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잭맨은 할리우드의 호주 출신 톱스타 계보를 이어나가고 있는 배우다. 스크린과 무대를 종횡무진하는 그는 언제나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할리우드의 중심에 섰다.
호주 시드니 출신인 휴 잭맨은 활동적인 성격의 아이였다. 집안에 머무는 시간보다도 해변에서 놀거나 캠핑을 다니는 시간이 많았다. 기본적으로 여행을 좋아했지만 단순히 여행만을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호기심이 많았다. 이는 연기에 대한 흥미로 이어졌고, 재능에 대한 발견까지 나아갔다. 무대 경력을 쌓아나가며 재미를 느끼던 잭맨이 배우로서의 진로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된 건 22살 무렵이었다. 큰 키와 건장한 체격을 지녔으며 춤과 노래 실력이 빼어난 잭맨이 자신의 무대를 꿈꾸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보다 중요한 건 ‘하고 싶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였다. 호주의 TV시리즈 <코레일>은 잭맨의 인생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작품일 것이다. 상대배우였고, 지금의 아내인 데보라 리 퍼니셔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품은 불과 한 시즌만에 막을 내렸지만 잭맨은 인생을 함께 할 동반자를 얻었다. 그는 말했다. “아내와의 만남은 그 작품으로부터 비롯된 가장 훌륭한 결과였다.”
대단한 지위에 오른 이들에게는 일종의 전환점이라 불리는 타이밍이 존재한다. 잭맨에게는 <엑스맨>의 히어로로 등장한 2000년이 그랬다. 아다만티움이라는 강철 골격을 지닌 불사의 몸과 다혈질의 성격을 소유한 뜨거운 남자, 울버린은 잭맨을 할리우드의 아이콘으로 격상시켰다. 사실 그 강철손톱은 원래 잭맨의 것이 아니었다.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2000)에서 울버린 역에 내정된 건 더글레이 스콧이었지만 그는 하차했고, 잭맨은 기회를 얻었다. 잭맨에게 있어서 울버린은 하나의 과제였다. 원작 코믹북의 팬이 아니었던 잭맨은 자신이 울버린 같은 남자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더티 해리>시리즈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매드 맥스 2>(1981)의 멜 깁슨을 유심히 관찰하거나 마이크 타이슨의 경기 모습을 보며 울버린이 지닌 야수적인 본능, 다혈질적인 난폭성의 잠재력을 이해하고자 했다. 한편 소품에 불과했지만 강철손톱을 달고 연기를 하다가 상대 배우를 찌르거나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는 등의 실수를 견뎌야 했다.
결과적으로 울버린과 함께 잭맨의 터프한 이미지는 <엑스맨>의 성공적인 스크린 안착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서 전세계에 배포됐다. 하지만 이는 잭맨을 오해하게 만들만한 소지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2001년에 공개된 그의 출연작 세 편, <썸원 라이크 유>와 <스워드피쉬>, <케이트 앤 레오폴트>는 주요했다. 제각각 장르적인 차이를 지닌 이 세 편의 작품은 하나같이 잭맨에게 소득에 가까운 결과물이었다. 단순한 하드보디 액션 배우로 이해될 수 있었던 그는 1년 만에 다양성을 지닌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특히 부드러운 로맨티스트이자 자상한 아버지로서의 면모는 가장으로서의 삶에 충실한 잭맨의 실생활과 동떨어지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엑스맨>의 성공은 자연스럽게 속편의 제작으로 이어졌다. <엑스맨 2>(2003)와 <엑스맨 – 최후의 전쟁>(2006) 그리고 울버린을 주인공으로 삼은 스핀오프 <엑스맨 탄생: 울버린>(2009)까지, 울버린을 연기하는 잭맨은 일관된 이미지 속에서 안티히어로의 고뇌와 분노를 폭발시키는 노하우를 익혀갔다. 사실상 울버린으로 주목 받은 잭맨이 울버린과 같은 하드보디 캐릭터로 방어전을 치를 것은 어떤 면에서 당연했다. 기독교적인 사상을 판타지 액션의 모티프로 삼은 <반헬싱>(2004)의 롤타이틀에 캐스팅된 것도 어쩌면 울버린의 영향이었다. 그러나 <엑스맨>의 세 번째 속편의 공개와 함께 울버린으로서의 사명을 끝낸 직후, 그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2006년, 대가들과 함께 한 영화 세 편으로 새로운 면모를 드러낸 것이다. 우디 앨런의 <스쿠프>와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천년을 흐르는 사랑>, 크리스토퍼 놀란의 <프레스티지>가 바로 그것. 특히 앞선 캐릭터들과 달리 비열한 면모를 지닌 정치인으로 등장한 <스쿠프>와 질투와 야심으로 사로잡힌 마술사를 연기한 <프레스티지>는 잭맨의 연기적 내면에 대한 증명서에 가까웠다.
할리우드 톱배우 반열에 오른 잭맨은 대작에 출연하며 그 지위를 공고히 다져나갔다. 물론 그 지위가 언제나 안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잭맨은 고향 호주에서 촬영된 <오스트레일리아>(2008)에서 역시 호주 태생인 니콜 키드먼과 호흡을 맞췄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대거 등장하는 이 영화는 대단한 규모와 반비례한 평가를 얻었고, 기대 이하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엑스맨>시리즈의 스핀오프 <엑스맨 탄생: 울버린>으로 다시 한번 강철손톱을 빼 들었고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영화적 평가는 대체로 좋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작인 <리얼 스틸>(2011)은 여러 모로 성공적인 복귀전처럼 보인다. 인간 대신 로봇이 복싱 선수로 활약하는 시대를 그린 SF 기반의 이 영화는 사실상 부자의 관계 회복과 루저의 승리를 그린 휴먼드라마에 가깝다. 자상한 아버지이자 가장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곤 했던 그의 일상은 자연스럽게 영화 속 인물의 부성애와 밀착된다.
<엑스맨>에 발탁되기 전까지, 잭맨은 호주에서 무대를 비롯해서 몇 편의 영화와 TV시리즈에 출연했다. <엑스맨>으로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오른 뒤에도 잭맨의 무대 경력을 줄곧 이어져왔다.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한 그는 2004년에 공연한 피터 앨런의 <오즈로부터 온 소년>을 통해서 대단한 호평을 이끌어냈으며 토니상 트로피까지 얻었다. 한때 <미녀와 야수>의 무대 위에서 가스통으로 자리한 적도 있는 그에게는 감회가 남다른 영광이었다. 그는 울버린의 강철손톱을 전시하는 사이에도 자신의 연기를 갈고 닦는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성실함은 생활연기자로서 잭맨을 설명하기 위한 유용한 단어일 것이다. 그는 여전히 브로드웨이를 비롯한 무대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스크린을 통해서 그의 춤과 노래 실력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질 예정이다. 특히 지난 아카데미 시상식의 사회자로서 특별히 한번 뽐낸 바 있었지만, 브로드웨이를 찾아야만 <킹스 스피치>(2010)로 아카데미를 석권한 톰 후퍼 감독이 연출하는 <레미제라블>(2012)에 캐스팅된 것. 물론 울버린의 강철손톱도 여전히 녹슬지 않았다. 그는 말한다. “모든 것은 디딤돌과 같다.” 휴 잭맨은 여전히 디딤돌을 밟고 서있다.
세 편의 시리즈와 한 편의 스핀오프에 이은 프리퀄.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는 낡은 시리즈의 심장을 되살리는 할리우드의 심폐소생술 공식을 충실히 따른 결과물이다. 하지만 어떠한 기획 의도와 무관하게 이 작품은 시리즈의 갱생을 위한 성공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다.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의 성장 과정, 그들의 만남, 그리고 결국 그들이 갈라서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창세기적인 서사의 흥미만큼이나 ‘엑스맨’이라는 유닛의 개성과 이 시리즈의 장점이 어디 있는가를 잘 아는 작품이다. ‘페이스오프’되거나 업데이트된 돌연변이 캐릭터들의 신선한 활약상을 전시하는 것만으로도 감각이 짜릿해진다. 유머와 서스펜스, 드라마와 액션이 탁월하게 배합된 이 영화의 감각은 매튜 본이 브라이언 싱어 못지 않게 재능 있는 연출가임을 설득시키고도 남는다. 무엇보다도 이 매력적인 돌연변이들의 근원을 소개하는 근사한 기회가 마련됐다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의 가장 뚜렷한 성과일 것이다. 시리즈를 위한 단단한 뿌리가 생긴 셈이다.
앞선 시리즈에서 중요한 맥락으로 대우받던 울버린(휴 잭맨)의 감춰진 과거를 들춘다는 점에서 <엑스맨 탄생: 울버린>(이하, <울버린>)은 깊은 잠재력을 지닌 영화임에 틀림없다. 비범한 오프닝 시퀀스와 감각적인 타이틀 시퀀스는 그런 기대를 한껏 달아오르게 한다. 그러나 <울버린>은 흥미로운 사연의 형태를 전시하는 수순에서 멈춘다. 돌연변이들의 세계관을 통해 깊고 너른 메타포를 제시하던 브라이언 싱어의 성취를 기초로 한 기대 따위는 구겨버려야 한다. 이전 시리즈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돌연변이가 등장하는 가운데 원작 코믹스에서 중하게 다뤄지던 몇몇 캐릭터가 비중 있게 등장한다는 반가움이 이를 대체한다.
블록버스터의 너비에 걸맞은 스케일과 스펙터클을 장착했다는 점에서 오락영화로서의 야심은 인정할만하다. 그러나 액션과 캐릭터를 채우기 위한 그릇에 불과한 것처럼 손쉽게 굴러가는 스토리텔링은 캐릭터의 사연을 구경거리처럼 전시할 뿐, 그 이상의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못한다. 이미 앞선 시리즈에서 ‘금문교’를 이동시키는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한 마당에 단순히 날고 뛰는 육박전을 전시하는 건 ‘엑스맨’이라는 브랜드의 네임밸류 아래 대단한 성과가 아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서의 자질은 충분하지만 <울버린>이 끌어당겨 쓴 사연의 본래 잠재력을 기초로 손익을 계산해보자면 결과물은 분명 밑지는 장사에 가깝다. 그저 시리즈에 얹혀주는 부록의 가치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저 여름용 블록버스터의 포문을 연다는 의미가 적나라하게 나뒹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