이러니까 난 이걸 배우고 싶었던 게 아닌데 싶었던 거죠. 공연예술학과라서 뮤지컬 위주로 많이 배우더라고요.
그럼 아무래도 연극영화과를 지망하고 있겠군요. 다음 달부터 고민을 좀 많이 해야 될 거 같아요.
세 편의 영화에서 맞거나 때리는 장면이 나와요. 그게 다 합을 짜서 이뤄지는 연기적 순간이지만 피부와 피부가 맞닿는 느낌이 만만하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을 거에요. 좀 엉뚱한 질문이지만 때릴 때가 편하던가요, 맞을 때가 편하던가요? 둘 다 똑 같은 점은 하나 있어요. 한번에 끝났으면 좋겠다는 거. (웃음) 때릴 때도 한번에 했으면 좋겠고, 맞을 때도 한번에 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아무리 연기라지만 미안할 수 있고, 반대로 화날 수도 있으니까요. 실제적으로 유발되는 감정을 억눌러야 하는 순간이 있을 거에요. <폭력써클>때 군인하고 싸우는 장면에서 뺨을 맞잖아요. 거기서 한 여덟 대인가를 살살 맞다가 여섯, 일곱 대를 또 세게 맞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진짜 너무 아픈 거에요. 그리고 종석이가 아무렇지 않게 보면서 맞고 반격해야 하는데 그렇게 한 세대 맞고 나니까 그 다음부턴 이제, 때릴 텐데, 라는 긴장감에 스트레스가 쌓이더라고요. 그래도 전 그냥 연기하던 거랑 똑같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형들이, 너 진짜 화났지? 그래서 아니라고 했죠. (웃음)
맞는 순간보다도 그걸 예감하고 기다리는 순간이 두렵게 되니까요. 맞아요. 맞기 전 찰나가 있잖아요. <강철중>에서 설경구 선배님이 부디 센 놈이 경찰 되라, 그러면서 뒤통수 때리는 장면에서도 ‘부디’ 할 때부터, 이제 맞을 텐데, 하면서 긴장했어요. (웃음) 오로지 그저 한번에 오케이가 좋아요. (웃음)
또래 연기자들과 호흡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중 친해진 사람도 있겠어요. <반올림>때 (정)기범이랑은 1년을 함께 촬영해서 너무 친해졌고요. <폭력써클>때 (김)혜성이랑 동갑이라 친해졌죠. <반올림>친구들이나 <폭력서클>때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만나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비슷한 나이라서 공감대 형성도 쉽겠죠. 게다가 서로간에 격려나 의지도 될 테고요. <강철중>시사회 때 혜성이가 와서 가운데서 손 흔들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나서 다음 관에 가보니까 <폭력써클>때 친한 형들 다 오셨고요. 형들이 ‘연제욱 파이팅!’ 하는 거에요. 상영관 나가면서 강우석 감독님이 (익살스런 표정으로) ‘뭐? 연제욱 파이팅?’ 이러시는데 어찌나 진땀 나던지. (웃음)
지금까지 고등학생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제 고등학교 졸업식을 생각해 볼만한 타이밍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웃음) 지금 생각으로는 성인 연기라고 하면 벽이 있는 거 같아요. 지금까지 고등학생 연기만 했는데 성인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니까 어떡해야 하나 싶어지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를 바 없다고 생각도 하죠. 분명히 그에 대한 엄청난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제일 중요한 건 집중력인 거 같아요.
막연한 두려움이 있나요? 항상 부담감과 두려움은 있죠. 지금까진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으니까 그만큼 당연히 잘해야 된다고 생각도 들고요. 좋게 말씀해주셨는데 다음 번에 어? 이렇게 만들면 싫잖아요. 더 잘 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그래서 더 드는 거 같아요.
안태준 역할을 위해서 특별한 준비가 있었나요? 살을 좀 뺐어요. 워낙 리딩이나 준비연습을 많이 했지만 개인적으로도 집에 있을 때나 혼자 있을 때는 대본을 많이 읽어봤던 거 같아요. 많이 읽고, 적어보고, 내 스스로 정리해보고, 생각도 많이 하고. 아무래도 혼자서는 연습보단 생각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분석도 좀 하고, 아니, 분석이라고 하기엔 웃기고 그냥, 얘는 이럴 거야, 이런 식의 추측이었죠. 다만 <폭력써클>의 한종석하고, <강철중>의 태준이가 모두 강한 면이 있어서 똑같아 보일 까봐 걱정했었죠.
과거에 비해 연기를 임하는 자세가 달라진 점이 있나요? 예전보단 생각하거나 준비하는 부분이 많아진 거 같아요. 종석이 때는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센 영화를 많이 봤거든요. 거기서 느껴지는 걸 관객들에게 그대로 느껴지게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하면서 표정 같은 걸 생각하고, 내가 이걸 어떻게 할까, 를 생각했죠. <폭력서클>당시엔 현장에서 박기형 감독님도 많이 잡아주시긴 했죠.
한종석 같은 경우는 조 페시 연기를 많이 참고했듯이 안태준을 위해 참고한 모델은 없나요? 아니요. 안태준은 없었어요. 특별히 감독님께서 말씀이 있으셨다면 봤겠지만 특별히 말씀도 없으셨고요. 그냥 생각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전 누구를 참고하는 건 좋지만 그게 항상 도움이 된다고는 생각 안 해요. 비슷한 캐릭터나 장면에서 느끼는 감정을 파악하고 그걸 관객분들에게 느끼게 해드려야지, 그걸 벤치마킹 한다거나 이런 건 그저 따라 하는 것에 불과하니까요.
자신의 캐릭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예. 맞아요.
연기를 시작한 이후로 영화를 보는 관점도 달라졌을 것 같은데요. 예전에 모르고 볼 때는, 말 그대로 ‘영화’를 봤죠. 근데 이젠 진짜 재미있게 봤다면 두세 번은 봐야 돼요. 영화를 보면서 그 안에서 뭔가 끄집어내려는 것도 있어요. 저기서는 저렇게 해야겠구나, 이렇게 하는 것도 괜찮겠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됐죠.
본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이 있나요? <살인의 추억>같은 경우는 영화감상부에서 활동할 때, 영화관에서 봤어요. 영화가 너무 재미있었고 마치 뭐에 맞은 거 같았어요. 인간극장 같은 자연스러움이 있잖아요. 그리고 어느 날 친구가 <공공의 적> 봤냐고, 그러는 거에요. 그게 뭐야? 그랬더니, 쓰러질 거라고 그래서 보곤 쓰러졌죠. (웃음) <주먹이 운다>같은 경우는 스무 번도 넘게 봤어요. 두 인물에 대해 공감하게 되는 느낌이 좋아서요.
단순히 대비를 위한 캐릭터 구도라기 보단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드라마를 안고 가는 인물이니까요. 극 중 태식이나 상환의 상황에 감정 이입되면서 많이 울었어요. <반올림>할 때 용인에 있는 작은 영화관에서 봤는데 상영관에 세 명 있더라고요. 지금은 그 극장이 없어졌어요. 하여튼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배우가 있는지도 궁금하네요. 김윤석 선배님이요.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동구 아빠로 나왔을 때, 진짜, ‘우와~!’ 했죠. <타짜>의 아귀도 대단했지만 전 동구 아빠가 참 무서웠거든요. 정말 감탄하면서 봤죠. 예전엔 <파이란>보면서 최민식 선배님도 그저, ‘와~!’. 제가 평소에 대단한 걸 보면 ‘와~!’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웃음)
김윤석 씨나 최민식 씨 같은 배우는 연극무대를 기반으로 연기적 내공을 쌓은 분들이에요. 그런 점도 본인에겐 좋은 교훈이 될 것 같은데요. 저는 아직 무대를 접해본 경험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그게 정말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해보고 싶어요. 연극을 보러 가면 무대가 바뀌고 그런 순간조차도 엄청난 집중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 시간을 위해 투자되는 연습, 그런 것들에 의해서 무대가 철저히 돌아가는 거죠. 그래서 그건 정말 연기적인 부분만큼이나 집중력을 기르는데도 충분히 많은 공부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엄청 어려울 거라고 생각도 되고요.
연극영화과를 지원하고자 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네요. 어쨌든 그 당시 쓰러지며 봤던 <공공의 적>시리즈에 본인이 출연했군요. 그렇죠! 제가 얼마나 기쁘겠어요. (웃음) 오디션 보면서 이미 하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죠. 그래서 아까도 말씀 드렸듯이 만약 다른 친구나 심지어 선배님이 됐더라도 너무 아쉬워서 쌍심지 켜고 봤을 거에요. 물론 같이 오디션 봤던 다른 분들도 그랬겠죠. 쟤가 어떻게 했을까, 라면서.
앞으로 또 본인이 인상적으로 봤던 작품을 만들어낸 감독님들과 함께 작업하게 될 기회가 생길 거에요. 혹시 다음 작품에서 해보고 싶은 역할을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이제 강한 캐릭터 말고, 좀 선하게 보이는 캐릭터를 연기해봤으면 좋겠어요. 절 보셨던 분들이, 얘가 이런 면이 있네, 라고 생각할 수 있게 말이죠. 반대로 저를 못 보셨던 분들이, 이런 애구나, 했다가 제 전작들을 찾아보시고, 이런 애였어? 이렇게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요. 일단 강한 면이 덜한, 부드럽거나 코믹한 연기를 하고 싶죠. 물론 지금은 일단 불꽃처럼 열심히, 화이팅 해야죠. (웃음)
나름대로 한종석이란 캐릭터가 이젠 극복의 대상이 된 셈이군요. 어쨌든 그 캐릭터가 연제욱이란 배우의 데뷔전으로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점에서는 성공적이란 생각이 드네요. 맞아요. 인상을 남길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이제 그걸 좀 풀어야죠. (웃음)
확실한 건 부모님 입장에서는 선한 역할을 맡아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을 것 같긴 합니다. (웃음) 나름대로 지금까지는 좋은 평가를 얻었어요. 그만큼 아직 드러낸 것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요. 그에 따라 기대감도 커질 테고 그러다 보면 성장통을 겪기도 하겠죠. 한번쯤은 스스로 고비를 느끼는 시점이 올 수도 있을 거에요. 다들 어느 순간 그런 때가 온다고, 막연하게 힘들고 다 없을 때가 온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때는 그 때 나름대로 방안이 나오지 않을까요? 기도도 열심히 하고 노력해야죠.
사실 <강철중: 공공의 적 1-1>(이하, <강철중>)은 <공공의 적 2>라고 명명됐어야 하는 작품 같다. <공공의 적2>?
사실 <공공의 적> 시리즈의 원조라 할 수 있는 강력반 형사 강철중이 다시 복귀한 거니까. 그렇지. 1편의 속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1-1이 됐고.
솔직히 본인도 <공공의 적 2>보단 <강철중>에 애정이 남을 것 같은데. 백배나 당연하다. 솔직히 <공공의 적>이 너무 강렬해서, 바로 이어서 못하겠더라. 게다가 강력반 형사가 만날 적이 있고, 검사가 만날 적이 다르지 않나. 강력반 형사로서 적을 찾기가 힘들어서 직업을 바꿔봤지. 하지만 머릿속에 계속 저 강력반 캐릭터를 살려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조금 남아있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강철중>을 잡으면서 오케이, 이거다, 밀어붙인 거지.
사실 <공공의 적>의 강철중은 오랜만에 본인을 감독으로서 현장에 복귀시킨 캐릭터이기도 했다. 맞다.
그만큼 본인에게는 의미 있는 캐릭터였을 텐데 다시 한번 그 캐릭터를 꺼내 들었다는 건 제대로 진검승부를 해보겠다는 의지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싶다. 자신감이었을 수도 있고. 자신감 플러스, 내가 제일 잘하는 장르를 다시 한번 해보자는 거였지.
동시에 한국영화 위기가 공공연해진 상황에서 강우석이라는 이름에 대한 기대감이 <강철중>에 대한 비장감을 덧씌우는 것 같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이 영화 판에서 나까지 작품을 꺼냈는데 이게 안되면 나는 문 닫겠다, 난 이제 물러난다. 그렇게까지 절박하게 느껴졌다.
<강철중>에서 이원술이란 캐릭터는 전작의 ‘공공의 적’들과는 다르다. 완전히 다르지.
이전까지의 ‘공공의 적’들은 단선적인 악인이었다. 그냥 나쁜 놈. 머리 안 쓰고 그냥 나쁜 놈.
그에 반해 이원술은 다양한 감상을 부르는 입체적인 캐릭터다. 아무래도 그건 장진 감독의 영향으로 보이는데. 이원술은 분명히 영향이 있다. 다만 (장)진이가 만든 캐릭터를 강우석화(化) 시켜버린 거지. <공공의 적>시리즈의 승부처는 적이다, 적. 강철중이 아니다. 강철중이 만난 새로운 적이 어떻게 하느냐가 이 영화의 흥행결과로 나타나겠지. 그래서 난 정말 웃음을 주고 싶었어. 물론 사람들이 보기엔 참 나쁜 인간인데 영화가 경쾌하니까 덜 나빠 보일 수도 있단 말이야. 애정이 가기 시작하고 그러니까. 그래서 그 웃음 때문에 혹시 덜 미워 보이더라도 그런 걸 시도해보고 싶었어. 이렇게 악당도 웃길 수 있구나. 영화적으로 큰 웃음을 줄 수 있구나. 마지막에 처단할 때 덜 통쾌할 수 있더라도 영화를 보는 동안 재미를 주면 된다고 생각했지. 또 전편의 공공의 적들처럼 재영이가 직접 칼 쑤시고 다니는 것만 하면 사람 지친다. 내용만 바꿨지만 전편 또 보고 있다고 그러면 안되잖아. 본 영화 또 보는 거 같으면. 그래서 정말 새로운 영화하자, 고삐리 양아치도 나오고, 칼잡이도 나오고. 대신 1편의 향수가 있으니까, 이문식, 유해진이 나와야 된다, 그건 분명히 1편을 복기하면서 한번 즐겨라, 하는 부분이지. 그리고 이외의 나머지는 새롭게 한번 즐겨라, 는 것이고. 고삐리와 강철중의 대결도 있고, 이원술과의 대결도 있으니까, 분명 새롭지만 1편과 무관한 영화 같지 않다는 말이지. 그래서 1-1이 딱 맞는 거고.
어쩌면 지금까지의 ‘공공의 적’과 달리 이원술은 관객의 호감을 얻는 캐릭터가 될 수도 있다. 당연하지. 그래야 다음 편이 나온다.(웃음) 이번엔 저게 누구야, 이렇게 되야 한다고. 워낙 연기력이 탄탄한 설경구는 이제 그대로 두고, 이번에는 어떤 적인지, 그 놈을 어떻게 잡을지, 그런 기대치가 있는 거지. 적이 살아줘야 시리즈가 간다니까.
어쨌든 <강철중>은 여러모로 장진의 흔적이 배어있다. (장진 감독이) 설계를 했으니까. 물론 구성은 내가 올렸지만. 설계자의 설계가 나쁜 것이 아니면 구성에 받아줘야 해. 그렇잖아. 현무암 쓸 걸 대리석으로 쓰겠다, 이렇게 재질은 내가 알아서 결정하는 거지만, 그것도 쓸 때부터 나랑 말을 많이 맞췄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수밖에.
시나리오 작업에도 어느 정도 관여했다는 말인가? 관여 안 할 수가 없지. 아이디어는 내 아이디어인데.
그래도 장진 감독의 시나리오인 만큼 특색이 상당히 두드러졌을 텐데. 그런 걸 다 걷어내 버렸지.
본인의 연출적 취향에 걸맞게 변형되거나 제거된 게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나름대로 반영할 수 밖에 없는 부분도 존재했을까? 당연하지. 예를 들면, ‘진아, 이 씬은 내가 못 쓴다. 내가 알아서 바꾸마.’ 그렇게 바꿨지. 그 대신에 전체 틀거리가 좋았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수정을 하더라도 작가 입장에서 기분 나쁘지 않겠지. 오히려 자기 코미디에 내 코미디를 더 얹어줬으니까 오히려, 감사합니다, 그러는 거지.
고등학생들이 조직에 연루된다는 설정은 누구로부터 착안된 아이디어인지. 어느 분 아이디어가 아니라, 영화 크랭크인한 뒤 한달 만에 이 사건이 실제로 터졌었어. 임성훈의 ‘세븐데이즈’에서 이게 나오는 거야. 조폭이 직업화되고 있다, 이 코너였어. 거기서 조폭들을 인터뷰하는데 조폭들이 어이없는 말들을 하더구먼. 나 이 생활에 만족한다, 나 연봉 얼마 받는데 대우도 괜찮다, 청소년들한테 이 직업이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니, 뭐 이런 경우가 있어. 사회가 이런 식으로 가도 돼? 이게 다 영화 때문에 이렇게 되는가, 이런 생각도 들고. 영화 속에서 조폭들이 너무 멋있잖아. 드라마에서도 그렇고. 이거 한번쯤 말할 필요가 있겠구나 싶었지. 그 대신에 조폭을 너무 극악하게 그리면 영화가 너무 지저분해져 버린다고.
폭력의 수위가 지나치게 높아지는 건 경계했다는 말인가? 그렇게 폭력성이 가미되면 청소년들 보여주고 싶은데 이 영화는 못 보여줄 것이고, 대신 적을 좀 재미있게 가보자. 그래서 웃고, 즐기고 나오다가도 우리 사회가 이런 면이 있구나, 이 정도만 생각하게 해주면 상업 영화로서 할 도리를 다한 거 아닌가, 그런 판단을 했다.
이전 시리즈보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굵어졌다. 웃기면서 메시지를 밑에 깔았으니까. 소리 지르지 않고.
장진 감독과 함께 K&J를 설립한 이후, <강철중>은 가장 본격적인 공동작업이기도 하다. 사실 이 전에 <아들>이나 <한반도>로 따로 놀긴 했지만 <강철중>이 우리가 영화사 세워놓고 함께 한 첫 게임이지. 처음 링에 오른 거야.
사실 본인이 오랫동안 장진 감독의 배후세력이기도 했다.(웃음) 난 진이가 한다면 뭐든지 밀었으니까. 심지어 시나리오가 안 좋아도 찍으라고 했으니까.
솔직히 장진 감독의 이야기가 본인의 취향에 부합하는 건 아니었을 텐데. 아니지. 하지만 생각은 비슷해. 다만 표현의 차이가 있지. 예를 들면 <거룩한 계보>도 잘 가다가 갑자기 판타지로 가버리잖아. 그래서 ‘진아, 이거 하지 마라. 위험하다.’ 그러면 절대 아니래. 그래서 ‘야, 총 맞고 비행기 떨어지고, 그게 (말이) 되니? 그게?’ 그 전까지는 꼭 <대부>처럼 멋있게 가잖아. 그러다 어느 순간에 벽 무너뜨린다고 벽에 달려가 박고 있고.(웃음) 그런 거야.
혹시 이 부분만큼은 살려줬으면 좋겠다고 장진 감독이 애착을 보인 부분은 없나? 이것만 살려달라고 할만한 건 내가 아니까 알아서 살려놓지. 애초에 내가 진이 보고, ‘네 맘대로 써라. 내가 못 찍는 건 알아서 걷어내마.’ 그랬더니 ‘감독님 알아서 하십쇼. 전 그냥 분량만 전적으로 채웁니다.’ 그래서 OK 한 거니까.
<강철중>을 <공공의 적>시리즈의 가능성을 책정하는 기준으로 생각하진 않나? 계속 가고 싶다는 뜻이지.
예전에 <투캅스3>같은 경우는 김상진 감독에게 맡기기도 했었다. <투캅스>와 <투캅스2>찍을 때, 너무 고생해서 내가 억만금을 벌어도 다신 이거 못한다 그랬지. 그런데 (김)상진이가 ‘그럼 감독님 이거 저 주세요.’ 그러는 거야. ‘자신 있어? 너?’ 그러니까 ‘네. 제가 청출어람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랬다가 제대로 망해서 시리즈가 문 닫았잖아.(웃음) 지금도 혹시 (누군가가) ‘<투캅스>감독이세요?’ 그러면 ‘아, 아닙니다.’ 이래.(웃음) 어쨌든 그땐 그랬고, 강철중은 3편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이거야. 왜? 적이 바뀐다 이거지. <투캅스>는 적을 쫓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뭔가 만들어가야 되는 거고, 이게 시트콤이나 다름이 없단 말야, 시츄에이션 코미디. 근데 <공공의 적>은 우리 시대에 또 다른 천인공노할 나쁜 놈, 퍼블릭 에네미(public enemy)가 나타나면 되잖아. 그렇기 때문에 3편 충분히 나올 수 있다 이거야.
혹시 <투캅스3>처럼 이 시리즈도 언젠가 다른 감독한테, 에이, 노! 네버! 노! 안 하면 안 했지. 못 줘, 이제.(웃음) 진짜 못 줘. 그리고 내가 안 하면 설경구가 안 해.
조연들의 매력을 살리는 것도 염두에 뒀을 텐데. 아마 배우들 연기가 나쁘지 않았을 거야. 이번에 조연들을 하나씩 다 살려보려고 주변 배우들까지 내가 하나씩 일일이 다 컨트롤했다고.
사실 <공공의 적>이 인기를 얻은 배경으로 조연들의 힘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번에 <공공의 적>에 나왔던 유해진, 이문식이 드라마 운반하는 브리지(bridge)로 잠깐 나오고, 고삐리 태진이, 칼잡이 문수, 그 다음에 이원술 따라다니는 변호사까지 다 자기 노릇을 하잖아. 영화가 재미있고 완성도가 뛰어나려면 조연의 등장과 퇴장을 명확하게 잡아줘야 돼. 등장하면 왜 등장하는지, 무슨 롤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주고, 엔딩 아웃 시켜라 이거지. 내가 이번에 주인공만 쫓아다니는 게 아니고 조연들까지 일일이 다 손봤던 건 입체적인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는 의도였으니까.
사실 이문식이나 유해진 같은 경우는 <공공의 적> 개봉할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였지.
하지만 지금은 종종 주연까지 맡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아졌다. 그런데 너무 작은 역할을 맡기는 게 아닌가 불안함은 없었나? 아니야. 그들이 그 영화로 컸기 때문에 너무나 흔쾌하게 하겠다고 하더라고. 심지어 돈도 안받았잖아. 마치 아버지한테 아들이 뛰어오는 것처럼. 그래서 ‘너희 여기 출연한 거 후회하게 하진 않을게.’ 그랬더니 ‘아, 저희 믿습니다.’ 그러더라. 첫날 크랭크인을 이문식하고 갔고, 다음 날은 해진이하고 갔어. 아주 기분 좋게 찍었지.
언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당신의 영화에 대한 관심이 크다. 한국영화 점유율이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이라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기대감일 거다. 영화 잘 되면 또 찍고, (다른 감독에게도) 이 영화 찍게 하고, 저 영화도 찍게 하고, 그렇게 영화판을 몰고 가는 느낌에 대한 기대감. 이번에 <강철중>이 잘되면 한국영화가 어려운데 도움이 되지 않겠냐, 그런 기대 때문일 거다.
아무래도 그런 면에 대해서, 엄청 부담스럽지. 그런데 거기서 만약 진짜 개떡 같은 영화가 나왔다면 그 배신감도 이루 말할 수 없을 거야. 기자들조차도, 쟤는 끝장났다, 이런 식으로 글들 엄청 써 보냈을 거야, 아마. 어이없는 영화 찍었다면, 너마저 이러냐, 너마저, 이런 마음에서 얼마나 많은 분노의 글이 나오겠어. 고등학생들조차 ‘이명박 OUT’ 피켓 들고 다니는데, 언론에서 일개 감독하나 못 죽이겠냐고. 거기에 대해서 난 각오한다니까. 이번에 만약 당신들이 봤을 때, 내가 유머 다 잃어버리고, 드라마도 모르는 놈같이 보이면 날 개같이 밟아도 좋다. 대신 좋으면 칭찬해줘라. 예전에 내가 했던 말이잖아.
사실 예전에 <한반도>당시에 스스로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영화 찍고 나니까 한국 해경과 일본 해경이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런데 <강철중>에서도 비슷한 시의성이 발생한 것 같다. 요즘 시국이 시국인지라 ‘광우병’이란 단어 딱 한번 나오는데도 민감하게 들린다. 사실 그 전에 소 얘기 많이 나오잖아. 처음부터 도축장 씬도 있고. 나중에는 ‘수입산인데 속여 팔면 안되지.’ 이런 대사도 나오고. 후반부에 가면 ‘고기 맛이 어떻습니까?’ 물으면 강철중이 ‘이 맛이지. 한우가. 반성 많이 했구나.’ 이런데다가 광우병 대사까지 나오니까 사람들이 확 기겁을 하는 거지. 근데 4개월 전에 난 그런 의도로 찍은 게 아니라, 이왕 소고기 먹는 거 한우 먹어주자, 우리 농민들 위해서. 그런 뜻으로 한 건데…..내가 마치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말야.(웃음)
아무래도 시사적인 부분에서 영화적 모티브를 얻다 보니 그런 상황이 발생한 게 아닌가 싶다. 사회적인 관심이 많아서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생기는 거 같아.
사실 최근 경찰 공권력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많은데. 근데 그건 걱정이 안 되는 게, <강철중>은 민생사범 쫓는 거야. 지금 경찰의 과잉진압이 문제가 있는 거지, 실제 강력반 형사들이 소매치기도 안 잡고 강도도 안 잡고 그런 이상한 짓 하는 건 아니잖아. 강철중은 민생사범을 잡는 일개 형사니까 그걸 여기에 비유해서 과잉 진압하는 경찰을 떠올리진 않을 거 같아. 일반시사 해봤잖아. 그럼 거기에 경찰 너무 미화하는 거 아니에요? 이런 의견 나와야지. 근데 정말 나쁜 놈 잡는 거니까. 내가 봤을 땐 그런 염려는 안 해도 될 거 같다.
사실 강철중은 형사가 아니었다면 깡패가 될만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강철중이란 캐릭터는 그 자체만으로도 힘을 활용하는 방향에 대한 답변이라 해도 될 것 같다. 고삐리들한테, 깡패가 그렇게 되고 싶어? 너 깡패가 부럽냐? 이런 대사 하잖아. 그런데 실제로 그런 애들 많거든. 학교가면 일진회 있잖아. 그런 걸 선망한다는 말이지. 영화보고 나면, 이거 내가 조금 잘못 생각한 거 아냐? 한번쯤이라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강철중은 한국영화의 자본동원력 안에서 묘사가 가능한 안티히어로 캐릭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자금으로 할리우드 애들 못 이겨. 우리 정서로 이겨야지. 우리 정서로. 우리 식으로 이겨야 된다니까.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영화도 대작을 제작하는 비율이 늘었다. 시장상황도 그에 기대는 느낌이고. 조금 더 영화인들이 신중해질 필요가 있어. 너무 급하게 찍지 말고, 조금 더 고민하고, 정말 이 시나리오가, 이 내용이 관객들이 보고 싶어하는 건지, 상업영화 찍으면서 최소한의 그런 노력들은 해야 될 것 같단 말이지. 투자하는 사람도 마찬가지고. 편수만 무조건 늘릴 게 아니라 내실 있는 영화들을 만들어주면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한국영화 선택한다. <괴물>이 재미있으니까 보러 간 거지, 누가 보라 그래서 봤냐고, 그러잖아. 그런 관점에서 우린 지금 영화 내실에 힘을 쏟아야 돼.
91년에 찍었던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이후로 각본 작업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있다. 참여하던 안 하던 난 이름을 안 올리니까. 다 참여는 하는데 이름은 빼지. 내가 작가란 이름을 가지면 뭐하냐고. 누릴 거 다 누리는 놈이. 자기가 조금 써놓고 왜 이름 넣는지 모르겠어. 그래서 공로 인정받으려고? 내가 다 썼으면 내 이름을 넣지.
워낙 할 일이 많다 보니 각본까지 도맡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건 아니고, 내가 촬영할 때 워낙 시나리오 수정을 많이 하기 때문에 미리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버리면 아이디어가 안 나와서 그런 거다. 조금 미흡하더라도 작가에게 쓰게 하는 게 나아. 어차피 내가 고쳐 찍으면 되니까.
글쓰기는 일단 작가에게 맡기고 연출로 승부한다? 물론이지. 만약 내가 고치다가 힘들 때 다시, 이건 네가 고쳐줘야겠다, 그 정도 부탁은 하는 거지.
좀 오래 전 이야기가 되겠지만 강철중이란 캐릭터의 모티브가 궁금하다. 사실 1편 작가들이 뽑아낸 캐릭터다. 내가 꼴통 형사는 그려본 적이 없잖아. <투캅스>는 재미있는 형사였고. 작가가, ‘감독님, 꼴통 형사 이야기 한번 해보실래요? 진짜 나쁜 놈인데 꼴통 형사 이야기, 나쁜 놈이 더 나쁜 놈 잡는 영화.’ 이러더라. 그 때 감이 왔다. 바로 그거다. 화이트 앤 블랙이 아니고, 회색. 그렇게 오케이 한 거지.
그 당시 <공공의 적>으로 오랜만에 감독직으로 현장에 복귀했는데 만약 강철중을 못 만났다면 어땠을까? 그게 아니었으면 아마 복귀 안 했을걸. 그 정도 되니까 내가 복귀했지. 3년 반 만에 영화 찍는 놈이 아무것도 들고 나오지 않으면 바보지, 바보.
<한반도>는 말이 많았었다. 좀 위험했지.
사실 <공공의 적>으로 현장에 복귀한 뒤로 공공의 적 시리즈를 제하면 <실미도>와 <한반도>가 남는다. 두 영화는 이데올로기적이란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한반도>가 <실미도>에 비해 민감한 반응을 얻었던 건 직설적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반도>의 평에 대해서 내가 조금 억울한 부분이 있는데, 난 이런 일이 있다면 우리 이렇게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라고 말한 것뿐이야. 나는 판타지로 소리를 질렀는데 사람들은 현실정치로 받아들이고 굉장히 오해를 하더라. 지금 이 세계화 시대에 일본에게 국수적으로 이래야 할 이유가 뭐냐, 굉장히 편협한 인종주의다, 막 이러는 거다. 사실 사상이 없는 영화였고 나한테는 판타지였는데 그렇게 들이대니까. 아, 지금 이 사람들이 영화평을 안 하는구나 싶기도 하고. 너 이런 얘기하면 안돼, 그래서 사실은 되게 당황했어. 억울하기도 하고. 관객한테, 우리 이런 일이 있죠.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죠? 이런 동의를 구하려던 거거든. 그걸 전달하는 수단은 웃음이 될 수도 있지만, 영화 보는 동안에 다른 생각 말고 나와 한번 생각을 맞춰보자는 거지. 이런 인물이 있는데 이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관객하고 이렇게 얘기하고 소통하고 싶은 거였다. 일반 관객들은 받아주는데, 먹물, 화이트 칼라들, 또는 언론들, 평론가 시각에서 안 받아들이는 거야. 이런 영화는 만들면 안 되는 영화다. 그래서 난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사실 시의성도 컸다. 시의성 플러스 노무현 정권. 이거 이 정권 밀라고 찍은 거 아냐? 이런 오해까지 하니까.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나보고 차기 국회의원 나가시려고 그러죠? 이러고.(웃음) 내가 어이가 없어서.
어쩌면 그런 과정도 다시 강철중을 빼 들게 만든 요인으로 작용됐을 것 같다. 그것 때문에 내가 다시 재미있는 얘기로 돌아왔을지도 몰라. 내가 바보가 아니거든.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편협한 민족주의자나 국수주의자 개념으로 영화 찍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 다시 즐거운 영화 찍어드릴까요? 이런 마음으로 다시 몸풀어본 거라고. 내가 감각이 아직 죽진 않았다고, 연출자로서 비겁하지 않게 연출해보자, 그런 의도도 있고.
사실 처음 강철중이 상대한 공공의 적은 사소한 개인적 범죄자였다. 하지만 속편에서부터 그 범위가 조직적인 형태로 확장되는 느낌이다. <강철중>에서는 확실히 기업적인 조직 자체가 공공의 적이 됐고. 1편의 <공공의 적> 타이틀이 붙을만한 것인가, 약간 회의가 있었다. 천하의 몹쓸 놈이지, 그게 공공의 적인가,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공공의 적 2>에서는 천박한 자본주의자를 하나 건드렸고. 그건 공공의 적이 맞거든. 근데 <강철중>이 사실 공공의 적 중에 가장 사실 공공의 적답지. 그래서 이 영화보시고 어떤 어르신 한 분이 이번엔 정말 공공의 적 같네? 이러더라.
<강철중>에서 등장하는 강철중은 <공공의 적> 당시에 비해 성숙했다는 느낌도 든다. 캐릭터가 성장했다고 볼 수도 있고. 당연히 성장해야지. 세월이 흘렀는데. 인간이 변해가야지.
사실 애초부터 강철중은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는 인간형은 아니었다. 나쁜 놈이지. 정의롭지 않아.
<공공의 적>에서도 자신에게 상해를 입힌 상대에 대한 사소한 복수심이 발단이 되기도 했었고. 그렇지. 그런 개인적인 원한도 좀 있고.
하지만 <강철중>에서 그는 과거에 비해 사회적인 정의를 구현하고자 노력하는 의지가 좀 더 보인다. 사람이 연륜이 몸에 배면 사고가 달라진다. 당신도 5년 후에 본인의 글이 달라질 거라고. 지금처럼 많이 안 써도 더 짧게 쓰면서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글이 나올 거라고. 그것처럼 세월이 흘러가면 사람도 자연스럽게 변한다. 나쁜 짓 했던 놈이 생활인이 되듯이, 그래야 시리즈 안에서 변해가는 이 사람과 함께 우리가 생활해가는 느낌이 들지. 과거가 좋았다고 해서 그대로 다시 가면 그 영화 무슨 재미로 봐.
딸이 많이 자란 것에 대한 영향도 있지 않나 싶은데. 사실 옛날에 가족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이젠 가족도 중요해진 거지. 그래서 일일교사도 가잖아. 1편 같았으면 일일 교사 갔겠냐고, 걔가.
우린 깡패지만 사회에서는 우리를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건실한 청년이라고 부른다. 극 중 이원술의 대사에서 나오는 말인데 이는 마치 사회적인 조직체계나 조직문화에 대한 비유처럼 들린다. 실제 건달 아니지만 보면 건달 같은 애들 많잖아. 사회에서도 조직 형태가 그렇고. 일반 회사도 안으로 보면 깡패보다 더한 곳이 많아. 폭력을 안 쓸 뿐이지. 사람 함부로 자르고. 그니까 그 대사를 보면, 건실한 청년으로 불러주니까 깡패 짓 열심히 하다 보면 나처럼 돼, 이런 아주 나쁜 꿈을 던져주잖아. 우리가 지금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 거지.
강철중은 항상 주먹으로 공공의 적을 처단한다. 그런 응징방식을 묘사하는 건 그 상황에서 발생할만한 쾌감이 본인에게 어떤 영향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내가 만든 캐릭터인데 당연히 내 생각이 안 들어갈 수가 없지. 그리고 내 생각도 당연히 있지만 관객들도 대등하게 배려해줘야지. 우리는 깡패 보면 무서워서 피한다. 근데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피하면 안돼. 아무리 무서워도 들러붙어야 한다고. 그래야 사고가 맑아지고 투명해지는 거지. 우리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우리는 길거리 지나가다가 진짜 깡패들끼리 싸우면 우리는 그렇게 못하지. 도망가야지, 어떡해. 무슨 칼 맞을 일 있어? 그런데 강철중은 그러면 안되지. 거기서 시비를 가려주던지, 다 때려서 무릎을 꿇게 만들던지. 그건 영화적 통쾌함 때문에 해야 하는 거야.
동시에 그것이 어쩌면 본인이 현실에서 지닌 공권력에 대한 불만을 영화적으로 해소하는 측면이 아닌가 싶다. 바람일 수도 있고. 맞다. 나는 강철중 같은 형사가 분명 있다고 본다.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오케이 하거나, 또 그렇게 못한 사람들이 보고, 나도 앞으로 이렇게 한다, 그럴 수 있잖아. 내가 형사는 안 해봤지만 실제로 <공공의 적 2>보고 검사들이, 맞아, 검사는 저렇게 해야 돼, 자기들끼리 그랬다는 거 아니야. 강철중 같이 검사라면 저렇게 해야지.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악을 잡아야지. 안되면 총을 들이대는 한이 있더라도.
요즘 안 그래도 시국이 어지럽다. 나는 촛불시위를 보면서 되게 슬펐다. 내가 작업 중이라 참가 못해서 미안하기도 하고. 이젠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식이 진짜로 높아졌다. 먹고 사는 문제는 중진국 수준일지 모르나 의식들은 정말 선진국 수준이다. 아줌마들이 유모차에 애태우고 나온 거 보면, 야, 이제 정말 무서운 세상이 됐다, 싶더라. 난 되게 감동받았어.
언젠가 이런 상황이 영화적 모티브가 될 수 있지 않을까?(웃음) 난 더 이상 (영화적으로)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는 감독이 되고 싶진 않아. (웃음)
사실 여성 캐릭터를 못 본지 오래됐다. 한 10년 됐지. 10년. 내가 사실 코미디라면 할 수 있다. 그런데 멜로 드라마 해라, 그런 건 내가 못해. 남녀 사랑이야기 같은 건 못한다고. 엎치락뒤치락 싸우는 건 해보겠다 싶어서 코미디로서 여성 배우가 등장하는 건 앞으로 분명히 나올 거 같은데, 여성스러움을 묘사하는 건 난 못한다.
사실 <마누라 죽이기>나 <미스터 맘마>처럼 여성이 등장했을 때 코미디도 유연해졌던 것 같다. 그건 우리 마누라가 무진장 웃기니까.(웃음) 진짜로. 결혼하기 전에는 안 그랬는데 우리 마누라가 결혼하고 나서 지금은 완전 개그우먼됐어. 옛날에 내가 웃기려고 하면 화내고 그랬는데, 요즘에는 자기가 날 웃기고 그래.
사모님께서 유쾌하신 편인가 보다. 되게 명랑해. 되게 밝고.
다시 한번 여성캐릭터를 앞세운 코미디를 찍어도 될 거 같은데. (웃음) 일단 내가 해보고 싶은 거 한 두 개 먼저 해보고.
사실 최근 시네마서비스 위기설이 심상찮게 돌았었다. 실제 위기다. 실제 지금 심각한 위기라고. 지난 2년 동안 개봉했던 영화들이 다 망했잖아.
시네마서비스의 위기를 한국영화 위기의 실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우리하고 싸이더스 어려워진 거 보면 당연히 한국영화 전체가 어려워진 거지.
본인은 재미있는 영화의 부재가 한국영화 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기회라고 본다. 진짜 한국영화가 질 높아질 수 있는 기회다.
부가판권이나 극장과 배급의 수익 배분의 구조적인 개선도 시급하지 않을까. 그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한국영화의 수준문제다. 수준문제. 사실 요 근래 극장에서 내걸기에 민망한 작품들이 많았잖아. 기자시사에서 보고 민망하지 않았어?
…… 기자들도 답답했을 거야. 어떻게 이런 영화에 3~40억씩 돈들이냐, 이런 영화 있었을 거야. 그러니까 그런 영화들 편수 줄이고, 한국영화 가능성 있구나, 발전하네, 이럴만한 영화들이 드문드문 나와줘야 된다 이거야. 너무 안 나오고 있잖아. 요즘.
그런 실망감이 축적되다 보니 관성적으로 한국영화 자체를 기피하는 관객도 발생하는 것 같다. 그걸 깨주려면 재미있는 영화가 계속해서 나와야 돼. 그래서 내가 보기에는 <강철중>에 그런 기대를 하는 거 같아. 어려움도 극복해주고, 관객들도 만족시켜주고.
반면에 그런 관성이 <강철중>에게도 작동할 수 있다. 당연히 지금 관객들이 너무 안 나오니까, 사실 한국영화를 너무 안 보니까 걱정이 된다. 그러니까 좀 오게 해봐!(웃음)
최근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으로 강한섭 교수가 취임했다. 의견이 궁금하다. 나는 잘 할 거 같은데. 워낙 의욕이 넘치고, 본인도 너무 하고 싶어했고. 그리고 사실 지금 강한섭은 안티가 많다. 그래서 나는 분명 더 잘할 것이라고 본다. 왜냐면 안티가 많다는 얘기는 감시가 많다는 얘기거든. 그래서 난 오히려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잘할 것이다. 내가 저번에 축하한다고 전화했는데 그 때, 당신 정말 잘해야 된다, 여러 명이 주시하고 언론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당신을 쳐다보고 있다, 그러니 진흥위원회 똑바로 운영하고 정말 한국영화에 뭐가 도움이 되는지 정말 잘해달라, 그랬다. 그러니까 정말 믿어달라고 하더라. 자기가 3년 동안 한국영화에 큰 도움이 돼보겠다고. 잘할 거다.
지금 사실 제작자나 기획자로서, 한국영화 안에서 산업적으로 많은 짐을 지고 있는데, 종종 감독역할에만 치중하고 싶다는 생각하진 않나. 왜, 정말 하루에 수십 번도 하지. <강철중>기자시사회에서 어떤 기자들이 그러더라. 온갖 이상한 짓 다 하면서도 이 정도는 만드는데, 감독만 하면 정말 어떤 영화가 나올지 너무 궁금하다고.
사실 순차적으로 따지자면 <공공의 적 3>에 해당한다. 하지만 <강철중: 공공의 적 1-1>(이하, <강철중>)이 본래 타이틀 대신, ‘강철중’이란 캐릭터의 네임밸류를 앞세우고 ‘1-1’이란 번거로운 순번을 꼬리에 붙인 건 다름아닌 캐릭터의 정체성을 복구시키기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이틀로 전면에 내세운 ‘강철중’은 그 앞에 ‘원조’라는 단어를 연상시킨다. ‘1-1’이라는 순번이 붙은 부제는 전작인 <공공의 적 2>를 시리즈로부터 분가시키는 동시에 <공공의 적>으로 돌아가 가문을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강철중>이 ‘공공의 적 1-1’이 된 사연은 이렇다. 결국 <강철중>은 <공공의 적>이란 브랜드를 재건하는 작업이다. 무리한 확장사업으로 인해 훼손된 캐릭터의 정체성을 복원하고자 하는 것이다. 동시에 <강철중>은 동어반복의 함정에서 탈피해야 한다. 가문의 정통성을 계승하되, 개별적인 존재의미를 확보하는 것은 속편이 맞이해야 할 숙명과도 같기 때문이다.
<강철중>에 주목할만한 점은 설경구의 출연, 강우석 감독의 연출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장진 감독이 시나리오를 완성했다는 점이다. 덕분에 <강철중>에서는 장진 감독 특유의 촌철살인적인 대사들이 4열 종대 앉아 번호로 연병장 2바퀴만큼은 아니지만 드물지 않게 눈에 띤다. 또한 강철중과 상대하는 이원술(정재영) 역시 전작에서 등장한 악인 캐릭터들과 큰 차이를 보인다. 조규환(이성재)과 한상우(정준호)가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절대 악인으로써 강철중과 대척점에 놓였다면 이원술은 전자들에 비해 인간적인 냄새를 풍긴다. 물론 그는 고등학생에게 태연하게 칼을 쥐어주는 악인이긴 하지만 조직적 의리를 중시하고, 자가수성적 대범함을 갖추고 있으며, 가족적 자상함마저 갖추고 있다. 강철중을 주목하게 만들던 전작의 단선적인 악인들에 비해 이원술은 좀 더 입체적인 선을 지닌 캐릭터로 완성됐다.
동시에 <강철중>의 강철중은 <공공의 적>의 강철중에 비해 성장했다. 물론 그는 여전히 양아치만큼 껄렁껄렁하고 애처럼 멋대로이며 손발이 자동 반사되는 폭력적 습관도 여전하다. 그러나 자신의 철없음을 타이를 수 있을 만큼 똑똑하게 성장한 딸이 있고, 15년 차 경찰 공무원 월급으로 좀처럼 해소되지 못하는 빈곤한 현실적 고민에 사로잡혀 있다. 게다가 세월에 장사 없듯, 나이를 먹어서인지도 모르지만 <강철중>에서 강철중은 철없이 막무가내이던 <공공의 적>시절에 비해 성숙한 인상을 준다. 문제는 그 지점에 있다. 위트가 감소한 강철중 앞에 인간적 매력을 갖춘 악인 이원술을 대립시키면서 캐릭터 구도가 종종 역전되는 뉘앙스를 준다는 것. 사실 <공공의 적>에서 강철중이 조규환을-<공공의 적 2>는 논외로 치고- 미치도록 잡고 싶어한 건 강철중이 정의에 목숨 거는 인간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조규환이 인간적으로 혐오스러운 인면수심의 탈을 쓴 악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원술은 여러모로 매력적인 악인이다. 특히 그가 사시미 하나를 쥐고 혈혈단신으로 적진에 들어가 그 두목(문성근)과 담판을 짓고 나오는 장면은 인상적인 카리스마가 구사되고 인간적인 유머까지 겸비한다.
단선적이던 캐릭터 나열방식에 불분명한 혼선이 발생했다. 강철중은 강우석 감독의 것이지만 이원술은 분명 장진 감독의 것에 가깝다. 결국 두 감독의 조합은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키기도 하지만 쉽게 융합하지 못하고 겉도는 위트에 도취되기도 한다. 수위가 넘칠 것 같은 웃음의 타이밍에 좀처럼 쉽게 반응할 수 없는 건 융합될 수 없는 스타일의 간극 때문이다. 선이 굵고 묵직한 강우석 감독의 판을 지탱하기엔 장진 감독의 스타일은 가볍게 들뜬다. 동시에 캐릭터의 대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공공의 적>의 단선적 관계는 공익적인 메시지를 얹으며 다소 번거로워졌다. 학교 폭력과 청소년 문제에 관여하는 조폭들의 실상을 그리는 <강철중>은 누가 봐도 공익적인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게다가 그 안에는 작게는 상도덕의 윤리부터, 크게는 기업의 경영 윤리가, 게다가 대한민국의 조직적 위계질서에 대한 풍자까지, 넓은 현실관념의 메시지가 펼쳐져 있다. 문제는 이런 측면들이 더더욱 <강철중>을 경직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장진 감독의 유머가 녹아 들지 못하는 것도 이 심각한 사안들이 주제의식과 무관하게 극적인 유연성을 방해하는데 있다.
결과적으로 <강철중>은 ‘<공공의 적> 혹은 강철중 리턴즈’라 명명돼도 상관없는 작품이다. 하는 꼴을 봐서는 깡패인지 형사인지 구분하기 힘들 것처럼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던 강력계 형사 강철중에게 호감을 보였던 이라면, 게다가 양복 차려 입은 검사 강철중이 정의를 주창하던 경직된 모습에 뻣뻣해진 뒷목을 주무르던 이에겐 더더욱 반가운 사실일 수도 있다 게다가 오리지널 <공공의 적>을 계승하는 만큼 본래 <공공의 적>을 채우던 캐릭터들도 고스란히 돌아왔다. 삼류양아치였던 산수(이문식)는 강철중 덕분에 학교(!)에 다녀온 뒤, 유흥업으로 성공해 외제차를 몰고 다니고 칼잡이 용만(유해진)도 정육점을 운영하며 건실하게 살고 있다. 또한 강철중과 애증을 나누는 엄 반장(강신일)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공공의 적>의 중요한 관점포인트가 다양한 조연 캐릭터들을 통해 얻어지는 굵직한 재미였음을 간과하지 않았다는 점은 <강철중>의 장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강철중은 서민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한국형 안티히어로에 가깝다. 그가 상대하는 악인은 언제나 부자이며 그들은 하나같이 비열하다. 게다가 강철중은 가난하고, 심하게 강직하지 않다. 계급적 정체성에 대한 풍자가 막연한 단상처럼 녹아있는 강철중은 분명 대한민국 서민들을 통감시킬 만한 자의식을 걸치고 있다. 게다가 그의 공권력은 위에서 아래로 향하기 보단 아래에서 위를 향한다. ‘형이 돈이 없다 그래서 패고, 말 안 듣는다 그래서 패고, 어떤 새끼는 얼굴이 기분 나빠, 그래서 패고, 그렇게 형한테 맞은 애들이 4열 종대 앉아 번호로 연병장 2바퀴다.’ 다소 길지만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내뱉는 강철중의 대사는 결코 선한 이들을 향한 것이 아니다. 사회를 부패시키고, 이를 좀먹고 자라는 무리들을 향해 그는 주먹을 날리고 맞짱을 뜬다. <공공의 적> 그리고 <강철중>에 어떤 쾌감을 느낀다면 분명 이 때문이다. 게다가 권력친화적이고 부에 관대한 대한민국의 알량한 공권력과 달리 강철중은 공권력의 허울을 벗어 던지고 허구적이지만 실존적인 심판을 몸소 실천한다. <강철중>에 호감을 부여할만한 요인은 영화 외적인 환경에서 기인하는 바도 (분명) 존재한다. 게다가 미국산쇠고기 수입으로 인한 ‘광우병’ 위협에 시달리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본의 아니게) 시의 적절한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