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르몽페랑은 프랑스의 남북을 잇는 관문이다. 천재 수학자 파스칼을 낳은 이 작은 도시는 수많은 대학들이 위치한 학문의 요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매년 2월 이곳에서는 단편 영화제의 칸이라 불리는 클레르몽페랑 국제 단편 영화제가 열린다. 영상 분야 신예들의 성장을 위한 관문으로, 재능의 발견을 위한 교류의 장으로 변모한다. 2 4일부터 11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영화제에서도 수많은 꿈들이 약속의 땅클레르몽페랑으로 모인다.

 

(beyond 2월호 Vol.52 'TAKE ON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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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트를 타거나 죽거나라는 제목 그대로 <스케이트 오어 다이>는 스케이트를 타고 사선을 넘나 드는 두 소년의 도주를 그리는 작품이다. <스케이트 오어 다이>의 줄거리는 간단명료하다. 우연히 살인 현장을 목격한 두 소년이 스케이트 보드에 의지한 채 자신들을 추격하는 범인들로부터 달아나고 경찰의 도움을 받고자 하지만 그들을 쫓는 적의 정체를 알게 된 뒤, 자신들이 믿을 만한 상대가 경찰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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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의 휴양도시 칸은 매년 5월마다 필름 거장들과 할리우드의 유명배우들, 그리고 턱시도를 배입은 전세계 언론인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오는 12일부터 23일까지 열릴 제63회 칸국제영화제의 풍경도 예년과 다르지 않을 거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리들리 스콧의 <로빈 후드>(2010)를 비롯해 화제작과 걸작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진풍경은 칸국제영화제의 오랜 저력을 과시할 거다. 팀 버튼이 심사위원장을 맡은 올해에는 이색적인 작품의 수상이 점쳐지기도 한다. 마스터피스의 요람, 칸의 역사는 올해도 계속된다.

(beyond 5월호 Vol.44 'TAKE ON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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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작은 검정 드레스를 입고 환상적인 목소리로 노래 불렀다. 나는 그녀의 비극적인 삶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라비앙 로즈>(2007)에 출연하기 전까지 마리온 코티아르는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 서너곡 정도를 어렴풋이 알았을 뿐이다. 하지만 피아프와의 만남은 코티아르의 삶에 새로운 전기가 됐다. 아카데미를 비롯한 유수의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트로피가 그녀 앞에 줄을 서듯 모였다. 미를 뽐내는 여신의 경연장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나인>(2009)에서도 코티아르는 빛을 잃지 않는다. 되레 어느 누구보다도 강렬한 아우라를 드러낸다. 감정의 강약을 유지하면서도 강렬한 악센트를 찍어내듯 뜨거운 에너지를 발산했다. 우아하고 단아한 프랑스 여인의 기품에 가려져 있던 뜨거운 정열이 세상 밖으로 뜨겁게 드러났다. 그 뜨거운 열기로, 그녀는장밋빛 인생을 열었다.

 

(beyond 4월호 Vol.43 'TAKE ON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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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이란 말은 부질없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뒤집어 가정하는 건 어디까지나 불필요한 첨언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현실이 아닌 허구 안에서 가정이란 유효한 착상이다. 논픽션이 아닌 픽션의 세상을 그리는 이야기꾼들에게 가정이란 발칙한 야바위이자 무궁무진한 떡밥이니까.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하, <바스터즈>)은 픽션으로 디자인된 논픽션의 세상, 다시 말하자면 영화로 이입된 현실의 역사를 전복시키고 깔깔거리는 유희다. 어쩌면 메가폰을 쥔 당사자가 쿠엔틴 타란티노란 사실만으로도 알만한 사람들에게 <바스터즈>는 싹이 노란 영화일 것이다. 그리고 <바스터즈>는 과감하게 돌진하는 피칠갑의 난장 속에서도 과장과 비유를 뒤흔들어 능수능란한 유머로 발화시키는 타란티노적 시네마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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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관의 나이에 불과했던 '이브 생로랑' '디오르(Dior)'의 수석 디자이너로 발굴하고 '존 갈리아노'를 디오르의 지휘관으로 발탁했던 '크리스티앙 디오르(Christian Dior)'는 말했다. "검정색 풀오버와 열 줄짜리 진주목걸이로 샤넬(Channel)은 패션 혁명을 일으켰다." 우아한 곡선미가 돋보이는 디오르는 심플한 디자인으로 실용성을 강조한 '가브리엘 샤넬(Gabriel Channel)'의 패션을 시대적 혁명으로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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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 샤넬> 단평

cinemania 2009. 8. 27. 11:57

확고한 네임밸류를 자랑하는 명품 브랜드, <코코 샤넬>은 분명 그 이름만으로도 누군가의 소비심리를 부추길만한 영화다. 하지만 환상은 금물. <코코 샤넬>은 트렌디한 스타일로 무장한 패션쇼가 아니다. <코코 샤넬>에서 스크린의 용도란 명품 스타일을 전시하기 위한 쇼윈도가 아니라 인물의 감춰진 삶을 훔쳐보기 위한 창과 같다. 코코 샤넬이 디자이너로서 빛나는 경력을 쌓아가기 이전에 그 삶을 어떻게 디자인 했는가를 조명하는 <코코 샤넬>은 엄밀히 말하자면 코코 샤넬이라는 인물을 위시한 멜로드라마이거나 페미니즘 전기에 가깝다. 그러니까 코코 샤넬이라는 이름이 구가하는 명품적 환상성에 이끌려 <코코 샤넬>을 선택했다면 상영 시간 내내 무기력한 감상을 동반할 확률이 크다는 말. 물론 인물의 절정을 배제한 채 그 절정에 도달하기 위해 인물이 감내한 시간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비범한 선택이라 추켜세울만한 구석은 있다. 하지만 코코 샤넬이라는 이름이 비극적인 연애소설의 주인공으로 국한된다는 건 사치스러운 일이다. 마치 가봉된 옷을 입고 다니는 것마냥 불완전하고 절정이 삭제된 소설을 읽는 것마냥 무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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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혈이 선명한, 상흔이 뚜렷한, 공포에 질린 소녀가 공장지대에서 발견된다. 신체 곳곳에 학대의 흔적이 가득한 소녀는 좀처럼 말문을 열지 않는다. 소녀가 발견된 공장지대 건물 내부엔 가학적 증거들이 즐비하다. 의문에서 출발하는 이야기. 과연 그 안에선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다큐적 질감의 영상 너머로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사연이 펼쳐진다. 본격적인 사연은 다시 한번 충격과 공포를 동반한 의문으로 시작된다. 의문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또 다른 의문을 증폭시키고 좀처럼 빠져나갈 수 없는 물음표의 미로를 만들어 관객의 시선을 스크린에 봉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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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핀> 단평

cinemania 2009. 6. 4. 12:39

좀처럼 알려지지 않은 세라핀 루이는 천재라고 명명되기 좋은 재능을 소유했던 프랑스의 여류화가다. 그녀를 발굴한 건 독일 출신의 미술평론가 빌헬름 우데 덕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계기가 된 건 세라핀이 우데의 가정부였기 때문이다. 삶의 여유란 찾아보기 힘든 빈민 여성노동자가 재능을 꽃피운다는 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빈센트 반 고흐만큼이나 강렬하고 치열한 색채와 날카롭고 예민한 붓터치를 지닌 세라핀 루이의 작품은 우데의 말처럼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었다. 놀라운 재능은 때때로 비극이다. 생애 단 한 점의 그림만을 헐값에 팔았다는 고흐가 현실적 가난과 정신적 광기에 시달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라핀 루이 역시 비슷한 서사 속에서 단명했다. 물론 그녀의 광기를 잉태한 건 유년 시절을 지배하는 비롯된 종교적 집착이었다지만 현실적 부조리가 그녀를 파국으로 몰고 갔음을 부정할 수 없다.

 

<세라핀>은 제목 그대로 세라핀 루이의 삶을 조명하는 전기적 역할에 충실한 드라마다. 극적인 울림이 최대한 절제된 담담한 시선은 그녀의 생을 객관화시킴으로써 그 삶 자체를 온전히 부각시킨다. 물론 클라이맥스가 결여된 채 페이드 아웃을 반복하며 서사를 진전시키는 영화로부터 심심한 인상을 얻을 가능성은 무시할 수 없다. 동시에 세라핀 루이의 생 자체가 그리 극적이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여인의 초상 뒤에 담긴 은밀한 생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세라핀>은 전기 영화로서 충분히 제 역할을 하는 작품이다. 특히 순수와 광기를 차분히 넘나드는 세라핀을 연기한 욜랭드 모로의 연기는 단연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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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어울림이 낳은 웃음소리로 소란스러운 정원엔 햇살이 가득 들어섰다. 어머니의 75번째 생일을 맞아 아들과 딸, 손자와 손녀들이 한 집에 모였다. 오랜 추억을 공유한 형제들의 옛집에서 그네들의 손자와 손녀가 또 다른 추억을 공유하는 중이다.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집은 어느 새 할머니가 사는 집이 됐고, 할머니가 된 어머니는 자신의 사후에 유산 처리를 정리하는 중이다. 집안 곳곳에서 놓인 예술품과 고가구, 집기들은 그저 낡고 오랜 삶을 증명하는 소품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고가를 자랑하는 미술품과 앤티크한 양식의 고가구들은 오르세 미술관에서 탐낼 정도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문화적 유산이다. 형제의 추억이 자리한 그 집엔 그만큼이나 값진 가치를 품은 예술적 유산들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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