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청풍운>은 <무간도>이후로 다시 홍콩 느와르라고 불리던 홍콩영화의 컨벤션을 복기하는 영화같다.
맥조휘(이하, '맥'): <무간도>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런 가운데 홍콩 영화가 중국 시장에 진출하게 됐고, 중국과 합작으로 제작하게 되는 경우가 생겨났다. 그만큼 중국 시장에 맞춰야 되겠지만 우린 홍콩 사람인 이상 홍콩 스타일을 추구할 수 밖에 없고, 홍콩인이기 때문에 홍콩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런 근본적인 이유 때문에 홍콩 스타일이 되살아날 수 밖에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절청풍운>은 금융비리를 주도하는 기업인과 공권력 사이의 충돌을 다룬다. 그 가운데서 물질주의적 욕망에 휩쓸린 개인적 갈등이 중요한 줄기를 이룬다. 금융 비리를 수사하던 형사들이 물질주의적 욕망에 현혹되어 범죄를 공모한다. 단지 영화적 분위기를 이루기 위한 소재적 선택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현재 세태에 대해서 느끼는 지점을 반영한 스토리가 아닐까 궁금하다.
장문강(이하, '장'): 관계적 설정에 관한 부분 가운데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의 생활 속에서 가져온 것들이 있다. 서울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홍콩은 2007년에 주가가 폭등했다. 그래서 그 당시 홍콩에서는 주식을 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물질주의가 팽배했었다. 그리고 이런 물질주의와 공권력에 대한 문제는 현대 도시를 살아가는 이들이 매일 부딪히게 되거나 이미 부딪힌 문제다. 누군가는 이런 상황에 관심을 가져야 된다. 아무래도 일단 우리가 관심을 가진 문제였기 때문에 이런 영화를 찍게 됐지만 만약 누군가 일찍 관심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이런 영화를 찍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맥: 한가지 더 말하고 싶은 건 금융범죄다. 금융위기가 일어났는데 이 위기의 막후를 차지하는 세력이 있다. 그런데 사실 모든 영화 속에서 은행을 턴다던가, 살인이라던가, 이런 것들은 다뤄지지만 진짜 심각한 금융범죄는 다뤄지지 않는다. 이건 현재 홍콩에서도 나타나는 문제다. 금융사범들은 당연히 감옥에 가야 할 사람들이지만 이 사람들은 만약 구금된다 해도 1~2년 후에 풀려나곤 한다. 이들을 정제하기란 사실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어쩌면 작은 도둑 위에 있는 큰 도둑을 잡는 이야기이자 거대한 범위의 권선징악을 묘사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이전에 비극적 형태의 결말을 묘사하는데 물질주의적 욕망에 이끌려 잘못된 선택을 한 소시민적 형사들의 비극을 묘사한 이후에 그 비극을 잉태한 거대한 배후에 대한 복수적 처단을 그린다. 소시민적인 인물들의 비극을 묘사하는 방식도 징벌적인 태도로 읽힌다.
장: 작은 도둑이나 큰 도둑이나 똑같다는 걸 먼저 강조하고 싶다. 범죄를 지었다면 거기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된다. <절청풍운>은 세 형사의 시각을 통해 상황을 바라보는데 이를 통해서 사람들의 공감대나 동정심을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실제 상황으로 보자면 이들은 범죄 행위를 저질렀으니 분명 벌을 받아야 된다. 물론 이 사람들은 작은 범죄자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 막후에 악한 세력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똑 같은 죄인이므로 영화에서 그런 악당들과 구별하지 않는다. 영화의 결말에서 그 소시민적 죄인과 막후의 세력들이 같이 떨어져 죽지 않나. 크던 작던 잘못은 잘못이라고 얘기하고 싶다는 동기에서 그런 결말을 만들었다.
<무간도>도 그렇지만 <절청풍운>도 인물이 관계적 엇갈림이나 우연찮게 사건에 휘말리는 인물의 딜레마를 묘사한다. 어떤 상황이나 관계에 휘말리는 인물의 심리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
맥: 스토리가 재미있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보다 관심을 갖게 되는 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리고 인간성 문제다.
<무간도>부터 지금까지 유위강 감독을 포함해서 세 사람의 공동작업이 많았다. 이렇게 세 사람이 지속적으로 공동 작업의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게 만드는 이유가 뭘가?
맥: 익숙해서? (웃음)
장: 금전적인 요인이 가장 크다. 최근 홍콩에선 금전적으로 영화 제작 규모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상적인 예산을 확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래서 영화 한편을 제작할 때, 몇 명의 감독이 함께 따라붙어서 제작하면 이를 분담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한 명의 감독이 제작하게 된다면 질적인 부분은 포기하고 가자, 이렇게 되지만 <무간도> 같은 경우엔 여럿이 같이 제작했기 때문에 28일 내에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한 명의 감독이 제작했다면 질적인 부분도 보장할 수 없고 속도도 맞추지 못했을 거다.
현재 한국도 제작비를 절감하는 문제에 대해서 고민 중이다. 한국의 영화시장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나?
장: 구체적으로 한국의 상황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예전에 한국영화가 굉장한 호황을 누렸을 때 <데이지>를 찍었는데 영화사 사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1주일 찍었을 뿐인데 이걸로 돈을 많이 벌 수 있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이젠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현실을 직면해야 될 시기가 된 거 같다. 시장이 위축된다는 걸 느끼면 그만큼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해야 되는 현실을 직감해야 한다. 홍콩에선 스태프나 배우, 감독, 작가, 기계 설비를 맡은 인력들도 예전엔 어느 정도 최고 수준으로 받았지만 지금은 가격을 많이 줄여야겠다는 상황에 다다르게 됐고, 지금 홍콩은 가격이나 임금 수준을 내리기로 결정하자마자 바로 수준이 확 내려갔다. 맥 감독도 한때 조감독이었는데 예전에 조감독을 할 때 임금수준은 지금 조감독의 2배 정도였다. 그 때는 굉장히 쉽게 돈을 벌었다. 지금은 예전에 고용해서 쓰던 스태프의 절반도 미치지 못하는 숫자로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조감독 시절엔 한 번에 2편의 영화를 찍고 있을 때도 있었고, 어떤 배우는 한 번에 7편 정도의 제작에 참여할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럴 수 없다. 지금 홍콩은 그런 상황에 직면했는데 지금 한국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다. 한국의 상황이 홍콩처럼 벌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한국이 직면한 현상도 홍콩의 90년대에 직면한 문제와 비슷한 문제가 많을지도 모른다. 사실 홍콩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라고 이런 문제들을 직시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걸 직시하지 못한 사람들은 굉장히 참담한 결과를 맞이하게 됐다. 결국 그건 살상력이 큰 도태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도태되지 않는 게 중요할 것 같다.
맥: 사실 한국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소재라고 생각한다. 홍콩 영화는 중국과 합작해야 되고 결국 중국상영을 염두에 둬야 된다. 중국상영을 고려하면 결국 소재 폭도 제한된다. 이런 문제를 겪지 않는 한국이 매우 부럽다.
그런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도 감독이자 제작자 입장에서의 자구책이 궁금하다.
장: 아까 임금 문제에 대해서 주로 얘기했지만 여러 가지 문제를 동원해서 이 문제를 타계하려고 한다. 예전엔 좋은 시나리오를 써야겠다는 고민에만 집중했다면 지금은 여기에 돈이 얼마나 들어갈지, 이런 것들을 고려하면서 이 장면이 꼭 들어가야 하는 장면인지 생각한다. 될 수 있으면 간단하고 절약할 수 있는 방식의 시나리오를 쓰려고 한다. 어쩌면 그게 우리 팀의 장점이라고 볼 수도 있다. 왜냐면 우리 두 명이 있음으로 해서 전체적인 과정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만약 여기에 돈을 얼마나 들였는지, 어떤 방식으로 사용했는지, 이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면 돈을 아낄 수 있다. <절청풍운>만 해도 33일만에 영화를 완성했다. 분업이 잘돼있다는 건 분명 우리 팀의 장점이다.
지금 현재 홍콩 영화가 아시아 영화권에서 차지하는 역할이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
장: 사실 굉장히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웃음) 갈수록 모르겠다. 1997년에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면서 홍콩도 중국의 일부분이 됐다. 그러므로 영화를 구분할 때도 홍콩영화가 아니라 중국영화라고 해야 되는 셈이다. 예를 들어서 미국영화를 가지고 LA영화라고 하거나 뉴욕영화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90년대에는 홍콩영화, 중국영화 이렇게 구분했다지만 그 후로 10여 년간 이런 식으로 구별하지 않았다. 홍콩은 굉장히 자유로운 도시이고, 금융 허브라 할 수 있고 상조(相助)의 도시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많은 요소를 합쳐서 홍콩이란 지역적 위치를 정의할 순 있지만 아시아 영화권에서 점하고 있는 위치에 대해선 내가 감히 뭐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자본의 문제가 많은 것을 좌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 홍콩영화의 황금기라고 불리던 시절로부터 많이 멀어졌지만 현재 홍콩 영화의 최전선을 이끄는 건 앞의 두 사람을 비롯해서 유위강 감독이나 해외에서 거장이라 불리는 두기봉 감독 등이 있다. 홍콩영화가 앞으로 어떤 비전을 가져야 할지 생각해본 바가 있나?
장: 홍콩은 지금까지 기술적인 문제에 많이 부딪혔다. 배급이나 마케팅이 부족했고 극장도 문제가 많았다. 홍콩은 부동산 가격이 매우 비싸서 극장사업을 해나가기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의 비전이라면 전세계인들이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자는 거다. 오늘 극장에서 우리 영화를 상영하면서 반응을 살펴보니 홍콩이나 중국 관객의 반응과 매우 유사하더라. 그래서 내심 굉장히 기뻤고, 이는 우리가 고민해온 것들이 성과를 거두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이런 방향으로 작품을 완성해나갈 거다. 여전히 좁은 식견으로부터 얻은 비전일지 모르지만 이런 희망이 실제로 현실화되길 바란다.
맥: 최근 홍콩영화가 대륙으로 진출해야 되는 상황이지만 아무리 대륙이나 세계시장에 진출했다 하더라도 일단 홍콩 내 사람들이 우리 영화를 보지 않으면 그건 실패한 것이다 다름없다. 만약 우리의 비전은 우선 홍콩 시장에서 성공하고 외부로 나가자는 것이다.
(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