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를 보고 싶다는 인물의 머리 위 하늘에 코끼리가 날아다닌다. 일순간 망각을 더듬어 기억을 재생하는 인물의 머리 속 두뇌 피질의 형태가 화면에 드러난다. <펜트하우스 코끼리>는 무의식적 추상을 이미지적으로 구체화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점철된 것만 같은 작품이다. <펜트하우스 코끼리>라는 제목에 내포된 허상처럼 영화는 디자인과 인테리어에 속박된 인물들의 공허한 심상을 끊임없이 겉돌아 나간다.
사진작가 현우(장혁)와 성형외과 전문의 민석(조동혁), 그리고 외국계 금융 전문가 진혁(이상우). 유년시절의 추억을 공유한 세 남자를 중심으로 사건을 확대해나가는 영화는 개별적인 사연을 진전시키는 동시에 종합적인 형태로서 사연들을 엮어나간다. 실연의 상처에 시달리는 동시에 코끼리를 찾아 헤매는 현우와 질환적 수준으로 성적 집착과 여성 편력에 빠진 민석, 그리고 12년 간 외국으로 떠났다 친구들 곁으로 돌아와 사랑을 갈구하는 진혁까지, 세 남자의 사연이 평행하게 전시되듯 흘러간다. 그 와중에 남편과 첫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수연(이민정)과 불현듯 등장해 실연당한 현우의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정신과 의사 장선생(황우슬혜) 등의 여성캐릭터가 세 남자의 사연에 깊게 연관되어 사건의 형태를 벌려나가기 시작한다.
시쳇말로 시크와 엣지라는 허세적 단어가 떠오를 만큼 스팽글하고 럭셔리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세 남자들은 저마다 여유로운 삶 속에서도 공허와 허무라는 사치를 떠돈다. 텍스트로 기록된 상상적 이미지를 구체화시키듯 직설적으로 시각화된 이미지들이 적나라하게 활용된 <펜트하우스 코끼리>는 말 그대로 인테리어에 공을 들인 작품임에 틀림없다. 중요한 건 그 인테리어적 디자인과 이미지의 기능성이다. <펜트하우스 코끼리>는 그 공들인 디자인과 이미지가 무엇을 위해 영화에서 복무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에 좀처럼 답을 주지 못하는 영화다. 단지 전시적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시종일관 강박적으로 추상(抽象)을 구상(具象)으로 변주해나가는데 치중한다.
동시에 두서 없는 145분 간의 사연은 장황함을 넘어 지난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건 낭비다. 물질적 욕구가 팽배한 가운데 정신적 허무에 시달리는 오늘날 젊은이의 삶을 그렸다, 라는 박제적인 문구가 떠오르는 영화의 형태는 정작 그 삶의 본질이 무엇을 갈구해야 하는가라는 지표를 드러내지도 못한 채 이미지만 둥둥 띄워 스크린에 드러내기에 급급하다. 흡사 자신의 미술숙제를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은 유아적 욕망처럼 칭찬받고 싶어서 안달 난 느낌이랄까. 흡사 영화적 스크린이 아니라 시각디자인 전시장의 쇼윈도 너머에 앉아있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이미지적 강박만큼이나 세 인물을 둘러싼 사연의 흐름 역시 허세로 가득하다. 뭔가 비범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정작 잡히는 알맹이는 없다. 구조적으로 불완전하고, 내용적으로 지나치며, 의미적으론 모호하다. 그저 허상에 갇힌 전시적 욕망을 벗어나지 못한 채 와 닿지 않는 선문답처럼 코끼리만 찾아 헤맨다.
아이러니한 감상을 부여하는 건, 영화와 무관하게 장자연의 얼굴이다. 대담하고 발칙한 홍보문구 따위가 낚시인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육체적으로 착취되는 캐릭터라 할 수 있는 장자연의 이미지는 살아있는 자의 감상을 숙연하게 만든다. 안타깝게도 유작이 돼버린 이 영화에서 그녀가 남길 이미지들은 좀처럼 안쓰러워 보는 이를 침통하게 만들만한 것이다. 심지어 영화는 때때로 그녀를 비춘 앵글을 낭비적으로 활용하기도 하는데, 구체적으로 그녀의 캐릭터가 자살한 채 욕조에 몸을 누운 시퀀스에서 지나치게 그녀를 앵글에 수집해 넣는지 알 길이 없다. 그 장면을 삭제할 순 없었겠지만 그 이미지가 그렇게나 자주 스크린에 잡혔어야 했을지 모를 일이다. 불순함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그만큼 <펜트하우스 코끼리>는 뭔가를 더 보여주고 싶은 강박에서 허우적거리는 영화일 뿐이란 이야기다. 그 강박이 지나치다. 그리고 지난한 사연은 질식할 만큼 길고 더디다.
남현수의 ‘오후의 뮤직’을 진행하는 라디오 DJ 남현수(차태현)는 청취율 1위를 달리는 인기 DJ다. 한때 가수로서 흥망을 맛보기도 했지만 라디오를 통해 재기에 성공했다. 좋은 집만큼이나 남 부러울 것 없는 명예도 얻었고 바람기를 발휘할(?) 기회도 얻었다. 그는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청취자들과의 전화연결을 통해 고민을 상담해주곤 한다. 물론 진심을 다하는 척할 뿐, 뒤에서는 대화내용으로 농담을 일삼는다. 사연을 소개할 때마다 청취율을 상승시키는 황정남(박보영)의 아빠 찾기 사연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던 어느 날, 미모의 애인을 집에서 기다리던 남현수 앞에 황정남이 나타난다.
소재만을 살펴보자면 <과속스캔들>은 어떤 오해나 편견을 발생시키기 좋을 만한 여지가 가득하다. 오래 전 혼전 관계로 잉태된 2세가 찾아온다거나,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 그리고 화합, 아동 캐릭터를 이용한 웃음과 감동 등등, 영화가 끌어 모은 소재들은 예상 범위가 인지되기 좋은 수준의 이야기를 연상시키고 동시에 어떤 착취에 대한 오해를 형성시킬만한 여지도 농후하다. 영화 역시 그 예상범위를 특별히 벗어날만한 파격을 보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과속스캔들>은 충분히 즐길만하다고 말할 수 있는 가족드라마로 완성됐다. 뻔한 듯한 게 아니라 뻔한데도 즐길만한 구석이 충분하다.
중학교 시절 옆집 누나와 맺었던 첫경험(!)이 22살 먹은 딸로 인해 되살아난다는 설정이나 그 딸이 역시나 6세 손자까지 달고 온 미혼모라는 설정은 겉보기만으로도 상당한 무리수다. 무리수를 헤쳐나가는 돌파력은 캐릭터에서 발생한다. 고정적인 이미지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명배우나 신선한 이미지를 어필하기 좋은 신인배우나 존재 자체가 귀여움으로 인식되는 아역배우나 각자의 장점을 적절하게 발휘하고 있다. 캐릭터의 앙상블은 헐겁거나 과하다 싶을 만한 허구적 설정과 맥락을 제자리에 안착시킨다. 그리고 드라마가 전개된다. 결과적으로 <과속스캔들>은 기막힌 사연에서 시작되는 가족드라마이자 어느 남자와 소녀의 성장드라마다.
전복적인 상황과 캐릭터를 앞세운 유머를 통해 재치를 발휘하며 시작되는 영화는 중반부에 이르러 통속적인 슬픔을 자아내고 이내 극복을 통한 대통합 감동모드로 돌입한다. 전반부의 위트가 오밀조밀한 재미를 부여하는 것에 비해 후반부가 다소 작위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긴 하다. 그럼에도 캐릭터의 매력은 후반부까지 최대한의 힘을 발휘하며 제 능력을 다한다. 지구력 약한 드라마를 순발력 있는 유머로 극복한다. 이는 <과속스캔들>의 오락적 성과를 인정하게 만들 정도의 자질이 있다. 특히 남현수의 6살 손자 황기동을 연기하는 아역 왕석현의 능수능란한 표정연기가 이에 대단한 공헌을 보인다.
한편, 외부적으로 큰 공통점이 발견되지 않음에도 <미녀는 괴로워>가 연상된다. 시사성을 지닌 소재가 보편적인 감정을 야기시키는 까닭이기도 하겠지만 두 영화에서 등장하는 무대의 속성이 캐릭터 스스로 한계를 극복하고 꿈을 이루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무대에 선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가 공통적으로 노래를 잘 한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음악감상의 즐거움은 서브적인 묘미를 부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