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FREE JUSTICE

피로는 간 때문만은 아니다. 밥 말리는 말했다. “악은 세상을 망치려고 하루도 쉬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쉴 수 있겠는가." <추적자>의 백홍석도 그래서 뛰고 또 뛰었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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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은 언어에서 시작되어 문장으로 옮겨진 작자, 연대 미상의 구비문학이다. 대부분의 구비문학들은 다양한 근원설화로부터 그 명맥이 이어져온 것이라 추정되며 <춘향전>역시 <도미설화><박색설화>와 같이 그 근본을 짐작하게 만드는 다양한 근원설화를 지닌 판소리 문학이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아는 그 <춘향전>은 입과 입을 거쳐나가며 다양한 형태로서 변주되고 오늘날의 형태로서 정착된 결과물인 셈이다. 무엇보다도 그 종래적 형태를 결정짓는 요인은 당대의 시대적 분위기다. 정절과 정조의 아이콘이라 불려도 좋을 춘향의 일편단심을 그리는 <춘향전>은 당대 사대부 양반들이 중시하던 유교적인 풍속을 대변하는 결과물로서 종착된 작품이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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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령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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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2007년) 인터뷰 많이 했더라.
<궁녀>때문에 많이 했지. <가면>도 잘 되야 할 텐데. (웃음)

<가면>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다.
범인을 헷갈려 하는 사람도 많다고 하더라.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

‘이해서’는 마치 사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 같은 예감을 주더니 그냥 척일 뿐이더라. 하지만 그것이 맥거핀처럼 반전을 돕는 효과를 내는 것 같았다.
초반에는 나를 범인으로 지목하시는 분들이 몇몇 있을 것 같다. 물론 뒤로 갈수록 사건의 베일이 벗겨지면서 아니라는 걸 알겠지만 초반에는 나도 무척 범인처럼 의심스러워 보이잖아. 그래서 어떻게 보면 나를 통해서 약간 반전을 꾀하는 측면도 있지.

얼마 전에 <세븐 데이즈>를 본 사람이라면 김미숙 씨의 역할 때문에 그런 추측을 할 가능성도 있을 거라고 본다.
아, <세븐 데이즈>에 김미숙 선배가 나오나? 그랬구나. 그 분은 영화도 잘 찍으시네. 부러워라. (웃음)

본인도 두 편이나 찍었으면서.(웃음) 어쨌든 덕분에 올해의 재발견이란 말을 많이 듣게 됐다. 일단은 기분 좋은 말처럼 들리는데.
어떤 분은 기분 나쁜 말 아니냐고 묻던데?

마찬가지다. 왠지 본인에겐 억울한 수식어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좋은 건데 어떻게 보면, 뭐야~, 이제 데뷔 20년인데.(웃음) 어찌됐건 나쁜 얘기는 아니니까 좋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 동안 세상이 나에게 너무 무관심했던 게 아닌가 싶은 야속함은 없던가? (웃음)
내가 그 동안 TV활동을 주로 하다 보니까, 영화 찍은 게 신기했나 보지. (웃음)

92년도 <숲속의 방>출연 이후로 <가면>은 15년 만의 출연작이다.
91년도에 <용의 발톱>(<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나?>)하고 나서 연달아서 바로 92년도에 <숲 속의 방>을 했으니, 15년 만이지.

그런데 <가면>의 개봉이 밀리면서 그 이후에 찍었던 <궁녀>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양윤호 감독님이 15년 만에 저를 영화계로 끌어준 은인인데, 개봉이 늦어지는 바람에 어떻게 그렇게 됐지.

영화로 연기에 입문한 배우가 15년 만의 영화 출연이라니 아이러니하다.
그러니깐! 내가 뭐 밉보였나 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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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에 본인이 영화를 외면한 건 아닌가?
사실 전혀 섭외가 없었던 건 아니다. <용의 발톱>을 찍고 나서 영화제 세 곳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그러니까 내가 약간 기고만장했던 거지. 그래서 들어오는 역할마다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차츰차츰 영화를 안 하고, TV활동을 시작하니까 이제 영화는 안 하나보다, 라고 생각하게 된 분들이 많아진 거 같다. 이번에 내가 영화를 다시 하니까, 영화도 하는구나, 하는 거지 그 전에 내가 영화하고 싶다고 얘기하면, 어? 영화도 하고 싶다고요? 영화를 할 마음이 있으세요?, 이렇게 물어보더라. 그때마다 너무나 영화를 하고 싶다고 대답했지. 물론 구체적으로 영화를 하고 싶다고 한 건, 불과 한 2년, 3년 전? 그때부터 다시 기획사하고도 의논하고. 물론 다시 영화를 해야겠다고 얘기한 건 불과 얼마 안됐지만 그 전에 나도 시나리오 몇 번 받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떤 작품은 무산되기도 하고, 왜 영화계가 그런 일이 많잖아. 그래서 오케이 다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무산된 것도 있고, 내가 거절한 것도 있고, 까인 것도 있고. (웃음)

첫 작품이었던 <용의 발톱>으로 호평을 받았던 게 독이 된 부분도 있었나 보다.
그때는 멋모르고 연기를 시작해서 너무 철이 없었다. 내가 원래 영화를 하고 싶어서 따로 준비하다가 촬영을 들어가게 된 것도 아니었고. 단지 작품이 너무 좋다 보니까 나까지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았고 그런 걸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거지. 아주 옛날 얘기긴 하지만 그 땐 그랬던 거 같아. 지금은 오히려 너무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고, 한 편으론 간절히 바라고 있고. (웃음)

두 편의 영화 뒤로 처음 했던 드라마가 <해뜰날>인가?
그 전에 <고래사냥>이라는 미니시리즈를 했었다. 최진실 씨 동생인 최진영 씨하고 나하고, 또 한 분이 있었는데……오래돼서 생각이 잘 안 나네.(웃음) 그렇게 세 사람이 TV용<고래사냥>을 했었다. 그래서 난 첫 드라마부터 벙어리 역할을 했고.(웃음) 내가 맡은 춘자가 벙어리였다가 나중에 말이 트이는 역이라서 그때 청각장애자 분들과 미팅하고 설정잡고, 그렇게 해서 연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해뜰날>을 했지.

<해뜰날>에서 이병헌 씨도 출연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아마 그 친구의 드라마 데뷔작이 <해뜰날>이었을 거다. 그 이후로 일일 드라마 주인공을 했었는데, 처음인데도 잘 했었고.

그런데 한국 여배우들은 남자 배우들에 비해 연기자로서 여건이 불리한 것 같다. 남자 배우들은 30대가 되도 캐릭터가 풍성한데 여배우들은 한정되는 느낌이니까. 특히나 결혼을 하게 되면 더욱 그런 것 같다.
요즘은 많이 나아지긴 했다. 그런데 그건 여자는 결혼을 하고 나면 출산이란 게 있기 때문이다. 일단 결혼 자체가 내 생활에 큰 변화를 주진 않는 것 같진 않다. 그런데 출산은 어떤 변화가 있다. 그런 변화 때문에 본인 스스로도 배우로서 긴장을 푼다고 할까? 또 다른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 때문에 에너지가 분산되는 게 있는 거지. 그에 반해 남자들은 자기 직업이고 천직이니까 계속 꾸준히 연기할 수 있잖아. 물론 요즘은 출산했다고 해서 아줌마 같다던가, 꼭 그렇지 않더라. 물론 하나일 때, 둘일 때 또 틀리긴 해.(웃음) 가끔씩 케이블TV에서 하는 타이라의 슈퍼모델 뽑기(‘도전! 슈퍼모델’)인가? 그걸 보는데 거긴 배우가 아니라 모델을 뽑는 거니까 외모가 굉장히 중요하겠지. 그런데 출전하는 친구들이 애 엄마도 많더라. 우리 같은 배우는 애를 낳고 늙어가도 거기에 맞는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 상관없지만 모델은 그런 면에 있어서 약간 불리하겠다 생각했는데 거기 나오는 외국여자들은 애가 하나 정도 있는데도 여전히 아름답고, 몸매도 좋고. 시대가 좋아서 그런지, 잘 먹고 잘 살아서 그런지,(웃음) 아름다움을 계속 유지하더라.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도 점차 그렇게 되는 것 같아. 이요원같은 친구는 애도 있는데 권상우랑 드라마도 하잖아. 부러워라.(웃음)

젊은 층에 초점을 맞추는 이야기만 양산되는 까닭에 캐릭터적인 기회가 드문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면도 있지. 그런데 영화계에서는 그런 이야길 하고 싶어도 쓸만한 배우가 없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 그에 반해 배우는 우리가 할 역할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고. 누군가가 깨주겠지. 내가 깰까?(웃음)

이미 증명하는 중이라고 생각된다.(웃음) 그런데 그 동안 드라마에서 왕비로 살다가 <궁녀>때문에 신분 하락을 경험해야 했는데.(웃음)
묘했다. 누가 문 열어주면 들어갔는데, 이젠 내가 열어줘야 했으니까.(웃음)

사극이라 비슷하게 보이지만 <궁녀>는 기존에 했던 사극 드라마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사실 나한테는 여러 가지 부담감이 있었다. TV드라마를 통해 사극을 많이 했지만 어쨌든 영화였고, 스릴러 장르인데다가, 그리고 궁녀 얘기가 주된 얘기였으니까. 감찰 상궁을 맡았으니까 고민이 많았죠. 기존에 왕비 했던 건 이와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질 정도로.(웃음)

아무래도 기존에 했던 사극들과 캐릭터적 접근 자체가 달랐을 것 같다.
어차피 그녀도 궁녀를 거쳐서 감찰 상궁이 됐을 거라고 생각했다. 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겪고 그 자리에 올랐을 테니까 그 애들을 마음속으로 충분히 이해해도 감찰해야 하는 입장일 수 밖에 없는, 그런 양면성을 이해하려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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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후배들과 함께 했다는 점도 차이를 느끼게 된 요인이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TV사극에서는 좀 연륜이 있는 선배 배우 분들과 호흡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내가 드라마에서 사극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그거다. 미니시리즈 같은 건 젊은 친구들이 많이 하지만 사극 같은 데에는 대선배님께서 많이 계시잖아. 선배님들 밑에 있는 게 마음이 편하거든.(웃음) 사실 그래서 <궁녀>는 대부분 어린 친구들하고 있으려니까 마음이 진짜 부담스럽더라. 못하면 어떡하나, 이런 걱정도 앞서고. 하지만 감독과 배우들이 충분히 상의하고, 논의하고, 호흡 맞춰볼 수 있고, 그렇게 서로에 대한 벽 같은 걸 충분히 허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거쳐서 작업을 시작하니까, 그런 면 때문에 다들(배우들이) 영화를 좋아하는 건가 싶더라. 사실 드라마 같은 경우는 대본 연습 때 얼굴 한 번 보고 촬영 끝날 때까지 못 보는 배우들도 있고, 가끔 부딪히는 배우들도 촬영장에서 잠깐 잠깐, 뭐 그런 식이니까 아무래도 좀 부담스럽지. 그렇지만 영화는 가족 같아서 좋았다.

젊은 배우들의 기에 밀리지 않기 위한 노력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극 안에 존재하는 캐릭터들이 풍기는 포스가 다들 강한 편이었으니까. 물론 그 중에서 감찰 상궁이 압권이었지만.(웃음)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영화에는 절제된 연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왜냐면 관객들이 커다란 스크린을 집중력 있게 보고 있는 만큼 너무 과장되면 오버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점에 신경을 많이 썼지. 내 편견일지 모르지만 TV드라마는 약간 그런 경향이 있거든. 특히 사극에서는 조금 오버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감찰 상궁은 알듯 모를듯한 느낌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감찰 상궁이 모든 상황을 알고 저러는 건지, 몰라서 캐묻는 건지 관객들이 헷갈려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야 재미가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런 느낌을 살리려고 많은 노력을 했었지. 그래서 일부로 목소리 톤을 좀 낮게 깔기도 했다. TV상에서 왕비로서 권력 암투에 휘말리는 상황이 많았는데 그럴 땐 겉으로 표현하는 게 대수라 에너지가 있어야 하지. 뭐라고!(격양된 목소리로), 막 이렇게 소리도 지르니까.

강한 눈빛에 비해 말투는 절제된 것 같다. 게다가 사극인데 현대적인 말투를 구사하더라.
그런 부분에 신경 많이 썼지. 사극 말투를 버리려고 했는데 사실 어려웠다.(웃음)

어쨌든 15년 만에 영화 촬영 현장에 서니 어땠나?
봐서 알겠지만 <궁녀>보다 <가면>은 씬이 많지가 않다. 4회 차나 5회 차 정도밖에 촬영 분량이 없었거든. 그래서 감독님이 내 입장을 많이 배려해주셔서 내 촬영 분을 하루에 몰아서 찍었다. 오랜만에 영화를 찍는다는 걸 충분히 아셨기 때문에 현장에서 쑥스럽고 어색해하지 않게 배려해주신 거지. 덕분에 편하게 찍어서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극 중에서 내가 조울증 환자 연기를 해야 하니까 조울증 환자 한번 만나서 관찰해보라는 주문도 하셨다. 그래서 진짜로 정신과 병동에 찾아가서 조울증 환자를 만나서 얘기도 나눠보고 그랬다.

사실 그 동안 캐릭터 자체로 한정되는 역할을 많이 맡았다. 그랬기 때문에 철저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이해서란 역할이 새로웠을 것 같다.
그런 느낌이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더 집중을 요하게 하고 궁금증을 유발시킬 수 있으니까 매력 있지. 처음 시나리오 받았을 때도 씬은 얼마 없었지만 이해서가 충분히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었기 때문에 감사하게 생각하며 받아들였다. 그런데 촬영 중엔 감독님한테 맨날 협박했었지. 내 씬 얼마 안되니까 손대거나 자르면 그 때는 두고 보자고~. 편집할 때 찾아가서 보겠다고~. 그런데 내가 하도 그래서 그랬는지 진짜 안 자르셨더라.(웃음)

전문 장르에 출연한 것도 처음이었다. 물론 이해서가 직접적인 사건을 만드는 대상은 아니라도 심리적인 의혹을 형성한다는 면에서 간과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사실 내가 이런 연기를 그전에 즐겨봤다던가, 관심 있었다던가, 그렇진 않았다. 난 로맨틱 코미디나 해피엔딩 같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영화를 통해 처음 했는데 이런 작업들이 재미있더라. 그리고 나한테도 잘 맞는 거 같아.(웃음) 내가 전혀 그런 걸 몰랐지만 막상 해보니까 그런 패턴의 연기라던가, 영화가 내 감성하고 좀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앞으로 좀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다.(웃음)

비중은 적지만 상당히 집중력이 요구되는 캐릭터라 피곤했을 것 같다.
좀 그랬지. 역할 자체가 환자였기 때문에,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돼서 의사 선생님과 상담도 많이 했다. 사실 우울증 환자가 다 그렇게 우울하지만은 않더라. 사실 좋았다가 나빴다가 이래서 그걸 표현해보고 싶었는데 내가 그렇게 하다 보니까 전체적인 느낌이 너무 튀는 거다. 그래서 감독님께서 그냥 우울모드로 가자고 해서 그냥 그렇게 갔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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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의 감찰 상궁이 활동적이었던 반면 <가면>의 이해서는 독립적이었다.
이해서는 느낌 자체가 굉장히 애매모호하고, 어떻게 보면 신비스럽지. 감독님은 초반에 이해서가 범인 같으면 성공이라고 했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범인 같을까 고민했지. 물론 이제 연출적으로도 그런 느낌을 많이 살려서 찍었었고. 만약 내가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면 그런 신비감도 많이 떨어졌겠지. 그래서 촬영 장소도 주로 집이었고, 덕분에 아주 편하게 찍었다.(웃음)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이하, <완벽한 이웃>)의 정미희처럼 가벼운 역할도 생각보다 참 어울리는 것 같더라.
왜 어울리냐 하면, 내가 원래 그래! 나도 조울증인가 봐.(웃음) 난 편한 사람들과 있을 땐 굉장히 유쾌하게 분위기를 리드하기도 하지만, 낯을 너무 가려서 불편한 자리에선 한 마디도 안 할 때도 있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나도 그런 양면성이 있는 거 같더라.

그 동안 쌓여왔던 차갑고 무뚝뚝한 이미지를 전환시켜 줄 수 있는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
물론 새로운 면을 봐서 좋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도 계셨고, 그래도 김성령이란 배우는 뭔가 우아했으면 좋겠는데 너무 망가진 것 같다며 실망스럽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물론 내가 꼭 어떤 캐릭터의 작품을 고집하는 건 아니다. 단지 어떤 작품이 들어왔을 때, 여러 가지 조건이나 상황이 맞으면 하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못하는 것일 뿐이지.

시트콤에 출연하고 싶다는 의사 표시를 종종 했다.
우울한 연기를 하면 아무래도 일상적인 생활이 많이 우울하다. 그런데 애들 키우는 입장에서 엄마가 우울해 있으면 마음에 걸리지. 그런데 시트콤을 하면 평상시에도 기분이 업될 테니까 일단 나한테 좋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시트콤을 하고 싶다고 했던 거다. 그런데 <완벽한 이웃>이 시트콤은 아니더라도 어쨌든 (발랄한 연기를) 했잖아. 그런데 그것도 쉽지가 않더라. 그것도 연기니까 연구하고 공부해야 하는 거다. 사실 시트콤은 그냥 신경 안 쓰고 하는 건 줄 알았거든. 그냥 재미있기만 하면 되는 건 줄 알았더니 그것도 그게 다가 아니더라. 그래서 이것도 어렵다는 걸 알았지. 시트콤을 내가 너무 만만하게 봤다.(웃음)

사실 05년 말에 했던 연극 ‘아트’때도 비슷한 캐릭터였다.
‘아트’때문에 내가 <완벽한 이웃>을 할 수 있었던 거다. 왜냐면 <완벽한 이웃>감독님이 ‘아트’ 연극을 보러 오셨다가 거기서 망가지는 연기를 보고 내가 저런 역할을 해도 괜찮겠다는 걸 머릿속에 담아두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감독님이 <완벽한 이웃>시나리오를 낼 때, 정미희는 아예 나한테 맞춰놓고 만들었단다.(웃음) 그래서 전체 캐스팅 1순위, 첫 번째였다. 그건 아예 내가 할 역할이니까 예약해놓고 그걸 준비하고 있으라고, 그래서 그걸 하게 된 거지.

연극이 기회가 된 셈인데 만약 그 전에 그런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만약 그런 역할이 들어왔다면.
부담스러울 수 있었을 거다. 사실 ‘아트’할 때도 내 역할이 그 역할이 아니었다. 처음에 나한테 그 희곡이 들어왔을 때, 난 피부과 의사 역할이었다. 늘 TV에서 하던 돈 많은 피부과 의사 역할이었는데, 내가 연극에서조차 이런 역할을 해야 하나 싶더라. 그래서 연출자하고 제작자하고 얘기했지. (조)혜련이가 문방구 주인이었고 내가 피부과 의사였는데, 우리 한번 바꿔보자, 그랬더니 혜련이도 흔쾌히 좋다고, 자기도 늘 웃기기만 했는데 연극에서는 뭔가 진지하게 해보고 싶다, 그래서 역할을 싹 다 바꾼 거다. 대본연습 하던 와중에. 그랬더니 오히려 반응이 더 좋았다. 혜련이도 더 좋아했었고.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캐릭터를 역전시키는 재미가 컸나 보다.
상당히. 연극에서는 충분히 그런 게 가능하니까. 사실 연극도 지금 굉장히 하고 싶은데......

이번에 조재현 씨가 기획한 ‘연극열전2’에 출연 제의도 승낙했었다고 하던데.
내가 하도 대학로를 잘 나가니까 이제는 대학로 사람들이 내가 연극을 하고 싶어하는 걸 안다. 내가 가끔 대학로 나가서 만나는 분들한테 연극하고 싶다고 말하면 ‘성령씨, 연극 할 수 있어요?’ 막 이러는 거다. 그리고 난 ‘그럼요. 저 연극 할 수 있어요’ 이러고. 그런 얘기가 들려 들려 조재현 선배한테까지 들어가서, ‘너 연극하고 싶으면 이번에 내가 이런 프로젝트를 하는데 같이 참여할래?’ 그래서 ‘당연히 참여하죠!’ 그래서 참여하겠다고 약속을 한 거다. 그렇게 약속했는데 내가 지금 드라마 찍고 있고, 이런 것 때문에 작품이 결정나진 않았다. 그래서 솔직히 제작발표회도 참석하고 그렇게 했지만 하게 될지 못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저 팀에 끼어야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연극을 하는 게 중요하지, 굳이 지금 당장 저기에 끼는 게 중요한 건 아니라는 그런 생각도 들고. 왜냐면 이미 작품이 정해져 있고, 날짜가 정해져 있는 상황인데 연극은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지만 어쨌든 고려해서 할 거다. 꼭 하긴 할 거다.

기대가 된다.
그럼 보러 오세요.(웃음)

2007년은 정말 바빠 보였다.
진짜 바빴다. <완벽한 이웃>이 2월 달에 방송 편성 예정이었다. 그런데 알겠지만 방송 편성이 계속 바뀐다. 2월 달에 들어간다는 작품이 기약 없이 미뤄진 상태에서 아침드라마(<걱정하지 마!>) 섭외가 들어왔고 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완벽한 이웃>이 들어간다는 거다. 게다가 그 때 난 이미 <궁녀>를 찍고 있었고. <궁녀>와 미니시리즈와 일일 아침 드라마를 함께 준비했으니 삼사 개월 정도는 잠도 안 잤다고 보면 된다.

그 정도면 연기가 헷갈릴 정도 아닌가? 만약 하루에 세 촬영이 모두 들어가면 하루에 삼 인분의 인생을 살아야 했던 셈인데.(웃음)
나도 이건 큰일났다 싶었다. 그렇지만 나도 경험해보니까 알게 됐지만 사람이 닥치면 한다.(웃음) 그리고 다행인 건 캐릭터가 확실히 구분되는 덕분에 안 헷갈릴 수 있었고 오히려 더 좋았다. 너무 비슷한 역할이면 좀 그랬겠지만 확연하게 틀렸기 때문에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거 같다. 그리고 그때는 15년 만에 영화도 하고 미니시리즈에서 내가 좋아하는 역할이 들어왔고, 아침 드라마는 막 시작한다는 기대감에 부풀어있고, 그래서 사람들이 집에서 뭐 먹냐고, 어떻게 저렇게 건강할 수가 있냐고 그러더라. 어떤 선배님도 ’너 뭐 먹니? 아직도 안 쓰러졌니?’(웃음) 이럴 정도로 난 정말 기운이 났고 더 재미있게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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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했던 걸 한번에 이룬다는 것이 좋았나 보다.
물론 이제 그런 게 바람직하진 않다. 사람이 마음은 있어도 체력이 떨어지면 어쩔 수 없으니까. 내가 삼사 개월은 버텼지만 이게 육 개월이 넘어갔다면 뭔가 문제가 있었을 거다. 그렇게 여러 작품을 동시에 하는 게 좋은 건 아니지만 다만 내가 너무나 하고 싶었던 것이기 때문에 힘이 났나 보다.

사실 종종 작품에서 캐릭터를 위해 배우가 소비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배역을 채우는 게 중요할 뿐, 캐릭터를 염두에 둔 캐스팅은 아닌 경우가 있다. 그런데 확실히 캐릭터의 특성을 염두에 둔 이해서같은 역할은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배우에 대한 욕심이 있기 때문에. 사실 최근 촬영이 들어간 <일지매>란 드라마에서 내가 이준기 엄마다.(웃음) 처음엔 내가 어떻게 이준기 엄마야. 좀 너무한데, 그랬다가 충분히 이해하겠더라. 일지매가 그렇게 되기까지 과거로부터 단이라는 역할이 이야기 속 시발점의 중심에 딱 서있다. 초반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지. 그런 역할은 상관이 없다. 그리고 지금 찍는 <대왕 세종>에서도 김상경 씨와 박상민 씨가 내 아들로 나오는 윤영준 씨랑 비슷한 또래로 나오니까, 어떻게 보면, 어머, 김상경이 내 아들? 박상민이 내 아들? 이렇게 된다.(웃음) 물론 사극이니까 그런 게 가능하겠지. <주몽>에서 오연수 씨가 송일국 씨의 어머니를 해서 룰이 약간 깨지기도 했고. 그런데 촬영장에서 커다란 세 남자들이 나 앞에 딱 서는데, 내가 엄마라니 숨이 탁 막히면서 부담스럽지.(웃음) 이런 건 한 5년 뒤에나 해야 될 것 같기도 하고.(웃음)

아까 말한 것처럼 여러 작품을 하느라 그렇게 바빴는데 또 여러 편의 드라마를 동시에 하게 됐다.
9월 달까진 조금 정신 없이 바빴고, 10월, 11월에 조금 여유가 있었다. 12월부터는 <대왕 세종> 찍고 있고, <일지매>도 들어가고.

<뉴하트>에도 출연한다는 기사가 있던데.
<뉴하트>는 잘못된 거다. 그걸 다들 정정을 안 하네.

어쩐지 드라마 홈페이지를 가도 출연 정보를 찾아볼 수가 없더라. 그래서 이상했다.
물론 초반에 우리한테 제의가 있었지만 이미 드라마 두 편을 계약한 상태에서 도저히 시간이 안 될 것 같다고 했는데 거기에 출연한다는 기사가 이미 방송에 나갔더라. 그 뒤로 출연하냐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지. <뉴하트>가 반응이 좋은 건지, 어딜 가나 사람들한테 그 말을 들어서 그때마다, <뉴하트>는 아니거든요. 저 지금 다른 거 하고 있거든요.(웃음) 이렇게 맨날 얘기해야 한다. 지금 이응경 씨가 촬영하고 있는데 왜 그걸 정정하는 않는 거야. 다들 너무 게으른 거 아닌가?

나도 속았다.(웃음) 그런데 두 편의 드라마가 또 모두 사극이다.
공교롭게도 그렇게 됐다. 사극을 그냥 피하고 싶었는데 요즘은 워낙 사극 제작이 많으니까. 그런데 사실 <일지매>는 퓨전 사극이고, <대왕 세종>은 대하드라마다. 그리고 남자들 이야기가 많다 보니까 출연은 하지만 그렇게 씬이 많지는 않다.

어쨌든 사극에 많이 출연했던 만큼 일단 사극에 출연하게 되면 부담은 덜하겠다.
도움이 될 수 있겠지. 지금은 사극 현장에 가면 낯설지가 않다. 옛날에 왕비였나 봐.(웃음) 어떤 작품은 시작부터 부담을 갖게 되는데 사극은 기본적으로 내가 편하다. 사극의 어떤 감성들이 나하고 좀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어쨌든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드는 재미를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이게 발판이 돼서 난 반드시 영화계에서 다시 일어서야 된다.(웃음)

시나리오도 많이 들어오지 않나?
전혀…….<궁녀>인터뷰할 때도 주변 사람들이 김성령 씨 이야기를 많이 한다, 반응이 굉장히 좋더라,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오시겠다, 이러는데 도대체 그 시나리오가 다 어디에 있을까?(웃음) 시나리오는 안 들어오던데, 왜 그럴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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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기다리면 좋은 소식 있을 거다.
그럴까? 주변에 소문 좀 내 줘.(웃음) 심지어 내가 <대왕 세종>을 안 하려고 했었다. 영화가 들어올 것이다. 내가 시간을 빼놔야 된다. 이렇게 나 혼자 김칫국 마시면서.(웃음) <일지매>는 어차피 하기로 한 거니까 그냥 하고, 대신 드라마 두 편하면 또 영화 하기 힘드니까 시간을 빼놓으려 그랬는데 전혀 들어올 기미가 없어서 그냥 <대왕 세종>을 해야겠더라.(웃음)

그런데 이렇게 연기와 가정 생활을 함께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게다가 자제분도 둘이나 되는데.
사실 아직은 어려서, 이번에 큰애가 초등학교 들어간다. 유치원생들은 그다지 그렇게 신경 쓸 일이 없다. 유치원만 보내면 되니까. 이제부터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애들이 학교 다니면 엄마 역할도 크니까. 그래도 친정 어머니께서 집에서 도와주시고, 남편도 내가 일하는 걸 적극적으로 도와주기 때문에 내가 일하는 것에 있어서 그다지 부담되는 건 없다. 그리고 애들도 너무 예쁘게 잘 자라줘서.

집안에서 상당히 배려를 해주나 보다.
그런 거 없으면 자기 일하기 정말 쉽지가 않지. 여자는 어디든 그럴 거다. 요즘은 남자들도 같이 살림한다고 하지만 두 가지 일을 한다는 게 쉽지 않지. 난 주위에 도와주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큰 행운이지.

여전히 미스코리아 출신이라는 점이 많이 기억되는 거 같다. 88년도에 있었던 일인데. 물론 어린 친구들은 많이 모르겠지만.
30대 초반 분들까지는 다 알겠지. 서울올림픽이 열린 88년도에 미스코리아가 돼서 미스코리아 타이틀을 가지고 활동한 게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너무 많이 기억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그래서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더라.

그런데 그 당시에 비해서 지금은 미스코리아라는 타이틀의 사회적 지위가 많이 희석된 것 같다.
너무 볼거리가 많아졌기 때문이지. 그때만 해도 미스코리아 대회가 나라 행사처럼 온 가족이 다 보던 행사였으니까. 사실 어제가 미스코리아 송년회 행사의 날이었는데 이젠 나보고 회장을 맡으라는 거다. 회장할 때도 됐다고 그래서 그냥 됐거든, 아니라고 그랬지.(웃음) 근데 어제 보니까 올해 미스코리아 애들도 다 왔더라. 그런데 나도 누가 누군지 전혀 모르겠더라.

그 당시엔 미스코리아 출신들이 방송계로 많이 진출하기도 했다. 그런 게 용이했던 시절이기도 했고. 사실 본인이 연기자가 된 것도 그런 케이스라고 본다.
정말 아주 어렸을 때, 굳이 따져서 얘길 하자면 그런 기억은 난다. 어렸을 때 토요명화가 보통 밤 열 시 열한 시에 했는데 엄마가 일찍 자라고 그러면 이불 속에서 자는 척하고 몰래 영화를 봤다. 그리고 그 당시에 외국 영화를 많이 했는데 뭘 안다고 앤소니 퀸 같은 외국영화배우들의 이름을 다 외우고 다녔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내 소극적인 성격상, 단 한번도 내가 연기를 한다거나 사람들의 앞에 나서는 직업을 가질 거라고 생각도 안 했지. 물론 미스코리아 역시 더더욱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정말 하느님의 뜻인지, 미스코리아를 통해서 나한테 이런 기회를 주더라. MC든, 연기든, 미스코리아가 되면 그때 당시엔 자연스럽게 주어졌던 것이기 때문에 사실 미스코리아가 아니었으면 이런 기회가 없었겠지. 내 의지가 없었으니까. 주위 사람들은 내가 그런 걸 하는 것도 신기했지만, 하다가 그만 둘 것이다, 더군다나 결혼을 하면 안 할 것이다, 그랬는데 지금까지 하고 있는 걸 보면 너무 신기하다고 그러더라.(웃음) 내가 그다지 끼는 없지만 우리 아버지를 닮아서 성실하다.(웃음) 성실한 거 하나로 밀고 나가는 거 같다.

그런데 그런 소극적인 성격에 어떻게 미스코리아 대회를 나가게 된 건가? 그것도 지금보다도 보수적이었던 그 시절에.
사실 우리 어머니께서 생활력이 좀 강하시다. 그런데 내가 맨날 멍청하게 있으니까,(웃음) 어떻게 하면 뭔가 만들 수 있을까, 했던 거지. 그런데 내가 리포터 같은 일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아나운서 시험을 보자니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엄마 친구분 중에 그 당시 굉장히 유명한 연예인들이 의상 협찬을 많이 해 입었던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가 있었다. 그래서 엄마 생각에 그 분을 찾아가면 어떤 연줄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 분의 샵에 찾아 갔지. 그런데 그 분이 나를 보자마자, 너는 미스코리아야, 그 말씀을 첫 마디에 하시더라. 내가 명동까지 나가서 미용실을 다닐 형편은 아니었는데, 나 따라와, 하더니 셰리 미용실을 딱 데려간 거다. 그래서 셰리에 갔더니 원장님이 수영복을 입혀보고 오늘부터 훈련 들어가자고 하더라.(웃음) 그때 내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게 4월 28일인가가 미스 서울 예선이었는데 내가 4월 1일 날인가, 2일 날 거기 갔으니까 남들 몇 달 전부터 준비하는 대회를 20일 준비하고 나간 거다. 내가 만약 긴 시간이나 여유가 있었으면 고민하다가 안 나갔을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런데 정신 없이 막 하다 보니까 나가게 된 거지. 그 때 기도도 했었다. 하느님, 이게 내 길이 아니면 지금 당장 내가 이 길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라고. 그런데 그 당시에 셰리 미용실에서 출전했던 모든 후보들이 다 떨어지고 나만 붙은 거다. 그렇게 나만 단독 후보로 나갔는데 진이 된 거지. 셰리에서 첫 번째로 진이 나온 거에요. 그 전엔 다 마샬 미용실이었거든.(웃음) 그 다음부터 셰리가 줄곧 1위를 했다. 나 다음엔 오현경 씨가 됐고, 아무튼 내가 스타트였다.(웃음)

영화에서 보면 갑작스럽게 주인공의 인생이 확 달라지는 순간이 있지 않나. 마치 그런 것 같다.
그 때 당시엔 여러 가지로 큰 축복을 많이 받았던 거지. 그런데 이제 그렇게 한 순간에 너무 큰 것들이 다가오니까 자만했던 부분도 있었고. 그래서 내가 그러잖아. 누구는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데 나는 위에서부터 내려간다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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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시작했고, 그 뒤로 첫 데뷔작을 통해 신인상까지 휩쓸었으니까.
그래서 그런 일들이 쉽게 주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었지. 내가 너무 철이 없었다. 근데 이제 나이도 들고, 때로는 어떤 위기감들도 느꼈었고, 내 스스로 나 자신을 돌아보니까 너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게 된 시점이 있었다. 그 시점에서 내가 뭔가 정신을 차리게 됐지. 그래서 이젠 나름대로, 많이는 아니지만 배우로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공부도 하고, 조금씩 트레이닝도 받고 여러 가지로 노력하고 있다.

혹시 연기자가 아닌 가정 주부로서의 평범한 삶을 생각해본 적도 있었나?
사실 나는 그렇게 살려고 부산으로 시집을 간 거다. 결혼하고 그냥 살림하는 것도 괜찮다고, 그게 편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우스운 거다. 내가 한참 잘 나가서 내 의지대로 일을 그만 뒀으면 미련이 없을 텐데, 대체적으로 돌아가는 분위기가 나를 외면하는 분위기로 가더라. 미스코리아 후광이 없어지고,(웃음) 물론 이제 나도 노력을 안 한 부분도 있지만. 그랬을 때 뭔가 이렇게 마음속으로 솟는 오기 같은 게 생기더라. 이렇게 살아야 되는 게 너무 자존심이 상하고, 더 화가 나더라. 그래서 정말 이를 악물고 했던 작품이 <왕과 비>였다.

폐비 윤씨 역할을 했던?
맞다. 내가 그런 마음을 먹었을 때, 또 나의 마음을 아셨는지 그런 역할이 들어왔다.(웃음) 정말 폐비 윤씨는 무조건 열심히 했던 연기였다. 정말 연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지만 내가 지금도 그때만큼 이렇게 열심히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래서 그게 나한테 전환점이 됐다.

최근에 <왕과 나>에서도 폐비 윤씨가 나온다.
구혜선 씨가 하는?

본인이 했던 연기를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보는 것도 묘한 느낌이 들 것 같다. 게다가 구혜선 씨의 폐비 윤씨 캐릭터는 본인이 연기한 것과 다르게 묘사되기도 하고.
일단 연출자의 의도와 맞아야 되는 거지. 배우가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것도 있지만 전체적인 극의 흐름이란 게 있으니까. 내가 나 혼자만 새로운 캐릭터를 만든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니까. 나도 나름대로 그 당시에 나이 많이 드신 선배님들께서 그 전에도 폐비 윤씨의 역할은 누군가가 많이 했었지만 그 중에 네가 제일 잘 했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구혜선 씨가 그렇게 하니까 새롭지. 본인 이미지에 맞게 캐릭터를 새롭게 만든 거 같다. 만약 구혜선 씨가 그 선한 얼굴로 괜히 기존의 폐비 윤씨의 이미지를 살려내려고 눈 독하게 뜨고, 말 독하게 한다면 어울렸을까? 서로 마이너스지. 감독님이 정확하게 구혜선이라는 배우한테 맞는 캐릭터를 만들어주신 거지. 난 그런 시도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연출자들은 모험하지 않고 쉽게 가려고 하는 부분들이 많아서 그런 새로운 의도들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배우가 좋은 연출자를 만나는 것도 복이다.
하지만 좋은 연출자도 본인과 안 맞으면 안 된다. 좋은 배우도 자기하고 잘 맞는 연출자, 자기하고 잘 맞는 역할과 작품, 이렇게 잘 맞아 떨어졌을 때 좋은 거 같다.

경영대학원 마케팅과에 들어갔다고 들었는데.
1년 됐다. 이제 3학기 들어간다.

또 무슨 욕심이 생긴 건가? 하고 싶은 게 참 많다.
그러니까. 배우는 거에 대한 욕심이 정말 계속 생긴다. 나이 들어서 그런가 보다. 젊었을 때는 시간적 여유가 많다고 생각해서 너무 나태했었고, 이젠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급해져서.(웃음) 난 지금도 배우고 싶은 게 많다. 승마도 배우고 싶고, 춤도 배우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시간적 여유가 없다. 마케팅도 너무 재미있다. 그래서 너무 즐겁게 배우고 있다.

친분 있는 배우 분들 중에서 드라마에서만 뵐 수 있는 분들도 있을 텐데, 그런 분들 중에서도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 하시는 분들도 있지 않나?
당연하지. 다 하고 싶어하신다. 배우라면 난 꼭 TV만 한다, 난 꼭 영화만 한다, 이런 건 없는 거 같다. 어느 배우나 다 욕심이 있기 때문에 연극도 하고 싶고, 내가 빛이 날 수 있는 자리는 어디든 다 하고 싶지. 그런데 이제 본인한테 얼마나 잘 맞는지, 내가 얼마나 잘 살수 있는지, 그런 상황적인 면들을 고려하니까 딱 아귀가 안 맞아서 그런 거지. 영화 제의도 많이 받는 연기자도 있지만 상황이 늘 맞지가 않은 경우도 있고.

어쨌든 한해 동안 참 많은 시도를 했다. 드라마를 통해 이미지 변신도 했고, 오랜만에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고. 그리고 제각각 좋은 평가까지 얻었다. 한 해를 돌아보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사람은 늘 감사해야 하지만 그 감사함이 어떤 부담감이 되기도 한다. 내년엔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지. 그리고 영화는 또 왜 안 들어올까? <궁녀>가 반응 좋았다는데 왜 안 들어오는 거지?(웃음) 이런 마음도 있고. 물론 나는 천천히, 어차피 오래 할 거니까 급하게 생각 안 한다. 이러면서 집에 가서는 또 고민한다.(웃음)

지금까지 오래 기다린 만큼 좋은 일 많았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면 또 좋은 소식 있을 거다.
봄이 되면 좋은 소식이 오려나.(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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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

윤세아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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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혈의 누>로 데뷔 후, 2년 만에 영화로 돌아왔다.
드라마도 매력이 있지만 영화 작업이 너무 그리웠었다. 때마침 작품을 만나게 됐고 시나리오를 보고나니 너무나 하고 싶어졌다. 너무 반갑고 즐겁게 촬영했다.

그런데 그 두 편의 영화가 참 묘하게도, 무슨 말할지 이미 아는 표정이다.
내 운명이다. (웃음)

<혈의 누>와 <궁녀>는 국내에서 드문 장르 영화다. 그런데 그 두 편의 영화에 본인의 이름을 올린 것도 묘한 인연이다.
요즘 사람들이 사극에 매력을 느끼나 보더라. 그렇기 때문에 제작하시는 분들도 그 쪽에 관심을 많이 두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그런 시대에 태어난 거 같다. 팔자려니. (웃음)

<혈의 누> 당시 오디션이 치열했다던데, 200:1정도? 그 난관을 헤치고 영화에 출연했다.
그래서 많이 기뻤고, 많이 울었다. 가족들과 같이 파티도 했었다. (웃음)

그런데 막상 영화에서 출연 비중이 너무 작아서 실망하진 않았나?
그때는 함께 할 수 있다는 것과 현장을 배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이 컸다. 김대승 감독님을 비롯해서 차승원, 박용우, 지성, 이런 굉장한 선배님들과 작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한텐 배움의 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지금도 그 때 함께 할 수 있게 해주신 감독님한테 감사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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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에서는 출연 비중이 많이 늘었다. 게다가 <궁녀>는 비중의 차이를 떠나서 각각의 캐릭터를 확실히 드러낸다.
<궁녀>를 통해 감독님께서 의도하신 건 폐쇄된 공간 안에서 그녀들이 살아가는 삶을 조명하는 거였다. 역사적인 베일에 싸인 그녀들의 비밀스러운 삶을. 그래서 굉장히 다양한 캐릭터들이 나오는데도 그 캐릭터들마다 갖고 있는 임팩트를 다 살리고 싶어하셨다. 그래서 제목도 <궁녀>다. 그런 의도를 잘 계산하고 펼쳐낸 것 같아서, 그런 결과를 들었을 땐 참 기분이 좋다.

사실 <혈의 누>가 남성 중심의 영화였다면 <궁녀>는 여성 중심의 영화다. 그런 점에서 전작보다 촬영이 더 편했을 법하다.
되게 즐거웠다. 근데 굳이 여자들의 영화라고 생각 못했던 게 스텝들이 다 남자라서. (웃음) 그리고 사실 난 주로 희빈 처소 안에서 연기했기 때문에 여배우들과 부딪힐 일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굳이 여자들만의 영화라는 의미보다 내겐 여배우들과 이렇게 대거 출연해서 한 작품을 했다는 의미가 컸다. 회식 자리나 서로 현장에서 스쳐갈 때, 그분들과 얘기하고 사담을 나눌 때 스스럼없이 얘기 나누는 게 그냥 편하고 좋더라. 남자 배우들 같은 경우에는 행여나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고, 보이는 시선이 두려울 수도 있어서 조금 껄끄러웠을 것 같다. 너무나 편하게 얘기하고, 같은 복장으로 같은 공간에서 연기하니까 너무나 좋더라. 편안해서.

동선이 겹치지 않는 몇몇 배우들과는 촬영장에서 거의 못 만났겠다.
맞다. (임)정은 씨랑 (전)혜진 씨는 거의 못 봤다.

그렇게 보기 힘들어서야 경쟁 심리 같은 것도 느끼기 힘들었겠다.
난 정말 경쟁심 같은 건 없었다. 근데 난 누구랑 경쟁을 해야 했지? 중전인가? (웃음)

그런데 <혈의 누>는 적은 출연 분량에 비해서 고생스러운 씬이 많았다.
막 산을 달리면서 도망 다니고, 물에도 빠지고.

그에 반해서 <궁녀>는 촬영 분량은 늘었지만 오히려 편했겠다.
세트 안에서 찍었으니까 숨차거나 그럴 일은 별로 없었지. 그런데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내 주위의 상황들이 급변하는 게 많아서 내가 갖고 있어야 할 생각들이 굉장히 많았어야 했고, 그런 것들을 생각하기에 좀 버거웠다. 그래서 내게 계산력이 많이 필요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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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의 주인공은 궁녀일 것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궁녀가 아니었다.
궁녀 출신인데?

그래도 결과적으로 영화상에서는 궁녀가 아니니까.
궁 안의 여인들을 다 궁녀라고 부르는 게 아닌가? (웃음)

그렇게 따지면 맞겠다. (웃음) 사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후궁은 요염하거나 색기 있는 인물로 묘사되는데 희빈은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약하고 심성이 여리고.

그런 점에서는 전형적인 캐릭터라고 볼 수는 없다.
그래서 희빈이 더 하고 싶었다. 희빈은 표독스럽게 알려져 있는 전형적인 후궁이 아니었고, 극 안에서 가장 많은 변화를 겪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매력이 있었다. 게다가 난 그동안 너무 악역을 많이 해서 그런 역할에 굶주려 있기도 했다.

방금 말한 바대로 악역을 많이 했는데 사실 그 캐릭터들은 저마다 사연이 있는 인물이다.
나름대로 정당성이 좀 있는 거 같다. 내가 많이 고생했을 것 같은 얼굴인가 보지. (웃음) 한도 많고, 사연이 있을 것 같아 보이나 보다. 아마도 <프라하의 연인>에서 그런 걸 많이 부각시켜줘서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시는 건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론 깊이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고 싶다. 단순히 독해 보인다는 것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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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을 것 같다.
좀 힘들었다. 생활하고 연기는 별개인데, 그때는 그걸 함께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걸 극복하고 이겨내기가 힘들었다. 뭐, 시간이 약이라고 지나고 나니까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되더라. 이젠 연기적인 부분은 동떨어지게 보면서 지금은 나를 막 꾸짖으면서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프라하의 연인>이나 <궁녀>에서 보면 나약하거나 신경질적인 느낌이 많이 든다.
히스테리컬 하고.

그런데 실제 성격은 좀 반대적인 거 같다.
다들 그렇게 말한다. 발랄하다. 많이 털털한 편이다.

그럼 본래 성격과 반대되는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은 없었나?
사람은 모두 다양한 면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난 배우가 되고 싶은 사람이니까 평소에도 그런 걸 직간접적으로 많이 경험하고 느끼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다. 어쩌면 나한테 그런 면이 있으니까 그렇게 됐을지도 모르지. 갑자기 좀 두려운데, 진짜 내가 그럴까 봐. 혹시 나도 모르는 내가 있나? (웃음)

희빈은 궁녀들보다 권력에 가까운 여자다. 그런 면에서 가장 권력에 욕심을 낼만한 인물인데 오히려 궁녀들의 권력욕에 휘말리는 느낌이 든다.
희빈은 욕심이 있는 인물이 아니라 그냥 살아남으려는 인물이다. 그런데 주위에서 심상궁이 많이 찔러댔다. 이렇게 해야 된다, 저렇게 해야 된다, 궁 밖으로 나가면 넌 비구니 돼서 살아야 된다느니, 희빈은 그래서 그저 살아가기 위한 방법인 줄 알고 따랐는데 그게 어느 순간 너무 과하게 되고 틀어지면서 주위에서 그런 음모가 있었다는 걸 알았을 때 그 충격이 너무 컸던 거다. 그렇기 때문에 희빈이 더 강해질 수 있었던 거 같다.

희빈을 비롯한 <궁녀>의 여자들이 갈구한 게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이 허락되지 않아서 억압된 심리가 공포로 폭발한 것이 아닐까.
주상 하나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궁녀들의 삶이 사랑이라면 모자간의 모성애도 사랑이고, 대비마마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희빈도 사랑이 부족한 것이고,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 여성들에 대한 애환 같은 게 느껴지던가?
근데 애환이라기보다, 굉장히 치열함을 느꼈다. 내게 그곳은 전쟁터 같은 느낌이었다. 정말 경쟁 아닌 경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그들의 생과 직결되는 까닭이니까. 중전이 잘되기 시작하면 희빈은 멀어지고 그렇게 잊혀지기 시작하면 그건 곧 죽음이니까. 그렇게 생존과 연결돼있기 때문에 굉장히 치열한 싸움터 같은 느낌으로 내게 와 닿았다. 그 당시에 그런 사랑을 갈구한다거나 그런 것에 대해서 목말라 한다는 건 그냥 본능적으로 느낄지언정 지금의 시대를 바라봤을 때 느껴지는 그런 느낌은 아니겠지. 그게 너무나 당연시되고 그렇게 살아왔던 그녀들이기 때문에 지금의 잣대로 그때를 바라본다는 건 조금 괴리감이 있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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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으로 남성의 권력욕을 대리적으로 누리고자 하는 욕망일수도 있다. 하지만 희빈은 소극적이었다.
결국은 조정을 당하는 입장이었지 주체적인 입장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거짓말을 하다 보니까 계속 쌓여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이었는데 희빈은 그걸 바로잡으려고 노력을 했던 거지. 하지만 난 잘 모르겠다. 난 사랑과 욕구 같은 것들이 딱히 처음으로 떠오르진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자신이 느끼기에 <궁녀>는 어떤 영화인가?
<궁녀>는 새로운 역사다. 한번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궁녀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 <궁녀>는 정말 궁녀가 전부인 거 같다. 치열한 그녀들의 삶을 그린 영화다.

한편으로 남성 중심의 사회를 배경으로 한 여성영화란 점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 항상 사극에서 권력자 얘기만 하다 보니 주체가 왕일 수 밖에 없는데 우리 역사에서 여왕은 거의 없으니까 이야기가 남성 중심으로 흐를 수 밖에 없다. <궁녀>는 그 주위에서 그들을 수족처럼 보좌했던 궁녀들에 관한 이야기니까 정말 새로운 거지. 그래서 여성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힘이 느껴질 수 밖에 없는 거 같다.

비주류를 주류로 끌어올리는 느낌이라 반갑기도 했다.
앞으로 이런 작품이 있을까? 이렇게 여배우들이 많이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데. 아, 있구나, 핸드볼!

맞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도 여성을 주로 한 이야기다.
그럼 우린 이제 축구나 농구 같은 걸로. (웃음)

그 동안 악역을 많이 맡았는데 외모적인 탓도 있을 것 같다. 도시적이고 이지적인 느낌이랄까.
주변에서 날 예쁘게 꾸며주는 덕분이다. 맨날 머리도 해주시고, 예쁜 옷만 입혀주신 덕분인가보다. (웃음) 근데 난 안 그렇다. 털털하고, 편하게 입는 거 좋아한다. 내가 원래 구두를 많이 신다가 사극하다 보니까 구두를 신을 일이 없어서 운동화만 맨날 신고 다녔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구두를 신으니까 걸을 수가 없더라. (웃음) 편한 걸 좋아한다. 심플한 멋이 나는 스타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쉬폰 드레스나 실크 블라우스 같은 건 나한텐 솔직히 불편하다. 그런데 예쁘니까 자꾸 입게 되는 거 같다. 집에서 입을 일이 없으니까.

그런 외모 때문에 궁녀가 아닌 희빈이 된 것 아닐까?
솔직히 나이 때문인가 보다. (웃음) 궁녀는 좀 파릇파릇한 느낌의 캐스팅을 위주로 했다면 희빈은 좀 산전수전을 겪은 것처럼 보이는 캐릭터를 찾았나 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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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이에 비해 데뷔가 늦은 편이다.
늦었다고 얘기들을 좀 하시더라. 아쉬운 점도 있다. 젊었을 때 할 수 있는 고등학교 시절 연기 같은 걸 할 수 없다는 건 참 아쉽다. 내가 만약 교복 입는다면 아마 친구들이 뜯어말리겠지. 감금시킬지도 모른다. (웃음) 그냥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흘러온 대로 그냥 하다 보니까 난 흘러왔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무대에도 설 거다

무대라면 연극?
맞다. 무대는 나이를 두루두루 섭렵할 수 있어서 매력 있다. 노년기 연기도 무난하게 할 수 있다. 약속에 의해서 가기 때문에. 방송은 되게 리얼리티하게 가야 되니까 정말 늙어야 되고 그만큼 분장해야 되고. 근데 무대에서는 서른 중반까지는 괜찮지 않을까. 뭐 별로 후회는 없다.

연극 무대에 대한 계획이 있나 보다.
구체적으로 잡힌 건 없지만 막연히 해야겠다는 생각은 계속 하고 있다. 좋은 작품이 있으면 꼭 하고 싶고,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고 싶다.

연극에 대해서 많이 매력을 느끼나 보다.
학교 다닐 때도 했었고, 졸업하고 한 2년간 했었다. 연극 무대 때문에 연기를 시작하게 됐고 그랬기 때문에 하고 싶다.

연극 경력이 있는지는 사실 잘 몰랐다.
나중에 하면 꼭 보러 와라.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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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에서 회초리 맞는 연기도 실제로 몸으로 때웠다고 들었다. 정말 줄이 쫙쫙 가던데. (웃음)
정말 맞았다, 아파서 죽는 줄 알았지. 진짜 뼈가 시리더라. (웃음) 메이크업으로 어떻게 커버해보려 했더니 감독님께서 그냥 가자고 하시더라. 그런데 차라리 그 때 찍길 다행이었지, 이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금방 변색이 되더라. 정말 상한 고기처럼, 종아리가. (웃음)

듣는 바로는 감독님이 대신 하려고도 했는데 직접 연기했다고 들었다.
감독님한테 못 맡기겠더라. 나중에 평생 얘기를 들을 거 같아서. (웃음) 그냥 내가 맞고 깔끔하게 끝내야겠다 싶었지. 감독님 보시면 알겠지만 조근조근 말씀하셔도 에너지가 느껴진다는 거. (웃음) 안 하면 안되겠구나 싶었다.

어쩌면 <궁녀>에 캐스팅된 게 <혈의 누>의 경력이 어필된 덕분이기도 할 것 같다.
그 때 모습이 좀 강하게 남았다고 그러나, 물에 빠지면서 시작하는 모습을 인상 깊게 보셨던 거 같다. 후에 그 말씀도 하시더라.

<혈의 누>에서 시체 연기를 하기도 했는데, <궁녀>에서 월령을 연기한 서영희의 시체연기를 봤을 때 감회가 새롭지 않던가? 한편으로 <혈의 누>의 강소연 역할과도 유사하다. 극적인 비밀의 키가 되는 역할이니까.
그게 참 어렵다. 배우로서 죽어있는 연기 자체를 한다는 게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썩 기분이 좋지는 않다. (웃음) 그 때 생각이 많이 났다. 그래서 많이 힘들었을 거란 생각도 하면서 대단하단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유사하다고 느끼는 건 단편적인 느낌 같다. 단지 시체의 모습으로 많이 나오니까 전체적인 느낌이 그럴 수도 있지만 (서)영희의 월령은 캐릭터적으로 충분한 이유가 있다. 희빈을 도와주려고 자신의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를 선뜻 언니의 아이로 줄 수 없는 거다. 자기 뱃속으로 낳았기 때문에 모성애를 느끼게 되면서 그녀의 변화가 시작되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난 충분히 월령이란 캐릭터가 이번 영화에서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월령과 소연은 비교할 캐릭터는 아니라고 본다. 소연이는 진짜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의지하며 쫓겨 다니는 게 전부였다면 영희는 그 두 가지 모습(살아있는 모습과 죽어있는 모습) 중 살아 생전의 모습이 더 많이 보이는 캐릭터다. 그렇게 스토리를 장악하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많이 다르다.

많은 여배우들과 연기하면서 개인적으로 얻은 점도 많지 않았을까 싶다.
난 두 번째 작품이다. 다른 분들은 굉장히 많은 작품들을 했다. 난 그냥 배울 것 투성이였지. (웃음) 연기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어떻게 자기를 컨트롤하고,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는지, 심지어 난 그 분들의 인간성까지도 배울 점이었던 것 같다. 선생님들부터 동료 연기자들까지,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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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를 보면서 여자들도 참 무섭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거 다 왕이 시켜서 그런 거다. 왕은 남자잖아. (웃음) 정말 지켜내기 위한 노력이다. 실제로 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우리 영화에서 몇 개 추렸다고 하는데,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사람은 다 그런 거 같다. 물론 난 여자만 입 가볍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안에서 사람이 딱 뭉쳐서만 살 수 없잖아. 출패 얻어서 궁궐을 나갔다 오거나 왔다갔다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 사람들의 입을 막기 위해선 그런 과정들이 충분히 필요했다는 거지. 그리고 그런 거 없이 왕조를 지켜내고, 나라를 건국하고, 역사를 만드는 일은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경의로울 것까진 없지만 그런 노력은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막 잔인하다고만 볼 일은 아닌 거 같다.

그럼 여자로서 여자가 무섭다고 느껴본 적은 없나?
난 산 사람 별로 안 무서워 한다. (웃음)

그럼 죽은 사람은 무서워하나 보다. 귀신영화 같은 건 잘 못 보나?
못 본다. 근데 참 이상하게 공포물을 하게 된다.

<궁녀>는 어떻게 봤나?
막 이러면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봤다. 기쁨 2배, 공포 2배. (웃음)

스크린에서 나오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어떤가? 이제 두 번째 관람인데.
생소하지. 나한테는. 내가 내 모습을 봤을 때 느낌은 마치 내 목소리 녹음해서 들은 거랑 똑같이 어색하다. 아직까지는 익숙하지 않다. 그런데 어쩌겠어. 익숙해져야지. (웃음) 그런데 한번보고 두 번 보니까 더 괜찮더라. 세 번 보고 네 번 보면 더 나아지려나? (웃음)

이젠 좀 다른 장르의 작품에 출연하고 싶을 것 같다.
좀 밝고 명랑하고. 수더분하고 그런 여성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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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에 출연한 <얼마나 좋길래>에서는 심한 건 아니지만 좀 망가지기도 했다.
아니다. 좀 심했다. (웃음) 그때 된장녀란 타이틀을 얻었다. 난 된장녀가 싫다. 잠깐, 이 기사 ‘윤세아, 된장녀 싫다’ 이렇게 나오는 거 아냐? (웃음) 어쨌든 그런 껍데기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시대가 요구하는 별명 같은 걸 덮어쓰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살아있는 사람들, 바로 옆집에 살 것 같고 같이 생활하는 사람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 편안하게.

아직은 조연을 맡고 있지만 주연 배우로서의 욕심은 없나?
내가 감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나? 물론 비중이란 걸 따지지 않을 수는 없는 거 같다. 좀 더 큰 그릇이 되기 위해서, 좀 더 배포를 넓히기 위해서, 연기자에겐 자신감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활개칠 수 있는 장소가 충분히 마련되어야 하고 그런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게 나와 맞아떨어져야 된다. 정말 내가 수련이 많이 쌓이고 정말 내가 자신 있게 해낼 수 있는, 그런 버거움이 없을 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그런데 지금 억지로 욕심을 내면 오히려 평생 연기를 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웃음) 물론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만. 차근차근 한걸음씩 밟아나가는 게 나에게는 순리라고 생각한다. 워낙 또 데뷔가 늦었기 때문에 그런 욕심보단 꾸준히 연기 활동하면서 좀 더 다르게 표현하면서 다가가고 싶다.

강한 이미지의 장르 작품에 출연하거나 독한 내면의 캐릭터를 연기한 덕분에 캐스팅 제의도 편중될 것 같다.
내 캐릭터들은 남자를 이용하고, 자기의 사리사욕을 채우다가, 거기에 대해서 스스로 힘들어하고, 나중엔 반성하다가 끝났다. 그래서 그런 게 겹쳐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많았다. 그래서 <스마일 어게인>할 때는 좀 더 색기를 내보려고도 했다. 다른 면으로 표현하고 싶은데 그게 한계에 부딪히고 한정이 되다 보니까 어려운 거 같더라. 정말 특별한 이유가 다르지 않고 어떤 드라마마다 선한 인물과 악한 인물의 구조적 짜임새가 똑같았기 때문에 그게 나에게는 연기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게 어렵다. 배역이 싫다기보다 내가 소화할 수 있는 폭이 너무 작아지니까. 그런 게 참 어렵더라.

그렇다면 뭔가 달리 해보고 싶은 역이 있나?
옛날부터 가슴 아픈 사랑을 해보고 싶었다. (웃음) 남자친구랑 아니면 남편이라도. 근데 일일드라마에서 내 상대역이었던 도이성 씨가 나를 많이 예뻐해주는 역할이었다. 그래서 그때 많이 풀렸다. 그런데 그런 발랄하고 귀여운 사랑 말고 가슴 아픈 사랑도 해보고 싶다. 헌신적인 남자를 만나보고 싶다. 또 한번. (웃음)

가슴 시린 멜로는 여배우들에게 일종의 로망같기도 하다. 여자라면 한번쯤은 해보고 싶은.
평소에 이룰 수가 없으니까. (웃음)

내년이면 이십 대의 마지막 해인데 뭔가 특별히 이루고 싶은 건 없나?
연애하고 싶다. (웃음) 솔직히 난 서른이나 서른하나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십 대의 마지막이나 삼십 대의 마지막도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난 이십 대 때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건 다 했다. 연애도 해봤고 지금 연기도 하고 있고, 그래서 특별한 소망 같은 건 없고 그냥 또 한편의 영화로 이렇게 홍보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웃음) 항상 하루하루 똑같이 이렇게 연기하고 그렇게 할 수 있으면 그게 나한테는 전부인 거 같다. 너무 재미없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에 보탠다면 내 옆에 남자친구가 든든하게 있었으면 좋겠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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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알아보는 사람도 종종 있지 않나?
아무래도 좀 조심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못 알아본다. 난 워낙에 산책을 좋아해서 평소에 모자 푹 눌러쓰고 잘 걸어 다닌다. 그런데 잘 섞여서 다니면 잘 못 알아본다. 오히려 멋 부리고 선글라스 끼고 일부로 가리려고 하면 더 유심히 보더라. 심지어 모자를 벗겨보려 한 적도 있었다. (웃음) 오히려 그냥 안경 끼고 모자 쓰고 머리 하나로 둘둘 말아서 묶고 편하게 강아지 끌고 다니면 오히려 옆집 사는 사람처럼 그냥 지나가는 행인이 되는 거다. 그런 노하우를 배웠다. 가리지 말자. 나는 지극히 평범하니까. (웃음)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건 그전에 이미 연기자로서의 삶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연기를 맘먹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연극을 보고 연기라는 게 너무 하고 싶어졌다. 내가 예체능 쪽에 관심이 많긴 했다. 미술이나 음악이나 그런 쪽으로 관심이 많긴 했는데, 딱히 내가 정말 그렇게 가슴을 설렐 수 있는 일을 만나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공연 보고 나서 그런 가슴 떨림과 여운이 너무 짙게 남아서 마음을 먹고 부모님께 부탁을 드렸지. 이 길을 걷게 해달라고. 쉽게 허락해주시지는 않았는데 결국엔 나한테 양보하셨다. 처음에는 아는 척도 안 하시더니 지금은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시고 코치까지 해주신다. (웃음)

처음 <혈의 누>를 통해 카메라 앞에 섰을 때와 지금은 뭔가 달라진 걸 느끼나?
근데 그때나 지금이나 난 카메라를 그렇게 의식하지 않았던 거 같다. 안 한 게 아니라 그때는 못했지. (웃음) 카메라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어느 사이즈로 찍는지를 몰랐으니까. 근데 이젠 그건 파악이 되는데 그냥 공간만 의식이 되지, 카메라가 의식이 되거나 이런 건 없었던 거 같다. <혈의 누>할 때는 풀사이즈를 따던지, 뭘 하던지 전혀 상관없이 똑같이 연기했다. (웃음) 너무 멋몰랐었고 그땐 내가 시력이 안 좋아서 중간에 렌즈를 뺐다가 꼈다 이러느라 내 눈 찾기도 바빴다. (웃음)

존경할만한 배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나?
선생님들께서 그런 말씀들을 많이 하셨다. 누구나 노력해서 연기가 발전할 수 있고 잘 될 수 있지만 정말 자신한테 적역인 배역이 있다고. 그니까 어떤 작품의 어떤 분, 그게 다 틀린 거 같다. 그래서 누구 하나를 딱 찍어서 말할 순 없고 대부분의 선생님들께 배울 게 많은 거 같다. 물론 고두심 선생님이나 한혜숙 선생님 같은 분들이 정말 비슷해 보이는 드라마에서 그렇게 자신만의 연기를 쏟아내시는 거보면 참 존경스럽다. 다른 선생님들도 이루 말할 게 없다. 평생 연기하고 싶어서 그런지 그런 선생님들이 더 친근하고 좋게 느껴지나 보다. 꾸준히 활동하시는 분들이.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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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

박진희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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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바쁘겠네요.
조금 바쁘게 지낼 때도 있었던 거 같긴 한데, 뭐, 촬영할 때보다야 바쁘겠어요.

드디어 내일 <궁녀>가 개봉하는데 기분은 어때요?
사실 어제까지만 해도 긴장돼서 되게 떨리고 걱정도 컸던 거 같아요. 이상하게도 막상 오늘, 개봉 하루 전날이 되니까 극히 평온하네요. 내 자식이 내 손을 떠나서 완전히 독립을 했으니까 이제 와서 좌지우지 할 게 없기도 하고, 일단 열심히 만들었으니 이젠 편하게 그냥 관객들한테 맡겨야 되는 거지, 내가 불안해하거나 혹은 어떤 감정을 갖는다고 해서 그다지 제 신상에 도움이 되진 않더라고요. 딱 오늘이 되니까 평온해진 거 같아요.

오늘 몇 시간 뒤에 일반시사회 무대 인사도 있다고 들었는데, 바로 옆에 있는 극장에서.
예. 그런데 오늘 여기 와서 저렇게 걸려있는 걸 보니까요. (극장에 걸린 <궁녀> 대형 포스터를 가리키며) ‘나 참 많이 컸구나’란 생각이 들어요. 진짜 너 사람 됐다, 그런 느낌?

너무 겸손하신 거 아니에요? 그래도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잖아요?
아니요. 낯설어요.

그래요?
음, 어쩌면 낯선 느낌이라기보단, 약간……, (고심하다가) 아! 그런 거 같아! 너도 이제 이렇게 대단한 배우들과 같이 나란히 있을 때가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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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잘 웃는 편인 거 같아요. 씩씩해 보이는 느낌이랄까.
예. 그런 게 있나 봐요. 많이들 그렇게 말씀해주세요. 씩씩하고 건강해 보이는, 그런 이미지가 있다고. 너무 다행이에요. 사실 제가 추구하는 인간형도 그렇고, 이렇게 건강하고 씩씩한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나약하고, 그러니까 외모적으로 왜소한 게 아니라 성격 자체가 그런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뭐든지 도전하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닌 긍정적인 마인드를 좋아하지, 아, 나 못할 것 같아, 이런, 해보지도 않고! 그런 적극적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하여튼 건강하면서 긍정적인 이미지라는 건 적극적이고 뭔가 씩씩하게 해내려는 그런 의지가 있다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제 개인적으론 굉장히 듣기 좋아하는 말이에요.

그래서인지 천령이,
되게 씩씩해요?

너무 어울렸던 거 같아요.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잖아요. 천령의 적극적인 모습이 그냥 박진희 그 자체로 느껴지기도 했어요.
가끔씩 ‘이 영화를 선택하신 이유가 뭐에요?’라고 물으시는 분들이 있어요. 사실 그 질문의 의도는 ‘천령이 굉장히 진희씨랑 닮은 데가 많다. 바르고 정의로운 면이라든지 여러가지로 굉장히 박진희랑 비슷하다. 그런데 혹시 그런 천령의 캐릭터가 자신과 비슷하다는 점이 시나리오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주요한 요소로 작용하지 않았느냐’는 분들의 질문과 비슷한 건데요. 사실 천령은 이성적이긴 하지만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고는 감정에 치우쳐서 앞만 보고 달리는 스타일이잖아요. 사실 전 그렇지 않거든요. 그리고 한편으로 이제는 틀이 생긴 거 같아요. 박진희한테. 박진희라는, 사각의 액자 틀이 만들어진 거죠. 이제 박진희, 하면 좀 바르고 정직한 애라는 틀이 만들어져서 제가 그런 연기를 하면 사람들이 그런 이미지로 더 봐주고 그런 모습들이 이제 더 많이 부각된다고 할까요? 그래서 천령도 사실 그런 건 아닌데 굉장히 착하고 정의롭다는 이미지가 더 부각된 게 아닌가 싶어요.

올 해 들어서 예전보다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여요. 물론 <만남의 광장>은 개봉일이 미뤄진 케이스지만 결국 올해만 드라마 한편과 영화 두 편으로 관객 앞에 섰네요. 하지만 올해는 분명 박진희란 배우를 각인시키는 해가 되고 있는 것만 같아요. 좀 더 이미지가 구체화된 것 같다고 할까요?
<돌아와요 순애씨>가 잘되고, <쩐의 전쟁>이 잘 되면서 잘 돼서 참 좋다, 다행이다, 즐겁다는 것도 느꼈지만 다른 한편으론 잘 되는 게 이런 거구나란 생각을 했어요. 그 이유가 그런 거였어요. 나는 늘 내가 원하는 연기를 했었고, 난 변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내 다른 모습들을 봐주고 관심 있어하고, 그래서 어느 순간엔 이것저것도 아니었던 내 이미지를 찾아주기도 하고, 나한테 없었던 이미지를 찾아주기도 하고. 그래서, ‘아, 주목 받는다는 게 이런 거겠구나’, 그런 느낌이었어요, 사실은. 지금까지 제가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 온 것이 아니라 이젠 나의 이미지를 대중들께서 많이 봐주시는 거 같아요. 그런 게 비단 연기를 잘해서였다면 배우로서 행복하고 뿌듯했을 텐데 사실은 그건 조금 아닌 것 같아요. 그 동안 작품을 안 해왔던 건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와서 그런 말씀들을 해주시는 건 아마도 제가 최근에 출연한 작품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뭐랄까, 좋은 운을 탔다고 해야 하나? 그러다 보니 이제 관심들을 가져주시는 일부분에 속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심지어 난 옛날과 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내 모습이 새롭다고 느낀다거나, 아니면 이제야 박진희의 진정한 모습을 찾았다라고 느끼는 게 아닐까요?

사실 데뷔 초의 이미지는 여성스럽고 가녀린 이미지가 부각됐던 것 같아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점점 억척스러운 내면을 드러내는 듯 했어요. 그런 변화가 어쩌면 세월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럽게 진행된 것처럼 보였어요.
당연하죠. 질문의 의도를 제가 제대로 받아들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제가 어렸을 땐 여성적이고, 가녀리고, 조금 얇은 이미지였다면 지금은 굵고 억척스런 이미지가 됐죠. 그런데 제가 아직까지도 소녀처럼 가녀리게 나오면, 그건 보기 힘들거든요. (웃음) 저도 나이를 먹었고 저보다 가녀린 분들이 가녀린 연기 많이 하고 계시는데 이젠 가녀리지도 않은 제가, 난 아직도 가녀리고 싶다고 가녀린 연기를 한다면 보시는 분들이 그다지 즐거울 것 같진 않아요. 그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이미지를 변화시키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이제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변하고, 그러니까 캐릭터도 변하고, 이렇게 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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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예전의 모습들을 다시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참 연기적으로 순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뭐냐 하면 요즘은요, 감정이 때묻었나 봐요, 옛날에 비해서. 그래서 웬만큼 슬픈 영화를 봐도 그렇게 눈물이 안나요. 근데 옛날에는 조금만 슬퍼도 어떻게 그렇게 울었는지 몰라요? 그러니까 낙엽이 떼구르르 굴러가도 눈물이 났다는 것처럼, (웃음) 진짜 조금만 슬퍼도 너무 와 닿았다면 요즘엔 웬만큼 슬퍼도 눈물이 안 나는 거에요. 사실 제가 얼마 전에 부산영화제 개막작을 보면서 정말 엉엉 울었었거든요.

아, <집결호> 끝까지 보셨군요?
예. 근데 그게 사실 슬픈 영화는 아니잖아요. 근데 거기서 느꼈던 건 인간의 참혹함이란 거죠. 생과 사에 대한. 멜로, 사랑으로 슬픈 건 거기에 비하면 고급스러운 감정이죠. 이별해서 아프고, 그거에 비하면 너무나 고급스러운 감정이잖아요.

마치 밥을 먹는 것과 커피를 마시는 것의 차이처럼요.
그러니까요! 그건 진짜 먹고 살아야 되고 그런, 오늘 죽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이니까. 그건 너무 슬프잖아요, 그 사람들이 얼마나 처참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저렇게 언제 죽을지 모를 그 상황 속에서 자기 자신을 달래도 보고, 다그쳐도 보고, 안심시켜도 보고, 그랬던 거잖아요. 그런 극적인 상황을 맞닥뜨리니까 너무 슬픈 거에요. 근데 그걸 보면서 엉엉 울고 나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배우로서 때묻었구나, 짜증난다, 박진희, 너. 이런 생각을 했어요.

예? 왜요?
옛날 작품에서 연기하는 걸 보면, 별 것도 아닌 대사를 할 때도 막 울어요. 물론 연기적인 테크닉은 굉장히 부족했을지 모르겠지만 되게 감성적으로 마음껏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참 많이 틀려진 것 같고.

어쩌면 그게 때묻었다기보다 성숙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죠. 사실 옛날에는 삼각 관계 같은 걸 잘 이해 못했었어요. 물론 성격상도 그렇지만, ‘삼각 관계를 왜 만드는 거야? 왜?’ 그랬어요. 만약에 기자님과 어떤 여자분이 좋아해서 만나고 있는데, 제가 기자님을 좋아하게 됐다고 쳐봐요. 그럼 그걸 왜 고백하는 거야? 그러니까 노출된 삼각관계 말이에요. 예를 들어 내가 짝사랑이라면 그건 거기서 그만 두면 되는데, 품고 있지 않고 ‘왜 말해! 말해서 어쩌자는 거야!’ (웃음) 이런 식으로 그런 감정을 이해 못했었어요. 근데 요즘에는 달라졌죠. 그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암흑 속에 살고 있었을 그녀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만의 이유가 왜 없었겠어요. 그녀도 왜 고민을 안 했겠어요. 이거 말하면 저렇게 사랑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몹쓸 짓 하는 건데, 왜 생각을 안 했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 밖에 없었던 그녀만의 뭔가를 고민한다는 거죠, 지금은. 옛날엔 그건 너무 이기적이고 나쁜 거라고 치부했다면 지금은 그건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고 그냥 그녀의 감정에 충실했던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걸 우리가 옳거나 그르다고 말할 순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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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시선에 변화가 생긴 것 같네요.
맞아요. 옛날에는 순수해서 직선적으로 감정을 받아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슬픈 건 슬프게, 행복한 건 행복하게, 이런 순수한 마음으로 감정을 받아들였다면 지금은 행복하지만 슬픈 거, 슬프지만 행복한 거, 이런 걸 굉장히 찾게 되는 거 같아요. 외모적으로도 지금은 참 많이 사람이 됐어요. (웃음)

아니, 그럼 그전엔 사람이 아니었나요? (웃음)
예전에는 볼 살도 너무 통통했고.

에이~, 옛날에도 충분히 예뻤어요.
아이구~! 그냥 뭐 칭찬이시겠죠. (웃음)

아니에요. 알고 보면 박진희 씨 좋아하는 남자 팬들이 얼마나 많았는데요. 솔직히 전 박진희 씨가 낯설지 않은 이유가 하나 있어요.
뭔데요?

고등학교 때 1년 동안 같이 앉게 된 친한 친구 녀석이 항상 옆에서 박진희 씨 노래를 불렀거든요.
(웃음) 아, 정말이요?

그래서 오늘 그 친구한테 박진희 씨 인터뷰한다고 문자도 보냈었죠. 그랬더니 그 친구가 난 직접 손잡아 볼일도 없을 테니 싸인 이라도 받아주라는 간곡한 부탁을 하나 챙겨왔죠.
당연히 해드려야죠! (웃음) 사실 그런 게 있는 거 같아요. 저도 저랑 특별한 인연은 없지만 저랑 제일 절친한 친구가 너무나 좋아해서 맨날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있어요. 걔가 성시경 씨를 좋아해요. 그런데 성시경 씨가 라디오 DJ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무슨 일만 있으면 거기 나갈 일 없는지 물어봐요. 꼭 자기를 위해서 한번만 나가달라고. 이번에 <궁녀>할 때도 그랬어요. (웃음) 그런데 얼마 전에 TV를 보는데 야심만만에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저랑 별 관계도 없고 한번도 만난 적도 없는데 관심 있게 보게 돼요. 그러니까 그런 게 있나 봐요. 내 친구가 너무 좋아하면 난 관심이 없어도 그냥 유심히 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괜히 좀 나랑 마치 인연이 있는 듯한 느낌 있죠? (웃음) 그런 거 같아요.

그래서 지금도 왠지 만나야 될 사람을 만난 것 같아요. (웃음)
그러게. (웃음) 나도 어제 야심만만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게 성시경 씨가 무슨 말을 하면 유심히 듣고,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보는 거에요. 그리고 그에 대한 토론을 해요. 남자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여자들끼린 그래요. (웃음) 야심만만 끝나고 그 친구랑 통화하는 거에요. 약간 선수 아냐? 이러면서. (웃음) 아무튼 그러면 남 같지 않은 그런 게 있는 거 같아요.

그래요. 참 남 같지가 않아요. (웃음)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죠. (웃음) 전 <궁녀>가 여성영화라고 생각해요. 시대극이면서 전문 장르지만 그전에 눈에 들어오는 건 여자들이었거든요. 그렇게 스크린의 전면을 여자들이 뒤덮어버리는 자체만으로 뭔가 이색적이었어요.
제가 예전에 류승완 감독님이 전도연 씨와 이혜영 씨와 했던 <피도 눈물도 없이>를 보면서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에서 여자들이 만든 액션영화인 거잖아요. 너무 멋있다고, 완전 브라보를 외쳤었거든요. 그러니까 그건 관객의 입장으로도 보겠지만 제가 여자고, 여배우이기도 하니까. 사실 제가 항상 아이러니 하다고 느끼는 게 한국 관객들 중 여자도 많지 않나요? 20대 초반, 20대 후반, 30대 초반까지. 그런데 참 여자영화가 없어요. 그래서 여자영화가 나오면 반가워요. 왜 관객들은 여자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여자 영화가 잘 안 나오고, 여자 영화가 잘되는 경우도 별로 없죠? 전 왜일까가 아직도 굉장히 궁금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린 여자끼리 만든 영화라는 자부심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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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까지 여자분이셨으니까.
우리가 처음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모였을 때 여자들이 쫙 모였죠! ‘우리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으면 좋겠어?’ 서로 질문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입을 모아 했던 말이 있었죠. 궁녀는 베일에 가려져 있고 중심이 아닌 겉도는 이미지니까 우리가 그것을 중심으로 끌어왔을 때, 기존 관객들이 가질 수 있는, 혹은 궁녀에 대한 어떤 조그만 정보라도 가진 사람들에게 그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자. 그렇다면 그게 뭘까? 그래서 여자 영화지만 남자 영화만큼 힘있는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저희의 의지가 결론으로 내려졌죠. 너무나 다행히도, 물론 감독님께서 연출을 너무나 잘 해주셨기 때문이겠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까 정말 힘있는 영화가 나온 것 같았어요. 남자 영화 못지 않게, 아주 강렬한 힘이 있는 영화가 나온 것 같아서 기분 좋더라고요.

최근 여성성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들은 단순히 여성을 섹스어필의 소재로 소비하는 방식에 편중됐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궁녀>는 한복과 공포로 치장했음에도 여성의 날카로운 내면을 잘 묘사했단 생각이 들어서 흥미로웠어요.
사실 저희가 의도한 부분들이 굉장히 많죠. 배우들은 연기하면서 그런 부분들을 염두에 두지 못하면 연기할 수 없어요. 그래서 그런 내면들에 대한 고민도 굉장히 많이 했지만, 장르가 장르이다 보니까 관객들이 그것까진 알아주긴 굉장히 힘들 것 같고, 그건 어쩌면 배우의 욕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마 관객 분들은 천령의 내면, 혹은 여자들의 내면까지 생각 못하고 그저 ‘저 영화 잔인해, 저 영화 무서워’ 이런 것만 보지 않으실까 싶어요. 물론 아무래도 기자님이시니까 그런 내면까지 봐주신 게 아닐까…(웃음) 사실 배우의 욕심으로는 일반 관객도 그런 내면을 바라봐주셨으면 좋겠죠, 그런 욕심이 있어요. 음……만약 제 욕심만큼 관객들이 저희 영화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봐준다면 뭐, 천만만 보겠어요? 4천만 국민께서 다 보시겠죠. (웃음)

또 흥미로웠던 건 공포가 돌출되는 근원 지점이 사랑이란 감정이 억압된 여자의 내면에서 발생한 히스테리란 점이였어요. 그래서 전 궁녀가 결국 여자들의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잠깐, 아니, 저희 연출부셨나요. 혹시? (웃음) 저희 시나리오를 읽었어요?

시나리오는 아쉽지만 못 봤습니다. (웃음)
너무 영화에 대해서 꿰차고 계시는 것 같은데……(웃음) 예. 맞아요. 사실은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여자들의 얘기죠. 저희 영화에서 제일 불쌍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전)혜진이가 맡았던, 마지막에 거의 미쳐가는 정열이. 그리고 그나마 가장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여자는 희빈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 이유는 희빈은 어찌됐건 왕의 성은을 입고 왕의 사랑을 받은 셈이니까요. 물론 자신의 어떤 욕망을 채우지 못하고 결국 월령의 원혼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았지만, 천령도 자신의 사랑에 있어서 아이까지 낳고 그 사랑을 이루지 못했단 말이에요. 월령도 마찬가지죠. 대리인으로 사랑을 받았을 뿐이지, 자신의 사랑을 이룬 건 아니죠. 옥진이마저도 결국은 자기가 너무나 사랑하던 남자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그 사람을 그리워하다가 생을 마감하잖아요. 점 에로틱하게. (웃음) 근데 정열이 같은 경우는 남자인 누군가에게 사랑 받아보지도 못하고, 그걸 상상하고 질투만하다가 그냥 사그라진 여인이란 말이에요. 그니까 사실 누구 하나 완벽한 사랑을 충족 받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들인 셈이죠. 그런 것들의 시발(始發)은 궁녀라는 것 자체, 즉 그 당시 궁녀가 갇혀 지내고 외로워 하면서 남자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단 점이죠. 물론 <궁녀>에서는 어떻게 보면 남자들이 마치 여자들을 농락하고 버린 것처럼만 표현했지만 그건 영화적인 요소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하고요. 기본적으로 옛날의 궁녀들이 농락당했는지, 안 당했는지를 떠나서 늘 남자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을 지닌, 굉장히 외로웠을 거란 말이죠. 거기서 시작된 실마리가 저희 영화에선 더욱 확대되고 그렇게 표현이 된 거죠. 그래서 궁녀라는 여성 자체가 굉장히 외롭고, 늘 이성에 관한, 사랑에 대해서 동경하고 열망하는 부분이 있는 사람들이지 않았을까라는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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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천령이 고문을 당하고 나와서 모든 상황을 깨닫게 됐을 때 그냥 이젠 다 묻어두겠다는 뉘앙스가 느껴졌어요. 그건 어쩌면 자신은 이루지 못했지만 사랑을 이룬 다른 여성에 대한 동병상련이거나 대리만족이 아닐까 싶었죠.
음, 연출부를 하셨어야 했어. (웃음) 그렇죠. 사실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사회 초년생으로 열정만 가지고 부딪히고 깨지면서 일을 열심히 하다가 어느 순간, 어떤 타이밍이 되면 지금까지 어렵게 적응하던 사회에 잘 적응하게 되고, 순응하고, 합류하게 되는 지점이 있잖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천령이 굉장히 큰 사건을 통해서 자신이 이루지 못했지만 더 큰 무언가를 이루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거기에 순응하게 되는 그런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아니,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제가 활동할 때 고등학생이었던 거네요?

아, 네. 그렇죠. (웃음)
(윤)세아가 저랑 한 살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 처음 만나서 밥 먹는 자리에서, ‘진희 선배, 진희 선배’ 이러면서 존댓말 하는 거에요. 그래서 나랑 한 살 차이밖에 안 나니까 말 편하게 하라고 그랬더니, 세아는 자기가 어렸을 때부터 TV에서 봐온 사람이라서 나이가 훨씬 더 많은 줄 알았대요. 그래서 굉장히 선배라고 생각을 했던 거죠. 그런데 자기랑 나랑 한 살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 무슨 어렸을 때부터 TV에서 봐, 그러니까 열아홉 살 때 내가 스무 살이었던 건데, 자기가 어렸을 때 나를 얼마나 봤겠어요. 심지어 전 스무 살 때 데뷔했으니까 최소한 세아가 날 TV에서 보기 시작한 건 그녀가 열아홉, 내가 스무 살 때란 말이에요. 그녀가 어린 나이도 아니었고. 근데 이미지가 그런 게 있나 봐요. 굉장히 어렸을 때부터 활동한 거 같고, 봐온 것 같은 이미지. 전 그래서 아까 그렇게 말씀하실 때 그런 느낌으로 생각했던 거에요. 진정한 고등학생이 아니라 그냥 그런 느낌으로 말한 거라고, 그런데 진짜 고등학생 때였네요.

진정한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웃음)
(힘빠진 목소리로)이럴 때는요. 굉장히 세월이 빠르다라는 걸 느껴요. (웃음) 아니, 왜냐면 그런 거 있잖아요. 옛날에는 촬영장에 가도, 다 오빠들이었어요. 진짜, 인터뷰할 때도 저보다 나이 많으신 분들이었고.

기자 분들도 다.
예! 그래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내가 얘기하는 게 맞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고. 근데 요즘은 거의 동년배들이 많아요. 촬영장에 나가도 뭐 이렇게, 스물 여덟, 아홉, 서른, 서른 하나, 서른 둘, 이 나이대가 딱 많은 거 같아요. 아니면 아예 그보다 어린, 이제 막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이거나.

막내라고 부르는.
예. 그래서 촬영장에 나가면 이제 다 같이 늙어간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나이대라서 너무 편한 거에요. (웃음) 얘기하기도 편하고, 삐쳐도 옛날처럼 소심하게 고민하는 게 아니라 ‘소주 한잔 먹고 풀죠’ 해버리던지, ‘너 왜 그래~’ 이러면서 풀고. 옛날보단 굉장히 편안한 상황이 됐죠.

어쩐지 <궁녀>를 찍으면서 장녀 역할을 했을 것 같았어요. 어느 새 후배들을 아래 두고 있는 선배가 됐네요.
(짧은 한숨을 쉬면서)사실은 그런 생각을 잘 안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선배로서 권위 의식을 가지면 정말 안되겠다라는 생각. 제가 후배일 때 굉장히 권위 있는 선배님들을 보며 느꼈던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았어요. 그게 권위로 느껴지면 단점이고, 그게 그분의 아우라로 느껴지면 장점인 거죠. 근데 전 단점을 훨씬 더 많이 느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저도 선배라는 이름 하에 권위를 누리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굉장히 위험한 거 같아요. 권위를 부리기 시작하면 그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명명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나보다 어린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으면 나는 내 시대의 것밖에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랑 동료가 되고 친구가 돼야 어린 사람들의 문화나 생각을 흡수할 수 있죠. 문화적인 일을 한다는 내가 어린 사람들의 생각을 흡수하지 못하면 그냥 나는 내가 태어난 78년생의 사람으로만 살고 있는 거니까. 그래서 선배라는 생각을 잘 안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만약 선배라고 생각해야겠다고 마음먹을 때는 정말 좋은 선배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 그러니까 모범이 되는 선배가 됐으면 좋겠어요. 뭐가 됐던지 간에. 저 선배는 연기를 잘 하는 배우라서 현장에서도 굉장히 놀면서 하나 보다는 말보단, 저 선배는 내가 보기엔 재능보다는 노력을 더 많이 하는 스타일 같다는 말을 후배들한테 듣고 싶어요. 현장에서 내 연기가 늘 부족하다고 느껴서 항상 뭔가 연구하는 모습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그들도 그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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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다는 인상이 느껴지네요. 그런데 그게 박진희 씨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로서 평범함은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는데 박진희란 배우에겐 장점으로 작용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물론 평범하지 않은 외모덕분인지도 모르지만.
아니에요. 외모도 굉장히 평범해요. (웃음) 요즘은 모든 게, 모든 상황에 양면이 있다는 생각을 해요. 정말 그 한 면만 가지고 있는 건 없는 거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생각을 하느냐, 어떤 마인드를 갖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거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평범하다는 건 사실 배우로서는 자랑거리는 아닐 수도 있어요. 하지만 단점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관객들이 조금 더 자연스럽게 같이 호응할 수 있고, 호흡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는 배우라고 느낄 수 있으니까. 아니면 제가 다른 여배우처럼 완전히 예쁘게 생겼다거나 정말 특별한 이미지를 지녀서 어떤 역할은 정말 박진희가 해야 된다는 말을 듣지는 못해도, 캐릭터 자체가 무난하다 보니 어떤 역할을 해도 어울리지 않냐는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러니까 그건 다 장단점이 있어서 어떤 장점을 좀 더 부각시키느냐가 중요한 거 같아요. 너무 예쁘게 생긴 여배우들은 사실 외모로는 지적할 게 없으니까 연기를 못 한다는 둥, 성격이 이상하다는 둥, 이런 지적을 받는다면, 우리같이 평범하게 생긴 사람들은 평범하게 생겼으니까 사실 그다지 지적 받을 게 없는 거 같아요. (웃음) 뭐, 이렇게 노멀(normal)하니까.

개인적인 생각에 평범한 외모는 아닌 거 같은데요. 서구적인 외모라고 생각하는데.
얼마 전에 저한테 도시적인 이미지가 있다는 말을 듣고 굉장히 깜짝 놀랬어요. 저는 도시형 인간이 아니거든요~! (웃음) 저는 도시가 너무 싫고, 커리어 우먼 이런 말 듣는 건 싫어요. 반짝반짝 거리는 게 싫고, 직선적인 것도 싫어요. 도시는 약간 그런 느낌이잖아요. 전 그냥 꾸불꾸불한 게 좋고, 나무가 좋고요, 그냥 설렁설렁 사는 게 좋아요. 깝깝하고 각박하고, 빠른 거! 전 빠른 도시가 너무 싫어요. 근데 저보고 도시적이라고 해서 저는 깜짝 놀랬죠. 그리고 저는 심지어 생긴 것도 이렇잖아요, 눈이 정말 큰 것도 아니고, 코도 이렇게 (손가락을 코 주변에 세우면서) 오똑한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진짜 서구적, 아니면 도시적으로 생긴 분들은 고소영 씨나 한가인 씨 같은 분들 아닌가요? 그런 분들은 코도 정말이지, 와아~,(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그렇잖아요. 저는 그렇지 않죠. (웃음)

이런 말 조심해야 되요. ‘박진희, 난 솔직히 못생겼다, 파문!’ 이럴지도 몰라요. (웃음)
그 누구시더라, 저기 <M>에 나오시는 저분이, (극장에 있는 강동원 사진을 가리키며) ‘제가 뭐가 잘 생겼어요.’ 이 말해서 굉장히 욕 먹었던 거처럼요? 에이~, (손사래 치며) 제가 무슨. (웃음)

<궁녀>에서 처음으로 극의 흐름에 중심이 되는 꼭지점, 즉 원톱의 위치에서 연기를 했잖아요. 이런 점도 본인에게 어떤 작용을 하지 않았을까요?
예. (잠시 생각하다가) 촬영 전에 시나리오 작업하고, 연습할 때는 그런 게 사실 부담으로 왔어요. 잘 해야겠다, 관객들을 2시간 동안 빨아들일 수 있는 에너지를 갖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라고 스스로 조심하려고 했고 실제로 그랬던 게 있었죠. 근데 촬영을 들어가면서 그런 부담감에 휩싸이면 배가 산으로 가기 마련인 거 같아요. 내 자신에게 집중해도 모자란 연기를 가지고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 영화는 어떻게 나올까라는 생각을 하면 정말 배가 산으로 가거든요. 촬영할 때는 그런 생각들을 굉장히 배제했었고, 거의 하지 않았어요. 솔직히 이젠 결과물이 나왔으니까 요즘에서야 정말 내 연기의 장점과 단점이 어떤 부분인지, 또 어떤 느낌으로 연기를 했는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건 촬영할 때보단 촬영하기 전이나 촬영이 끝난 후, 지금에서야 훨씬 더 크게 와 닿죠. 시작지점에선 내가 원톱으로 한 이 영화가 과연 어떻게 시작될까라는 생각을 했다면, 끝나고 나선 이제 결과물이 나왔고, 그 결과물이 평가 받아야 되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책임감이나 부담감, 의무감이 훨씬 더 커진 거 같아요.

한편으로 박진희라는 배우가 동적인 에너지를 지닌 배우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저런 활동적인 배우가 뭔가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많았을 텐데 너무 늦게 기회를 찾은 게 아닐까 싶기도 했어요.
제가 사실 보여주고 싶은 건 많은데 보여줄 게 없어요. (웃음) 보여줄 게 많은 배우였으면 좋겠는데 그다지 보여줄 게 많지 않아서 참 고민이죠. 그래서 제 스스로 아직 박진희란 배우는 참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보여줄 것이 없기 때문에 이걸 한꺼번에 보여주면 사람들이 질려 할 것이다라고. 그러니까 계속 연마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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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요? 활동시기마다 약간씩 텀(term)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학업에 열심이라고 듣기도 했지만, 어떤 연기적인 재충전의 시기를 스스로 유지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그런 거 같아요. 작품을 끊임없이 하면서 연기에 대한 감을 늘 잃지 않으려는 배우들이 있는가 하면, 한 작품을 하고 나서 재충전을 가졌다가 다시 한 작품을 하는 배우들이 있는 거 같아요. 전 사실 후자 쪽이거든요. 그러니까 썼던 에너지를 다시 충전해서 쓰고, 작품을 하면 좀 쉬면서 뭔가 다시 정돈하고 시작하는 스타일인 거 같아요.

그러면 올 해는 일단 에너지를 쓰는 해네요.
굉장히 많이 썼죠. 사실 <만남의 광장>은 작년에 찍었는데 개봉이 늦어졌던 영화니까 괜찮지만, <쩐의 전쟁>이랑 <궁녀>를 하면서 사실 에너지를 굉장히 많이 소진했었죠. 당분간은 조금 쉬게 될 것 같아요.

만약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궁녀>를 보면서 감정이입이 될 것도 같아요. 동성끼리 폐쇄적인 집단을 형성하니까 그 안에서도 계급적인 알력이 생기고, 그런 어떤 미묘한 집단적 동질감이 많이 느껴졌거든요. 그걸 여성의 입장에서 보니까 재미있었어요.
혹시 굉장히 여성적인 성향이 많다는 말 듣지 않으세요?

저요? 일단 세심하다는 이야긴 종종 듣긴 하는데, 남자를 사랑하는 정도까진 아니에요. (웃음)
사실 저는 지금까지 <궁녀>를 본 남자분들 중에 이렇게 여성적인 시각을 잘 이해하시는 분들이 되게 드물다고 느꼈거든요. 맞아요. 그런 게 있죠. 그러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그 작은 공간 속에 있는 여자들끼리 서로 암투를 벌이고 그러잖아요. 권력싸움을 하면서. 그래서 우리 배우들끼리 <궁녀>는 사극판 여성 느와르다, 막 이런 얘기도 하고 그랬었거든요. 사실은 우리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 중 한가지가 그건데요. 어떤 사회도 다르지 않다는 거죠. 궁궐 안에서 궁녀들이 작은 소단위의 집단으로 모이니까 마찬가지로 계급이 생기고, 자기들끼리 아웅다웅하는 모습들이 보이잖아요. 그건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죠? 넓게 보면 이 사회도 마찬가지잖아요. 결국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우리가 속해 있는 어느 공동체나 다르지 않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궁녀>를 통해서.

그래서 사실은 귀신보다 여자가 더 무섭다고 생각했었어요. (웃음)
(박수 치면서)그렇죠! (웃음)

확실히 남자의 무서움과 여자의 무서움은 다른 거 같아요. 남자의 무기는 주먹이지만 여자의 무기는 손톱이니까. 눈에 띠지 않는 날카로움이나 사나움 같은 게 많이 느껴졌어요.
그렇죠.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는데~!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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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는 사극으로서도 처음이었잖아요. 어땠어요?
사실 사극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있었어요. 말투도 사극 톤으로 써야 되고, 그래서 드라마 같은 경우도 사극이 싫었던 건 아닌데, 굉장히 두려움을 느껴서 선택하는데 있어 조심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궁녀>는 워낙 독특한 소재고, 또 제가 너무 좋아하는 영화사 아침의 정승혜 대표님께서 저를 추천해주셨기 때문에, 그리고 감독님을 만나 뵙고 확신했어요. 정말 이 영화를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보여주자고 하시는 게 너무나 확실했기 때문에 <궁녀>를 확신하고 정할 수가 있었죠.

그런 면에서 보면 10년 차 배우의 영화로서 <궁녀>는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도요. 그래서 참 복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배우를 10년 하면서 10번째 영화에서 원톱을 했고, 또 지금 시기도 나쁘지 않은 거 같아요. 지금 극장에 걸리는 영화들이 장르가 다 틀리잖아요. 그래서 정말로 나쁘지 않다, 그리고 복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죠.

그럼 10년 뒤의 자신을 생각해본다면 어떨까요?
모르겠어요. 솔직히 그때까지 아직 연기를 하고 있을지는, 제 바람으로는 하고 있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어쨌든 연기를 하고 있을지 안하고 있을진 잘 모르겠지만, 그때도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내가 생각하는 나의 장점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제 기본적인 삶의 모토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거든요? 그런 생각들을 버리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그걸 지키려고 스스로도 굉장히 노력해야 하지만 그에 큰 상처를 주는 어떤 일이 없어야겠죠.

그렇다면 여배우로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거라고 생각하세요?
굉장히 고단한 일인 거 같아요. 하지만 고단한 일이면서 행복한 일이죠. 근데 저는 긍정적인 사람이니까 아주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아주 행복하고, 굉장히 많이 만족하고 있어요. 물론 힘들 때도 있죠. 하지만 어떤 사람들이 안 힘들겠어요. 다 힘들죠. 물론 정말 못 먹고 못 입는 사람과 좀 잘입고 잘 먹는 사람과의 행복을 단순히 비교할 순 없겠지만, 아주 월등하게 차이가 있지 않은 이상, 기본적으로 사는 사람을 비교하면 힘든 것 자체는 다 마찬가지죠. 행복이란 건 자기만의 기준에서 정해지는 거잖아요. 근데 힘든 건 늘 내가 제일 힘들게 느껴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건 수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힘든 걸 느끼는 내 자신이 제일 힘든 거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여배우도 힘들지만, 여대생도 힘들고, 아주머니도 힘들고, 우리가 다 힘들다는 거죠. 누구나 쉬운 삶을 살겠어요? 그래서 누구나 다 힘들지만 저는 사랑 받는 직업을 하며 사니까 나는 굉장히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그렇게 씩씩하게.
그럼요! (웃음) 아! 그거 해드려야죠! 친구분 싸인!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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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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