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열등감

time loop 2008. 5. 11. 02:54

요즘은 이 시간 즈음되면 미친 듯이 마음이 요동친다.

하루 종일 해놓은 것 하나 없이 방에 쳐 박혀서 모니터만 보다 하루가 지났다.

휴일날, 날씨는 좋았고, 방은 어두웠다. 발가락을 핥는 어린 강아지가 발로 차고 싶을 만큼 심술이 밀려온다. 물론 발로 차지 않았다. 난 생각보다 마음이 약하다.

헛소리는 넘기고, 뭔가 써야 할 것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것을 하려고 앉아있었으면서도 아무것도 못하고, 아니 안하고 하릴없이 시간을 집어삼켰다.

이런 빌어먹을. 욕 나온다.

 

요즘은 이 시간 즈음되면 미친 듯이 좌절감이 밀려온다.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초현실적이다. 나를 필자랍시고 받아준 나와바리가 가련할 정도로 난 매일같이 절망감에서 허덕이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문장은 부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뭔가 지껄여야만 직성이 풀린다. 하지만 배 뒤집고 헥헥거리는 어린 강아지마냥 귀엽게 볼 수도 없는 문장들이 종종 눈에 띈다. 부끄럽다. 그 때마다 코 박을 접시 물이라도 찾아야 될 심정이다. 물론 접시물에 코 박아봐야 죽지 않을 것을 아니까 하는 말이다. 난 솔직히 삶을 포기할만한 용기를 가진 위인은 아니다. 이런 빌어먹을, 또 욕 나온다.

 

의외지만 때때로 예기치 않게 칭찬이 들려올 때도 있다. 그들은 내가 잘 아는 지인이 될 때도 있고, 내가 전혀 모르는 3자일 때도 있다. 양심을 걸고 맹세하자면 난 그때마다 자격지심을 느낀다. 이건 결코 금슬 좋은 척하던 연예인 부부가 그 다음날 이혼 발표를 하는 것과 다른 것이다. 매일같이 사투를 벌이듯 커서와 싸우다 보니 지치지 않을 수 없다. 가끔씩은 궁금하다. 아니, 이 사람은 어떻게 이런 글을 쓰는 거야. 이런 생각이 종종 전두엽을 강타할 때면 난 홀로 아득해진다. 물론 그 사람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글을 쓸 수도 있겠지. 문제는 같이 쥐어뜯으며 써도 실물대비 격차가 지나치다는 거다. 그 간극은 나에겐 넘사벽과 같은 열등감으로 광속처럼 되돌아온다.

 

영화를 보고 글을 쓴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내가 힘들다고 하는 건, 결코 글을 쓰는 행위가 아니다. 마치 그건 일기를 쓰는 것과 같다. 내가 지녔던 온전한 감상들이 시간에 밀려 풍화되길 거부하는 의도적 행위에 가깝다. 그것이 유일하게 짧은 기억에 대항하는 순수한 방식이기도 하다. 다만 스크린을 응시하는 순간, 마치 숏과 컷처럼 분열되는 발상과 관념, 생각들이 문장으로 온전히 치환되지 못하고 뒤편의 프레임처럼 아득해질 때, 난 지독하게 괴롭다. 한때는 모 선배의 말처럼 영화를 보며 기록하는 방법을 열심히 실행했으나 그 때마다 지독한 자괴감이 밀려왔다. 어떤 방식으로든 온전히 상념을 보존할 수 있는 비결 따위는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요즘은 오락가락이다. 그랬다가 말았다가, 그런 와중에 길을 잃었다. 전기가 나갔다. 반짝이는 것이 사라졌다.

 

밑천이 얕은 탓이다. 요즘 들어 날 괴롭히는 상념은 우물의 깊이다. 채워 넣어야 할 것은 많은데 난 그 반대의 행위를 하고 있다. 악순환이다. 들어오는 건 없는데 나가는 건 많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우겨서 하는 기분마저 든다. 이건 지독한 열등감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단순히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인 표본으로서 드러나는 바다. 얕은 지식에 대한 한계를 내가 알아버렸다. 좁은 시야를 가리던 자신감들이 증발했다. 내가 할 짓이 아니다. 하루에도 백만번은 느낀다. 지독한 자괴감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뭔가 결심해야 한다. 이 글을 써놓고도 난 또 다른 글을 쓸 것이다. 부끄럽지만 아직 내 삶은 아직 자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이젠 제자리에서 돌 때는 아닌 거 같다. 다시 공전주기를 찾아가야 한다. 이 글은 그 시기에 대한 막연한 다짐과도 같다. 동시에 부질없는 현실에 대한 일말의 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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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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