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동시의 문제

도화지 2015. 5. 8. 13:07

잔혹동시의 문제는 시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읽을 대상의 미성숙함을 고려하지 않은 채 게재됐다는 것이 문제의 본체다. 성인이 읽었을 땐 괜찮다. 성인에겐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문장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그건 폭력이다. 그것을 '아이가 쓴' 동시라고 이해할 순 있으나 '아이가 읽을' 동시라고 인정하는 건 곤란하다. 그렇다면 '19금'이란 기준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게 아니라면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만인을 위해 공중파에서 포르노를 틀어도 되겠지. 어른이라면 아이가 어떠한 것도 감당해낼 수 있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한 나이가 되기까지 눈높이를 맞춰서 지혜를 전하고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줘야 한다. 문제가 된 잔혹동시란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대로에서 벌거벗은 채 앞에 선 바바리맨을 만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 글을 쓴 아이가 아니라 읽을 대상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출판사의 태도를 지탄해야 한다. 그리고 그 동시를 쓴 아이를 손가락질하는 어른들이 있다면 스스로의 글러먹음을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아이가 쓴' 동시엔 죄가 없다. 그 동시는 바로 그런 어른들의,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는 얕은 분노 같은 것으로부터 잉태된 것일 수 있으므로, 그 시의 모티프가 된 아이의 분노에 자궁 역할을 한 어른들의 반성이 절실하다. 그리고 '아이가 읽으라고' 그런 시를 출판한 출판사는 진짜 좆 잡고 반성할 필요가 있겠다. 정말 뭔 생각이었던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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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가 돌아왔다

도화지 2015. 4. 19. 23:37

새끼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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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감이 끝났다. 홀가분하다. 하지만 대단히 좋아서 죽을 거 같다거나, 그렇진 않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확실한 한 가지는 지금이 4월 17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해 이 맘 때엔 진도 앞바다에서 배가 뒤집어졌고, 오늘 같은 날엔 광화문 광장에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화가 나는 건 같은데 조금 다른 건 울적하다는 느낌 같다. 흐느낌 같은 것이 하루 종일 내 등 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기분. 생각해 보니 어제, 비도 왔다. 눈물 같은 하루였다.

2. 집으로 오는 길에 필연적으로 광화문을 지난다. 광화문에서 경복궁 방면으로 들어가는 길이 경찰 차벽으로 인해 완벽하게 봉쇄됐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새벽 4시가 넘어서인지 통행이 가능했다. 하지만 여전히 세월호 유가족이 농성 중이라는 광화문 앞과 헌화를 위해 사람들이 모인 광화문 광장 주변엔 경찰차들이 촘촘하게 서있었다. 택시가 마치 섬 사이를 지나가는 배와 같았다. 저 너머에 사람이 있는데 보이지가 않았다. 마치 오늘을 기다리며 철저하게 대비했음을 보여주듯 놀랍도록 철저하게 봉쇄된 광장 주변의 풍경이 암담했다. 그러니까 1년 동안 구상한 게 저것이란 말인가.

3. 광화문 인근에 사는 탓에 세월호 유가족이 머무르는 텐트를 필연적으로 자주 봤다. 봄이 끝나갈 무렵에 세워진 텐트는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고, 겨울을 지나, 다시 봄까지 왔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동안 텐트는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러니까 텐트도 정확히 지구와 함께 태양을 한 바퀴 돌았을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그렇게 먼 거리를 움직일 수 있는데 몇 걸음 걸으면 다다를 수 있는 청와대 앞으로 유가족은 갈 수 없었다. 태양을 한 바퀴 도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세월호 유가족이, 대통령을 만난다는 건. 내년에도 태양을 한 바퀴 돈 세월호 유가족의 텐트를 보게 될까. 어쩌면. 아니, 혹시라도. 혹은 제발.

4. 지난 1년 동안 세월호는 끊임 없이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으면서도 끝끝내 떠오르는 단어였다. 서울에 있다가도, 부산에 있다가도 진도 앞바다를 생각했다. 나는 잊는 게 두려웠다. 그리고 내가 잊지 않아도 세상이 바뀌지 않을 것 같아서 두려웠다. 그래서 잊을 수 없었다. 그 두려움을 통해 그 날을 끊임 없이 떠올려야 할 것 같았다. 추모의 의미로 달았던 노란 리본은 강력한 상징이 돼서 떼낼 수 없는 것이 됐다. 평생을 바쳐 추모해야 하는 무언가가 됐다. 내가 어른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점점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게 죄를 짓는 것만 같다. 물려줄 죄만 늘어가는 세상이다. 우울하다.

5. 세월호 유가족이 한 말이 각인된다. “박근혜는 죽으면 자식이 없겠지만 나라에서 장례를 치러주겠지. 하지만 나나 부인은 거둬줄 사람이 없다. 내가 박근혜보다 나이가 적다. 죽을 때까지 두고 볼 것이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다. 그러니 최선을 다할 것이다. 광장에 서서, 광장이 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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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강호순의 얼굴을 공개한 언론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을 때 이를 둘러싼 총체적인 매커니즘에 관해 취재해서 긴 기사를 썼던 적이 있다. 그때 당시 뒤늦게 마지막으로 강호순의 얼굴 공개에 탑승한 MBC 보도국 관계자로부터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언론 입장에서는 위법성보다도 기사로서의 의미가 관건이 될 수 있다. 불법적인 보도가 면책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법률적 판단과 무관하게 언론 입장에서 기사적 가치를 판단하고 보도를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JTBC <뉴스룸>이 성완종 회장의 발언이 담긴 녹음 파일을 공개한 것도 이런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결국 방송의 보도윤리란 일반적인 사회적 윤리와 완벽하게 동일한 궤에 놓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그것이 정보원의 엠바고를 무시할 수 있는 완벽한 논리일 순 없겠지만 알 권리를 바탕에 둔 보도윤리를 중점에 두고 보도방침을 해석하고, 결정하는 뉴스 관계자의 기류를 판단할 때 참고할만한 사항은 되겠다.


이번 사안이 향후 <뉴스룸>의 행보에 어떤 타격을 입힐지는 모르겠으나 <뉴스룸>이, 본질적으로 손석희가 십자가를 짊어질 수밖에 없는 국면이 된 건 확실해 보인다. 아마도 이런 판단을 내린 손석희도 잘 알고 결정한 사항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가 정말 멍청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렇다. 그럴 리는 없지 않은가. 그만큼 손석희는 녹음 파일 공개가 언론으로서의 직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건 손석희의 직업정신에서 나온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향하는 활시위가 될 것임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결국 중요한 건 <뉴스룸> 보도국이, 손석희가, 사회적 윤리를 배반했다고 논할 이들을 정서적으로 얼마나 설득시킬 수 있느냐의 싸움이 될 것인데 그 국면에 대해서는 예측할 수 없겠다. 그리고 그만큼 막중한 사안이라 판단했을 손석희의 믿음이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는 결국 아무도 모를 것이다. 손석희의 판단에 온전히 동의할 순 없지만 나는 언론인으로서 그가 내린 판단은 존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시선으로 그의 자리를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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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란 성공과 실패라는 단어로 손쉽게 구분된다. 하지만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영화들은 괴롭고 비루한 일상을 통해서도 이어지는 생을 그린다. 쉽게 꺾이지 않는 생의 가능성을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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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형이 조심스럽게 카톡을 보냈다. ‘페북으로 쌍용차 후원 릴레이를 하는데 다음 타자로 널 지목해서 태그해도 되겠니?’ 그러라고 했다. 1만원을 쌍용차 후원 계좌에 입금하고 응원의 메시지를 남긴 후 관심 있는 지인 두 사람 이상을 추천하면 된다고 했다. 어쩌다 보니 대략 한 달 가까이 시간이 지나서야 기억이 났다. 기억난 김에 입금하고자 했다.

하지만 1만원이 아니라 10만원을 입금하고, 다음 타자는 지목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내가 10명의 후원을 대신했다고 생각하련다. 괜히 누군가를 추천해서 부담을 안겨줄 수도 있고, 이미 다른 방식으로 후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만약 당신이 쌍용차 해고자들에 대한 후원에 관심이 있다면 동참해줬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추천하지 않았지만 이 글이 누군가 기꺼이 참여할 수 있는 계기의 창이 되었으면 좋겠다. 저 분들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언젠가 내가 혹은 나와 가까운 누군가의 처지가 될 수 있음을 공감하고 기꺼이 저 투쟁을 응원해줬으면 좋겠다.

방법은 어렵지 않다.

[농협 3510598588683 김정우] 계좌에 1만원을 후원하고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주면 된다. 응원의 메시지가 주는 힘도 대단할 것이다. 

우리에겐 지금 거대한 정치적 패악을 뒤바꿀 동력도 필요하겠지만 당장 벼랑으로 내몰린 일상을 구제할 수 있는 온기 또한 절실하다. 그러니 그 온기를 전하고 누군가에게 폼 나게 자랑하시라. 이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전파하고 그 즐거움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간지 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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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훈 인터뷰

interview 2015. 2. 8. 02:30

거침 없이 말했다. 언뜻 가볍게 들렸다. 하나 곱씹을수록 명확했다. 주지훈은 똑부러지게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사람이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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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의 집과 사무실과 가게들이 오픈하우스 서촌이라는 이름을 걸고 문을 열었다. 지난해에 이어서 올해 또 한번, 벌써 두 번째 손님맞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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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LESS BLOSSOM

조선의 왕을 위해 피어났던 궁중채화는 왕실의 몰락과 함께 져버렸다. 하지만 지금 다시 궁중채화가 피어나고 있다. 조선의 임금이 아닌 만인을 향해서, 정성 어린 손끝에서 다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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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USUAL GIFT

자비에 돌란을 기억하라

각본을 쓰고, 연출도 하고, 연기도 하고, 편집도 한다. 그리고 불과 26세의 나이로 전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는 인물이 됐다. 자비에 돌란에겐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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