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패스벤더라니, 정말 단단하면서도 날렵한 이름이다. 공구로 치자면 전동 드라이버 같은 것이 떠오른다고 할까. 게다가 한음한음 또박또박 읽어보면 섹시하고 강인하면서도 지적인 뉘앙스가 느껴지는 것도 같다. 확실히 남자다. 수컷이다. 차고 넘치는 테스토스테론의 기운이 느껴진다. 마이클 패스벤더는 크고 아름다운, 거물이 될 사나이다.
2012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조지 클루니는 마이클 패스벤더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동안 의무감처럼 짊어지고 있었던 ‘전면 누드’를 대신해준 마이클 패스벤더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마이클, 자네는 정말 손을 뒤로 두고도 골프를 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그는 하반신을 흔들흔들거렸다. 무슨 소리냐고? 이게 다 그의 ‘거시기’ 때문이다. 그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마이클 패스벤더가 자신의 출연작 <셰임>(2011)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준 덕분(?)이다. 그리고 그의 물건에 감명을 받은 건 비단 조지 클루니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포털 사이트에서 마이클 패스벤더를 검색해보시라. 연관검색어 중에서 ‘물건’과 ‘크기’라는 단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조지 클루니가 인정한 거물답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태어난 패스벤더는 두 살 무렵 가족과 함께 건너간 아일랜드 남서부의 킬라니에서 성장했다. 그가 처음으로 연기라는 걸 접한 건 중학교 시절 연기 수업을 통해서였다. 영국과 미국의 영화들을 보면서 자신의 미래도 봤다. 그리고 졸업 후, 런던으로 건너갔다. 연기에 대한 집중력 함양에 있어서 악명 높은 교육을 자랑하는 런던의 드라마 센터에서 수학했다. 그곳의 교육 방식이란 좀처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행위를 수많은 이들의 앞에서 시키는 식이었는데 한번은 한 여학생에게 팬티만 입고 거울 앞에서 춤을 추라고 강요하는 것을 본 적도 있었다. 결국 그는 학업을 중단했다. “만약 나한테 그런 짓을 시켰으면 꺼지라고 했을 거다. 아마 그 학교 졸업생들 중에서 많은 이들이 단지 퇴학당하지 않기 위해 마지 못해서 그런 짓을 했을 거다. 특히 여학생들에겐 더욱 괴로운 시간이었겠지.” (물론 잘 알다시피 그는 <셰임>에서 놀라운 열연(!)을 펼쳤다.) 학업을 중단하고 극단의 투어에 동참했다. 그의 배역은 무대 위에 있지 않았다. 연극이 끝난 무대 위를 정리하고 짐을 옮기는 것이 그의 배역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했다. 멈출 수 없다는 결론을 냈다. 바텐더 일을 하면서도 오디션장을 전전했다.
기회가 찾아왔다. 오랜 기다림과 맞바꾼 빅딜이었다. 그의 데뷔작은 무려 스티븐 스필버그와 톰 행크스가 제작한 TV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였다. 제2차 세계대전을 생생하게 그린 이 작품에서 숱한 캐릭터들이 죽어나가는 가운데서도 그가 맡은 크리스텐슨 중사는 시리즈 안에서 몇 안 되는 생존자이기도 했다. 비록 큰 비중은 아니었지만 내세울만한 첫 경력 정도로선 손색이 없었다. <300>(2006)에서도 선명한 식스팩을 자랑하는 스파르타 전사의 머릿수를 채우긴 했지만 관객의 기억을 채울만한 인상을 남길만한 역할은 아니었다. 당시까진 그랬다. 물론 ‘패시’라는 애칭으로 마이클 패스벤더를 사모하는 팬들은 뒤늦게 그의 필모그래피를 역주행하며 크고 아름다운 식스팩을 관람할 수 있게 해준 감독 잭 스나이더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했을 거다.
사실 마이클 패스벤더는 섹시한 남자 배우의 전형과는 먼 캐릭터들을 연기해왔다. 오히려 가혹하고 처연한 상황 속에서 연민을 자극하는 인물로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의 작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소설을 영화화한 <엔젤>은 마이클 패스벤더라는 배우의 진가를 드러내는 첫 번째 리허설과도 같았다. “젊은 화가는 현실적이면서도 육감적이고 카리스마가 있지만 오만한 느낌이어야 했다. 마이클 패스벤더에겐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아이러니와 야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아일랜드인이어서 영국인과는 다른 액센트와 매너를 보여주었는데 그래서 더 남성적이고 날 것이란 느낌이 있었다.” <엔젤>의 감독 프랑수와 오종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마이클 패스벤더는 자신만만한 미소와 나약한 눈물을 함께 품은 복합적인 감정선을 하나의 얼굴에 담아낸다. 끝내 자기파멸적인 비극으로 목을 매달아버리는 운명을 연기해낸다. 그리고 비로소 그의 연기 인생을 좌우할만한 첫 번째 전환점을 만난다.
스티브 맥퀸의 감독 데뷔작인 <헝거>(2008)는 아일랜드 독립투쟁을 전개하던 IRA 단원 바비 샌즈의 옥중 투쟁 실화를 스크린에 재현한 작품이다. 실제로 아일랜드 독립투사인 마이클 콜린스의 피를 물려받은 패스벤더가 바비 샌즈를 연기한 건 운명이 아니었을까. 옥중에서 단식 투쟁을 전개하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바친 바비 샌즈가 되기 위해서 패스벤더가 선택한 건 그와 같은 방식이었다. “나는 약 14kg을 감량했고 결국 59kg까지 빠졌다. 그것이 (내 연기가) 설득력을 얻고자 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런 노력은 칸영화제의 신인감독상이라 불리는 황금카메라상 수상 등으로 이어지며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스티브 맥퀸의 차기작인 <셰임>에서 패스벤더가 온 몸으로 연기한 것 또한 작품에 대한 깊은 믿음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 믿음은 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이란 보답으로 돌아왔다. 패스벤더에게 두 번째로 칸국제영화제 레드 카펫을 밟게 해준 건 영국의 여류 감독 안드레아 아놀드의 <피쉬 탱크>(2009)였다. 고행에 가까운 연기가 필요했던 <헝거>와 달리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며 뭇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남성의 추악한 내면이 패스벤더의 육체로부터 담담하게 발견된다. <헝거>와 <피쉬 탱크>는 마이클 패스벤더라는 배우가 지닌 연기적 깊이와 너비를 일거에 확신할만한 목격담과도 같았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에 출연한다는 건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에겐 일찍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1992)을 연극 형태로 기획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일 출신인 그가 독일어에 능통하지 못한 미국 군인으로 등장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농담이자 유머에 가까웠다. 게다가 수컷으로서의 터프한 매력이 강렬하게 느껴진다. 로마의 백인대장 역을 맡은 닐 마샬 감독의 <센츄리온>(2010)에선 로마의 백인대장으로서 보다 강직하고 진중한 남성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실제로 패스벤더는 모터사이클엔 사족을 못쓰는 ‘상남자’이기도 하다. 반대로 패션에 관한 이야기 앞에선 좀처럼 말수가 적어지는 편이라고 한다.
2011년은 패스벤더의 경력에서 가장 특별한 한 해였다. <제인 에어>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데인저러스 메소드> 그리고 <셰임>까지, 허투루 지나칠 수 없는 경력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샬롯 브론테의 동명 고전을 중후한 고딕 로맨스물로 완성한 <제인 에어>에서 로체스터를 연기한 패스벤더는 완고하면서도 로맨틱한 매력을 전하는 동시에 여심을 자극할 만한 연민을 지닌 남성으로 자신을 각인시킨다. 아마 <제인 에어>를 본 여성 관객이라면 마이클 패스벤더라는 이름을 가슴 속에 문신처럼 새겨 넣었을 것이다. 한편 패스벤더의 인지도를 수직 상승시킨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선 차갑고 냉소적이지만 다혈질적인 분노를 발산하는 매그니토를 연기하며 캐릭터의 기원을 매력적으로 설득시킨다. 무엇보다도 그는 강인한 눈빛의 밑바닥에 자리한 불안을 건져내는데 능한 배우다. 악인의 범주에 드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도 단단하게 밀어붙이지 않는다. 입체적인 감정과 복합적인 심리를 전달한다. 끝내 연민을 품게 만든다. 때론 모성애를 자극한다. 그렇게 여심을 흔든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데인저러스 메소드>는 심리분석학자 프로이트와 칼 융, 그리고 융이 치료한 신경증 환자 사비나, 이 세 사람의 의문스러운 관계를 살핀다. 무엇보다도 키이라 나이틀리의 열연이 눈에 띄는 이 영화에서 패스벤더는 기품 있는 태도를 견지하던 융이 음흉한 심리를 드러내는 순간의 이중성, 즉 희열과 절망의 아이러니를 표현해냄으로써 극적인 의도에 완벽하게 복무한다. 맥퀸의 새로운 연출작이자 클루니의 질투마저 유발한 패스벤더의 <셰임>은 파멸적인 쾌락을 즐기는 남자와 함께 고통스러운 과거를 공유한 여동생, 그 남매의 흔들리는 일상을 그린 작품이다. “그는 한 세대 안에서 허락된 단 하나의 배우다. 남자 중의 남자이나 여성성과 나약함도 드러낸다. 그런 점이 대단히 매력적이다.” 패스벤더를 향한 맥퀸의 찬사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메테우스>(2012)는 다른 의미에서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에이리언>(1979)의 프리퀄로 알려졌던 이 작품에서 그는 어떠한 감정도 없는 안드로이드인 데이빗을 연기하는데 사건의 진행과 함께 점차 속을 알 수 없는 캐릭터의 음흉한 속내를 의심하게 된다. 포커페이스로 일관하는 그의 얼굴은 극의 긴장감을 돋우는 미스터리의 바다처럼 느껴진다.
리들리 스콧의 최신 연출작인 <카운슬러>(2013)는 마이클 패스벤더라는 배우가 줄곧 표현해온 감정선의 엑기스를 도화선으로 연결하고 뇌관을 건드려 연쇄적으로 폭발시키는 듯한 작품이다. 야망과 파멸의 노선 속에서 촘촘한 치아를 펼쳐 보인 시원한 미소와 눈물, 콧물을 비롯해서 ‘육수’까지 죄다 짜내는 듯한 오열을 오가는 패스벤더의 롤러코스터적인 감정선은 그야말로 이 배우가 지닌 연기적 스펙트럼 그 자체에 가깝다. 한 치의 인정머리조차 없는 비정한 세계관 속에서 단 한번 잘못된 욕망에 배팅한 탓에 수직으로 추락하는 이카루스 같은 인물. 그야말로 마이클 패스벤더를 위해 준비된 자리였다.
“알다시피, 나는 많은 시간을 날려먹었다. 이제 태양이 떴으니 건초를 만들어야지.” 마이클 패스벤더의 말처럼 그는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서야 주목을 받았고, 비로소 궤도에 올랐다. 하지만 그가 더 이상 건초를 만들 이유는 없을 것 같다. 그는 이미 태양처럼 떠올랐기 때문이다. 스티브 맥퀸의 신작 <노예 12년>(2013)에서 지극히 불안정하고 흑인 노예들에게 더없이 악랄한 인물인 에드윈 엡스를 연기하며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로 선정됐다. 아쉽게도 조지 클루니는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물론 그에겐 아직도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그는 코엔 형제의 <인사이드 르윈>의 오디션에 참여했지만 오스카 아이작이 그 역할을 해내는 걸 극장에서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그는 특유의 시원스러운 미소와 함께 말한다. “젠장, 코엔 형제의 작품을 놓쳤다니. 그 형제랑 일하는 건 하나의 꿈이라고. 난 계속 전화를 기다릴 거다.” 알고 보면 참 귀여운 남자라니까. 그야말로 크고 아름다운 대물, 아니, 거물이 될 남자이기도 하고.
(THE BIG ISSUE KOREA 2월 15일호 No.078 'Cover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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