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는 정의롭다는 말은 언제나 부도수표 같고, 보수가 정의롭지 않다는 말은 그저 편안한 도피일 뿐이다. 어느 쪽인가는 늘 중요하지 않다. 어느 쪽이든 맞는 얘기를 하느냐가 관건이지. 나는 진보이기 때문에, 나는 보수이기 때문에라는 행동강령 따위는 개똥만큼도 중요하지 않다. 그건 그저 정치가들이 자기 편을 손쉽게 끌어모으기 위해 동원하는 말장난일 뿐이다.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일상에서 진보라고 말하면서도 보수적으로 군다.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자신만 모를 뿐이다. 그저 '진보' 혹은 '보수'라는 신앙을 통해서 그 자리에 안주하고 싶은 것뿐이다. 그러니 언제라도 그 프레임을 벗어던지고 최선을 다해서 옳은 것을 선택해야 한다. 정의는 대부분 지고, 아주 가끔씩 이긴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서 그 확률을 높일 수밖에 없다. 어느 쪽이든 상관 없다. 중요한 건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오른손도, 왼손도, 두뇌의 명령을 따르고 있음을 잊어선 안된다.
혹자가 이명박 욕을 했다. 나는 듣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 치가 종종 이명박 같은 짓을 해대는 것을 떠올렸다. 가끔 정치적 진보를 표방하는 이들이 실생활에서 스스로 부조리하고, 권위적 억압을 불사하는 꼴을 보다 보면 구역질이 난다. 정치적인 진보가 일상에서 꼴보수처럼 구는 꼴을, 그리고 심지어 그것이 ‘어쩔 수 없다’란 식의 합리를 만들어나가며 본인의 일상을 강요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노릇이다. 사적인 대화 중에는 자신의 이상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분신이라도 해낼 것 같은 진보적 투사가 공적인 일상 속에서 둘도 없는 꼴보수가 될 때의 광경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주둥이와 뇌의 지역자치제 정책이라도 펴고 있는 것인가 의심스럽다. 이런 진보적 꼰대들의 행위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쥐어주는, 경종을 울리는 이미지로 각인되곤 한다. 그 삶을 경계해야 한다.
만약 누군가가 내가 진보와 보수 중 어느 편에 속하는지 가늠해본다면 아마 보수보단 진보에 가깝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난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고려하는 게 옳다고 믿고, 조중동보단 한겨레, 경향, 시사인을 좋아하며 사회적 변화를 설득하려는 편이므로. 분명 보수보단 진보의 프레임으로 날 해석하는 게 어울리는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진보의 프레임이 어떠한가가 중요하다. 서로의 취향이 다르듯 진보와 보수를 이해하는 스타일도 다를 것 같다. 자, 여기서 한가지 물음. 당신이 생각하는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무엇인가. 만약 당신이 진보란 공정하고 도덕적이며 윤리적이어야 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면 연병장에서 PT체조 8번을 150회 정도 반복시킨 다음 한번 다시 물어보고 싶다. 그렇다면 보수는 불공정하고 비도덕적이며 비윤리적이어도 된다는 거? 님하, 쫌.
도덕과 윤리, 공정성에 대한 프레임으로 진보와 보수를 나눈다는 게 어찌나 간편한 건지 잘 안다. 현 상황에서 그것이 어찌나 잘 먹히는 주장인지도 잘 안다. 흔히 강남 땅투기 사장님들의 논리가 이 나라의 보수이며 딴나라당의 차떼기 정책도 이 나라의 보수이며 조갑제 옹의 데모하는 것들 대가리 날려 뻘플도 이 나라의 보수적 마인드로 인식된다는 거 잘 안다. 무개념이든 막장이든, 그 비논리적인 자가수성의 비인간적 처사가 보수로 자각되고 있다는 거,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보수는 변화를 싫어하는 게 맞으니까. 자신들의 기득권을 움켜쥐고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혹은 그 권위의 영생을 위해 불변의 무한 루프로 이 세상을 무한반복 시키려는 태도는 흡사 텔미의 후렴구만큼이나 막강한 것이다. 또한 그 기득권의 석좌에 오르기 위해 공정택에 투표하는 강북의 어머니들의 심정이란 것 또한 마찬가지다. 흔히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으로 구별될 수 없는, 너나 할 것 없이 기어오르고야 말겠다는 집념으로 이 나라의 1%에 합류하고야 말겠다는 피라미드적 발상이 지배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비공정한 보수를 살찌우는 것임을 상기해야 한다.
우리가 진보와 보수를 배트맨과 조커의 태도로 양분할 때 <다크 나이트>와 같은 사단이 난다. 보수의 도덕적 결함 따위는 계란으로 바위 치듯 쉽게 허물어지고, 진보의 도덕적 결함은 그 씬을 동강내다 결국 타이타닉처럼 침몰시켜버리는 일상다반사가 되풀이된다면 그건 대체 왜 그런 것이냐. 신해철이 학원광고를 찍었다 하여 찍지마, 식빵, 내 성질이 뻗쳐서, 이렇게 화풀이하다 끝나는 게 아니라 사람 하나를 침몰시키고 목을 조르려다 그 씬 자체를 부정하게 만드는 수순 또한 그런 강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전여옥이 오크질을 하건, 나경원이 날치기 법안 통과 후 썩쏘를 지으며 뉴스에 등장해도 그것을 보고 분개할 줄만 아는 태도는 그렇다면 무엇인가. 당신의 공정함은 대체 어느 방향으로 작동하는가.
실리적인 문제다. 당신이 진보를 논한다면 일차적으로 옳은 것과 타당한 것을 찾아 떠도는 귀와 눈을 지니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겠다. 단지 그 뿐이라면 진보하지 마라. 옳은 것과 타당한 것에 대한 검증에 혈안이 되고 이에 집착하다 스스로 허물어지는 이라면 썩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스스로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산에 올라가 풀뿌리를 캐먹더라도 자신의 양심 어느 한 가운데라도 더럽히지 않겠다는 도 닦는 심정으로 진보를 논한다면 차라리 관둬라. 그 자리는 실리를 논하는 자리지 윤리적 자세로 서로를 감시하고 자기 검증으로 충혈된 눈을 비벼야 하는 자리가 아니다. 진보는 변화를 논한다. 그 변화의 목적은 서로 좀 더 같이 잘 사는 것을 바라는 태도에 있다고 본다. 변하지 않는다는 커뮤니티는 아무리 제도적인 정비가 완전하다 한들 고인 물과 같이 썩어가는 인간의 심리에 의해 함께 탁해지기 마련이다. 건강한 보수만큼이나 건강한 진보가 필요하다. 독설과 비판만으로 보수를 겨냥하는 태도는 그저 진보 진영의 워크샵에 불과하다. 정책적 변화를 추진하고 하나의 목표를 향한 조직적 기제를 몰아붙여야 한다. 그 안에서 발생하는 불공정함은 끊임없이 개선하고 자정 하려는 노력이 중요할 뿐, 그것이 씬 자체를 무너뜨리는 거대한 구멍이 돼선 안 된다. 당신이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응당 그래야 한다. 단지 진보의 탈을 쓰고 공정한 척하길 즐기는 것이라면 차라리 보수해라. 땅이 꺼져라 보수를 욕하는 게 진보의 태도라고 믿고 끊임없이 자신의 공정함을 기치로 내거는 게 진보라면 차라리 그냥 편하게 살아라. 행복하기 위해서 진보를 내걸어라. 자존심이 아니라 실리를 얻기 위해서 진보를 주장해라. 그럼 우린 좀 더 편하게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진보란 행복추구권을 위한 주장이지, 당신을 위한 명상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