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도 좋구나. 처음으로 나가는 해외가, 그것도 출장이 피렌체라니.” 한 선배가 말했다. 그렇다. 처음이었다. 하지만 20대 끝자락에 찾아온 생애 첫 출국에 대한 심정이란 1%의 설렘과 99%의 두려움에 가까웠다. 처음으로 떠나는 외국에서 혈혈단신 파리를 경유한 뒤, 로마에서 피렌체로 가는 기차를 타야 한다는 것 자체가 막연했고, 불안했다. 파리 공항에서 로마행 비행기를 경유하기 위해 긴 출입 통로를 홀로 걷다가 문득 뒤돌아봤을 때 아무도 없었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마치 미아가 된 것 같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 하지만 경유를 위해 공항에 홀로 머무르는 동안 묘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이제 더 이상 나를 알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게 나쁘지 않았다. 물론 로마 공항에 당도해서 피렌체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표를 끊고, 지하철을 타고, 비로소 기차를 타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어찌어찌 헤매다가도 물어물어 방향을 찾았고 그럭저럭 당도했다. 비로소 피렌체에 두 발을 디딘 건 새벽 2시경. 갑자기 담배가 피우고 싶었는데 수중에 담배가 없기에 옆에 서서 담배를 피우던 한 외국인에게 담배 한 대를 빌릴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브라질산인데 조금 독하다는 충고와 함께 흔쾌히 담배 한 대를 건넸고, 잠깐 대화를 나눴다. 이국에 와있음을 실감했다. 그러곤 택시를 잡아타고 피렌체의 피에솔레 언덕 위에 자리한 호텔에 도착해서 피로를 씻어내고 몸을 뉘고 보니 장장 20시간에 달하는 여정이 꿈같기도 했다. 그래서 그날밤 꿈을 꾸진 않았나 보다.
다음날 호텔 관계자와의 미팅과 취재로 하루를 꼬박 보내고, 드디어 피렌체에서 고대하던 단 하루의 자유가 주어졌다. 내가 묵었던 호텔은 지대가 높은 언덕에 있는 덕분에 창밖으로 피렌체 시내가 내다보였는데 멀리서 빼꼼히 머리를 내민 듯한 두오모(대성당)의 돔이 보였다. 그렇다. 그것이 바로 <냉정과 열정 사이>에 나왔던 두오모의 돔이었다. 흔히 피렌체의 두오모라고 일컫는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말이다. 피렌체에 발을 디딘 이상, 저 두오모에 올라야만 했다. 서른 살 생일이 되면 돔에서 만나자고 약속할 연인이 함께 있거나 말거나 피렌체까지 왔으니 두오모의 돔에 올라가봤다고 자랑할 수 있는 기억 하나쯤은 안고 가야 할 것 같아서 꼭 오르리라 다짐했다. 물론 다짐까지 할 일은 아니었다. 날씨는 화창했고, 피에솔레 언덕에서 피렌체 시내는 멀지 않았다. 지도 한 장 들고 나서서 피렌체의 골목을 누비며 지도를 훑어보고 마냥 두리번거리는 관광객의 기운을 한껏 뽐내면서 피렌체 두오모를 향해 스텝을 밟았다. 두오모를 향해 다가가며 골목을 지날 때마다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도시의 전통적인 정취가 고스란히 살아 숨쉬고 있는 것 같았다. 도시를 대변하는 특별한 랜드마크로 가는 길이 아니라 내가 그 길 위에서 보는 것들이 하나하나 이 도시의 결을 이루는 역사이고, 서사였다. 길을 잘못 들어서도 괜찮았다. 길을 지날 때마다 저마다 층위를 이루는 지층을 찬찬히 올려다보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두오모에 당도했다. 일단 성당의 스케일과 디테일에 감탄하는 절차를 밟은 뒤, 두오모 돔에 오르기 위해 입장했다. 두오모 돔에 오르려면 463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고 했다. 당연히 수를 세면서 오르진 않았다. 일단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불이 나는 허벅지를 신경 쓰는 게 급선무였으니까. 그리고 드디어 두오모 돔에 올랐는데! 응? 도대체 왜 저 건너편에 돔이 보이지?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오른 곳은 두오모 돔이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조토의 종루’라는 또 다른 전망대였던 것. 입구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오른 것이 화근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두오모 돔을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아마 두오모 돔에 올랐다 해도 다시 이곳에 올랐을 것 같은 예감도 들었다. 두오모 돔과 함께 내려다보는 피렌체 전경은 지금도 내 인생에서 이만한 그림을 본 적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장관이었으니까. 무엇보다 낮은 건물의 붉은 지붕들이 이어지면서 멀리 보이는 산과 하늘의 경계가 살아 있는 유화나 다름없었다.
조토의 종루에서 내려와 잠시 고민했다. 두오모 돔에 올라갈 것인가. 그래도 피렌체까지 왔으니 올라가야겠다 결심했다. 그리고 올라가면서 알았다. 두오모 돔에 오르는 것이 463개의 계단을 꾹꾹 눌러 밟으며 어떤 자랑거리를 만드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음을. 두오모 돔 천장엔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인 조르조 바사리와 그의 제자들이 그린 거대한 프레스코화인 <최후의 심판>이 있다.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서 점차 가까워지는 천장화를 볼 수 있는데 대단한 위엄이 느껴지는 이곳에 오르길 잘했다는 생각을 금치 못했다. 두오모 돔에 올라 볼 수 있는 풍경은 다시 한번 반가웠다. 조토의 종루에서 걸어 내려오는 계단마다 이 풍경을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아쉬움이 터벅터벅 쌓였기 때문에. 그래서일까. 서른 살 생일에 이곳에서 다시 보자고 속삭일 연인이 없어도 상관 없었다. 20대 마지막에 찾아온, 처음으로 발 디딘 이국의 풍경이 이 정도라니 내 삶이 그리 나쁜 건 아닌가 보다, 잠시 생각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두오모에 오를 수 있다면 그때의 내 삶은 또 얼마나 좋아졌을까? 두오모에서 내려오니 잠시 꿈을 꾼 것 같기도 했다. 지금도 피렌체의 두오모를 생각하면 꿈을 꾸는 것 같다. 아직도 가끔씩 그 꿈을 떠올린다.
박진희는 배우로서의 삶이 남다르긴 하지만 특별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게 배우 박진희와 자연인 박진희는 한 줄기의 인생을 유영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일상의 흐름을 타고.
들고 있는 책은 제목이 뭔가요?
<나한테 미안해서 비행기를 탔다>네요. 여기 놓여 있길래 생각 없이 펼친 페이지에 일탈의 사전적 의미가 나왔어요.
뭐라고 하던가요?
정하여진 영역 또는 본디의 목적이나 길, 사상, 규범, 조직 따위로부터 빠져 벗어남 또는 사회적인 규범으로부터 벗어나는 일. 재미있네요. <청포도 사탕: 17년 전의 약속>에서 연기한 선주는 평생 일탈을 꿈꿔보지 못한 여자였거든요.
솔직히 박진희 씨도 일탈과는 거리가 멀어 보여요.
사실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개성 있는 배우들이 많아서 나만 너무 평범해 보이니까. 그래서 일탈을 시도했다가 심장이 떨려서 포기하고, 결국 일탈과 어울리지 않다는 걸 알았죠.
일종의 성장통 같네요.
20대 초반에는 항상 20대 중반 정도가 되면, 20대 중반에는 30대가 되면 성장할 거라 믿었어요. 어느 한 순간 어른이 될 거라 생각한 게 아니라 그 나이면 더 많은 걸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철없는 아이였죠. 그런 탓인지 성장영화를 좋아해요. 그래서 <청포도 사탕>도 좋아요. 서른이 돼서도 성장할 수 있다는 거니까.
어른이 되길 바라는 이유가 있었나요?
좀 더 나이를 먹고 경력이 쌓이면 보다 좋은 연기를 할거라 생각했어요. 결국 원하는 만큼 잘되진 않았지만.
예전보다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지 않아요?
옛날에는 작품 외부의 이유를 보기도 있었어요. 상대 배우라던가, 그냥 타이밍이 맞아서라던가. 그런데 이젠 작품 자체만 보게 돼요. 진짜 하고 싶은 걸 알게 된 기분이죠.
선주는 좀처럼 감정을 표현하지 못해요. 본인은 어때요?
옛날엔 저도 그랬어요. 참는 게 사랑하는 방법이라 생각했죠. 그렇게 꾹 참다가 폭발해서 이전 사건까지 생각하며 싸움을 크게 만들더라고요. 결국 말할 거면 확실히 하고, 말하지 않을 거라면 완전히 터는 것이 누군가를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방법이란 걸 알았죠.
<청포도 사탕>처럼 여배우들이 많은 현장은 어떤가요?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와서인지 여자들과의 작업이 편해요. 어릴 때는 예쁘게 나오려는 욕심도 있었지만 서른 살을 넘기고 나니 현장에서 내 포지션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돼요.
여자들끼리 대화는 많이 했어요?
박지윤 씨와 붙는 신이 많아서 지윤 씨랑 많이 나눴죠. 사실 팬이었어요. ‘성인식’처럼 도발적인 무대를 할 때도 멋있고, 후에 싱어 송 라이터로 변신했을 땐 완전 반했죠. 지윤 씨와 출연 여부를 얘기 중이라고 들었을 때 같이 하고 싶었어요. 선주와 소라는 전혀 다른 아이잖아요. 그래서 저랑 상반되는 서구적인 외모를 지닌 지윤 씨의 이미지가 영화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죠.
배우로서 스스로 평범하다 생각하나요?
사실 15년간 배우로 살아온 제가 지극히 평범할 순 없겠죠. 다만 독특한 배우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평범한 배우도 있어야 되니까요.
그런 생각이 정립된 과정이 궁금하네요.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면 엄마가 예전에 드라마도 찍었다고 자랑할만한 에피소드라고 생각했어요. 생각보다 활동이 길어지면서 어느 순간엔 인터뷰하면서, “저는 잘할 거에요, 더 잘할 수 있어요” 이런 말을 하고 있더라고요. 20대 중반까지는 쉴새 없이 바빠서 어떤 위치를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어요. 자연스레 여기까지 왔죠.
대학원도 졸업했는데, 공부 욕심이 많나 봐요.
공부 욕심은 분명 있었지만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면서 그 욕심을 다 소진했어요(웃음). 수업 듣는 건 좋았는데 논문을 쓰는 1년 동안 나랑 공부는 이제 마지막이구나, 싶을 정도로 힘들었거든요.
얼마 전 존 박 씨와의 스캔들이 있었는데, 워낙 스캔들이 없던 배우라서 되레 신기하더군요.
원래 방송 의도는 작곡을 하는 남자와 작사를 하는 여자가 만나서 곡을 하나 만드는 거였어요. 환경 문제에 관한 가사를 써보겠다는 취지로 수락했죠.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서 제작진이 봄에 어울리는 아련한 사랑이야기를 만들어보자는데 그냥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첫 주 방송을 보고, ‘어? 이게 뭐지?’ 싶다가 3주쯤 되니, ‘이건 아닌 거 같다’ 싶었지만 이미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뒤였죠. 그냥 나만 아니면 된다, 싶기도 했고.
존 박 씨의 볼에 뽀뽀한 것도 불가피한 연출이었나요?
야구장에 간 건 두 번째였는데 그날 너무 추워서 5회까지만 보기로 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자꾸 한 회만 더 보자고 하는 거에요. 왜 그러나, 싶었는데 7회 정도가 끝나니 키스타임이란 걸 하더라고요. 갑자기 전광판에 저희가 비춰져서 당황했는데, 계속 비춰지니까 결국 존 박 씨가 ‘누나, 그냥 볼에 하고 끝내죠?’ 그렇게 된 거였어요. 예능을 몰랐고, 좀 순진했죠.
진짜 연애를 해야죠.
만나고 싶다 해서 만나지는 건 아니잖아요. 연애정보회사에 내놓을 수도 없고, 전단지를 뿌릴 수도 없고(웃음).
특별히 요즘 꽂힌 게 있나요?
요즘에는 스님 책들?
네?
작가가 스님인 책들 있잖아요. 최근에 혜민 스님과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라는 책을 쓰신 정목 스님 트위터를 팔로우했다가 그 분들의 책을 읽었어요. 생각이 확장되는 기분이었죠.
불교신자인가요?
무교에요. 그냥 참선이나 수행 같은 과정에서 와 닿는 부분이 있어요. 8월 초에 문경의 수련원에 일주일 정도 다녀왔어요. 명상하고 서로 묻고 답하며 생각하는 게 너무 좋았죠. 새롭게 리셋하는 기분? 지금까지 살아온 35년 안에서 그 일주일은 굉장히 짧은 시간이지만 그 짧은 시간을 기준으로 지난 시간의 나와 앞으로의 나는 좀 다른 삶을 살 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죠.
소라가 유명한 작가가 된 것이 선주와 재회하는 계기가 되죠. 혹시 유명한 배우가 된 덕분에 오랜만에 재회한 사람은 없었나요?
20대 초반에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갔다가 현지에서 사람을 소개받았어요. 유학을 갔다가 현지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사는 언니였는데 초행이니까 자기 집에서 지내라고 해서 3~4일 정도 머물렀죠. 벌써 10년 전이네요. 그런데 며칠 전 트위터로 멘션이 왔어요. 너무 반가웠죠. 보고 싶네요.
트위터는 자주 해요?
예전엔 별별 이야길 다 했죠. 요즘은 가끔 환경 이야기나 하는 편이에요.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머니 덕분인 거 같아요. 어머니는 지금도 비 오는 날이면 집에 있는 양동이를 모두 마당에 내놓고 빗물을 받아요. 그걸로 세차하고, 마당 청소하고, 화분에 물도 줘요. 설거지 마지막에 헹군 물은 꼭 다시 쓰고. 어릴 땐 너무 귀찮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몸에 뱄어요. 얼마 전엔 저희 집 주차장에 채송화가 폈는데 어머니께서 채송화를 죽일 수 없다며 주차장을 사용하지 말라는 거에요. 다들 결국 동의했죠.
곧 유학을 떠난다고 들었어요.
첫 번째 목적은 여행이었고, 길게 머물 생각이라 어학공부도 계획했죠. 그런데 주변에서 만류해서 그냥 긴 여행이나 다녀올 거에요.
얼마나 긴 여행이죠?
돌아오는 티켓을 끊지 않았어요. 이러다가 한 일주일 뒤에, ‘저 그냥 돌아왔어요!’할지도 모르죠(웃음).
목적지는 어디에요?
아일랜드요. 자연 경관이 좋은 나라라고 해서 오래 전부터 가보고 싶었어요. 너무 멀어서 엄두도 못 내고 있었는데 드디어 가게 됐네요. 심지어 혼자서. 이것도 하나의 일탈 아닐까요?
이번 여행에서 특별히 기대하는 건 없나요?
뭔가 기대했는데 얻은 게 없으면 실망하잖아요. 반대로 기대한 게 없는데 뭔가를 얻으면 기쁘겠죠? 그래서 기대 같은 거 잘 안 해요. 사람에 대해서도 그러려고 노력하는데 쉽진 않네요.
2006년에 출간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자전적인 여행 에세이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기 위해 이탈리아와 인도, 발리를 도는 1년 여간의 여행을 거친 원작자의 기행적인 감상과 성찰을 담은 이 작품은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이하, <먹기사>)라는, 원작과 동명으로 발표된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원작에 담긴 작가의 자전적 깨달음에 대한 독자들의 공감대가 영상 안에서도 유효한 감상으로 발전할 수 있는가라는 고민이었을 것이다.
저널리스트이자 자유기고가인 리즈(줄리아 로버츠)는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적 믿음을 품으며 살아가지만 점차 어떤 결핍을 느끼게 된다. 그 안정적인 삶 속에서 스스로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불안감이 그녀를 흔들 때 즈음, 그녀에게 확고한 결심을 내리게 만들 사건이 발생한다. 교육자를 꿈꾸는 남편은 직장을 그만 두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학위를 따겠다고 전하고 그녀는 결국 이혼을 결심하고 남편에게 집과 많은 재산을 양도한다. 자유의 몸이 된 그녀는 잃어버린 자신을 찾기 위한 1년 간의 여행을 계획하고 이탈리아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한다.
이탈리아와 인도, 발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먹기사>의 서사는 마치 3막으로 된 연극과 같은 내러티브로 구성된 작품이다. 그리고 실제로 3국의 풍요로운 풍광을 로케이션으로 촬영된 이 영화에서 가장 내세울 만한 자랑거리는 바로 3국 현지의 그림 같은 이미지와 각 지역의 특색이 묻어나는 정서적 감흥일 것이다. 피자와 파스타를 비롯한 다양한 진미들이 가득한 맛의 나라 이탈리아와 인도의 아쉬람 사원에서 보여지는 기도와 명상의 정적인 풍경들, 그리고 풍요로운 자연 경관 속에 놓인 발리의 여유로운 정취는 <먹기사>의 매력 3종 세트나 다름없다.
라이언 머피가 연출한 이 영화는 사실 주연을 맡은 배우의 이미지가 보다 눈에 띄는 작품이기도 하다. ‘귀여운 여인’에서 성숙한 여인으로 변신한 줄리아 로버츠는 세월의 무상함보다도 시간의 흐름을 통해 인간이 수확할 수 있는 성숙미를 느끼게 만든다. <먹기사>의 모든 서사를 관통하는 중심 캐릭터 리즈의 개인적인 경험은 궁극적으로 영화가 제시하고자 하는 삶에 대한 성찰과 자의식의 발견으로 발전하고 확장될만한 것이어야 한다고 볼 때, 혹은 그것이 진짜 그럴 만한 것이라 느껴지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고 할 때, 줄리아 로버츠는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할만한 결과물을 선보인다.
물론 개인의 성찰이 모든 이의 삶에서 진리처럼 납득되기란 어려운 것일 게다. 동시에 어떤 이의 삶이 모든 이의 삶의 방향을 대신할 수 있을 만한 가치를 품었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수많은 삶 속에서 어떤 가치를 찾아가는 이의 삶이란 분명 특별한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먹기사>의 일탈적인 여정은 행복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관을 되새기게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물론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3막의 여정이 저마다 흥미본위의 편차와 기승전결의 흐름 안에서 이야기적 재미의 고저를 지니고 있음은 분명 이 영화의 단점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여정 끝에 얻어지는 것이 빤한 ‘행복’이 아니라는 점에서, 동시에 그 삶이 어느 누군가가 쉽게 이루지 못한 용감한 일탈이자 선택이었음을 설득하는 <먹기사>는 행복을 위한 3막 3장 드라마로서 적절한 포만감을 주는 일탈의 간접경험으로서 가치를 전한다.
빡빡한 도시의 삶이 버겁다고요? 매일 같이 단조로운 일상이 지겹나요? 일단 그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 여행이라도 떠날 수 있다면 좋겠군요. 하지만 당장 시간도 없고, 막상 어디로 떠나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그렇다면 영화라도 한 편 보세요. 그 영화가 당신의 길잡이가 될지도 모릅니다.
때때로 영화는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된다. 대사로, 음악으로, 그리고 풍경으로, 관객의 뇌리에 서로 다른 흔적으로 깊게 각인된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찰나의 풍경만으로도 잊을 수 없는 영화가 있다. 그리고 그 풍경들은 현실을 벗어난, 또 다른 세계를 꿈꾸게 만든다. 당신이 발 딛지 못했던 세상을 꿈꾸게 만든다. 그리고 이제, 꿈꾸던 당신, 떠나라. 스크린 속 그 풍경으로. 극장에서 만끽했던 환상을 당신의 현실에서 만날 차례다. 머뭇거릴 당신을 위해 여기 몇 가지 좌표를 마련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 오스트리아 비엔나 잘츠부르크
“도레미파솔라시, 도! 솔! 도!” 7음계를 이용한 ‘도레미송(Do-Re-Mi)’만으로도 유명한 <사운드 오브 뮤직>은 브로드웨이 인기 뮤지컬을 동명 그대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1965년, 전세계적으로 개봉된 이 고전 뮤지컬은 천진난만한 동심과 애틋한 로맨스가 어우러진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발랄한 음표들이 귀를 사로잡는 가운데,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다채로운 경관이 호화롭기 짝이 없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의상이나 다름없는 그 장관은 모차르트의 고향이기도 한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잘츠부르크에서 빌려온 풍경들이다. 볼프강 호수의 시원한 전경으로부터 시작되는 영화는 호헨잘츠부르크요새가 올려다 보이는 카피텐 광장과 잘차흐강을 건너는 모차르트 교각, 잘츠부르크 대성당과 미라벨 궁전의 정원 등, 잘츠부르크의 고풍스러운 정경 곳곳을 누비며 밝은 음색을 채워 넣는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풍경 대부분은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으며 영화의 흥행 이후로 늘어난 관광객들을 위해 현지에서 운영하는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를 이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그 흔적들을 수집해나간다면 더 좋은 의미를 발견할지도 모를 일. 특히 마리아가 아이들과 함께 ‘도레미송’을 연습하던, 알프스를 병풍처럼 두른 몽크스산에 오른다면 씩씩한 걸음을 옮기며 노래하던 아이들처럼 절로 마음이 순수해질 거다.
<브로크백 마운틴> 캐나다 알버타 로키 산맥
울창한 숲과 험한 산세 아래 양떼를 지키기 위해 야영하던 두 명의 카우보이 잭과 에니스는 어느 날, 감정의 선을 넘는다. 산속이라 시차가 커서 밤이면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추운 야영지에서 모닥불로 손을 녹이고 좁은 텐트 안에서 뒤엉키듯 잠을 청하던 두 사내는 스스로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애틋한 감정이 줄기처럼 자라남을 직감하고 서로를 끌어안는다. 그 금기적인 로맨스의 증인이 되는 건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캐나다 알버타의 로키 산맥이다. 사실 동명원작소설의 작가 E. 애니 프루가 쓴 ‘브로크백 마운틴’은 지도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고, 미국 와이오밍의 빅혼 마운틴을 모델 삼아 글을 써내려 갔다고 밝혔다. 제작사는 빅혼 마운틴 주변에서 촬영을 시도했으나 여건상 포기한 뒤, 촬영지 선택에 난항을 겪다 비로소 알버타를 찾았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험준하고도 풍요로운 로키 산맥의 풍광은 결말에 다다라 진한 여운을 남길 영화적 감수성을 깊고 너르게 채우는 원천이나 다름없다. 양떼를 몰다 설산이 내려다 보이는 산턱에서 한낮의 망중한을 즐기기도 하고, 깊은 밤에 찾아온 산의 한기를 몰아내며 모닥불을 피운 채 따뜻한 잔에 손을 비비던 두 남자의 추억은 그 인상적인 풍경을 통해 잊을 수 없는 감정적 여운으로 거듭난다. 만약 트래킹과 스키를 즐기는 이라면 그 만년설의 절경을 보다 적극적으로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뉴욕의 가을> 뉴욕 센트럴파크
굳이 뉴요커의 꿈을 꾸지 않았다 해도, 뉴욕의 명소들에 대해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들어봤을 게다. 사실 뉴욕을 말한다는 건 식상한 일임에도 그것을 포기할 수 없는 건 언제나 뉴욕을 그리는 영화들이 인상적인 기억으로 회자될 수 밖에 없는 풍경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을 소재지로 둔 너무도 많은 영화 가운데서도 <뉴욕의 가을>은 제목이 직시하는 도시와 계절의 풍경을 풍만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맨하탄과 브룩클린, 퀸즈, 브롱크스, 스테이튼 아일랜드까지, 뉴욕의 전경을 부감숏으로 포착하며 시작되는 영화는 그 이후로 뉴욕에 배어든 가을의 흔적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민다. <뉴욕의 가을>의 두 주인공 윌과 샬롯의 만남이 시작되는 센트럴파크는 노란 은행잎으로 물든 가을의 향연 그 자체다. 세계 최대의 공원으로 꼽히는 뉴욕 맨하탄의 센트럴파크는 전세계 인종의 교차로라 해도 좋을 뉴욕의 중심에 자리한 뉴요커들의 안식처이자 쉼터이다. 삭막하고 번잡한 도시의 체증을 피해 잠시나마 안식을 부여한다. 그리고 영화처럼 센트럴파크를 거닐다 보면 운명 같은 연인을 만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그네들 역시 센트럴파크에서 마주한 건 그저 영화 속 우연일까, 운명일까? 적어도 후자의 낭만을 부정할 이유는 없을 거다. 그리고 그게 당신의 삶이 된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 테고.
<맘마미아!> 그리스 스포라데스 제도의 스코펠로스 섬
전설적인 팝그룹 아바의 명곡들로부터 모티브를 얻은 브로드웨이 인기 뮤지컬 <맘마미아!>가 스크린으로 무대를 옮겼다. 영화 <맘마미아!>가 동명의 원작 뮤지컬보다 특별할 수 있는 건 스크린에 펼쳐진 그리스 제도의 그림 같은 풍경들 덕분이다. 촬영에 앞서 한 달 전부터 제작진은 <맘마미아!>의 무대가 될 공간을 찾기 위해 그리스 전역을 샅샅이 뒤졌다. 그 결과 스포라데스 제도의 스키아토스 섬과 스코펠로스 섬, 다무하리 섬을 찾아냈으며 대부분의 바닷가 신을 거기서 촬영했다. 특히 스코펠로스 섬은 <맘마미아!>가 선사하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진경의 핵심이다. 에메랄드 빛 바다를 여백처럼 두른 채 붉은 지붕과 하얀 벽으로 이뤄진 집들이 높낮이가 다르게 옹기종기 모여 앉은 스코펠로스 타운의 주택가를 비롯해 서쪽으로 22km 떨어진 카스타니 해변에 펼쳐진 백사장에서 스크린을 통해 봤던 그 모든 풍경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결혼식 신을 위해 100m 높이의 암벽 위에 재건한 예배당도 여전하다. 눈을 정화시키던 스크린 너머의 풍경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 당신은 어쩌면 모든 것을 다 얻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그 인생의 승자라 믿어도 좋다. <맘마미아!> 속 그 노래처럼, ‘The winner takes it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