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훈의 <타짜>가 해운대 앞바다였다면 강형철의 <타짜-신의 손>은 캐리비안 베이다. 인공 파도에 휩쓸리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지만 결국 인공 파도는 인공 파도다. 애초에 기획되지 않았던 속편이란 맹점과 한계를 그나마 강형철이 잘 메우고 이어낸 인상이지만 태생적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인상. <타짜>의 캐릭터들이 차, 상, 마, 포 같아서 저마다의 파괴력도 있고, 차가 판을 휩쓰는 압도감과 마가 차를 삼키는 쾌감도 있었지만 <타짜-신의 손>은 '졸'의 향연 같아서 실력이 평준화된 선수들의 싸움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졸'전임이 뚜렷해 보여 김이 새는 지점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속편인지라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하진 않아서 크게 아쉽진 않았지만 썩 만족스럽지도 않았다. 다만 러닝타임에 비해서 지루하게 느껴지진 않았다는 점에선 본래 품었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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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세상에 관심이 없었다. 세상 또한 소년에게 관심이 없었기에. 소년은 어려서부터 가난했고, 엄마가 없었다. 어느덧 열여덟 살의 고등학생으로 성장한 소년은 가난과 소외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하지만 어느 날, 그 가난하고 소외된 소년을 향한 세상의 관심이 시작됐다. 완득(유아인)의 담임선생인 동주(김윤석)의 짧은 언어로. “얌마, 도완득!” 하지만 갑작스러운 관심이 완득은 귀찮기만 하다. 하지만 같은 동네, 그것도 심지어 건너편 옥탑방에 사는 담탱이는 퇴교 후에도 완득의 주변에서 그를 귀찮게만 한다. 그래서 완득은 기도한다. “제발 똥주 좀 죽여주세요.” 하지만 그 교회에서도 완득은 듣는다. 자신의 호를 지어준 담임선생 동주의 부름을. “얌마, 도완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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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밀려오고 다시 밀려나간다. 상륙하듯 육지로 들이치던 바다는 잠자코 머물다 다시 수평선 너머로 끌려나간다. 대륙과 반도 사이를 메운 갇힌 바다는 해안선이 비좁다는 듯 육지를 넘보다 해수면 저편으로 사그라진다. 한반도의 서편, 중국의 동편에 자리한 황해는, 그래서 탁한 바다다. 끊임없이 육지를 꿈꾸듯 해수면을 밀고 올라오다 흙을 머금고 미끄러져 사라지는 바다는 탁하지만 아련하게 출렁거린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역할을 하는 입구와 출구를 제외하면 총 4개의 챕터로 구성된 <황해>는 마치 해수면으로 밀려들어오는 바닷물과 같이, 한국으로 밀항한 조선족 청년으로 인해 걷잡을 수 없게 전개되는 사건을 휘몰아치는 풍랑처럼 묘사하는 영화다. 탁한 해수면과 같은 현실을 묘사하는 영화의 끝에서 발견되는 건 그 밑바닥에 침전된 진한 농도의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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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한 피리를 불며 요괴를 잠재우던 표은대덕은 다른 세 신선의 실수로 요괴에게 피리를 빼앗긴 뒤, 자신의 존재를 망각한 채 세상으로 사라진다. 세 신선은 세상에 뛰쳐나온 요괴들을 잡기 위해 사라진 표은대덕과 피리의 행방을 좇고, 이를 위해 도사 화담(윤석)에게 도움을 청한다. 신선들과 함께 요괴를 좇던 화담은 그 과정에서 전우치(강동원)와 맞닥뜨리게 된다. 설화적인 프롤로그를 밑그림으로 판타지의 자질을 채색해나가는 <전우치>는 이를 통해 토속적 비현실성을 현대적 시대상 안으로 이입해 나간다. 실존인물이라 전해지기도 하는 고전소설전우치전의 신묘한 주인공 전우치를 발체해 현대적 배경에 이입한 <전우치>는 전통적인 영웅 캐릭터의 뼈대에 현대적 서사라는 살을 붙이며한국형 히어로무비의 유형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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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치> 단평

cinemania 2009. 12. 18. 11:15

<범죄의 재구성><타짜> 욕망이라는 게임판을 달리는 캐릭터들의 암투를 그린다. 최동훈의 장기는 상대의 패를 읽고 훔치는 다양한 캐릭터들을 다루는 능수능란함에 있었다.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내면서도 전체적인 극의 분위기를 단단하게 여미는 캐릭터들의 조화는 최동훈의 장기를 여실히 증명했다. 그런 면에서 <전우치>는 핵심적인 기대감을 배반하는 작품이다. 강동원이 연기하는 전우치는 꽤나 쓸만하다. 그 존재감과 표현력만으로도 하나의 장르적 가능성을 보게 되는 기분마저 든다. 다만 주변부의 캐릭터를 다루는 손맛이 무뎌졌다. 구심점이 흐린 인물들이 쓸모를 명확히 얻지 못한 채 방치되거나 전시되고 그만큼 숫적인 산만함만 어지럽게 감지된다. 최동훈의 장기라 할만한 캐릭터영화로서의 장점을 만끽할 수 없다는 점에선 분명 아쉽다.

하지만 <전우치>는 최동훈이란 이름에 얽힌 기대감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르적 토대의 구축이란 점에서 성과가 발견되는 작품이다. 현대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무협판타지라는 점에서 <아라한 장풍대작전>을 연상시키는 <전우치>는 토속적 설화를 적극 활용하며 캐릭터를 완성하고 스토리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한국적이란 의미를 강하게 어필해낸다. 십이지신상을 모티브로 둔 요괴들의 디자인이나 설화를 바탕으로 직조된 스토리는 판타지라는 외래장르의 국산화란 이름에서 보다 어울리는 형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품는다. 지나친 속도감을 두르고 묘사되는 액션신이 시각적인 묘미를 반감시키지만 공간감을 구축하는 앵글의 포착력은 탁월하다 평할만하다. 심중한 여운을 남기고, 유연한 위트를 담은 대사들의 순발력도 빼어나다. 문제는 그 요소들이 잘 어울리지 못한 채 저마다 독립적으로 장기자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제자리를 찾지 못한 음표들이 악보로서 연주되지 못하고 제 음만 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보고 있다는 기분 사이로 끼어드는 아쉬움을 떨쳐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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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인터뷰

interview 2009. 8. 14.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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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미리 인터뷰

interview 2009. 6. 23.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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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면 운곡리의 조필성(김윤석)은 한적한 시골에서 치안 유지보다도 집안의 경제난 해소가 더 고민스러운 한량 형사다. 만화방을 운영하며 남편의 쥐꼬리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아내(견미리)의 바가지는 득달같고, 두 딸에겐 매일같이 면목이 없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행운이 찾아온다. 소싸움 대회를 주관하던 중, 불현듯 찾아온 예감에 아내의 통장을 훔쳐다 판돈을 걸자 열 배의 배당금이 쏟아진다. 하지만 행운은 곧 불운으로 돌변한다. 친구에게 맡긴 배당금을 찾으러 가던 중, 희대의 탈주범 송기태(정경호)를 만나고, 돈도, 자존심도 모두 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그리고 추격이 시작된다. 거북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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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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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에 대한 감상이 궁금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리얼하게 나왔다는 걸 알겠더라. 특히 바짝바짝 붙여 찍은 클로즈업이 많은데 그런 것들이 우리 영화의 색깔을 잘 보여준다. 큰 화면에서 보니까 굉장히 세고 라이브한 날것의 느낌이 잘나와서 좋았다.

시사회 후 반응이 좋다. 평단은 물론이고 시사회를 본 일반 관객들도 호평이 많더라. 고무되지 않나?
아직은 그런 걸 편안하게 못 본다. 왜냐면 개봉을 하지 않았으니까 아직까진 긴장상태가 남아있기 때문에. 물론 이제 처음으로 약간 긴장이 풀리고 짜릿한 느낌이 왔던 건 기자시사 때였다. 기자간담회를 하면 기자분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어떤 기운들이 느껴진다. 근데 그때 이 양반들이 제법 뿌듯한 걸 본 것 같아하는 느낌이 들어서,(웃음) 일단 합격이 됐구나. 일단 기분 좋구나. 관심들을 갖네, 싶었지. 그리고 VIP시사 때 동료들이 너무 좋아해주고.

최근 4편의 영화에서 보여준 연기로 호평을 얻었다.
내가 작품 복이 좋은가 보다. 배우 한 명이 온전히 연기를 잘한다 해서 연기 잘한다는 말이 안 나오거든. <천하장사 마돈나>나 <타짜>나 <즐거운 인생>이나, 영화적인 퀄리티가 있고 분명한 내용이 있는 영화고 거기서 내가 맡은 캐릭터의 몫을 다했을 때, 온전히 연기력에 대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난 굉장히 운이 좋았지. 앞으로의 길이 부담스럽다거나, 사실 뭐, 난 이런 건 별로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나이가 30대도 아니고, 이미 40인데 생각해봤자 별 수도 없고.(웃음) 그냥 계속 주어지는 대로, 나에게 다가오는 좋은 배역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이 다시 생긴다면 좋을 것 같다.

부상이 있진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과감한 액션이 많았다. 특히 지금까지의 출연작 중 가장 격렬한 작품이기도 했고.
우리가 사실 실제로 다친 건 한번인데, (하)정우가 뛰다가 미끄러진 씬 있지. 그 씬은 실제로 미끄러진 거다. 그래서 정우가 찰과상 입은 거 외에는 한번도 다친 적 없다. 그래서 우리가 환상의 호흡이라고 사람들이 그러더라. 찍는 사람들도 보면서 놀라는 게, 우리가 싸우는 장면 봤겠지만 쉽게 말해서 사실 막싸움이잖아. 이건 완벽한 합을 짜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대충 30%정도의 큰 너비만 짜놓고 나머지는 즉흥이었거든. 거기서 이제 감독의 주문은, 정말 리얼하게 싸워달라. 근데 한군데도 안 다친 건 두 배우가 초긴장상태에서도 상대방을 배려하고 신뢰했다는 거지. 목을 조를 때도 보는 사람은 있는 힘을 다해 조르는 것처럼 보여도 항상 여지를 남겨서 이 친구가 연기를 할 수 있도록 숨통을 튀어주고. 계속 그걸 반복했는데 우리는 서로에 대한 신뢰감만으로 게임 끝냈지. 일사천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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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는 상극이지만 배우들끼리는 호흡이 상당히 중요했다. 특히 서로 상대 캐릭터의 비중을 잘 보좌해주는 것도 중요했을 것 같은데 그런 면에 있어서는 하정우의 연기가 상당한 도움이 됐을 법하다.
하정우는 진짜 120% 이상 잘해줬다. 후배지만 정말 뛰어난 감수성의 소유자 아닌가. 이 친구는 매 순간 가식적인 연기를 정말 한 순간도 하지 않았다. 그 힘은 하정우라는 인간이 가진 어떤 정서의 힘일 것 같은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대단하지. 사실 난 옛날부터 하정우란 배우를 정말 좋아했다. 하정우가 찍었던 <용서받지 못한 자>와 <시간>도 보면서 한국남자배우 중에 저렇게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 누군가 싶었거든. 그런데 지영민으로 캐스팅됐다는 얘길 듣고 속으로, 잘됐다! 만나고 싶었는데, 했지.(웃음) 그런데 하정우도 역시나 윤종빈 감독하고 사석에서 김윤석 선배님과 꼭 한번 만나고 싶다고 했다 하더라. 서로 잘 됐지.

신인 감독과의 작업이 부담스럽진 않았나?
일단 우린 감독을 만나기 전에 시나리오를 먼저 만난다. 난 일단 시나리오에 합격점을 줬다. 스토리가 굉장히 특이하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지문도 별로 없고 대사도 간결한데 그 사이의 여백에서 굉장한 게 보이더라. 그건 이 시나리오가 하루 아침에 완성된 게 아니라 정말 썼다 지웠다를 수십 번 반복한 정성스러운 시나리오라는 거, 이건 휴양지에 앉아서 쓴 게 아니라 정말 발로 뛰면서 오랜 기간을 통해서 만들어진 숙성된 시나리오라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이 시나리오를 감독할 사람을, 이 시나리오를 쓴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던 거지. 그래서 만나봤더니 역시나 한 작품을 임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의 모습이 느껴졌다. 신인감독답지 않은 소신과 직관력, 밀고 나갈 수 있는 힘, 그게 다 느껴졌다. 이 사람, 이 친구한테. 진짜 해보고 싶었지. 그래서 같이 해보자고 결심했고. 사실 <추격자>를 결정한 건 조금 일찍이었다. <즐거운 인생>을 하기 전에, 2006년도 12월 달에 이미 만나서 출연하기로 했으니까. 내가 잠깐 갖다 올 테니까 기다려라,(웃음) 그랬더니, 가능하다. 어차피 우리는 8월 달부터 들어가니까, 이러더라. 그래서 3월 달부터 5월 달까지 <즐거운 인생>을 찍고 돌아와서 <추격자>를 찍었지.

촬영에 난관이 많았을 거 같다. 대부분 밤 촬영이었고, 비 내리는 장면도 많았고. 게다가 대부분 인적이 있는 실제 공간을 이용했고.
로케이션 촬영이 많았지. 그래서 거의 야전이었다, 야전.(웃음) 사람들은 아마 밤마다 나타나서 저렇게 우리를 괴롭히는 저들은 누구인가, 싶었겠지.(웃음)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지만 고마운 에피소드도 많다. 어떤 분들은 밤에 추우니까 따뜻한 차를 보온병에 끓여와서 나눠먹으라고 주시기도 했다. 물론 본의 아니게 피해를 끼친 점도 있었고. 하지만 재미있었다.

영화에 대한 신뢰감이 돈독했기 때문에 수많은 고난을 감수한 것이 아닐까.
당연하지. 그렇게 피곤하게 달리기를 하고 나서도 그걸 붙여놓은 현장 편집본을 보면서, 잘 나오고 있다. 이 느낌이야, 이렇게 되니까. 고생했는데 막상 나오는 게 이상하면 그 때부터 바로 브레이크가 들어가는데,(웃음) 찍을수록 더 신뢰감이 생기고 나중엔 안돼, 한번 더 가야 돼, 서로 이렇게 되고, 이렇게 해서 만든 영화다. 이 영화가.

아까 말했던 하정우의 미끄러지는 장면은 <추격자>에서 명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우리도 보면서 놀랐으니까.(웃음)

특히 본인은 뒤에서 전력을 다해 쫓아가는 중이었을 텐데, 많이 놀랐겠다.(웃음)
움찔하고 놀라서 뛰다가 섰다. 어떡하지, NG인가, 생각하는데 벌떡 일어나길래 다시 뛰었지.

그런데 액션에서도 애드립이 있었나?
항상 120%준비해놓고 허물어서 그 허문데다가 즉흥을 집어넣었다. 그렇기 때문에 리허설이 굉장히 남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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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본능이 상당히 중요시됐을 것 같다.
그걸 요구했지. 그래야지만 처음에 이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본 생날것의 느낌을 담아낼 수 있다고 느껴서 우리도 동의했다. 즉흥이 주는 순간적인 부딪힘에서 발생하는 인간의 파장을 안 놓치려고 노력했었다. 두 배우 모두다.

상당한 집중력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집중력 뿐만 아니라 끈기와 인내, 체력.(웃음)

매일같이 에너지를 쏟아내고 집으로 돌아갔겠다.
집에 못 들어가는 날도 있지.

그렇게 지쳐서 들어오면 부인께서 걱정하시지 않나.
밤새도록 작업하고 아침에 들어가면 일단 내방에 잠자리가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낮에 진공청소기를 못 돌린다.(웃음) 그 소리 때문에 깰까봐.

갑자기 <즐거운 인생>의 성욱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 고단함이야말로 김윤석이란 배우에겐 ‘즐거운 인생’이겠다.
그럼. 그리고 뭐 나만 고생했나.(웃음) 우리가 뛰는 걸 보고 사람들은 정말 저 배우들 고생했다고만 하지만 그걸 담아내는 사람들은 세배로 더 고생한다. 조명이야 뭐야 그 무거운 걸 들고, 그러니 우리가 힘들다는 말을 못하지. 정말 걔들 뛰는 거 보면 미치겠는데, <추격자>는 스텝의 승리다.

기교보단 뚝심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화려한 기교 이런 건,(손을 휘저으며) 결국 이 영화를 버티게 하는 건 아날로그적인 센 날것의 힘, 끈기, 믿음, 이런 거였다.

일단 김윤석이라는 배우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그 이유가 <타짜>가 될 가능성이 많다.
<타짜>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덕분이기도 하지.

덕분에 악역 이미지로 많이 어필됐는데, 본인이 매력을 느끼는 악인의 이미지는 어떤 것인가?
인간은 다층적인 동물이잖아. 악역이라고 해서 골빈 짓만 하는 건 매력이 없지.(웃음) 나름대로의 자기 기준으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와 정면으로 부딪혀서 자신만의 노하우로 이겨나가는 방법, 그러나 사람들이 봤을 땐 그것이 결국 좋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는 정도. 그 정도의 다양한 비하인드가 깔릴 수 있는 정도가 돼야 매력 있는 악역이지.

한편으로 악역을 선호하는 연기자가 아닌가라는 오해를 형성시킬 수도 있을 거 같다.
우리나라 시나리오 작가들이 악인은 굉장히 잘 묘사한다. 반대로 선인은 희한하게도 어정쩡하다. 그러니 아무래도 악인에 더 눈길이 가지. 디테일한 묘사부터 시작해서, 자기가 싫어하는 인물은 그렇게 묘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나 봐. 그 이유가 뭔가 분석해본 결과, 소위 악인의 요건이 치사하고 이기적이고 야비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본데 난 그게 넌센스라고 본다. 현대사회에서 안 그런 사람들이 어디 있나? 그런 건 악인이란 기준에서 빼야 된다. 모든 사람이 졸렬하고 치사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고 이걸 악인이라 적용했기 때문에 반대로 선인의 기준은 이런 게 없어야 되는 거다. 야비하고 치사하고 졸렬한 게 없어야 된다. 그걸 빼니 재미가 하나도 없어지는 거다. 난 현실성 있는, 땅바닥에 발을 딛고 사는 이 시대의 인물에 더 매력이 간다. 그러다 보니 선택하는 게 자연스럽게 소위 악역이라 지칭하는 과를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되지.

확실히 선한 캐릭터보단 악한 캐릭터들이 매력을 주는 경우가 참 많다.
리얼리티가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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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의 대립구도는 선과 악이 아니라 악과 악이다. 최악과 차악의 싸움이다.
우리식대로 쉽게 얘기하면 선을 넘지 않은 자와 선을 넘은 자의 대결이지. 시나리오를 보고 엄중호가 후반에 가서 도덕적인 성찰을 나타내거나 정의로운 인물로 변화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 그리고 그렇게 찍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고. 단지 선을 넘지 않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마지막 양심과 인간의 생명이란 존엄성에 대해서만큼은 포기하지 않은 놈이다. 그리고 지영민은 뛰어넘은 놈이고. 일단 이렇게만 놓고 가자, 그 대신에 2시간 동안 길을 가며 만나는 순간순간마다 발생하는 최소한의 코드를 모아보자, 거기서 이놈이 만나서 어떻게 변하는가, 어떤 현상을 일으키는가, 이렇게 열어놓고 갔다.

결국 엄중호의 심리적 변화가 상당히 중요한 관건이었다.
그 부분은 관객이 <추격자>와 의사 소통하는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 부분이 억지스럽다거나 감동을 날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엄중호가 개과천선의 이미지로 그려지지 않아서 좋았다. 하지만 감정선을 유지하면서 미묘하게 변하는 심리를 표출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우리는 그냥 그것도 순서 없이 찍었잖아. 여건상 그렇게 될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5개월 동안 정말 끊임없이 대화했다. 대화를 안 할 수가 없다. 내 첫 촬영분량이 십자가 바라보는 부분이었다니까, 첫 테이크를 가는 게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장면이잖아. 아무 일도 겪지 않고 그걸 찍으라면서 눈빛으로 담아내라고 하니,(웃음) 그걸 하기 위해서 계속 대화하는 거지.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만약에 이해가 안 가면 두 번, 세 번 찍어보자. 그럼 마지막에 편집하면서 퍼즐을 붙일 때 맞는 조각을 선택하면 되는 거니까. 그러니까 시간이 안 걸릴 수가 없지. 5개월 동안, 85회 차 찍었다. 블록버스터야.(웃음) 제작비가 블록버스터는 아니고.

엄중호는 특정한 악인의 표상이라기보단 사회에 만연된 전형적인 악인이다. 하지만 지영민과 같은 최악의 존재가 그런 차악에 기생해서 은둔한다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악의 본질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악의 존재는 궁금하지 않았다. 물론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인간의 역사에 수많은 연쇄살인범과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얘들이 왜 이랬는지 누구 한 명도 나서서 밝혀본 적이 없고 늘 실패한다. 싸이코패스라는 게 원래 유전자가 이렇다고 하는데 그것도 정확한 게 없잖아. 보통 이론 같은 건 우리에게 필요가 없다는 거지. 문제는 이런 본능을 행동으로 옮겨서 실제로 해내는, 살인을 저지르는 걸 100%방치했던 이 시스템에 대한 문제에 <추격자>가 중점을 두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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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중호가 사냥개라면 지영민은 하이에나다. 숙련된 사냥개의 욕망과 방치된 하이에나의 욕망은 본능적이지만 근원적인 기질이 다르다.
두 사람 중 사회적인 때가 누가 더 많이 묻었냐고 모든 사람에게 물어보면 백이면 백 다 엄중호를 찍겠지. 지영민은 때가 안 묻어서 더 무서운 거다.

마치 나쁘다는 걸 모르는 어린아이의 잔인함처럼.
내 칼은 좀 무뎌졌다. 오래 써서. 하지만 얘는 너무나 신선한 칼인 거야.(웃음) 무섭지, 그래서.

혹시 본인이 지영민을 연기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나?
처음에 내가 그랬다. 둘 중 아무거나 해도 괜찮다고. 난 내 식대로 표현했겠지. 정우와는 다르게.

만약 본인이 연기했다면 지금과 무엇이 달랐을까.
글쎄, 일단 하정우란 사람이 연기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긴 못 할 거 같다. 만약에 이 글을 읽은 누군가가 역시 이랬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래 버리면 그건 실례잖아, 실례.(웃음)

오래 전에 연기를 한번 접으려 했다가 동료들의 권유로 다시 재개했다고 들었다. 그 뒤로 혹시 다시 연기를 그만 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나?
없다. 한번 갔다 왔기 때문에. 막차다. 막차. 막차를 탔기 때문에 하차를 못해.(웃음) 배운 도둑질이 이것밖에 없으니까 이젠.

지금은 영화에 주력하지만 사실 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했고 거기서 오랜 경험을 축적했다. 영화의 중심에 선다는 것과 연극의 중심에 선다는 것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연극과 영화의 공통점은 종합예술이라는 거, 그 속에서 연기자라는 건 부품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뭔가의 중심에 서본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굳이 그 역할을 해나가면서 연극과 영화의 장르적인 어떤 흑백을 마땅히 얘기해야 한다면 연극은 정말 하고자 하는 얘기가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만의 즉흥적인 무대 위 상황에서 벌어지고 난 그 무대 위에 서 있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굉장한 연습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영화에는 연습이 없지만 연극에는 연습이란 것이 있고 그걸 통해 계속 본인의 연구를 거듭해야 한다. 왜냐면 희곡이 내포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캐릭터도 캐릭터지만 개인이 작품전체의 메시지 안에서 담당해야 할 역할이 연극에서는 굉장히 크다. 영화도 없는 건 아니지만 영화보다 훨씬 크지. 연극은 소위 슈퍼아줌마, 길가는 사람1 이런 게 없으니까. 반드시 필요한 몇몇의 인물들이 적확한 역할을 가지고 등장하고 거기서 다른 뭔가를 해버리면 균형이 흐트러지지. 그래서 연극이 잘 통제된 예술이라면 영화는 그런 면에서 더 열려있는 예술이고, 그런 부분에서 연기자가 임하는 차이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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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영화보다 연기자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건 연극 쪽일까?
난 둘 다 똑 같은 비중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영화는 뼈 속까지 그 사람이 되길 바라는 게 있다. 눈빛 하나로 이 인물이 인생에서 느끼는 허탈함을, 슬픔을, 공허함을 표현해야 할 때 클로즈업이 들어오잖아. 연극은 그런 게 없지. 연극은 말로서 표현하지. 표현하는 방식에서 확연하게 구분이 가지만 그 나름대로 둘 다 굉장한 집중을 요구하는 거다.

연극 연출을 몇 번 했고, 대학시절에 극예술연구회에서 활동했었다. 차후 연출에 대한 계획은 없나.
연출을 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쉬고 있으면 안 된다. 이렇게 쉬고 있으면 못 따라간다. 끊임없이 연출을 하고 준비를 해야 된다. 굉장히 많은 지식과 전문성을 요구하는 것이 연출이기 때문에. 내가 지금 연출을 놓은 게 몇 년이 되니까 다시 하려면 공백의 한 다섯 배 시간을 할애해야 된다. 연출은 세상에 대한 비전을 얘기해야 되고 세상에 대한 시각을 보여줄 수 있을 정도여야 하니까 공부할 게 너무 많다. 책 다 읽어야 돼.(웃음)

배우가 좋은 연출자를 만나는 것도 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나도 운이 좋은 편이고.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배우에게 기회도 따를 리가 만무하다. 나름대로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는 요즘은 과거의 오랜 경험들이 좋은 자산이 됐음을 스스로 실감할 것 같다.
연극을 하면서 작품 분석에 매달렸다. 어떤 연극은 3시간 40분 공연하기 위해서 한 6개월 동안 연습한 적도 있었는데 그 6개월 중에 2개월을 내내 작품 분석에 바쳤다. 훈련극의 번역본이 마음에 안 들어서 원본을 가져와 아예 다시 번역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그러면서 작품 분석을 통해 캐릭터를 바라보는 시각이 나한테 굉장한 도움이 됐다는 걸 느꼈지. 다른 건 몰라도 연기를 연극으로 시작했다는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탄탄하게 나를 받쳐주는 좋은 계기가 됐으니까.

무대에서 활동할 당시 송강호와 친분이 두터웠다고 들었다. 송강호가 실력을 인정받고 주목 받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본인에게 좋은 자극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나중에 가는 자가 가질 수 있는 장점은 돌다리를 두드려볼 수 있는 여유가 좀 있다는 거지. 농담처럼 하는 이야기지만 정말 그래. 저랬을 때는 저렇게 되고, 저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 라는 걸 (송)강호를 보고 느끼는 거지. (웃음)

함께 고생한 만큼 동료애가 돈독하겠다.
같이 고생했던 내무반 사람들과 말이 필요 없는 것처럼 그런 경험을 함께 했던 사람들과는 일단 가까워질 수 밖에 없다. 알고 있으니까. 힘들었을 때의 느낌도 알고 있으니까 서로의 심리상태도 잘 이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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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기했던 캐릭터의 골격이 마초였다면 정서는 아버지에 가까웠다고 본다. 그건 김윤석이라는 배우의 내면적인 정서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도 추측된다.
맞다. 아버지라는 정서가 난 강하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내가 아버지의 모습이라는 거다. 남자이기 때문에, 그리고 내 나이가 40이니까, 아버지의 모습이 언제나 남아있게 되지.

그건 실생활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미진이 딸과 밥을 먹는 장면이 있잖아. 아무것도 안 했다. 그저 딱 앉아있었고, 갑시다, 하더니 컷을 하는 거다. 그러더니 (나홍진 감독이) 저기, 선배님. (그래서 내가) 왜요? (그러니까) 아버지 같아요. (그래서) 나 아무것도 안 했잖아, 지금. (그러자) 그런데 아버지 같아요. (이래서) 아니, 내가 딸아이 아빠라는 걸 아니까 그런 거 아냐? (그러니까) 그래서 그런가? 하지만 그런 게 결코 보여선 안됩니다. 그랬던 에피소드가 있다. 그래서 (내가) 알았어. 야박하게 할게. 야박하게, 이랬지. (웃음) 그런데 이 나이 되는 남자와 그 나이 되는 여자애를 함께 세워두면 누가 봐도 피해갈수 없다.

그 장면은 딸에게 밥을 먹이는 아버지처럼 보일 수 밖에 없는 구도였다.
제3자의 시각에서 누군가가 객관적으로 봐도 아버지가 데리고 온 딸처럼 보이겠지. 남의 딸이라고 상상 못한다.

담배를 많이 피우는데 술도 참 많이 마실 것 같다.
당연하지. 우리는 모든 자리가 다 술이다. (웃음) VIP시사회 끝나고 뒤풀이를 커피숍 가서 하겠어? 술 한잔 하면서 얘기해야지.(웃음) 그리고 술 못하면 손해지. 그런 데서 캐스팅 제의가 들어오는데. (웃음)

술을 한번 마시면 어느 정도로 마시는 편인가. 끝을 보나?
우리는 노련하다. 노련하기 때문에 절대로 그 선에서 딱 정리하지. 왜냐면 과하게 되면 내일은 먹을 수 없잖아. 그러면. (웃음) 이게 생활화되려면 그런 무모한 짓을 하면 안되지. 절제가 있어야지 말이야.(웃음)

최동훈 감독이 <타짜>에서 아귀를 맡긴 건 본인도 의외라고 했었다. 실제로 <범죄의 재구성>에서 이형사 역을 생각해본다면 차라리 유해진이 맡았던 고광렬 역이 더 적합했을 것 같기도 하다.
의외였다. 나는 사실 나한테 그저 짝귀 정도를 주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귀를 하라는 거다. 그건 이 사람이 나에게서 뭘 봤다는 이야기거든. 아마 감독들 중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최동훈 감독일 거다. 물론 지금까지는. 나홍진 감독하고 5개월을 그렇게 보냈으니 이제 나홍진 감독도 알지 모르겠지만.(웃음) 어쨌든 이 친구가 그렇게 얘기했다면 뭔가 있다, 나한테 뭔가를 봤다, 이렇게 생각했고 그럼 오케이지. 사실 감독이 배역을 줬을 때 배우가 못해내면 둘 다 슬프잖아. 근데 해냈을 때는 캐스팅한 감독이나 출연한 배우나 둘 다 서로 탄탄해질 수 있는 판단이 되는 거지. 결국 빛나는 만남이 됐다.

<즐거운 인생>은 마치 놀면서 연기하는 느낌이었다.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도 오랜 친구처럼 보였고 여러 가지로 즐거운 추억이었을 것 같다.
난 성욱이란 역할을 굉장히 좋아한다. 힘이 쫙 빠져있는 그런 느낌, 실제 내가 성욱의 그런 상태를 즐기는 편이라서. 성욱이 나보단 더 우울한 편이지만 약간 나른한 듯한, 그런 몸 상태나 정신상태가 나랑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이준익 감독님하고 맨날 놀면서 장난치고.(웃음) 재미있는 작업이었지. 아쉬운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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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스스로도 상당히 편안해 보였다.
동료 배우들 중에 어떤 사람은 성욱이가 제일 좋다더라. 자기는 성욱이의 그런 모습이 내가 한 연기 중에서 가장 백미라고 생각한다고. 대중들에게 강렬한 캐릭터로 인식되다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었던 계기이기도 했지.

거의 한달 반 만에 베이스를 연마했다고 들었다. 어쩌면 연기보다도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우리 자랑이 아니라, 일단 세 배우가 다들 음감이 있더라. 나 같은 경우도 라이브 연주를 하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란 작품을 계속 해봤기 때문에 악기와 친숙했고. 물론 지금은 이렇게 말하지만 그 당시 우린 정말 죽었었다.(웃음) 달리기는 그냥 뛰면 되지만 이건 머리를 써야 하기 때문에 사실 진짜 괴로웠지. 솔직히 웃으면서 손가락 다 부러뜨리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진짜 때려부수고 싶더라. 그런 좁은 곳에서 악보를 보면서 베이스를 뎅뎅거리는데 그것도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발전속도가 체감적으로 느껴지는 작업이라 더욱 절실했을 것도 같다. 진전이 안되면 그만큼 답답한 거니까.
딱 보면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고, 누가 열심히 하는지 안 하는지 다 드러나는데 빼도 박도 못하지.(웃음)

아무래도 아귀 역할 이후로 인상이 강한 캐릭터 제의가 있었을 것 같은데 그 와중에 성욱을 선택한 건 사실 의외였다.
그 때 들어왔던 시나리오 중 <즐거운 인생>이 제일 좋았다. 내 맘에 들었지. 물론 그전에 <추격자>를 먼저 선택하긴 했지만.

결국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시나리오인가보다.
일단 시나리오 없이 감독을 먼저 만날 수는 없다. 사실 감독도 나한테 시나리오를 통해서 연애편지를 쓴 거 아닌가. 그 연애편지를 보고 이 사람을 만나서 연애를 한번 해봐도 되겠구나를 생각하지. 결국 시나리오지.

강렬함 속에서도 종종 드러나는 넉살이 유머스럽게 느껴진다. 코미디 연기도 해보고 싶지 않나?
<즐거운 인생>에서 성욱이란 애가 우울하고 어깨에 뭔가 얹혀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성욱이도 사실 말하는 거 보면 웃긴 놈이거든. 난 그 정도만큼의 코미디를 좋아한다. 드라마를 뛰어넘는 코미디는 체질적으로 그렇게 와 닿지가 않는다. 물론 개인적으로 코미디는 좋아한다. 우디 알렌의 영화를 보면 얼마나 웃겨. <브로드웨이를 쏴라>보면 ‘햄릿이 누구야? 우리 옆집에 사는 사람인가?’ 이런 대사들이.

위트 있는 코미디를 좋아하나 보다.
그러니까 어떤 만남과 만남이 주는 코미디. 둘 다 옳은 사람이다. 어느 한 사람이 이상한 건 아닌데 여기서 만났기 때문에 웃기는 거, 이런 것들이 재미있지.

상황의 아이러니 같은?
상황이 주는 코미디가 그렇지. 캐릭터가 주는 코미디보단.

지금까지 나름대로 강한 캐릭터를 많이 어필했고 이제 관객들도 점차 이를 인지하게 됐다. 그런데 본인이 지향하는 캐릭터는 뭘까?
난 아까도 얘기했지만 현실감 있는, 발바닥을 땅바닥에, 지금 여기 땅 위에 붙이고 사는 모습이면 된다. 그게 캐릭터를 육화시키는데 있어서 제일 기본적인 첫 번째 통과의례라고 생각한다.

현재 연기를 인정받고 있는 영화배우들 중 본인을 포함해서 연극무대 출신이 많다. 무대가 영화의 산실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그런데 현재 연극 무대의 환경은 상당히 열악하다. 근본적인 문제가 뭘까?
세계 어디에서도 연극이 혼자 올곧게 클 수 있는 나라는 아무데도 없다. 그러니까 프랑스나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연극에 국가적인 지원이 어마어마하지. 그 반면에 연극을 그렇게 많이 하면서도 지원이 어마어마하게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어떤 것보다도 연극은 종합예술의 제일 밑바닥, 초석이기 때문에 사회나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장기적인 지원이 받쳐주지 않는 한, 일시적이고 단발적인 금액적 지원은 아무 힘을 실어주지 못한다.

장기적인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그건 교육화와도 관계가 있는 거다. 교육적으로 초등학교부터 연극시간을 할애하면서 그런 인구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 끊임없이 국가적으로 지원을 해줘야 되는 거다.

과거 열악한 환경에서 연극을 했던 선배로서 지금도 그런 환경에서 연기를 하는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정말 본인이 원했던 기회라는 것이 정면으로 왔다고 성급하게 나서버릴 수 있다. 기회가 정말 올 때까지 차근차근 준비하고 매 순간 정말 최선을 다해서 즐겨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걸 했다는 자부심을 잃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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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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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

장근석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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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좋아해요?
굉장히 좋아하죠.

어떤 부류의 음악을?
특별히 가리는 건 없는데, 일렉트로니카나 디제잉 음악을 주로 좋아해요. <즐거운 인생> 찍으면서 밴드 음악을 한창 미친 듯이 들었고.

사실 전자 음악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면 <즐거운 인생>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지글거리는듯한 일렉기타음을 견디기 힘들었을 테니. 물론 나이를 생각하면 애초에 그렇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기도 했지만 취향은 각기 다르니까.
사실 음악에 대한 선입견은 크게 없으니 만약 락이 아닌 다른 음악이었다고 해도 상관없었을 거라 생각해요. 일단 밴드라는 틀 안에서 각자의 캐릭터가 같이 호흡할 수 있는 기회가 굉장히 많았죠. 밴드란 게 혼자 음악을 만드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내가 너무나 좋았던 건 선배님들과 감독님 간의 신뢰가 굉장히 크게 키워진 상태에서 작품에 참여했기 때문에 전혀 부담감을 느끼지 못했던 거 같아요.

마치 밴드가 하나의 식구처럼 느껴지던데요. 그런데 다른 세분 배우와 홀로 세대 차가 많이 나는 편인라 그런 차이를 극복하는 게 마냥 쉽진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극복했나요?
일단 그런 계기들은 선배님들과 감독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 같아요. 감히 올려다보지 못할 것 같은 선배님들과 같이 있게 된 신인의 입장이다 보니 수용적인 자세와 방어적인 자세가 같이 나타났다고 생각해요. 선배이기 때문에 당연히 수용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점도 있지만 반대로 방어적이란 건 나와 너무나 차이가 많은, 갭이 많은 선배이기 때문에 내가 깍듯해야만 하는 관계, 다시 말해 불편할 수 밖에 없는 관계니까.

어느 정도 거리감을 좁히기 힘든?
예. 사실 저도 처음엔 그런 것들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었죠. 그걸 깨주신 게 선배님들과 감독님이세요. 같이 악기 연주하고, 같이 술 마시고, 같이 밤새고, 그런 관계가 단지 촬영이란 목적 때문만이 아니라 촬영이 끝난 후에도 계속 이어졌죠. 아침부터 반바지 차림에 슬리퍼 신고 같이 만나서 밥 먹으러 가고, 마치 정말로 옆집에 사는 이웃친구처럼, 한 멤버가 됐어요. 그 정도로 팀워크가 굉장히 높았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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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 연주도 연주지만 보컬도 인상적이었다고 생각해요. 미성이 나올 것 같은 외모에서 그런지(grunge) 풍의 보컬이 나와서 놀라웠거든요.
일단 노래는 그 전부터 계속 배우고 연습하고 있었어요. 굳이 내가 음반을 내야겠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배우가 가지고 있어야 할 여러 가지 테크닉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죠. 그것뿐만 아니라 다른 악기들도 배우고 있었고, 그런 것들이 <즐거운 인생>을 통해서 많이 도움이 됐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목을 긁는 창법 같은 경우, 음악 감독님과 연구를 좀 했었죠. 원래 내가 노래 부를 때 중저음인데 그것을 좀 더 거친, 굉장히 러프한 음악과 매치시키기 위해선 뭔가 변형이 있어야 할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목을 좀 긁어서 노래를 부르는 연습을 했어요.

그럼 그 보컬은 일부로 만든 것?
맞아요. 일부로. 물론 원래 노래 부를 땐 그렇게까진 아니지만 영화에선 좀 더 터프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 촬영하면서 설정을 위해서 계속 계발을 했던 것뿐이죠.

솔직히 배우로서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마치 밴드를 차리는 느낌이었을 것 같기도 해요. 음악을 좋아하는 이로서 음악 영화라니 반가웠을 법도 했을 테고.
솔직히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배우고 싶었던 욕심이 컸어요. 종종 어떤 기자 분들은 제2의 이준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평들도 많이 해주시고 그런 기대감에 대해서 묻기도 하시는데 그런 것보다 난 그냥 무언가를 배우고 싶단 계기가 가장 컸던 거 같아요. 덕분에 악기를 또 하나 배울 수 있게 됐고, 그 외에도 굉장히 많은 것들을 얻었던 작품이었죠.

사실 기타를 잡고 무대에 선 모습을 스크린으로 볼 수 있었던 기회는 더 먼저 있었을 텐데, <도레미파솔라시도>가 예정보다 밀리지 않았다면. 아직 개봉일을 못 잡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 것 같아요.
굉장히 아쉬웠죠. 굉장히 치열하게 준비했었고 치열하게 촬영을 했었는데 갑자기 스톱이 돼서 굉장히 안타까운 상황이었어요. 사실 저에게 <도레미파솔라시도>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영화를 제대로 작업할 수 있었던 계기였거든요.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깜짝 놀랬죠. 그 때 스텝이나 배우들하곤 아직까지 만나요. 물론 영화가 올해 크랭크업됐고, 지금 일단 진행되고 있으니까 잘 되면 좋겠어요. 다들 열심히 힘들게 만들었으니까.

원래 기타는 문외한이었나요?
물론 그전에도 조금씩은 만질 수 있었는데, 이 정도로 능숙한 실력으로 오게 된 건 <즐거운 인생>하면서 배운 덕분이죠.

손가락에 물집도 많이 잡혔겠네요.
처음엔 많이 잡혔지만 나중엔 굳은 살로 변형됐죠. 그래서 나중엔 아무 느낌도 없게 되는데 그런 과정이 몇 번에 걸쳐 반복돼요. 나중엔 굳은 살 볼 때마다 흐믓해지곤 했어요.

그런데 아직 젊은 나이라서 그런 기타를 배우는 과정이 즐겁게 느껴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다른 세 배우 분들은 나이도 있는 편이라 애먹었을 것 같은데, 옆에서 지켜본 바는 어땠나요?
일단 힘든 건 사실이었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선배님들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고. 각각 악기란 것에 대해서 익숙한 분도 있는 반면, 익숙하지 못한 분도 있었고 익숙하다를 떠나서 그걸 제대로 연주할 정도의 실력은 저를 포함해 전부 다 없었으니까. 그런데 우리가 촬영 전부터 팀워크를 다질 수 있었던 계기가 악기 연습실에서 하루 7시간에서 8시간씩 하루 종일 갇혀서 연습한 덕분이 아닌가 싶어요. 연습을 1시간씩 더하면 그만큼 더 잘되겠지 싶은데 이게 또 계속 하다 보면 더 안돼요. 그런 스트레스가 쌓여서 도중에 연습실에서 나와서 담배피고 쭈그려 앉아서 한숨 내쉬고 있을 때, 선배님들도 옆에서 같이 그런 경험을 하게 되는 거죠. 공동체를 느꼈다고 해야 되나요? 물론 제가 보기엔 굉장히 어려운 선배들이었지만 같이 이렇게 0이라는 숫자에서 출발해서 뭔가를 창작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즐거운 작업이었어요. 그리고 연습 끝나면 같이 밥 먹으러 가서 술도 마시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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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명성이 자자한 감독과 실력을 인정받는 선배 배우 분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부담감은 물론 있었죠. 배우고 싶어서 시작을 했지만 그 계획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비유를 하자면 물과 기름 같은 성격을 가진 배우 분들이 그렇게 하나가 된 과정이 너무 궁금했어요.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야 될까? 어떻게 선배님들께 좀 더 다가갈까?’ 이런 고민을 한창 할 때, 먼저 선배님들께서 마음을 열어주셨어요. 사실 촬영 전에 나온 시나리오 초판본과 스크린에 나오는 완성된 필름의 50%가 틀려요. 그런데 그 50%를 비틀고 새롭게 설계해나가는 작업을 저희가 같이 해나가서 재미있었어요. 감독님들, 시나리오 작가, 연출부 스텝끼리만 참여한 게 아니라 배우들까지 직접 참여해서 각자의 아이디어가 어떤 씬에 반영되기도 하고, 없었던 씬이 생겨나기도 하고, 그런 설계 과정을 거치며 서로에 대한 믿음이나 신뢰가 굉장히 많이 커졌던 거 같아요. 그게 결국엔 팀워크를 다지거나 세대 차이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큰 요소가 됐죠. 물론 악기도 굉장히 중요했지만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연습이 잘 안되면 밖에 나와서 같이 투덜거리다가 친해져서 같이 술 한잔 마시게 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술과 함께 하는 얘기들이 오갔죠. 인생이든지, 영화라든지, 이런 것들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었던 시간들이 많았던 거 같아요.

영화가 어쩌면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을 것 같아요.
사실 전 아직 인생은 잘 모르겠어요. 단지 이제 <즐거운 인생>을 하면서 한가지의 꿈이 생겼죠. 내가 20년 후에, 30년 후에도 저렇게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래도 한가지 깨달은 건, 난 굉장히 행복한 놈이다라는 것. 실제로 전 어디에서든 ‘전 굉장히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물론 그 전까진 너무 치열하고 바쁘게 살아서 그런 것들을 좀 모르게 살았던 것 같은데, <즐거운 인생>을 계기로 다시 저를 되돌아보고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던 거 같아요.

사실 <즐거운 인생> 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성숙했단 느낌이 들었어요.
사실 외적인 모습은 잘 모르겠어요. 물론 어느 새 내 모습이 바뀌었단 걸 느끼긴 했거든요. 어렸을 땐 굉장히 밝고 귀여운 이미지나 해맑은 모습이 많았었는데 커가면서 어느 순간 그런 모습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즐거운 인생>의 촬영 후, 현준의 감성을 봤을 때 나에게도 저런 모습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가장 중요한 건 이제 <즐거운 인생>을 하면서 배우로서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굉장히 컸다는 사실이죠. 사실 제가 배우라는 의식을 갖게 된 건 얼마 안됐었거든요. 그 전까지 그냥 <논스톱>같은 거 할 때까지만 해도 그냥 난 연예인이고 그저 사람들이 알아봐주고 그래서 난 굉장히 좋다, 행복하다, 이런 막연한 생각 정도였죠. 그러다 슬럼프가 한 번 있었고, 그런 후에 <황진이>를 하게 된 건데 그 때부터 아마 처음으로 배우라는 개념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아이돌의 이미지가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황진이>와 <즐거운 인생>을 거치며 불쑥 커버린 느낌이었어요. 지금 스스로에게 나름대로 중요한 터닝 포인트라고 느껴지나요?
전 이제 시작되는 부분이죠. 제가 뭔가 내 업적을 남길만한 굉장한 걸 보여준 건 아니니까. 다만 <즐거운 인생>이 제가 배우란 걸 알게 해 준, 그런 사실을 끌어낸 작품인 거 같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작품이란 점에서 지금이 성숙한 배우가 되기 위한 초반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나름대로 이제 데뷔한지 거의 10년째가 되가요. 그래서 이젠 베테랑이란 말씀해주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건 MC나 라디오DJ같은 방송을 오래한 덕분에 듣는 말이지, 실제로 배우로서 연기할 땐 이제 막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아기인 거 같아요. (손가락을 발가락처럼 꼼지락거리며) 전 아직도 더 많이 배워야 하고, <즐거운 인생>을 통해서는 굉장히 많은 걸 얻었고, 앞으로가 중요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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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의 (<즐거운 인생> 포스터 속) 세 배우는 그런 걸음마에 많은 도움을 줬을 법한데 각각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일단 정진영 선배님은 뭐랄까. 굉장히 큰, 그러니까 광범위한 부분에서 저에게 굉장히 좋은 말씀을 해주셨던 거 같아요. 연기나 영화, 배우 같은 전문적인 조언뿐만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 추구해야 할 것들을 많이 알려주셨어요. 굉장히 좋았던 건 제가 아직까진 인생을 말하기엔 굉장히 어린애지만 제가 추구한 것을 말씀 드리면 ‘그건 아닌 거다, 잘못된 거야’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걸 받아주시고 또 거기에 대해서 덧붙여서 말씀해주시곤 했죠. 김윤석 선배님은 말씀이 많진 않아요. 스스로가 후배에게 특별한 조언을 잘 하지 않는데 저한테 처음으로 많이 해줬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배우가 가지고 있어야 할 테크닉이나 그것을 분석하면서 해야 될 것들, 배우로서 틀을 잡아주는 가장 기초적인 것들을 조언해주셨어요. 김상호 선배님은 제가 좀 더 솔직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그 안에서 전혀 기죽지 않게끔 ‘너하고 싶은 대로 해. 형은 널 믿는다.’라면서 저를 굉장히 솔직한 인간으로 믿고 바라봐 주셨고, 작품 내에서도 실제로 그렇게 도와주셨죠.

혹시 저 세 배우 중 배우로서 자신의 이상형이라 꼽을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요? 근데 워낙 세분이 출중한 분들이라 꼭 찍어 말하긴 힘들겠지만.
아니, 틀려요! 다! 각각 매력이 다 틀리거든요. 정진영 선배님 같은 경우는 굉장히 지식도 많으시고 솔직하신데 지식을 탁 내뱉는 스타일은 아니고, 제가 말하는 걸 굉장히 감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분이세요. 지적이면서도 굉장히 감성적인 인간인 거 같아요. 그래서 굉장히 솔직한 모습도 많이 뵐 수 있었고, 저한테 좋은 말씀들도 많이 주셨고. 윤석 선배님은 굉장히 섹시해요.

그래요?
예. 은근히 섹시하세요. 목소리도 멋지시고, 키도 굉장히 크고 매력 있으세요. 촬영할 땐 한창 정승혜 대표님(영화사 아침)이 장근석과 김윤석 중 누가 더 섹시하냐고 투표하기도 했었어요. (웃음) 김상호 선배님께서는 워낙 유머가 많아서, 항상 편하게 해주셨어요. 이렇게 각자의 매력이 다 틀리죠. 그런 것들을 조합한 모습이 얘였으면 좋겠어요. (포스터의 자신을 가리키며) 나중에 2~30년 후에.

그런데 이준익 감독님께서 캐스팅 제의를 했을 때, 그리고 그 전에 이미 캐스팅됐다는 선배 배우들을 보았을 때, 자신을 왜 이 사이에 끼어 넣으려 하는 것일까란 의문이 들지 않았나요?
지금도 들어요. (웃음) 사실 제 나이 대에서 훌륭한 비쥬얼을 가지고 있는 배우 분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그래서 왜 날 뽑았을까, 아까도 감독님께 물어봤었어요. 그러니까 그냥 ‘너 눈이 예뻐서’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물어봤었어요. 감독님 그럼 만약 다른 기자 분들이 ‘왜 이준익 감독님 영화에 뽑힌 거 같은지, 자신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면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감독님이 시나리오 들고 저희 집 앞에서 기다렸어요.’ 라고 하면 안될까요? 라고 물었다가 맞을 뻔 했어요. (웃음)

혹시 이준익 감독님의 전작 영화들을 봤나요?
다 봤죠. <키드캅>까지.

그 중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영화가 있다면?
아무래도 영화를 보는 관객 입장에서 중요한 건 대리만족 이라던지, 공감인 거 같아요. 제 입장에서 봤을 때 제일 공감되는 건 <라디오 스타>였어요. 그 때, <라디오 스타>를 심야영화로 보고 나서 새벽에 바로 <황진이> 촬영을 하기 위해 지방으로 내려가는데 계속 30년 후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사람의 감정까지 침투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드시는 순수한 감독님이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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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스타>가 공감된 건 아무래도 본인이 종사하는 업종 까닭일 것 같은데.
정말 내 얘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실제로 저도 그런 적이 있었어요. 그게 전 슬럼프라고 했는데, 다들 그러더라고요. 나이도 어린 놈이 무슨 네가 슬럼프냐, 이러는데. (웃음) 열 아홉 살 때, 제 자신이 싫어질 때가 있었거든요. <논스톱>을 끝내고 나서 소위 말하는 것처럼 확 떴다가 확 졌죠. 그런데 같이 하던 사람들은 굉장히 잘 돼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데 난 어디론가 이렇게 사이드로 물러나서 그걸 지켜보는 입장이고. 그 때 굉장히 방황을 했었죠.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게 올바른 것인지, 앞으로도 이렇게 해나가야 하는 것인지. 사실 그 당시에 <라디오 스타>처럼 그렇게 가까운 매니저나 친형 같은 형을 못 만나봤어요. 물론 그게 매니지먼트의 문제가 아니라, 제가 또 외동인 탓이죠. 외로움을 굉장히 많이 타는 성격이라서 누구에게 고민을 말하지도 못하고. 그래서 이제 혼자 고개 숙이면서 다니다가 그 당시에 어느 순간 뮤지컬 한 편을 하게 됐다.

혹시 <헤라클레스>?
예. 물론 그게 가족뮤지컬이긴 하지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란 되게 큰 무대에였거든요. 거기서 공연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배우가 돼야겠단 생각이 번뜩 들더라고요. 사람들 앞에서 내 감정을 동화시킬 수 있는 그런 배우의 모습을 꿈꿨어요. 그때부터 이제 다시 치열하게 살았죠. 물론 어떤 실패에 의해서 내가 치열하게 살아야만 했던 게 아니라 내 스스로가 나를 위해서 굉장히 치열하게 살았죠. 그때도 라디오 진행을 하고 있었는데 밤 11시까지 라디오하고, 12시까지 대학로 와서 새벽 2시까지 수업 받고 아침에 학교 가고, 이런 식의 생활을 한 5~6개월 가까이 하다가 이제 지금의 꿈꾸던 대학교에 들어가서 영화를 공부하고, 무대를 공부하고, 그러던 와중에 처음으로 들어온 작품이 <황진이>였어요.

아무래도 <황진이> 이후 사람들이 장근석을 배우로서 새롭게 인식했단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드라마 <홍길동>에 캐스팅 됐단 소식 들었어요. 유난히 사극과 인연이 깊네요.
제 겉모습이 고전적인가 보죠. (웃음) 사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황진이>때 많이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었나 봐요. 사실 <홍길동>이란 작품에 섭외된 것도 <황진이>의 인연 덕분이기도 해요. <황진이>를 연출하셨던 김철규 감독님께서 추천을 해주셨거든요.

결국 사극의 인연이 다시 사극을 맺어준 셈이네요.
사실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처음 대본 들어왔을 때, 사극이기 때문에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기도 했고요. <황진이>의 사극 이미지가 지금도 워낙 강하게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이미지에 좀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한 탓도 있었어요. 그런데 <홍길동>은 <황진이>와 성격이 워낙 틀린 사극이더라고요. 연출자와 작가분들이 전형적인 대하드라마와 무관한 스캔들 드라마로 유명한 분들이시고, 무엇보다 캐릭터 자체가 굉장히 맘에 들었어요. 굉장히 칼날이 바짝 든 악역이에요. 날카로운 캐릭터라서 하고 싶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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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진행 중 악역으로 변모하는 캐릭터 같던데.
약간의 사이코적인 면모를 지닌 캐릭터죠. 후에 왕위에 오르면서 밑에 있는 신하들을 숙청하려 들면서 그런 성향이 짙어지죠.

그런데 의외로 대화를 나눠보니 애늙은이네요! (웃음) 그런 말 종종 듣지 않아요?
감독님도 저한테 그래요! (웃음) 아까도 같이 인터뷰하는데, ‘얘는 말하는 게 애늙은이야, 말하는 거 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웃음) 물론 저는 제가 애늙은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어느 기자 분께서 인터뷰 후에 그러시더라고요. ‘장근석과 얘기를 하다 보면 그가 열 살이 많아지던지, 혹은 내가 열 살이 어려진다’고. 같은 주제에 같은 감성과 같은 공통점을 갖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그런 게 제 장점이지 않을까 싶어요.

영화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사실 현준을 좀 더 꺼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욕심이 있었어요. 그니까 촬영하면서도 사실 감독님과 계속 의견을 나눈 건데, 전 현준이를 더 보이고 싶었거든요. 현준이를 더 보이고 싶었는데, 감독님께서는 ‘넌 보이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배치상 너 하나밖에 없어서 보이게 되는 역할이다. 나중에 관객들이 널 찾아서 봐야지, 네가 그걸 일부로 나타내려고 하면 더 역효과다. 앞으로 작품 할 때도 역시 마찬가지고.’라고 말씀해주셨죠. 그 땐 잘 이해를 못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영화를 보고 나니까 그 말씀이 대충 이해가 됐어요. 촬영 초반엔 더 나타내고 싶었지만 이젠 감독님 말씀이 맞았던 거 같아요. 가장 만족스러웠던 부분은 무대 위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이 저도 만족스러웠던 거 같고 흡족했어요. 사실 악기 연주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촬영할 때도 긴가 민가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크게 어색한 거 같지 않아서 다행이었죠.

<즐거운 인생>이 자신에게 어떤 계기가 될 수 있을까요?
아직까진 제가 뭔가를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서 쉽게 말할 순 없지만 그런 과정은 있었어요. 감독님을 처음 뵀을 때가 제가 이제 배우라는 꿈을 막 안고 이제 제가 갈 길을 정해야 하는, 마치 사춘기처럼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하는 방황의 시기였어요. 감독님을 처음 만났을 때, 이분은 내가 그런 걸 말했을 때 굉장히 진실적으로 받아주실 수 있는 분이다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 (인터뷰가 진행된) 이 자리에서 만났거든요. 이 자리에서 만나서 이야기했죠. ‘저는 배우가 너무 되고 싶습니다. 지금 제가 지닌 엔터테인먼트의 기질을 버리고 대학로 연극 무대에서 맨손으로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러기까진 용기가 너무 부족합니다.’라고 시작했죠. 그렇게 제 맘속에 있는 진실된 말들을 많이 꺼내드렸더니, 감독님께서도 그만큼 저를 새롭게 보셨나 봐요. 단지 얼굴만 잘생긴 꽃미남 아이돌 정도로 생각하셨는데 그 내면에 대한 교감이 생겼던 거 같아요. 작품을 하면서도 얘기할 시간이 굉장히 많았고, 작품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제 인생에 대해서도 감독님께서 말씀을 많이 해주셨고, 그랬던 만큼 어떤 방향들에 대한 자신감을 얻기도 했죠.

연극 무대에 대한 동경이 있었나 보죠?
굳이 연극과 영화를 나누자는 것보단 그 당시엔 배우로서 가장 순수해진 제 모습을 보고 싶었거든요. 내가 화면에 어떻게 나올지, 머리를 이렇게 하는 게 나을지, 그런 비주얼적인 장면들을 기준 삼아 평가를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것들을 벗어 던지고 싶더라고요. 정말 0에서부터 맨손으로 다시 시작해보고 싶었어요. 실제로 그때 저희 학교 동기들이 대학로 무대로 나가면서 굉장히 발전한 모습을 보았고, 그랬기 때문에 굉장히 혼란스러운 시기였거든요. 그랬었죠. 굉장히 좀 어지러운 시기였는데, 전 <즐거운 인생>을 통해서 그만한 가치에 달하는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연극 무대에 잔뼈가 굵은 세 배우를 만난 것도 하나의 복이라고 생각되네요.
천운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저랑 나이대가 비슷한, 혹은 좀 더 나이가 많은 다른 배우분들도 부러워해요. 정말 넌 돈 주고도 배우지 못하는 것들을 배웠다고, 오히려 전 돈 받고 배웠잖아요. (웃음) 어쨌든 다들 부럽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런 분들과 같이 작업을 한다는 건 엄청난 소득이 될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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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은 배우로서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좋은 계기가 생긴 만큼 스스로가 앞으로의 청사진을 그려봄직도 한데.
일단 계획은 경험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아직은 어리고 배워야 할 것도 굉장히 많지만 제가 너무도 존경하는 선배님들이나, 저희 학교에 계시는 교수님이나 공통적으로 배우로서 가지고 있어야 할 기초적인 경험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리고 그런 경험들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나름대로 배운 지식들이나 경험을 쌓는 훈련법도 알려주셨죠.

학업과 연기를 병행하기 쉽진 않을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중고등학교는 많이 못나갔지만 대학교는 악착같이, 정말 거의 매일매일 나갔어요. 그런데 한번은 주변의 동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너무 부러워졌고 그들의 심정이 궁금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 모든 것들이 느끼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거의 생떼를 쓴 적이 있어요. 저희 매니저한테. (웃음)

아르바이트?
사실 작년에 너무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어요. 저와 동갑인 동기들은 방학에 아르바이트 하면서 한 시간 동안 번 몇 천원을 꿀맛처럼 여기고, 그렇게 번 돈으로 자랑스럽게 친구들한테 소주 한잔씩 사는 모습이 전 너무나 멋져 보였어요. 물론 저도 지금 돈을 벌고 있긴 하지만 전 그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순수함이 부러웠어요. 내 또래 친구들이 돈을 어떻게 버는지에 대해서 되게 궁금했었고. 그래서 돈이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까 그냥 커피전문점 같은 데서 파트타임으로 하루 몇 시간만이라도 아르바이트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했죠. 결국엔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 땐 정말 그런 생각까지 가지고 있었어요. 앞으로도 그렇게 직접 경험해보고자 하는 의지를 많이 중요시해야 할 것 같아요.

만약 아르바이트를 했다면 좋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아마 영업방해가 되지 않았을까요? (웃음)
그렇죠. 그래서 안됐던 것 같고. 사실은 제가 유명한 커피전문점 본사에 연락해서 돈 안 받겠으니까 2시간만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었는데 실질적으로 하진 못했죠. 지금도 하고 싶은 맘은 있어요. (웃음)

그래도 배우들은 연기를 통해서 간접경험들을 하잖아요. 그런 부분에 대한 재미를 찾아가는 것도 괜찮겠어요.
네. 배우로서는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우리는 다른 인물들의 인생을 간접적으로 작품 안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이기 때문에, 물론 그런 것들을 작품 안에서 경험할 수 있지만 결국엔 연기로 보여주는 것들은 진실인가, 거짓인가의 문제 같아요. 기초적인 연극무대에서도 그렇고. 그런 것들이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한 훈련이 필요하고,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는 그들의 감정을 느껴야만 될 것 같고. 누군가가 그런 말 했었는데 ‘배우는 계속 배워야 하기 때문에 배우다’란 말을 들었던 적이 있어요. 그 말이 저에겐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기다리다 미쳐>라는 영화도 찍은 것으로 아는데, 군입대를 소재로 했다고 들었어요. 고무신이라고 하나? (웃음) 군대에 대한 간접경험이 됐나요?
군복 입고 훈련 같은 걸 몇 번 연출했던 그게 뭐, 어디 경험이겠어요. 돌 맞을 거 같아요. (웃음) 경험했다고 하면. 군대 갔다 오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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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촬영한다는 건 지극히 간접적인 거라서, 사실 간접적이라고 말하기에도 무례할 수 있는 비주얼만 제가 입어본 거죠.

솔직히 난 20대 초반에 당장은 군대에 대해 깊이 생각 못 하다가 1,2년 지나니까 갑자기 피부로 와 닿는 고민이 되더라고요. 확실히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를 가기 전까진 군대에 대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지금 본인의 나이가 딱 그 시기라고 생각되는데, 주변의 친구들도 지금 한창 갈 때니까.
대학 동기들은 하나 둘씩 가는 타이밍인 거 같아요.

그 때가 가장 번뇌가 밀려올 때에요. (웃음)
동기들이 한창 고민하다 하나 둘씩 가더라고요. 그리고 이번 학기 2학년을 마친 후가 피크인 거 같아요. 보통 다들 지금쯤 군대를 가는데 전 모르겠어요. 전 이제 막 배우가 되겠다는 제 도화선에 불을 붙인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실제로 지금의 결과물들도 많은 분들이 성원해주셨고, 그런 것들이 계속 이어져오는 거 같아요. 처음으로 이제 배우로서 나가야 할 길을 찾아서 가고 있는데 이 길을 아직 더 가보고 싶어요. 더 확고하게 밀고 가다가 정말 배우다, 쟤는 정말 배우다, 란 소리를 들었을 때, 아마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일단 자신의 나이 대에 맞는 연기를 하고 있지만 본인의 의지대로 배우의 길 안에 머물러서 나이를 먹는다면 성인 연기를 보여줄 때가 오겠죠. 스스로 본인이 후에 어떤 연기자로 성장해 있었으면 하나요?
주변에서 그런 말씀들을 많이 하시는데, ‘너, 음반 언제 내냐’고. 계속 들어왔어요. <즐거운 인생> 하기 전부터. 구체적인 제의도 들어오고 그랬었는데 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건 배우의 모습이거든요. 만약 나중에 제가 20년, 30년이 지나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기할 수 있는 배우의 모습이라면, 아주 솔직한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그 배우의 모습이, 그러니까 장근석이란 배우가 2~30년 후에 연기를 굉장히 잘 한다는 배우로 인식됐으면 좋겠고, 연기를 잘 하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하는 배우였으면 좋겠고, 그만큼 연기나 배우에 대한 직업에 매진할 수 있는 순수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가장 겸손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 때도 오만함을 가지지 않고 순수한 열정으로 노력할 수 있는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사실 이준익 감독님 영화가 항상 노는 영화였는데 그 중, <즐거운 인생>이 제일 대놓고 노는 것 같았어요. (웃음) 어쨌든 배우로서 놀듯이 연기할 수 있다는 것도 즐거운 인생을 사는 방법 아닐까요. 배우로서 앞으로 어떻게 놀아보길 바라나요?
아직까지는 배우가 되기 위해서 배우고 있는 배우가 제 위치인 거 같아요. 그런데 배울 때는 겸손하고 성실하게 배우되, 그것을 캐릭터로 표출할 때는 과감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렇게 과감하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죠. 기죽거나 눌려서 내 자신을 표출하지 못하면 배우로서 굉장히 안타까운 일일 테니까. <즐거운 인생>같은 경우는 워낙 선배님들이나 감독님이 저에게 편한 자리를 만들어주셨기 때문에 제가 거침없이 카메라 앞에서 까불 수 있었고, 싸울 수 있었죠. 그런 모습, 그 기분을 앞으로도 이어가고 싶어요. 점점 하나씩을 내 거로 만들면서, 하나씩 배우면서, 카메라 앞에서도 자신감 있게 놀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즐거운 인생>이란 어떤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자신감. 자신감이 좋아요. 저는 누군가가 저한테 ‘넌 지금 행복하니?’ 라고 물어본다면 ‘네, 저는 너무 행복해요.’ 라고 말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너무 행복해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 그 자신감이 결국엔 저를 계속 밀어주고 있는 힘이고, 물론 이제 막 젊음을 누리는 이십 대 초반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앞으로도 이십 년, 삼십 년 그런 모습을 제가 갖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이 육십이 돼서 어깨에 힘주는 모습보다는 자연스럽고 밝게 웃으면서 나는 너무 행복하단 자신감을 갖고 있는 그런 할아버지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럼 일단 지금의 장근석은 <즐거운 인생> 중이군요.
저는 너무 즐겁죠. 그리고 굉장히 만족해요. 주어진 제 삶에 너무나 만족하니까, 물론 목표는 아직 저 멀리에 있어요. 지금의 내 인생에 만족하는데 목표는 저기 있으니까, 이제 목표를 향해서 만족할 수 있게 나아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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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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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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