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혜성처럼 등장한 캐리 멀리건은 일찍부터 배우를 꿈꾸고 있었다. 한때 조바심을 냈던 것도 그만큼 열정이 뜨거웠던 탓이다. 그리고 이제 때가 왔다. 꽃이 피어 오르듯, 재능이 만개한다.
제82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화두는 2009년 작인 <아바타>와 <허트 로커>가 벌이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배우 관련 부문만큼은 두 영화의 세력 다툼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다. 특히 만년 여우주연상 수상 후보인 메릴 스트립과 헬렌 미렌을 제치고 오스카 트로피를 차지한 산드라 블록은 수많은 말을 몰고 다녔다. 그리고 시상식 이전부터 ‘미친 존재감’을 자랑하던 배우가 있었다. “캐리 멀리건, 스타가 탄생했다.” 첫 주연작 <언 애듀케이션>(2009)으로 생애 첫 아카데미 노미네이트를 얻어낸 캐리 멀리건은 <타임>매거진의 헤드라인처럼 놀라운 발견이었다.
1985년생, 그러니까 이제 20대 중반을 통과한 멀리건의 이력이 시작된 것도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오만과 편견>(2005)에서 키티 베넷 역으로 스크린에 데뷔할 당시만 해도 멀리건은 딱히 대중의 눈길을 끄는 존재는 아니었다. <언 애듀케이션>을 연출한 론 쉐르픽의 말처럼, “그와 같은 속도로 대단히 유명해질 수 있다는 건 특이한 일이다”. 하지만 그건 우연이 아니었다. 쉐르픽의 말을 다시 인용하자면 “그녀가 평범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음을 인정하게 만든” 덕분이었다.
런던의 웨스트민스터에서 태어난 멀리건은 인터컨티넨탈 호텔의 매니저로 근무한 아버지 덕분에 어려서부터 풍요로운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세 살의 멀리건은 독일의 뒤셀도르프로 발령을 받은 아버지를 따라 가족과 함께 도버해협을 건넌다. 독일 서부에 위치한 뒤셀도르프는 전세계의 사람이 모여 드는 국제적인 공업도시였다. 그녀가 네 살에 입학한 뒤셀도르프 국제학교(International School of Dusseldorf E.V.)는 서로 다른 50개국에서 모인 천여 명의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였다. 그곳은 그녀가 배우로서의 오늘에 다다르는 시작점이었다. 2년 뒤, 멀리건은 교내 연극무대에서 같은 학교를 다니던 그녀의 오빠 오웬이 출연한 <왕과 나>에 참여하길 원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너무 어렸던 그녀에게 허락된 건 코러스 석뿐이었고 어린 그녀는 화를 삼킨 채 그 자리에서 무대를 지켜봤다. 그녀는 훗날 고백했다. “그게 내가 연기를 원하게 된 전부였다.”
여섯 살짜리 꼬마의 다짐이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사연이 필요했다. 후에 다시 가족과 함께 런던의 하이드 파크로 돌아온 멀리건은 자녀에게 훌륭한 교육을 제공하길 원했던 부모의 뜻에 따라 영국의 명문 가톨릭 여자사립학교인 올딩엄 스쿨(Woldingham School)에 입학한다. 호텔 매니저로서, 대학 강사로서, 바쁜 일상을 보낸 탓에 멀리건의 일상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부모에게 기숙사 제도를 지닌 이 학교는 더욱 매력적이었다. 결과적으로 비비안 리나 모린 오하라와 같은 여배우를 배출하기도 한 이 학교에는 훌륭한 드라마 부서가 있었고 멀리건은 이를 통해 배우로서의 자양분을 마음껏 쌓아나갔다. 다른 수업을 무시하듯 오로지 연기에 몰두해 나간 그녀는 <크루서블>이나 <스위트 채러티> 등과 같은 고전 연극 무대에서도 점차 두각을 드러냈다. 당시 멀리건을 지도한 주디스 브라운(Judith Brown)은 그녀에 대해 이처럼 말했다. “그녀는 대단한 재능을 타고 났을 뿐만 아니라 옳은 기질과 성공을 향한 투지도 지니고 있었다.”
멀리건의 부모는 그녀가 명문대에 진학해서 학구적인 직업을 얻길 원했다. 하지만 그녀는 부모의 바람과 달리 연기자로서의 미래를 간절히 원했다. 그리고 성공이 멀지 않다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연기 전공을 꿈꾸던 그녀는 부모 몰래 선술집에서 돈을 벌며 연기 전공이 가능한 대학에 지원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세 번의 불합격 통보였다. 그리고 더욱 암담한 것은 그런 그녀의 비밀을 어머니가 알게 됐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간절한 희망이 묘비에 새겨진 유언처럼 허망해지듯 그녀에게는 절망스러운 사건이었다.
올딩햄 재학시절, 멀리건은 로버트 알트만이 연출한 <고스포드 파크>(2001)의 각본으로 오스카 각본상을 수상한 줄리안 펠로위스와 점심식사를 함께 한 적이 있었다. 여교장이었던 다이애나 버논의 친구였던 그는 멀리건과 함께 식사를 하며 그녀가 쏟아내는 대단한 연기적 열의를 확인했다. 하지만 그는 식사 후, 버논을 통해 냉담한 충고를 전했다. 내용인즉, 은행원과 결혼이나 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멀리건과 펠로위즈와의 만남은 악연으로 끝나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멀리건은 버논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그리고 버논은 다시 한번 펠로위즈에게 그녀의 진심을 전달했다. 결국 펠로위즈의 가족식사에 초대받은 멀리건은 자신의 열정을 다시 한번 토로했다. 이는 헛되지 않았다. 펠로위즈의 부인인 레이디 엠마는 그녀를 눈여겨보았다.
<오만과 편견>의 제작 소식을 듣게 된 그녀는 제작진에게 멀리건을 소개했다. 조 라이트는 멀리건에 대한 첫인상을 이처럼 말한다. “그녀가 왔고, 훌륭한 캐스팅 멤버였기에 우리는 그녀에게 자리를 내줬다.” 멀리건의 오랜 집념이 싹을 틔우는 순간이었다. 출연을 확정 지은 멀리건은 로얄 코트 극단에 입단하며 무대 데뷔를 이루고 다양한 작품들을 섭렵하며 연기에 매진할 수 있는 공간을 직접 마련해 나갔다. 같은 해, BBC에서 TV시리즈로 제작한 찰스 디킨스 원작의 <황폐한 집>에 캐스팅될 때까지도 무대에서 거듭 연기를 이어나갔다.
“19살이 되기 전까지 나는 진짜 적절한 관계를 얻지 못했다. 루저 중의 하나였다고 할까.” 다소 과장된 표현이지만 이는 그녀가 이 캐스팅을 통해 드디어 자신의 재능을 이해해줄 ‘관계’의 성립에 고무되고 있음을 직감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녀는 재능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갔다. 무대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와중에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작은 역할을 거듭하던 그녀는 선댄스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더 그레이티스트>(2009)의 출연을 통해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다고 기억될만한 기회를 얻게 된다. <언 애듀케이션>의 출연을 성사시키기 위해 제작자와 세 번에 걸친 만남의 시작이 바로 그 선댄스영화제였던 것이다. 결과는 이미 모두가 아는 바대로 성공적이었다. ‘오드리 햅번’에 비유된 그녀의 주가는 올라갈 차례만 남겨두고 있었다. 같은 해 제작됐던 <브라더스>와 <퍼블릭 에너미>에서 작은 역할로 모습을 드러냈던 그녀는 ‘브리티쉬 인베이전’이라 불릴만한 아카데미 노미네이트를 거치며 새로운 발판을 마련했다.
2010년, 올리버 스톤의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와 마크 로마넥의 <네버 렛 미 고>는 멀리건의 새로운 입지를 가늠하게 만든다. 특히 데뷔작 <오만과 편견>에서 주연을 맡았던 키이라 나이틀리와 또 한번 함께 출연한 <네버 렛 미 고>는 불과 5년 사이, 멀리건이 얼마나 성장했는가를 증명하는 대조군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녀에게 보다 중요한 사실은 지금 그녀가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놀라운 직업을 얻었고 훌륭한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 이는 매우 멋진 기분을 느끼게 만들기 때문에 즉시 그 느낌에 집중하고자 노력한다.” 그녀에게 연기란 인생을 걸고 추구해야 할 그 무엇이었다. 그녀는 새롭게 피어나는 꽃봉오리처럼 재능이 만개할 그 순간을 인내했다. 바로 지금, 그녀가 꽃을 피우고 있다. 재능이 여전히 만개하는 중이다.
“그녀는 작은 검정 드레스를 입고 환상적인 목소리로 노래 불렀다. 나는 그녀의 비극적인 삶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라비앙 로즈>(2007)에 출연하기 전까지 마리온 코티아르는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 서너곡 정도를 어렴풋이 알았을 뿐이다. 하지만 피아프와의 만남은 코티아르의 삶에 새로운 전기가 됐다. 아카데미를 비롯한 유수의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트로피가 그녀 앞에 줄을 서듯 모였다. 미를 뽐내는 여신의 경연장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나인>(2009)에서도 코티아르는 빛을 잃지 않는다. 되레 어느 누구보다도 강렬한 아우라를 드러낸다. 감정의 강약을 유지하면서도 강렬한 악센트를 찍어내듯 뜨거운 에너지를 발산했다. 우아하고 단아한 프랑스 여인의 기품에 가려져 있던 뜨거운 정열이 세상 밖으로 뜨겁게 드러났다. 그 뜨거운 열기로, 그녀는 ‘장밋빛 인생’을 열었다.
기괴하고 우울한 팀 버튼의 페르소나 즈음으로 여겨졌던 조니 뎁은 해적선에 오른 후, 롤러코스터적 캐릭터로 거듭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조니 뎁은 괴팍하고 수상한 낭만주의자다. <퍼블릭 에너미>의 존 딜린저가 심상찮아 보인 것도 팔 할은 조니 뎁 덕분이다. 전설적인 갱스터는 로맨티스트로 환생한다.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사나이 조니 뎁의 육체를 빌어서.
1987년, 약관의 절반을 넘어온 조니 뎁은 폭스TV에서 방영된 <21점프스트리트>를 통해 아이돌 스타로 떠오르며 대중들의 시선을 얻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조니 뎁은 이른 나이에 성공을 맛본 아이돌과 같은 길을 걷지 않았다. 훗날 조니 뎁은 이 당시에 대해 이와 같이 회상했다. “억지로 ‘상품’역할을 강요 받아야 했던 그 당시는 정말 끔찍했다. 내가 그것을 조종할 길이 없었다. 그건 내가 바라던 조건이 전혀 아니었고, 매우 불편한 상황이었다.”조니 뎁에서 산업적인 드라마 현장은 이상한 나라였다. 배우로서의 비전에 투항하기엔 조니 뎁의 영혼을 채울 고삐가 없었다.
”단지 그 누군가의 결정이 아니라 나를 위한 권리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면 할 것이다. 그것이 제대로 된 작업이든 비참한 실패든.”조니 뎁은 스스로 길들일 수 없는 야생마라는 것을 증명하듯 닦이지 않은 길로 뛰어들었다. 브라운관의 아이돌을 버리고 조니 뎁이 선택한 첫 번째 스크린작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팀 버튼의 <가위손>이었다. “설명한지 10분만에 수락했다.”조니 뎁의 말처럼 <가위손>은 팀 버튼과 조니 뎁의 운명적 만남이나 다름없었다. 제작자 스콧 루딘은 “기본적으로 조니 뎁은 팀 버튼의 모든 영화에서 그를 연기하고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조니 뎁은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조니 뎁에 따르면, “<가위손>의 에드워드는 십대 당시 팀 버튼의 무능을 전달하려 했고, <에드 우드>의 에드 우드와 벨라 루고시와 유사한 팀 버튼과 빈센트 프라이스의 관계를 반영하려 했다.”그 후로 7편의 작품을 함께 한 팀 버튼과 조니 뎁은 감독과 배우의 영역을 벗어나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잘 이해하는 동료로서 거듭났다.
단순히 팀 버튼의 기괴하고 영특한 페르소나 즈음으로 자리를 굳히던 조니 뎁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변화는 2003년에 찾아왔다. 디즈니 테마 파크에서 모티브를 얻은 해적물이자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제작자로 유명한 제리 브룩하이머가 참여한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의 주인공 잭 스패로우 역으로 캐스팅된 것. 1억 4천만 불짜리 대작에 조니 뎁이 캐스팅된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특히 공공연히 우려를 표하던 투자자들은 ‘키스 리처드’에 영감을 얻은 조니 뎁이 가냘프게 흐느적거리며 성정체성마저 모호해 보이는 잭 스패로우를 연기하는 것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조니 뎁은 할리우드의 실권자나 다름없는 제리 브룩하이머에 대한 믿음으로 자신의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캐리비안의 해적>은 6억 5천만불이라는 거대한 흥행 성적을 기록하며 시리즈물로 기획됐다. 후에 제리 브룩하이머는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가 처음 묘사한 캐릭터가 성공하는 것을 한번 보여줘야 그들이 편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게 됐다.”연출을 맡은 고어 버빈스키 역시 마찬가지다. “잭 스패로우가 조니와 실제로 밀접한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그에겐 가장 쉬운 것이었다.”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를 찍을 당시 팀 버튼의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를 결정지은 조니 뎁은 말했다. “뮤지컬에서 심각한 킬러에 관해서 연기할 기회가 얼마나 많겠나?”잭 스패로우를 통해 얻은 대단한 성공 이후로도 팀 버튼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선택했던 조니 뎁이었다. “사실상 <캐리비안의 해적>을 했던 것이나 <찰리의 초콜릿 공장>을 했던 것이나 멋진 종류의 작품을 한다는 건 마찬가지다.”잭 스패로우를 통해 큰 흥행을 얻었지만 정작 조니 뎁은 변한 것이 없었다. “작업을 선택하고 접근하는 과정에 대한 변화는 발생하지 않았다. 나는 항상 내가 했던 것처럼 정확히 같은 것을 거듭 해오고 있다. 나는 단지 내 할 일을 한다.”조니 뎁은 그 해 생애 첫 골든글러브 트로피를 거머쥔다. “나는 단지 누군가가 잘못 포함시킨 것이라 생각했다.”골든글러브 7번, 아카데미 3번, 지금까지 조니 뎁이 자신의 이름이 노미네이트에 오르고 내려간 것을 지켜본 건만 9번이다. 그 이전에 조니 뎁은 자신이 수상과 결코 무관한, 아니, 무관할 배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건 내 머리나 마음 속의 어둡고 깊은 곳에서조차 결코 갈망하지 못했던 종류의 사건이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몇 년 사이 제리 브룩하이머의 해적선과 팀 버튼의 몽상을 오가며 비현실적 세계의 아우라를 구축하던 조니 뎁은 <스위니 토드>이후로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그는 현실에 두 발을 디디고 전설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마이클 만이 연출한 <퍼블릭 에너미>에서 전설적인 은행 강도 존 딜린저로 출연한 조니 뎁이 실화적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 자체가 궁금증을 자아낼만한 일이었다. “사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 그런 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믿음을 위해서는 위험 속에도 뛰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조니 뎁의 생각에 존 딜린저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인간이기보단 누군가 하지 못하는 것을 특별히 해내는 사람에 불과했다. 동시에 존 딜린저는 갱스터라기 보단 락스타와 같이 대중들의 환호를 얻었다. “존 딜린저가 공공의 적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차라리 은행들이 공공이 적이었지. 그는 그저 대중적이었다.”
“존 딜린저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그의 생각을 알아내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조니 뎁은 존 딜린저에 관한 책이나 그가 등장하는 영상을 모두 찾아봤다. 그리고 점차 그가 일반적인 악당과는 차원이 다른 인물이었음을 알게 됐다. “자신만의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기존의 권력에 당당히 맞선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한다.”대중들의 환호를 받는 갱스터의 모습에서 자신이 동경했던 락스타의 아우라가 감지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점차 자신과의 유사한 지점들에 대해서 발견해내기 시작했다.“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내 고향과 멀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가 얘기하는 것을 처음 봤을 때 우리 할아버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도 생각했다. 그 모든 것들이 통해 존 딜린저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야구, 영화, 좋은 옷, 빠른 차, 위스키…그리고 당신. 그 밖에 또 무얼 알고 싶소?(I like baseball, movies, good clothes, fast cars.. and you. What else you need to know?)”빌리 프리셰의 마음을 사로잡은 존 딜린저의 대사는 지나치지 않게 로맨틱한 감수성을 자극한다. 그리고 남성적인 힘과 여성에 대한 배려를 담은 존 딜린저의 대사가 조니 뎁의 입술을 통해 내뱉어질 때 그것은 허구가 아닌 현실이 된다. “내 몸은 일기장이다. 뱃사람들이 그러하듯, 모든 문신은 당신 스스로 흔적을 남기고 싶을 만큼 인생에서 특별한 시간을 어디서나 남길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조니 뎁의 왼팔 이두근엔 ‘위노 포에버(WINO FOREVER)’라는, 옛 연인 위노나 라이더와의 추억이 새겨져 있다. 마치 한 여자에게 자신의 인생을 거는 존 딜린저처럼 조니 뎁도 자신의 지난 사랑을 몸에 새긴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조니 뎁의 몸엔 현재 그의 딸과 아들과 어머니를 비롯해 13개의 추억이 새겨져 있다.
조니 뎁은 말했다. “나는 여전히 수많은 실패를 소유하고 있다.”여전히 조니 뎁은 말한다. “나에게 너무나 후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하지만 지금 조니 뎁은 할리우드에서, 그리고 전세계에서 가장 바쁜 배우 중 한 사람이다. 테리 길리엄의 연출작이자 히스 레저의 유작이기도 한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과 팀 버튼과 또 한번 손을 맞잡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차례대로 개봉을 기다리는 가운데, <캐리비안의 해적>의 새로운 시리즈와 <씬 시티>의 차기작에 그의 이름이 예정돼 있다. “할리우드나 산업적 정의에 따른 영화들은 내게 훌륭한 결과물이 되는데 실패했다.”조니 뎁은 가장 비할리우드적인 방식으로 할리우드에서 각광받는 배우로 자리잡았다. 그건 어쩌면 그의 재능을 알아주는 이들을 잘 만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은 그 스스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어쩌면 그에게 있어서 실패란 딱히 두려운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가야 할 길이 있을 뿐이다. 죽음을 앞두고 연인에게 남긴 마지막 인사말의 낭만처럼, Bye bye my blackbird. 물론 조니 뎁의 마지막 인사에 취하기엔 아직 시간이 이르다. 조니 뎁의 전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니까.
신출귀몰한 전법으로 은행을 털고 유유히 FBI를 따돌리던 갱단의 리더 존 딜린저(조니 뎁)가 검거됐다. 존 딜린저를 구치소로 이송하는 차량 주변에 수많은 군중이 몰려 환호를 지른다. 존 딜린저를 보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든 군중의 환호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열광에 가까운 것이다. 존 딜린저가 수감될 예정인 미네소타 구치소에 몰려든 취재진의 열기도 뜨겁다. “은행 하나를 터는데 얼마나 시간이 필요하나요?”“1분 40초 정도면 가능하지.”기자가 던진 가벼운 질문이 농담으로 튕겨져 돌아온다. 악명 높은 범죄자를 목전에 둔 긴장감 따위란 없다. 마치 유명인을 눈 앞에서 두고 본다는 들뜬 기분이 현장을 장악한다. 그 사이에서 여유로운 미소로 현장을 장악한 존 딜린저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퍼블릭 에너미>는 그 표정 너머의 시대를 관찰하기 보단 그 표정을 통해 시대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발견하는 영화다.
영화의 도입부, 스크린에 명시된 한 줄 자막에 따르면 미국 경제대공황이 4년째에 접어든 1933년에 존 딜린저의 삶은 절정에 달했다. 1930년대, 미국 경제대공황기에 전성기를 누렸다는 갱스터 존 딜린저의 전기적 실화를 다룬 <퍼블릭 에너미>는 전설적인 갱스터의 일생 가운데 절정을 이뤘다는 마지막 1년을 발췌하는 작업이다. 인물의 생애 안에서 가장 드라마틱하다고 회자되는 한 시절이 스크린에서 재현된다. 경찰에 검거돼 인디애나 주립교도소로 이송된 존 딜린저가 수감 중이던 동료들과 함께 교도소로부터 도주하는 광경을 통해 출발하는 <퍼블릭 에너미>의 서사는 바이오 그라프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던 존 딜린저가 FBI의 포위망 속에서 사살되는 1944년까지, 약 1년 여간의 생을 스크린에 재연한다. 인물을 조명하는 전기적 서술이 서사적 뼈대를 이루는 동시에 인물을 둘러싼 시대적 공기가 갱스터 무비의 육체와 멜로드라마의 감성을 입고 유려하게 포착되고 수집돼나간다.
고집스런 리얼리즘 영상 <퍼블릭 에너미>는 사실주의적인 재현을 통해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원론적 고집과 노고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존 딜린저와 FBI의 총격전이 벌어진 실제장소인 ‘리틀 보헤미안 롯지’에서 이뤄진 로케이션 촬영과 FBI의 포위망에 걸려든 존 딜린저가 총에 맞아 즉사한 장소인 ‘바이오 그라프 극장’을 고스란히 재현한 세트 촬영은 그 객관성의 자질을 구체화하기 노고에 가깝다. 실제 은행강도 범죄전력이 있는 ‘제리 스칼리스’를 고용하면서까지 실제적 완성도를 고려했다는 은행강도 신 역시 리얼리티를 최우선으로 삼은 연출적 고집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퍼블릭 에너미>가 이루는 리얼리즘 이미지의 대부분은 총격신에 걸쳐있다. 특히 극초반부에 등장하는 인디애나 주립교도소 탈주 신은 <퍼블릭 에너미>의 지향점을 드러내는 극명한 이정표나 다름없다. 선명한 디지털 색감이 이루는 생생한 질감의 영상 너머로 역동적인 핸드헬드가 연출하는 현장감과 외부적 사운드의 유입을 차음(遮音)하고 현장음을 고스란히 노출시키는 총격전 이미지는 다큐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현장성에 의존된 연출력을 선보인다. 그 뒤로 리틀 보헤미안 롯지에서 존 딜린저와 멜빈 퍼비스(크리스찬 베일)가 지휘하는 FBI의 야간 총격신 역시 <퍼블릭 에너미>가 추구하는 연출방식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사례다.
도심 총격신의 바이블로 꼽혀도 손색이 없는 <히트>를 비롯해 <퍼블릭 에너미>와 기종이 다른 HD카메라로 촬영된 <콜래트럴><마이애미 바이스>등을 통해 생생한 질감의 총격신을 연출한 마이클 만은 <퍼블릭 에너미>에 이르러 더욱 거칠고 역동적인 동시에 광범위한 클래식 총격신을 디지털 장비로 연출했다. 디지털 카메라의 또렷한 색감은 재현이라는 객관성을 공고히 다져나간다. 또한 정적인 분위기 안에서 극대화된 총성과 역동적인 동선을 구사하는 카메라 워크는 영화의 외부적 위치에 놓인 관객의 감정적 침입을 차단하듯 현장성을 극대화시키며 목격으로서의 감상을 극대화시킨다. 물론 <퍼블릭 에너미>가 시종일관 현장성이 극대화된 흔들림으로 가득한 핸드헬드의 기록적 영상만을 전시하는 건 아니다. <퍼블릭 에너미>는 존 딜린저라는 인물의 기록적인 범죄행적을 따라잡는 동시에 존 딜린저라는 개인의 독립적인 사연을 연출한다. 일종의 서브 플롯에 가깝게 보이지만 실상 <퍼블릭 에너미>를 관통하는 건 이 독립적인 사연, 즉 존 딜린저와 빌리 프레셰(마리안 코티아르)의 로맨스다. 그 로맨스는 <퍼블릭 에너미>의 사실주의적 풍경으로부터 자제되는 영화의 감정적 근간을 발생시킨다.
영웅적 환상성이 반영된 논픽션
1933년과 1934년 사이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퍼블릭 에너미>는 대공황기의 혼란 가운데서도 낭만을 확보하는 존 딜린저의 모습을 통해 시대적 아이러니를 연출한다. 대공황의 주범이라 지목됐던 은행과 연방정부의 정책에 반감을 품은 시민들이 은행을 털고 시민의 돈을 갈취하지 않는 존 딜린저에게 환호를 보낸 건 그의 범죄적 행위가 그들의 반정부적 불만을 대리적으로 해소해주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퍼블릭 에너미>는 시대를 관통하기 보단 시대의 한 이미지를 영화적 배경으로 선택한 작품이다. 대공황기의 주효한 이미지를 찾아보기 어려운 <퍼블릭 에너미>에서 시대적 궁핍의 흔적을 짐작할 수 있는 건 존 딜린저에게 환호를 보내는 군중의 모습에서다. 갱스터에게 열광을 보내는 군중의 이미지에서 낭만의 유희를 상실한 대중의 곤궁한 정서가 읽힌다. 동시에 <퍼블릭 에너미>는 종종 존 딜린저를 마치 유령처럼 묘사되는 시퀀스를 등장시키곤 하는데 특히 존 딜린저가 극장에 앉아 자신의 수배 영상을 보는 광경과 자신의 검거전담반이 있는 경찰서 안을 휘휘 도는 광경은 <퍼블릭 에너미>의 의도가 반영된 연출적 결과물에 가깝다. 명성에 도취된 채 실체를 망각한 시대적 증후, 대중은 실체를 짐작하기 보단 명성에 도취되어 환호하고 그 이름을 쫓는 공권력은 도리어 실체 없는 악명에 짓눌려 겁쟁이처럼 눈을 돌린다. 그 한가운데서 갱스터는 대중의 환호를 얻는 판타지 스타이자 공권력을 조롱하는 히어로가 된다.
사실상 <퍼블릭 에너미>는 존 딜린저라는 갱스터의 족적을 배려한 전기물이라기 보단 존 딜린저라는 갱스터가 만들어낸 영웅적 환상성이 반영된 논픽션에 가깝다. 존 딜린저라는 인물로부터 새어나오는 낭만성이 시대를 장악하고 객관적으로 위장된 연출적 풍광의 영향력을 넘어서 관객을 도취시킨다.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을 건져 올려 그 인물을 둘러싼 시대의 특수한 단면을 도려낸 뒤, 해석적 연출을 가미한다. 연출력이 극대화될 수 있는 액션신을 리얼리즘에 가까운 영상으로 구사하는 건 <퍼블릭 에너미>가 신에서 발생할 만한 극적 흥미보다도 그 이미지에서 발생할만한 해석을 객관적으로 위장시키는데 치중하고 있다는 증거다. 또한 <퍼블릭 에너미>는 이런 해석적 위장을 통해 범죄자를 미화하고 있다는 혐의에서 풀려나는 영화다. 관객에게 인물의 행위를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인지를 거듭하면서 인물로부터 배어나오는 매력적인 분위기마저 객관적 형태로 이해시킨 뒤, 영화가 연출하는 시대적 공기 안에서 관객을 만취시킨다. 동시에 <퍼블릭 에너미>는 조니 뎁이라는 배우의 캐릭터 연출이 많이 반영된 영화이기도 한데 존 딜린저와 빌리 프레셰의 멜로 플롯이 이루는 로맨틱한 분위기가 영화의 전반을 지배하게 되는 건 그 플롯의 비중에서 비롯된 결과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모든 영향력의 전반은 조니 뎁이 연출하는 캐릭터의 뉘앙스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멜로적 잔향을 남기는 결말부의 여운 역시 <퍼블릭 에너미>가 궁극적으로 느와르보단 멜로적 감수성을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라 할만하다. 궁극적으로 <퍼블릭 에너미>에 방점을 찍는 정서는 로맨틱한 무드를 연출하는 멜로 그 자체에 놓여있다. 그 멜로적 분위기는 존 딜린저라는 인물의 매력을 연출하는 밑그림이기도 하다.
인물의 퇴장이 고하는 시대적 종언 존 딜린저가 죽음을 맞이한 바이오 그라피 극장에서의 결말부는 <퍼블릭 에너미>에서 궁극의 이미지라 할만한 광경이다. <맨하탄 멜로드라마>(1934)를 감상하는 존 딜린저가 스크린 너머의 클라크 게이블과 명확히 조응하는 눈빛으로부터 <퍼블릭 에너미>의 클라이막스가 형성된다. 한 시대의 끝을 예감하는 인물의 눈빛에서 비장한 영웅적 면모가 연출된다. 스크린 너머에서 단호하게 퇴장을 선택하는 배우의 표정을 통해 자신의 삶을 비장하게 다짐한다. 존 딜린저의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끝나는 결말은 실상 한 인물의 생이 마감되는 순간이라기 보단 한 시대의 종말에 가까운 의미를 연출한다. 명예라는 껍데기를 뒤집어 쓴 채 시대로부터 뒤쳐져 버린 인물이 자신과 조응할 만한 캐릭터의 비장한 결말에 도취될 때, 자신이 지배하던 시대의 끝을 직감한 인물의 느와르적 예감이 스크린을 지배한다. 어쩌면 결말부에서 중요한 건 존 딜린저의 죽음이 아니라, 끝을 직감하는 존 딜린저의 표정인 셈이다. 여기서 끝이란 죽음이라기 보단 자신의 시대에 가깝다. 그 시대로부터 어떻게 퇴장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영웅적 면모가 고독하게 돋보인다.
존 딜린저의 죽음을 담아낸 영화의 결말부는 범죄자에 대한 사살이라기 보단 비겁한 공모적 암살에 가깝게 연출된다. 그 순간, <퍼블릭 에너미 Public Enermies>, 즉 ‘공공의 적’이라는 제목은 명확히 반어적인 언어로 전복된다. 고독한 영웅적 면모를 선보이는 갱스터가 무리 지어 모인 FBI의 총에 맞아 쓰러지는 광경은 아이러니하게도 비장한 페이소스를 연출한다. 시대적으로 퇴물이 되어가는 갱스터의 낡은 영광이 영면에 든다. 겁쟁이처럼 숨어서 존 딜린저를 기다리던 수사관들은 그가 주검이 된 뒤에야 그 얼굴을 대면한다. 겁쟁이들을 평정한 영웅의 시대는 그렇게 끝났다. 거대한 인물의 죽음을 마주한 뒤에서 시대의 종언을 체감한다. 떠나간 사람을 추모하며 뒤늦게 한 시대의 끝을 체감하는 오늘날의 우리처럼 그렇게 시대의 끝은 뒤늦게 직감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겁쟁이들이 끝없이 사라지는 것과 달리 영웅은 이야기를 통해 영생을 누린다.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다'고 믿었던 낭만주의적 영웅은 시대를 넘어 스크린에 부활된다. <퍼블릭 에너미>에서 '존 딜린저'는 전설적인 갱스터의 고유명사라기 보단 진정한 낭만주의적 영웅을 대표하는 실존적 육체에 가깝다. 결국 <퍼블릭 에너미>는 존 딜린저의 육체를 통해 영웅의 시대를 기리며 낭만의 부활을 꿈꾸는 영화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