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햇살을 받고 정제된 소금과 맑고 깨끗한 천연의 물, 기름진 토양 위에서 자란 콩. 깊은 맛이 우러나는 좋은 된장을 만들기 위한 기본적인 재료들. 하지만 이 모든 재료들이 마련된다 하여 꼭 좋은 된장이 빚어질 수는 없는 법. 이 모든 재료를 빚어낼 손의 정성도 중요하고, 오랜 시간 제 몸에 된장을 품을 장독대가 튼실해야 하며 풍부한 햇살과 적절한 바람을 맞을 시간이 필요하다. 그 모든 조건을 완벽히 갖춘다면 필히 깊고 풍부한 맛이 담긴 된장을 빚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모든 조건을 다 갖췄다 해도 다다를 수 없는 궁극의 맛을 선사하는 특별한 된장의 비결 그것은 무엇일까.
탈옥 후 5년 동안 잡히지 않았던 희대의 살인마 김종구는 결국 경찰에게 검거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를 검거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은 강력반 김형사도, 이형사도 아닌, 된장이다. 그러니까 사연인즉슨 된장찌개를 먹다가 자신을 검거하러 접근하는 형사들도, 자신을 겨눈 총부리도 인식하지 못한 채 마저 된장찌개를 밑바닥까지 긁어먹고서야 넋이 나간 표정으로 수갑을 찬 채 경찰차에 올랐다는 것이다. 이 기막힌 사연을 전해들은 특종PD 최유진(류승룡)은 이를 취재 조사하던 중, 그 신비한 된장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된장녀, 장혜진(이요원)의 존재를 알게 된다.
너무도 익숙하기에 낯선 제목인 <된장>에서 ‘된장’은 일종의 미끼이자 핵심이다. 희대의 살인마의 경계를 일순간 해체시켜버린 된장찌개의 비밀을 쥔 여인의 정체를 탐문해나가는 영화의 내러티브는 곧 그 된장에 얽힌 물음표의 실체에 접근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 의문 너머에 자리한 사연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수순으로 관객의 흥미를 이어나간다. 마치 후각을 통해 얻어진 식욕이 미각적인 만족으로 이어져 나가듯 <된장>은 소재 자체가 발생시킨 일종의 흥미를 이야기 본연의 감동으로 승화시켜나가는데 성공했다. 이는 단지 소재를 통해 완성해낸 이야기의 완성도가 탄탄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된장이라는 소재의 특성을 이야기에 착안해낸 기획력과 그 기획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낼 것인가라는 구성력이 이를 든든하게 지원하고 있는 덕분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된장이라는 소재를 되레 심오하고 세심하게 다룸으로서 소재에 의외적인 특이성을 부여하고 흥미를 유발시킨 뒤, 이를 내러티브의 추진력으로 밀고 나간다. 기본적으로 완급조절이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능수능란한 연출로 구사하는 <된장>은 안정적인 배우들의 연기에 힘입어 이야기가 품고 있었던 가능성을 실현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좋은 된장을 만드는 비결이 단순히 이상적인 환경 조건을 공식처럼 더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정성과 기다림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된장>은 뛰어난 이야기란 것이 단지 좋은 소재와 완결성의 구조의 조합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맛있는 이야기는 많아도 숙성된 감동을 지닌 이야기를 찾기란 쉽지 않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질려도 감동은 질리지 않는다. 그리고 <된장>은 질리지 않는 감동을 맛있게 이야기하는 진국과 같은 작품이다.
허영만 작가의 원작만화를 영화화한 <식객>은 33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식객: 김치요리>(이하, <식객2>)는 그 성공에 힘입은 후속적 기획이다. 사실상 <식객2>는 허영만 작가의 원작 브랜드 네임밸류만을 차용할 뿐, 그 작품의 성격과는 무관한 시리즈가 됐다.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의 출연과 이름만 같을 뿐 성격적으로 다른 중심인물의 등장은 이미 <식객2>가 원작을 염두에 둔 기획이 아님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식객2>는 원작의 서사와 캐릭터 관계를 염두에 둔 전작의 후속편이란 형태 안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말이다.
일본 수상관저 수석요리사인 장은(김정은)은 한때 기생집이었던 요리집이자 자신의 어머니 수향(이보희)가 있는 ‘춘향각’으로 돌아온다. 춘향각은 장은에게 기생의 딸이라는 트라우마를 안긴 공간이다. 그래서 장은은 어머니가 아끼는 춘향각을 제 손으로 없애려 한다. 한편 트럭을 타고 전국을 누비며 채소 장사를 하는 성찬(진구)이 친어머니처럼 모시는 수향의 ‘춘양각’을 없애려는 장은의 야심을 알게 된다. 결국 장은의 야심을 막고자 하는 성찬은 춘양각을 지키기 위해 장은이 출전한 김치대회에 나가 장은에 맞선다.
원작자의 의도와 무관하다는 점에서 스핀오프라기 보단 일종의 팬픽에 가까운 <식객2>는 어찌됐건 <식객>에 이은 시리즈 속편이다. 동시에 음식을 소재로 둔 영화란 기조는 이어지고, 원작만화와 전작에서도 등장하는 대사, “세상의 모든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 어머니의 숫자와 같다”가 반복된다는 점에서도 그 모토의 계승을 연출하려 한다. 사실상 요리 영화라고 하지만 <식객2>가 주시하는 건 요리보다도 인간의 관계다. 전작의 단순한 선악구도에서 벗어난 캐릭터의 사연은 관계를 보다 입체적으로 만들 수 있는 자질이란 점에서도 발전적이다. 요리의 완성보다도 요리를 만드는 사람의 손과 마음에 주목한다.
그러나 그 손과 마음에 어린 진심을 포착하기 보단 자꾸만 진심을 연출하려 든다. 요리를 만드는 이의 정성의 온기를 전달하기보다도 눈물을 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인상을 거둘 수 없다. 김치를 응용한 다양한 요리들을 소박한 앵글로 포착함으로써 <식객2>는 여기서 요리란 단지 이야기와 관계를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함을 역설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진심이 드러나는 방식이다. 스스로가 요리를 만드는 사람의 마음을 강조하는 <식객2>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만 같이 군다. 요리를 소박하게 연출한다 해서 진심이 상대적으로 부각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식객2>는 자신의 의도를 살리지 못하는 반면, 그 의도를 감출만한 것들만, 혹은 그 의도에 좋은 양념이 될만한 재료를 자꾸 덜어낸다. 음식영화라는 장점을 스스로 포기한다.
결과적으로 <식객2>의 의도는 존중할만하다. 하지만 의도가 앞설 뿐, 전략이 서투른 영화의 완성도는 존중할만한 형태가 아니다. 전반적으로 간이 싱겁고, 맛이 애매한 영화가 됐다. 인물의 과거를 끌어내 청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그 인물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최소한 완벽한 밥상을 차리진 못했지만 적당한 손맛을 만끽하게 해준 전작의 묘미에도 미치지 못한다. 어쩌면 <식객2>는 애초에 그런 결정적인 맛의 비결을 모르는 영화였을지도 모르겠다. 전작의 흥행성에 고무되어 기획된 속편의 운명적인 결과란 이런 듯 뻔하고 뻔한 수순을 걷게 될 뿐이라고 쉽게 단정지어 버릴만한 또 한 편의 사례로선 유용하다. <식객2>엔 속편이 지녀야 할 깊은 맛도 새로운 비범도 발견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