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동창 녀석들에게 전화가 왔다. 새벽 1시 즈음이었다. 술 한잔 기울이나 보다. 외국 나갔던 친구 녀석 하나가 오랜만에 들어왔다. 네 생각이 나서 전화했다 한다. 친구 녀석들이 돌아가며 한번씩 전화를 받았다. 반가웠다. 실로. 당장 달려가고 싶으나 쉬운 일이 아니다. 광주는 멀다. 할 일도 많다. 난 광주에서 초중고를 졸업했다. 난 지금 서울에 산다. 서울엔 정말 친한 친구가 몇 없다. 좀처럼 없다. 사람을 만나기란 힘든 일이다. 이렇게 연말이 되면 마음의 공백이 크다. 누군가를 만나 허심탄회하게 술잔을 기울이기가 힘들다. 대부분 만나서 정치 얘기를 하게 되고, 심각해진다. 가볍지 못하다. 안다. 내 탓이다. 그만큼 내가 거리감을 느낀다. 고등학교 시절 이후 나의 인간관계가 이리도 얄팍했나. 한편으로 생각해본다. 여하간 난 지금 새벽녘까지 홀로 깨어있다. 뭔 짓일까, 싶다. 이상하게 억울하다. 잠시 들떴던 마음이 초라해졌다.
나이 들어간다는 건 어쩌면 외로워지는 일이 아닐까 싶다. 온전히 내 경우엔 그렇다. 혼자가 되는 일에 익숙해진다. 혼자만의 공간에 갇혀 사는 일이 익숙해진다. 어느 순간 그 무덤덤한 심리적 관성이 제 정신을 차릴 때 즈음, 덧없이 외롭다. 외로움을 느낀다. 연애를 해도 때때로 외롭고, 사람을 만나도 때때로 외롭고, 길을 걸어도 때때로 외롭다. 결핍이 강해진다. 내가 기대고 싶은 사람에게 절실한 신호를 보냈지만 그것이 외면당했다고 느껴지면 더더욱 쓸쓸하다. 구멍이 난다. 내가 아닌 것처럼 산다. 나를 흉내 내며 산다. 도무지 편하지 않다. 연말이라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왁자지껄할 때면 혼자라는 인식이 더욱 짙어진다. 요즘 들어 부쩍 외로움에 민감하다. 사람이 없다는 걸 느낀다. 점점 멀어져 간다. 사람들이 그립다. 또 나이는 하나 늘어가는데 그만큼 사람은 궁해진다. 사는 게 점점 삭막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연말이라 그래. 하긴 그럴지도 모르지. 괜한 걱정이야.