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묻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지극히 사적이고 사소한 만남이라고 생각했다. 정지우 감독이 <은교>라는 소설을 영화화하기로 했다고 할 때까지도 몰랐다. ‘이적요라는 노시인의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꺼내기 전까지. “사실 원작을 읽기 전까지는 잠깐 노인 분장을 하면 되겠지 생각했죠. 그렇게 긴 호흡으로 가야 하는 건지 몰랐어요. 당황스러웠죠.” 계속 물음표를 던져야 했다. 70대 노인을 연기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의심이 거둬지지 않았다. 정지우 감독은 말했다. “사람은 나이 들어가면서 내면보다 외형이 더 빨리 변하는 것 아닐까요. 환경보다도 그에 익숙해진 느낌들이 빨리 변하지 않듯이.” 동의할 수 있었다. 선택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14시간이나 소요된 첫 테스트 분장이 끝난 뒤, 거울을 본 박해일은 생각했다. ‘이게 이적요구나.’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배우의 얼굴을 가리면서도 드러나야 하는 그 작업은 ‘기술이라고 하기엔 너무 크리에이티브한 미술작품’이었다. 완성도 있는 특수분장은 ‘단서를 잡아야’ 했던 박해일을 위한 첫 번째 단서였다. 70대 노인이 되기 위해서 박해일은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했지만 그 ‘방대함’은 오히려 ‘큰 숙제’가 될 뿐이었다. ‘노시인을 능동적으로 드러내려 할수록 어색해지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노시인 이적요를 연기하는데 있어서 첫 번째 화두는 ‘노인처럼 보이는가’라는 기능적 측면이 아니었다.“미세하게 떨림까지 잡아낼 수 있는 특수분장을 했지만 결국 저는 한 꺼풀 뒤에 있는 거잖아요. 그냥 박해일이라는 자연인이 그 나이에 그런 생각을 가진 인물이 되어 솔직하게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오히려 부담도 덜어지더군요.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는 거였죠.” 박해일이 찾은 키워드는 결국 ‘자제’와 ‘절제’였다.
어느 새 연기경력 10년을 훌쩍 넘긴 박해일은 그 이름값에 비해서 딱히 드러난 바가 없다. 자연인 박해일은 정적 그 자체와 같았다. 작품을 통해 나타났다가 작품과 함께 사라진다. <은교>의 노시인 이적요를 떠올리게 만드는 지점이다. 공적으로 거룩하게 추앙 받는 시성의 대가가 10대 소녀에게 연정을 느끼다 깊은 애정으로 치닫는 과정은 시구로서 기억되는 천재성과 비범함을 배신하면서도 자연인으로서의 은밀한 욕망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양면성은 사실 박해일이라는 배우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수없이 동원된 단어다. 사회적인 위치와 개인적인 욕망 사이에서 노시인 이적요는 예상치 못하게 번져버린 뜨거운 감정 앞에서 주저하면서도 한 걸음씩 나아간다. “이적요의 감정은 그의 나이를 감안해봤을 때 굉장히 열정적이고, 폭발적이죠.” 박해일에게 그 감정은 단순한 욕망이 아닌 간절함이었다. “한 순간의 욕망이든 갈망이든 그런 매혹에 빠지면서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 했을 때 그 상황들의 감정에 대해 동의가 됐어요. 단지 노인의 감정을 이해한다기보단 이 정도의 일을 겪은 사람의 감정을 많이 느꼈나 봐요. 원래 한 작품이 끝나고 캐릭터와 이별하는 과정에서 우울함이나 외로움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적요의 측은한 면이 아직 깊게 배어 있는 것 같아요.”
지난 해 흥행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은 <최종병기 활>이 박해일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가장 동적인 영화였다면 <은교>는 가장 정적인 영화일 것이다. 박해일에게 <은교>는 여러 모로 새로운 작품이었다. 나이에 비해서 어려 보이는 외모를 지닌 박해일은 단 한번도 자신의 나이 이상의 역할을 맡은 적이 없었다. 또한 다혈질의 성격을 지닌 성격파 캐릭터들을 연기해온 그가 절제라는 단어로 설명해야 할 내밀한 인물로 분한 것도 보기 드문 일이다. “절제되는 인물의 매력이 굉장히 큰 걸 알았어요. 더 설명하려 하거나 더 표현해보려 하거나, 능동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안에서 계속 꿈틀대는 걸 최대한 절제하는 것도 매력적이라는 걸 알았어요. 이번 경험은 큰 자산이 될 것 같습니다.” 매번 촬영에 들어갈 때마다 8시간의 특수분장을 인내해야 했던 그는 ‘참을 인’ 자를 마음에 새겼다. 덕분에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는 그는 70대 노시인을 연기하면서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했다. “각자 본인 나이와 상관 없이 저마다의 삶은 그들 각자에게 의미가 있어야 해요. 어느 누구를 위해서 산다는 게 오히려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매번 작품을 끝내고 나면 책꽂이에 책 한 권을 꽂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박해일은 언제나 그러하듯이 일상으로 사라질 것이다. 마치 없었던 사람처럼, 고요하고 안정적인 정적 속으로.
운명은 언제나 우연의 탈을 쓰고 나타나 뒤늦게야 필연의 맨 얼굴을 드러낸다. 김고은이 ‘배우 김고은’이 되기까지의 과정도 그랬다. ‘책 욕심이 많아서 당장 보지 않더라도 일단 사고 보는’ 김고은은 ‘심심하면’ 집 인근의 서점으로 향했다. 그 날도 그랬다. 재미있다는 소문을 들었던 박범신 작가의 소설 <은교>를 집어 들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재학 중인 학교 무대에서 단 한번 자신의 연기를 봤던 학교 선배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김고은은 알고 있었다. <은교>가 영화화될 것이며 은교 역에 어울리는 신인배우 오디션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한 적도 있다. ‘은교 역할을 맡게 될 여배우 꽤나 마음 고생하겠네.’ 하지만 몰랐다. 마음 고생할 그 여배우가 자신이 될 줄은. <은교>의 의상 감독을 만나기로 했던 약속이 정지우 감독을 만나는 자리로 바뀐 뒤 모든 상황은 일사천리로 흘러갔다.
‘너무 재미있어서 2시간 만에 읽어버렸던’ <은교>는 탐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앞길이 창창한 20대 초반의 배우 지망생이 만만치 않은 노출신이 예정된 작품을 데뷔작으로 선택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욕심을 누를 수 없었다. “그것 때문에 작품을 안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억울한 거에요. ‘그렇게 밖에 못해?’라는 생각도 들고.” 그만큼의 각오가 필요했다. 부모님의 동의도 필요했다. 아버지는 방문을 닫고 들어가버렸다. 하지만 10분 뒤, 방에서 나와 딸의 고민을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했다. “네가 노출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 작품을 하지 않더라도 다음에 또 좋은 기회가 올 수도 있어. 하지만 그때 또 다른 두려움이 존재한다면 그때는 네가 그걸 이겨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어?” 그 한마디에 김고은은 스스로가 우습다고 느꼈다. “이렇게 욕심이 나는데 두려움 하나 때문에 포기할까 생각하는 제가 용서가 안되더라고요.” 의심과 욕심 사이에 놓여있던 김고은이 확고한 의지를 쥐게 된 순간이었다.
원래 ‘낯을 가리지 않는다’는 그녀는 현장 적응력도 남달랐지만 카메라만큼은 낯설었다. 정지우 감독과 많은 대화를 나눈 끝에 방법을 찾았다. “카메라 앞에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엉덩이로 이름도 쓰면서 망가져보는 거였어요.”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시행착오는 피할 수 없었다. “낯선 집을 혼자 둘러보는 신이었는데 카메라가 바로 앞에 있는 게 느껴졌어요. 갑자기 카메라가 무서웠고 머리가 하얘져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죠. 그 장면만 20번 정도 갔어요.” 김고은은 8시간의 분장을 마친 박해일이 자신으로 인해서 당일에 계획했던 분량을 촬영하지 못했다는 것에 ‘죄송스러워서 속이 다 문드러졌다.’ 하지만 그녀의 집중력을 높여주고자 ‘카메라 밖에서 시선을 맞춰주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경험을 전하며 격려하는’ 박해일의 배려는 그녀에게 ‘큰 힘이 됐다.’ “잘해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버리고 배운다는 입장으로 갔어요. 그러다 보니 많이 편해졌죠.”
작품 경력 하나 없는 22살 남짓의 신인배우 김고은은 <은교>를 통해서 그 누구보다도 주목 받고 있다. 어쩌면 검증된 배우 박해일과 김무열 사이에서 트라이앵글의 한 각을 차지한 신인배우를 향한 관심 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렷하게 자기 주관을 드러낼 줄 아는 김고은에게는 분명 특별한 것이 있다. “은교는 겉으로 봤을 때 굉장히 순수함을 가진 아이다운 아이에요. 천진난만하게 행동하고 이야기하고 잘 웃잖아요, 하지만 자기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면이 있어요.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고민했죠.”
김고은은 호기심이 강한 소녀 은교를 닮았다. 박범신 작가는 은교의 눈을 이렇게 설명했다. ‘해맑은 재기로 반짝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다른 세상을 보는 것처럼 아득하다. 단순히 젊다고만 할 수 없는,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 ‘신비한’ 눈빛이다.’ 20대 초반의 앳된 외모에서 싱그러운 젊음이 전해지지만 다양한 의문을 머금은 까만 눈동자는 순수와 관능의 파도가 철썩거린다. “제가 호기심이 많다는 걸 몰랐어요. 그런데 주위에서 제 눈 안에 호기심이 가득하대요. 저도 궁금한 거에요. 그 눈이 뭘까.” 이제 갓 연기에 입문한 신인여배우에게 대단한 상찬은 어쩌면 독이다. 하지만 김고은은 만개할 날을 기대하게 만드는 꽃봉오리처럼 눈이 가는 배우다. 가혹한 부담감을 되레 ‘일상적인 연기를 보다 훌륭하게 해내야 한다’는 야무진 각오로 승화시킨 그녀는 <은교>를 관통하며 긴 야심을 품었다. 단단한 줄기를 뻗고, 뿌리를 내리고 있다. 꽃은 그렇게 피어 오른다.
상대적으로 뼈를 드러내며 시작하는 원작의 서사가 강렬한 건 부인할 수 없다. 서사의 축약을 위해 순행으로 전개를 수정한 건지 모르겠지만 가공할 떡밥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점에서는 아쉽다. 삼각관계에서 빚어지는 심리적 갈등과 충돌로 발생하는 긴장감은 원작에 비해서 사유화되는 인상인데, 이를 테면 원작은 은교에 대한 두 남자의 감정 발화가 서로에 대한 견제와 의식을 통해서 발전되는 인상인 만면, 영화는 그것이 단순히 나이가 다른 수컷들의 롤리타적 욕망으로 제한하듯 그려진다. 형태는 남아있는데 핵심이 떨어져나갔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이적요 역할의 박해일은 열심히 했다. 톤이 나쁘지도 않다. 다만 70대 노인을 연기해야 한다는 강박에 가깝게 들리는 성대 묘사에 적응하기가 어렵다. 김무열의 서지우는 감정을 좀 절제할 필요가 있는 캐릭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리고 그 어떤 결점과 무관하게 신인 배우 김고은은 지우기 힘든 인상을 남긴다. 동물적인 감각이 느껴지는 신인배우의 출연이란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요즘 공연 때문에 바쁘지 않았나요? 얼마 전에 <즐거운 인생>이 끝났어요. 그리고 <스프링 어웨이크닝>이라는 공연에 6월 말부터 들어가서 곧 쇼케이스 연습을 조금 하게 될 거 같아요. 본격적인 연습은 5월부터라 지금은 그렇게 바쁘지 않아요.
<스프링 어웨이크닝>외에 예정된 작품은 없나요?
한일 합작으로 제작되는 4부작 드라마가 하나 있는데 조그만 역이에요. 감독님 때문에 며칠 가서 하게 될 거 같고, 아직은 별다른 건 없어요.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대작 뮤지컬이라고 들었어요. 토니상 8관왕을 차지할 정도로 대단한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본인이 연기할 ‘멜키어’는 꽤나 지적인 캐릭터라던데, <쓰릴 미>에서의 ‘그’도 지적인 남자였고, <작전>의 조민형도 증권 인텔리였죠.
이미지 때문인가 봐요. 별다른 특징이 없는 이미지라서. 어떻게 보면 올곧게 보이는 얼굴 같기도 하다가 어떻게 보면 악해 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맨숭맨숭하니까 그렇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처음엔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배우는 외모가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이젠 화면의 모습을 보니까 오히려 그게 좋더라고요.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지고.
도화지 같은 얼굴이라 말할 수 있겠죠. 배우에겐 분명 장점일 수 있을 겁니다. 어쨌든 무대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어요. <작전>외에도 섭외가 들어온 영화는 없었나요?
스케줄이 맞지 않아서 못한 것도 있죠. 그리고 제가 드라마를 두 편 했는데 다 사극이었잖아요. 그래서 사실 현대극이 하고 싶었어요. (웃음) 그런데 <작전>이 들어온 거죠. 주식을 잘 모르는데도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봤어요. 물론 비주얼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로 그 동안 맡아왔던 캐릭터와 비슷한 면이 있는 거 같아서 고민이 되긴 했지만 정말 시나리오 하나 믿고 선택했죠.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바로 했습니다. (웃음)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연기하는 만큼 주식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를 위한 노력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조민형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제가 그 동안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지만 <작전>은 리얼한 상황을 그리는 이야기가 담긴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조민형이란 사람은 현실적으로 거리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제가 볼 때는 나이대도 불분명해 보이고, 한국 사람 같지도 않고, 진짜 이런 사람이 있나 싶었죠. 그런데 증권 브로커 분과 인터뷰를 하면서 그런 부분을 많이 느꼈어요. 그쪽 사람들의 생리라던가 그런 측면을 많이 듣고 감독님과 조금씩 더 얘기해 나가면서 부족한 점을 풀어갔죠. 그렇게 시작했고, 결국 증권 브로커 분과 했던 인터뷰가 큰 도움이 됐어요. 그 분과의 인터뷰 이후로 현실적인 시선을 이해하고 바라보게 됐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작전>에서 조민형을 연기할 때 다양한 제스처가 눈에 띄더군요.
일단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했어요. 손동작이나 그런 건 감독님이 주문을 많이 해주셨죠. 주먹에 쥐고 있던 완력공도 감독님이 주신 거고요. 일단 노멀하게 베이직(basic)에서 출발해야죠. 얘가 지금 왜 이럴까, 에서 시작하는 거에요.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주고 싶어서 그런 제스처에 대한 주문을 많이 주셨고, 아무래도 <쓰릴 미>때 경험이 도움이 됐죠.
<작전>의 배우들은 현장 분위기가 좋았다는 말을 많이 하더군요. 그런데 표정을 보면 진심이 묻어나는 느낌이에요. 술도 많이 마셨다고 하고. (웃음) 정말 박희순과 박용하의 힘이었어요. 다른 좋은 분들도 많았지만, 왜 그렇잖아요. 현장 분위기라는 게 감독님이나 주연 배우 중 누구 하나라도 핀트가 나가버리면 확 가라앉아버리는데 용하 형도 그렇고, 희순 형도 그렇고, 노력을 많이 해주셨죠. 원래 성격이 그런 분들이시기도 하고. 당신들은 힘든 내색 별로 안 하고, 스태프나 후배들까지 챙기고, 더 재미있게 해보려고 하고. 저는 예전에 공연하면서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그냥 내가 더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영화를 통해서 형들이랑 같이 작업하면서 저런 게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술 먹으면서 솔직히 얘기했던 게 있어요. 영화가 잘 안돼도 일단 재미있었다면 된 거다. 정말 우리끼리 재미있게 웃고, 술도 마시고, 생각하면서 즐거웠던 기억이면 일단 된 거라고 말이죠. 그걸 관객 분들도 다 같이 느끼신다면 더욱 좋겠지만. (웃음)
다들 초면이라 처음에 친해지는 것도 관건이었을 거 같은데.
용하 형도 그렇고, 희순 형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낯을 많이 가려요. 처음에 대본 리딩하고 의상 피팅할 때 셋이 같이 앉으면 볼만했어요. “식사 하셨어요?” “어, 넌 먹었어?” “예.” (침묵) 그러면 한 명이 그래요. “어, 어떻게 할 거야. 이 썰렁한 분위기.” 그럼. “하하하.” 그리고 또 조용해졌다가, “첫 촬영은 언제세요?” “어, 나는 언제야.” “넌?” “전 언제쯤 할 거 같은데요.” “응.” (침묵) 그러면 또 한 명이, “어떡해. 이거. 왜 이렇게 어색한 거야.” 이렇게 무한 반복이죠, 계속. (웃음) 그래서 속으로, “와, 영화 어떻게 찍지. 이 사람들하고.” 그랬었는데 확실히 대한민국 남자들은 술 한잔 먹으면 금방 친해지나 봐요. 전 이번에 6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웠거든요. 솔직히 핑계일 수 있지만 그렇게라도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담배 한대 피면서 생기는 유대감도 크게 작용하긴 하죠.
그렇게 어려운 사람들이라. (웃음)
그럼 그 이후로 다시 담배를 피게 된 건가요?
예. 지금도 피고 있어요.
저도 지금 2년 째 금연 중인데, 6년 동안의 기간은 정말 아깝네요.
그런데 담배는 끊는 게 아니라 참는 거라고 그러잖아요. 죽을 때까지 안 피면 죽을 때까지 참는 거라고. (웃음)
그래도 목 관리에 민감한 무대 배우에게 담배는 지양해야 할 기호품이 아닌가요?
이번에 <스프링 어웨이크닝>하기 전까진 담배를 다시 끊어야죠. 술도 끊어야 돼요. 3개월 동안 원캐(원캐스팅)이기도 하고. 5월 달부터 공연 연습에 들어가니까 그 전에 금단 현상까지 생각해서 미리 끊어야 되죠. 그런데 사실 배우라면 이것저것 다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핑계 같지만 그냥 나를 풀어놓을 때도 있어야 할 거 같아요. 사실 그 동안 되게 안 그러려고 노력하면서 살았거든요. 담배를 6년 동안 끊은 것도 흐트러지지 않은 나에 대한 상징이었죠. 그런데 요새는 그런 것도 필요하다 싶어요.
항상 무대에서만 연기하다 관객 없는 곳에서 연기를 하게 되면 어떤가요? 스튜디오 같은 곳은 되게 조용하잖아요. 그래서 상대방 연기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죠. 원래 제가 추구하는 연기는 리얼한 연기에요. 그래서 과장되지 않고 사실감 있는 연기가 개인적인 취향에 맞거든요. 그런 걸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좋았죠. 현장 배우들과 호흡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때도 좋았고요. 특히 희순 형 같은 경우는 워낙 그런 능력이 좋으셔서 저도 몰랐던 호흡을 쉽게 알게 되는 경우도 있었어요. 공연 이삼십 번 해야 알게 되는 호흡이 있거든요. 모르고 올라갔다가 하다 보면 알게 되는 건데 희순 형과 촬영하면서, 비슷한 느낌을 얻곤 했죠. 아! 이런 거.
공연을 하다 보면 페이스를 끌어올리는 지점이 있죠. 하지만 영화는 분할된 리듬으로 이어나가는 작업이라 이질적인 느낌이 없었을까 싶습니다.
일단 준비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감독님이 따로 시간을 내셔서 개인 교습을 많이 해줬어요. 아무래도 감독님은 불안했던 거죠. (웃음) 김수진 대표님이 절 캐스팅하자고 제의하신 건데 감독님은 김무열이 도대체 누굴까 싶어서 공연을 보러 왔다가 <미친 키스>를 보신 거에요. 막 미친 듯이 울고, 소리 지르는 연기를 보셨으니 더 고민을 하신 거죠. (웃음) 저 사람이 과연 조민형을 할 수 있을까, 어딘가 냉철한 구석이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개인 교습을 많이 해주셨을 거에요.
설마 끝까지 감독님의 신뢰를 얻지 못하신 건 아니겠죠? (웃음)
그런 의심이 많이 풀렸던 게 두 번째 촬영에 희순 형이랑 같이 주차장에서,
담배 비비는 씬?
예. 담뱃재 씬. 원래 감독님이 예정과 다르게 수정을 했었어요. 거기가 노량진수산시장 위에 있는 옥상주차장이었는데, 멀리 한 곳을 바라보면서 대사를 갑시다, 그러시더라고요. 왜 그러는지는 말씀 안 해주시고. 그래서 희순 형이랑 얘기해봤는데, “아니다. 심리가 이렇다면 이에 행동이 붙어야 분명 더 재미를 줄 수 있다.” 이렇게 결론이 났죠. 나중에 감독님께서 얘기해주신 바론 제가, 그러니까 조민형이 처음부터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예정대로 가면 제가 무너질 거 같아서 바꾸자고 했던 거래요. 그래서 제가 그냥 제대로 해보겠다고 했고, 희순 형도 그렇게 가자고 해서 원래대로 간 거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이 그걸 보시고 제가 안 밀려서 오케이를 했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안 밀렸다기 보단 정말 희순 형 호흡 받아서 연기한 것뿐이에요. 안 밀리긴요, 어떻게. (웃음)
얼마 전에 박희순 씨를 만났는데 김무열 씨 칭찬이 대단하더군요.
제 홍보대사십니다. (웃음)
촬영하다가 틈나면 사라져서 찾아보면 구석에서 연습하고 있더라고 하던데요.
해야죠. (웃음) 일 이년 전까지만 해도 공연 끝나기 전, 막 공연 때까지만 해도 대본을 봤어요. 그런데 요즘은 대본을 보기 보단 생각을 하는 편이거든요. 솔직히 영화 현장에서 한 씬 찍으려고 4시간을 기다렸다가 한 컷 찍고 이럴 때 있잖아요. 그래서 오락도 하고, (웃음) 머리를 쓰는 거죠. 2시간 전부터 이제 워밍업을,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페이스를 올려야 되니까 몸도 살짝 풀면서 준비를 하는 셈이랄까요. <일지매>때, 이문식 선배님께서 연기하시기 전에 혼자서 막 뛰시고, 젊은 배우들 아무도 안 그러는데 그 연기 잘하시는 이문식 선배님이 그러는 걸 보면……
무대 출신 배우들의 특징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무대에서는 NG가 없으니까 그만큼 더욱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잖아요.
제가 드라마나 영화를 몇 번 안 해봤지만 탤런트나 영화배우 중에도 좋은 배우들이 너무나 많아요. 다만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라는 가치관의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겠죠. 비단 무대 배우 분들이 아니라 탤런트 선생님들 중에도 그렇게 하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제가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만약 무대만 했다면 이 정도도 안됐을 거 같아요.
카메라 앞에서 적응하는 것이 관건이었던 시간도 있었을 겁니다. 제가 ‘드라마시티’에서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았었는데,
<신파를 위하여>말이죠?
예. 거기서 현욱이라는 역할을 맡았는데 그때는 연기에 대해서 잘 몰랐고 특히 방송 카메라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을 때에요. 이소은이라는 여자 감독님께서 한 컷 한 컷 찍을 때마다 고개 각도까지 일일이 수정해주실 정도로 디테일한 디렉션을 주셨어요. 보통 드라마는 그렇게 안 찍잖아요. 빨리빨리 넘어가야 되는데. 덕분에 그때 정말 많이 배웠죠. 그 한편으로 많이 배웠어요. 그래서 그 다음에 <별순검>은 편한 마음으로 할 수 있었죠.
그 작품으로 카메라를 이해하게 된 셈이군요.
<신파를 위하여>전에 단편들도 했었지만 전혀 그런 영향이 없었어요. 사전작업 때 감독님과 단 둘이 몇 번 만나서 현욱의 캐릭터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그 안에 숨은 감정들까지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도와주셨죠.
그 때 순수한 사랑을 추구하는 선생님을 연기했는데 이번 <작전>에서는 비열한 인텔리 주식 전문가를 연기했죠. 두 캐릭터만으로도 극단적인 너비가 발견됩니다. 배우로서 소화하는 감정의 폭이 넓어야 한다는 이야기죠. 그런 감정적 너비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캐릭터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를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 그러니까 그 말에 중점을 두는 게 아니라 말은 말일 뿐이란 거죠. 하지만 그 안엔 뭔가 있잖아요. 일단 이 사람이 언제 태어났고, 어디서 살아왔고, 뭘 했었는지, 이런 것들이 다 분명해야죠. 저는 악역이라고 해서 비열하게 보여야 된다는 생각은 절대 없어요. 제3자가 바라볼 때 비열함이라는 표현이 생기는 거지, 저는 주관적으로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고 봐요.
관객들은 캐릭터의 드러난 외면을 바라보는 셈이지만 배우는 보이지 않는 내면까지 추적해 입체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는 의미처럼 들리는 군요.
연기를 잘 하시는 선배들은 자기가 연기하는 걸 띄워놓고 보죠. 연기 수업에서 그걸 ‘제3의 눈’이라고 하는데, 배우가 가진 눈, 자기를 보고 있는 그 눈을 가져야 된다고 해요. 저도 그걸 갖고 싶어요. 그래서 항상 노력은 하는데, 이번에도 <작전>에서 보니까 역시 갖고 있지 않더라고요. 영화를 보니까. (웃음)
복싱으로 치면 섀도우(shadow) 복싱과 같은 셈이군요.
그렇죠. 다른 생각들을 지우고 한 감정에 100% 몰입한 채 상대방과 연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마음 한 켠으론 나 자신을 띄워놓고 내가 연기하는 걸 보고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걸 제가 갖고 있는 줄 알았는데요. 이번에 <작전>을 스크린으로 보고 나니까 쥐뿔도 없더라고요. (웃음)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을 너무 많이 했어요.
어떤 점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던가요?
전체적으로 그랬죠. 사실 조민형이란 캐릭터에 대한 이해에서도 부족한 점이 있었던 거 같고, 한편으론 그 캐릭터에 너무 빠져있었던 거 같고. 상대적으로 희순 형이랑 붙는다고 생각하다 보니까 존재감에 대한 부담이 많았나 봐요. (한숨을 쉬다가) 더 얘기하면 너무 자괴감에 빠질 것 같은데. (웃음)
드라마나 영화는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으로 자신을 다시 확인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 있는 게 아닐까요?
많이 다르긴 하죠. 진짜 라이브의 느낌은 아니잖아요. 영화는 박제하듯 만들어내는 거니까. 그래서 라이브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너무 부족했어요! 무대를 해왔던 놈인데도 불구하고, 거기서 그건 생각도 못하고 딴 짓을 하고 있더라고요.
음, 갑자기 후회와 반성의 시간이 되고 있군요. (웃음)
사실 요즘 정말 너무 그래요.
작년에 <일지매>에도 출연했었죠. 드라마와 영화의 진행과정에도 차이가 많은데 사전 준비기간이 길다는 점에서는 드라마보단 영화와 무대극의 공통점이 좀 더 강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영화가 좀 더 본인에게 수월한 작업이 아니었을까 짐작되는데요. 저 같은 경우는 드라마가 더 편했어요. 다른 배우 분들도 다 그러시거든요. 드라마가 어렵다고, 왜냐면 바로 바로 가야 되니까. 그런데 저는 모르겠어요. 오히려 편하게 갔던 거 같아요. 오히려 영화는 컷이 많다 보니까 그럴 지도 모르죠. 한 씬에서 두 사람의 드라마가 흐르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와중에도 여기서 찍고, 저기서도 찍고, 그래서 그 때 디테일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거든요. 거기다 대형 스크린에서 상영을 하니까 디테일 하나라도 놓치거나 어디 한 군데라도 텐션(tension)이 들어가있으면 그게 딱 보이거든요. 드라마도 마찬가지겠지만 제 생각엔 영화가 컷이 많기 때문에 배우가 철저하지 않으면, 한 순간 방심하면 바로 드러나요. 배우는 같은 연기를 여러 번 반복해야 되는데, 똑 같은 씬이더라도 지금 가는 걸 언제 쓸지 모르는 거잖아요. 옛날에 한국영화 보면 울고 있던 배우가 앵글이 바뀌니까 안색이 멀쩡해지거나 그런 거, 선수들은 알거든요. 사람이 울 때 나오는 숨이 있는데 그렇게 숨쉬다가 잠시 화면이 바뀌니까 차분해져 있고, 이런 것들. 몸이 지금 데워져 있는지, 안 데워져 있는지, 그런 게 보이니까. 그런 걸 처음부터 끝까지 가져가야 되더라고요. 그런데, 와! 정말 힘들어요. (웃음)
스크린은 브라운관보다 크니까요. 마치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선명할 수 밖에 없죠.
그렇죠.
최근 인터뷰를 보니까 비 얘기가 정말 많이 나오더군요. 안양예고 동창이라고 말이죠. 그런데 예고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는 건 그 때 이미 연기에 대한 진로를 염두에 둔 셈이겠죠.
초등학교 때 오락실에서 오락하고 있는데 동네 선배 형이 머리를 기르고 나타난 거에요. 그 형한테, “머리 어떻게 길렀어?” 라고 물어보니까 안양예고 갔다고, 안양예고 가면 머리 기를 수 있다고 하는 거에요. 그리고, “너도 안양예고 가.” 그러길래, 저도 엄마한테 장난으로, “엄마, 나 안양예고 가서 머리 기를래.” 그랬거든요. 그런데 어머니가 진지하게 생각을 받아들여 버리신 거에요. (웃음) 일산에 있는 연기학원을 보내주셨죠. 그런데 연기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하게 됐고, 안양예고 시험은 정말 한치의 의심도 없이 보게 됐죠. 난 연기할 건데 뭐, 이렇게. 그때 경쟁률이 17대 1이었어요. 제 생애 몇 안 되는 높은 경쟁률 중 하나였는데 붙었죠. 그렇게 아무런 의심 없이 연기를 꿈꾸다가 2005년도부터 연기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지하철 1호선>으로 김민기 선생님 뵙고 그 때부터 디테일한 것들을 파고 들어갔어요. 흰 머리가 나기 시작했죠. (웃음)
‘학전’에서 본격적인 연기자의 마인드를 얻은 셈이네요. 그럼 본인의 연기적 스승이 김민기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요?
연기자로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이랄까? 제가 어떻게 연기를 해야 되는지 정확한 틀을 잡아주신 분이 김민기 선생님이셨죠. 그리고 안양예고 다닐 때 김준철 선생님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그분께서 제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로 연기를 시작해야 되는지 가르쳐주셨어요. 그러니까 안양예고에 간 건 제가 화분을 산 거죠. 머리를 기르는 것 때문에 화분을 샀어요. (웃음) 그리고 안양예고 시절에 좋은 흙을 담아놓은 거고, 김민기 선생님 만나서 어떤 나무를 심을까 고민하다 씨를 뿌리기 시작한 거에요.
어쨌든 일단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그 당시엔 그런 것들이 본인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지점이라는 건 뒤늦게 알았을 텐데요.
사실 저에게 일생일대의 전환점이 된 사건들이잖아요. 그런데 머리 기르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했다가 안양예고에 가게 됐고, <지하철 1호선>은 제가 그 당시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하고 그랬었거든요. 그 전에 저는 뮤지컬은 생각도 못했었어요. 그러다가 어떻게 창작 뮤지컬 오디션을 봤다가 합격했는데 그게 저 혼자 오디션을 본 거였어요. 그래서 나중엔 괜찮은 친구 있냐고 물어봐서 친구까지 소개시켜주고, 그렇게 뮤지컬을 하나 했죠. (웃음) 그 뒤로 악극무용단도 하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 연극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우연찮게 <지하철 1호선>이란 작품의 오디션이 있다고 하길래 당일 날 가니까 막 설경구 선배님, 방은진 선배님, 황정민 선배님, 조승우 선배님, 사진이 다 있는 거에요! 뭐, 이런 작품이었어? 그때 알았죠. 그런데 거기에 합격이 된 거죠. 사실 그 전에 영화나 드라마 오디션 수도 없이 봤었거든요. 다 떨어지고 그랬었는데 말이죠.
오디션에서 떨어진 경력이 상당히 많았나 봐요.
굉장히 많아요. 영화만 스무 개가 넘죠. 제가 지금도 연기를 못하지만, 그때는 진짜 못했거든요. 사실 <작전>도 우연찮게 김수진 대표님이 <쓰릴 미>를 보시고 저 사람 시켜야겠다, 그래서 책을 주신 거죠. 저는 복권 이런 거 사면 안될 거 같아요. 바라고 하면 되는 게 없어. (웃음) 솔직히 생긴 것도 특출하지 않고, 연기도 그저 그렇고, 어디서 보지도 못한 애가 붙기는 힘들었겠죠. 공부를 더 해야겠구나, 라는 생각도 있었고. 뭘 하지, 싶어서 학교를 다시 다니다가 커리큘럼도 엉망으로 짜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싶어서 갈팡질팡하다가 밖에 나가서 공연을 하자 마음 먹었어요. 그래서 <지하철 1호선>오디션을 봤는데 덜컥, 진짜로 덜컥! 붙었죠. (웃음)
결국 그 역사적인 <지하철 1호선>이 본인에게도 역사적인 공연이 된 셈이군요. 그 뒤로 <어쌔신즈>라는 공연을 했는데 그 때 함께 공연을 했던 멤버가 쟁쟁합니다. 오만석, 엄기준, 상당히 주목 받는 배우들과 함께 공연을 했어요. 만석이 형은 소문만 듣다가 <어쌔신즈>로 처음 봤어요. 그때 오만석 형님이 <헤드윅> 초연을 하고 있었는데 난리가 났었죠. 없던 공연도 생기고 기획사에서 해외 여행까지 보내주고, 그런 스케줄 때문에 연습을 많이 못나왔어요. 그렇게 저희끼리 2주 동안 지지고 볶고 있는데 연습하겠다고 나타나더라고요. 그래서 러프하게 런을 갔는데, 아니, 2주 동안 지지고 볶은 우리를 뛰어넘어서 디테일까지 다 잡아온 거에요. 사무엘 뷔크라는 역할을 맡았는데 약간 광기가 있는 집착성 정신병이 있는 친구였죠. 그 역할이 노래가 없어요. 대신 대통령 암살하러 가기 전에 혼자 뭐라고 지껄이고 그렇게 혼자 독백을 두 세 장면인가 지껄이고 그러는데 혼자 난리가 난 거에요. 저 사람 진짜 뭐지, 이렇게 깜짝 놀랐어요. 저래서 오만석이구나, 저래서 유명한 거구나, 싶었죠. 잘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잘 해야겠다, 잘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죠.
엄기준 씨와는 <그리스>에 더블 캐스팅되기도 했죠.
그때 기준이 형의 진면목이 나왔죠. 까불까불한, (웃음) 얄밉지만 사랑스러운. 원래 <그리스>의 대니 역할은 무조건 멋있기만 하면 되는데 대니가 나와서 계속 웃기는 거에요. 어떻게 보면 재해석이죠. 그런데 기준이 형은, 나는 춤을 못 추는 거니까 그런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춤을 진짜로 못 춰요. 그래서 아는 사람들은 기준이 형이 <그리스>했다고 하면서 놀리기도 해요. (웃음) 멋있게 춤을 춰서 여자들의 환호를 얻어야 되는데 그냥 웃겨버리더라고요. 하지만 결국 대단한 거죠. 그런 걸 보면서 진짜 많이 배웠고 자극도 돼요. 형들로부터 그 당시에 많이 배웠죠.
노래는 원래 잘 하는 편이었나요? 아니면 노력의 산물인가요?
노래는 연습을 계속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노래방가는 걸 진짜 좋아했거든요. 고등학교 땐 학교 끝나고 일주일에 4번씩 가고 그랬어요. 오천 원에 3시간 주고 그런 곳으로 가서 맨날 노래하고 그랬죠. 사실 어렸을 땐 가수 한다고 그러기도 했거든요.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했어요. 그러다 안양예고 가면서 연기만 했죠. <지하철 1호선> 오디션 보기 전에도 노래 연습 되게 많이 했어요. 아직까지도 레슨 받고 그렇죠. 뮤지컬 쪽에 선수들 되게 많잖아요. 저는 그쪽에 끼면 그다지 잘 하는 정도는 아니거든요. 그저 극 진행에 방해가 안 될 정도?
연기적인 고민이 더 크죠. 제가 충격을 먹었던 게 <지하철 1호선>을 4개월 정도 했을 때 연습실에서 제작일지를 봤거든요. 그런데 거기 오디션 평가 점수가 있는 거에요. 그래서 찾아보니까, 김무열. 노래가 10점 만점에 9점, 그런데 연기는 5점, 3점, 이런 거에요. 그 때 충격이 진짜! (웃음) 혼자서 연기 열심히 연습해야겠다 싶었죠.
또 다시 자학의 시간이 펼쳐지는군요. (웃음) <쓰릴 미>에서 류정한 씨와 호흡을 맞췄습니다. 류정한 씨를 뮤지컬 3대 천왕으로 꼽기도 하잖아요. (웃음) 그런데 대부분 <쓰릴 미>를 보고 온 관객들이 류정한을 보러 갔다가 김무열을 보고 나왔다고 하더군요. 그 경험치 많은 배우와 홀로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는 단순히 실력 이상의 어떤 정신적 무장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쩌면 그만큼 오기가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닐까 싶더군요.
이쪽 일, 아니, 어느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오기는 있어야죠. 다만 저 같은 경우 이쪽 일이라는 게 들쑥날쑥 하고 성공이 보장된 것도 아니고 자기 계발을 끊임없이 하면서, 그러다가도 운이 나빠서 안 되는 경우도 많잖아요. 저 같은 경우도 당시에 집안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제가 집에 돈을 벌어다 줘야 했는데 그러려면 직장을 구해야 했죠. 그런데 그러진 못하고 아르바이트만 했어요. 그러면서 계속 연습을 했죠. 나름 어렸을 때부터 고생을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만큼 끈기도 있는 거 같고. <쓰릴 미>같은 경우는, 그렇죠. 상대방이 3대 천왕님이시고, 저는 한낱 신인인데. (웃음) 나는 진짜 이번에 잘 안되면 완전 사장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대표님이 흥행이 될까, 말까, 되게 의아해했거든요. 그래서 정한이 형을 시킨 거죠. 정한이 형이라면 일단 흥행은 보장되니까, 천왕님이 막 군중들 몰고 다니시니까. (웃음) 사실 <쓰릴 미>는 작품 자체가 제 취향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열심히 한 것도 있죠. 제 취향이니까. 그런데 저를 좋아해주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
일종의 출세작인 셈이죠.
맞아요. <쓰릴 미>덕분에 드라마 세 편하고 영화 한 편 했으니까요.
<스릴 미>는 참 미니멀한 연극이었어요. 달랑 피아노 한대에 두 남자 뿐인데, 그만큼 배우에게 시선이 몰리기 마련이죠. 그만큼 배우의 집중력이 중요한 작품이었을 거에요.
사실 초연 때는 제가 보여지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비주얼에 대해서, 몸짓, 손짓, 걸음걸이라던가, 라이터를 켤 때, 담배 피는 모습, 누워있을 때, 이런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썼죠. 그런데 앵콜에선 기본적으로 이미 몸이 편해진 상태라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되면서 초반보다 더 많은 걸 시도할 수 있었거든요. 오래 공연하다 보니까 나중엔 몸짓이 자연스럽게 나오면서 그렇게 됐어요. 때때로 오히려 그런 것들에 신경을 쓰다가 확 얼어버리기도 하거든요. 초연 때 그런 경험이 있어요. 노래할 때였나, 대사칠 때였나, 내가 지금 어떻게 보여지고 있을까, 한 순간 의심이 들었는데 바로 그때부터 말리기 시작해서 그 날 공연은 어디 혼자 산으로 다녀와버렸거든요. (웃음) 사람들이 날 보게 만들어야지, 날 보게 하려고 막 봐주세요, 이러는 건 아니었던 거죠.
무대에서는 관객의 반응에 리액션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하지만 촬영현장에서는 온전히 배우 스스로가 자신의 연기에 대한 반응을 짐작하고 수위를 조절해야 합니다. 자신의 연기에 대한 검증이 온전히 배우 안에서 이뤄진다고 할 수 있겠죠. 그만큼 자신의 연기를 일관되게 유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거에요. 이번에 희순 형한테 그런 부분을 많이 배웠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가져가는 호흡에 대해서. 희순 형이랑 연기하다 보니까 정말 자연스럽게 조금이나마 생겼죠. 희순 형이 맨 처음에 막 무게를 잡는 거에요. 그래서 이 양반이 왜 이러실까, 그랬는데. (웃음) 전체적으로 자기가 짜놓은 틀이 있더라고요. 사실 같이 연기하다 보면 상대 배우에게 말리는 경우가 있잖아요. 저도 초반에 나름대로 좀 강하게 가져가야 할 게 있었는데 희순 형을 보면서 자극 받았죠. 첫 촬영 때 의아해지다가 점점, 아! 이렇게 됐거든요. 이번에 시사회 한 걸 보니까 좀 더 알게 됐어요. 두 번째 영화를 하게 되면 더 잘 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고. (웃음)
공연에서 몸이 풀리는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소요되는 것 같던가요?
어떤 공연 같은 경우는 초연 때 좋았다가 점점 하향곡선을 그리는 경우가 있고, 어떤 공연은 초반에 정말 형편없다가 진짜 어디까지 올라갈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끝까지 상승 곡선을 그리는 경우가 있죠. 다만 저 같은 경우는 그냥 스물 스물 조금씩 올라가는 둥 마는 둥 하는 거 같아요. (웃음)
스케줄이 2년 사이에 엄청 바빴던 걸로 알고 있어요. <쓰릴 미>와 <김종욱 찾기>, <미친 키스>를 이어오는 사이에 <별순검>이나 <일지매>같은 드라마 스케줄까지 병행했고, 덕분에 겹치기 출연 논란도 있었더군요. 물론 본인이 완성도를 침해하지 않아서 잠잠해졌지만.
그 땐 저도 그랬고 회사도 그랬고 욕심을 많이 냈죠. 왕성하게 활동해야 할 때다 싶었거든요. 솔직히 스케줄도 많이 꼬였어요. 일단 뮤지컬은 1년 전에 이미 확정 라인업이 다 나오는데 드라마는 그렇지 않잖아요. 거기다가 회사끼리의 알력도 있고. 그땐 진짜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어요. 너무 무리해서 하는 거 아니냐, 그런 얘기를 저도 많이 들었거든요. 그 당시엔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돌이켜보면 저한테 도움이 많이 되는 시간이었어요. 몸도 마음도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때 정말 많이 늘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스케줄이 겹쳐서 캐릭터에 혼선이 생기는 경우는 없었나요?
오히려 되게 재미있었어요. 왜냐면 그때 <미친 키스>와 <김종욱 찾기>를 같이 하고 있었는데 <미친 키스>에서는 정말 미친 척을 하다가 <김종욱 찾기>에서는 막 애교부리고, 그러니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처음엔 너무 힘들고 그래서 어떡하나 싶었는데 좀 적응되니까 재미있어지기 시작하고 오히려 이제 몸을 릴렉스하고, 텐션을 줬다가 다시 릴렉스로 빠지는 그런 테크닉이 엄청 늘더라고요. 완전히 각기 다른 것들을 하다 보니까, <미친 키스>에서는 몸에 텐션이 들어가 있다가 <김종욱 찾기>에서는 딱 빠져야 하니까. 그때 그런 것들을 많이 배웠죠.
<미친 키스>에서 연기한 장정은 꽤나 광기적인 캐릭터였잖아요. 반대로 <김종욱 찾기>의 김종욱은 상당히 팬시한 캐릭터죠. 그 두 작품이 어쩌면 서로에게 나름대로 감정의 출구가 되어준 건 아닐까 싶은데요.
그렇죠. 교집합이 되는 부분도 있지만 전혀 다른 점이 많으니까요. 그런 게 명확히 보일 때 제3자의 눈을 갖게 될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런 느낌으로 항상 연기해야 되는데, 그런 건 사실 공연이 끝나고 오랜 후에나 남의 공연을 볼 때 생기거든요. 지금 갇혀서 보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분명 있어요. 제가 지금 뒤를 못 보는 것처럼. 그런데 그런 것들이 보였죠. 덕분에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게 됐죠. 어쩌면 그게 가께모찌(동시 출연)의 장점이라 할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감정에 몰입한 뒤로 잘 빠져 나오는 편인가요?
사실 연기할 때는 되게 힘들어요. <쓰릴 미>때도 공연이 끝나면 무대 뒤에 들어가서 많이 울었어요. 때때로 “‘그’가 ‘나’를 사랑했나요?”라고 물어보시는 분이 계시는데 저는 모르죠. 왜냐면 전 그걸 정의 내리지 않았거든요. 사랑했건 안 했건, 사랑했는지 안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가끔 가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너무나 마음이 아팠어요. 그러면 그건 사랑을 했었다는 거겠죠? 그럴 땐 막 무대 뒤에 가서 혼자 울었어요. (웃음) 가끔씩 그럴 때가 있었어요. <즐거운 인생>에서 ‘세기’란 역할을 하면서 한번은 필이 심하게 와서 울기 직전에 가슴 뜨거운 느낌 있잖아요. 그게 며칠을 가더라고요. 밤에 잠을 자려는데 숨을 조금만 잘못 쉬면 눈물이 날 것 같고, 진짜 그런 적도 있었어요. 배우란 직업이 힘든 거 같아요. 정신질환이 생길지도 몰라요. (웃음) 숀 펜이 그러잖아요. 배우는 미친 사람들이라고, 맞는 말 같아요. 그게.
몇 년 동안 연말 결산 기사에서 공연계의 유망주로 줄곧 소개가 되고 있더군요. 매년마다 유망주에요. (웃음)
본인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지속되고 있다는 의미겠죠.
아직까지 신인으로 봐주시는 건 좋죠. 그런데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벌써 위기감이 들기 시작했고. (웃음) 지금도 ‘세기’같은 나이 어린 역할 고등학교 역할을 맡으면 제 자신이 부끄러운 느낌이 있으니까요. 이제 저도 스물 여덟이잖아요. 서른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고등학생이라니. (웃음) 다른 어떤 걸 바라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서른이 되면 내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까 기대도 되고, 서른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 지금부터 탄탄히 잘 준비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본인 말대로 이제 서른을 목전에 두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웃음) 하지만 나이 들어간다는 게 배우에게 나쁜 일은 아닐 거에요. 다만 그 전까지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을 텐데요.
일단 지금 이렇게 20대를 보내고 나면 아쉬운 것들이 있죠. 나중에 제가 30대가 돼도 물론 20대 연기를 할 수 있겠지만 지금 제가 이해할 수 있는 나이 또래의 연기를 좀 더 많이 해보고 싶은 욕심이 들어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지금 이 소중한 감정이나 마음을 가지고 다른 연기를 하고 싶지 않은 거에요. 이런 마음이 있을 때 이 마음을 통해 더 포괄적으로 볼 수 있고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빨리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니까요. 제 나이 또래에 맞는, 저와 가까운 그런 것들을 더 많이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게 너무 아쉽지만 그렇게 서른이 되면 제가 서른에 느끼는 것들에 대해서 더 많이 경험해보고 연기해보고 싶고요. 서른이 되면 또 그런 것들이 새롭게 다가올 테니까요.
지금이 지나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연기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이 너무 소중해요.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는 마침 고등학생을 연기하는 군요. 인생의 마지막 고등학생 연기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웃음)
이제 일 이년 후에는 고등학생 역할 못하겠죠. 제가 스물 여덟밖에 안됐지만 거기 있는 친구들은 저보다 어리거든요. 오디션을 보러 갔더니 다들 완전 (굽신거리면서) 이러는 거에요. 저한테! <작전>에서는 맨날, ‘형~.’ 막 이러고 있었는데 거기 가니까 애들이 막 불편해하고, 저랑 같이 연기 맞추고 그러면서 떨고, 그러는데. 너무 무안하죠. (웃음)
지금까지 자신이 생각하는 스스로의 단점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고민을 털어놓은 거 같은데 자신의 결점을 되새김질하는 느낌입니다. 마치 그 단점들을 죄다 소화시켜버리겠다는 일념 같아요. (웃음)
전 계속 발전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당연히 그런 게 필요하죠. 공연후기도 많이 읽어요. 불만 있으면 내 공연 보지 말라 그래. 이런 사람들도 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제 직업은 주관적인 인간이 객관적인 시선을 향해 몸을 던지는 일이잖아요. 물론 주관적인 믿음이 강하지 않으면 객관성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죠. 다만 그 객관성 속에서도 주관이 강해야 자성이 생겨서 객관적인 것들을 끌어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이나 시선을 다양하게 끌어 모을 수 있는 소신이 중요하다고 봐요. 그러려면 긍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무엇보다 재미있다고 느끼면서 해야죠.
상대 패를 읽을 수 있다면 게임은 유리해지기 마련이다. 도박이란 게 그렇다. 주식도 마찬가지다. 그래프의 변화를 읽는 자가 돈의 주인이 된다. <작전>은 그래프의 변화를 읽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출발선이 다른 사람들은 주식을 통해 ‘작전’을 펼친다. 주가의 흐름을 읽는 정도가 아니라 주가의 흐름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대사를 빌리자면 대한민국 경제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덕분에 주식에 관련된 전문용어가 난무하고 이에 관한 언어들이 삽시간에 흘러간다. 다양한 정보가 현란한 영상과 함께 스크린 속을 활보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딱히 인지하거나 숙지할 필요는 없다. <작전>은 주식에 대한 복잡한 이해를 바라는 영화가 아니다. 주식은 <작전>이란 영화를 설계하기 위한 일종의 매물과 같다.
<작전>에서 주식이란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을 파악하기 위한 도표와 같다. 부자들이 어장에서 먹음직한 미끼를 던지면 빈자들이 달려들고 그 사이 부자들은 그물을 던져 모조리 낚는다. 정보의 접근성은 자본의 유무에 따라 구별된다. 유산 계급의 속성이 근본을 구별한다. 속칭 데이 트레이너라고 스스로를 지칭하는 강현수(박용하)와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 작전을 펼치는 황종구(박희순)의 차이도 거기서 비롯된다. 강현수는 재능을 통해 운을 확보하지만 황종구는 자본을 통해 계획을 실행한다. 증권 브로커 조민형(김무열)과 황종구의 작전을 가로채는 것도 재능을 통한 운이다. 이를 통해 재능밖에 없는 이는 밑천을 지닌 자의 수하로 포섭된다. 마치 그것은 프로에 준하는 실력을 갖춘 아마추어가 프로의 세계에 입성한다는 의미와 같다.
강현수는 <타짜>의 고니를 닮았다. 혈기 좋게 고를 외치다가 개털이 된 고니처럼 강현수 역시 찌질한 인생 갈아타기 위한 정답으로 주식을 믿었다가 바닥을 친다. 하지만 자신을 망가뜨린 그 곳에서 다시 한번 재기를 노린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교훈처럼 망가진 삶을 같은 방식으로 복구해나간다. 주식시장과 도박판엔 눈먼 돈이 난무한다. <작전>은 <타짜>의 변형이다. 인텔리한 주식 용어와 이론들이 어지럽게 출력되지만 실상 그건 중요치 않다. 실제적인 증권시장의 복잡한 함수관계를 재현할 수 있을 정도의 치밀함을 요구하는 것도 무리이며 그것을 가능케 할 요구도 불필요하다. 그저 꼴만 갖추면 된다. 중요한 건 그 안에서 기싸움을 벌이는 캐릭터들의 심중이다. <작전>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교훈하는데 모든 것을 펀딩한다. 강자와 약자는 자본의 여부로 나뉘고, 그들은 곧 선과 악으로 대비된다. 비윤리적인 실리를 추구하는 강자들은 악으로 묘사된다. 예외는 있다. 작전에 참여한 자산 관리자(PB) 유서연(김민정)은 기회주의자에 가깝다. 그래서 악보단 선에 근접한 지점에 선다. 그것이 본인의 입장에서 유리한 고지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상대적인 캐릭터 비중이 낮다. 강현수와 황종구 일당의 대비가 <작전>의 본질에 가깝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우열관계에 대한 반발과 성토가 <작전>의 핵심이다. 장르적인 연출을 시도하고 이미지가 빠르게 전환된다. 동떨어진 세계를 남몰래 염탐하는 듯한 흥분도 발생한다. 전문용어들이 난무하지만 모든 걸 이해하고 넘어갈 의무는 없다. 그건 그저 피상적인 세계관에 불과하다. <작전>은 리얼리티를 구사하는 허구일 뿐이다. 그것이 얼마나 실존에 근접해있는지를 따져 묻는 건 불필요한 작업이다. 흡사 그것은 희화화된 조폭들을 위시한 조폭코미디의 전략과 유사해 보인다. 사실적인 관점을 유지하기 보단 영화적으로 연출된 설정을 앞세워 교훈을 전파한다. 문제는 일관적이지 않은 태도다.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을 교훈적 태도로 설명하던 영화가 결말부에서 자본주의적 착취를 바탕으로 성공한 캐릭터의 BMW를 등장시킬 때, 기존의 설교는 허세가 된다. 에그타르트와 초코파이를 대비시키는 이미지만 그럴싸할 뿐, 그것을 향유하는 이들에 대한 의식은 개선시킬 수 없다. 맛있고 비싼 음식을 마음껏 즐기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할 수 밖에. 결국 남는 건 자본주의에 대한 동경뿐, 긴 설교는 한탕주의를 가리기 위한 허세에 불과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