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이 길었지만 후반전은 시작된다. 전쟁의 시작을 선언한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이하, <적벽대전>)에 이어 본격적인 전쟁으로 돌입하는 <적벽대전2: 최후의 결전>(이하, <적벽대전2>)이 이제야 공개된다. 전편을 통해 전쟁다운 전투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입맛을 다신 어떤 관객들에게 <적벽대전2>는 진정 그들이 보고자 하던 그 ‘적벽대전’이나 다름없다(고 믿을 것이다). 하지만 본래 ‘적벽대전’의 백미는 그 본격적인 전투가 아니다. 그 전투 직전까지의 판도와 그 전투 이후의 양상이 ‘적벽대전’의 묘미에 가깝다.
결과적으로 <적벽대전2>에서도 전투씬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실제적으로 삼국지의 3대 대전이라고도 불리는 ‘관도대전’, ‘적벽대전’, ‘이릉대전’중 전투씬의 묘사 빈도가 가장 떨어지는 것이 바로 ‘적벽대전’이다. ‘적벽대전’에서의 전투는 모든 전쟁의 판세를 결정지은 그 한번의 수전으로 단박에 결판난다. ‘적벽대전’의 묘미는 결코 그 전투가 아니다. 그 마지막 한번의 전투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상대편인 조조(장풍의)는 물론 자신의 주변까지 온갖 책략과 모사로 속여나가는 제갈량(금성무)과 주유(양조위)의 포커페이스적인 수싸움이 백미다. 심지어 주변의 모든 사람이 속아넘어가는 가운데 두 사람만이 꿰뚫고 있는 계책이 접전을 이루고 그 사이마다 제갈량을 제거하려는 주유의 뛰는 음모와 이를 눙치는 제갈량의 나는 해법이 흥미를 더한다. 장군과 멍군의 연속을 지켜보는 묘미가 대단하다.
본래 ‘적벽대전’은 제갈량과 주유의 대결이다. 141분 가량에 다다르는 <적벽대전2>는 애초에 이런 가능성을 최대한 무마시킨 전편의 연장선상에 있다. <적벽대전>은 이미 주유와 제갈량의 관계를 서로를 알아보는 유일한 심미안의 동지로 상정했다. 물론 반전은 가능하다. 하지만 <적벽대전2>는 이를 더욱 공고히 다진다. 궁극적으로 ‘적벽대전’의 가장 큰 묘미가 상실되는 것이다. 물론 이를 극복할만한 이벤트가 몇 가지 있다. 예를 들자면 영화에서도 등장하는 제갈량의 화살 십만 개 모으기가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황개의 고육지계, 방통의 연환계, 제갈량의 동남풍 부르기와 같은 이벤트가 대거 제외됐다. 러닝타임의 압박에 따라 비중이 크지 않은 캐릭터를 삭제하고, 긴 첨언이 필요한 단락들이 잘려나간 셈이다. 그만큼 이야기가 단조로워졌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삽입된 설정들은 전자에 비해 장악력이 부족하다. 물론 새롭게 보충된 사연들은 단지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배치적 목적에 불과한 것만은 아니다. 이는 오우삼이 ‘적벽대전’을 응용하여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와 연관된 것이다.
오우삼이 ‘적벽대전’에서 거두고자 한 궁극적인 실효는 원본의 영화적 재현이라기 보단 현대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예컨대 ‘적벽대전’은 전쟁을 묘사함에 있어서 승패의 우열보다도 전장의 비극을 조명하는데 관심이 많다. 전투씬에서도 도륙당하는 병사들과 나뒹구는 주검을 묘사하는데 여념이 없다. 특히 이를 위해 조조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에 불타는 악인으로 묘사되곤 한다. 반대로 이에 맞서는 강동의 주유와 제갈량은 공익을 수호하는 선으로 그려진다. 그와 함께 전쟁을 바라보는 연약한 여인의 시선이 개입된다. 영화에서 전쟁의 원인이라 규정되는 소교(린즈링)의 역할이 가공되고, 적진을 염탐하는 손상향(조미)은 개별적인 에피소드를 형성한다.
사적인 호감이 반영된 것인지 알 길이 없지만 캐릭터의 이분법은 선명하다. 이는 반대로 캐릭터가 지극히 단순해졌음을 의미한다. 실상 그것이 어떤 선의를 지닌 의도라 할지라도 그런 태도가 분명 이 영화의 다양한 해석적 가능성을 단순화시켰음을 간과할 수 없다. 단순한 반전전쟁영화라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유의 가능성이 어떤 특정한 태도로 인해 봉인되는 건 분명 아쉽다. 특히 삭제되거나 비중이 축소된 인물들에 비해 새롭게 가공된 인물들의 역할적 매력이 그리 우월하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더더욱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적벽대전’의 장관인 화공수상전을 묘사하는 말미는 나름의 수확이다. 텍스트를 통해서 그 전쟁씬을 상상으로 그려봤을 팬들에겐 더더욱 고대할만한 선물이 될만하다. 물론 그 뒤를 잇는 육박전의 양상은 영화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한 일종의 계책이겠지만 이 역시도 딱히 나쁘진 않다. 영화가 원작을 온전히 따라가야 한다는 법이 없다는 전제하에서 이 영화는 어느 정도 독자적으로서 제 갈 길을 갔다고 평할만하다. 다만 그 결말이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끔찍하게 나뒹구는 주검의 향연을 비추던 카메라가 다다른 마지막 순간엔 가장 안이한 결론이 비춰진다. <적벽대전>을 비롯해 <적벽대전2>는 반전적인 휴머니즘을 강력하게 어필한다.
그만큼 양끝으로 단순해진 캐릭터들은 양립된 목적을 가지고 서로의 승리를 위해 끝까지 나아간다. 그 끝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결국 불특정 다수의 죽음을 넘고 넘어선 특정한 소수다. 결과적으로 그 마지막에 다다른 그들은 스스로 다수에 대한 죽음에 대한 책임의식을 해결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그 해결책은 그 죽음의 원인을 만든 이의 끝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 순간에 용서를 내뱉는다. 이는 관대하다 말할 수 있기 보단 무지한 측면이다. 지독한 낭만에 젖어 비상식적 결말을 연출했다. 지독하게 죽음에 대한 혐오를 쏟아내던 영화가 정작 결정적인 죽음에서 회피한다. 사병들의 희생을 밟고 넘어 비로소 만난 적장을 살려준 수장은 무심하듯 시크하게 말한다. 이 전쟁엔 승자도 패자도 없다. 물론 조조는 적벽대전에서 죽지 않는다. 하지만 원작이 디테일한 동선의 흐름과 전후 맥락의 연결고리를 통해 그 과정을 가능케 하는 것과 달리 영화는 다소 안이하게 상황을 방관하고 값싸게 처분한다.
애초에 승패는 화공으로 조조의 배가 타 들어갈 때 결정됐다. 결국 그 후에 벌어진 육박전은 전쟁의 승패보단 조조를 처단하기 위한 싸움에 가까웠다. 그 무리수를 넘어간 장수의 책임감은 일순간 증발한다. 결정적 순간에 지독하게 순진한 척한다. <적벽대전2>는 메시지에 발목이 잡혀서 진짜 전쟁의 양상을 깨닫지 못했다. 감상적인 태도로 바라보는 전장엔 진심보단 연출적 의도가 앞선다. 그만큼 본래의 매력도 상실되고 새로운 가능성도 위축된다. 그저 삼국지를 빙자한 한 편의 반전전쟁영화에 가깝다. 묘미가 사라진 사연은 평이하고 비주얼을 의식한 관객에게 이벤트는 짧다. 물론 삼국지를 잘 아는 팬에겐 특별한 묘미를 제공할 만하다. 단지 그것이 만족인지 불만족인지를 가늠하기란 어렵겠지만 적어도 원작을 보고 불평하는 쪽이 그렇지 못한 쪽보단 나름의 재미를 거둘 공산이 크다.
해묵었다고 말해도 좋을 만큼 오랜 세월 동안 장수한 고금의 스테디셀러 '삼국지(연의)'는 아직도 여전히 인상적인 캐릭터와 박진감 넘치는 전장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연대적 사실에 허구를 기워낸 텍스트 사이마다 지략가들의 심리전과 호걸들의 무용담이 즐비하게 이어지는 ‘삼국지’는 이미 영화 제작자나 감독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매력적인 소스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제서야 ‘삼국지’의 스크린 판본이 등장한 건 의지와 노력만으로 넘을 수 없는 현실적 제약-기술적인 한계와 연출적인 부담감-이 '삼국지'의 텍스트를 이미지로 치환하는 무리수의 장벽처럼 존재했던 까닭이다. 상상력을 자극하면서도 선명한 환상을 덧씌우는 텍스트의 방대한 가능성을 포용할만한 이미지를 구현해내야 한다라는 것, 그건 잘해도 본전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웅장하고 비범한 이미지에 대한 상상을 끊임없이 부추기는 문장의 방만한 가능성을 실사로 증명하고 방대한 서사의 영역을 적절히 활용할만한 전략적 자질을 갖추기엔 시도적 선례가 부족했다. 그런 점에서 <적벽대전>은 최근 거대한 몸집을 위세등등하게 전시하는 중국 영화들의 고무된 자발적 시도에서 비롯된 기획에 가깝다.-그것이 외국자본의 투자를 통해 이뤄졌다 할지라도 그 형태적 성립을 야기시킨 근원이 엄연히 중국발 정체성을 두르고 있다는 점에서-
<적벽대전>은 광활한 서사 중 주요한 일부를 발췌하는 방식으로 ‘삼국지’의 세계를 스크린에 조명한다. ‘삼국지’의 3대 대전이라 불리기도 하는 ‘관도대전’과 ‘적벽대전’ 그리고 ‘이릉대전’ 중 골자 그대로 ‘적벽대전’이 발췌된 건, 그 사연과 동떨어진 이국에서도 ‘적벽가’라는 판소리로 그 사연이 변주되어 유행했을 정도로 뚜렷한 유명세와 무관하지 않다. ‘적벽대전’은 ‘삼국지’라는 실체적 환상의 대표격으로 내세울만한 가치가 확실한 부위이자 개별적인 사연 자체로 독자적인 자립성을 확보할만한 너비가 충분한 사례다. 또한 그것이 ‘삼국지’에서 삼국의 구도를 형성하는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를 작동시키는 전환점이 되는 전쟁이란 점에서도 적절한 시작이다. 물론 조자룡이라는 인물을 통해 삼국지의 세계관을 스크린에 그려낸 <삼국지: 용의 부활>(이하, <용의 부활>)이란 전례가 있었지만 그것이 또 한번의 허구를 가미한 삼국지 팬픽에 가까운 작품임을 염두에 둔다면 <적벽대전>이야말로 ‘삼국지’가 지닌 본래적 기운을 스크린에 온전히 투영하고자 하는 실제적 구현의 욕망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라 ‘삼국지’의 영화화로서 출발의 의미를 오롯이 지녔다고 볼 수 있다.
후한제를 등에 업고 백만대군을 움직여 강남정벌에 나서는 조조군과 그에 쫓겨 신야성에서 도주하는 유비군이 맞닥뜨리게 된 장판파 전투를 상세히 다루며 <적벽대전>은 서서히 시동을 건다. <용의 부활>에서도 등장했던 이 장면은 전자와 마찬가지로 아두를 구출하는 조자룡의 전과를 묘사하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전투로서의 양상을 묘사하는데 더욱 치중하려는 듯하다. 거울과도 같은 방패를 반사시켜 적의 기마대를 무력화시키는 전략과 함께 관우, 장비와 같은 용맹한 장수의 활약이 설득력 있게 묘사되며 전투의 양상을 세심히 다룬다. 게다가 수전으로 시작됐다 전해지는 ‘적벽대전’의 본래 전투적 상황과 달리 지상전을 끼워 넣으며 본격적인 전투가 일어나기 전, 격돌의 형태를 잠시 전시하는 <적벽대전>은 조조군을 유인한 유비, 손권 연합군이 지휘하는 후궁팔괘진의 거대한 형상을 스크린에 가득 채우며 영화적 스펙터클을 과감히 전시(하고 다가올 속편의 위세를 예고)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도 일당백 무예 실력을 지닌 맹장들의 괴력적인 육박전을 덧씌우며 전투적 쾌감을 활성화시킨다.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생동감 있게 묘사되는 후궁팔괘진의 위용은 본격적인 전쟁국면에 돌입하지 않아 전투씬의 비중이 떨어지는 <적벽대전>에서 단연 백미라 할 수 있으며 동시에 별개로 전례 없는 이미지를 구현했다고 평가할만하다.
‘거대한 전쟁의 시작’이라는 부제처럼 <적벽대전>은 아직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하지 않은 탓에-혹은 속편을 위해 최대한 몸을 사린 탓에- 전장에서의 육박전보단 전쟁의 구도를 완성시키려는 인물들의 심리전에 집중하는 양상을 보인다. 제갈량(금성무)과 주유(양조위)의 관계를 묘사함에 있어서 고전 원작에 비해 온화한 관계로 묘사되고 있다는 특이성이 발견되긴 하지만 캐릭터의 고유한 매력을 살리는데 최대한 충실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특히 ‘곡조가 잘못 나오면 주량(주유)이 돌아다본다’라는 가사의 곡이 있을 정도로 음악에 정통한 풍류가였던 주유가 거문고를 타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또한 호걸로 이름을 떨친 선친-손견, 손책-의 뒤를 이었지만 그에 비견될만한 군주의 위엄을 증명하지 못한 탓에 갈등하는 손권(장첸)의 심리를 상세히 묘사한 건 <적벽대전>의 인물 해석이 단순히 묘사의 일환에 멈추지 않고 해석의 수위를 밟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캐릭터를 묘사함에 있어서 단순히 외모적인 환상을 배우의 얼굴로 치환한 수준에 머물지 않고 그 인물의 특성을 배려한 세심한 세공력이 돋보인다. 이는 다양한 인물들의 일장일단으로 메워진 ‘삼국지’의 매력을 <적벽대전>이 간과하지 않고 능수능란하게 활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다만 절세미인이자 주유의 부인인 소교(린즈링)와 그녀의 누이 대교를 탐해 강동을 넘본다는 조조(장풍의)에 대한 거짓소문을 천연덕스럽게 발설하며 주유를 도발함으로써 오와의 연합을 성사시킨 제갈량의 간계를 <적벽대전>은 실제 조조가 소교에 대한 여색을 지니고 있음으로 묘사하며, 이것이 전쟁을 촉발시킨 계기의 원동력이라는 뉘앙스마저 남긴다. 이는 단순히 여색을 탐하고 욕망에 충실한 인물로서 조조를 한정 짓는다는 점에서 인물의 매력을 비좁게 만들고, 선악 구조로서 인물의 대비를 구축시키는 단순성의 여지를 남긴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오우삼 감독이 지닌 인물에 대한 편애가 캐릭터의 구현에 반영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혹은 할리우드에서 쌓은 짬밥의 결과가 <트로이>에 ‘삼국지’를 접합시키는 발상으로 발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적벽대전>은 ‘삼국지’의 텍스트에서 비롯되는 이미지에 대한 환상을 최대한 반영한다. 외모 자체만으로 ‘삼국지’의 판본에 충실한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와 조조를 비롯해 <적벽대전>에서 주요 캐릭터라 할 수 있는 제갈량과 주유, 손권은 그 배역을 맡은 배우의 이름만으로도 호사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물론 주윤발의 주유 역이 무산된 건 통탄할 일이지만- 또한 전투씬의 묘사에 있어서도 거대한 너비와 세밀한 양상, 그 어느 쪽도 놓치지 않으려는 배려가 돋보인다. 물론 박진감 넘치는 전투로 러닝타임이 꽉 채워지길 기대한 관객이라면 본격적인 전쟁이 돌입하기까지의 서사에 충실한 ‘적벽대전’ 전반전에 해당하는 <적벽대전>이 다소 지루해질 여지가 있다. 하지만 거대한 위용을 본격적으로 드러낼 후반전에 대한 기대를 도모하기엔 손색이 없다. 게다가 캐릭터에 대한 환상에 충실하게 응답한 <적벽대전>은 그 나열된 이미지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먹고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게다가 본격적인 ‘적벽대전’의 묘미는 이제야 시작이다. 인물들의 심리전을 통해 전쟁이 이뤄지는 과정을 연환계처럼 단단하게 묶어가는 <적벽대전>은 그 본격적인 양상을 보기 위해 시간을 인내해야 한다는 고육지계를 감수하게 만들지만 이는 분명 기대감의 일환이라 거부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거대한 전쟁을 부르는 동남풍은 마침내 불어올 것이고, ‘삼국지’의 골수팬이라면 분명 그 뜨거운 순간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무비스트)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 조운이라고도 불리는 상산 조자룡은 창술의 달인이자 유비 현덕의 의형제 관우 운장, 연인 장비와 함께 유비 현덕을 가까이 보필하고 후에 유비가 건립한 촉나라의 오호장군에 오르기도 하는 용장으로 그려진다. 장판파에서 유비의 아들, 아두를 구했던 그는 후에 장강에서 오나라 군사로부터 한번 더 아두를 구해오기도 한다. <삼국지: 용의 부활>(이하, <용의 부활>)은 소설 ‘삼국지’가 충직한 용장으로 그리는 조운, 상산 조자룡(유덕화)을 중심으로 개작된 ‘삼국지’라고 할 수 있다.
<용의 부활>은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필자에 의해 번역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바탕으로 하되 영화적 허구를 노골적으로 숨기지 않는다. 유비가 제갈공명에게 삼고초려를 하며 천하삼분의 계를 얻기 이전에 이미 유비는 조운을 가까이 두었다. 또한 장판파에서 조자룡이 아두를 구하기 전, 조조의 군대를 이끌고 온 하후돈과 대적하게 된 박망파 전투에서 하후돈의 군사를 화공으로 괴멸시키기 위한 유인책에 제갈량은 조운을 이미 중용하기도 했다. 그런 조자룡을 제갈량의 얼굴도 잘 몰랐으며 장판파에서 아두를 구하기 직전에 유비와 처음 대면하는 평범한 병사로 그린 <용의 부활>은 ‘삼국지연의’의 서사를 일부 묵과하고 재편하는 것과 같다.
물론 <용의 부활>에서 상세하게 묘사되는 전후반의 전투는 엄연히 소설에 밑바탕을 두고 있다. 조자룡의 활약을 그리는 전후 두 번의 전투 중 전자는 의심할 여지없이 ‘삼국지연의’ 중, 조운이 혈혈단신으로 아두를 구출한 장판파 전투를 배경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다소 허구가 많이 포함된 후자는 유비와 조조의 사후, 뒤를 이은 촉의 황제 유선을 모시던 제갈공명이 출사표를 던지고 조조의 뒤를 이은 조예의 위나라로 북벌을 결행한 이후, 두 나라의 군대가 처음으로 맞붙은 봉명산에서 선봉에 선 조자룡이 그에 맞선 한덕과 그의 네 아들간의 전투를 배경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용의 부활>은 이에 조영(매기 큐)이라는 조조의 손녀를 가상인물로 내세우며 조자룡의 비범한 최후를 그린다.
장대한 서사와 함께 각양각색의 개성을 지닌 캐릭터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삼국지’는 현대에도 다양한 해석과 감상을 부른다는 점에서 효율적이다. 무엇보다도 <용의 부활>은 ‘삼국지’를 토대로 한 영화화 자체란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지금까지 그 장대한 스케일 덕분에 섣불리 시도되지 못했던 ‘삼국지’의 영화화 작업이 무르익은 기술력과 연출력을 기반으로 이뤄진다는 건 분명 매력적이다. 물론 ‘삼국지’의 전사를 영화화한다는 건 상당히 무리한 일이다. <용의 부활>이 조자룡이란 인물을 중점으로 ‘삼국지’를 재편했다는 건 결국 이 장편 서사를 스크린에 옮길 수 없다면 그 일부를 극대화시키는 방편으로 영화화시킬 수 있음을 입증하는 바와 같다. –이는 현재 오우삼의 <적벽>이 인상적인 일부의 서사를 영화화시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소설에서의 관계 구조를 염두에 두지 않고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을 삽입하기까지 하며 사건 자체를 자기 방식으로 재편하는 건 신화적인 영웅들의 이야기인 삼국지 안에서도 조자룡이라는 인물을 극대화시키려는 수단의 방편처럼 보인다. ‘운명은 사람 손에 달려 있다’는 그의 되뇜처럼 <용의 부활>에서 묘사되는 조자룡은 ‘삼국지’ 안의 영웅 조자룡에서 발췌한 인간적 면모의 부각이라고 해석된다. 결국 <용의 부활>은 조자룡의 백전백승 일대기보다도 백전노장의 가공된 실패담을 통해 인생의 무상함을 일깨우고 동시에 영웅이라 불리는 자가 짊어져야 하는 숙명 같은 고뇌를 관객에게 짊어주려는 듯 보인다.
결국 <용의 부활>에서 조자룡은 우리가 아는 삼국지에서의 이름으로 대변되는 고유명사라기보단 ‘영웅’이라는 고유명사에 가깝다. 나안평(홍금보)이라는 가상인물을 관찰자이자 화자로 삽입하며 영웅이 될 수 없는 자의 비애를 조명하는 건 이를 대비시킴으로서 영웅의 고뇌를 부각시키려는 수단으로 보인다. 하지만 <용의 부활>은 이런 의도를 이해시킬 뿐,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삼국지’라는 가상적 원형에 굳이 변주를 넣어가며, 그것도 다소 격에 맞지 않는 여성캐릭터를 배치하면서까지 어떤 구색을 맞추려는 설정은 너무나도 뻔해 보인다. 정사도 아니고 연의도 아닌 ‘삼국지’의 영화적 변주는 그것이 원작과 달라져야 할 합당한 근거를 명석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아 보인다. 결국 이는 원판을 잘 숙지한 이들에겐 오독(誤讀)이 될 가능성이 높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오역(誤譯)이 될 우려의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무예의 현신들이 구체적인 상으로 등장하는 ‘삼국지’는 그 세계관을 스크린에 전시한다는 것 만으로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 매력을 반감시키는 건 애매모호한 영화의 성취다. 커다란 스펙트럼을 지닌 영웅의 면모에서 인간을 발췌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용의 부활>은 커다란 가능성을 미약한 성과로 깎아 내렸다. 그저 ‘삼국지’라는 소설의 판본을 영화적으로 시도해봤다는 것 이상의 가치가 <용의 부활>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원본을 훼손하는 방식의 무리수를 두고도 탁월한 성과로 거듭나지 못했다는 건 여러 가지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유덕화의 관록이 조자룡의 위엄을 잘 살리고 있다는 점은 일말의 위안이다. 하지만 그를 보좌하는 가상의 캐릭터, 조영과 나안평은 자신을 잉태한 영화의 모성애를 전혀 얻지 못한 채 존재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고 앙상하게 목숨을 부지하다 영화가 끝남과 동시에 어떤 인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다.
TIP>소설과 달리 영화는 가상적인 설정을 통해 삼국지를 재편한다. 애초에 원명 교체기에 집필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가 진나라 진수의 ‘삼국지 정사’를 토대로 민간구전을 덧씌운 문학적 가공을 거쳐 완성됐다는 점에서 이를 원형으로 하는 현대의 ‘삼국지’ 역시 많은 부분을 과장된 허구에 기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유비의 도원결의로부터 시작되는 ‘삼국지연의’는 나관중이 후한 혈통을 계승한 유비가 건립한 촉한을 노골적으로 두둔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며 이런 지적도 적지 않다. <삼국지: 용의 부활>에서 묘사되는 조자룡의 전투의 원형인 '삼국지연의'의 기록을 소개한다.
영화가 조자룡을 처음에 유비군의 일개 병졸 취급하는 것과 달리 조자룡은 이미 공손찬의 휘하에 있을 당시부터 유비와 인연을 맺었고, 언젠가 뜻을 같이 하자는 약조도 나눈다. 결국 후에 공손찬이 원소에게 패망한 뒤, 조자룡은 유비의 휘하에 들어가고 이는 유비가 삼고초려 끝에 제갈공명을 얻는 것보다도 이른 지점이다. 또한 그 이전에 박망파 전투에서 제갈공명이 하후돈을 유인하는 계책에서 중책을 맡길 정도로 조자룡은 공명의 신임을 얻고 있었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조자룡이 공명의 얼굴도 알지 못한다거나 자신이 아두를 구하겠다며 유비 앞에 무명의 장졸로 등장하는 건 영화만의 설정이라 할 수 있다. 조조의 80만 대군에 쫓겨 신야성을 버리고 강릉으로 향하던 유비는 장판파에 이르러 조조의 군대에 가로막혀 고전하고 가까스로 경산으로 피한 유비와 달리 그의 두 아내 감부인과 미부인, 그리고 아들 아두는 고립된다. 유비 가족의 호위를 맡았으나 적들과의 교전 사이에서 결국 그들을 놓친 조운은 30여기의 부하를 이끌고 적진을 헤매다 감부인을 찾아 구출해온 뒤, 다시 장판파로 향한다. 결국 미부인과 아두를 찾았지만 미부인은 상처입은 자신을 이끌고 가면 조운이 힘들어질 것을 알고 우물로 뛰어든다. 결국 조운은 갑옷을 끌러 가슴에 아두를 안고 장판파에서 조조의 80만 대군-실제 정사에서는 5천 정도로 기록됨-을 단신으로 뚫고 간다. 한편, 이를 지켜보던 조조가 조홍에게 급히 물었다. ‘저기 무인지경(無人之境)을 가듯 칼을 휘두르고 달리는 장수가 누구인가?’ 조홍은 조조와 함께 전황을 내려다보던 경산 아래로 내려가 목소리를 높여서 ‘장군! 성함이 어찌되시오?’ 라고 묻자 검을 높게 빼든 그 장수가 외쳤다. ‘나는 상산 조자룡이다! 그대도 내 앞길을 막으려는가?’ 이윽고 조홍이 다시 경산에 올라 조조에게 보고하자 조조는 무릎을 치며 기뻐했다. ‘저 자가 조자룡이구나! 저런 용장이 우리 진에 있다면 천하를 얻지 못해도 한이 없겠다!’ 그리하여 조조는 장수가 상하지 않게 각 진에 활을 쏘지 못하게 명하고 사냥하듯 조운을 몰아 생포하려 했지만 유비의 아들인 아두를 품에 안은 조운은 결국 필사적인 결의로 포위망을 뚫고 장판교를 지키던 연인 장비에게 뒤를 맡기고 유비에게 달려간다. 그리고 그 뒤로 조운을 쫓던 조조의 군대는 장판파에서 버티는 장비의 위엄에 눌리고 결국 그의 뒤 수풀 속에서 움직이는 기병의 모습에 후퇴를 감행한다. 하지만 이는 불과 20여기에 불과한 기병이 수풀 뒤에 숨어서 오간 것에 불과했다. 이 싸움에서 조운은 조조가 총애하는 하후돈의 동생 하후은을 죽이고 그에게 조조가 하사한 보검인 청강검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이후, 유비는 결국 오나라로 넘어가 손권에게 의탁하고 이는 그 유명한 적벽대전으로 이어진다.
조영이라는 조조의 손녀를 가상인물로 내세우며 조자룡의 비범한 최후를 그리는 <용의 부활>과 달리 ‘삼국지연의’에서 조자룡은 전사하지 않았다. 조자룡의 비범한 최후를 그린 <용의 부활>의 후반부는 유비의 사후, 유선-조자룡이 두 번에 걸쳐 구한 아두-이 촉의 황제에 오른 뒤, 그 유명한 출사표를 던지며 단행했던 제갈공명의 북벌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북벌군을 편성할 당시 제갈공명은 조자룡의 나이를 염두에 두어 그에게 임무를 맡기지 않았다. 하지만 촉의 오호장군 중 유일하게 살아남아 제갈공명과 함께 남만정벌에 큰 공을 세우기도 했던 조자룡은 출전을 요청하고 공명도 그의 뜻을 받아들여 등지를 부장에 두고 5천 군사를 주어 그에게 선봉의 임무를 맡긴다. 이에 위의 대장을 맡은 하후무는 자신의 네 아들과 함께 한덕을 선봉으로 삼아 조자룡에 맞서게 했다. 하지만 결국 영화에서와 같이 한덕의 네 아들은 조자룡에 의해 제압당했는데 영화와 달리 둘째인 한요는 사로잡았고, 나머지 세 아들인 한영, 한경, 한기는 모두 조자룡에 의해 죽음을 면치 못했다. 또한 한덕 역시 하후무의 질책에 부끄럼을 참지 못하고 조자룡과 교합을 벌이지만 결국 그도 창에 찔려 죽었다. 한편, 그 뒤로 봉명산에 진을 친 하후무의 참군 정욱의 아들 정무가 세운 계책에 빠진 조자룡은 위군의 매복군에 둘러싸여 고립되는 위기에 처했지만 관우와 장비의 아들인 관흥과 장포로부터 구출되었고, 그 뒤로 전투에 앞장서며 혁혁한 공을 세우다 후에 공명의 명을 어긴 마속으로 인해 중요한 고지였던 가정(街亭)을 위의 사마의에게 뺏긴 후, 결국 공명은 한중으로 귀환했다. 이때 조자룡은 마지막까지 후방을 사수했으며 후에 제갈공명이 직접 이 공을 치하했다. 또한 그 후, 명을 어긴 마속을 문책한 공명이 결국 그를 처형하라 명한 뒤, 통곡했으며 이는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유래가 되기도 했다. 그 후, 한중에서 북벌을 위해 공명이 군대를 조직하는 중에 조자룡은 천수를 다했고, 그가 죽던 날 공명의 집 앞뜰 소나무 가지가 부러졌다고 한다. 그 후로 북벌을 거듭하는 공명과 그에 맞서는 사마의의 전투가 거듭된다. 한편, 1차 북벌 당시 공명은 마속을 잃은 대신 강유를 얻었으며 강유는 훗날 공명의 뒤를 잇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