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돌아온 감독 김지운이 드디어 한국에서 다시 메가폰을 잡는다. 그런데 제목부터 심상찮다. <사랑의 가위바위보>라니, 코오롱과 함께 하는 단편 프로젝트의 일환이라지만 두 눈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그래서 그를 찾았다. 그리고 물었다. 그가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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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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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후, 실종된 여자가 발견됐다. 흐르는 강물 안에서 머리만 덩그러니 남겨진 채로. 국정원 경호실장이자 그녀의 약혼자인 수현(이병헌)은 결심한다. 그녀가 당한 모든 것을 그 놈에게 되돌려주겠노라고. 그리고 수현은 비로소 놈을 만난다. 연쇄살인마 경철(최민식) 앞에 수현이 나타난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에게 악마가 된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를 뒤바꿔가며 상대를 파멸시키기 위한 게임을 거듭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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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꿈을 꾼다. 그리고 꿈은 언제나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소녀는 어머니의 사고가 있던 날의 기억을 잃었다. 그래서 정신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던 중이다. 하지만 비로소 퇴원했고, 자신을 데리러 온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엔 반가운 언니가 있지만 반갑지 않은 새엄마도 머물고 있다. <안나와 알렉스: 두자매 이야기>(이하, <안나와 알렉스>)는 그 자매와 새엄마 사이의 갈등을 다룬 이야기다. 안나(에밀리 브라우닝)와 알렉스(아리엘 케벨)는 아버지(데이빗 스트라탄)의 새로운 연인 레이첼(엘리자베스 뱅크스)을 경계하고 그녀를 주시한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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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을 리메이크한 <안나와 알렉스: 두자매 이야기>(이하, <안나와 알렉스>)는 모체의 유전적 영향력을 어필하기 보단 자신만의 개성을 공고히 다지려는 산물이다. 물론 유전인자를 무시할 수 없는 골격과 외양은 전자의 기억을 소환하기 좋은 자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안나와 알렉스>는 서정적이며 원초적인 호러로 분위기를 장악하던 <장화, 홍련>과 달리 물리적인 실체를 동원해 미스터리를 설득시킨다. 폐쇄적이고 음습한 기운이 동화적인 순수와 결합돼 중의적인 심리를 풍기던 전자와 달리 후자는 전형적인 틴에이저 형태의 이미지에 병리학적 컴플렉스 증세를 더하며 인과적 내러티브를 완성해나간다. <장화, 홍련>의 분위기 자체에 매혹된 관객이라면 <안나와 알렉스>를 그만큼 하대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독자적인 영역에서 보자면 야심에 걸맞은 결과물이라 평할 만하다. 다만 연출적 자질은 평범하고 관객의 혼선을 도모하려는 복선들은 쉽게 허무해진다. 설득력은 있지만 놀라운 구석을 찾기도 힘들다. 평범하다는 말은 때때로 장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되기도 한다. <안나와 알렉스>는 아무래도 그 중간 즈음에 머문 영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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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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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를 (의도적으로) 연상시키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The good the bad the weird>(이하, <놈놈놈>)은 전자의 명성에 무임승차하고자 조합된 문자 나열의 결과물 따위에 불과한 것은 분명 아니다. 그렇다고 <놈놈놈>을 마카로니 웨스턴(스파게티 웨스턴)의 동양적(엄밀히 말하자면 한국적) 변주라고 섣불리 규정해버리는 것도 탐탁치 않다. 일단 <놈놈놈>의 부분을 채우는 다양한 이미지들은 대부분 어디선가 한번쯤은 본듯한, 그리 낯설게 보이는 것들이 아니다. 하지만 그 낯익은 이미지들이 조합된 전체적 형태는 낯설게 입력된다. 이는 그 이미지들이 조합된 결과물이 하나같이 과도기적인 형태로 혼재된 채 무질서적 세계관을 형성하는 까닭이다. 이런 시각적 이해는 그 당시 주인이 불분명했던 만주벌판의 지정학적 요건과도 맞물려 교묘하게 시대상과 연관되어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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