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457,768 vs. $39,722,689. 메이저리그의 최고팀과 그 아래에 있는 팀보다도 더 밑바닥에 있는 팀의 간극은 저 수치로 정리된다. 선수 몸값의 총액이 곧 팀의 실력을 대변한다. 수치만으로도 명백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 프로스포츠의 세계에서 이는 흔한 일이다. 이는 메이저리그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세계 모든 종목의 프로스포츠 대부분은 구단의 빈부격차를 통해서 순위의 계층화가 손쉽게 이뤄진다. 뉴욕 양키스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통점은 실력 있는 부자 구단이라는 것. 부자 구단들은 한 시즌이 마감되면 자본을 투여해서 스타들을 영입하고, 새로운 유망주를 발굴하거나 스타를 길러낸 가난한 구단들은 감당할 수 없는 부자 구단의 선수 수집을 넋 놓고 지켜볼 수 밖에 없다.

Posted by 민용준
,

<나는 가수다>는 실력의 오차범위가 불명확한 프로가수들의 무대에 우열의 가치를 도입한다는 것만으로도 불합리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그 불합리함을 넘어서는 포맷의 시도가 이 프로그램에 대단한 합리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정체성을 세워냈다. 신선해서가 아니다. 절박했기 때문이다.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던 베테랑 가수들의 공연을 매주마다 한 차례씩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예측불가능의 결과로 인해서 새로운 무대가 마련된다는 것, <나는 가수다>가 흥미를 자아낸 건 출중한 실력을 선보일 길이 없는 베테랑들의 절벽 위에 비합리적인 투표 제도를 빌미로 슈퍼쇼를 기획해냈다는 측면이었다. 구린 연출과 편집을 견디게 만든 건, 표면적으로 강호의 고수들이 등장하는 진짜 무대 덕분이었고, 궁극적으로 탈락의 수렁에 빠지지 않기 위해 진검승부를 펼치는 그들의 긴장감이 날것처럼 전해져 오는 순간들이 존재했던 까닭이었다.

 

그 서스펜스가 증발됐다. 그 화려한 무대 이후의 긴장감은 이 리얼리티 쇼의 핵심이었다. 원칙이 무너졌다. 진짜 실력의 등위를 떠나서, 그 투표의 공정성과 기준의 오차범위를 떠나서, 오로지 수치로서 파악되는 불투명한 결과로 무대의 자격을 잇겠다는 야심은 일단 대단한 것이었고 그만큼 기대를 모았던 것이다. 그 야심을 스스로 박살냈다는 건, 이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를 함께 지워내 버린 것과 같았다. 김건모가 7위에 올랐다는 사실은 그 무대에서 함께 노래했던 이들이나, 그 무대 밖 어느 브라운관 앞에서 이를 지켜봤을 수많은 시청자들에게나, 굉장한 파고이자 울림이었다. 그걸 단박에 깨는 프로그램의 태도는 실로 기네스북감이다. 김건모도, 프로그램도, 함께 공멸했다. 차후에 대단한 무대를 펼친다 해도, 그는, <나는 가수다>는 쉽게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들의 기준을 파기해버린, <나는 가수다> <나는 가수다>가 아니다. 이런 식이라면 <위대한 탄생>의 아마추어에게는 냉정한 프로의 논리를 어찌 설득할 수 있겠나. 아마추어에게는 가차없고, 프로는 우대하는, <나는 가수다><가요무대>. 모세가 또 한번 홍해를 가르길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나는 가수다>의 진정성을 인정할 날은 오지 못할 것 같다. 존폐의 기로에 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쩔 것인가. 궁금하다. 3회 분량 만에 스스로 자해를 자행해버린 프로그램이라니, 이것도 대단한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노이즈 마케팅이 목표였다면, 욕먹을 때 떠나라다 떠나서 쌀집 아저씨는 진짜 쌀집을 차려야 할지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몰래 카메라> 찍던 그 시절이 그리웠다면 타임머신이라도 타던가.

'도화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버스에서  (2) 2011.03.30
결벽관람주의자들의 감상법  (0) 2011.03.21
진보적 꼰대  (0) 2011.03.13
이끼 낀 세상, 포기할 수 없는 싸인  (0) 2011.03.13
군대가 트렌드냐.  (0) 2010.12.13
Posted by 민용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