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도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다. 작품마다 명암이 엇갈렸다. 보고 싶은 작품은 여전히 넘쳤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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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호 코맥 매카시가 쓰고 거장 리들리 스콧이 연출한 <카운슬러>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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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 소프틀리>는 오바마의 연설로부터 시작된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아니라 2008년 부시 정권 말기에 공화당의 대선 후보 존 맥케인과 경합을 벌이던 민주당 대선 후보 오바마 말이다. 그리고 영화가 이어지는 내내 조지 부시 미국 전대통령이나 오바마, 미국 전 재무부 장관 헨리 폴슨과 같은 정치인들의 연설이나 발언이 심심찮게 귀를 파고 든다. 만약 당신이 브래드 피트가 출연하는 하드보일드한 킬러물 정도를 예상하고 상영관을 찾은 관객이라면 이미 예사롭지 않은 오프닝 시퀀스만으로도 기대가 빗나갔다는 예감이 들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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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457,768 vs. $39,722,689. 메이저리그의 최고팀과 그 아래에 있는 팀보다도 더 밑바닥에 있는 팀의 간극은 저 수치로 정리된다. 선수 몸값의 총액이 곧 팀의 실력을 대변한다. 수치만으로도 명백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 프로스포츠의 세계에서 이는 흔한 일이다. 이는 메이저리그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세계 모든 종목의 프로스포츠 대부분은 구단의 빈부격차를 통해서 순위의 계층화가 손쉽게 이뤄진다. 뉴욕 양키스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통점은 실력 있는 부자 구단이라는 것. 부자 구단들은 한 시즌이 마감되면 자본을 투여해서 스타들을 영입하고, 새로운 유망주를 발굴하거나 스타를 길러낸 가난한 구단들은 감당할 수 없는 부자 구단의 선수 수집을 넋 놓고 지켜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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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리고 한 여자가 있다. 두 사람은 만나서 사랑했고 하나의 삶으로 융화되길 선택했다. 그리고 거기 한 아이가 생겼다. 그리고 또 한 아이가 생겼고, 다시 한 아이가 생겼다. 그들은 가족이라 불렸고, 더욱 너르게 삶이 분열하고 팽창했다. 하나하나의 생이 모여들어 더욱 커다란 삶의 영역이 자라났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분열하고, 생장하며, 격동하다, 소멸된다. 생명의 태동은 곧 삶으로 자라나 저마다의 세계를 이룬 뒤, 언젠가 사라진다. 단층과 같이 쌓인 시간들은 지층의 역사를 이루고 적층과 균열을 거듭하며 고유의 영역으로 멈춰서다 서서히 풍화된다. <트리 오브 라이프>는 바로 그 사소하고도 거대한 생, 그 자체에 관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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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 어쩌면 존재 자체가 이토록 경이로운 것일까. 생이란 것이 단순히 켜켜이 쌓인 단층적인 서사의 총합이 아니지만 찰나에도 끊임없이 생장하고 분열하는 것이 생이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의 우주이기에 미시적이면서도 거시적이다. 생물처럼 움직이는 카메라가 어느 미시적인 삶을 관조하는 가운데, 그 주변으로 광대한 자연의 이미지가 전시되어 끝내 층위를 이루는데 지켜보는 내내 형용할 수 없는 압도적인 탐미적 감상이 차오른다. 형식적으로 지나친 과장이자 확대 같은데, 그것이 끝내 마음을 광활하게 지배하고 부풀려 감상의 극치까지 떠올라 가닿게 만든다. 신앙적인 영험과 자연적인 신비, 그리고 존재 자체에 대한 존중과 경의, <트리 오브 라이프>는 이 세계의 모든 존재를 향해 연주하는 경건하고 장엄한 심포니다. 실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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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피트는 이제 할리우드의 큰 손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배우로서 자신을 채워줄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선다. 성숙한 자유주의자, 브래드 피드는 여전히 새로운 세계와의 교감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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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기 직전인 한 행성에서 부모의 기지로 우주선에 탑승한 한 아이가 탈출에 성공한다. 그리고 바로 옆 행성에서 탈출한 또 다른 아이와 평행선을 그리며 우주를 비행하다 함께 지구에 불시착한다. 비슷한 운명을 타고난 두 아이는 판이한 외모만큼이나 대립적인 성장기를 보내고 결국 최고의 적수로 자라난다. 초능력을 통해 온갖 사랑을 독점하며 자란 훈남아이는 메트로시티의 영웅 메트로맨이 되고 비호감이었던 아이는 메트로시티의 악당 메가마인드가 되어 끊임없이 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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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이란 말은 부질없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뒤집어 가정하는 건 어디까지나 불필요한 첨언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현실이 아닌 허구 안에서 가정이란 유효한 착상이다. 논픽션이 아닌 픽션의 세상을 그리는 이야기꾼들에게 가정이란 발칙한 야바위이자 무궁무진한 떡밥이니까.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하, <바스터즈>)은 픽션으로 디자인된 논픽션의 세상, 다시 말하자면 영화로 이입된 현실의 역사를 전복시키고 깔깔거리는 유희다. 어쩌면 메가폰을 쥔 당사자가 쿠엔틴 타란티노란 사실만으로도 알만한 사람들에게 <바스터즈>는 싹이 노란 영화일 것이다. 그리고 <바스터즈>는 과감하게 돌진하는 피칠갑의 난장 속에서도 과장과 비유를 뒤흔들어 능수능란한 유머로 발화시키는 타란티노적 시네마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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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배경음과 함께 등장하는 위성사진의 부감이 심상치 않다. 이어지는 장면은 버지니아 CIA본부의 복도, 그리고 뚜벅뚜벅 이어지는 누군가의 발걸음. 엄청난 예감을 일으키는 오프닝이 환기시키는 예사롭지 않은 예감은 그 발걸음의 주인공이 방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반 박자씩 엇나가기 시작한다. <번 애프터 리딩 Burn after reading>은 낮은 톤의 목소리로 비범한 척하기 좋은 농담과 같다.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해프닝은 결과적으로 얻을 게 없는 결말로 종착된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은 <번 애프터 리딩>의 단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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