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을 맞고 사망한 부랑자 시신이 발견된 이튿날, 하원의원 스티븐 콜린스(벤 애플렉)의 여비서가 지하철역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이 덕분에 스티븐과 여비서의 섹스 스캔들이 불거지고 무기회사를 상대로 한 청문회에서 공격적인 질문을 던지던 스티븐의 발언권이 상실될 처지에 놓인다. 하루 차이로 발생한 두 죽음은 그저 동떨어진 두 개의 점처럼 접점이 없는 개별적 사건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를 취재하던 ‘보스톤 글로브’의 기자이자 스티븐의 친구인 칼 매카프리(러셀 크로우)는 두 사건을 연결하는 단서를 발견한다. 연결고리가 없는 두 사실을 관통하는 진실이 직감된다.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이하, <플레이>)는 거대한 음모를 추적하는 기자의 이야기다.
뛰어난 취재력을 자랑하는 베테랑 기자 칼 매카프리와 혈기왕성한 신예 여기자 델리 프라이(레이첼 맥아담스)는 진실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사건의 취재를 밟아나간다.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노크가 번번히 무산되거나 박대 당하는 와중에도 진실을 향해 접근해가는 취재과정이 호기롭게 묘사된다. 때때로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까지 연출되며 스릴러적 긴장감을 더한다. <플레이>는 스릴러적 구조를 통해 긴장감을 끌어당기는 동시에 전문직 드라마로서의 지적인 묘미를 더한다. 영화의 중추는 분명 거대한 집단의 이기에 대항하는 개인의 윤리적 저항을 곧잘 이야기하는 토니 길로이의 각본이다. 음모론에 갇힌 진실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고 믿어지는 결말 직전, 영화는 진실의 맹점을 자각하고 왜곡된 진실의 남은 한 꺼풀마저 벗겨내며 논의를 한 차원 더 발전시킨다. 진실을 추구하는 건 정의를 위해서지만 정의에 대한 집념은 때로 진실을 향한 시야를 가린다. 기자는 자신이 작성한 기사를 송고하기 직전까지 진실에 대한 의심의 끈을 놓쳐선 안 된다. 정의라고 믿어지는 부분조차도 의심해야 한다. <플레이>는 거대한 자본의 알력과 권력의 위협에 대항해 사선을 넘어서까지 결백한 진실을 얻어내려는 기자의 직업윤리를 흥미롭게 그려낸다. 찌라시가 득세하고 가십이 넘쳐나는 시대에 완전한 진실을 향해 부지런히 발품을 파는 기자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경종을 울린다.
스타에 관한 말들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 말엔 옥석이 없다. 그저 실체가 묘연한 사연 속에 스타가 있을 뿐이다. 스타가 있으니 말이 이어진다. 그저 스타를 위시한 말이 떠돌 뿐이다. 그 사이에서 스타가 살고 있다.
전지현의 복제된 핸드폰이 화제다. 만질 수 없는 전지현을 듣고라도 싶었을까. 놀라운 소식은 그 다음이다. 소속사의 사주로 전지현의 핸드폰이 복제됐다고 한다. <스타의 연인>이 떠올랐다.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는지 <스타의 연인>과 전지현의 핸드폰 복제를 연관지은 기사들이 인터넷 메인까지 올랐다. 전지현은 다가오는 2월에 소속사와 전속계약이 만료된다. 전지현과 정훈탁 대표의 실루엣이 <스타의 연인>을 통해 구체화된 것만 같다. 재계약을 거부하는 이마리(최지우)에게 갖은 회유와 협박을 거듭하는 서태석(성지루)의 관계가 이번 사건을 통해 상상력의 날개를 달고 뻗어 날아간다. 무명의 이마리를 톱스타로 일궈낸 연예기획사 대표 서태석은 10년 전 패션화보집의 모델로 데뷔한 전지현을 오늘날 톱스타로 키워낸 싸이더스HQ의 정훈탁 대표를 연상시킨다. 마치 고의적인 것마냥 기이하게 시기가 맞아떨어졌다.
딱히 <스타의 연인>을 즐겨본 것은 아니다. 명확히 고백하자면 띄엄띄엄 봤다. 대략적인 줄거리와 캐릭터만 파악한 수준이다. 그래서 드라마가 어떻다라는 말을 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몇 가지 인상적인 장면이 남았다. 인터넷 뉴스 연예기자라는 전병준(정운택)이 서태석을 찾아와 이마리와 김철수(유지태)의 사이를 폭로할만한 사진을 보여준다. 사진을 본 서태석은 편집장에게 전화를 걸어 다른 배우의 스캔들을 팔아 사건을 무마시킨다. 전병준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특종을 얻었다. 서태석은 이마리의 기회비용이 다른 배우에 비해 크다고 확신한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
연예기획사에게 있어서 톱스타는 최고의 상품이다. 시가 최고액을 자랑하는 프리미엄 명품이다. 명품은 작은 금만 가도 가격이 급락한다. 십만 원짜리 핸드백의 손잡이가 떨어지는 것보다도 백만 원짜리 핸드백에 실금이 가는 게 뼈아픈 일이다. 이마리는 회사의 얼굴이자 존망이다. 이마리 있고 연예기획사 있지, 연예기획사 있고 이마리 있는 게 아니다. 서태석은 이마리를 지키기 위해, 엄밀히 말하면 연예기획사를 지키기 위해 이마리를 보호한다. 아니, 가둔다. 그녀의 사생활은 관리 대상이며 그녀의 이미지는 가능한 한 조작된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마네킹이 아닌 이상에야 욕망이 없을 리 없다. 대필 작가 김철수와 사랑에 빠지는 이마리도 그것이 때론 두렵다.
하지만 좋은 걸 어떡해.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고, 그러니 손잡고 싶고, 뽀뽀도 해보고 싶고,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어떡해.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 하지만 누가 봐도 쉽지 않은 상황. 그녀가 사랑을 얻기 위해선 잃어야 할 것도 많고, 버려야 할 것도 많다. 그보다도 그녀를 통해 명예를 유지하던 주변인들의 반발이 거세다. 네가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어! 서태석은 분노한다. 성질이 뻗쳐서 울분을 토하기도 하고 어린애 달래듯 회유도 해보지만 이마리는 점점 더 속에 갇힌 자신을 드러낸다. 애써서 스캔들을 막고, 대필 작가 비리도 막았건만 이마리의 한마디에 죄다 공염불이 된다. 배신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당신이 덜 먹고, 덜 입는 대신 더 먹이고, 더 입혀서 애지중지 키운 자식이 기껏 대학 보내놓고 장가 보내주니 정작 어미를 박대하더라는 하소연처럼 억울하다. 폭로전이 이어진다. 에라, 너 죽고 나 죽자. 비밀이 폭로된다. 해치지 않아, 라던 약속은 믿어달라는 어느 오빠의 그 날밤 언약처럼 부질없다. 결국 모든 것이 부서진다. 서태석의 내면에 담긴 일말의 진심조차도 완전히 망가진다. 상품성은 바닥을 친다. 더 이상 영업이 어렵다.
<스타의 연인>은 스타의 이미지에 갇힌 개인의 존재를 소명하려 한다. <온에어>의 맥락이 떠오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두 드라마는 연예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반짝이는 이미지 뒤편의 그림자를 조명한다. 암울하고 시니컬하다. 아름답고 반짝이던 이미지의 뒤편은 아수라장이다.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가시밭길을 걷는다. 톱스타의 지위는 무겁지만 버릴 수 없는 왕관이다. 촘촘히 박힌 다이아몬드는 무겁지만 하나같이 버릴 수 없다. 그 구속된 이미지로 살아가는 것은 이미 운명이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무겁게 짊어진 명예가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자신이 볼 수 없는 명예보다 자신이 볼 수 있는 삶을 찾는 게 중요하다. 이마리는 은퇴를 결심한다. 왕관을 내려놓겠다. 평범한 여자로 살아가겠노라 천명한다. 2001년, 심은하는 은퇴를 발표하고 사라졌다. 더 이상 연기자 심은하를 볼 수 없었다. 종종 심은하를 향한 말들이 구애처럼 이어졌지만 그래도 그녀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아내로서, 엄마로서 살아간다는 심은하의 근황이 종종 들려왔다. 은퇴를 선언해도 톱스타의 잔상은 길게 남았다. 사람들의 관심은 그녀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어디에서 있었느냐에서 시작된다. 무대에서 볼 수 없는 과거의 톱스타가 오늘의 이슈가 된다. 오늘의 톱스타는 말할 것도 없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루머들이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치다 거대한 숲을 이룬다. 연예인에 대한 소문은 심심찮게 떠돌다 때론 실화처럼 통용되곤 한다. 누구와 누가 사귄다더라, 결혼했다던데, 속도 위반해서 그렇대. 지네처럼 다리가 많아서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소문의 머리를 확인할 길이 없다. 다들 듣기만 했을 뿐, 본적도 없고, 직접 들은 바도 없다. 대체 어디로부터 흘러나온 사연인지 알 길이 없다. 며느리도 모르는 사연에 만고의 진리처럼 묵은 말이 달라붙는다. 아니 뗀 굴뚝에서 연기 날리 없다. 아무래도 그렇지? 다들 맞장구 친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람들의 입과 귀를 바삐 기어 다닌다. 그러다 개중 하나라도 진짜가 되면 여지없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역시 소문은 괜히 나는 게 아니지. 모든 소문에 신빙성이 생긴다.
누구나 한번쯤 스타를 꿈꾼다. 그 반짝이는 삶을 동경한다. 관심이 집중되는 그 자리에 질시도 함께 뒤섞여 뒹군다. 스타가 되고 싶으면 연락해! <개그콘서트>의 한민관은 명함을 내던지며 소리친다. 재능은 천부적인 것이라지만 오늘날 스타는 후천적으로 기획된다. 포장지로 감추고 다듬어서 시장에 내놓은 뒤 끊임없이 관리한다. 피부를 관리하듯 사생활까지 관리한다. 지난 해 11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연예 기획사들의 불공정 계약에 대한 시정명령을 내렸다. 과도하게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지적 사항도 발견됐다. 전지현의 휴대폰 복제는 지난 관행의 진화다.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관성적으로 이어진 관례다. 화려한 은막 너머로 감춰진 폭력의 노출이다.
김태희가 결혼을 했다고 한다. 어느 라디오 방송에서 전화 연결된 비가 이효리와 염문을 뿌렸다고 한다. 그 밖에도 누구는 임신을 했었고, 누구는 연예인 이전에 업소를 들락거렸다느니, 이래저래 떠도는 말이 참 많다. 직접 본 사람은 없고, 직접 들은 사람은 도통 나오지 않는데 소문들은 기이하게 퍼지고 또 나아간다. 최진실이 자살한 뒤, 그 원흉이라는 증권사 여직원이 구속됐지만 그녀 역시 그저 누군가에게 들은 바를 옮겨 적었을 뿐이라 실토했다. 거대한 밑그림의 일부가 적발되고 돌을 던져보지만 풍토는 변하지 않는다. 최진실은 악플로 죽었다고 했다. 이 말에도 실체는 없다. 그저 살아서 입을 여는 자들의 또 다른 소문에 불과하다. 인터넷 모욕죄를 신설하려는 정부 여당을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살아있는 자들의 말 속에도 진실은 없다. 그 누구도 진실을 모른다. 그저 돌고 도는 말 속에서 끊임없이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는 스타들에게 진짜 삶이란 요원하다.
<스타의 연인>은 스타가 사는 세상을 빌미로 만들어낸 또 다른 말이다. 그 말 속엔 진짜와 가짜가 뒤섞여 있다. 물론 무엇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길은 없다. 그저 그렇게 끊임없이 돌고 도는 말을 누군가는 주워다 팔아먹고 누군가는 그 말로 시간을 때운다. 그리고 스타는 그 말 위에서 살아간다. 흉하고 보기 싫은 말 가운데서 스스로가 원하든 원치 않았든 살아간다. 국민여동생도, 국민배우도, 빛을 발하는 만큼 능욕을 감내한다. 말과 말 사이에서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서 스스로를 감추고 지우며 아슬아슬하게 살아간다. 사생활조차도 계산대에 오른다는 걸 아는 순간 진정 스스로를 지워야 한다. 가진 게 많아서 부러울 것 같은 삶에 빈곤한 일상이 드리운다. 그 빈곤한 일상을 구원하는 길은 그것조차 거짓으로 만드는 일이다. 설사 그것이 진실이라 해도 소문의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그저 자신조차도 거짓말처럼 숨겨서 온전히 살아간다. 그저 말 사이에 숨어서 스스로를 보존할 뿐이다. 그렇게 완전한 거짓의 보호색을 띄고 스타는 살아간다. 아니, 살아가야 한다.
새까맣게 울렁거리는 도입부 화면이 너무도 유명한 그 신비로운 시그널과 함께 브라운관을 메우면 마냥 가슴이 설렜다. ‘미드’란 유행어도 없던 그 때 그 밤에, 한국어로 더빙된 멀더와 스컬리를 만나는 건 일종의 의식과도 같았다. 매 번마다 아리송하지만 강렬한 충격을 남기고 고이 떠나는 엔딩에 사무쳐 TV가 있는 마루를 떠나지 못했다. 지금처럼 다시 보기도 없던 시절이라 다음날 학교에서 만난 친구와 어제 봤던 그 장면의 전율을 언어로 되새김질하는 게 소일거리였다. 어느덧 그 시절을 지나왔고, 멀더와 스컬리도 <엑스파일>과 함께 세상을 등졌다. 역시나 울렁거리는 화면 속에서 신비롭게 흩날리던 시그널로 안녕을 고했다.
좀더 나이를 먹고 나니, 멀더와 스컬리만큼이나 세상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많아졌다.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물음표로 가득 차 있었다. 수준 이하의 음모 앞에서 무력해져야 하는 현실이 때론 두렵다. 차라리 그것이 UFO나 외계인처럼 도무지 알 수 없는 비현실적인 것들에 대한 물음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믿고 싶다’. 그 주문은 누굴 위한 것이었나. 그 화면 너머에서 알게 모르게 이지러지던 진실의 그림자는 누구를 향해 달아나고 있었나. 그 시절, 가늠할 수 없는 화면 너머의 초현실은 차라리 천박한 권력적 음모가 난무하는 현실보다 거룩한 것이었다. 진실의 벽을 넘어가고자 분투하는 멀더와 스컬리와 함께 난 하나의 세월을 넘어왔다. 그곳에 무엇이 있었나. 나는 믿고 있었나. 그들이 보고자 했던 것을. 저 너머에 진실이 있다. 나는 넘고 싶다. 그리고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을 위해,그리고 나는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