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영화제였던 부산국제영화제가
제대로 개최될 수 있는지조차 불투명한 영화제로 전락한 건 내부의 적 때문이었다.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영화제로 자리잡은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로
21회를 맞이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과연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제 생일을 챙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매년 10월경에 열렸다. 지금쯤이면 초청작을 비롯해 기본적인 영화제의 윤곽 정도는 잡았어야 할 시기이지만 영화제 기간을 제외한 어느
것도 준비된 것이 없다. 그나마 원년 집행위원장이었던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이 서병수 부산시장 대신 민간
자격의 조직위원장으로 추대된 것이 최근의 성과다.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린다는 영화제 기간을 제외하면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선
세월호 참사 구조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의
상영을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부산시장이자 조직위원장인 서병수가 정치편향적인 영화라는 이유로 <다이빙벨>의 상영 중단을 요구했고, 영화계에선 상영 중단 요구를 철회하라며 반발했다. 결국 부산국제영화제
측에선 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이라는 모토를 고수하며 예정대로 <다이빙벨>을 상영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사태가 시작됐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일부 영화인들만의 전유물로 전락했다.” 서병수
시장은 부산국제영화제를 향한 비난을 쏟았다. 비난에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해 1월부터 4월까지, 부산국제영화제는 감사원으로부터 대대적인 감사를 받았고, 9월에는
국고보조금을 부실 집행했다는 명목으로 관련자를 검찰에 고발하라는 감사원의 지시가 떨어졌다. 그리고 12월엔 당시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었던 이용관이 검찰에 고발됐고, 이듬해 1월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영화계의 격렬한 항의가
이어졌지만 결국 지난 2월, 부산국제영화제 정기총회에서 집행위원장
임기가 종료된 이용관의 재위촉이 무산되면서 부산국제영화제는 키가 없는 배처럼 방향을 잃고 표류했다. 영화제
집행위원회에선 국내영화계 인사들로 구성된 자문위원 68명을 위촉했지만 부산시에선 되레 자문위원 위촉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며 팽팽히 맞섰다. 결국 국내 영화계 인사들로 구성된 영화인 연대에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보이콧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우려가 ‘열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라는 실물적인 예감으로 번지는 상황이었다.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은 2010년 집행위원장 직을 내려놓았다. 1996년 영화제의 시작부터 함께 했던 그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성공적인 현재로 이끈 일등공신이다. 은퇴한지 6년 만에 집행위원장으로 다시 돌아온 이유는 자신의 손으로
일군 부산국제영화제가 기우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국내 영화인들과 대립각을 세워오던 부산시장 서병수
역시 부산국제영화제가 좌초되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세계적인 영화제를 하루 아침에 바닥으로 내려 앉힌
악명을 뒤집어 쓰는 건 정치인의 입장에선 두고두고 회자될 오명이다. 결국 조직위원장 자리를 민간 자격인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에게 이양함으로써 명예와 실리를 함께 세우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중요한 건 결국
남은 시간이다. 불과 4개월 남짓한 기간은 영화제를 정상화시키기
빠듯한 시간이다.
사실 국내 영화제가 예산을 집행하는 지자체와 갈등을 빚어 파행의 위기에 놓인 사례는 적지 않다. 전주국제영화제는 2회 직전 지자체와 갈등을 빚어온 수석 프로그래머가
사퇴하며 영화제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상황이 연출됐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선 부천시장인 조직위원장을
필두로 한 조직위원회에서 집행위원장을 일방적으로 해고하는 상황이 벌어지며 영화계의 반발을 샀고 영화제 자체가 존폐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현재 표류 중인 부산국제영화제 또한 이와 다를 바 없는 경우다. 대부분의
국내 영화제는 지방자치단체, 즉 지자체의 예산을 통해 운영되고 이를 집행하는 지자체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추대되는 것이 관례다. 문제는 영화제의 역사와 함께 전문성 있는 인력으로 양성된 프로그래머나 영화제
관계자들이 영화제의 전문성과 무관한 지자체 관계자들로 구성된 조직위원회의 간섭을 받거나 정치적인 외압을 받으며 영화제의 역사를 송두리째 상실할
위기에 놓였거나 놓여있다는 것에서 문제의식을 느껴야 마땅하다.
영화제는 단순한 지역 행사가 아니다. 영화를 선정하는 전문 프로그래머와
영화제 운영의 노하우를 익힌 전문적인 운영위원들이 꾸준히 영화제의 내실을 다짐으로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문화적,
경제적 보고다. 그만큼 전문인력양성을 도모하고 이를 보조하는 기관의 협조와 이해가 절실하다. 영화제를 쥐고 흔드는 게 아니라 영화제의 정체성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야 한다. 심지어 지자체에서 집행하는 예산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지 않은가. 지자체의
예산은 시민의 것이고, 국민의 것이다. 지자체는 대리 집행인일
뿐이다. 부산, 전주, 부천, 제천 등 지금의 국제영화제를 성공적으로 뿌리내린 건 영화제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성실한 호응으로 숨을 불어넣은 관객들이었다. 영화제는 영화제를 찾는 관객들이 존재하는 덕분에 존재하는
행사다. 영화제의 진정한 주인은 관객인 것이다. 고로 지자체의
예산은 그 예산의 집행을 위해 세금을 낸 국민들 즉 관객들을 위해 집행하는 것이므로 영화제에 알력을 가한다는 건 결국 영화제의 주인들이 기꺼이
납부한 재산으로 영화제의 주인들이 일군 텃밭을 훼손한다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도 지자체가 알력을 써서
지자체의 자산을 무너뜨린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게 무슨 낭비적인 짓거리인가.
어쨌든 부산국제영화제는 열려야만 한다. 시네필들의 애정이 원기옥처럼
모여서 만들어진 20년의 역사가 몰염치한 지자체의 알력 따위로 무너지는 걸 본다는 것 자체가 뼈아픈
일이다. 심지어 ‘아시아의 창’이란 슬로건을 걸고 아시아영화들을 발견하는 보고의 역할을 해온 부산국제영화제의 문제는 아시아 영화계의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부산을 기억하는 전세계 시네필들의 염원이 부산국제영화제의 정상화로 이어지길 바라며, 나 역시 염원을 보낸다.
세상은 넓고 볼 영화는 많다. 그래서 국제영화제가 개최된다. 천편일률적인 멀티플렉스를 벗어나 동서남북 전국을 돌며 좋은 영화를 찾아 떠나는 기회. 잘 몰랐다면 지금부터 알면 된다.
바야흐로 봄이다. 화사한 벚꽃과 노란 개나리꽃을 보며 사람들은 봄을
만끽한다. 하지만 시네필의 봄맞이는 벚꽃 시기가 지날 무렵 전주에서 시작된다. 매년 4월 말이 되면 어김없이 열리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말이다. 그렇게 본격적인 한 해의 영화 순례가 시작된다. 이 순례는 대부분 10월 초에 개최되는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절정에 달한다.
한국에서 개최되는 영화제는 100여 개에 달한다. 이는 국내외에서 필름을 수급해 상영하는 일반적인 영화제 외에 영화 관계자들을 위한 영화시상식도 일부 포함한
결과다. 여기엔 ‘국제’란
단어로 수식된 영화제도 30여 개나 된다. 크고 작은 영화제의
정확한 수를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 1년 열두 달 동안 수많은 영화제가 전국에서 끊임없이 관객을 향해
손짓한다. 가히 영화의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격적인 영화제의 논의가 시작된 건 1995년이었다. 문화공보부 차관과 영화진흥공사 사장직을 역임한 김동호는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직에 관한 제안을 받았고, 이를 수락했다. 그리곤 부산시와 몇몇 기업에서 협찬과 후원을 받아
약 20억여 원의 예산을 마련했다. 그리고 1996년 10월 6일,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됐다.
남포동 일대를 주무대로 진행된 초기의 부산국제영화제에는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소박한 재미가 있었다. 지금은 좀처럼 기대하기 어렵지만 당시만 해도 왕가위나 박찬욱 같은 거장들이 남포동의 보도블록 위에서 신문지를
깔아 놓고 술을 마시는 풍경을 손쉽게 만날 수 있었다.
1997년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개최되고, 2000년엔 전주국제영화제가 막을 올리며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 국제영화제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다. 부산과 부천, 전주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지역적인 축제를
넘어서 세계적인 영화제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다양한 영화제가 도래하는 시대의 촉발로 이어졌다. 지방자치제 시대의 도래와 함께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의 필요성이 대두됐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영화제 개최 사례는
좋은 선례였다. 게다가 할리우드영화와 한국영화 위주의 영화들로 점철된 국내극장가의 현실을 감안했을 때
이 시기의 국제영화제들은 다양한 국적과 장르의 스펙트럼을 지닌 영화들을 국내에 전파하는 프리즘 역할을 해냈다. 그리고
관객들은 영화제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성실한 호응으로 숨을 불어넣었다. 결국 다양한 국제영화제는 영화제를 찾는 관객들이 존재하는 덕분에 존재하는 행사다. 영화제의 진정한 주인은 관객인 것이다.
하지만 모든 영화제의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특히 영화제를 주관하는
지자체와 영화제를 운영하는 집행위원회와의 불협화음이 심심찮게 도래하며 영화제의 뿌리를 흔드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2회 직전 지자체와 갈등을 빚어온 프로그래머가 사퇴하며
흔들리는 상황이 연출됐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일방적인 집행위원장 해고 사태로 영화제 자체가 존폐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현재 표류 중인 부산국제영화제 또한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 대부분의 영화제가 이런 문제 앞에서 영화제의 역사를 송두리째 상실할 위기에 놓였거나 놓여있다. 영화제는 단순한 지역 행사가 아니다. 영화를 선정하는 전문 프로그래머와
영화제 운영의 노하우를 익힌 전문적인 운영위원들이 꾸준히 영화제의 내실을 다짐으로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문화적,
경제적 보고다. 그만큼 전문인력양성을 도모하고 이를 보조하는 기관의 협조와 이해가 절실하다.
어쨌든 올해에도 이미 기지개를 켠 전주국제영화제를 필두로 다양한 영화제가 손님맞이를 준비 중이다. 그러니 당신은 그저 두둑하게 준비하기만 하면 된다.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여유와 기대를.
전주국제영화제
2016. 4. 28 ~ 2016. 5. 7
전주 고사동 영화의 거리 일대
올해로 17회를 맞이한 전주국제영화제는 부분경쟁을 도입한 비경쟁 영화제다. 영화들이 수상을 위해 출품된 작품보단 상영과 발표에 목적을 두고 있단 의미다.
그런 면에서 전주국제영화제의 가장 큰 특징은 디지털영화나 독립영화와 같이 기존의 주류영화가 가지고 있지 않은 문법이나 정서에 주목한, 대안적인 영화들을 위해 뿌리 내린 국제영화제로 자리잡았다. 매년
영화제에서 발표되는, 세 명의 국내외 감독들이 참여하는 디지털 단편 옴니버스 기획 ‘디지털 삼인삼색’과 영화제가 선정한 세 명의 국내감독이 완성하는 단편영화
기획 ‘숏!숏!숏!’은 전주국제영화제를 대표하는 인장과도 같다. 무엇보다도 연간 7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도시로 성장한 전주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란 점에서 영화 외적으로도 즐길만한 여흥이
많다는 건 영화제 입장에선 상당한 장점이다. 그만큼 도시의 전성기와 함께 영화제의 발전 가능성도 보다
무궁무진할 것 같다.
부산국제영화제
2016.10.6~2016.10.15
부산 해운대 센텀시티와 남포동 일대
벌써 21회를 맞이할 차례인 부산국제영화제는 국내 영화제의 맏형 노릇을
해왔다. 한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성장한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의 창’이란 슬로건을 필두로 아시아영화들의 전진기지 역할을 해왔다. 초기엔 남포동 일대를 중심으로 운영되던 영화제는 근래에 들어선 해운대 일대로 영화제의 중심무대를 옮겨갔다. 이를 통해 해운대 바다를 배경 삼아 다양한 영화제 부대행사를 진행하며 관객과 영화제 사이의 거리감을 긴밀하게
좁히는데 성공했다. 무엇보다도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자리한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영화들로 제한된 부분경쟁을
도입한 비경쟁영화제로서 아시아영화들의 발전과 미래를 제시하는 영화제로 확고한 자기 영역을 확보했다. 또한
아시아영화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지의 다양성영화들이 소개되는 장으로서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중이다. 해운대를
낀 입지 조건은 영화제를 찾은 관객들이 다시 부산으로 발길을 돌리게끔 만드는데 일등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부산을 다시 찾을 시네필들을 위해서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영화제의 위상을 위해서 영화제의 정상화는 절실할 수밖에 없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2016. 7. 21 ~ 2016. 7. 31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일대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두 번째로 긴 명맥을 자랑하는 국제영화제다. ‘판타스틱’이란
단어를 직접적으로 내건 만큼 장르 영화제로서의 정체성을 세우기 위한 노력이 지속돼 왔다. 호러와 SF, 스릴러, 판타지 장르 그리고
B급 영화의 하위 문화까지 포괄하는, 다양한 취향의 영화들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서
저변을 넓혀왔다. 최근 10년 동안은 장르적 취향의 작품
이외에 코미디나 액션, 멜로드라마를 포함한 대중적인 영화들도 영화제를 통해 소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장르영화제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히 다져나간 10년 이후부턴 영화제
자체의 대중적 규모를 강화해나가는 인상이다. 한편 올해부턴 영화제 시기와 맞물려 개최되는 부천국제만화축제와의
연계도 적극적으로 모색할 예정이다. 부천이라는 지역적 공통 분모를 통해 축제의 분위기에 활기를 더하겠다는
밑그림은 분명 주목할만한 청사진이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2016. 8. 11~ 2016. 8. 16
의림지와 청풍호반 그리고 제천 시내 일대
2005년에 시작된 영화제이지만 부산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와 함께 4대 영화제로 꼽힐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매년 8월 중순마다 광복절 휴일을 끼고 개최되는데 운치 있는 청풍호반을 병풍처럼 두른 개막식부터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분위기는 운치 있게 달아오른다. 음악영화제이지만 단순히 음악영화를 위한 축제인 것만은 아니다. 음악과 영화가 어우러진 축제에 가깝다. 다양한 음악영화들과 음악영화라
호명되지 않아도 음악적 울림이 있는 좋은 영화들이 의림지나 청풍호반과 같은 고즈넉한 풍경들과 어우러져 눈을 홀리는 동시에 다양한 음악 공연들이
매일 같이 귀를 홀린다. 국내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영화 <원스>를 발굴한 영화제이기도 한데, <원스>의 주연배우이자 뮤지션인 마르케타 이글로바가 영화제를 찾아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지난해엔 상영관 좌석점유율이 80%에 육박하기도 했는데 그만큼 영화제를
한번 찾은 관객이 다시 찾아오는 일도 많다. 그만큼 영화제에 대한 관객들의 만족도가 상당하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2016. 6. 2~ 2-16. 6. 8
메가박스 신촌, 아트하우스 모모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올해로 18회를 맞이하는 영화제다. 여성이란 정체성을 내세운 것처럼 여성의 주체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관통하는 영화들을 소개하는데 사회적 약자로서
그늘진 여성상을 조명하거나 주체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성을 화두로 삼은 전세계 영화들이 관객을 찾는다. 전세계적인
여성영화의 흐름을 짚고 아시아 여성영화인과 여성영화제 사이의 네트워크를 잇는 여성영화계의 가교 역할을 하는 데에도 앞장 서고 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30여 개국에서 초청된 100편 이상의 영화를 통해 꾸준히 관객과 소통해 왔는데 이는 여성영화제 중 전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이기도 하다.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2016. 9월 중
메가박스 신촌, 아트하우스 모모
올해로 18회를 맞이할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는 비로소 청소년을 내건
영화제에 걸맞은 나이로 성장했다. 청소년영화제인 만큼 성장통과 가족을 주제로 둔 영화들을 주로 소개하고
있다. 다만 키즈아이, 틴즈아이, 스트롱아이로 상영작을 구분하는 섹션을 운영하는데 이는 성장통이라는 주제의식에 대한 극적 표현의 강약에 따라
구별된 것으로 관람작을 선택하는 관객들을 위한 배려에 가깝다. 또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는 청소년영화를
상영하는 영화제를 넘어 청소년을 위한 영화제로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 영상문화를
이끌 전세계 청소년들을 위한 영상 기술을 학습하고 직접 영상을 제작하는 캠프를 운영하는데 이 과정을 통해 전세계 청소년들이 교류할 수 있는 장을
연다는 의미에서도 젊은 세대를 위한 영화제의 미덕이 엿보인다.
우에노 주리의 백치미적 연기가 인상적인 <신부의 수상한 여행가방>은 뮤지컬 성향까지 가미된 만화적 취향의 코미디다. 기시타니 고로가 자신의 첫 연출작으로 코미디를 선택했다는 건 일면 의외다. 최양일 감독의 <달은 어디에 떠있는가>를 통해 현장 경험을 시작한 기시타니 고로는 그 이후로 만만치 않은 사내이거나 진중한 남성으로서 각인돼왔다. “내 안에는 <개 달리다>의 강렬한 캐릭터도 있고 그 밖에도 배우로서 연기했던 다양한 요소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신부의 수상한 여행가방>은 배우로서 좀처럼 드러내지 못했던 기시타니 고로의 또 다른 취향을 드러낸 결과물이다. 무엇보다도“내가 보고 싶은 걸 찍는 방식”으로 작업에 임한 기시타니 고로는 “내 안에 있는 엔터테인먼트 요소들을 다 이끌어내서 1시간 40분 동안 완전히 달려보자는 생각”으로 <신부의 수상한 여행가방>을 완성했다.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는 예기치 못한 살인에 휘말리며 시체 유기를 계획한다. 하지만 생각대로 하면 된다는 모CF카피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걸 증명하듯 그녀를 기다리는 건 엉뚱한 소동극의 연속이다. 비현실성이 강하게 자각되는 영화적 상황의 나열 속에서도 설득력 있는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관건이었다. 기시타니 고로는 명확한 연출적 목표를 지니고 현장을 통제했다. “기상천외한 스토리를 지닌 이 작품을 보통의 영화 찍듯 리얼하게 표현하면 도저히 성립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그래서 기시타니 고로는 모든 상황을 “오버액션으로 끌어올렸고”, 덕분에 “춤과 노래가 들어가는” 방식이 강구됐다. 과할 정도로 감정을 조장하는 매 상황은 취향이 반영된 결과라기 보단 확실한 연출적 목표를 품고 스토리에 어울리는 표현을 선택한 결과물인 셈이다.
“이 작품을 찍으려고 생각해서 준비하고 시작하게 된 건 2년 전이다.” 기시타니 고로가 갑작스럽게 연출을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신부의 수상한 여행가방>이외에도 기획을 고려할만한“다른 후보들”도 많이 있었다. “난치병에 걸린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던지, 차분한 심리묘사가 요구되는 영화”를 구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기시타니 고로가 <신부의 수상한 여행가방>을 자신의 첫 번째 작품으로 선택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일본에 없는 타입의 영화를 만드는 것.” <마츠코의 혐오스러운 일생>만큼이나 기구하고 <달콤, 살벌한 연인>만큼이나 엉뚱하지만 보다 낙관적인 웃음과 여운을 전달하는 <신부의 수상한 여행가방>은 차분한 드라마타이즈 형식의 여운을 맺거나 적막한 개그를 구사하는 일본 코미디들과 분명 궤가 다른 작품임에 틀림없다. 그만큼 그런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갈 여배우의 역할이 중요했다. 그리고 기시타니 고로는 “아슬아슬하게 밸런스를 조절하지 못하면 너무 오버가 되거나 분위기를 떨어뜨릴 수 있는 역할”로서 “우에노 주리 이외엔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기시타니 고로가 “연기에 있어서 최고”라 생각한다는 우에노 주리는 그 기대를 충분히 보상할만한 연기를 선물했다.
배우로서 오랫동안 현장을 누빈 중견배우가 메가폰을 잡고 현장에 서는 느낌은 어색하지 않았을까. 오히려 반대다. “배우일 때는 오늘 촬영할 신에서 그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지 불안해서 언제나 현장에 가기 싫었다. 그러나 오히려 감독으로서 현장에 갈 땐 신나서 뛰어갔다.” <신부의 수상한 여행가방>은 기시타니 고로에게 현장의 새로운 재미를 만끽하게 만든 작품이다. 어쩌면 앞으로 기시타니 고로의 연기를 만날 기회가 현저히 줄어드는 건 아닐까. “배우로서 가끔 어떤 역할에 대한 굶주림을 느끼게 되면 그 방향으로 가게 된다. 감독과 배우로서의 밸런스도 마찬가지 아닐까. 연출적 갈증이 생기면 아마 다시 연출을 하게 되겠지. 결국 해보지 않고선 알 수 없는 결과론적인 일이다.”물론 기시타니 고로에겐 “찍고 싶은 영화가 많다”. 그러나 현재 기시타니 고로는 “내년에 공연할 연극 대본에 대한 생각으로 매진”돼 있다. 아직 차기 연출작에 대해 정해진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기시타니 고로는 예감한다. “만일 다음 영화를 찍게 된다면 이번 작품과 완전히 다른 작품을 만들지 않을까 싶다.” 또 한번 기시타니 고로가 메가폰을 잡으면 그의 이면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
“사실 이 작품은 가방을 끌면서도 즐겁게 뛰어가는 우에노 주리의 라스트신을 위해 찍은 작품이나 다름없다. 어쩌다 보니까 다시 사람을 죽이게 된 여자가 어두운 상황에 처했음에도 내일 다시 즐거운 일을 만날지 모른다는 긍정적 기대를 품고 뛰어가는 상황을 그리고 싶었다.” 기시타니 고로의 말처럼 <신부의 수상한 여행가방>은 비극 속에서도 긍정을 쫓아가는 역방향의 희망을 그리는 영화다. 사실 이런 기시타니 고로의 긍정적 태도는 부정적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 희망에 대한 끈을 놓지 않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얻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20대엔 굉장히 가난했지만 연극배우를 꿈꾸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까지 연극레슨을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한번도 연극을 그만 두겠다고 생각한 적 없다. 그 가난했던 20대가 내겐 굉장히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기시타니 고로는 어두웠던 과거의 환경 속에서도 미래적 빛을 향한 집념으로 오늘을 이뤘다. 어쩌면 그가 선택한 감독으로서의 길은 어떤 특별한 야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행복을 꿈꾸는 긍정의 발전으로 이뤄진 자연스런 결과가 아닐까. “훌륭한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후회가 필요 없는 소중한 순간을 보냈다고 생각한다.”그렇게 기시타니 고로는 어제를 넘어 오늘로 소중한 순간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인간이 된 인형이 바라보는 세상을 그리는 <공기인형>은 배두나의 ‘돌 플레잉’ 덕분에 국내에서도 화제가 된 작품이다. 그러나 <공기인형>에서 인형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관점을 대변하는 대리적 존재란 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만큼 고레에다 히로카즈에겐 자신의 관점을 잘 이해하면서도 인간이 된 인형으로서의 기이한 매력을 잘 살려줄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다. “원래 배두나의 팬이었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에게 배두나는 “기회가 되면 꼭 한번 일해보고 싶은 배우”였다. 하지만 배두나를 <공기인형>의 주인공으로 떠올리고 낙점할 수 있었던 건 “인형이 마음을 갖고 살아 움직이는 만큼 언어가 어눌해도 상관없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공기인형>을 완성한 이후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확신은 보다 굳건해졌다. “배두나가 아니었다면 이 역할은 존재할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중 GV가 있던 날, 딸의 작품을 보러 온 “배두나 어머니의 반응이 너무나 궁금해서 객석 반응에 신경 쓰지 못해” 아쉬움도 남았단다.
사실 <공기인형>은 “20페이지 분량의 원작만화”로부터 출발한 기획이었다. “찢어져서 구멍이 난 채 버려진 인형에게 인형이 좋아했던 사람의 숨을 불어넣어주는 순간을 그린” 동화적 세계관의 원작으로부터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건져 올린 건 “인형의 눈에 자신의 시선을 오버랩시켜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발상”이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보다 적나라하게 현실을 관통하길 원했다. <공기인형>은 ‘에어돌(air doll)’, 일명 ‘섹스돌’이라 불리는 성인용 섹스 인형을 의미하는 제목이다. 현실을 직설적으로 바라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무덤덤한 감성이 시니컬하게 표면 위로 떠오른 셈이다. 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바라보는 건 “일상의 빛나는 순간”이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의 시간이나 공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보여주고 싶다.” 비극과 회의로 치장되기 쉬운 현실을 고스란히 발췌해 살필 뿐, 결코 비관하지 않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정적인 분위기로 영화를 지배하는 가운데 크고 작은 소란을 배치하며 묘한 활기를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끝에서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오는 한 순간의 출렁임을 통해 객석을 진동시켜 울림을 연출한다. 지극히 일본적인 사건과 배경을 담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들이 전세계적으로 호평을 얻어온 것도 그런 보편적 감성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도쿄에서 일어난 사건을 세밀하게 그린 <아무도 모른다>를 본 미국 관객은 우리 동네에서도 그런 사건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을 표했고, 감독 자신의 어머니를 영화화한 것이라 생각한 “<걸어도 걸어도>는 스페인에서도, 토론토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라 이야기하는 관객들”을 마주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를 “참 신기한 일”이라며 멋쩍게 웃어넘기지만 이런 일련의 경험이 깨닫게 한 분명한 진리를 단호한 목소리로 전한다. “철저하게 국내적인 걸 파고드는 것이 결국 그 끝에 놓인 보편성과 통하는 게 아닐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자신의 작품이 일본을 벗어나 전세계인의 일상 속에 내재된 빛나는 순간과 소통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번 부산영화제는 내게 휴양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작년엔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머무르며 취재 틈틈이 영화를 봤고 12편 정도를 봤다. 하지만 올해는 금요일 늦게나 내려가 수요일 밤에 내려왔고 영화는 딱 2편을 보고 말았다. <파주>나 <카페 느와르>와 같은 한국 화제작은 딱히 부산에서 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얀 리본>이나 <브라이트 스타>도 보고 싶었지만 시간대가 어중간해서 포기했다. 두기봉의 <복수>만 볼 수 있다면 여한이 없을 거라 생각한 탓도 크다. 서울에서 이 영화를 보게 될 일은 어지간하면 없으리라 생각했던 탓도 크다. 작년에 부산에서 <참새>를 보지 못했다면 영원히 스크린으로 보기 힘들 영화 중 한편으로 기억됐을 것이란 긴장감도 작용한 바가 컸다. 덕분에 딱 <복수>만 보고 말았다. 만족한다. 그냥 이 한 편이면 됐어, 란 생각이 들 정도로 내겐 인상적인 영화였다.
술은 참 많이 먹었지. 이상하게도 술자리가 많았다. 게다가 이상하게도 올해는 뭔가 일정이 타이트해. 바다 보러 가야지, 했건만 내려가서 3일 정도는 바다 근처도 못 갔다. 이게 다 망할 센텀시티 탓이지. 올해는 기자회견이 열리는 신세계 문화홀과 프레스센터를 가려면 신세계 매장을 가로지르거나 돌아야 했다. 덕분에 센텀시티로 가는 택시에 몸을 싣고 해운대를 뒤로 한 채 삭막하게 백화점 건물 따위에서나 뱅뱅 돌아야 했던 거다. 동선이 길어진 탓에 중간에 남는 시간이 적어서 기사 칠 시간도 애매해졌고, 덕분에 꽤나 어수선했다. 지난 해 그랜드호텔 꼭대기 기자회견장에서 보던 해운대 전경이 그립더라. 부산영화제는 주말에 일정이 미친 듯이 몰리는데 덕분에 주말엔 좀 빡셌더랬지. 어쨌든 폭풍 같은 주말을 날리고 주초가 되니 조금 한가해져서 바다도 보고, 이래저래 광합성도 했다. 어쨌든 또 한 번의 부산영화제가 끝났다. 그리고 사무실이 있는 강남 골목을 걷다 이 골목을 빠져나가면 바다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 부산영화제에 내려갔다 오면 1년이 지나가고 있다는 걸 절실히 느끼게 된다. 내년에도 부산에 내려갈 수 있을까. 어느 덧 날씨도 꽤나 쌀쌀해졌다. 첫눈도 왔다던데,이제 바야흐로 겨울인가. 어쨌든 또 다시 안녕, 바다.
어제를 기점으로 해서 많은 사람이 떠났고, 장기적으로 남을 예정이 아닌 사람들은 오늘을 고비로 부산을 등 뒤에 둔채 서울로 떠난다.
방에 혼자 남았다. 수요일까지 있을 예정인데 어쩌면 목,금이 될 수도 있을까, 곰곰이 생각중이다.
취재하느라 영화는 많이 못 봤다.
하지만 운 좋게도 GV까지 걸려있는 에릭 쿠 감독의 <마이 매직>과 두기봉 감독의 <참새>를 3일날, 프리머스 해운대에서 연달아 봤다.
<마이 매직>은 내상이 깊은 남자의 담담한 외상을 그린 영화다. 그 남자는 모든 고통을 참아낸다. 그건 그 남자의 능력이다. 하지만 그 학대는 그 남자를 깊에 파헤치고 갈기갈기 찢는게 분명하다. 남자는 담담하지만 피는 흐르고 상처는 남는다. 에릭 쿠 감독의 말처럼 슈퍼 히어로가 아닌 그 남자는 분명 인내라는 능력을 타고 났지만 그보다도 그 인내를 부축하는 힘은 아들에 대한 부성에서 발현된다. 결말은 너무나 슬펐다. 어금니 꽉 깨물고 참아서 가까스로 눈물은 넘치지 않았지만 충분히 울뻔 했다. 우는 게 창피해서는 아니었다. 다만 앞에 나가서 에릭 쿠 감독 사진을 찍어야 했는데 빨개진 눈으로 나서는 게 좀 꺼려졌을 뿐이다. 여튼 <마이 매직>은 정말 좋은 영화다. 그 안엔 벅차오르는 슬픔이 있다. 그건 희망이 아님에도 투명하다. 실로 아름다운 영화다.
<참새>는 대단하다. 두기봉 영화인데 총격전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기이하긴 하지만 그만큼이나 세련되고 우아한 소매치기 씬이 등장한다. 언제나 그렇듯 카메라의 구도는 가히 예술이다. 4남자가 서있는 공간의 대기가 절감된다. 그 장소에서 발생하는 기운이 온전히 시야에 들어온다. 결말부의 수중씬을 보면서 벌떡 일어날 뻔했다. 결코 거짓말 아니다. 나도 모르게 몸이 앞으로 확 젖혀졌다. 대단한 전율이 아우라처럼 몸을 감싼다. 어떤 설명도 필요없다. 결말부의 수중 시퀀스 만으로도 <참새>는 걸작이라 불릴만한 이유를 적절히 제시하고 있다. 마치 연극적인 느낌의 버스터 키튼 식의 유머러스도 즐겁다. 다시 한번 보고 싶은데 과연 개봉하려나, 이런 생각하니 우울하다.
<스카이 크롤러> 야외 상영은 표를 끊었지만 못 봤다. 써야 할 기사도 있었고, 핑계 같은 말이지만 바빴다. 하지만 못 간게 다행이다.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에겐 꽤나 미안한 말이지만 상영사고가 났다는 말을 듣고 안 가길 천만다행이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말을 듣고 보니 국내에서 개봉될 것도 같다. 태원에서 수입했다는데 한글 자막 작업도 상당히 진전된 상태라고 한다.
내려와서 간만에 현장 사진도 찍었고, 뉴스도 줄창 썼다. 명함 지갑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고, 어젯밤엔 택시에 핸드폰을 놓고 내렸다가 겨우내 찾았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예기치 못한 갈등 상황도 있었고, 심각한 충돌도 빚어졌다. 한편으로 예상 밖의 문자도 받았다. 여러가지로 액티브했다. 2박3일 남았다. 좀 더 한산해질 것이다. 그 광경을 보기 위해 부산에 남았다. 오늘밤은 해운대 바닷바람 맞으며 맥주나 한 캔 마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